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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회 큰 별이 떨어지며 한나라 승상은 하늘로 돌아가고, 나무 인형을 보며 위나라 도독은 간담이 떨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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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一百四回

隕大星漢丞相歸天 見木像魏都督喪膽三國志演義

 

104

큰 별이 떨어지며 한나라 승상은 하늘로 돌아가고, 나무 인형을 보며 위나라 도독은 간담이 떨어지다.

 

卻說薑維見魏延踏滅了燈心中忿怒拔劍欲殺之孔明止之曰此吾命當絕非文長之過也維乃收劍孔明吐血數口臥倒床上謂魏延曰此是司馬懿料吾有病故令人來探視虛實汝可急出迎敵魏延領命出帳上馬引兵殺出寨來夏侯霸見了魏延慌忙引軍退走延追趕二十餘裏方回孔明令魏延自回本寨把守

 

각설, 강유는 위연이 등불을 밟아서 꺼트리자, 마음속으로 분노해서 검을 뽑아 죽이려 했다. 공명이 막으며 말하기를,

 

내 목숨이 끊어질 운명이지, 문장(위연)의 잘못이 아니오.”

 

했다. 이에 강유가 검을 거두었다. 공명이 피를 수차례 토하더니, 침대 위에 쓰러져 누워서 위연에게 말하기를,

 

이것은 사마의가 내게 병이 있는 줄 알고, 사람들을 시켜 허실을 캐어보려 온 것이오. 그대는 어서 나가서 대적하시오.”

 

하니, 위연이 명령을 받고, 장막을 나가 말에 올라 군사를 이끌고 영채 밖으로 달려갔다. 하후패가 위연을 보고, 황망히 군사를 이끌고 퇴각했다. 위연이 20여 리를 추격하고서야 돌아왔다. 공명이 위연에게 본진으로 돌아와 경비하라고 했다.

 

薑維入帳直至孔明榻前問安孔明曰吾本欲竭忠盡力恢複中原重興漢室奈天意如此吾旦夕將死吾平生所學已著書二十四篇計十萬四千一百一十二字內有八務七戒六恐五懼之法吾遍觀諸將無人可授獨汝可傳我書切勿輕忽維哭拜而受孔明又曰吾有連弩之法不曾用得其法矢長八寸一弩可發十矢皆畫成圖本汝可依法造用維亦拜受孔明又曰蜀中諸道皆不必多憂惟陰平之地切須仔細此地雖險峻久必有失又喚馬岱入帳附耳低言授以密計囑曰我死之後汝可依計行之岱領計而出

 

강유가 군막으로 들어가, 공명의 침상 앞으로 바로 가서 문안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내가 본래 충성을 바치고 힘을 다하여, 중원을 회복하고, 한나라 황실을 중흥하려 했소. 그러나 하늘의 뜻이 이와 같으니, 내가 곧 죽을 것이오. 내가 평생에 배운 것을 이미 24편의 책에 104112자로 저술했는데, 그 안에 여덟 가지 필요 사항, 일곱 가지 주의 사항, 여섯 가지 공포, 다섯 가지 두려움을 포함했소. 내가 여러 장수를 두루 살폈지만, 아무도 이 책을 줄 만한 사람이 없고, 오로지 그대에게만 내 책을 전할 수 있겠소. 절대 소홀히 하지 마시오!”

 

하니, 강유가 소리내어 울며 절을 올리고 받았다. 공명이 다시 말하기를,

 

나에게연노법(연발 쇠뇌 사용법)'이 있지만 아직 사용하지 못했소. 그 연노법에서 화살 길이는 8촌이고 연노 하나로 화살 열 개를 쏘는데, 모든 설계도를 완성했소. 그대가 그 법에 따라 만들어 쓰시오.”

 

했다. 강유가 역시 절을 올리고 받았다. 공명이 다시 말하기를,

 

촉나라 안의 여러 도로는 모두 크게 걱정할 것이 없소. 오로지 음평 땅을 반드시 자세히 살펴야 하니, 이 땅은 비록 험준하지만, 먼 훗날 틀림없이 위험이 닥칠 것이오.”

 

했다. 다시 마대를 군막 안으로 불러 귓속말로 비밀 계책을 전하며, 부탁하기를,

 

내가 죽은 뒤에 이 계책을 실행하시오.”

 

했다, 마대가 계책을 받고 나갔다.

