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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회 종회가 군사를 나눠 한중을 침입하고, 정군산에서 제갈 무후의 신령이 나타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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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一百十六回

鍾會分兵漢中道 武侯顯聖定軍山三國志演義

 

116

종회가 군사를 나눠 한중을 침입하고, 정군산에서 제갈 무후의 신령이 나타나다.

 

卻說司馬昭謂西曹掾邵悌曰朝臣皆言蜀未可伐是其心怯若使強戰必敗之道也今鍾會獨建伐蜀之策是其心不怯心不怯則破蜀必矣蜀既破則蜀人心膽已裂敗軍之將不可以言勇亡國之大夫不可以圖存會即有異志蜀人安能助之乎至若魏人得勝思歸必不從會而反更不足慮耳此言乃吾與汝知之切不可泄漏邵悌拜服

 

각설, 사마소가 서조연(승상부 관리) 소제에게 말하기를,

 

조정의 신하들 모두 촉을 아직 정벌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마음속으로 겁을 내서요. 만약 억지로 싸우게 한다면 필패의 길이오. 이제 종회가 홀로 촉을 정벌할 계책을 세운 것은 그가 마음속으로 겁을 내지 않아서요. 마음속으로 겁을 내지 않으면 반드시 촉을 무너뜨릴 것이니, 촉이 무너지면 촉나라 사람들의 가슴과 쓸개가 찢어질 것이오. 패전한 장수는 용기를 말할 수 없고 망국의 대부는 생존을 꾀할 수 없다고 했는데 종회가 다른 뜻을 품은들 촉나라 사람들이 어찌 그를 도울 수 있겠소? 더군다나 위나라 사람들도 승리를 거둔 뒤에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뿐이라 반드시 종회를 따르지 않고 반대할 것이니, 걱정할 만한 것이 아니오. 내가 이 말로써 그대를 깨우친 것을 절대로 누설하지 마시오.”

 

하니, 소제가 탄복했다.

 

卻說鍾會下寨已畢升帳大集諸將聽令時有監軍衛瓘護軍胡烈大將田續龐會田章爰𩇕丘建夏侯鹹王買皇甫闓句安等八十餘員會曰必須一大將爲先鋒逢山開路遇水疊橋誰敢當之一人應聲曰某願往會視之乃虎將許褚之子許儀也衆皆曰非此人不可爲先鋒會喚許儀曰汝乃虎體猿臂之將父子有名今衆將亦皆保汝汝可掛先鋒印領五千馬軍一千步軍徑取漢中兵分三路汝領中路出斜穀左軍出駱穀右軍出子午穀此皆崎嶇山險之地當令軍填平道路修理橋梁鑿山破石勿使阻礙如違必按軍法許儀受命領兵而進鍾會隨後提十萬餘衆星夜起程

 

한편, 종회가 영채를 세운 뒤에 막사로 들어가서 장수들을 크게 소집하여 명령을 듣게 했다. 이때 감군 위관, 호군 호열, 대장 전속, 방회, 전장, 원정, 구건, 하후함, 왕매, 황보개, 구안 등 80여 명이 있었다. 종회가 말하기를,

 

반드시 한 대장을 선봉으로 하여 산을 만나면 길을 뚫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아야 하는데 누가 감당하겠소?”

 

하니, 한 사람이 그 소리에 응하여 말하기를,

 

바라건대 제가 가겠습니다.”

 

했다. 종회가 보니 호랑이 같은 장수 허저의 아들 허의였다. 모두가 말하기를,

 

이 사람이 아니면 선봉을 맡을 수 없습니다.”

 

하니, 종회가 허의를 불러 말하기를,

 

그대는 호랑이 몸에 원숭이 팔을 가진 장수로서 부자가 모두 이름났소. 이제 여러 장수들도 천거하니 그대가 선봉장을 맡아 기마병 5천과 보병 1천을 거느리고 곧장 한중을 치시오. 군사를 세 갈래로 나누어, 그대는 중군을 거느려 사곡으로 나가고, 좌군은 낙곡으로, 우군은 자오곡으로 나가시오. 이 모두 산세가 기구하여 험준하니 군졸들을 시켜 길을 고르게 메우고 다리를 고치고 산을 뚫고 바위를 깨서라도 가로막는 것이 없게 하시오. 만약 어기면 반드시 군법에 부치겠소.”

 

했다. 허의가 명을 받고 군사를 거느려 나아갔다. 종회가 뒤따라 군사 10만여 명을 거느리고 그날 밤 길을 나섰다.

 

卻說鄧艾在隴西既受伐蜀之詔一面令司馬望往遏羌人又遣雍州刺史諸葛緒天水太守王頎隴西太守牽弘金城太守楊欣各調本部兵前來聽令比及軍馬雲集鄧艾夜作一夢夢見登高山望漢中忽於腳下迸出一泉水勢上湧須臾驚覺渾身汗流遂坐而待旦乃召護衛爰邵問之邵素明周易》,艾備言其夢邵答曰山上有水曰》。《蹇卦利西南不利東北孔子雲利西南往有功也不利東北其道窮也將軍此行必然克蜀但可惜蹇滯不能還

 

