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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회 조서로 군사를 되돌린 후주가 참소를 믿고, 둔전을 핑계로 강유가 화를 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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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一百一十五回

詔班師後主信讒 托屯田薑維避禍

 

115

조서로 군사를 되돌린 후주가 참소를 믿고, 둔전을 핑계로 강유가 화를 피하다.

 

卻說蜀漢景耀五年冬十月大將軍薑維差人連夜修了棧道整頓軍糧兵器又於漢中水路調撥船只俱已完備上表奏後主曰臣累出戰雖未成大功已挫動魏人心膽今養兵日久不戰則懶懶則致病況今軍思效死將思用命臣如不勝當受死罪後主覽表猶豫未決譙周出班奏曰臣夜觀天文見西蜀分野將星暗而不明今大將軍又欲出師此行甚是不利陛下可降詔止之後主曰且看此行若何果然有失卻當阻之譙周再三苦諫不從乃歸家歎息不已遂推病不出

 

각설, 촉한 경요 5년 겨울 10월에 대장군 강유가 사람들을 보내어, 밤을 새워가며 잔도를 수리하고, 군량과 병기를 정돈했다. 또한 한중에서 물길을 따라 선박을 동원했다. 모두 갖춰지자 후주에게 표를 올려 아뢰기를,

 

신이 여러 차례 출병하여 아직 큰 공을 이루지 못했으나, 위나라 사람들의 심지와 담력을 꺾고 동요시켰습니다. 이제 군사를 기른 지 오래이니 싸우지 않으면 게을러지고 게을러지면 병이 생깁니다. 하물며 이제 병사들은 목숨을 바칠 생각이고, 장수들은 황명을 받들 생각입니다. 신이 이기지 못하면 죽을 죄를 받겠습니다.”

 

했다. 후주가 표를 읽고 머뭇거리며 결단치 못하자, 초주가 반열에서 나와 아뢰기를,

 

신이 밤에 천문을 살피니, 서촉 하늘에 장성이 어두워 밝지 못했습니다. 지금 대장군이 다시 출병하려 하나, 이번 일은 몹시 이롭지 못합니다. 폐하께서 조서를 내려 막으소서.”

 

하니, 후주가 말하기를,

 

일단 이번 일이 어떻게 되는지 봐야겠소. 과연 잘못된다면 그때 막겠소.”

 

했다. 초주가 두세 번 간하지만, 후주가 따르지 않았다. 이에 초주가 귀가하여 탄식해 마지않으며, 병을 핑계로 외출하지 않았다.

 

卻說薑維臨興兵乃問廖化曰吾今出師誓欲恢複中原當先取何處化曰連年征伐軍民不寧兼魏有鄧艾足智多謀非等閑之輩將軍強欲行難爲之事此化所以未敢專也維勃然大怒曰昔丞相六出祁山亦爲國也吾今八次伐魏豈爲一己之私哉今當先取洮陽如有逆吾者必斬遂留廖化守漢中自同諸將提兵三十萬徑取洮陽而來

 

한편, 강유가 출병에 즈음하여 요화에게 묻기를,

 

내 이제 군사를 내어 맹세코 중원을 회복하려는데, 먼저 어디를 취해야겠소?”

 

하니, 요화가 말하기를,

 

해마다 정벌하니 군민이 편안치 않습니다. 더구나 위나라 등애는 지모가 뛰어나서 결코 얕잡아볼 사람이 아닙니다. 장군께서 기어코 어려운 일을 강행하시더라도, 이 요화는 감히 함부로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했다. 강유가 왈칵 크게 성을 내어 말하기를,

 

지난날 승상께서 여섯 차례 기산으로 나감도 나라를 위해서였소. 내가 이제 여덟 차례 위나라를 정벌함이 어찌 나 한 사람의 사사로움 때문이겠소? 이제 마땅히 먼저 조양을 쳐야겠으니, 나를 거스르는 자는 반드시 참하겠소!”

 

했다. 이에 요화를 남겨서 한중을 지키라 하고, 강유가 스스로 장수들과 군사 30만을 거느리고, 지름길로 조양을 취하러 나아갔다.

 

早有川口人報入祁山寨中時鄧艾正與司馬望談兵聞知此信遂令人哨探回報蜀兵盡從洮陽而出司馬望曰薑維多計莫非虛取洮陽而實來取祁山乎鄧艾曰今薑維實出洮陽也望曰公何以知之艾曰向者薑維累出吾有糧之地今洮陽無糧維必料吾只守祁山不守洮陽故徑取洮陽如得此城屯糧積草結連羌人以圖久計耳望曰若此如之奈何艾曰可盡撤此處之兵分爲兩路去救洮陽離洮陽二十五裏有侯河小城乃洮陽咽喉之地公引一軍伏於洮陽偃旗息鼓大開四門如此如此而行我卻引一軍伏侯河必獲大勝也籌畫已定各各依計而行只留偏將師纂守祁山寨

 

재빨리 천구 사람이 기산 영채로 들어가 보고했다. 이때 등애가 마침 사마망과 군사를 의논하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 사람을 시켜 정탐케 하니,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촉나라 군이 모두 조양으로 나온다고 했다. 사마망이 말하기를,

 

강유가 계책이 많으니, 조양을 취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기산을 취하러 옴이 아니겠소?”

