慣病渾忘病, 長閑却厭閑. 補階臨淨綠, 刊樹露孱顔. 灌竹晨仍夕, 尋雲往復還. 淸宵更無事, 邀月倚松關. |
병에 젖어서 병든 줄을 까맣게 잊고, 늘 한가해서 한가함이 되레 싫구나. 계단을 고쳐 맑고 푸른 물을 내려다보고, 나뭇가지 잘라내어 산봉우리 드러낸다. 대나무에 물을 주며 아침저녁 다 보내고, 구름을 뒤쫓아서 갔다가는 돌아온다. 밤이 되면 할 일이 더는 없기에, 달을 마중하러 사립문에 기대선다. 관병혼망병, 장한각염한. 보계임정록, 간수노잔안. 관죽신잉석, 심운왕부환. 청소갱무사, 요월의송관. |
정경세(鄭經世·1563~1633) 즉사(卽事) |
정경세(鄭經世)가 쓴 한시(漢詩) 즉사(卽事)는, 그야말로 긴 병과 지루함을 이겨내려는 우아한 몸부림이자 인생 철학입니다. 오랜 병치레로 심심해진 탓에 소일거리(消日居)를 찾고, 병자(病者)로서의 고된 시간을 '한가로이' 받아들이는 모습이 우스우면서도 은근히 뭉클하지요. 그의 삶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病(병): "병들어 잊은 병이라"
"관병혼망병(慣病渾忘病)"이라니! 병에 익숙해져 버려 병 든 줄도 까맣게 잊었다니, 무슨 조화인가 싶지 않나요? 대저(大抵) 이 정도면 ‘연병중(年病中)’이 아닌가요. 아마 긴 병으로 지칠 대로 지쳐, 병마(病魔)와도 어느덧 도탑게 된 사이입니다. 애당초 병에 한없이 젖어 있으니, 병이 병인 줄도 모르는 ‘병든 삶’이 돼버린 셈이지요.
이쯤 되면 잊었다기보다 이겨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신적으로 병을 넘어선 境地에 이르렀다고나 할까요? 아니면, 이쯤 되면 병이 나의 일부, 아니면 “나의 벗(病友)”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복자(征服者)’는 아니어도, 친구(朋友) 같은 존재로 여겨진 것 같습니다.
閑(한): "지루한 한가(閑暇)"
다음 구절, “長閑却厭閑(장한각염한)”을 보면, 무릎을 치게 됩니다. 한가하다 못해 이제는 한가함이 싫어졌다니, 사람의 이기심이란 참 끝이 없지요. 아픈 몸으로 아무 일도 못 하는 상황이지만, 한가로이 있으니 오히려 지루(至厭)하고, 적막강산(寂寞江山)에 혼자 앉아 있는 듯한 답답함에 가슴이 저릿저릿할 겁니다.
한가할 때는 무엇을 해도 한가한 법입니다. 그래서, 문득 생각해낸 것이 바로 잡무(雜務). 계단(階段)을 고쳐보고, 나뭇가지를 쳐내어 산봉우리(山峰)를 드러내 보는 것이지요. 어차피 마음에 걸리던 자잘한 일들, 그 틈에 여유롭고도 여유로워질 겁니다. 하지만 역시 이런 일들로도 근본적인 지루함은 해결되지 않는 법이죠.
靑綠의 素心(소심): "맑고 푸르게 맑아지다"
이제 “補階臨淨綠(보계임정록)”이라는 구절로 들어가 봅시다. 계단을 보수(補修)하여 맑은 물과 푸르른 경치를 한껏 즐기겠다는 마음이지요. 병이 그리워서 맑은 계단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지, 무슨 심오한 계획이라도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순간순간’의 채워짐에서 오는 고요(静寂), 일시적 해탈(解脫)을 노리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당장 벽을 고쳐 물 흐르는 모습에 마음을 기울이듯이 말이죠.
나뭇가지, 수선(樹善)
다음 구절인 “刊樹露孱顔(간수노잔안)”에서는 한가한 와중에 나뭇가지(樹枝)를 치며 우거진 가지들을 가꾸고 있습니다. 어느새 가지 사이로 보이는 푸른 산과 다소 쓸쓸한 얼굴의 본래 모습(顔)이 드러납니다.
여기서는 가지를 ‘치고(刊)’ 나무가 ‘드러내는’ 과정을 통해, 한가로운 시간을 일종의 자아 성찰(自我省察)로 승화시키는 듯 보입니다. 이런 섬세한 소일거리, 나름의 수양(修養)과 정화(淨化)를 체험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는 셈이지요.
아침부터 밤까지, 호시탐탐 구름(雲) 쫓기
“灌竹晨仍夕(관죽신잉석)”이라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대나무(竹)에 물을 주는 일이 웬일인가요. 병중인 사람이 도대체 무슨 기운으로 대나무에 물을 주러 다니는 걸까요?
이는 틀림없이, 구름 따라 나가고 돌아오는 모습인 “尋雲往復還(심운왕부환)”과 맞닿아 있습니다. 구름이 흘러가는 곳을 따라 걷는 것은, 한가로움 속에서 자연의 흐름을 느끼려는 모습이지요. 산 속의 작은 움직임마저도 한가로움의 일종으로 받아들이는 그의 태도는 어쩐지 삶을 초연(超然)하게 만드는 ‘병의 경지’입니다.
밤이면 다 끝난 일, "邀月倚松關(요월의송관)"
드디어 밤이 옵니다. 청(淸)하고 고요한 밤, “淸宵更無事(청소갱무사)”이니 이 밤에 할 일은 더 이상 없지요. ‘문밖을 나와 기대어 달을 구경하러 간다(邀月)’는 시적인 묘사입니다. 심지어는 소나무 문에 기대어 달빛을 맞이하겠다는(倚松關) 여유까지 있으니, 얼마나 한가한 밤일까요.
이 고요한 달 아래서 “잠시 한가로운 영혼과의 대화”를 나누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병이 아닌, 달과 벗하는 순간, 밤과 대화하는 이때만큼은 완전한 자기(自己)로서 자신을 느끼고 있는 셈입니다.
이 시는 아픈 와중에도 한가한 순간을 마주하는 작자의 관조(觀照)를 담고 있습니다. 병중에도 그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일상을 고쳐 나가며, 그 와중에 자연을 음미(吟味)하고 구름을 좇고 대나무에 물을 주며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모습이 인생의 진리(眞理)를 반영하지요.
1113. 잠 못 드는 옥담의 밤 (8) | 2024.11.13 |
---|---|
1112. 스님과 동자의 이별 이야기 (0) | 2024.11.13 |
1110. 부잣집 딸과 가난한 집 아들[井男生日戱題] (1) | 2024.11.02 |
1109. 한가로이 국화꽃을 바라보며[解銓任閑居喜甚口呼] (0) | 2024.11.02 |
1108. 매천의 묘소에서[梅泉墓 매천묘] (1) | 2024.1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