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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원소는 반하에서 공손찬과 싸우고, 손견은 강을 건너 유표를 공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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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七回

袁紹磐河戰公孫 孫堅跨江擊劉表

 

7

원소는 반하에서 공손찬과 싸우고, 손견은 강을 건너 유표를 공격하다.

 

 

卻說孫堅被劉表圍住虧得程普黃蓋韓當三將死救得脫折兵大半奪路引兵回江東自此孫堅與劉表結怨

 

한편, 손견은 유표에게 포위되었으나 다행히 정보 황개 한당 세 장수가 죽기를 무릅쓰고 구원하여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군사의 태반을 잃고 길을 뚫어 군사를 이끌고 강동으로 돌아왔다. 이로부터 손견은 유표와 원수가 되었다.

 

且說袁紹屯兵河內缺少糧草冀州牧韓馥遣人送糧以資軍用謀士逢紀說紹曰大丈夫縱橫天下何待人送糧爲食冀州乃錢糧廣盛之地將軍何不取之紹曰未有良策紀曰可暗使人馳書與公孫瓚令進兵取冀州約以夾攻瓚必興兵韓馥無謀之輩必請將軍領州事就中取事唾手可得紹大喜即發書到瓚處瓚得書見說共攻冀州平分其地大喜即日興兵

 

한편, 원소는 하내에 주둔했으나 군량과 마초가 부족했다. 기주목 한복이 사람을 보내어 군용으로 쓰라고 군량을 보내주었다. 모사 봉기가 원소를 설득하여 말하기를,

 

대장부가 천하를 종횡무진(縱橫無盡)하는데 어찌 남이 보내어 주는 군량으로 먹고 살겠습니까? 기주는 돈과 양식이 풍성한 땅이니 장군께서는 어찌하여 그곳을 취하지 않습니까?”

 

하였다. 원소가 말하기를,

 

좋은 계책이 아직 없습니다.”

 

하니, 봉기가 말하기를,

 

몰래 사람을 시켜 공손찬에게 글을 보내어 군사를 동원하여 기주를 취하라고 하고 (우리와) 협공하기를 약속한다면 공손찬이 반드시 군사를 일으킬 것입니다. 한복은 꾀가 없는 사람이라 반드시 장군을 청하여 고을의 일을 맡아달라고 할 것입니다. 그때 나아가 고을의 일을 취하기는 손바닥에 침을 뱉는 것처럼 쉬운 일입니다.”

 

하였다. 원소는 크게 기뻐하여 곧 공손찬이 있는 곳으로 편지를 보냈다. 공손찬이 편지를 받아보니 기주를 함께 공격하여 그 땅을 나누자고 설득하는 내용이었다. (공손찬은) 크게 기뻐하여 즉일로 군사를 일으켰다.

 

紹卻使人密報韓馥馥慌聚荀諶辛評二謀士商議諶曰公孫瓚將燕代之衆長驅而來其鋒不可當兼有劉備張助之難以抵敵今袁本初智勇過人手下名將極廣將軍可請彼同治州事彼必厚待將軍無患公孫瓚矣韓馥即差別駕關純去請袁紹長史耿武諫曰袁紹孤客窮軍仰我鼻息譬如嬰兒在股掌之上絕其乳哺立可餓死奈何欲以州事委之此引虎入羊群也馥曰吾乃袁氏之故吏才能又不如本初古者擇賢者而讓之諸君何嫉妒耶耿武歎曰冀州休矣於是棄職而去者三十餘人獨耿武與關純伏於城外以待袁紹

 

원소는 한편으로 사람을 시켜 한복에게 (공손찬이 공격할 것이라는) 비밀 보고를 했다. 한복은 놀라서 순심과 신평 두 모사를 불러서 상의했다. 순심이 말하기를,

 

공손찬이 연주와 대주의 군사를 거느리고 쳐들어 온다면 그 예봉을 당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유비 관우 장비가 그들을 도우니 대적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원본초(원소)가 지략과 용기가 남다르고 수하에 거느린 장수가 아주 많으니 장군께서는 그에게 고을의 일을 함께 다스리자고 청하면 그는 반드시 장군을 후대할 것이며 공손찬이 쳐들어와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하였다. 한복은 즉시 별가(보좌관) 관순을 보내어 원소를 청하려고 하니, 장사(부관) 경무가 간하기를,

 

원소는 외로운 나그네의 곤궁한 군사라 우리의 의향만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품에 안긴 어린애와 같아서 젖을 주지 않으면 굶어죽을 형편인데 어찌하여 고을의 일을 맡기려 하십니까? 이것은 호랑이를 끌어와서 양의 무리에 넣는 짓입니다.”

 

하니, 한복이 말하기를,

 

나는 일찍이 원씨의 옛 벼슬아치였고 재능이 또한 본초(원소의 자)만 못하다. 옛날 사람은 어진 사람을 택하여 양보한다고 했으니 그대들은 어찌 (원소를) 질투하는가?”

 

하였다. 경무가 탄식하여 말하기를,

 

기주가 끝나는구나.”

 

하였다. 이에 벼슬을 버리고 떠난 사람이 30여 명이었다. 홀로 경무와 관순이 성밖에 매복하여 원소를 기다렸다.

 

數日後紹引兵至耿武關純拔刀而出欲刺殺紹紹將顏良立斬耿武文醜砍死關純紹入冀州以馥爲奮威將軍以田豐沮授許攸逢紀分掌州事盡奪韓馥之權馥懊悔無及遂棄下家小匹馬往投陳留太守張邈去了

 

며칠 후 원소가 군사를 이끌고 도달하니 경무와 관순이 칼을 뽑아들고 나가서 원소를 죽이려 하였다. 원소의 장수 안량이 그 자리에 서서 경무를 참했고, 문추가 관순을 베어 죽였다. 원소가 기주에 입성하여 한복을 분위장군으로 삼고 전풍 저수 허유 봉기에게 고을의 일을 나누어 맡겨 한복의 권한을 모두 빼앗았다. 한복은 후회했으나 소용이 없었고, 마침내 가족을 버려두고 필마로 진류태수 장막에서 가서 투항했다.