 

少頃楊儀入孔明喚至榻前授與一錦囊密囑曰我死魏延必反待其反時汝與臨陣方開此囊那時自有斬魏延之人也孔明一一調度已畢便昏然而倒至晚方蘇便連夜表奏後主後主聞奏大驚急命尚書李福星夜至軍中問安兼詢後事李福領命趲程赴五丈原入見孔明傳後主之命問安畢孔明流涕曰吾不幸中道喪亡虛廢國家大事得罪於天下我死後公等宜竭忠輔主國家舊制不可改易吾所用之人亦不可輕廢吾兵法皆授與薑維他自能繼吾之志爲國家出力吾命已在旦夕當即有遺表上奏天子也李福領了言語匆匆辭去

 

잠시 뒤, 양의가 들어왔다. 공명이 침상 앞까지 불러서, 비단 주머니 하나를 주며, 은밀히 부탁하기를,

 

내가 죽으면 위연이 틀림없이 반역할 것이오. 반란이 일어나기를 기다려서, 그대가 출진하며 이 주머니를 열어보시오. 그때 위연을 벨 사람이 저절로 나타날 것이오.”

 

했다. 공명이 하나하나 지시를 마치더니, 곧 혼절해 쓰러져 저녁이 돼서야 깨어나, 그날 밤에 후주에게 표를 올려 아뢰었다. 후주가 표를 듣고 크게 놀라, 급히 상서 이복에게 한밤중에 군중으로 가서 문안하고 아울러 뒷일을 묻게 했다. 이복이 어명을 받고 길을 재촉해서 오장원으로 가서 공명을 만나러 들어가 후주의 명을 전하고 문안을 마쳤다. 공명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내가 불행히 중도에 죽게 되어 국가 대사를 저버리니, 천하에 죄를 짓는 것이오. 내가 죽은 후에 공들께서 마땅히 충성을 다해 주상을 보필하시고 국가의 옛 제도는 변경하지 마시오. 내가 등용한 사람들도 함부로 폐하지 마시오. 내 병법은 모두 강유에게 전수하니, 그는 스스로 능히 내 뜻을 이어, 국가를 위해 힘을 다할 것이오. 내 목숨이 이미 아침저녁에 있으니, 즉시 표를 올려 천자께 아뢰어야겠소.”

 

했다. 이복이 그 말을 받들어, 총총히 작별하고 떠났다.

 

孔明強支病體令左右扶上小車出寨遍觀各營自覺秋風吹面徹骨生寒乃長歎曰再不能臨陣討賊矣悠悠蒼天曷此其極歎息良久回到帳中病轉沉重乃喚楊儀分付曰王平廖化張嶷張翼吳懿等皆忠義之士久經戰陣多負勤勞堪可委用我死之後凡事俱依舊法而行緩緩退兵不可急驟汝深通謀略不必多囑薑伯約智勇足備可以斷後楊儀泣拜受命孔明令取文房四寶於臥榻上手書遺表以達後主

 

공명이 병든 몸을 억지로 버티어, 좌우 사람들에게 그를 작은 수레로 부축해 태우게 하더니, 영채를 나가서 각각의 영채를 두루 살폈다. 가을바람이 얼굴에 불어와서 뼛속까지 한기가 느껴지자, 길게 탄식하기를,

 

다시는 전장에서 역적을 토벌하지 못하겠구나! 유유한 푸른 하늘아, 언제나 이것이 끝나겠는가!”

 

하고, 한참을 탄식하다가 군막 안으로 돌아오니, 병세가 더욱 위중해져서, 양의를 불러 분부하기를,

 

왕평, 요화, 장의, 장익, 오의 들은 모두 충의지사(忠義之士)로서, 오랫동안 전쟁을 경험하고, 부지런히 많은 일을 했으니, 믿고 쓸 수 있소. 내가 죽은 뒤 무릇 모든 일은 옛 법에 따라 행하시오. 천천히 군사를 물려야지, 급하게 서두르지 마시오. 그대는 모략에 통달하니, 많은 것을 부탁할 필요는 없겠소. 강백약(강유)은 지혜와 용기를 족히 갖추어, 능히 후방의 엄호를 할 수 있을 것이오.”

 

했다. 양의가 눈물 흘리며 절을 올리고 명령을 받았다. 공명이 문방사보(文房四寶 종이 붓 먹 벼루)를 가져오게 하여, 침대 위에서 표를 써서 후주에게 전하게 했다.

 

表略曰伏聞生死有常難逃定數死之將至願盡愚忠臣亮賦性愚拙遭時艱難分符擁節專掌鈞衡興師北伐未獲成功何期病入膏肓命垂旦夕不及終事陛下飲恨無窮伏願陛下清心寡欲約己愛民達孝道於先皇布仁恩於宇下提拔幽隱以進賢良屏斥奸邪以厚風俗臣家成都有桑八百株薄田十五頃子弟衣食自有餘饒至於臣在外任別無調度隨身衣食悉仰於官不別治生以長尺寸臣死之日不使內有餘帛外有贏財以負陛下也

 

표에 대략 이르기를,

 