한편, 등애가 농서에서 촉나라를 치라는 조서를 받았다. 한편으로 사마망을 보내 강인들을 막게 하고, 또한 옹주자사 제갈서, 천수태수 왕기, 농서태수 견홍, 금성태수 양흔에게 각각 휘하 병력을 이끌고 와서 군령을 따르게 했다. 군마가 구름처럼 모일 때쯤에 등애가 한밤에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높은 산을 올라 한중을 바라보는데 홀연 발 아래에서 샘이 하나 분출해 물줄기가 위로 솟았다. 잠시 뒤 놀라서 깨니 온몸에 땀이 흘렀다. 앉은 채로 날이 밝기를 기다려 호위관 원소를 불러 물었다. 원소가 평소에 주역에 밝았는데 등애가 꿈을 자세히 말하니 원소가 대답하기를,

 

주역에 이르기를, ‘산 위에 물이 있는 것을 ()라고 하고, ‘건괘는 서남쪽이 유리하고 동북쪽이 불리하다고 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건괘는 서남쪽이 이로우니 가면 공을 이룰 것이요, 동북쪽이 불리하니 그 길이 궁할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장군께서 이 길을 가시면 필연코 촉을 이길 것이지만 애석하게도 곤경에 빠져서 결국 귀환하지 못할 것입니다.”

 

했다.

 

艾聞言愀然不樂忽鍾會檄文至約艾起兵於漢中取齊艾遂遣雍州刺史諸葛緒引兵一萬五千先斷薑維歸路次遣天水太守王頎引兵一萬五千從左攻遝中隴西太守牽弘引一萬五千人從右攻遝中又遣金城太守楊欣引一萬五千人於甘松邀薑維之後艾自引兵三萬往來接應卻說鍾會出師之時有百官送出城外旌旗蔽日鎧甲凝霜人強馬壯威風凜然人皆稱羨惟有相國參軍劉寔微笑不語太尉王祥見寔冷笑就馬上握其手而問曰鄧二人此去可平蜀乎寔曰破蜀必矣但恐皆不得還都耳王祥問其故劉寔但笑而不答祥遂不複問

 

등애가 이 말을 듣고 낯빛이 바뀌며 불안해 했다. 갑자기 종회가 보낸 격문이 도착하여 등애에게 군사를 일으켜 한중에서 집결하자 했다. 등애가 이에 옹주자사 제갈서를 보내어 군사 15천을 이끌고 먼저 강유의 귀로를 차단케 했다. 이어서 천수태수 왕기를 보내어 군사 15천 명을 이끌고 왼쪽에서 답중을 치게 하고, 농서태수 견홍에게 군사 15천을 이끌고 오른쪽에서 답중을 치게 했다. 또한 금성태수 양흔을 보내어 군사 15천을 이끌고 감송에서 강유의 배후를 치게 했다. 등애 스스로 군사 3만을 이끌고 오가며 지원하기로 했다. 한편, 종회가 출병할 때 문무백관이 성밖으로 환송하러 나왔는데, 온갖 깃발이 하늘의 해를 가리고 갑옷이 서릿발과 같았다. 군사들은 강하고 말들은 튼튼했다. 위풍이 늠름하니 모든 사람이 칭송하는데 오직 상국 참군 유식이 미소할 뿐 아무 말이 없었다. 유식이 냉소함을 태위 왕상이 보고 즉시 손을 잡고 묻기를,

 

종회와 등애 두 사람이 이번에 촉을 평정하겠소?”

 

하니, 유식이 말하기를,

 

촉을 틀림없이 무너뜨릴 것입니다. 다만 아무도 살아서 도읍으로 돌아오지 못할까 걱정스러울 뿐입니다.”

 

했다. 왕상이 까닭을 물어도 유식은 웃기만 할 뿐 답하지 않으므로 왕상이 더 묻지 않았다.

 

卻說魏兵既發早有細作入遝中報知薑維維即具表申奏後主請降詔遣左車騎將軍張翼領兵守護陽安關右車騎將軍廖化領兵守陰平橋這二處最爲要緊若失二處漢中不保矣一面當遣使入吳求救臣一面自起遝中之兵拒敵時後主改景耀六年爲炎興元年日與宦官黃皓在宮中遊樂忽接薑維之表即召黃皓問曰今魏國遣鍾會鄧艾大起人馬分道而來如之奈何皓奏曰此乃薑維欲立功名故上此表陛下寬心勿生疑慮臣聞城中有一師婆供奉一神能知吉凶可召來問之

 

한편, 위나라 군사가 출발하자 재빨리 세작이 답중으로 들어가 강유에게 알렸다. 강유가 곧 표를 써서 후주에게 아뢰기를,

 

청컨대 조서를 내려 좌거기장군 장익을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양안관(양평관)을 수호하고, 우거기장군 요화를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음평교를 지키게 하십시오. 이 두 곳이 가장 중요하니, 만약 두 곳을 잃으면 한중을 지킬 수 없게 됩니다. 한편으로 사자를 동오로 보내 구원병을 요청하소서. 신이 동시에 답중의 군사를 일으켜 적을 막겠나이다.”

 

했다. 당시 후주가 경요 5년을 염흥 원년으로 개원했다. 어느 날 환관 황호와 더불어 궁중에서 놀고 즐기다가 갑자기 강유의 표를 받자 곧 황호를 불러 묻기를,

 

지금 위나라가 종회와 등애를 보내어 인마를 크게 일으켜 길을 나눠 쳐들어오는데 어찌해야겠소?”

