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진현서당지 제665호 오손공주(烏孫公主)

진현서당 주간지

by 진현서당 2024. 9. 18. 11:20

본문

 

무제(武帝)의 딸로 위장하여 오손(烏孫)에 시집 간 강도왕(江都王)의 딸 세군(細君)을 일컫는 말로 정략 결혼의 희생양이 된 슬픈 운명의 여인을 가리키는 말.

 

 : 까마귀 오
 : 손자 손
 : 귀인 공
 : 주인 주

 

**오손(烏孫)**은 전한(前漢) 시대 서역(西域) 지방에 자리 잡은 투르크계 유목민족(遊牧民族)으로, 그 세력은 아주 강대했습니다. 이들의 본거지는 톈산(天山) 산맥 북쪽과 이르츠그 호수(湖水), 일리 강 유역의 분지까지 포함했으며, 수도(首都)는 적곡성(赤谷成)이었죠. 그런데, 오손(烏孫)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흉노(匈奴)**였습니다. 이들은 당시 북방 몽골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자주 한나라()를 괴롭히고 공격했죠.

한나라의 무제(漢武帝)는 흉노(匈奴)를 막기 위해 방법을 찾다가, "이참에 오손(烏孫)과 친하게 지내자!"라는 기막힌 외교 전략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장건(張騫)**을 사신으로 오손(烏孫)에 보냈죠. 이 동맹은 꽤 괜찮았고, 10년 후 무제(武帝)"이걸 더 확실하게 해야겠다"며 아주 황당한(?) 결정을 내립니다. 무제(武帝)의 형인 강도왕(江都王) 유건(劉建)의 딸 **세군(細君)**을 무제(武帝)의 딸이라 속여서, 오손(烏孫)의 늙은 왕에게 시집보낸 것입니다. (무제(武帝)의 딸도 아닌데 딸이라고? 그때는 다들 속여도 괜찮았나 봅니다.)

세군(細君)은 이국 땅에 시집가게 되었지만, 이를 통해 한()나라와 오손(烏孫)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고, **흉노(匈奴)**는 두 나라의 협공을 견디다 못해 서역(西域)에서 더욱 북방으로 쫓겨나게 됩니다. 그 결과, 서역(西域)50여 개국이 한나라를 **상국(上國)**으로 섬기게 되죠. ()나라는 이를 발판으로 구자(龜玆, 쿠차)에 서역 도호부(西域都護府)라는 관리 기관을 세워 서역(西域)을 더욱 단단히 장악합니다. 성공적인 외교와 군사 전략이었죠.

하지만, 세군(細君)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그녀는 외교의 일등공신(一等功臣)으로 큰 역할을 했지만, 이역만리(異域萬里)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오손(烏孫)에서 망향(望鄕)의 노래를 부르며 쓸쓸하게 지냈습니다. "나는 무제(武帝)의 딸도 아닌데 왜 여기 와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죠. 결국 세군(細君)은 젊은 나이에 고향을 그리워하며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세군(細君)의 이야기는 그저 나라를 위한 희생적인 결혼이 아니라, 이국 땅에서 적응하지 못한 외로운 여인의 슬픈 이야기로 남았습니다. 그녀가 그곳에서 부른 노래는 지금까지도 회자(膾炙)되고 있죠. 세군(細君)이 없었더라면 흉노(匈奴)를 막고 서역(西域)을 장악하는 일이 이렇게 쉽게 이루어지진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세군(細君)의 외로움 속에서 한()나라의 승리가 빛난 셈이죠.

그래서 이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정치적 결혼은 성공할 수 있어도, 개인의 행복은 장담할 수 없다"는 교훈을 주기도 합니다. 오늘날로 치면, 세군(細君)은 외국으로 시집가서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국제 결혼의 선구자(先驅者)쯤 될까요? 😅

728x90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