秕稗荒原嫠婦摘, 螬桃小樹里童喧. 滿田病穟無人管, 將犢黃牛自齕呑. 場圃竝無禾黍入, 日斜群雀噪荒村. 閑愁忽忽抛書臥, 會事林風爲掩門. 비패황원이부적, 조도소수이동훤. 만전병수무인관, 장독황우자흘탄. 장포병무화서입, 일사군작조황촌. 한수홀홀포서와, 회사림풍위엄문. |
황량한 들녘에는 쭉정이뿐 과부가 나와 줍고, 벌레 먹은 복숭아나무 아래 동네 아이들 싸우고 있다. 돌보는 농부 없이 병든 이삭 가득한 논에서는, 송아지 딸린 황소만이 마음대로 먹어치운다. 타작할 볏단 한 묶음 마당에 들어오지 않고, 참새떼가 해질 무렵 황량한 마을에 시끄럽다. 밑도 끝도 없는 시름 풀풀 나서 책 던지고 누웠더니, 때맞춰 숲 바람 불어와 문을 닫아버린다. |
이충익(李忠翊·1744~1816) |
갑술년 가을, 흉년의 시름을 시로 읊은 초원 이충익
1. 황량한 들녘, 쭉정이만 가득
"秕稗荒原嫠婦摘" (비패황원이부적): 그야말로 황량(荒涼)한 들녘, 여기에 남아 있는 건 쭉정이뿐. 가을이지만 추수할 건 없고, 쭉정이를 줍는 과부(寡婦)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걸 주워서 뭐 해 먹으려고?”라는 푸념이 절로 나온다. 😟 밭이 그렇게 넓어도 쓸 만한 건 없으니, 참 딱하다.
2. 벌레 먹은 복숭아나무 아래 싸움 구경
"螬桃小樹里童喧" (조도소수이동훤): 벌레 먹어 시들어버린 복숭아나무 아래, 동네 아이들이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시끌벅적 싸우고 논다. “야, 그거 내 거야!”라며 아웅다웅하는데, 이 싸움이 어쩐지 우스워 보인다. 복숭아는 벌레가 먹었고, 들은 황량하고, 아이들만 시끌벅적하니... 뭔가 모순된 느낌이 웃프다. 😂
3. 논은 병든 이삭 가득, 송아지 딸린 황소만 제멋대로
"滿田病穟無人管, 將犢黃牛自齕呑" (만전병수무인관, 장독황우자흘탄): 논에는 병든 이삭이 가득한데, 이를 돌보는 농부(農夫)는 없다. 대신 송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황소가 한가로이 이삭을 뜯어 먹는다. “야, 너라도 잘 먹어라!” 하고 싶지만, 정작 주인들은 먹을 게 없는 상황이라니... 황소마저 자유롭게 뜯어 먹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 🐂🌾
4. 타작할 볏단도 없고, 참새만 잔뜩 시끄럽다
"場圃竝無禾黍入, 日斜群雀噪荒村" (장포병무화서입, 일사군작조황촌): 수확(收穫)할 볏단이 있어야 마당이 분주할 텐데, 하나도 없다. 해는 저물어가고 참새떼만 들판 위에서 시끄럽게 짹짹대고 있다. 참새들, 뭐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텅 빈 마을이 이토록 소란스럽게 느껴진다. 🐦🐦 "조용히 좀 해라, 참새들아. 여긴 지금 황량(荒涼)해."
5. 책 던지고, 바람이 문을 닫는다
"閑愁忽忽抛書臥, 會事林風爲掩門" (한수홀홀포서와, 회사림풍위엄문): 마음이 싱숭생숭하니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결국 책을 던지고 눕는다. 그런데 마침 바람이 불어와 문을 휙 닫아버린다. “그래, 닫아라, 닫아!” 하고 체념(諦念)하게 만드는 이 가을의 바람. 감정은 시름시름한데, 그 시름마저 바람이 쓱 닫아주는 느낌이 왠지 웃프다. 🍂🌬
6. 두 줄 요약: 흉년의 황량함과 그 속의 감정
초원(椒園) 이충익(李忠翊)이 갑술년(甲戌年, 1814년) 가을에 남긴 이 시(詩)는, 당대의 참담한 농촌(農村) 풍경을 가감 없이 담아냈다. 쭉정이와 병든 이삭, 벌레 먹은 복숭아나무와 시끄러운 참새, 무책임하게 논을 뜯는 황소... 이 모든 것이 한데 엉켜, 그야말로 '황량(荒涼)한 들판의 합창(合唱)'이 된다. 🤯
“어차피 할 일도 없고, 볼 것도 없다,”라며 책 던지고 누웠는데, 바람이 문을 닫아준다. 마치 "응, 그렇지? 이제 끝났어!" 하는 듯이. 이게 바로 200년 전 가을의 흉년(凶年) 풍경(風景)이다. 🌾🍂
7. 갑술년 가을
이 시(詩)를 쓴 초원(椒園) 이충익(李忠翊), 그 시대에도 아마 무거운 시름 속에서 작은 웃음을 찾고 싶었던 것 아닐까? “아, 그만큼 흉년(凶年)이어도 참새는 시끄럽네,” 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에이, 책도 안 읽힌다,” 하고 침대에 누웠을 테지. 그리고 바람이 ‘쿵’ 문을 닫아주자, “그래, 나도 이 시름 끝내고 싶다...” 하며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웃픈 순간들이, 그 시절의 가난과 황량(荒涼)함을 조금이나마 견디게 했을지도 모른다. 😅
"참새들아, 조금만 조용히 해줄래? 책 좀 읽자!" 하고 우스갯소리를 던져보고 싶어지는 그런 가을날이었다.
결론
이충익(李忠翊)의 ‘갑술년(甲戌年) 가을’은 흉년(凶年)과 황량(荒涼)함을 담담하게, 그러나 시적 유머로 표현한 걸작(傑作)이다. 농부(農夫)도 없고, 수확(收穫)도 없고, 그저 황소와 참새만 소란스러운 풍경 속에서, 저마다의 감정을 공감할 수 있게 만든다. 그 시대를 모르는 우리도, 무언가 부족하고 허전할 때, 이 시(詩)를 읽으며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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