 

卻說公孫瓚知袁紹已據冀州遣弟公孫越來見紹欲分其地紹曰可請汝兄自來吾有商議越辭歸行不到五十裏道旁閃出一彪軍馬口稱我乃董丞相家將也亂箭射死公孫越從人逃回見公孫瓚報越已死瓚大怒曰袁紹誘我起兵攻韓馥他卻就裏取事今又詐董卓兵射死吾弟此冤如何不報盡起本部兵殺奔冀州來

 

한편, 공손찬은 원소가 이미 기주를 차지한 것을 알고 아우 공손월을 보내어 원소를 만나 그 땅을 나누자고 하였다. 원소가 말하기를,

 

네 형이 스스로 와서 청한다면 내가 상의해 볼 수 있다.”

 

고 했다. 공손월이 인사하고 물러나와 돌아가는데 50리도 가지 않았는데, 길 옆에서 한 무리의 군마가 불쑥 나타나서 말하기를,

 

우리는 동탁 승상의 장수다.”

 

하며 어지럽게 활을 쏘아 공손월을 죽였다. 시종이 도망하여 공손찬에게 공손월이 이미 죽었다고 보고했다. 공손찬이 크게 성을 내어 말하기를,

 

원소가 나를 꾀어 기병하여 한복을 치자더니 그가 도리어 기주로 들어가 탈취하고, 지금 또 동탁의 군사라고 속이고 내 동생을 쏘아죽였으니, 이 원수를 어찌 갚지 않으랴.”

 

하고 본부의 군사를 모두 일으켜 기주로 달려갔다.

 

紹知瓚兵至亦領軍出二軍會於磐河之上紹軍於磐河橋東瓚軍於橋西瓚立馬橋上大呼曰背義之徒何敢賣我紹亦策馬至橋邊指瓚曰韓馥無才願讓冀州於吾與爾何幹瓚曰昔日以汝爲忠義推爲盟主今之所爲真狼心狗行之徒有何面目立於世間袁紹大怒曰誰可擒之言未畢文醜策馬挺槍直殺上橋公孫瓚就橋邊與文醜交鋒戰不到十餘合瓚抵擋不住敗陣而走文醜乘勢追趕瓚走入陣中文醜飛馬徑入中軍往來沖突瓚手下健將四員一齊迎戰被文醜一槍刺一將下馬三將俱走文醜直趕公孫瓚出陣後瓚望山穀而逃文醜驟馬厲聲大叫快下馬受降瓚弓箭盡落頭盔墮地披發縱馬奔轉山坡其馬前失瓚翻身落於坡下

 

원소가 공손찬의 군사가 이른 것을 알고 또한 군사를 거느리고 나왔다. 두 편의 군사가 반하 가에서 만났다. 원소의 군사는 반하교의 동쪽에 진을 치고 공손찬의 군사는 반하교 서쪽에 진을 쳤다. 공손찬이 다리 위에 말을 세우고 크게 소리쳐 말하기를,

 

신의를 배반한 무리야. 어찌 감히 나를 파느냐?”

 

하니, 원소가 또한 말을 채찍질하여 다리 옆에 이르러 공손찬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한복이 재주가 없어 기주를 나에게 양보하기를 원했는데, 네가 어찌 간섭을 하느냐?”

 

했다. 공손찬이 말하기를,

 

지난날 너를 충의롭다고 생각하여 맹주로 추대했는데, 지금 하는 짓을 보니 참으로 이리의 심보와 개같은 행동을 하는 무리로구나. 무슨 면목으로 세상에 선단 말이냐?”

 

하니, 원소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누가 저 놈을 붙잡아 오겠느냐?”

 

하는 말이 끝나기 전에 문추가 말을 채찍질하고 창을 꼬나잡고 곧바로 다리 위로 내달렸다. 공손찬이 다리 가로 나아가 문추와 겨루었다. 싸운 지 십여합이 되지 않아서 공손찬이 저항할 수 없어 패하여 달아났다. 문추가 이긴 형세를 타고 뒤를 쫓으니 공손찬이 진 속으로 달려들어갔다. 문추가 나는 듯이 말을 달려 중군으로 질러 들어와서 좌충우돌하니 공손찬의 수하인 건장한 장수 네 명이 일제히 적을 맞이했다. 그러나 문추가 한 번 창을 휘둘러 한 장수를 찔러 말 아래 떨어뜨리자 세 장수들은 모두 도망쳤다. 문추가 곧바로 공손찬을 쫓아 진 뒤쪽으로 나오자, 공손찬은 산골짜기를 바라보고 도망쳤다. 문추가 말을 몰아 성난 목소리로 크게 소리지르기를,

 

빨리 말에서 내려 항복해라.”

 

하니, 공손찬은 활과 화살을 모두 떨어뜨리고 투구도 땅에 떨어져 머리를 풀어헤치고 말을 되는대로 몰아 산비탈을 달려서 돌다가 말이 앞으로 고꾸라지니, 공손찬이 몸이 뒤집혀 언덕 아래로 떨어졌다.

