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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김 거사의 시골집을 방문하고[訪金居士野居]

오늘 漢詩 한 수/9월의 漢詩

by 진현서당 2024. 9. 17.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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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김 거사의 시골집을 방문하고[訪金居士野居]



秋陰漠漠四山空,
落葉無聲滿地紅.
立馬溪橋問歸路,
不知身在畫圖中.



가을 구름 몽실몽실 사방 산은 고적한데,
소리 없이 지는 잎들 온 땅 가득 붉어라.
시내 다리 말 세우고 돌아갈 길 묻노라니,
이 내 몸이 그림 속에 있는 것은 아닐는지.


추음막막사산공, 낙엽무성만지홍.
입마계교문귀로, 부지신재화도중.

정도전(鄭道傳·1342~1398) 김 거사의 시골집을 방문하고[訪金居士野居] 삼봉집(三峰集)

 

김 거사(金居士)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시냇가 다리 앞에 서게 된 삼봉(三峯)은 드디어 주변 풍경에 눈을 돌린다. 늦가을 오후의 풍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쪽빛 하늘에 비늘구름(秋雲)이 몽실몽실 떠 있고, 주위의 산들은 마치 사람이 없는 듯 고요하다. 낙엽이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모습은 가을의 적막함을 더해준다. 그 순간, 삼봉(三峯)은 마치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고, 김 거사 역시 이 풍경의 한 부분인 화중지인(畵中之人)처럼 보인다.

이 장면에서 언급된 "추음(秋陰)"은 가을 구름을 뜻하며, 특히 비늘구름이나 새털구름이 맑은 가을 하늘에 넓게 퍼져 있는 풍경을 그려낸다. 비록 구름이 달을 가려도, 얇은 구름 뒤로 달이 희미하게 비치는 모습을 통해 그 낭만적인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사산공(四山空)의 고요한 산 풍경은 당()나라 시인(詩人) 위응물(韋應物)의 시구 "산은 텅 비었는데 솔방울 떨어지니 은거하는 이 잠들지 못하리라[山空松子落, 幽人應未眠]"를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 산이 비었다는 것은 적막감을 나타내며, 사람 없는 공허함과 외로운 마음을 상징한다.

김 거사(金居士)가 누구인지는 불분명하지만, 그가 나주(羅州) 인근에 사는 식자(識者)라는 추측이 있다. 삼봉(三峯)35세 무렵, 이인임(李仁任) 등의 친원파(親元派)에게 밀려 전라도(全羅道) 나주(羅州) 회진현(會津縣) 소재동(消災洞)에서 3년간 유배 생활을 했다. 이 시기에 쓴 시()들이 금남잡영(錦南雜詠)에 묶여 있으며, () 속에서는 유배객으로서의 비애보다는 넉넉하고 초연한 기상이 드러난다.

삼봉(三峯)은 이 시기에 도연명(陶淵明)의 시를 자주 읽었고, 그의 작품 <도화원기(桃花源記)>와 유사한 정서를 표현했다. 도화원(桃花源)에 갔던 어부가 다시 그곳을 찾으려다 길을 잃은 것처럼, 삼봉(三峯)은 그림 같은 경치에 빠져 현실을 잊은 채 화경(畵境)에 머물고 있다. 이런 발상은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시적 비약으로 구현되었으며, 서거정(徐居正)은 삼봉(三峯)의 시에 대해 호일하고 분방하나 단련이 부족하다고 평했다.

성현(成俔)은 삼봉(三峯)을 두고 "장대하지만 검속하지 못한다[能張大而不檢]"라고 하였는데, 이는 그의 기상과 시적 완성도가 상반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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