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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현서당지 제662호 접접자희(沾沾自喜)

진현서당 주간지

by 진현서당 2024. 9. 18.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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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망스럽게 스스로 즐거워하다'라는 뜻으로, 우쭐거리며 뽐내는 모습을 비유한다.

 

경망할 접
경망할 접
스스로 자
기쁠 희

 

이 이야기는 한()나라 경제(景帝) 시절의 인물인 두영(竇嬰)을 중심으로 한 고사입니다. 두영(竇嬰)은 두태후(竇太后)의 조카로, 경제(景帝) 초기에 첨사(詹事)의 직책을 맡고 있었습니다. 두태후(竇太后)는 두 아들 경제(景帝)와 양왕(梁王)을 두었는데, 어느 날 경제(景帝)가 동생인 양왕(梁王)을 후계자로 삼겠다고 하자 두영(竇嬰)이 반대합니다. 이유는 한()나라의 황위(皇位)는 고조(高祖) 이래 부자(父子) 간에 계승되어 왔다는 점 때문이었죠. 이로 인해 두영(竇嬰)은 두태후(竇太后)의 미움을 사게 되어 병을 핑계로 관직에서 물러났습니다.

하지만 반전은 경제(景帝) 3, (() 7왕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시작됩니다. 경제(景帝)는 두영(竇嬰)을 다시 등용하려 했고, 두영(竇嬰)이 병을 핑계로 거절하자, 황제는 "천하가 위급한데, 황실의 일원인 그대가 사양할 수 있느냐?"며 그를 대장군(大將軍)에 임명합니다. 두영(竇嬰)은 황제로부터 받은 황금 천 근을 집에 두지 않고, 낭하(廊下)에 두어 군리(軍吏)들이 필요한 대로 가져가도록 하는 청렴함을 보였습니다. 결국 7왕의 난을 평정한 공로로 위기후(魏其侯)에 봉해졌고, 유사(游士)와 빈객들이 그를 찾아와 몰려들었습니다.

또한, 두영(竇嬰)은 경제(景帝)가 율()을 태자로 책봉할 때 태자부(太子傅)로 임명되었지만, ()이 태자에서 폐위되자 불가함을 간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몇 달 동안 칩거하다가 친구 고수(高遂)가 황제의 노여움을 사면 처자식까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충고하자 다시 관직에 복귀합니다.

얼마 후 재상이 공석이 되었을 때, 두태후(竇太后)는 두영(竇嬰)을 재상으로 추천했으나 경제(景帝)는 그를 임명하지 않습니다. 경제(景帝)는 두영(竇嬰)이 스스로 즐거워하며 자만심에 빠졌고, 생각이 자주 바뀌어 중요한 직책을 맡기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여기서 나온 고사성어가 바로 접접자희(沾沾自喜)입니다. 이는 스스로 득의하여 만족하며 우쭐대는 모습을 의미하는 성어로, 두영(竇嬰)의 이러한 모습을 빗대어 사용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사기(史記)》 〈위기무안후열전(魏其武安侯列傳)에 실려 있으며, 접접자희(沾沾自喜)는 오늘날에도 자만하거나 경솔하게 기뻐하는 사람을 풍자하는 데 자주 사용됩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성공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고, 항상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두영(竇嬰)처럼 접접자희(沾沾自喜)하다가 재상 자리도 놓칠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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