 

하니, 등애가 말하기를,

 

이번은 강유가 실제로 조양으로 나오려는 것이오.”

 

했다. 사마망이 말하기를,

 

공께서 그것을 어떻게 아시오?”

 

하니, 등애가 말하기를,

 

지난번 강유가 여러 번 우리의 군량 저장소로 나왔으나, 지금 조양에 군량이 없소. 강유는 반드시 우리가 기산만 지키고, 조양을 지키지 않는다고 여겨서, 조양을 취하러 오는 것이오. 만약 조양성을 얻으면, 군량과 사료를 쌓고, 강인들과 연결하여, 장기전을 꾀할 것이오.”

 

했다. 사마망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어떡해야겠소?”

 

하니, 등애가 말하기를,

 

이곳 군사를 모두 거두어, 두 길로 나눠서 조양을 구원하러 가야겠소. 조양에서 25리 떨어진 곳에 후하소성이라고 있는데, 조양의 목구멍처럼 중요한 땅이오. 공께서 1군을 이끌고 조양에 매복하여 군기를 누이고 북을 쉰 채, 사방 성문을 열어 놓고, 이러저러하게 하시오. 나는 1군을 이끌고 후하에 매복해서, 반드시 큰 승리를 거둘 것이오.”

 

했다. 계책을 정하고, 각각 계책대로 길을 떠났다. 다만 부장 사찬을 남겨서 기산 영채를 지키게 했다.

 

卻說薑維令夏侯霸爲前部先引一軍徑取洮陽霸提兵前進將近洮陽望見城上並無一杆旌旗四門大開霸心下疑惑未敢入城回顧諸將曰莫非詐乎諸將曰眼見得是空城只有些小百姓聽知大將軍兵到盡棄城而走了霸未信自縱馬於城南視之只見城後老小無數皆望西北而逃霸大喜曰果空城也遂當先殺入餘衆隨後而進方到甕城邊忽然一聲炮響城上鼓角齊鳴旌旗遍豎拽起吊橋霸大驚曰誤中計矣慌欲退時城上矢石如雨可憐夏侯霸同五百軍皆死於城下

 

한편, 강유는 하후패를 선봉으로 삼아, 먼저 1군을 이끌고 조양을 치게 했다. 하후패가 군사를 거느리고 전진하여 조양에 접근하자, 멀리 성 위에는 깃발 하나 보이지 않고, 네 성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하후패가 의심하여 성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장수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속임수가 틀림없지 않소?”

 

하니, 장수들이 말하기를,

 

눈으로 보기에는 빈 성이 분명합니다. 얼마 안 되는 백성이 있다가, 대장군의 군사가 도달함을 알고, 모두 성을 버리고 떠난 것입니다.”

 

했다. 하후패가 믿지 못하여 스스로 말을 몰아 성 남쪽을 살피러 가니, 성 뒤에서 무수한 남녀노소(男女老少) 백성들이 모두 서북쪽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하후패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과연 빈 성이로구나.”

 

했다. 마침내 선두에서 돌입하고, 나머지 군사들도 뒤따라 나아갔다. 그런데 옹성(성문 밖의 방어용 작은 성) 가까이 이르자, 갑자기 한바탕 포성이 터지고, 성벽 위에서 북과 피리 소리가 일제히 울리며, 온갖 깃발이 사방에 일어서고, 조교(적교, 해자 위로 올리고 내리는 다리)가 끌어 올려졌다. 하후패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잘못 계책에 빠졌구나!”

 

하고, 황급히 물러나려는데, 성 위에서 화살과 돌이 비처럼 쏟아졌다. 가련하게도 하후패가 군사 5백과 함께 모두 성벽 아래에서 전사했다.

 

後人有詩歎曰

 

大膽薑維妙算長

誰知鄧艾暗提防

可憐投漢夏侯霸

頃刻城邊箭下亡

 

뒷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하기를,

 

대담한 강유가 묘책을 잘 내지만,

등애가 몰래 방비할 줄 누가 알았으랴.

가련하구나! 한나라로 귀순한 하후패가,

불시에 성 아래에서 화살 맞아 죽었네.”

 

했다.