 

하니, 황호가 아뢰기를,

 

이것은 강유가 공명을 세우고 싶어서 이 같은 표를 올린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마음 놓으시고 의심하며 우려하지 마소서. 신이 듣자오니 성안에 여자 무당이 한 사람 있사온데 신을 모시며 능히 길흉을 알아맞춘다고 하옵니다. 불러들여 물어보소서.”

 

했다.

 

後主從其言於後殿陳設香花紙燭享祭禮物令黃皓用小車請入宮中坐於龍床之上後主焚香祝畢師婆忽然披發跣足就殿上跳躍數十遍盤旋於案上皓曰此神人降矣陛下可退左右親禱之後主盡退侍臣再拜祝之師婆大叫曰吾乃西川土神也陛下欣樂太平何爲求問他事數年之後魏國疆土亦歸陛下矣陛下切勿憂慮言訖昏倒於地半晌方蘇後主大喜重加賞賜自此深信師婆之說遂不聽薑維之言每日只在宮中飲宴歡樂薑維累申告急表文皆被黃皓隱匿因此誤了大事

 

후주가 그 말을 따라 뒤 궁궐에 향, , 지전, 초 따위의 제물을 벌여놓고, 황호를 시켜 작은 수레에 무당을 태워서 궁중으로 불러들여 용상 위에 앉혔다. 후주가 향을 사르고 축원을 마치자 무당이 갑자기 머리를 풀어헤치고 맨발로 전각 위로 수십 차례 뛰어오르더니 탁자 위에서 빙빙 돌았다. 황호가 말하기를,

 

이것은 신이 강림한 것입니다. 폐하께서 좌우의 사람들을 내보내고 친히 기도를 올리소서.”

 

하니, 후주가 측근 신하들을 모두 내보내고 거듭 절하며 축원하니 무당이 크게 외치기를,

 

나는 바로 서천의 토신이오. 폐하께서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즐겁게 누리시거늘 무엇 때문에 다른 일을 물으시오? 몇 년 뒤에 위나라의 강토도 또한 폐하에게 넘어오니 폐하께서 절대 걱정하지 마시오.”

 

했다. 말을 마치고 혼절해 바닥에 쓰러져 한참 뒤에야 깨어났다. 후주가 크게 기뻐하며 재물을 크게 내렸다. 이로부터 무당의 말을 깊게 믿고 강유의 말을 듣지 않는 채 매일 궁중에서 주연을 열어 환락에 빠졌다. 강유가 여러 번 사세가 급박하다고 표를 올리지만 모두 황호가 가로채 숨기니 이로써 대사를 그르치게 되었다.

 

卻說鍾會大軍迤邐望漢中進發前軍先鋒許儀要立頭功先領兵至南鄭關儀謂部將曰過此關即漢中矣關上不多人馬我等便可奮力搶關衆將領命一齊並力向前原來守關蜀將盧遜早知魏兵將到先於關前木橋左右伏下軍士裝起武侯所遺十矢連弩比及許儀兵來搶關時一聲梆子響處矢石如雨儀急退時早射倒數十騎魏兵大敗

 

한편, 종회의 대군이 줄줄이 한중을 향해 출발했다. 선두부대 선봉장 허의가 최고의 공로를 세우고자 먼저 군사를 거느리고 남정관에 이르렀다. 허의가 부장들에게 말하기를,

 

이 관문을 지나면 바로 한중이오. 관문 위에 인마가 많지 않으니 우리가 힘을 내서 관을 점령합시다.”

 

하니, 여러 장수가 명령을 받고 일제히 힘을 모아 전진했다. 원래, 관문을 지키는 촉나라 장수 노손은 위나라 군사가 올 것을 미리 알고 관문 앞 나무다리의 좌우에 군사를 매복하고 무후(제갈공명)가 남겨준 십시연노(십연발 쇠뇌)를 배치했다. 허의의 군사가 관문으로 몰려오자 딱딱이 소리가 한바탕 나더니 화살과 돌이 빗발쳤다. 허의가 급히 물러나지만 어느새 수십 기마병이 화살을 맞아 쓰러지고 위나라 군사가 대패했다.

 

儀回報鍾會會自提帳下甲士百餘騎來看果然箭弩一齊射下會撥馬便回關上盧遜引五百軍殺下來會拍馬過橋橋上土塌陷住馬蹄爭些兒掀下馬來馬掙不起會棄馬步行跑下橋時盧遜趕上一槍刺來卻被魏兵中荀愷回身一箭射盧遜落馬鍾會麾衆乘勢搶關關上軍士因有蜀兵在關前不敢放箭被鍾會殺散奪了山關即以荀愷爲護軍以全副鞍馬鎧甲賜之

 

허의가 돌아가 종회에게 보고하니 종회가 직접 휘하의 무장병 1백여 기를 거느리고 와서 살펴보니, 과연 화살과 쇠뇌로 일제히 사격했다. 종회가 말머리를 돌려 돌아가자 관문 위에 있던 노손이 군사 5백을 이끌고 추격했다. 종회가 말을 몰아 다리를 건너는데 다리 위의 흙이 무너지며 말발굽이 빠져 말이 고꾸라졌다. 말이 끝내 일어서지 못하자 종회가 말을 버리고 갔다. 종회가 다리에서 뛰어내릴 때 노손이 뒤따라 창으로 찌르려는데, 위나라 군중에서 순개가 몸을 돌려 화살을 한 발 쏘니 노손이 화살을 맞고 말에서 떨어졌다. 종회가 무리를 지휘해서 형세를 타고 관문을 공격했다. 관 위의 군사들이 촉나라 군이 관 앞에 아직 있으므로 감히 화살을 쏘지 못했다. 종회가 촉나라 군을 무찔러 산관(산에 의지해 세운 관문)을 빼앗고 순개를 호군으로 임명하여 안장과 말, 갑옷 일체를 하사했다.