 

文醜急撚槍來刺忽見草坡左側轉出一個少年將軍飛馬挺槍直取文醜公孫瓚扒上坡去看那少年生得身長八尺濃眉大眼闊面重頤威風凜凜與文醜大戰五六十合勝負未分瓚部下救軍到醜撥回馬去了那少年也不追趕瓚忙下土坡問那少年姓名那少年欠身答曰某乃常山真定人也姓趙名雲字子龍本袁紹轄下之人因見紹無忠君救民之心故特棄彼而投麾下不期於此處相見瓚大喜遂同歸寨整頓甲兵

 

문추가 급히 창을 잡고 찔렀다. (그때) 갑자기 풀밭 언덕 왼쪽에서 한 소년 장군이 뛰쳐 나왔다. 말을 달려 창을 꼬나쥐고 곧바로 문추를 취하니 공손찬은 언덕 위로 기어올라갔다. 그 소년을 보니 신장이 8척이고 짙은 눈썹 큰 눈에 넓적한 얼굴 이중턱으로 위풍이 늠름했다. 문추와 더불어 5,60합을 크게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공손찬의 부하 구원군이 도달하자 문추는 말을 돌려 달아났다. 그 소년도 더 이상 추격하지 않았다. 공손찬은 황망하게 언덕을 내려와서 그 소년의 성명을 물었다. 그 소년은 몸을 굽혀 대답하기를,

 

저는 상산군 진정현 사람입니다. 성은 조씨이고 이름은 운이며 자는 자룡입니다. 본디 원소가 관할하던 아래 사람인데, 원소가 임금에 충성하고 백성을 구하려는 마음이 없는 것을 보고 그를 버리고 특별히 휘하에 가담하려 했는데, 예기치 않게 이곳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공손찬이 크게 기뻐하여 마침내 함께 영채로 돌아와서 무장병을 정돈했다.

 

次日瓚將軍馬分作左右兩隊勢如羽翼馬五千餘匹大半皆是白馬因公孫瓚曾與羌人戰盡選白馬爲先鋒號爲白馬將軍羌人但見白馬便走因此白馬極多袁紹令顏良文醜爲先鋒各引弓弩手一千亦分作左右兩隊令在左者射公孫瓚右軍在右者射公孫瓚左軍再令麹義引八百弓手步兵一萬五千列於陣中袁紹自引馬步軍數萬於後接應公孫瓚初得趙雲不知心腹令其另領一軍在後

 

다음날, 공손찬은 군마를 좌우 양 부대로 나누어 거느리니 형세가 날개를 편 듯하였다. 말이 5천여 필인데 태반이 모두 백마였다. 공손찬은 일찍이 오랑캐와 싸울 적에 백마를 골라 선봉에 세우고 백마장군이라 불렀는데 오랑캐들이 백마만 보면 달아났으므로 그로 인해 백마가 아주 많았다. 원소는 안량과 문추를 선봉으로 삼아 각각 궁노수(활과 쇠뇌를 쏘는 군사) 1천 명을 이끌고, 또 좌우 양대로 나누어 좌대에 있는 자는 공손찬의 우군을 쏘게 하고, 우대에 있는 자는 공손찬의 좌군을 쏘게 하였다. 다시 국의에게 궁수 8백 명과 보병 일만 오천 명을 이끌고 진 가운데 벌려서게 했다. 원소는 스스로 보병 수만 명을 이끌고 뒤에서 접응하기로 했다. 공손찬은 조운을 처음 얻어 그 마음속을 알지 못하므로 따로 한 무리의 군사를 거느리고 뒤에 있게 했다.

 

遣大將嚴綱爲先鋒瓚自領中軍立馬橋上傍豎大紅圈金線帥字旗於馬前從辰時擂鼓直到巳時紹軍不進麹義令弓手皆伏於遮箭牌下只聽炮響發箭嚴綱鼓噪呐喊直取麹義義軍見嚴綱兵來都伏而不動直到來得至近一聲炮響八百弓弩手一齊俱發綱急待回被麹義拍馬舞刀斬於馬下瓚軍大敗左右兩軍欲來救應都被顏良文醜引弓弩手射住紹軍並進直殺到界橋邊麹義馬到先斬執旗將把繡旗砍倒公孫瓚見砍倒繡旗回馬下橋而走麹義引軍直沖到後軍正撞著趙雲挺槍躍馬直取麹義戰不數合一槍刺麹義於馬下趙雲一騎馬飛入紹軍左沖右突如入無人之境公孫瓚引軍殺回紹軍大敗

 

대장 여강을 보내 선봉으로 삼고 공손찬은 직접 중군을 거느리고 다리 위에 말을 세웠다. 옆에는 금색실로 수놓은 붉고 둥글고 큰 대장기를 말 앞에 세웠다. 진시(오전 8)부터 북을 울려서 사시(오전 10)가 되었지만 원소의 군사는 움직이지 않았다. (원소의 장수) 국의가 궁수에게 화살막이 방패 밑에 숨어서 포소리가 나면 활을 쏘라고 했다. 엄강이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곧바로 국의에게 달려들자, 국의의 군사가 엄강의 군대가 오는 것을 보고도 모두 엎드려 움직이지 않았다. 곧바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이르자, 한번 포소리가 터지면서 8백 궁수와 쇠뇌수가 일제히 화살을 발사했다. 엄강은 급히 돌아가려고 했지만 국의가 말을 박차고 칼을 춤추며 달려들어서 목을 베어 말 아래 떨어뜨렸다. 공손찬의 군사는 대패하여 좌우 양군이 와서 구원하려 했지만 모두 안량 문추가 거느린 궁노수의 화살에 맞았다. 원소의 군사들은 함께 진격하여 바로 다리 가에 쇄도했다. 국의의 말이 이르러 먼저 기를 든 장수를 베니 수놓은 깃발이 찢어져 넘어졌다. 공손찬은 찢어져 넘어진 수놓은 깃발을 보자 말을 돌려 다리에서 내려와 달아났다. 국의가 군대를 이끌고 곧바로 후군을 무찔러 들어가니, 조운과 맞부딪혔다. 조운이 창을 세우고 말을 달려 바로 국의와 맞붙었다. 싸운 지 몇 합이 지나지 않아 한번 창으로 국의를 찔러 말 아래 떨어뜨렸다. 조운은 단기필마로 나는 듯이 원소의 군으로 쳐들어가 좌충우돌하는 것이 마치 무인지경에 들어간 듯하였다. 공손찬이 군사를 돌려 쳐들어가니 원소의 군이 대패하였다.