 

司馬望從城內殺出蜀兵大敗而逃隨後薑維引接應兵到殺退司馬望就傍城下寨維聞夏侯霸射死嗟傷不已是夜二更鄧艾自侯河城內暗引一軍潛地殺入蜀寨蜀兵大亂薑維禁止不住城上鼓角喧天司馬望引兵殺出兩下夾攻蜀兵大敗維左沖右突死戰得脫退二十餘裏下寨蜀兵兩番敗走之後心中搖動維與衆將曰勝敗乃兵家之常今雖損兵折將不足爲憂成敗之事在此一舉汝等始終勿改如有言退者立斬張翼進言曰魏兵皆在此處祁山必然空虛將軍整兵與鄧艾交鋒攻打洮陽侯河某引一軍取祁山取了祁山九寨便驅兵向長安此爲上計

 

사마망의 군사가 성안에서 몰려나오자, 촉나라 군이 대패해서 달아났다. 뒤따라 강유가 구원병을 이끌고 와서, 사마망을 격퇴하고 성 옆에 영채를 세웠다. 하후패가 사살됐음을 강유가 듣고, 슬퍼해 마지않았다. 이날 밤 2(10시쯤)에 등애가 하후소성을 나와서, 몰래 1군을 이끌고 촉군 영채로 잠입했다. 촉군이 큰 혼란에 빠져, 강유도 막지 못했다. 성 위에서 북과 피리 소리가 하늘을 울리며, 사마망이 군사를 이끌고 달려들었다. 양쪽에서 협공하자, 촉군이 대패했다. 강유가 좌충우돌하여 죽기 살기로 싸워서 겨우 탈출하여 20여 리를 물러나서 영채를 세웠다. 촉군이 두 차례나 패하여 달아난 후에 군심이 동요하자, 강유가 여러 장수에게 말하기를,

 

승패는 군사 작전에 언제나 있는 일이라 지금 비록 병사와 장수를 잃었으나, 우려할 것은 아니오. 성공과 실패가 이번의 한 작전에 달렸으니, 그대들은 시종 변함없도록 하시오. 만약 퇴각을 말하는 자는 당장 참하겠소.”

 

했다. 장익이 진언하기를,

 

위군이 모두 여기에 있으니, 기산은 필시 공허할 것이오. 장군께서 군사를 정돈해서 등애와 교전하여 조양과 후하를 치십시오. 그 사이 제가 1군을 이끌고, 기산을 치겠습니다. 기산의 아홉 영채를 점령하면, 군사를 장안까지 몰아갈 수 있으니, 이것이 상책입니다.”

 

했다.

 

維從之即令張翼引後軍徑取祁山維自引兵到侯河搦鄧艾交戰艾引軍出迎兩軍對圓二人交鋒數十餘合不分勝負各收兵回寨次日薑維又引兵挑戰鄧艾按兵不出薑維令軍辱罵鄧艾尋思曰蜀人被吾大殺一陣全然不退連日反來搦戰必分兵去襲祁山寨也守寨將師纂兵少智寡必然敗矣吾當親往救之乃喚子鄧忠分付曰汝用心守把此處任他搦戰卻勿輕出吾今夜引兵去祁山救應

 

강유가 이를 따라, 장익에게 후군을 이끌고 기산을 치라고 했다. 강유 자신은 군사를 이끌고, 후하로 가서 등애에게 도전하니, 등애가 군사를 끌고 맞이했다. 양군이 대치하자, 둘이 수십 합을 싸웠지만, 승부를 가르지 못해서 각각 군사를 거두어 영채로 돌아갔다. 다음날도 강유가 군사를 이끌고 도전했지만, 등애가 군사를 머물러 두고 출전하지 않았다. 강유가 군사를 시켜 욕설을 퍼붓는데, 등애가 깊이 생각하기를, ‘촉인들이 우리에게 한바탕 대패하고도 전혀 물러서지 않고, 도리어 날마다 싸움을 거니, 필시 군사를 나눠 기산 영채를 치러 갔구나. 그곳 영채를 지키는 장수 사찬은 군사도 적고, 지모도 모자라니, 반드시 패주할 것이다. 내가 마땅히 직접 구원하러 가야겠다.’하고, 아들 등충을 불러 분부하기를,

 

너는 신중히 이곳을 수비하며, 강유가 싸움을 걸도록 놔두고, 함부로 출전치 말라. 나는 오늘밤 군사를 이끌고 기산을 구하러 갈 것이다.”

 

했다.

 

是夜二更薑維正在寨中設計忽聽得寨外喊聲震地鼓角喧天人報鄧艾引三千精兵夜戰諸將欲出維止之曰勿得妄動原來鄧艾引兵至蜀寨前哨探了一遍乘勢去救祁山鄧忠自入城去了薑維喚諸將曰鄧艾虛作夜戰之勢必然去救祁山寨矣乃喚傅僉分付曰汝守此寨勿輕與敵囑畢維自引三千兵來助張翼

 

이날 밤 2경에 강유가 영채 안에서 계책을 짜는데, 갑자기 영채 밖에서 함성이 땅을 울리고, 북과 피리 소리가 하늘을 뒤흔들었다. 사람들이 보고하기를, ‘등애가 정병 3천을 이끌고 야습했다고 했다. 장수들이 싸우러 나가려는데, 강유가 막으며 말하기를,

 

함부로 움직이지 마시오.”

 

했다. 원래, 등애가 군사를 이끌고, 촉군 영채 앞으로 와서, 한 번 두루 정찰한 뒤 형세를 틈타서, 기산을 구원하러 가려고 했다. 등충이 직접 (하후소성) 성안으로 들어갔다. 강유가 장수들을 불러 말하기를,

 

등애가 야습하는 척하면서, 필시 기산 영채를 구하러 갈 것이오.”