제가 듣기에, 죽고 사는 것은 정해져 있으니, 정해진 운수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저의 죽음이 곧 닥쳐올 것이니, 바라옵건대 저의 충정을 다할까 합니다. 신 제갈량은 천성이 어리석고 못났는데, 어려운 시대를 만나 벼슬을 받아 부절을 쥐고, 국가의 중책을 장악해서 군사를 일으켜 북쪽을 정벌하려 했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찌 질병이 고황까지 들어가 목숨이 단석에 있을 줄 알았겠습니까? 폐하를 끝까지 모시지 못하게 됐으니 한을 머금음이 무궁합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마음을 맑게 하고 욕심을 적게 하시며,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백성을 사랑하십시오. 선황(유현덕)께 효도를 다하시고 나라 안 사람들에게 인애와 은덕을 베푸십시오. 숨은 선비를 선발하여 어질고 재능이 있는 이들을 등용하십시오. 간사한 무리를 제거하여 풍속을 순후하게 하십시오. 신의 집이 성도에 있사온데, 뽕나무 8백 그루와 거친 밭 15경이 있어, 자제가 입고 먹는 것은 넉넉합니다. 신이 외지에서 근무하게 되어, 따로 가져오는 것 없이, 제 신변의 옷과 음식은 모두 관청에 의뢰하였으나 따로 생계에 한 치도 보태지 않았습니다. 신이 죽는 날에 안으로 남긴 비단이나 밖으로 남은 재산이 있어 폐하의 신의를 저버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했다.

 

孔明寫畢又囑楊儀曰吾死之後不可發喪可作一大龕將吾屍坐於龕中以米七粒放吾口內腳下用明燈一盞軍中安靜如常切勿舉哀則將星不墜吾陰魂更自起鎮之司馬懿見將星不墜必然驚疑吾軍可令後寨先行然後一營一營緩緩而退若司馬懿來追汝可布成陣勢回旗返鼓等他來到卻將我先時所雕木像安於車上推出軍前令大小將士分列左右懿見之必驚走矣楊儀一一領諾是夜孔明令人扶出仰觀北鬥遙指一星曰此吾之將星也

 

공명이 쓰기를 마치고, 다시 양의에게 당부하기를,

 

내가 죽은 뒤 발상(초상을 알림)하지 마시오. 큰 장을 하나 만들어, 내 시신을 그 속에 앉히시오. 쌀 일곱 알을 내 입 안에 넣고, 다리 아래에 밝은 등잔을 하나 켜시오. 군중에서 평소와 같이 안정하고, 절대 거애(통곡하며 슬퍼함)하지 마시오. 그러면 내 장성(대장의 별자리)이 떨어지지 않소. 나의 혼령이 다시 일어나 진정시킬 것이오. 사마의는 장성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틀림없이 놀라고 의심할 것이오. 아군에게 명을 내려, 뒤쪽 영채부터 먼저 가게 하고, 그 뒤에 영채 하나하나 천천히 퇴각하시오. 사마의가 뒤쫓으면 그대가 전투 대형을 갖추어 군사를 돌려 반격하시오. 그가 오기를 기다려서, 내가 미리 깎아둔 목상을 수레 위에 앉혀 군사들 앞으로 끌고 나오고, 지위가 높고 낮은 여러 장졸에게 그 좌우로 나눠 서게 하시오. 사마의가 이를 보고 틀림없이 놀라서 달아날 것이오.”

 

했다. 양의가 모두 따르겠다고 했다. 이날 밤 공명이 사람들의 부축을 받고 나와서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우러러보더니, 멀리 별 하나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저것이 나의 장성이오.”

 

했다.

 

衆視之見其色昏暗搖搖欲墜孔明以劍指之口中念咒咒畢急回帳時不省人事衆將正慌亂間忽尚書李福又至見孔明昏絕口不能言乃大哭曰我誤國家之大事也須臾孔明複醒開目遍視見李福立於榻前孔明曰吾已知公複來之意福謝曰福奉天子命問丞相百年後誰可任大事者適因匆遽失於諮請故複來耳孔明曰吾死之後可任大事者蔣公琰其宜也福曰公琰之後誰可繼之孔明曰費文偉可繼之福又問文偉之後誰當繼者孔明不答衆將近前視之已薨矣時建興十二年秋八月二十三日也壽五十四歲

 

여러 사람이 바라보니 그 별의 빛이 흐려지고 흔들흔들하며 떨어지려 했다. 공명이 검으로 가리키며 입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주문을 마치고 급히 군막으로 돌아가지만 의식을 잃었다. 여러 장수가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데, 홀연 상서 이복이 다시 왔다. 이복이 공명이 혼절한 것을 보고 아무 말도 못하다가 크게 소리내어 울며 말하기를,

 

내가 국가의 대사를 그르쳤구나!”