 

會喚許儀至帳下責之曰汝爲先鋒理合逢山開路遇水疊橋專一修理橋梁道路以便行軍吾方才到橋上陷住馬蹄幾乎墮橋若非荀愷吾已被殺矣汝既違軍令當按軍法叱左右推出斬之諸將告曰其父許褚有功於朝廷望都督恕之會怒曰軍法不明何以令衆遂令斬首示衆諸將無不駭然時蜀將王含守樂城蔣斌守漢城見魏兵勢大不敢出戰只閉門自守鍾會下令曰兵貴神速不可少停乃令前軍李輔圍樂城護軍荀愷圍漢城自引大軍取陽安關守關蜀將傅僉與副將蔣舒商議戰守之策舒曰魏兵甚衆勢不可當不如堅守爲上

 

종회가 허의를 군막으로 불러들여 책망하기를,

 

네가 선봉장이니 산을 만나면 길을 뚫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으며 오로지 다리와 길을 수리해 행군을 순조롭게 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다리에 가자마자 말발굽이 빠져 하마터면 다리에서 떨어질 뻔했다. 만약 순개가 아니었다면 내가 피살됐을 것이다! 네가 군령을 어겼으니 군법대로 처단하겠다!”

 

하고, 좌우의 사람에게 소리쳐서 끌어내 참하라고 했다. 여러 장수가 고하기를,

 

그 부친 허저가 조정에 공로를 세웠으니 도독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니, 종회가 노해서 말하기를,

 

군법이 분명치 못하면 어찌 무리를 통솔하겠소?”

 

했다. 결국 허의의 목을 잘라 사람들에게 보이라고 명하니, 여러 장수 가운데 깜짝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때 촉나라 장수 왕함이 낙성을 지키고 장빈이 한성을 지키고 있었다. 위나라의 군세가 큰 것을 보고 감히 나가 싸우지 못하고 문을 닫고 지킬 따름이었다. 종회가 군령을 내리기를,

 

군사 작전은 신속함을 귀중히 여기는 것이니 조금도 멈춰서는 아니 되오.”

 

하고, 이에 선두부대 이보에게 낙성을 포위하고, 호군 순개에게 한성을 포위하라 하며, 종회가 직접 대군을 이끌고 양안관(양평관)을 쳤다. 양안관을 지키는 촉나라 장수 부첨이 부장 장서와 함께 싸워 지킬 계책을 상의하니 장서가 말하기를,

 

위나라 군사가 몹시 많아서 그 세력을 당할 수 없습니다. 견고히 지키는 것이 상책입니다.”

 

했다.

 

僉曰不然魏兵遠來必然疲困雖多不足懼我等若不下關戰時樂二城休矣蔣舒默然不答忽報魏兵大隊已至關前傅二人至關上視之鍾會揚鞭大叫曰吾今統十萬之衆到此如早早出降各依品級升用如執迷不降打破關隘玉石俱焚傅僉大怒令蔣舒把關自引三千兵殺下關來鍾會便走魏兵盡退僉乘勢追之魏兵複合僉欲退入關時關上已豎起魏家旗號只見蔣舒叫曰吾已降了魏也

 

부첨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소. 위나라 군이 멀리서 와서 틀림없이 피로할 테니 비록 그 수가 많아도 두려워할 것이 없소. 우리가 만약 관문을 나가 싸우지 않으면 한성과 낙성 두 성도 끝장이오.”

 

하니, 장서가 침묵하며 답하지 않았다. 갑자기 누군가 위나라의 대군이 이미 관문 앞에 다다랐음을 알렸다. 장서와 부첨 두 사람이 관문 위로 가서 보니, 종회가 채찍을 들어 크게 외치기를,

 

내가 지금 10만 대군을 이끌고 여기에 왔으니 어서 나와서 항복하면 각각 품급에 따라 승진시킬 것이다. 만약 고집을 부리며 항복하지 않는다면 관애를 깨부순 뒤에 옥석을 가리지 않고 모조리 불사르겠다!”

 

했다. 부첨이 크게 노해서 장서에게 관문을 지키라 하고 스스로 3천 군사를 이끌고 관문 밖으로 돌격했다. 종회가 곧 달아나니 위나라 군사가 모조리 퇴각했다. 부첨이 기세를 타고 뒤쫓자 위나라 군사가 다시 싸웠다. 부첨이 물러나 관문으로 들어가려는데 관문 위에 이미 위나라의 깃발이 세워져 있었다. 장서가 외치기를,

 

나는 이미 위나라에 투항했소!”

 

했다.