 

卻說袁紹先使探馬看時回報麹義斬將搴旗追趕敗兵因此不作准備與田豐引著帳下持戟軍士數百人弓箭手數十騎乘馬出觀呵呵大笑曰公孫瓚無能之輩正說之間忽見趙雲沖到面前弓箭手急待射時雲連刺數人衆軍皆走後面瓚軍團團圍裹上來田豐慌對紹曰主公且於空牆中躲避紹以兜鍪撲地大呼曰大丈夫願臨陣鬥死豈可入牆而望活乎衆軍士齊心死戰趙雲沖突不入紹兵大隊掩至顏良亦引軍來到兩路並殺趙雲保公孫瓚殺透重圍回到界橋紹驅兵大進複趕過橋落水死者不計其數

 

한편, 원소는 먼저 척후병을 보내 시기를 보다가 국의가 장수를 베고 기를 뽑고 패배한 군사를 추격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이로 인해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전풍과 함께 휘하의 창을 든 군사 수백 명과 궁수 수십 명을 이끌고 말을 타고 (싸움을) 구경하면서 껄껄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공손찬이 무능한 놈이로군.”

 

하였다. 바로 이렇게 말하는 사이에 갑자기 조운이 면전에 돌진해 들어왔다. 궁수가 급히 활을 당길 때 조운은 연달아 몇 명을 찌르니 여러 군사들이 모두 달아났다. 뒤에서 공손찬 군사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쳐들어왔다. 전풍이 황급히 원소에게 말하기를,

 

주공은 담장 안으로 몸을 피하십시오.”

 

했다. 원소가 투구로 땅을 두드리며 크게 부르짖기를,

 

대장부가 싸움터에서 싸우다가 죽는 것이 소원이거늘 어찌 담장 안에 들어가서 살기를 바라겠는가?”

 

하였다. 여러 군사들이 마음을 합쳐 필사적으로 싸우니 조운이 더 치고 들어오지 못하였다. 원소의 대부대가 불의에 엄습하고 안량 또한 군사를 이끌고 도착하니 양쪽 길로 함께 쳐들어갔다. 조운이 공손찬을 보호하여 포위망을 뚫고 돌아와 경계의 다리에 도착했다. 원소의 군사가 대거 앞으로 나아가 다시 추격하니 물에 떨어져 죽은 자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袁紹當先趕來不到五裏只聽得山背後喊聲大起閃出一彪人馬爲首三員大將乃是劉玄德關雲長張翼德因在平原探知公孫瓚與袁紹相爭特來助戰當下三匹馬三般兵器飛奔前來直取袁紹紹驚得魂飛天外手中寶刀墜於馬下忙撥馬而逃衆人死救過橋公孫瓚亦收軍歸寨玄德張動問畢瓚曰若非玄德遠來救我幾乎狼狽教與趙雲相見玄德甚相敬愛便有不舍之心

 

원소가 앞서서 추격하여 5리에 이르지 못했을 때 산 뒤쪽에서 함성이 크게 일어나는 것을 들었다. 불쑥 한 무리의 인마가 나타났는데 우두머리는 세 사람의 대장이라 바로 유현덕 관운장 장익덕이었다. 평원에서 공손찬과 원소의 싸움을 탐지하다가 특별히 와서 싸움을 도우는 것이었다. 바로 세 필의 말을 타고 세 가지 병장기를 들고 나는 듯이 앞으로 달려나와 원소와 맞붙었다. 원소가 놀라서 혼이 하늘 밖으로 날아가는데, 손에 쥔 보도를 말 아래 떨어뜨리고 황급히 말을 몰아 도망쳤다. 여러 사람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구하여 다리를 지났다. 공손찬도 군사를 수습하여 영채로 돌아왔다. 현덕 관우 장비가 인사를 마치니, 공손찬이 말하기를,

 

만약 현덕이 멀리서 와서 나를 구해주지 않았다면 거의 낭패볼 뻔했네.”

 

하고 조운과 서로 만나게 하였다. 현덕은 그를 매우 존중하고 사랑하여 문득 아쉬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卻說袁紹輸了一陣堅守不出兩軍相拒月餘有人來長安報知董卓李儒對卓曰袁紹與公孫瓚亦當今豪傑現在磐河廝殺宜假天子之詔差人往和解之二人感德必順太師矣卓曰次日便使太傅馬日磾太仆趙岐齎詔前去二人來至河北紹出迎於百裏之外再拜奉詔次日二人至瓚營宣諭瓚乃遣使致書於紹互相講和二人自回京複命瓚即日班師又表薦劉玄德爲平原相玄德與趙雲分別執手垂淚不忍相離雲歎曰某曩日誤認公孫瓚爲英雄今觀所爲亦袁紹等輩耳玄德曰公且屈身事之相見有日灑淚而別

 

각설, 원소는 한 판을 지고 나서 굳게 지키고 나오지 않았다. 양쪽 군사들은 한 달 넘게 서로 버티었다. 어떤 사람이 장안으로 와서 동탁에게 (원소와 공손찬의 소식을) 보고했다. 이유가 동탁에게 말하기를,

 

원소와 공손찬은 역시 오늘날의 호걸입니다. 지금 반하에서 서로 싸우고 있는데 마땅히 천자의 명을 빌려서 사람을 보내 화해하게 하면 두 사람이 은덕에 감사하여 반드시 태사를 따를 것입니다.”