 

했다. 잠시 뒤 공명이 다시 깨어나 눈을 뜨고 둘러보더니, 침대 앞에 서 있는 이복을 보았다. 공명이 말하기를,

 

내가 이미 공께서 다시 온 이유를 알고 있소.”

 

하니, 이복이 고마워하며 말하기를,

 

제가 천자의 명을 받들고, 승상께서 돌아가신 후에 누가 국가의 대사를 맡아야 하는지 묻고자 했습니다. 제가 바삐 서두는 바람에, 승상께 여쭈어보는 것을 잊었기에, 그래서 다시 왔습니다.”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내가 죽은 뒤에 대사를 맡을 만한 이는 장공염(장완)이 마땅하오.”

 

했다. 이복이 말하기를,

 

공염(장완)의 뒤에는 누가 계승해야 합니까?”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비문위(비위)가 이을 수 있을 것이오.”

 

했다. 이복이 또 묻기를,

 

문위(비위)의 뒤에는 누가 마땅히 이어야 합니까?”

 

하니, 공명이 대답하지 않았다. 여러 장수가 가까이 가서 보니, 이미 훙서(고귀한 이가 죽음)했다. 이때가 건흥 12년 가을 823일이었고, 그의 나이 54세였다.

 

後杜工部有詩歎曰

 

長星昨夜墜前營訃報先生此日傾

虎帳不聞施號令麟台惟顯著勳名

空餘門下三千客辜負胸中十萬兵

好看綠陰清晝裏於今無複雅歌聲

 

뒷날 두공부(두보)가 시를 지어 탄식하기를,

 

큰 별이 어젯밤 앞 군영에 떨어져서, 선생께서 이날 돌아가심을 알리네.

군막에서 내리던 호령 들리지 않으니, 기린대에 누가 다시 공훈의 이름을 떨치리오.

문하에 3천 명 손님을 공허하게 남겨놓고, 흉중의 십만 대군 같은 지략을 쓰지 못하네.

푸른 수풀 그늘지고 맑은 낮은 아름답건만, 이제 다시는 그 맑은 노래 들을 수 없구나!”

 

했다.

 

白樂天亦有詩曰

 

先生晦跡臥山林三顧那逢聖主尋

魚到南陽方得水龍飛天漢便爲霖

托孤既盡殷勤禮報國還傾忠義心

前後出師遺表在令人一覽淚沾襟

 

백낙천도 시를 짓기를,

 

선생이 행적을 숨기고 산림에 누웠으나, 성군이 삼고초려하며 찾았구나.

물고기가 남양 땅에서 물을 얻고, 용이 은하수로 날아올라 비를 뿌렸네.

고아를 맡기며 두터운 예를 다하니, 나라에 보답하며 충성을 바쳤구나.

군사를 일으키며 전후 출사표를 남기니, 읽는 사람마다 눈물로 소매 적시게 하네.”

 

했다.

 

蜀長水校尉廖立自謂才名宜爲孔明之副嘗以職位閑散怏怏不平怨謗無已於是孔明廢之爲庶人徒之汶山及聞孔明亡乃垂泣曰吾終爲左衽矣李嚴聞之亦大哭病死蓋嚴嘗望孔明複收己得自補前過度孔明死後人不能用之故也

 

처음에, 촉나라 장수(長水) 땅의 교위 요립이 스스로 재주와 명성이 공명에 버금간다고 일컬었는데, 일찍이 그 직위가 보잘것없었으므로 불만을 품고 불평하며 원망하고 비방해 마지않았다. 이에 공명이 그를 폐하여 평민으로 만들어 문산에 귀양 보냈다. 그런데 공명의 죽었다는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나는 끝내 변방에서 살게 되었구나!”

 

했다. 이엄도 공명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크게 소리내어 울더니 병이 들어 죽었다. 대개 이엄은 일찍이 공명이 자신을 다시 거둬들여서 지난날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기를 원했지만, 공명이 죽은 뒤에는 다른 사람들이 그를 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後元微之有贊孔明詩曰

 

撥亂扶危主殷勤受托孤

英才過管樂妙策勝孫吳

凜凜出師表》,堂堂八陣圖

如公全盛德應歎古今無

 

후세에 원미지(元禛)가 공명을 찬양하는 시를 지어 이르기를,

 

반란을 평정해서 위기의 군주를 구하고, 충성을 다해 탁고(고아를 맡음)의 중책을 받았네.

뛰어난 재주는 관중과 악의를 넘어서고, 절묘한 계책은 손자와 오자를 능가하네.

늠름한 출사표! 당당한 팔진도!

공께서 성덕을 갖추었으니, 고금에 다시 없음을 한탄하노라!”

 

했다.

