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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 한양을 떠나며[發洛城 발락성]

오늘 漢詩 한 수/9월의 漢詩

by 진현서당 2024. 9. 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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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 한양을 떠나며[發洛城 발락성]

 



弊貂生白露,
寒馬犯晨鐘.
幾別靑坡水?
難忘紫閣峯.
夕陽侵堠子,
秋色醉山容.
野店知非遠,
隔林聽暮舂.



해진 가죽옷에는 이슬이 내려앉고,
추위에 떠는 말은 새벽종을 헤치고 간다.
청파동 냇물과는 몇 번이나 작별했던가?
남산 자각봉은 잊으려야 잊지를 못하겠다.


석양은 장승에 비껴 쪼이고,
가을빛은 산을 불콰하게 만들었다.
들녘 저편에 주막이 멀지 않은지,
숲 건너에서 저녁 방아 찧는 소리 들려온다.


폐초생백로, 한마범신종.
기별청파수? 난망자각봉.
석양침후자, 추색취산용.
야점지비원, 격림청모용.

강세진(姜世晉·1717~1786)

 


경상도 상주
(尙州)의 선비 경현(警弦) 강세진(姜世晉, 1717~1786)이 서울에 잠시 왔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쓴 이야기다. 그는 십대 말엽에 경상도(慶尙道)로 낙향(落鄕)했지만, 종종 과거시험(科擧試驗)을 보거나 친구들을 만나러 서울에 올라오곤 했다. 이번에도 친구들을 만나고 나니 돌아가는 길이 적적하다.

서울을 떠나는 아침, 성문이 열릴 때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남대문(南大門)을 빠져나갔다. 새벽 이슬이 옷을 적시고, 청파동(靑坡洞)의 냇물과 남산(南山) 자락 자각봉(紫閣峯)에도 아쉬운 작별을 고한다. 그가 자주 머물렀던 곳이기에 추억이 짙게 깃들어 있어 마음이 처연(凄然)하다.

한강(漢江)을 건너며, 강물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귀에 맴돈다. 길을 따라 과천(果川)을 지나니, 길가의 장승이 석양(夕陽)에 물들어 있다. 마치 "저녁이니 쉬어 가라!" 하고 속삭이는 듯해 몸도 마음도 고단한 그는 기꺼이 그 말을 따르고 싶어진다.

길가의 산들은 단풍(丹楓)으로 불타오르고 있는데, 그 붉은빛에 마치 술에 취한 듯한 느낌이 든다. 멀리서 방아 찧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소리가 나는 그 너머에 주막(酒幕)이 있을 게 분명하다. "오늘은 여기서 묵자!"고 마음을 다잡으며, 과객(過客)의 고단한 몸을 주막에 눕힐 생각을 한다. 방아 소리와 함께 하루의 고된 여정(旅程)도 끝나가니, 곧 쉴 수 있겠지.

강세진(姜世晉)은 비록 서울을 떠나지만, 그 길목 곳곳에서 추억(追憶)과 자연(自然)이 말을 걸어온다. 그 모든 것이 정겹고, 그리워서인지 발걸음은 더 무겁고 느리다. 그래도 머지않아 고향(故鄕)에 닿을 테니 마음 한켠은 편안해지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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