 

하였다. 동탁이 말하기를,

 

좋다.”

 

하고, 다음날 곧 태부 마일제와 태복 조기에게 조서를 보내서 가게 했다. 두 사람이 하북에 이르자 원소가 백 리 밖에 나와서 맞이하여 두 번 절하고 조서를 받았다. 다음날 두 사신은 공손찬의 진영에 도착하여 천자의 명령을 전하니, 공손찬이 원소에게 사신을 보내 편지를 전하여 서로 화해했다. 두 사신은 서울(장안)로 돌아와 명을 수행하고 보고했다. 공손찬은 그날로 군대를 물려 돌아갔고, 또 표를 올려 현덕을 평원상(상은 보좌관)으로 추천했다. 현덕과 조운은 헤어지면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차마 떨어지지를 못했다. 조운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제가 지난날 공손찬을 영웅으로 잘못 알았습니다. 지금 하는 짓을 보니 역시 원소와 비슷한 무리입니다.”

 

하였다. 현덕이 말하기를,

 

공은 몸을 낮추고 그를 섬기시오. 서로 만날 날이 있을 것이오.”

 

하고 눈물을 흘리며 작별하였다.

 

卻說袁術在南陽聞袁紹新得冀州遣使來求馬千匹紹不與術怒自此兄弟不睦又遣使往荊州問劉表借糧二十萬表亦不與術恨之密遣人遺書於孫堅使伐劉表其書略曰前者劉表截路乃吾兄本初之謀也今本初又與表私議欲襲江東公可速興兵伐劉表吾爲公取本初二仇可報公取荊州吾取冀州切勿誤也堅得書曰叵耐劉表昔日斷吾歸路今不乘時報恨更待何年聚帳下程普黃蓋韓當等商議程普曰袁術多詐未可准信堅曰吾自欲報仇豈望袁術之助乎便差黃蓋先來江邊安排戰船多裝軍器糧草大船裝載戰馬克日興師江中細作探知來報劉表表大驚急聚文武將士商議

 

한편, 원술은 남양에서 원소가 새로 기주를 얻었다는 소문을 듣고 사신을 보내 말 천 필을 지원해 달라고 했으나 원소가 주지 않자 원술이 노했다. 이로부터 형제간에 사이가 나빠졌다. 또 사신을 형주에 보내어 유표에게 식량 20만 석을 빌려달라고 했으나 유표 역시 주지 않았다. 원술은 이들을 원망하여 몰래 손견에게 사람을 보내 유표를 치자고 편지를 전했다. 그 편지에 대략 이르기를,

 

전에 유표가 (공의) 길을 막은 것은 내 형 본초(원소)의 꾀였습니다. 지금 본초가 또 유표와 사사로이 모의하여 강동을 습격하고자 합니다. 공이 빨리 군사를 일으켜 유표를 치면 나는 공을 위하여 본초를 치겠습니다. 이 두 원수를 갚으면 공은 형주를 취하고 나는 기주를 취할 것이니 절대로 잘못하면 안 됩니다.”

 

하였다. 손견이 편지를 받아보고 말하기를,

 

참을 수 없다, 유표! 전날에 내가 돌아가는 일을 막아섰던 일을 이 기회를 타서 갚지 못한다면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겠는가!”

 

하고, 휘하의 정보 황개 한당 등을 모아 상의하였다. 정보가 말하기를,

 

원술은 속임수가 많으니 믿을 수 없습니다.”

 

했다. 손견이 말하기를,

 

내가 친히 원수를 갚겠다는데 어찌 원술의 도움을 바라겠는가?”

 

하고, 곧 황개를 먼저 강변으로 보내서 전선을 배치하게 하고, 무기와 군량 마초를 실으며, 큰 배에는 말을 싣고 서둘러 군사를 일으켰다. 강변의 세작(간첩)이 탐지하여 유표에게 보고하니, 유표가 크게 놀라서 급히 문무 장사를 모아 상의하였다.

 

蒯良曰不必憂慮可令黃祖部領江夏之兵爲前驅主公率荊襄之衆爲援孫堅跨江涉湖而來安能用武乎表然之令黃祖設備隨後便起大軍卻說孫堅有四子皆吳夫人所生長子名策字伯符次子名權字仲謀三子名翊字叔弼四子名匡字季佐吳夫人之妹即爲孫堅次妻亦生一子一女子名朗字早安女名仁堅又過房俞氏一子名韶字公禮堅有一弟名靜字幼台堅臨行靜引諸子列拜於馬前而諫曰今董卓專權天子懦弱海內大亂各霸一方江東方稍寧以一小恨而起重兵非所宜也願兄詳之堅曰弟勿多言吾將縱橫天下有仇豈可不報長子孫策曰如父親必欲往兒願隨行堅許之遂與策登舟殺奔樊城

 

괴량이 말하기를,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황조에게 강하의 군사를 거느리고 먼저 적과 맞서게 하고, 주공께서는 형주와 양주의 군사를 거느리고 후원이 된다면 손견이 강을 건너고 호수를 건너서 온들 어찌 능히 무력을 쓰겠습니까?”