 

是夜天愁地慘月色無光孔明奄然歸天薑維楊儀遵孔明遺命不敢舉哀依法成殮安置龕中令心腹將卒三百人守護隨傳密令使魏延斷後各處營寨一一退去

 

이날 밤, 하늘과 땅도 슬퍼하고, 달빛도 빛나지 않는데, 공명이 갑작스럽게 하늘로 돌아갔다. 강유와 양의가 공명의 유명을 지켜서, 곡하여 애도하지 않고, 법도에 따라 염을 하고, 장 안에 안치해서, 심복 장졸 3백 인에게 명하여 수호하게 했다. 이어서 비밀 명령을 전하여, 위연에게 후미를 엄호하게 하고, 곳곳의 영채에서 하나하나 퇴각했다.

 

卻說司馬懿夜觀天文見一大星赤色光芒有角自東北方流於西南方墜於蜀營內三投再起隱隱有聲懿驚喜曰孔明死矣即傳令起大兵追之方出寨門忽又疑慮曰孔明善會六丁六甲之法今見我久不出戰故以此術詐死誘我出耳今若追之必中其計遂複勒馬回寨不出只令夏侯霸暗引數十騎往五丈原山僻哨探消息

 

한편, 사마의가 밤에 천문을 살펴보니, 큰 별 하나가 붉은색을 띠고 날카로운 빛을 뿜으며,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흘러서, 촉나라 영채 안으로 떨어졌는데, 세 차례에 걸쳐 튀어오르고 은은하게 소리가 들렸다. 사마의가 기뻐하며 말하기를,

 

공명이 죽었구나!”

 

하고, 즉시 명령을 내려, 대군을 일으켜 뒤쫓았다. 영채 문을 나오는데, 문득 다시 의심이 들어 말하기를,

 

공명은 육정육갑(六丁六甲 둔갑술의 신장)의 술법에 능한데, 이제 내가 오래도록 출전하지 않자, 이러한 술법으로 죽은 척해서, 나를 유인해 끌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지금 뒤쫓는다면 틀림없이 그 계략에 빠질 것이다.”

 

하고, 곧 다시 말고삐를 당겨 영채로 돌아가 나오지 않으며, 다만 하후패에게 몰래 수십 기를 이끌고 오장원의 외진 산속에 가서 소식을 정탐하게 했다.

 

卻說魏延在本寨中夜作一夢夢見頭上忽生二角醒來甚是疑異次日行軍司馬趙直至延請入問曰久知足下深明吾夜夢頭生二角不知主何吉凶煩足下爲我決之趙直想了半晌答曰此大吉之兆麒麟頭上有角蒼龍頭上有角乃變化飛騰之象也延大喜曰如應公言當有重謝直辭去行不數裏正遇尚書費禕禕問何來直曰適至魏文長營中文長夢頭生角令我決其吉凶此本非吉兆但恐直言見怪因以麒麟蒼龍解之禕曰足下何以知非吉兆直曰角之字形今頭上用刀其凶甚矣

 

한편, 위연은 자신의 영채에서 밤에 꿈을 하나 꾸었는데, 꿈속에서 머리에 갑자기 뿔이 두 개 생기는지라, 깨어난 뒤 몹시 괴이하게 여겼다. 다음 날, 행군사마 조직이 오자, 위연이 불러들여 묻기를,

 

족하께서 <주역>의 이치를 잘 아신다고 들은 지 오래요. 내가 밤에 꿈을 꾸었는데 머리에 뿔이 두 개 생겼으니, 무슨 길흉의 징조인지 모르겠소. 수고롭겠지만 족하께서 나를 위해 판단해주시오.”

 

하니, 조직이 한참 생각하다가 답하기를,

 

이것은 크게 길할 징조입니다. 기린의 머리에 뿔이 있고, 창룡(청룡)의 머리에 뿔이 있으니, 이는 곧 변화하여 날아오를 형상입니다.”

 

했다. 위연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공의 말씀대로 된다면 당연히 크게 사례하겠소!”

 

했다. 조직이 작별하고 몇 리를 못 가서, 상서 비위를 만났다. 비위가 어디서 오는 길인지 묻자 조직이 말하기를,

 

마침 위문장(위연)의 영채에 갔다가, 문장이 꿈속에서 머리에 뿔이 생겼다며, 제게 그 길흉을 판단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본래 길조가 아니지만 바른말을 했다가 원망을 살까 봐서, 기린과 창룡으로 예를 들어 해몽했습니다.”

 

했다. 비위가 말하기를,

 

족하는 어떻게 길조가 아닌지 아시오?”

 

하니, 조직이 말하기를,

 

뿔 각자의 모양이 칼 도 아래에 쓸 용이 있습니다. 이제 머리 위에 칼을 사용하니, 몹시 흉합니다!”

 

했다.

