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生料理舊岐尋, 只恐風雲翳作陰. 隨命置身無惡境, 懷仁接物摠知音. 扶傾曷恃時人手? 悔禍將看上帝心. 最是長江寒雨裏, 不堪送子淚沾襟? |
새해 되어 기분 좀 풀려고 걸어온 길 찾았더니, 바람 불고 구름 덮여 그늘질까 염려되네. 운명에 몸 맡기면 나쁜 상황 다 걷히고, 사랑 품고 남 대하면 모두가 친구 되지. 위기에 돕겠다는 남의 손을 어찌 믿으랴? 재앙 준 것 뉘우치는 하늘을 곧 보리라. 큰 강에 뿌리는 찬비에 마음 서운하니, 그대 보내며 적셔오는 눈물 어쩌면 좋을까? 춘생요리구기심, 지공풍운예작음. 수명치신무악경, 회인접물총지음. 부경갈시시인수? 회화장간상제심. 최시장강한우리, 불감송자누첨금? |
최익현(崔益鉉·1833~1906) 새해를 맞아[新年得韻 신년득운] |
春生料理舊岐尋, 只恐風雲翳作陰. 춘생요리구기심, 지공풍운예작음 새해가 시작되었으니 기분 전환을 위해 지나온 길을 다시 걸어보았다. 그런데, 바람이 불고 구름이 덮여서 그늘이 질까 봐 걱정이 되네. 어떻게 해야 할까? 새해에는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기를 바라지만, 이렇게 시작되면 좀 무서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隨命置身無惡境 수명치신무악경. 뭐, 운명에 몸을 맡기면 모든 일이 해결되겠지. 다들 이런 말 많이 하지 않나? "운명에 맡기면 나쁜 상황도 다 해결될 거야!" 물론, 그런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믿고 살지 않으면 살기가 너무 힘드니까, 그냥 懷仁接物摠知音 회인접물총지음 하면서 사랑으로 사람을 대하면 그 누구도 나를 싫어할 사람은 없겠지. 다들 나와 친해지고, 친구처럼 되어줄 거야. 그렇게 한 발 한 발 걸어가면, 扶傾曷恃時人手 부경갈시시인수? 누가 나를 도와줄까 하는 의문은 스스로 해결하게 되지 않을까?
그래도 悔禍將看上帝心 회화장간상제심. 예전에 이런 생각을 했다. "남들이 나를 돕겠다고 손을 내밀면, 그 손을 믿을 수 있을까?"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답한다. "절대 믿지 마! 사람들이 그럴 때는 대개 다 자기 유리한 쪽으로 생각하는 법이지." 결국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最是長江寒雨裏 최시장강한우리—특히 세상에서 큰 강을 지나야 할 때, 그렇게 절실하게 깨닫는다. 그 강을 건널 때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만이 나의 길을 만들 수 있다는 걸. 그러니까 나쁜 일은 내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不堪送子淚沾襟 불감송자누첨금—매번 새해마다 느끼는 건데, 정말 "세상살이는 뭐 저리도 힘든가?" 싶기도 하다. 재앙도 내 손길을 피할 수 없고, 사람들은 왜 저리도 제각각일까? 도대체 왜 나는 이 길을 걷고 있는 걸까? 그런 고민도 하게 되더라. 하지만 最是長江寒雨裏 최시장강한우리—그래도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아본다. 그런 사람들 덕분에 여전히 살아 있고, 희망을 놓지 않으니까 말이다.
큰 강에 내리는 찬비—이 찬비를 맞으며 생각하는 게, 나 혼자 살아남은 게 아니라, 사람들이 나를 도와줬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 손길에 의지만 하며 살 수는 없다. 결국, 내 자신을 믿고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 그대 보내며 적셔오는 눈물—그런 눈물은 내가 힘들 때마다 흐르기도 하지만, 그 눈물 덕분에 강해진다. 새해에는 그런 아픈 기억도 다 잊고 싶다. 그리움만 남기고, 나머지는 내 마음속에서 흐르는 강물처럼 멀어지기를 바란다.
최익현(崔益鉉)은 이렇게 흑산도(黑山島)에서 유배(流配) 중에 과거의 길을 되돌아보며, 그 길을 어떻게든 잘 가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 길이 늘 순탄치만은 않으니, 그 고단함을 잊기 위해 새해의 희망을 품고, "운명에 몸을 맡겨" 본다. 그리고 그 유배지(流配地)에서 그가 지은 시는, 그가 처한 현실을 마주하면서도 여전히 희망을 찾으려는 모습이 묻어난다.
새해의 첫날, 길을 돌아보며 조용히 마시는 술 한 잔이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새로운 시작은 늘 불확실하고, 때로는 두렵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 두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 그렇게 길을 걸어가며 생각해본다. 인생이란 결국 눈물도, 기쁨도 다 함께 가는 길이라는 걸. 매일매일은 늘 변화하고, 그 변화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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