 

僉大怒厲聲罵曰忘恩背義之賊有何面目見天下人乎撥回馬複與魏兵接戰魏兵四面合來將傅僉圍在垓心僉左沖右突往來死戰不能得脫所領蜀兵十傷八九僉乃仰天歎曰吾生爲蜀臣死亦當爲蜀鬼乃複拍馬沖殺身被數槍血盈袍鎧坐下馬倒僉自刎而死

 

부첨이 크게 노해 성난 목소리로 꾸짖기를,

 

은혜를 잊고 의리를 저버린 역적 놈아! 무슨 면목으로 세상 사람들을 보겠느냐!”

 

하고, 말머리를 돌려 다시 위나라 군과 접전했다. 위나라 군이 사방에서 몰려와서 부첨을 포위 속으로 몰아넣었다. 부첨이 좌충우돌(左衝右突) 왔다 갔다 죽기로 싸우지만 탈출하지 못했다. 부첨이 거느린 촉나라 군사도 열에 여덟아홉이 죽거나 다쳤다. 이에 부첨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기를,

 

내가 살아서 촉나라 신하가 되었으니, 죽어서도 마땅히 촉나라 귀신이 되겠다!”

 

하고, 이에 다시 말을 몰아 돌격해서 몸에 몇 군데나 창에 찔려 피가 전포와 갑옷을 적시고, 타고 있던 말이 쓰러지니 부첨이 스스로 목을 베어 죽었다.

 

後人有詩歎曰

 

一日抒忠憤,

千秋仰義名

寧爲傅僉死,

不作蔣舒生

 

뒷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하기를,

 

어느 날 하루 충의를 떨치고 격분하니,

천추에 걸쳐 그 의로운 이름 떠받드네.

차라리 부첨처럼 죽을지언정,

어찌 장서처럼 살기를 꾀하겠는가.”

 

했다.

 

鍾會得了陽安關關內所積糧草軍器極多大喜遂犒三軍是夜魏兵宿於陽安城中忽聞西南上喊聲大震鍾會慌忙出帳視之絕無動靜魏軍一夜不敢睡次夜三更西南上喊聲又起鍾會驚疑向曉使人探之回報曰遠哨十餘裏並無一人會驚疑不定乃自引數百騎俱全裝慣帶望西南巡哨前至一山只見殺氣四面突起愁雲布合霧鎖山頭會勒住馬問向導官曰此何山也答曰此乃定軍山昔日夏侯淵歿於此處會聞之悵然不樂遂勒馬而回

 

종회가 양안관(양평관)을 점령한 뒤, 양평관 안에 쌓인 군량, 사료, 무기 등이 극히 많은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전군을 호궤했다. 이날 밤 위나라군이 양안성 안에서 자는데 갑자기 서남쪽에서 함성이 크게 울렸다. 종회가 황망히 군막을 나와 살펴보니 아무런 동정이 없었다. 위나라 군사들이 밤새 감히 잠들지 못했다. 다음날 밤 2(10시쯤)에 서남쪽에서 또 함성이 일어났다. 종회가 놀라고 의심해서 새벽에 사람들을 시켜 정탐하게 하니,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멀리 10여 리까지 수색했으나 아무도 없었습니다.”

 

했다. 종회가 놀람과 의심이 가라앉지 않아서 스스로 수백 기를 이끌고 무장을 완전히 갖춘 채 서남쪽을 순찰했다. 어느 산에 이르니 살기가 사면에서 치솟고 먹구름이 몰려오며 안개가 산꼭대기를 뒤덮었다. 종회가 말을 멈춰 세우고 향도관(길잡이 관리)에게 묻기를,

 

이 산이 무슨 산이오?”

 

하니,

 

이곳이 바로 정군산이니 지난날 하후연이 이곳에서 전사했습니다.”

 

했다. 종회가 듣고 창연히 즐겁지 않아서 마침내 말을 멈추어 돌아왔다.

 

轉過山坡忽然狂風大作背後數千騎突出隨風殺來會大驚引衆縱馬而走諸將墜馬者不計其數及奔到陽安關時不曾折一人一騎只跌損面目失了頭盔皆言曰但見陰雲中人馬殺來比及近身卻不傷人只是一陣旋風而已會問降將蔣舒曰定軍山有神廟乎舒曰並無神廟惟有諸葛武侯之墓會驚曰此必武侯顯聖也吾當親往祭之

 

산기슭을 돌아가는데 갑자기 광풍이 크게 일어나 뒤에서 수천 기마병이 튀어나와 바람을 타고 달려왔다. 종회가 크게 놀라 무리를 이끌고 말을 달려 달아났다. 여러 장수 가운데 말에서 떨어진 사람이 무수했다. 양안관까지 달아나서 보니 사람 하나 말 하나도 잃지는 않았지만, 말에서 굴러떨어져 얼굴과 눈을 다치고 투구를 잃어버렸다. 모두가 말하기를,

 

먹구름 속에서 인마들이 달려와 몸 가까이 이르렀지만, 사람이 다치지 않았으니 이것은 한바탕 돌개바람이었을 뿐입니다.”

 

했다. 종회가 항복한 장수 장서에게 묻기를,

 

정군산에 신을 모신 사당이 있소?”

 

하니, 장서가 말하기를,

 

신을 모신 사당은 없고 제갈무후(제갈공명)의 묘가 있을 뿐입니다.”

 

했다. 종회가 놀라 말하기를,

 

이것은 무후가 현성(귀한 사람의 신령이 나타남)한 것이오. 내가 마땅히 친히 가서 제사를 올려야겠소.”