 

하고, 이에 부첨을 불러 분부하기를,

 

그대가 이곳을 수비하되, 함부로 대적하지 마시오.”

 

했다. 부탁을 마친 뒤, 강유가 스스로 군사 3천을 이끌고, 장익을 도우러 갔다.

 

卻說張翼正到祁山攻打守寨將師纂兵少支持不住看看待破忽然鄧艾兵至沖殺了一陣蜀兵大敗把張翼隔在山後絕了歸路正慌急之間忽聽的喊聲大震鼓角喧天只見魏兵紛紛倒退左右報曰大將軍薑伯約殺到翼乘勢驅兵相應兩下夾攻鄧艾折了一陣急退上祁山寨不出薑維令兵四面攻圍

 

한편, 이때 장익이 기산을 공격하자, 영채를 지키는 장수 사찬이 병력이 적어 버티지 못하고, 곧 무너지려는데, 홀연히 등애의 군사가 이르러서, 한바탕 쳐부수니 촉나라 군이 대패했다. 장익이 기산 뒤에 가로막혀서 귀로가 끊겼다. 바로 황급한 순간에, 갑자기 함성이 크게 울리고 북과 피리 소리 하늘을 뒤흔드는데, 거꾸로 위군이 어지럽게 달아났다. 좌우에서 보고하기를,

 

강백약(강유) 대장군께서 달려오셨습니다.”

 

했다. 장익이 형세를 타고 군사를 몰아 접응했다. 양쪽에서 협공하자 등애가 한바탕 꺾여서, 급히 기산 영채로 퇴각하여 나오지 않았다. 강유가 군사를 지휘하여 사방을 포위해 공격했다.

 

話分兩頭卻說後主在成都聽信宦官黃皓之言又溺於酒色不理朝政時有大臣劉琰妻胡氏極有顏色因入宮朝見皇後後留在宮中一月方出琰疑其妻與後主私通乃喚帳下軍士五百人列於前將妻綁縛令軍以履撻其面數十幾死複蘇後主聞之大怒令有司議劉琰罪有司議得卒非撻妻之人面非受刑之地合當棄市遂斬劉琰自此命婦不許入朝然一時官僚以後主荒淫多有疑怨者於是賢人漸退小人日進

 

이야기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한편, 후주는 성도에서 환관 황호의 말을 믿고, 주색에 빠져서 조정을 돌보지 않았다. 이때 대신 유염의 처 호씨가 미모가 아주 뛰어났다. 그 때문에 궁궐로 들어가 황후를 알현하면, 황후가 궁중에 붙잡아두고 한 달 후에 내보내곤 했다. 유염이 그 처와 후주가 사통한다고 의심하여, 휘하 군졸 5백 인을 불러서 앞에 세운 뒤, 그 처를 묶어놓고 군사를 시켜 처의 얼굴을 수십 차례 밟고 때리니, 그 처가 거의 죽었다가 깨어났다. 후주가 이를 듣고 크게 노해서 유사(담당자)를 시켜 유염의 죄를 논의케 했다. 유사가 논의하기를, ‘군졸들은 유염의 처를 때릴 사람이 아니고, 얼굴은 형을 받을 데가 아니니, 유염을 저자에서 처형함이 합당하다라고 했다. 이에 유염을 처형하고, 이로부터 그 처를 조정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동시에 관료들이 후주를 황음무도(荒淫無道)하다고 여기고, 후주를 의심하고 원망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에 현인들이 점점 물러나고, 소인배들이 나날이 세력을 키웠다.

 

時右將軍閻宇身無寸功只因阿附黃皓遂得重爵聞薑維統兵在祁山乃說皓奏後主曰薑維屢戰無功可命閻宇代之後主從其言遣使齎詔召回薑維維正在祁山攻打寨柵忽一日三道詔至宣維班師維只得遵命先令洮陽兵退次後與張翼徐徐而退鄧艾在寨中只聽得一夜鼓角喧天不知何意至平明人報蜀兵盡退止留空寨艾疑有計不敢追襲

 

이때, 우장군 염우는 아주 작은 공도 세우지 못한 몸이지만, 단지 황호에게 아부해서 큰 벼슬을 얻었다. 강유가 기산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 것을 염우가 듣고, 황호를 설득해서 후주에게 아뢰기를,

 

강유가 누차 싸우고도, 아무 전공도 없으니, 염우로 대신하게 하소서.”

 

하니, 후주가 그 말을 따라, 사자에게 조서를 주어 보내서 강유를 불러들였다. 강유가 마침 기산에서 위나라 영채를 공격하고 있는데, 갑자기 하루에 세 번이나 천자의 조서가 날아와서, 강유에게 군사를 거두라고 명령했다. 강유가 어쩔 수 없이 황명을 따라, 먼저 조양의 병력을 퇴각시키고, 다음에 장익과 더불어 서서히 퇴각했다. 등애가 영채 안에 있다가, 한밤에 북과 피리 소리가 하늘을 뒤흔듦을 듣지만, 무슨 의도인지 알지 못했다. 새벽에 이르러, 사람들이 보고하기를, 촉군이 모조리 퇴각해서 촉군 영채가 텅 비었다고 했지만, 등애는 적의 계책이 있을까 의심하여 감히 추격하지 않았다.

