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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환속(還俗)

오늘 漢詩 한 수/11월의 漢詩

by 진현서당 2024. 11. 2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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流水喧如怒,
高山嘿似嗔.
兩君今日意,
嫌我向紅塵.



흐르는 물은 노한 듯 시끄럽고,
높은 산은 화난 듯 말이 없네.
저 둘이 오늘 보이는 행태는,
속세로 가는 내가 싫어서이리.


유수훤여로, 고산묵사진.
양군금일의, 혐아향홍진.

이익(李瀷·1681~1763) 동시도습(東詩蹈襲) 성호사설(星湖僿說)28

 

고려(高麗) 때의 문사(文士)인 위원개(魏元凱)의 시()이다. 고종(高宗) 때에 장원급제(壯元及第)하여 벼슬이 한림(翰林)에 이르렀고, 뒤에 출가(出家)하여 법명(法名)을 충지(沖止)라고 하였다. 시호(諡號)는 원감(圓鑑)이다.

한 때 중이 되었다가 어머니의 권유에 의해 환속(還俗)하였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다시 승려(僧侶)가 되었다고 한다.

 

이 시()는 아마도 다시 환속(還俗)할 때의 심사(心思)를 읊은 듯하다. 물이나 산이 무슨 감정을 표현하랴. 그들은 평시와 다를 것이 없건만, 내 마음이 불편해서 그렇게 비춰지는 것이리라.

 

조선의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선생도 벼슬길에 나가면서

 



靜看山水意,
應笑往來頻.



저 둘이 왜 저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응당 왕래가 잦다고 비웃는 것이리라.


정간산수의, 응소왕래빈.

 

라는 비슷한 시()를 썼다가, 성호(星湖) 이익(李瀷) 선생으로부터 표절(剽竊)을 했다고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심사(心思)는 다를 것이 없었으리라.

 

그러고 보면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산림(山林)을 중시하고 벼슬길을 경시해 왔다. 북산(北山)에 은거하며 덕행(德行)으로 이름을 얻었던 주옹(周顒)이라는 사람이 황제의 부름으로 나가 벼슬하다가 여의치 않아 다시 북산(北山)으로 돌아가려 하였을 때, 그와 동지였던 공치규(孔稚圭)라는 사람이 산()의 뜻에 가탁(假託)해서 거절하는 글을 지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었을 정도였으니.

 

물론, ()나라 승려 영철(靈澈)

 



相逢盡道休官去,
林下何曾見一人.



만나는 사람마다 벼슬 버리고 돌아간다 하는데,
산림에선 은거하는 사람 하나도 못 보았네.


상봉진도휴관거, 임하하증견일인.

 

라고 한 걸 보면, 그런 마음이 전적으로 진심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진심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어떤 계기로, 어떤 목적으로 벼슬하러 갔는가.’일 것이다. 이 시()의 저자(著者)처럼 부모의 권유 때문에 마지 못 해 벼슬하기도 하고,

 



是處塵勞皆可息,
時淸終未忍辭官.



이곳은 세상 고뇌 모두 잊을 수 있는 데지만,
시대가 맑아 끝내 차마 벼슬을 버리지 못하겠네.


시처진로개가식, 시청종미인사관.

 

라고 노래한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처럼 맑은 세상에서 뜻을 펴기 위해 벼슬하기도 할 것이다. 그들이 벼슬하러 간다는 이유만으로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벼슬길은 역시나 험한 곳이다. 이욕(利慾)과 영화(榮華)에 물들어 자칫하면 작게는 자신과 고을을 망치고, 크게는 나라를 망칠 수 있다. 초심(初心)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옛 사람들이 국화(菊花)나 송백(松柏), 송죽(松竹)의 절개를 높이 치는 것은 험한 환경에서도 변하지 않는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약 벼슬한 사람이 초심(初心)을 잃지 않고 세상을 위해 기여할 수 있다면, 그리고 때가 되어 미련 없이 벼슬을 내놓고 돌아갈 수 있다면, 어디에 있든 문제될 것이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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