 

했다.

 

次日鍾會備祭禮宰太牢自到武侯墓前再拜致祭祭畢狂風頓息愁雲四散忽然清風習習細雨紛紛一陣過後天色晴朗魏兵大喜皆拜謝回營是夜鍾會在帳中伏幾而寢忽然一陣清風過處只見一人綸巾羽扇身衣鶴氅素履皂絛面如冠玉唇若抹朱眉清目朗身長八尺飄飄然有神仙之概其人步入帳中會起身迎之曰公何人也其人曰今早重承見顧吾有片言相告雖漢祚已衰天命難違然兩川生靈橫罹兵革誠可憐憫汝入境之後萬勿妄殺生靈

 

다음날, 종회가 제례를 준비하고 태뢰(, , 돼지의 세가지 희생 제물)를 잡아 직접 무후의 묘 앞으로 가서 재배하고 제사를 올렸다. 제사가 끝나자 광풍이 갑자기 멈추고 먹구름도 사방으로 흩어졌다. 갑자기 맑은 바람이 솔솔 불고 가랑비가 분분히 내렸다. 이렇게 한바탕 지나가자 하늘이 맑게 갰다. 위나라 군사가 크게 기뻐하며 모두 절을 올려 고마워하고 영채로 돌아갔다. 이날 밤 종회가 군막 안에서 탁자에 엎드려 자는데 갑자기 한바탕 맑은 바람이 불더니 한 사람이 나타났다. 윤건을 쓰고 깃털 부채를 손에 쥔 채 몸에는 학창의를 입고 흰 신을 신고 검은 띠를 했다. 얼굴은 마치 관옥(관 장식의 옥)과 같고 입술은 주사(단사)를 바른 듯 붉었다. 눈썹이 깨끗하고 눈이 빛나고 그 키가 8척에 달하는데 표표한 모습 속에 신선의 풍모가 있었다. 그 사람이 군막 안으로 걸어 들어오자 종회가 몸을 일으켜 맞이하며 묻기를,

 

공은 누구십니까?”

 

하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오늘 아침 찾아와준 것이 고마워서 내가 한 마디 고하려고 하오. 비록 한나라가 이미 쇠망하고 천명을 어기기 어렵지만, 양천(촉나라)의 백성들이 급작스레 전쟁에 짓밟히게 되었으니 참으로 가련하오. 그대가 국경을 침입한 뒤에 만에 하나라도 백성들을 함부로 죽이지 마시오.”

 

했다.

 

言訖拂袖而去會欲挽留之忽然驚醒乃是一夢會知是武侯之靈不勝驚異於是傳令前軍立一白旗上書保國安民四字所到之處如妄殺一人者償命於是漢中人民盡皆出城拜迎會一一撫慰秋毫無犯

 

말을 마치더니 소매를 떨치고 떠났다. 종회가 만류하려다가 갑자기 놀라서 깨어나니 한바탕 꿈이었다. 종회는 무후의 영혼임을 깨달아 놀랍고 신기함을 이길 수 없었다. 이에 선두 부대에 전령하여 하얀 깃발에 보국안민(輔國安民 나라를 보호하고 백성을 편안히 함) 넉 자를 쓰게 하고, 이르는 곳마다 한 사람이라도 함부로 죽이면 목숨으로 죄값을 치르게 했다. 이에 한중의 인민들이 모두 성 밖으로 나와서 절하며 맞이했다. 종회가 (백성을) 일일이 위무하며 추호도 범하지 않았다.

 

後人有詩贊曰

 

數萬陰兵繞定軍,

致令鍾會拜靈神

生能決策扶劉氏,

死尚遺言保蜀民

 

뒷사람이 시를 지어 찬양하기를,

 

수만 음병(저승의 병사)이 정군산을 둘러싸고,

종회가 신령에게 절하게 하네.

살아서 계책을 내어 유씨를 돕고,

죽어서 말씀을 남겨 촉나라 백성을 지키네.”

 

했다.

 

卻說薑維在遝中聽知魏兵大至傳檄廖化張翼董厥提兵接應一面自分兵列將以待之忽報魏兵至維引兵迎之魏陣中爲首大將乃天水太守王頎也頎出馬大呼曰吾今大兵百萬上將千員分二十路而進已到成都汝不思早降猶欲抗拒何不知天命耶

 

한편, 강유가 답중에 있는데 위나라 군사가 크게 몰려왔다는 말을 듣고, 격문을 보내어 요화, 장익, 동궐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도우라고 했다. 한편으로 스스로 군사를 배치하고 장수들을 거느려 기다리는데, 갑자기 보고하기를 위나라 군사가 왔다고 했다. 강유가 군사를 이끌고 나가 맞이하니, 위나라군의 우두머리는 천수 태수 왕기였다. 왕기가 말을 타고 나와 크게 외치기를,

 

우리가 이제 군사 백만, 상장 천 명으로 스무 갈래로 진군하여 이미 성도에 다다랐다. 네가 어서 항복할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항거하려 들다니 어찌 천명을 모른단 말이냐!”

 

했다.