 

하니, 유표가 그렇다고 하고, 황조에게 준비하라고 했다. 뒤따라 곧 대군을 일으켰다. 각설, 손견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오부인이 낳았다. 맏아들은 이름이 책이고 자는 백부이며, 둘째 아들은 이름이 권이고 자는 중모이며, 셋째 아들은 이름이 익이고 자는 숙필이며, 넷째 아들은 이름이 광이고 자는 계좌였다. 오부인의 누이동생이 손견의 둘째 부인이 되었는데, 또한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낳았다. 아들의 이름은 랑이고 자는 조안이며, 딸의 이름은 인이었다. 손견은 또 유씨의 아들을 양자로 삼았는데 이름은 소이고 자는 공례였다. 손견에게는 아우가 하나 있는데, 이름은 정이고 자는 유대였다. 손견이 전장으로 떠나려 하자, 아우 손정이 여러 아들을 말 앞에 벌려 절하게 하고 간하기를,

 

지금 동탁이 조정의 권리를 독점하고 천자가 나약하여 온 천하에 대란이 일어나서 각각 한 지방의 패권을 행사하지만, 강동은 바야흐로 매우 평화로우니 작은 원한으로 대규모 군사를 일으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원컨대 형님은 자세히 살피십시오.”

 

하니, 손견이 말하기를,

 

아우는 여러 말 하지 말라. 내가 장차 천하에 종횡무진하려고 하는데, 원수를 어찌 갚지 않겠느냐!”

 

했다. 맏아들 손책이 말하기를,

 

만약 아버지께서 꼭 그렇게 하시겠다면 저도 따라가기를 원합니다.”

 

하였다. 손견이 허락하니 드디어 손책과 함께 배에 올라 번성으로 배를 몰아갔다.

 

黃祖伏弓弩手於江邊見船傍岸亂箭俱發堅令諸軍不可輕動只伏於船中來往誘之一連三日船數十次傍岸黃祖軍只顧放箭箭已放盡堅卻拔船上所得之箭約十數萬當日正值順風堅令軍士一齊放箭岸上支吾不住只得退走堅軍登岸程普黃蓋分兵兩路直取黃祖營寨背後韓當驅兵大進三面夾攻黃祖大敗棄卻樊城走入鄧城堅令黃蓋守住船只親自統兵追襲黃祖引軍出迎布陣於野堅列成陣勢出馬於門旗之下孫策也全副披掛挺槍立馬於父側黃祖引二將出馬一個是江夏張虎一個是襄陽陳生黃祖揚鞭大罵江東鼠賊安敢侵略漢室宗親境界便令張虎搦戰堅陣內韓當出迎兩騎相交戰二十餘合陳生見張虎力怯飛馬來助孫策望見按住手中槍扯弓搭箭正射中陳生面門應弦落馬張虎見陳生墜地吃了一驚措手不及被韓當一刀削去半個腦袋程普縱馬直來陣前捉黃祖黃祖棄卻頭盔戰馬雜於步軍內逃命孫堅掩殺敗軍直到漢水命黃蓋將船只進泊漢江

 

황조가 궁노수를 강변에 숨기고 배가 강변에 닿는 것을 보자 어지럽게 화살을 쏘았다. 손견이 여러 군사에게 가벼이 움직이지 말고 배 안에 엎드려서 (적군이) 오기를 유인하라고 하였다. 연이어 3일 동안 배가 수십 차례 강변에 다가가니, 황조 군사는 오로지 화살만 쏘아대어 화살이 이미 다하였다. 손견은 배 위에서 얻은 화살을 뽑으니 약 십수만 개였다. 그날 마침 순풍이 불자 손견은 군사들에게 일제히 활을 쏘라고 명령했다. 강변의 군사들은 저항하지 못하고 할 수 없이 물러나 달아났다. 손견의 군사는 강변에 올라 정보 황개가 두 길로 군사를 나누어 곧바로 황조의 영채로 쳐들어갔다. 뒤에는 한당이 군사를 몰아 진격하여 삼면에서 협공하니 황조가 대패하여 번성을 버리고 등성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손견이 황개를 시켜 배를 지키라 하고 스스로 군사를 거느리고 추격했다. 황조가 군사를 이끌고 나와 들판에 포진했다. 손견이 진세를 벌려놓고 진문의 깃발 아래로 말을 타고 나갔다. 손책도 군장을 차려입고 창을 세우고 말을 타고 아버지 옆에 섰다. 황조가 두 장수를 이끌고 말을 타고 나왔는데, 한 장수는 강하의 장호이고 다른 한 장수는 양양의 진생이었다. 황조가 채찍을 들어 크게 욕하기를,

 

강동의 쥐새끼같은 도적놈아. 어찌 감히 한실 종친의 경계를 침범하느냐!”

 

하고, 바로 장호에게 싸움을 걸게 하였다. 손견의 진영 안에서 한당이 나가 맞았다. 두 마리 말이 서로 겨루어 싸운 지 20여 합에 장호의 힘이 부치는 것을 본 진생이 말을 달려 나와 도왔다. 손책이 멀리서 바라보고 있다가 손에 든 창을 놓고 활을 잡아 화살을 매겨 바로 진생의 얼굴을 맞추니 시위소리와 함께 말에서 떨어졌다. 장호가 진생이 말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손을 쓸 새가 없을 때 한당이 휘두른 칼에 맞아 뇌 반쪽이 깎여나갔다. 정보는 말을 달려 곧바로 황조를 잡으려고 진 앞으로 달려들자, 황조가 투구와 전마를 버리고 보군들과 섞여 도망갔다. 손견이 패잔군을 뒤쫓아 덮치며 곧장 한수에 이르러, 황개에게 배를 몰아 한강에 정박시키라고 명령했다.