 

薑維徑到漢中歇住人馬自與使命入成都見後主後主一連十日不朝維心中疑惑是日至東華門遇見秘書郎郤維問曰天子召維班師公知其故否正笑曰大將軍何尚不知黃皓欲使閻宇立功奏聞朝廷發詔取回將軍今聞鄧艾善能用兵因此寢其事矣維大怒曰我必殺此宦豎郤正止之曰大將軍繼武侯之事任大職重豈可造次倘若天子不容反爲不美矣維謝曰先生之言是也

 

강유가 한중에 이르러 인마를 쉬게 하고, 스스로 천자의 사자와 더불어 성도로 들어가, 후주를 만나려 했지만, 후주는 잇달아 열흘 동안 조회를 열지 않으니, 강유는 마음속에 의심이 생겼다. 어느날 동화문에 이르러 우연히 비서랑 극정을 만났다. 강유가 묻기를,

 

천자께서 저를 불러 군사를 거두었는데, 공께서 그 까닭을 아시오?”

 

하니, 극정이 웃으며 말하기를,

 

대장군께서 어찌 아직도 모르시오? 황호가 염우로 하여금 공을 세우게 하려고, 조정에 아뢰어서 조서를 내려 장군을 불러들였소. 이제 듣자니 등애가 용병에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그로 인해 그 일을 중지하게 됐소.”

 

했다. 강유가 크게 노해 말하기를,

 

내가 반드시 이 환관 놈을 죽여 버려야겠소!”

 

하니, 극정이 제지하며 말하기를,

 

대장군께서 무후(제갈공명)의 일을 계승해서, 책임이 크고 직무가 막중한데, 어찌 경솔히 움직이려 하시오? 그러다 만약 천자께서 용납하지 않으시면, 도리어 아름답지 못하게 될 것이오.”

 

했다. 강유가 사례해 말하기를,

 

선생의 말씀이 옳소.”

 

했다.

 

次日後主與黃皓在後園宴飲維引數人徑入早有人報知黃皓皓急避於湖山之側維至亭下拜了後主泣奏曰臣困鄧艾於祁山陛下連降三詔召臣回朝未審聖意爲何後主默然不語維又奏曰黃皓奸巧專權乃靈帝時十常侍也陛下近則鑒於張讓遠則鑒於趙高早殺此人朝廷自然清平中原方可恢複後主笑曰黃皓乃趨走小臣縱使專權亦無能爲昔者董允每切齒恨皓朕甚怪之卿何必介意維叩頭奏曰陛下今日不殺黃皓禍不遠也後主曰愛之欲其生惡之欲其死卿何不容一宦官耶令近侍於湖山之側喚出黃皓至亭下命拜薑維伏罪

 

다음날, 후주가 황호와 더불어 후원에서 주연을 열었는데, 강유가 몇 사람을 데리고 들어왔다. 재빨리 누군가 황호에게 알리니, 황호가 급히 호산(연못에 인공으로 조성한 산) 옆으로 피신했다. 강유가 정자 아래에 이르러, 후주에게 절하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신이 기산에서 등애를 포위하고 있을 때, 폐하께서 잇달아 세 차례 조서를 내려, 신을 조정으로 불러들이셨으나, 아직 천자의 의중이 무엇인지 짐작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후주가 묵묵히 말이 없었다. 강유가 다시 아뢰기를,

 

황호가 간교히 권력을 휘두르니, 마치 영제 시대의 십상시와 같습니다. 폐하께서는 가까이는 장양(십상시의 한 명), 멀리는 조고(이세 황제 때의 환관)의 일을 거울삼으소서. 어서 이 자를 죽여야, 조정이 저절로 맑고 평안해지고, 중원을 비로소 되찾을 수 있습니다.”

 

하니, 후주가 웃으며 말하기를,

 

황호는 종종걸음하는 소인배일 뿐 비록 권력을 휘두른다지만 역시 아무것도 하는 게 없소. 지난날 동윤이 매번 이를 갈며 황호를 미워하기에, 짐이 몹시 괴이하게 여겼소. 경은 대체 무엇을 마음에 두고 생각하시오?”

 

했다. 강유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기를,

 

폐하께서 오늘 황호를 죽이지 않으시면, 재앙이 멀지 않았습니다.”

 

했다. 후주가 말하기를,

 

사랑하면 살려주고 싶고, 미워하면 죽이고 싶다는데, 경이 어찌 일개 환관을 용서치 못하오?”

 

하고, 근시를 시켜서 호산 옆에서 황호를 정자 아래로 불러내어, 강유를 향해 절하고 죄를 인정하게 했다.