 

維大怒挺槍縱馬直取王頎戰不三合頎大敗而走薑維驅兵追殺至二十裏只聽得金鼓齊鳴一枝兵擺開旗上大書隴西太守牽弘字樣維笑曰此等鼠輩非吾敵手遂催兵追之又趕到十裏卻遇鄧艾領兵殺到兩軍混戰維抖擻精神與艾戰有十餘合不分勝負後面鑼鼓又鳴維急退時後軍報說甘松諸寨盡被金城太守楊欣燒毀了

 

강유가 크게 노해 창을 꼬나쥐고 말을 몰아 왕기에게 달려들었다. 싸운 지 3합이 되지 않아서 왕기가 크게 져서 달아났다. 강유가 군사를 몰아 20리까지 추격하자 징소리와 북소리가 일제히 울리며 한 무리 군사가 가로막았다. 깃발에 크게 농서태수 견홍이라고 적었다. 강유가 웃으며 말하기를,

 

이런 쥐새끼 같은 놈들이 어찌 내 적수이겠느냐!”

 

하고, 군사들을 다그쳐서 추격했다. 다시 10리를 가자 등애가 군사를 거느리고 몰려와서 양군이 혼전을 벌였다. 강유가 정신을 집중해서 등애와 10여 합을 싸우지만, 승부를 가르지 못하는데, 뒷쪽에서 징 소리와 북 소리가 다시 울렸다. 강유가 급히 물러날 때 후군에서 보고하기를,

 

감송의 여러 영채를 모두 금성태수 양흔이 불살랐습니다.”

 

했다.

 

維大驚急令副將虛立旗號與鄧艾相拒維自撤後軍星夜來救甘松正遇楊欣欣不敢交戰望山路而走維隨後趕來將至山岩下岩上木石如雨維不能前進比及回到半路蜀兵已被鄧艾殺敗魏兵大隊而來將薑維圍住維引衆騎殺出重圍奔入大寨堅守以待救兵忽然流星馬到報說鍾會打破陽安關守將蔣舒歸降傅僉戰死漢中已屬魏矣樂城守將王含漢城守將蔣斌知漢中已失亦開門而降胡濟抵敵不住逃回成都求援去了維大驚即傳令拔寨

 

강유가 크게 놀라, 급히 부장에게 자신의 깃발을 대신 들고 등애와 맞서게 명령하고, 스스로 후군을 철수시켜 한밤에 감송을 구하러 갔다. 마침 양흔과 마주치자 양흔이 감히 교전하지 못하고 산길로 달아났다. 강유가 뒤따라 추격해서 어느 산의 바위 아래에 이르자 바위 위에서 나무와 돌이 빗발쳐서 강유가 나아갈 수가 없었다. 이에 되돌아가다가 이미 등애에게 패한 촉나라 군사를 만났다. 이어 위나라 대군이 몰려와서 강유를 포위했다. 강유가 기마병들을 이끌고 두터운 포위를 뚫고 달아나 본진으로 들어와서 굳게 지키며 구원병을 기다렸다. 갑자기 통신 기병이 달려와서 보고하기를,

 

종회가 양안관(양평관)을 격파했습니다. 수비하던 장수 장서는 투항하고 부첨은 전사했습니다. 한중이 벌써 위나라에 떨어졌습니다. 낙성의 수장 왕함, 한성의 수장 장빈도 한중을 이미 빼앗긴 것을 알고 역시 성문을 열고 투항했습니다. 호제가 적군을 막을 수 없어 성도로 구원병을 청하러 달아났습니다.”

 

했다. 강유가 크게 놀라 즉시 영채를 거두라 명령했다.

 

是夜兵至疆川口前面一軍擺開爲首魏將乃是金城太守楊欣維大怒縱馬交鋒只一合楊欣敗走維拈弓射之連射三箭皆不中維轉怒自折其弓挺槍趕來戰馬前失將維跌在地上楊欣撥回馬來殺薑維維躍起身一槍刺去正中楊欣馬腦背後魏兵驟至救欣去了維騎上從馬欲待追時忽報後面鄧艾兵到維首尾不能相顧遂收兵要奪漢中哨馬報說雍州刺史諸葛緒已斷了歸路維乃據山險下寨魏兵屯於陰平橋頭維進退無路長歎曰天喪我也副將寧隨曰魏兵雖斷陰平橋頭雍州必然兵少將軍若從孔函穀徑取雍州諸葛緒必撤陰平之兵救雍州將軍卻引兵奔劍閣守之則漢中可複矣

 

이날 밤, 강천 어귀에 이르자 앞에서 한 무리 군사가 가로막으니 우두머리 위나라 장수는 금성 태수 양흔이었다. 강유가 크게 노해 말을 몰아 교전하니 단지 1합에 양흔이 패주했다. 강유가 활을 집어 들어 잇달아 화살 세 발을 쏘지만 모두 맞지 않았다. 강유가 더욱 노해서 활을 부러뜨리고 창을 꼬나쥐고 뒤쫓다가 군마가 앞발을 헛디뎌서 강유가 땅 위에 거꾸러졌다. 양흔이 말을 돌려 강유를 죽이려 달려오는데, 강유가 벌떡 일어나 단번에 창으로 찔러서 양흔이 탄 말의 뇌를 찔렀다. 뒤에서 위나라 군사가 몰려와서 양흔을 구출해 갔다. 강유가 말에 올라 추격하려는 때에 급히 보고하기를, 뒤쪽에서 등애의 군사가 이르렀다고 했다. 강유가 앞뒤로 서로 도울 수가 없어, 마침내 군사를 거두고 한중을 탈환하려고 했다. 그런데 정찰 기병이 보고하기를,

 

옹주자사 제갈서가 이미 귀로를 끊었습니다.”

