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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9. 덧없는 인생, 세밑의 성찰[歲除用前韻 세제용전운]

오늘 漢詩 한 수/12월의 漢詩

by 진현서당 2024. 12. 29. 20:16

본문

 

 



梢梢軒窓念我䭽,
推遷時物自繽紛.
浮生但覺風飄葉,
殘歲爭如戰敗軍.
氓俗歡聲除舊日,
故人心緖隔岡雲.
十分盞酒留餘醉,
重讀牀頭樂志文.



창가에 쓸쓸히 앉아 친구들을 그리노니,
계절 따라 풍경은 어수선하게 바뀌었다.
덧없는 인생은 바람에 날리는 낙엽,
저무는 한 해는 전쟁에 패한 군사.
사람들은 묵은해 간다고 환호하지만,
심란한 벗의 마음은 산 너머 구름이리라.
가득 따른 술잔일랑 취기 어려 남겨두고,
책상 위 낙지론(樂志論)을 다시 펼쳐 읽어본다.


초초헌창염아군, 추천시물자빈분.
부생단각풍표엽, 잔세쟁여전패군.
맹속환성제구일, 고인심서격강운.
십분잔주유여취, 중독상두낙지문.

이익(李瀷·1681~1763) 한 해가 간다[歲除用前韻 세제용전운]

 

성호 이익(李瀷, 1681-1763)이 쓴 시는 그 시대의 분위기와 개인적인 감정을 아주 섬세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이 시는 한 해가 가는 시점에서, 그가 느꼈을 세상의 변화와 개인적인 마음의 상태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이 시를 보면, 표면적으로는 그저 평범한 연말의 풍경을 그린 것 같지만, 그 속에 담긴 감정과 철학은 꽤 깊다.

 

"梢梢軒窓念我䭽" 이 구절에서 시작된다. 창가에 앉아서, 시인은 친구들과의 인연을 떠올리며 쓸쓸한 마음을 느끼고 있다. 이 구절에서 '梢梢'는 나뭇가지 끝을 뜻하는데, 창가의 외로운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그리고 '念我䭽''나의 생각이 그립다'는 의미인데, 이 시점에서 친구들이 그리워지는 마음이 느껴진다. 친구들은 물론 어디선가 떠들썩하게 연말을 보내고 있을 것이고, 그 속에서 마음은 비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推遷時物自繽紛" 이 구절에서는 시간의 흐름과 세상의 변화를 그린다. '推遷'은 변화를 의미하고, '物自繽紛'은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어수선하게 변해간다는 뜻이다. , 세상이 흘러가면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간다는 느낌이다. 한 해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세상은 참 많은 것들이 변하고, 그 변화를 따라잡기도 힘든 것 같다. 특히 이 시기의 사람들은 새해를 맞이하며 들떠서, 세밑을 축하하느라 바쁘다. 하지만 시인은 그 속에서 묘하게 느껴지는 어수선함과 불안함을 감지한다.

 

그리고 "浮生但覺風飄葉" 이 구절에서는 '浮生'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 단어는 '떠도는 삶'을 의미하는데, 삶이 얼마나 덧없고 불안정한지에 대한 고백이다. '風飄葉''바람에 날리는 낙엽'인데, 이것 역시 인생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낙엽이 바람에 흩날리는 것처럼, 인생도 그런 식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시인은 연말의 이 시점에서 덧없는 인생을 실감하며, 사람들의 환호와는 달리, 내면적으로는 외로움과 불안함을 느낀다.

 

"殘歲爭如戰敗軍" 이 구절에서는 '殘歲'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건 '남은 해'라는 뜻이다. 이제 한 해가 거의 끝나가고 있지만, 그 마지막 순간이 전쟁에 패배한 군대처럼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워 보인다. 이익은 세밑의 풍경을 전쟁의 패배처럼 묘사하면서, 한 해의 끝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그런 혼란 속에서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氓俗歡聲除舊日" 이 구절에서는 '氓俗'이란 표현이 나온다. 이건 '평범한 사람들' 혹은 '대중'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사람들이 새해를 맞이하며 들떠서 '旧日'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새해를 맞이하는 것에 흥분하고 기뻐하지만, 그들 속에 있는 시인은 그들의 기쁨을 따르지 않는다. 그 대신, '故人心緖隔岡雲'에서 알 수 있듯이, 예전 친구들의 마음은 산 너머 구름처럼 멀어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 사람들이 떠들썩해할 때, 그 속에서 느껴지는 외로움이 드러난다.

 

"十分盞酒留餘醉" 이 구절에서는 술을 마시는 장면이 그려지는데, '十分盞酒''가득 따른 술잔'을 의미한다. 술을 가득 따르고, 취기에도 불구하고, 더 취할 기분이 아니어서 술잔을 그대로 두는 것이다. 이 부분은 시인이 세상과의 단절을 느끼고, 더 이상 무언가를 갈망하지 않으려는 심리상태를 나타낸다. 이미 술에 취할만큼 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세상에 대해 취하려는 마음이 없다는, 조금은 비관적이고 혼자만의 세상에 갇힌 듯한 감정을 묘사한 것이다.

 

"重讀牀頭樂志文" 마지막으로, 시인은 '낙지론(樂志論)'을 다시 읽으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낙지론'은 후한 중장통이 쓴 책으로, 자연과 함께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의 기쁨을 말하는 책이다. 이익은 이 책을 다시 펼쳐보며, 세상에 대한 불만과 불안에서 벗어나 작은 행복을 찾으려 한다. 그에게는 어수선하고 덧없는 세상 속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자유롭고 만족스러운 삶이 유일한 위로가 되는 것이다.

 

이 시는 한 해의 끝자락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복잡함을 잘 그려내고 있다. 사람들은 새해를 맞이하며 환호하고 축하하지만, 그 속에서 외로움과 덧없음을 느끼는 시인의 마음은 매우 진지하고 깊다. 결국 시인은 '낙지론'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며, 작은 행복을 찾아가려는 결심을 한다. 이 시는 단순한 연말의 풍경을 넘어서,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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