 

禕曰君且勿泄漏直別去費禕至魏延寨中屏退左右昨夜三更丞相已辭世矣臨終再三囑付令將軍斷後以當司馬懿緩緩而退不可發喪今兵符在此便可起兵延曰何人代理丞相之大事禕曰丞相一應大事盡托與楊儀用兵密法皆授與薑伯約此兵符乃楊儀之令也

 

비위가 말하기를,

 

그대도 또한 누설하지 마시오.”

 

하니, 조직이 떠났다. 비위가 위연의 영채로 가서 좌우의 사람들을 물리친 뒤 말하기를,

 

어젯밤 3(자정쯤)에 승상께서 별세하셨습니다. 임종하시며 거듭 부탁하시기를, 장군으로 하여금 후미를 엄호해 사마의를 막고, 천천히 퇴각하며, 초상을 알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병부(군사지휘권 증표)가 여기 있으니, 어서 군사를 일으키시오.”

 

했다. 위연이 말하기를,

 

누가 승상의 대사를 대리하오?”

 

하니, 비위가 말하기를,

 

승상께서 일체의 대사를 모두 양의에게 맡기셨소. 용병과 비법은 모두 강백약(강유)에게 전수하셨소. 이 병부는 곧 양의의 명령이오.”

 

했다.

 

延曰丞相雖亡吾今現在楊儀不過一長史安能當此大任他只宜扶柩入川安葬我自率大兵攻司馬懿務要成功豈可因丞相一人而廢國家大事耶禕曰丞相遺令教且暫退不可有違延怒曰丞相當時若依我計取長安久矣吾今官任前將軍征西大將軍南鄭侯安肯與長史斷後禕曰將軍之言雖是然不可輕動令敵人恥笑待吾往見楊儀以利害說之令彼將兵權讓與將軍何如延依其言

 

위연이 말하기를,

 

승상께서 비록 돌아가셨지만, 나는 지금 이곳에 있소. 양의는 일개 장사(비서장)에 불과하거늘 어찌 이런 대임을 맡겠소? 그는 서천까지 운구하여 안장하면 되는 것이오. 내가 직접 대군을 이끌고 사마의를 공격해서, 공을 세우고야 말겠소. 어찌 승상 한 사람 때문에 국가 대사를 폐하겠소?”

 

했다. 비위가 말하기를,

 

승상께서 군령을 남기며, 잠시 물러나라 지시하셨으니, 어겨선 안 되오.”

 

하니, 위연이 노하여 말하기를,

 

승상이 그때 내 계책을 따랐다면 장안을 오래전에 점령했을 것이오! 내가 지금 관직이 전장군, 정서대장군, 남정후이거늘 어찌 장사 따위의 후미를 지키는 일이나 하겠소!”

 

했다. 비위가 말하기를,

 

장군의 말씀이 비록 맞다고 하더라도, 함부로 움직여서 적들의 비웃음을 사서는 안 되오. 내가 양의를 찾아가 이해득실(利害得失)로써 설득해서, 그로 하여금 병권을 장군에게 양도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소?”

 

하니, 위연이 그 말을 따랐다.

 

禕辭延出營急到大寨見楊儀具述魏延之語儀曰丞相臨終曾密囑我曰魏延必有異志今我以兵符往實欲探其心耳今果應丞相之言吾自令伯約斷後可也於是楊儀領兵扶柩先行令薑維斷後依孔明遺令徐徐而退魏延在寨中不見費禕來回覆心中疑惑乃令馬岱引十數騎往探消息回報曰後軍乃薑維總督前軍大半退入穀中去了延大怒曰豎儒安敢欺我我必殺之因顧謂岱曰公肯相助否岱曰某亦素恨楊儀今願助將軍攻之延大喜即拔寨引本部兵望南而行

 

비위가 위연을 작별하고 영채를 나와, 서둘러 본진으로 가서 양의를 만나 위연의 말을 낱낱이 전했다. 양의가 말하기를,

 

승상께서 임종하시며, 일찍이 비밀리에 저에게, 위연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고 하셨소. 이제 병부를 그에게 가져가게 한 것은, 실은 그 마음을 떠보기 위해서였소. 이제 과연 승상의 말씀대로요. 내가 직접 백약(강유)에게 명하여 후미를 엄호하게 하겠소.”

 

했다. 이에 양의가 군사를 거느리고 운구하며 앞서가고, 강유에게 후미를 엄호하라고 했다. 공명의 남긴 명령에 따라 서서히 퇴각했다. 위연이 영채 안에 있다가, 비위가 다시 오지 않자 마음속에 의혹이 일어, 마대에게 명하여, 십수 기를 이끌고 소식을 정탐하게 했다. 마대가 돌아와 보고하기를,

 

후군은 강유가 총독하고, 전군은 태반이 골짜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니, 위연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유생 놈이 어찌 감히 나를 속이느냐! 내가 그를 죽이고야 말겠다!”

