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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여천자문 1 심초편(沁抄篇)을 읽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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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여천자문 1 심초편(沁抄篇)을 읽기 전에

 

 

천자문은 6세기경 양()나라에서 주흥사(周興嗣)가 무제(武帝)을 받아 지었다고 알려졌다. 四字一句로 총 이백오십구, 합계 千字로 이루어져서 千字文또는 千字라고 칭한다. 황제의 명을 받은 주흥사는 이백오십구의 운문(韻文)을 하루 만에 지으면서 얼마나 노심초사를 하였던지 천자문을 완성하자, 머리가 갑자기 하얗게 세어졌다 하여 白首文이라고도 한다. 서체는 동진(東晉)의 왕희지(王羲之)의 필적 중에서 해당되는 글자를 모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중국에는 이외에도 천자문, 천자문, 천자문 등이 있고, 한국에는 大同천자문, 정약용이 지은 二千字文 등이 있다.

 

천자문은 일찍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첫 번째 한문교재로 사용되어 왔다. 한문초독서(漢文初讀書)로 많이 애용이 되어서 일상생활에서도 토지의 순서를 매길 때 천자문의 글자의 배열에 따라 千字畓, 地字畓으로 구분하였으며, 족보의 ()도 천자문의 순서로 표기하였다. 그리하여 한문하면 지금도 우리들은 하늘천’ ‘따지를 연상할 만큼 한문학습의 초독서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초독서(初讀書)라고는 하여도 그 뜻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어서 웬만한 학자도 그 뜻을 다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한문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은 漢文이 아닌 漢字를 익히기 위하여 이용하는데 불과하였다.

 

천자문은 널리 익혔던 만큼 많은 판본(板本)과 필사본(筆寫本)이 있다. 그중에서 우리나라는 선조 때 석봉(石峰) 한호(韓濩)가 쓴 석봉천자문(石峰千字文)과 중국에서는 지영(智永)이 쓴 진초천자문(眞草千字文)이 널리 통용되었다. 석봉천자문은 우리나라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천자문은 석봉의 아름다운 필체로 구성되어 있지만, 四字一句 250구 만을 순서대로 필사한 것으로 풀이가 없고, 간혹 정자가 아닌 것이 있기 때문에 한문 초학서로는 적합하지 않은 점이 있다고 여겨진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이후 급격히 보급되어 많은 서가(書家)에 의하여 쓰여졌으며 그 중에서도 습자 교본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왕희지의 7대손 지영(智永)이 진서(眞書:楷書)와 초서(草書)의 이체(二體)로 쓴 진초천자문(眞草千字文)본으로 1109년에 새긴 석각(石刻)이 전하고 있다.

 

이 책은 천자문의 풀이를 쉽게 하여 천자문을 처음 접하는 초학자들의 이해를 돕고 스스로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삼여천자문(三餘千字文) 1편은 심초편(沁抄篇)으로 베껴 쓰기 교본을 제공하고자 하였다. 심초(沁抄)는 베끼어 써서 마음속에 배어들게 하라는 뜻이다. 열 번 베껴 쓰고 외우면 한문의 세계가 열리리라 생각된다.

 

20101

김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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