 

皓哭拜維曰某早晚趨侍聖上而已並不幹與國政將軍休聽外人之言欲殺某也某命系於將軍惟將軍憐之言罷叩頭流涕維忿忿而出即往見郤正備將此事告之正曰將軍禍不遠矣將軍若危國家隨滅維曰先生幸教我以保國安身之策正曰隴西有一去處名曰遝中此地極其肥壯將軍何不效武侯屯田之事奏知天子前去遝中屯田一者得麥熟以助軍實二者可以盡圖隴右諸郡三者魏人不敢正視漢中四者將軍在外掌握兵權人不能圖可以避禍此乃保國安身之策也宜早行之維大喜謝曰先生金玉之言也

 

황호가 소리내어 울며 강유에게 절하고 말하기를,

 

제가 성상(천자)을 모시기만 할 뿐, 조만간 결코 국정에 간섭지 않겠습니다. 장군께서 다른 사람 말만 듣고, 저를 죽이려 하지 마십시오. 제 목숨이 장군께 달렸으니 부디 장군께서는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말을 마치며 머리를 조아리고 눈물을 흘렸다. 강유가 분노한 모습으로 나가서 극정을 찾아가, 자세히 이 일을 알리니, 극정이 말하기를,

 

장군께 머지않아 재앙이 닥치겠소. 장군이 위태로우면 국가도 뒤따라 멸망하오.”

 

했다. 강유가 말하기를,

 

선생께서 국가를 보전하고 일신을 안전케 할 계책을 나에게 알려주시오.”

 

하니, 극정이 말하기를,

 

농서에 갈 만한 곳이 한 군데 있는데, 이름하여 답중입니다. 그곳은 넓고 넉넉합니다. 장군께서는 어찌하여 무후(제갈공명)의 둔전하던 일을 본받아 천자께 아뢰어 먼저 답중에 둔전을 하러 가지 않습니까? 그리하면, 첫째, 익은 보리를 수확해서 군대의 식량에 보태고, 둘째, 농우(농서)의 여러 고을을 모두 도모하고, 셋째, 위나라 사람들이 감히 한중을 노리지 못하게 하고, 넷째, 장군이 밖에서 병권을 장악할 수 있으니, 남들이 장군을 도모할 수가 없어서, 가히 재앙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이야말로 나라를 보전하고, 일신을 안전케 할 계책이니, 서둘러 실행하십시오.”

 

했다. 강유가 크게 기뻐하며 사례하기를,

 

선생의 말씀이 금옥과 같습니다.”

 

했다.

 

次日薑維表奏後主求遝中屯田效武侯之事後主從之維遂還漢中聚諸將曰某累出師因糧不足未能成功今吾提兵八萬往遝中種麥屯田徐圖進取汝等久戰勞苦今且斂兵聚穀退守漢中魏兵千裏運糧經涉山嶺自然疲乏疲乏必退那時乘虛追襲無不勝矣遂令胡濟守漢壽城王含守樂城蔣斌守漢城蔣舒傅僉同守關隘分撥已畢維自引兵八萬來遝中種麥以爲久計

 

다음날, 강유가 후주에게 표를 올려 아뢰어, 답중에 둔전을 마련해서, 무후의 사업을 본받겠다고 하니, 후주가 이를 따랐다. 강유가 한중으로 돌아가서 장수들을 모아 말하기를,

 

내가 누차 출병했으나 군량이 부족하여 아직 성공하지 못했소. 내가 이제 군사 8만을 거느리고, 답중으로 가서 보리를 심어 둔전을 행하며, 천천히 진취를 도모하겠소. 그대들이 오랜 기간 싸우느라 지쳤으니, 이제 군사를 거두고 곡식을 모아서, 한중으로 물러나 수비하겠소. 위나라 군이 천 리에 걸쳐 군량을 운반하고, 산과 고개를 넘어야 하니, 자연히 피곤하고, 피곤하면 결국 퇴각할 테니, 그때 빈틈을 노려 추격하면, 이기지 못할 게 없소.”

 

했다. 이에 호제에게 한수성을, 왕함에게 낙성을, 장빈에게 한성을, 장서와 부첨에게 함께 험준하고 중요한 길목을 지키라고 명했다. 이렇게 배치를 마치고, 강유 스스로 군사 8만을 이끌고, 답중으로 가서 보리를 심고 장기 계책으로 삼았다.

 

卻說鄧艾聞薑維在遝中屯田於路下四十餘營連絡不絕如長蛇之勢艾遂令細作相了地形畫成圖本具表申奏晉公司馬昭見之大怒曰薑維屢犯中原不能剿除是吾心腹之患也賈充曰薑維深得孔明傳授急難退之須得一智勇之將往刺殺之可免動兵之勞從事中郎荀勖曰不然今蜀主劉禪溺於酒色信用黃皓大臣皆有避禍之心薑維在遝中屯田正避禍之計也若令大將伐之無有不勝何必用刺客乎

 

한편, 등애는 강유가 답중에서 둔전을 행하며, 길을 따라 40여 개 영채를 세워, 끊임없이 이어진 것이 마치 긴 뱀과 같은 형세를 이루었다는 것을 들었다. 등애가 곧 세작을 시켜 지형을 파악한 뒤, 도본을 그려서 표를 써서 아뢰니, 진공 사마소가 이를 보고, 크게 노해 말하기를,

 

강유가 누차 중원을 범하는데, 이를 소탕치 못하니 내 가슴 속의 큰 우환이오.”