 

하고, 이에 고개를 돌려 마대에게 말하기를,

 

공께서 나를 도와주지 않겠소?”

 

하니, 마대가 말하기를,

 

저도 평소 양의에게 원한을 품어서, 이제 장군을 도와 그를 치겠습니다.”

 

했다. 위연이 크게 기뻐하며, 영채를 거둬 휘하 병력을 이끌고 남쪽으로 갔다.

 

卻說夏侯霸引軍至五丈原看時不見一人急回報司馬懿曰蜀兵已盡退矣懿跌足曰孔明真死矣可速追之夏侯霸曰都督不可輕追當令偏將先往懿曰此番須吾自行遂引兵同二子一齊殺奔五丈原來呐喊搖旗殺入蜀寨時果無一人懿顧二子曰汝急催兵趕來吾先引軍前進

 

한편, 하후패가 군사를 이끌고 오장원으로 가서 살피니,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아, 급히 사마의에게 돌아가 보고하기를,

 

촉나라 군사가 이미 모조리 물러갔습니다.”

 

하니, 사마의가 발을 구르며 말하기를,

 

공명이 정말 죽었구나! 어서 추격하라!”

 

했다. 하후패가 말하기를,

 

도독께서 함부로 추격하지 마십시오. 마땅히 하급 장수에게 명하여 먼저 가게 하십시오.”

 

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이번에는 반드시 내가 직접 가야겠소.”

 

했다. 곧 군사를 이끌고 두 아들을 데리고 일제히 오장원으로 달려갔다. 함성을 지르고 깃발을 흔들며 촉나라 영채 안으로 뛰어드는데 과연 한 사람도 없었다. 사마의가 두 아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너희들은 군사들을 재촉해서 뒤따라오게 해라. 나는 먼저 군사를 이끌고 전진하겠다.”

 

했다.

 

於是司馬師司馬昭在後催軍懿自引軍當先追到山腳下望見蜀兵不遠乃奮力追趕忽然山後一聲炮響喊聲大震只見蜀兵俱回旗返鼓樹影中飄出中軍大旗上書一行大字曰漢丞相武鄉侯諸葛亮懿大驚失色定睛看時只見中軍數十員上將擁出一輛四輪車來車上端坐孔明綸巾羽扇鶴氅皂絛懿大驚曰孔明尚在吾輕入重地墮其計矣

 

이에 사마사와 사마소가 뒤에서 군사들을 재촉했다. 사마의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앞장서서 산기슭 아래까지 추격하여 다다르니, 촉나라 군사가 멀지 않은 거리에 보이므로 힘을 내어 쫓아갔다. 갑자기 산 뒤에서 한 차례 포성이 울리고 함성이 크게 진동하며 촉나라 군사가 모두 깃발을 돌려세우고 북을 두드렸다. 나무 그늘 속에서 중군의 큰 깃발이 펄럭이며 나오고, 그 위에 한 줄 큰 글자로한나라 승상 무향후 제갈량'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마의가 크게 놀라 얼굴빛을 잃었다. 뚫어져라 쳐다보니, 중군에서 수십 명의 상장이 사륜거 한 대를 호위해서 나왔다. 사륜거 위에 공명이 단정히 앉아 있었다. 윤건을 쓰고 깃털부채를 흔들며, 학창의를 입고 검은 띠를 띠었다. 사마의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공명이 아직 살아 있었구나! 내가 함부로 엄중한 지역에 들어와서 그 계략에 빠졌구나!”

 

했다.

 

急勒回馬便走背後薑維大叫賊將休走你中了我丞相之計也魏兵魂飛魄散棄甲丟盔拋戈撇戟各逃性命自相踐踏死者無數司馬懿奔走了五十餘裏背後兩員魏將趕上扯住馬嚼環叫曰都督勿驚懿用手摸頭曰我有頭否二將曰都督休怕蜀兵去遠了懿喘息半晌神色方定睜目視之乃夏侯霸夏侯惠也乃徐徐按轡與二將尋小路奔歸本寨使衆將引兵四散哨探

 

급히 말고삐를 당겨서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배후에서 강유가 크게 외치기를,

 

적장은 달아나지 말라! 너는 우리 승상의 계책에 걸려들었구나!”

 

했다. 위나라 군사들이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갑옷과 투구를 내버리고, 무기를 내던지고, 제각기 목숨을 구하고자 달아나다가 서로 짓밟아 죽은 이가 무수했다. 사마의가 50여 리를 달아나니, 배후에서 위나라 장수 두 사람이 쫓아와서 말 굴레를 잡으며 외치기를,

 

도독! 진정하십시오!”

