連歲南征信馬還, 長貧更不問辛酸? 家人杳杳應看月, 幼女憨憨與倚欄. 補綻寒衣空尺寸, 抹塗雙頰解鉛丹. 正如絮襖行林裏, 梢棘句牽步步難. |
해를 넘겨 남쪽 머물다 말을 타고 돌아오는 길, 찌든 가난에 모진 고생을 굳이 물어 무엇 할까? 집사람은 아련하게 달을 보고 있을 테고, 어린 딸도 멀뚱멀뚱 난간 잡고 쳐다보겠지. 겨울옷을 기운다며 자를 대고 부산떨거나, 두 볼에 분칠하며 화장한다 설칠 텐데. 솜옷 입고 숲속 길을 가는 것과 똑같아서, 가시가 옷에 걸려 걸음걸음 힘겨웠지. 연세남정신마환, 장빈갱불문신산? 가인묘묘응간월, 유녀감감여의란. 보탄한의공척촌, 말도쌍협해연단. 정여서오행림리, 초극구견보보난. |
이명오(李明五·1750~1836) 어린 딸[幼女 유녀] |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생의 길이란 게 참 묘하다. 일 때문에 한참 남쪽 땅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 해를 넘기며 말도 타고, 겨울바람에 몸을 던지면서도 내내 가슴 한 구석은 따뜻했다. 이유는 하나, 집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 내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글을 쓰는 이유는 그 ‘기다림’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깊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連歲南征信馬還 연세남정신마환(연세를 넘겨 남쪽에서 돌아오는 길)’이라니, 그냥 돌아오는 길일 수 있겠지만, 그 길은 내가 다시 돌아가야 할 집이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물론 돌아오는 길이 간단하지 않다. 해를 넘기며 매일 고생했겠지만, 내가 그곳에서 겪은 일은 사실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남쪽에서의 고생은, 마치 가시가 옷에 걸려 발목을 잡는 듯한 기분이었다. 몸은 얼어붙고 마음은 무겁다. 그걸 다 견디고 돌아와서 다시 집에 가게 될 때, 그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될까 하는 상상조차 지금은 막막하다.
그런데, 이 길을 걸으며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집에 있는 아내와 어린 딸의 모습. 아내는 아마 지금 달을 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운 마음에, '어떤 모습으로 내 기다림을 상상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남편의 귀환을 기다리며 그리운 마음에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겠지만, 어린 딸은 그렇지 않다. 그 어린 녀석은 달을 보고 있을 뿐이다. "엄마가 왜 저기서 멀뚱멀뚱 서 있을까?" 아마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 귀여운 모습을 생각하면, 그냥 웃음이 나온다.
그렇다고 딸이 만약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면, 그 모습은 그리 다를 리 없다. 딸은 또 어떻게 나를 기다릴까? 어린 딸이란 존재는, 때로는 어른들보다 더 순수하고 무심하다. 하지만 그런 무심함 속에 묻어나는 그리움과 사랑이 얼마나 강력한지, 아마 부모님들은 다 알 것이다. 딸아이가 멀뚱멀뚱 난간에 기대어, 나를 기다리는 모습.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그 모습이 떠오르자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진다. 어린 딸, 그 ‘憨憨與倚欄 감감여의란’(멀뚱멀뚱한 모습)이 점점 내 가슴을 더 뜨겁게 만든다.
내가 돌아오는 길에서 계속 떠오르는 딸의 모습을 떠올리며, 문득 나는 내 마음 속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어린 딸을 다시 한번 품에 안고 싶다. 그녀의 귀여운 모습이 다시 내게 다가오기를.’ 하지만 현실은, 그 귀여운 모습이 내가 돌아갈 때까지 아마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뭇가지에 걸린 솜옷처럼, 나는 그 작은 존재를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다시 집에 돌아가고, 딸을 만나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그래도, ‘補綻寒衣空尺寸 보탄한의공척촌’(겨울옷을 고쳐 입는 수고)은 얼마나 힘든지 모르겠다. 옷을 고치고 찢어진 곳을 채워 넣으며, 차가운 날씨에 내가 해야 할 일들은 끝없이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길을 걸어간다. 결국, 겨울옷을 기운다며 나뭇가지에 걸린 채, 발길을 옮기는 것처럼 고생할 수밖에 없다. 그 길을 걸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다시 한 번 다짐을 한다. 돌아가면 그 마음을 다 표현하리라.
이렇게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연 내가 이런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돌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내가 돌아가야 할 집과,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내와 어린 딸, 그들을 만나기 위한 길. 그것만큼 힘차고 중요한 길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돌아가는 그 길에서 나는 고백한다. 내 마음은 언제나 그들을 향해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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