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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8. 세월의 흐름 속에서[次古韻 차고운]

오늘 漢詩 한 수/12월의 漢詩

by 진현서당 2024. 12. 28.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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赴壑脩鱗日不遲,
年光閱眼久尋思.
衰容縮瑟霜添鬢,
寒意憑凌雪在枝.
黃卷中人須自勉,
靑山外事也何知?
十分盞酒留佳約,
會待花風第一吹.


부학수린일부지, 연광열안구심사.
쇠용축슬상첨빈, 한의빙릉설재지.
황권중인수자면, 청산외사야하지?
십분잔주유가약, 회대화풍제일취.



골짜기로 가는 긴 뱀처럼
서둘러 해가 넘어가는 때라,
눈앞으로 지나는 세월을 보며
오랫동안 상념에 젖어 있다.
나이 든 얼굴은 움츠러들어
귀밑머리엔 서리가 내려앉고,
추위는 기세등등하여
나뭇가지엔 눈이 얹혀 있다.


글 읽는 사람이니
스스로 힘써야 할 뿐,
청산 밖 세상사야
내가 뭘 알겠는가?
아름다운 약속을 남겨
술동이를 가득 채워놓고서,
꽃을 피우는 첫 번째 바람이 불
그날을 기다리노라.

이익(李瀷·1681~1763) 한 해를 보내며[次古韻 차고운]

 

이 시는 성호(星湖) 이익(李瀷) 선생이 한 해의 끝자락에 세상과 자신을 되돌아보며 쓴 글로,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맞이하는 세밑의 정서를 그대로 담고 있다.

 

먼저, 이익 선생은 赴壑脩鱗日不遲(골짜기로 가는 긴 뱀처럼 서둘러 해가 넘어간다)”라고 했다. 이 말, 한 해가 끝날 때마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갔나?’라는 생각이 든다면, 바로 이 구절을 떠올리면 된다. 해가 지는 건 당연히 매일 일어나는 일이지만, 마치 긴 뱀이 굽이쳐 가듯 시간이 흐른다는 표현이 그게 참 멋있다. 어쩌면 우리는 지나간 시간에 대해 서두른다는 말을 붙여야 할지도 모른다. 왜냐면, ‘올해도 이렇게 지나갔네하면서 한 해를 보내는 순간을 생각해보면, 시간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지나가는 거구나 싶으니까.

 

그다음 구절, “年光閱眼久尋思(눈앞으로 지나는 세월을 보며 오랫동안 상념에 젖어 있다)”는 말, 아주 리얼하다. 해가 넘어갈 때마다, 연말에는 누구나 한번쯤은 그런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올해 나는 뭐 했지?" "내가 한 일은 과연 의미 있었나?" “시간이 정말 빨리 가네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돈다. 이익 선생도 그런 생각을 했던 거지. 그런데 이렇게 깊이 생각하는 순간이 있는 것만으로도 뭔가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지 않나? 물론, 대부분은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며 살짝 우울해지기도 한다. 주름살이 늘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衰容縮瑟霜添鬢(나이 든 얼굴은 움츠러들고, 귀밑머리에 서리가 내려앉는다)” 이 구절은 정말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거다.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면 갑자기 ', 내가 이렇게 됐구나' 싶을 때. 나이가 들어가면서 피부도 쭈글쭈글해지고, 귀밑머리도 흰머리가 생기면서 늙어가는구나하는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런데 이익 선생은 그것을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거다. 마치 , 서리가 내려온 게 어때?” 하는 태도인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나이 드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걸 부정하는 것이 더 어색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寒意憑凌雪在枝(추위는 기세등등하고 나뭇가지에는 눈이 얹혀 있다)”라고 말할 때는 조금 더 차분한 마음이 든다. 겨울이 되면 정말 추위가 기세등등하게 몰려오듯이, 나이가 들어서 느끼는 차가운 기운도 그렇게 피할 수 없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 추위도 어찌 보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삶의 한 부분이기도 하고, 또 어떤 의미에서는 눈을 덮어주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가면 다 덮여버린다는 메시지를 주기도 한다.

 

이익 선생은 그만큼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해 담담하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는 느낌이다. 우리가 늙는다는 말은 사실 그다지 기분 좋은 표현은 아니다. 누구나 좀 더 젊고 싶고, 한 번쯤은 돌아가고 싶은 날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익 선생은 나이 듦을 추위와 눈에 비유하면서, 그 속에 담긴 자연스러운 흐름을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 같다.

 

다음은 黃卷中人須自勉(글 읽는 사람은 스스로 힘써야 한다)”라는 구절이다. 이 구절을 보면, 이익 선생은 나이 든 사람에게도 계속해서 힘을 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자기 자신에게 기대라는 말, 결국 우리는 계속해서 자기 자신에게 힘을 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나이가 들어도 계속해서 나아가야 하고, 자기 자신을 더욱더 다듬고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쩌면 나이를 먹는 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이 구절에서 엿볼 수 있다. '자기 자신에게 기대라'는 말은,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지 않을까?

 

그리고 靑山外事也何知(청산 밖 세상사는 내가 뭘 알겠는가?)”라고 말하며, 이익 선생은 세상일? 나는 그거 신경 쓸 시간 없어라는 생각을 드러낸다. 우리가 너무 세상의 일에 끌려다니는 건 아닌가? 세상 밖의 일들은 그저 자연스러운 흐름대로 흘러가게 두고, 우리 자신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나이 들어서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깨달음일 수 있다. 결국, 나는 내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니까.

 

마지막으로 十分盞酒留佳約(아름다운 약속을 남겨 술동이를 가득 채워놓고)” 이 구절은 아주 따뜻하게 다가온다. 이익 선생은 한 해를 보내며, ‘술 한 잔으로 그 모든 감정을 달래려는 것 같다. ‘술잔이라고 하면 조금 무거운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이익 선생이 말하는 술잔은 분명히 아름다운 약속의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술잔을 채우며, “새해가 오면 꽃이 피고 첫 바람이 불 때, 그때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남긴 것이다. 이익 선생은 결국 세밑의 시간을 지나며,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

 

會待花風第一吹(꽃을 피우는 첫 번째 바람이 불 때)”라는 구절은, 우리도 새해를 맞이하며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는 마음이 든다. 꽃을 피우는 첫 번째 바람처럼, 봄이 오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고 믿는 것이다. 이익 선생은 세밑의 고요함을 지나면서, 결국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희망을 남겨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이 시는, 한 해를 보내며 나이 듦과 세월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준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에 대한 반성과 다가오는 시간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세밑에 이 시를 다시 읽으며, 우리는 어쩌면 한 해를 끝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속에서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는 마음을 갖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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