 

했다. 가충이 말하기를,

 

강유가 공명에게 깊이 전수 받아서, 급히 격퇴하기 어렵습니다. 지혜와 용맹을 두루 갖춘 장수를 보내어, 그를 암살하면 출병하는 수고를 덜 수 있습니다.”

 

하니, 종사중랑 순욱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촉나라 군주 유선이 주색에 빠져, 황호를 믿고 쓰니, 대신들이 모두 그 화를 피할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강유가 답중에서 둔전을 행함도 바로 그 화를 피하려는 속셈입니다. 대장을 시켜 정벌하면, 이기지 못할 게 없는데, 하필 자객을 보내야겠습니까?”

 

했다.

 

昭大笑曰此言最善吾欲伐蜀誰可爲將荀勖曰鄧艾乃世之良材更得鍾會爲副將大事成矣昭大喜曰此言正合吾意乃召鍾會入而問曰吾欲令汝爲大將去伐東吳可乎會曰主公之意本不欲伐吳實欲伐蜀也昭大笑曰子誠識吾心也但卿往伐蜀當用何策會曰某料主公欲伐蜀已畫圖本在此昭展開視之圖中細載一路安營下寨屯糧積草之處從何而進從何而退一一皆有法度昭看了大喜曰真良將也卿與鄧艾合兵取蜀何如會曰蜀川道廣非一路可進當使鄧艾分兵各進可也

 

사마소가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그 말이 최선이오. 내가 촉나라를 정벌하려면, 누구를 장수로 삼아야겠소?”

 

하니, 순욱이 말하기를,

 

등애는 천하의 좋은 인재입니다. 거기다 종회를 부장으로 삼는다면, 대사를 이룰 것입니다.”

 

했다. 사마소가 크게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그 말씀이 바로 내 뜻과 맞소.”

 

했다. 이에 종회를 불러들여 묻기를,

 

내가 그대를 대장으로 삼아, 오나라를 치러 보내려는데, 어떻소?”

 

하니, 종회가 말하기를,

 

주공의 뜻은 본래 오나라를 치려는 게 아니라, 실은 촉나라를 치려는 것입니다.”

 

했다. 사마소가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그대가 참으로 내 마음을 아는구려. 경이 촉나라를 치러 간다면, 무슨 계책을 쓰겠소?”

 

하니, 종회가 말하기를,

 

제가 주공께서 촉나라를 치시려는 것을 헤아려서, 이미 도본을 만들어 여기 가져왔습니다.”

 

했다. 사마소가 펴서 보니 도본에는 상세히 길을 따라 영채를 세우고 군량과 사료를 저장한 곳과 어디로 전진하고 어디로 퇴각할지를 그렸는데, 하나하나가 모두 법도가 있었다. 사마소가 보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참으로 훌륭한 장수요! 경이 등애와 더불어 군사를 합쳐 촉나라를 취함이 어떻겠소?”

 

하니, 종회가 말하기를,

 

촉나라 땅은 길이 넓어서 진격로가 하나뿐이 아닙니다. 등애와 함께 군사를 나눠 각각 진군함이 옳습니다.”

 

했다.

 

昭遂拜鍾會爲鎮西將軍假節鉞都督關中人馬調遣青揚等處一面差人持節令鄧艾爲征西將軍都督關外隴上使約期伐蜀次日司馬昭於朝中計議此事前將軍鄧敦曰薑維屢犯中原我兵折傷甚多只今守禦尚自未保奈何深入山川危險之地自取禍亂耶昭怒曰吾欲興仁義之師伐無道之主汝安敢逆吾意叱武士推出斬之須臾呈鄧敦首級於階下衆皆失色

 

사마소가 이에 종회를 진서장군으로 삼아 황제의 절월(부절과 도끼, 군권의 신표)을 지니고 관중(섬서 위수 유역 일대) 지역의 인마를 통솔하고, 청주, 서주, 연주, 예주, 형주, 양주 등을 관할하게 했다. 한편으로 등애에게 황제의 절월을 보내, 정서장군으로 삼고 관외(함곡관 동쪽) 농상(섬서북부와 감숙 일대)의 인마를 지휘하게 하고, 날짜를 정해서 촉을 정벌하라고 했다. 다음날, 사마소가 조정에서 이 일을 토의하니, 전장군 등돈이 말하기를,

 

강유가 여러 번 중원을 침범해서 아군 사상자가 아주 많습니다. 지금 오로지 수비할 뿐 아직 스스로 보전하지도 못하는데, 어찌 산천이 위험한 곳으로 깊이 들어가서 재난과 변란을 자초한단 말입니까?”

 

하니, 사마소가 노하여 말하기를,

 

내가 인의의 군사를 일으켜서 무도한 군주를 정벌하고자 하거늘, 네가 어찌 감히 내 뜻을 거스르는가?”

 

하고, 무사들에게 호통쳐서 끌어내어 참하게 했다. 잠시 뒤에 등돈의 머리를 섬돌 아래에 바치니, 사람들이 모두 얼굴빛을 잃었다.