 

黃祖聚敗軍來見劉表備言堅勢不可當表慌請蒯良商議良曰目今新敗兵無戰心只可深溝高壘以避其鋒卻潛令人求救於袁紹此圍自可解也蔡瑁曰子柔之言直拙計也兵臨城下將至壕邊豈可束手待斃某雖不才願請軍出城以決一戰劉表許之蔡瑁引軍萬餘出襄陽城外於峴山布陣孫堅將得勝之兵長驅大進蔡瑁出馬堅曰此人是劉表後妻之兄也誰與吾擒之程普挺鐵脊矛出馬與蔡瑁交戰不到數合蔡瑁敗走堅驅大軍殺得屍橫遍野蔡瑁逃入襄陽蒯良言瑁不聽良策以致大敗按軍法當斬劉表以新娶其妹不肯加刑

 

황조가 패잔군을 모아 유표를 뵙고 손견의 기세를 당할 수가 없다고 갖추어 말했다. 유표가 놀라서 괴량을 청하여 상의했다. 괴량이 말하기를,

 

이제 막 패전하여 병사들이 싸울 마음이 없으니 오직 해자를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이 쌓아 그 예봉을 피해야 합니다. 한편으로 원소에게 사람을 보내 요청하면 이 포위는 저절로 풀릴 것입니다.”

 

하니, 채모가 말하기를,

 

자유(괴량의 자)의 말은 아주 어리석은 계책입니다. 적병은 성밖에 다가와서 장차 해자 곁에 이를 것인데, 어찌 손을 묶어놓고 죽음을 기다리겠습니까? 제가 비록 재주는 없으나 군사를 이끌고 성밖에 나가 한바탕 결전을 치루겠습니다.”

 

하였다. 유표가 허락하니, 채모가 군사 만여 명을 이끌고 양양성 밖으로 나와 현산에 포진을 했다. 손견이 승리를 이룬 군사를 거느리고 엄청난 기세로 진격했다. 채모가 말을 타고 나오니, 손견이 말하기를,

 

저놈은 유표의 후처 오빠다. 누가 나에게 저 놈을 사로잡아 오겠는가?”

 

하였다. 정보가 철척모(등뼈처럼 생긴 창)을 꼬나쥐고 말을 타고 나가 채모와 어울려 싸웠다. 몇 합 지나지 않아 채모가 패하여 달아났다. 손견은 대군을 몰아 공격하니 시체가 온 들판에 널부러졌다. 채모가 도망쳐서 양양으로 들어가니, 괴량이 말하기를, 채모가 좋은 계책을 듣지 않고 대패했으니 군법에 따라 목을 베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유표는 채모의 누이를 새로 아내로 맞아들였기 때문에 채모에게 형벌을 가할 수는 없었다.

 

卻說孫堅分兵四面圍住襄陽攻打忽一日狂風驟起將中軍帥字旗竿吹折韓當曰此非吉兆可暫班師堅曰吾屢戰屢勝取襄陽只在旦夕豈可因風折旗竿遽爾罷兵遂不聽韓當之言攻城愈急蒯良謂劉表曰某夜觀天象見一將星欲墜以分野度之當應在孫堅主公可速致書袁紹求其相助劉表寫書問誰敢突圍而出健將呂公應聲願往蒯良曰汝既敢去可聽吾計與汝軍馬五百多帶能射者沖出陣去即奔峴山他必引軍來趕汝分一百人上山尋石子准備一百人執弓弩伏於林中但有追兵到時不可徑走可盤旋曲折引到埋伏之處矢石俱發若能取勝放起連珠號炮城中便出接應如無追兵不可放炮趲程而去今夜月不甚明黃昏便可出城

 

각설, 손견은 군사를 네 방면으로 나누어 양양성을 에워싸고 공격했다. 하루는 갑자기 광풍이 일어나서 중군에 세워둔 수자기의 깃대가 바람에 부러졌다. 한당이 말하기를,

 

이것은 좋은 조짐이 아닙니다. 잠시 회군을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손견이 말하기를,

 

나는 여러 번 싸워서 그때마다 이겼고, 양양을 취하는 것이 단지 아침저녁에 있는데, 어찌 바람에 깃대가 부러졌다고 갑자기 군사를 물리겠느냐!”

 

하고, 마침내 한당의 말을 듣지 않고 성을 더욱 맹렬히 공격했다. 괴량이 유표에게 말하기를,

 

제가 밤에 천문을 보았더니 한 개의 장성이 떨어지려고 하는 것을 보고 별자리가 해당한 곳을 따져보니 손견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주공께서는 빨리 원소에게 글을 보내어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하였다. 유표가 편지를 쓰고 묻기를 누가 감히 포위망을 뚫고 나가겠느냐고 하니, 건장한 장수 여공이 소리가 떨어지자마자 가겠다고 나섰다. 괴량이 말하기를,

 

그대가 용감하게 가겠다고 하니, 내 계책을 잘 들으시오. 그대에게 군마 오백을 줄 터이니 활 잘 쏘는 병사를 많이 데리고 진을 뚫고 나가거든 곧바로 현산으로 달아나시오. 그들은 반드시 군사를 이끌고 추격할 것이니, 그대는 백명씩 나누어 산 위에 올라 돌덩이를 준비하고, 백명은 활과 쇠뇌를 갖고 숲속에 매복하시오. (나머지 병사들은) 추격병이 도달했을 때 지름길로 가지 말고 꾸불꾸불 돌아서 매복한 곳으로 유인하여 화살과 돌을 함께 퍼부어 만약 승리하면 연주포를 쏘아올리시오. 그러면 성중에서도 나가 접응할 것이오. 만일 추격병이 없다면 연주포를 쏘지 말고 급히 달려가시오. 오늘 밤은 달이 그리 밝지 않으니 황혼께에 성을 나가면 될 것이오.”

 

라고 했다.

