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風脫葉下鏘然, 瘦影絲絲掛暮煙. 折葦枯荷相伴住, 鴛鴦衣冷不成眠. |
바람도 없이 떠난 잎이 '철렁!' 땅에 떨어지니, 야윈 가지 한 올 한 올 저녁 안개 속에 걸려있다. 부러진 갈대 마른 연잎이랑 서로 기대 서 있을 때, 원앙새는 옷이 추워 잠도 채 못 이룬다. 무풍탈엽하장연, 수영사사괘모연. 절위고하상반주, 원앙의랭불성면. |
신위(申緯·1769~1845) 가을 버들(後秋柳詩, 후추류시) |
이 시의 첫 번째 구절, "무풍탈엽하장연(無風脫葉下鏘然)"은 가을의 풍경을 아주 간결하고도 강렬하게 그린다. 바람 하나 없이 잎이 떨어진다니, 그 소리가 '철렁!' 하면서 들리는 듯하다. 그런데 이 소리는 실제로 우리의 일상에서는 쉽게 듣기 힘든 소리다. 보통 잎이 떨어질 때는 바람이 불고, 나뭇잎은 천천히 내려앉으며 부드럽게 땅에 닿는다. 하지만 여기서의 잎은 바람도 없이, 그야말로 "탈(脫)"해서 떨어지는 것이다. 바람이 없으면 잎은 그냥 땅에 떨어질 때까지 뚝뚝 떨어진다. 그 소리, 얼마나 크고 날카로울까? '철렁!' 하는 소리가 이렇게 가슴 속을 파고들 수 있다면, 이 잎은 더 이상 그냥 '잎'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 한 방울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이 소리를 듣고서 우리는 웃을 수도 있다. '바람이 없으면 잎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자연의 기본 원리가 아닌가? 바람이 없다는 것 자체가 이미 너무나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신위는 이 비현실적 상황을 통해, 가을의 정취를 더욱 섬세하게 그려낸다. '철렁!' 하는 소리 하나로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히 "가을이 왔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생의 한 부분이 떨어진다'는 메타포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소리를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건 무엇인가? 그것은 인생의 한 순간이 지나가는 것에 대한 고백이 아닐까?
두 번째 구절, "수영사사괘모연(瘦影絲絲掛暮煙)"에서 시인은 "야윈 가지 한 올 한 올 저녁 안개 속에 걸려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어쩌면 '왜 그렇게 가지가 야위었을까?'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니, 가지는 왜 야위었는가? 이유는 명확하다. 가을이 왔기 때문이다. 여름의 풍성한 초록이 다 사라지고, 나무는 자신의 '여름 옷'을 벗었다. 결과적으로 가지는 야위어지고, 마른 채로 저녁 안개 속에 걸려 있다. 그러나 이 '야위었다'는 표현은 정말 신비하다. 그것은 마치 가을이 찾아오면 우리도 자연스럽게 '야위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라져 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을을 상징하는 가장 깊은 감정일 것이다. 이때의 '야윈 가지'는 그 자체로 삶의 한 단면처럼 다가온다.
"부러진 갈대 마른 연잎이랑 서로 기대 서 있을 때"라는 구절에서는 자연스럽게 ‘동병상련’의 감정이 느껴진다. 갈대와 연잎, 이 두 가지는 사실 서로 다른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시인은 이 둘을 함께 묶어 놓고 '서로 기대 서 있다'라고 표현한다. 사실, 갈대는 물가에서 자주 볼 수 있지만, 연잎은 물 위에 떠 있는 것이고, 그 둘은 물리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런데 그들은 고독하게 서로를 의지한다. 이 장면을 생각하면, 그 둘이 서로를 의지하며 서 있는 모습은 너무나도 애처롭고도 귀엽다. 마치 우리가 고독한 상황에서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을 그리워하며, ‘기대어 서 있다’는 느낌처럼.
그런데 그 시점에서 신위는 단순히 자연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추위'라는 감정을 잘 살리고 있다. "원앙의랭불성면(鴛鴦衣冷不成眠)"에서는 추운 날씨가 원앙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원앙은 사랑스러운 존재로, 겨울에 추위 속에서도 따뜻한 품을 찾아 다닌다. 그러나 그 추위는 이 시에서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다가온다. 원앙은 겨울을 맞이하는데, 그럴 때 '옷이 차가워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표현한다. 이 구절은 웃음을 자아낸다. 원앙이 추위를 피해 잠을 이루지 못한다니, 정말 재미있는 비유다. 추운 날, 우리는 이불을 덮고, 때로는 방안에서 난방을 켠 채로 '추위와의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그런데 원앙도 추위 때문에 잠을 못 자는 상황이 벌어진다. 우리가 침대에서 이불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듯, 원앙도 추위에 떨며 그 자리에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 구절에서는 추위가 단순히 기후적인 요소를 넘어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고독과 외로움, 그리고 함께할 사람 없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원앙은 겨울을 맞이하고, 그 추위 속에서 추운 몸을 떨며, 결국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와 같은 감정을 우리는 종종 느낄 수 있다. 인간은 때때로 추위 속에서, 아니면 고독 속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 하는 본능적인 욕구가 있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이 시는, 신위의 세련된 유머와 고독을 함께 드러내며 끝을 맺는다. '추위 속에 잠 못 이루는 원앙'은 아마도 그의 고독을 상징하는 가장 유쾌한 비유일 것이다. 시인은 가을의 풍경을 보며, 그 속에 숨겨진 모든 감정의 깊이를 마치 우스갯소리처럼 풀어내고 있다. 가을은 변해가는 계절이다. 추위가 밀려오고, 삶은 차갑고 무겁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그 '추위 속에서 잠 못 이루는 원앙'처럼, 우리도 고독을 느끼며 여전히 따뜻함을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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