 

했다. 사마의가 손으로 머리를 만지며 말하기를,

 

내 머리가 붙어 있느냐?”

 

하니, 두 장수가 말하기를,

 

도독,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촉나라 군사는 멀리 떠났습니다.”

 

했다. 사마의가 한참 숨을 헐떡이다가 겨우 얼굴빛이 돌아왔다. 눈을 뜨고 바라보니, 바로 하후패와 하후혜였다. 이에 서서히 말고삐를 잡고 두 장수와 더불어 지름길을 찾아 그들의 영채로 달려가서, 여러 장수들에게 군사를 이끌고 사방으로 흩어져 정찰하라고 했다.

 

過了兩日鄉民奔告曰蜀兵退入穀中之時哀聲震地軍中揚起白旗孔明果然死了止留薑維引一千兵斷後前日車上之孔明乃木人也懿歎曰吾能料其生不能料其死也因此蜀中人諺曰死諸葛能走生仲達

 

이틀이 지나, 토착민이 달려와서 고하기를,

 

촉나라 군사가 골짜기로 들어올 때 곡하는 소리가 땅을 뒤흔들었고, 군중에 백기를 내걸었습니다. 공명이 정말 죽었고, 강유를 남겨 군사 1천을 이끌고 후미를 엄호하게 했습니다. 전날 수레 위의 공명은 나무 인형이었습니다.”

 

했다. 사마의가 탄식하기를,

 

나는 그가 살아 있을 때는 그의 계책을 헤아릴 수 있었는데, 그가 죽은 뒤에 도리어 헤아리지 못했구나!”

 

했다. 이 때문에 촉나라 사람들 사이에 죽은 제갈공명이 산 중달을 달아나게 했다.’라는 속담이 생겼다.

 

後人有詩歎曰

 

長星半夜落天樞

奔走還疑亮未殂

關外至今人冷笑

頭顱猶問有和無

 

뒷사람이 시를 지어 찬탄하기를,

 

한밤에 혜성이 북두칠성에서 떨어졌건만,

사마의는 달아나며 제갈량의 죽음을 의심했네.

변방에서 지금도 사람들이 비웃으며,

머리가 아직도 붙어 있냐 없냐고 묻는다네.”

 

했다.

 

司馬懿知孔明死信已確乃複引兵追趕行到赤岸坡見蜀兵已去遠乃引還顧謂衆將曰孔明已死我等皆高枕無憂矣遂班師回一路上見孔明安營下寨之處前後左右整整有法懿歎曰此天下奇才也於是引兵回長安分調衆將各守隘口懿自回洛陽面君去了

 

사마의는 공명이 죽은 것을 확실하게 알자, 다시 군사를 이끌고 뒤쫓았다. 적안파에 이르니 촉나라 군사가 이미 멀리 가버린 것을 보고, 군사를 이끌어 되돌려서 뭇 장수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공명이 이미 죽었으니 우리는 모두 베개를 높이 베고 자더라도 아무 걱정이 없게 됐소이다!”

 

했다. 마침내 군사를 거두어 돌아갔다. 가는 도중에 공명이 영채를 세운 곳을 보니, 전후좌우(前後左右) 모두 정연하게 규격이 있는지라, 사마의가 탄식하기를,

 

참으로 천하의 기재(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로다!”

 

했다. 이에 군사를 이끌고 장안으로 돌아가서 여러 장수를 곳곳에 나누어 배치해서, 각기 요충지를 지키게 했다. 사마의가 직접 낙양으로 돌아가 군주를 만나러 갔다.

 

卻說楊儀薑維排成陣勢緩緩退入棧閣道口然後更衣發喪揚幡舉哀蜀軍皆撞跌而哭至有哭死者蜀兵前隊正回到棧閣道口忽見前面火光沖天喊聲震地一彪軍攔路衆將大驚急報楊儀正是已見魏營諸將去不知蜀地甚兵來

 

한편, 양의와 강유는 전투 대형을 갖춰 천천히 잔도의 입구로 후퇴해 들어갔다. 그런 뒤 옷을 갑아입고 초상을 알리고, 깃발을 내걸고 장례를 거행했다. 촉나라 군사들 모두가 머리를 치고 발을 구르며 통곡하고, 심지어 통곡하다가 죽는 이도 생겼다. 그런데 촉나라 군의 선두 대열이 막 잔도 입구에 다다르자, 갑자기 앞에서 불빛이 하늘을 찌르고 함성이 땅을 뒤흔들며 한 무리 군사가 길을 가로막았다. 여러 장수가 크게 놀라, 급히 양의에게 알렸다. 이야말로, 위나라 진영의 장수들은 떠났는데, 촉나라 땅에 무슨 군사들인지 모르겠네.

 

未知來者是何處軍馬且看下文分解

 

어디에서 오는 군사인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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