 

呂公領了計策拴束軍馬黃昏時分密開東門引兵出城孫堅在帳中忽聞喊聲急上馬引三十餘騎出營來看軍士報說有一彪人馬殺將出來望峴山而去堅不會諸將只引三十餘騎趕來呂公已於山林叢雜去處上下埋伏堅馬快單騎獨來前軍不遠堅大叫休走呂公勒回馬來戰孫堅交馬只一合呂公便走閃入山路去堅隨後趕入卻不見了呂公堅方欲上山忽然一聲鑼響山上石子亂下林中亂箭齊發堅體中石腦漿迸流人馬皆死於峴山之內壽止三十七歲

 

여공이 계책을 듣고 군마를 모아서 황혼에 가만히 동문을 열고 군사를 이끌고 성을 나갔다. 손견이 군막 속에 있다가 갑자기 함성소리를 듣고 급히 말에 올라 십여 명의 기병을 이끌고 영채를 나와 보았다. 군사가 보고하기를,

 

한 무리의 인마가 쏟아져 나와서 현산을 향해 달아났습니다.”

 

하니, 손견이 여러 장수들을 모으지 않고 다만 30여 기병을 이끌고 추격했다. 여공이 이미 산속 떨기나무 뒤섞인 곳으로 가서 아래 위로 매복하였다. 손견이 빠르게 혼자 말을 몰아 쫓으니 앞서간 군사가 멀지 않았다. 손견이 크게 소리치기를,

 

달아나지 말라.”

 

하니, 여공이 말을 돌려 손견과 싸우려 달려들었다. 말이 어울린 지 단지 일 합에 여공은 문득 달아나서 언뜻 산길로 들어갔다. 손견이 뒤를 쫓아 들어가니, 여공이 보이지 않았다. 손견이 바야흐로 산 위로 올라가려는데, 갑자기 징소리가 울리고 산 위에서 돌들이 어지럽게 굴려 내려오고 숲속에서 일제히 화살이 어지럽게 발사되었다. 손견의 몸뚱이가 돌과 화살에 맞아 뇌수가 흘러나오고 사람과 말이 현산 속에서 모두 죽었다. 나이가 서른 일곱 살에 그쳤다.

 

呂公截住三十騎並皆殺盡放起連珠號炮城中黃祖蒯越蔡瑁分頭引兵殺出江東諸軍大亂黃蓋聽得喊聲震天引水軍殺來正迎著黃祖戰不兩合生擒黃祖程普保著孫策急待尋路正遇呂公程普縱馬向前戰不到數合一矛刺呂公於馬下兩軍大戰殺到天明各自收車

 

여공은 (손견의) 30명 기병을 가로막고 모두 죽였다. 그리고 연주를 터뜨리니, 성 속에서 황조 괴월 채모 등이 제각기 군사를 이끌고 쏟아져 나왔다. 강동의 여러 군사들이 크게 어지러워졌다. 황개가 함성이 진동하는 것을 듣고 수군을 이끌고 달려와서 바로 황조를 맞아 싸웠다. 싸움이 두 합도 안 되어서 황조를 생포했다. 정보는 손책을 보호하여 길을 찾아 나아가다가 바로 여공을 만났다. 정보가 말을 달려 앞으로 나아가 싸운 지 몇 합이 되지 않아 한 창에 여공을 찔러 말 아래 떨어뜨렸다. 양편 군사가 크게 싸워 날이 밝아오자 각자 군사를 거두었다.

 

劉表軍自入城孫策回到漢水方知父親被亂箭射死屍首已被劉表軍士扛抬入城去了放聲大哭衆軍俱號泣策曰父屍在彼安得回鄉黃蓋曰今活捉黃祖在此得一人入城講和將黃祖去換主公屍首言未畢軍吏桓階出曰某與劉表有舊願入城爲使策許之桓階入城見劉表具說其事表曰文台屍首吾已用棺木盛貯在此可速放回黃祖兩家各罷兵再休侵犯桓階拜謝欲行階下蒯良出曰不可不可吾有一言今江東諸軍片甲不回請先斬桓階然後用計正是追敵孫堅方殞命求和桓階又遭殃

 

유표의 군대는 스스로 성안으로 들어갔고, 손책은 돌아가 한수에 이르렀다. 그때서야 아버지가 어지러운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시체는 이미 유표의 군사가 메고 성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손책이 방성대곡(소리를 놓아 크게 움)하니 전군이 모두 소리내어 울었다. 손책이 말하기를,

 

아버지의 시신이 저들에게 있으니 어찌 고향으로 돌아가리오!”

 

하니 황개가 말하기를,

 

지금 황조가 여기에 산 채로 잡혔으니 한 사람이 성에 들어가서 강화(화해)하여 황조를 돌려보내고 주공의 시신을 교환하십시오.”

 

하였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군리(군무원) 환계가 나와서 말하기를,

 

제가 유표와 옛 친분이 있으니 성에 파견되는 사신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였다. 손책이 허락하니, 환계가 성에 들어가 유표를 만났다. (환계가 자신이 오게 된) 일을 갖추어 말하니, 유표가 말하기를,

 

문대(손책의 자)의 시체는 내가 이미 나무 관에 넣어서 여기에 두었소. 빨리 황조를 돌려주고 두 집안이 각각 군사를 물리고 다시 침범하지 맙시다.”

 

하였다. 환계는 감사 인사를 하고 가려고 하니, 계단 아래에 있던 괴량이 나와서 말하기를,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제가 한 말씀 드리자면, 지금 강동의 여러 군사들은 갑옷쪼가리마저도 돌려보내서는 안 됩니다. 먼저 환계를 참한 후에 계책을 쓰십시오.”

 

했다. 이야말로, 적을 쫓던 손견은 바야흐로 죽었고, 화해를 구하던 환계는 또 재앙을 만났구나.

 

未知桓階性命如何且聽下文分解

 

환계의 목숨이 어찌 될지 알 수 없으니, 다음 회의 이야기를 들으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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