 

昭曰吾自征東以來息歇六年治兵繕甲皆已完備欲伐吳蜀久矣今先定西蜀乘順流之勢水陸並進並吞東吳此滅虢取虞之道也吾料西蜀將士守成都者八九萬守邊境者不過四五萬薑維屯田者不過六七萬今吾已令鄧艾引關外隴右之兵十餘萬絆住薑維於遝中使不得東顧遣鍾會引關中精兵二三十萬直抵駱穀三路以襲漢中蜀主劉禪昏暗邊城外破士女內震其亡可必矣衆皆拜服

 

사마소가 말하기를,

 

내가 직접 동쪽을 정벌한 이래, 6년을 쉬며 군사를 훈련시키고 갑옷을 수리했소. 이미 모두 완비돼서, 오나라와 촉나라를 정벌하려고 한 지 오래요. 이제 먼저 서촉을 평정한 뒤에 강물 흐름의 기세를 타고, 수륙 양면으로 진격하여, 동오를 병탄할 것이니, 이야말로 괵나라를 멸하고 우나라를 취하는 방도요. 내가 헤아려보니, 서촉의 장졸 중에 성도를 지키는 자가 8, 9만이고, 변경을 지키는 자가 불과 4, 5만이며, 강유가 이끌고 둔전을 행하는 자도 불과 6, 7만이오. 이제 내가 등애를 시켜 관외(함곡관 동쪽) 농우(농서,감숙성 농산서쪽)의 군사 10여 만을 이끌고 가서, 답중에서 강유를 묶어놓아 동쪽을 돌보지 못하게 만들려고 하오. 또한 종회를 보내 관중의 정병 2, 30만을 이끌고, 곧바로 낙곡을 쳐들어가서, 세 길로 한중을 습격하겠소. 촉나라 주군 유선은 어리석고 못났으니, 밖으로 변경의 성을 격파하면, 안으로 백성이 동요해서 반드시 멸망할 것이오.”

 

하니, 모두가 탄복했다.

 

卻說鍾會受了鎮西將軍之印起兵伐蜀會恐機謀或泄卻以伐吳爲名令青揚等五處各造大船又遣唐咨於登萊等州傍海之處拘集海船司馬昭不知其意遂召鍾會問之曰子從旱路收川何用造船耶會曰蜀若聞我兵大進必求救於東吳也故先布聲勢作伐吳之狀吳必不敢妄動一年之內蜀已破船已成而伐吳豈不順乎

 

한편, 종회가 진서장군의 인장을 받고, 촉을 정벌하러 출병했다. 종회가 기밀이 혹시 누설될까 두려워서, 동오를 정벌한다는 핑계로, 청주, 연주, 예주, 형주, 양주 등 다섯 곳에서 각각 큰 배를 건조했다. 또한 당자를 등주와 내주 등 해안 지역으로 보내서, 바다를 항해하는 큰 배를 끌어모았다. 사마소가 그 뜻을 알지 못해서 종회를 불러 묻기를,

 

그대가 육로로 서천을 정벌할 것인데, 배를 만들어 무엇에 쓰려 하오?”

 

하니, 종회가 말하기를,

 

촉나라가 아군이 크게 진격함을 들으면, 반드시 동오에 구원을 청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허장성세(虛張聲勢)를 펼쳐서, 동오를 정벌하는 척하면 동오는 감히 함부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1년 안에 촉나라를 무너뜨린 뒤, 배가 이미 완성돼 있을 터이니, 동오 정벌이 어찌 순탄치 않겠습니까?”

 

했다.

 

昭大喜選日出師時魏景元四年秋七月初三日鍾會出師司馬昭送之於城外十裏方回西曹掾邵悌密謂司馬昭曰今主公遣鍾會領十萬兵伐蜀愚料會志大心高不可使獨掌大權昭笑曰吾豈不知之悌曰主公既知何不使人同領其職昭言無數語使邵悌疑心頓釋正是方當士馬驅馳日早識將軍跋扈心

 

사마소가 크게 기뻐하며 날짜를 택해 출병케 했다. 위나라 경원 4, 가을 7월 초3일에 종회가 출병했다. 사마소가 성 밖 10리까지 나와 배웅하고 돌아갔다. 승상부 관리 소제가 은밀히 사마소에게 말하기를,

 

이제 주공께서 종회에게 10만 대군을 줘서 촉을 정벌케 하시지만, 제 생각에 종회가 뜻이 크고 마음이 높은 듯합니다. 그가 홀로 대권을 장악게 하면 안 됩니다.”

 

하니, 사마소가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어찌 그것을 모르겠소?”

 

했다. 소제가 말하기를,

 

주공께서 이미 아시면서, 어찌 그 직위를 다른 사람에게 함께 맡기시지 않습니까?”

 

하니, 이에 사마소가 몇 마디를 말하여 소제의 의심을 순식간에 풀어주었다. 이야말로, 군사를 일으키려는 날에, (사마소가) 벌써 장군이 멋대로 날뛸 것을 알았구나.

 

未知其言若何且看下文分解

 

그 말이 무엇이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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