 

했다. 강유가 산세가 험준한 곳에 영채를 세우고, 위나라 군사는 음평교 어귀에 주둔했다. 강유가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게 되자, 길게 탄식하기를,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

 

했다. 부장 영수가 말하기를,

 

위나라 군사가 비록 음평교를 차단했다고 하나 옹주의 군사는 반드시 수가 많지 않습니다. 장군께서 만약 공함곡을 따라 옹주를 습격하면 제갈서는 반드시 음평에서 철군해서 옹주를 구하러 갈 것입니다. 그 틈에 장군께서 군사를 이끌고 검각으로 달려가서 지키면 한중을 수복할 수 있습니다.”

 

했다.

 

維從之即發兵入孔函穀詐取雍州細作報知諸葛緒緒大驚曰雍州是吾合守之地倘有疏失朝廷必然問罪急撤大兵從南路去救雍州只留一枝兵守橋頭薑維入北道約行三十裏料知魏兵起行乃勒回兵後隊作前隊徑到橋頭果然魏兵大隊已去只有些小兵把橋被維一陣殺散盡燒其寨柵諸葛緒聽知橋頭火起複引兵回薑維兵已過半日了因此不敢追趕

 

강유가 그 말을 따라 즉시 군사를 내어 공함곡으로 들어가 옹주를 습격하는 척했다. 세작이 제갈서에게 알리자 제갈서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옹주는 내가 군사를 모아 지키는 곳인데 만일 잘못되면 조정에서 반드시 죄를 물을 것이다.”

 

하고, 급히 대군을 철수해서 남쪽 길을 따라 옹주를 구하러 가고, 다만 한 무리 군사만 남겨 음평교 어귀를 지키게 했다. 강유가 북쪽 길로 들어가 약 30리를 가다가 위나라 군사가 떠난 것을 알아차리고 회군했다. 후미 대열이 선두 대열이 되어 음평교 어귀로 달려가니 과연 위나라 대군이 이미 떠나고 소수 병력만 남아서 지키고 있었다. 강유가 한바탕 무찔러 흩어버리고 영채와 목책을 모조리 불살랐다. 제갈서는 음평교 어귀에서 불길이 치솟았다는 말을 듣고 다시 군사를 이끌고 되돌아왔다. 그러나 강유의 군사가 떠난 지 이미 반나절이 지났으므로 제갈서가 감히 추격하지 못했다.

 

卻說薑維引兵過了橋頭正行之間前面一軍來到乃左將軍張翼右將軍廖化也維問之翼曰黃皓聽信師巫之言不肯發兵翼聞漢中已危自起兵來時陽安關已被鍾會所取今聞將軍受困特來接應遂合兵一處前赴白水關化曰今四面受敵糧道不通不如退守劍閣再作良圖維疑慮未決忽報鍾會鄧艾分兵十餘路殺來維欲與翼化分兵迎之化曰白水地狹路多非爭戰之所不如且退去救劍閣可也若劍閣一失是絕路矣維從之遂引兵來投劍閣將近關前忽然鼓角齊鳴喊聲大起旌旗遍豎一枝軍把住關口正是漢中險峻已無有劍閣風波又忽生

 

한편, 강유가 군사를 이끌고 음평교 어귀를 지나서 행군하고 있는 사이에, 앞쪽에서 한 무리 군사가 몰려왔다. 바로 좌장군 장익과 우장군 요화였다. 강유가 물으니 장익이 말하기를,

 

황호가 무당의 말을 믿고 군사를 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한중이 위기에 처한 것을 전해 듣고 직접 군사를 일으켜 왔습니다만, 양안관(양평관)은 이미 종회가 빼앗은 뒤였습니다. 이제 장군께서 곤경에 처한 것을 듣고, 도우러 온 것입니다.”

 

했다. 이에 군사를 한데 모아 백수관을 향해 갔다. 요화가 말하기를,

 

이제 사방에서 적군이 쳐들어오니 군량 수송로가 불통입니다. 차라리 검각으로 퇴각해 지키면서 다시 좋은 계책을 내는 것만 못합니다.”

 

했다. 강유가 주저하며 결단하지 못하는데, 갑자기 보고하기를, 종회와 등애가 군사를 나누어 10여 개 방면으로 몰려온다고 했다. 강유가 장익, 요화와 더불어 군사를 나눠서 적군을 맞으려 하자 요화가 말하기를,

 

백수는 땅이 좁고 길이 많아 싸움을 펼칠 장소가 못 되니 차라리 우선 퇴각해 검각을 구하러 가는 것만 못합니다. 만약 검각을 잃어버리면 길이 끊어집니다.”

 

하니, 강유가 이 말에 따라, 마침내 군사를 이끌고 검각으로 달려갔다. 관문 앞으로 접근하자 갑자기 북과 피리 소리가 일제히 울리고 함성이 크게 일어나며, 깃발이 모두 일어서고 한 무리 군사가 관문의 입구를 막아섰다고 했다. 이야말로, 한중이 험준하나 이미 잃어버렸고, 검각에 갑자기 풍파가 다시 일어나는구나.

 

未知何處之兵且看下文分解

 

어디에서 온 군사인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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