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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회 상방곡에서 사마의가 곤경에 빠지고, 오장원에서 제갈공명이 별을 보고 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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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百三回

上方穀司馬受困 五丈原諸葛禳星三國志演義

 

103

상방곡에서 사마의가 곤경에 빠지고, 오장원에서 제갈공명이 별을 보고 기도하다.

 

卻說司馬懿被張翼廖化一陣殺敗匹馬單槍望密林間而走張翼收住後軍廖化當先追趕看看趕上懿著慌繞樹而轉化一刀砍去正砍在樹上及拔出刀時懿已走出林外廖化隨後趕出卻不知去向但見樹林之東落下金盔一個廖化取盔捎在馬上一直望東追趕原來司馬懿把金盔棄於林東卻反向西走去了廖化追了一程不見蹤跡奔出穀口遇見薑維同回寨見孔明張嶷早驅木牛流馬到寨交割已畢獲糧萬餘石廖化獻上金盔錄爲頭功魏延心中不悅口出怨言孔明只做不知

 

각설, 사마의가 장익과 요화에게 한바탕 크게 지고, 홀로 창을 쥐고 말을 몰아 빽빽한 숲을 향해 달아났다. 장익이 후속 부대를 거두고, 요화가 앞장서서 뒤쫓았다. 점점 따라붙자, 사마의가 황급히 나무 둘레를 따라서 돌았다. 요화가 단칼로 베었으나 칼이 나무에 박혀서 칼을 뽑는 사이에 사마의는 숲 밖으로 달아났다. 요화가 뒤쫓아 나갔지만, 어디로 달아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수풀의 동쪽에 황금 투구 한 개가 떨어져 있었다. 요화가 그 투구를 집어 말 위에 올려놓고, 곧바로 동쪽으로 추적했다. 원래, 사마의가 일부러 (투구를) 숲의 동쪽에 버려두고, 도리어 서쪽으로 달아나버린 것이었다. 요화가 한참을 쫓았으나, 사마의의 종적을 찾을 수 없어, 골짜기 입구로 달려나오다가 강유와 마주쳤다. 함께 영채로 돌아가 공명을 만났다. 장의도 일찌감치 목우유마을 몰고 영채에 도착했다. 노획한 것을 따져보니 식량만 1만 석을 넘었다. 요화가 황금 투구를 바쳐서 으뜸가는 공로로 인정받았다. 위연이 마음속으로 기쁘지 않아서 원망하는 말을 내뱉지만, 공명은 모른 체했다.

 

且說司馬懿逃回寨中心甚惱悶忽使命齎詔至言東吳三路入寇朝廷正議命將抵敵令懿等堅守勿戰懿受命已畢深溝高壘堅守不出卻說曹睿聞孫權分兵三路而來亦起兵三路迎之令劉劭引兵救江夏田豫引兵救襄陽睿自與滿寵率大軍救合淝滿寵先引一軍至巢湖口望見東岸戰船無數旌旗整肅寵入軍中奏魏主曰吳人必輕我遠來未曾提備今夜可乘虛劫其水寨必得全勝魏主曰汝言正合朕意即令驍將張球領五千兵各帶火具從湖口攻之滿寵引兵五千從東岸攻之

 

한편, 사마의는 영채로 도망쳐 돌아오며, 마음속으로 몹시 근심했다. 문득 사자가 천자의 조서를 가지고 왔다고 했다. 사자가 말하기를, 동오가 세 방면으로 침입하여 조정에서 장수들에게 명하여 적병을 막으라고 했다고 하며, 사마의 등에게 굳게 지킬 것이지 싸우러 나가지 말라고 했다. 사마의가 어명을 받은 후에, 해자를 깊게 파고 보루를 높이 쌓아 굳게 지키며 싸우러 나가지 않았다. 한편, 조예는 손권이 병력을 세 방면으로 나눠 침입하자, 역시 병력을 세 방면으로 일으켜 맞이했다. 유소가 군사를 이끌고 강하를 구원하게 하고, 전예가 군사를 이끌고 양양을 구원하게 하며, 조예는 직접 만총과 더불어 대군을 통솔하여 합비를 구원하러 갔다. 만총이 먼저 1군을 이끌고 소호의 어귀에 도착해, 멀리 바라보니 동쪽 강안에 전선들이 무수하고, 각종 깃발이 가지런했다. 만총이 군중으로 들어와 위나라 군주에게 아뢰기를,

 

오나라 사람들은 틀림없이 우리가 멀리 왔다고 방심하여, 아직 준비를 못했을 것이니, 오늘밤 빈틈을 노려 그들의 수군 영채를 공격하면 완전한 승리를 거둘 것입니다.”

 

하니, 위나라 군주가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바로 짐의 뜻과 합치하오.”

 

했다. 즉시 용맹한 장수 장구(張球)에게 군사 5천을 거느리고 각기 불붙일 도구를 휴대하고, 호수 어귀를 따라 공격하게 했다. 만총도 군사 5천을 이끌고 동쪽 강둑을 따라 공격하게 했다.

 

是夜二更時分張球滿寵各引軍悄悄望湖口進發將近水寨一齊呐喊殺入吳兵慌亂不戰而走被魏軍四下舉火燒毀戰船糧草器具不計其數諸葛瑾率敗兵逃走沔口魏兵大勝而回次日哨軍報知陸遜遜集諸將議曰吾當作表申奏主上請撤新城之圍以兵斷魏軍歸路吾率衆攻其前彼首尾不敵一鼓可破也衆服其言陸遜即具表遣一小校密地齎往新城小校領命齎著表文行至渡口不期被魏軍伏路的捉住解赴軍中見魏主曹睿睿搜出陸遜表文覽畢歎曰東吳陸遜真妙算也遂命將吳卒監下令劉劭謹防孫權後兵

 

이날 밤 2(10시쯤) 무렵, 장구와 만총이 각각 군사를 이끌고 조용히 소호 어귀로 출발했다. 수군 영채에 접근해서 일제히 고함지르며 쳐들어갔다. 오나라 군사가 허둥지둥 혼란에 빠져서 싸우지도 않고 달아났다. 위나라 군사가 사방에서 불을 질러서, 전선과 군량과 사료, 각종 기구 등을 불사르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제갈근이 패잔병을 이끌고 면수 어귀로 달아났다. 위나라 군사가 크게 이기고 돌아왔다. 다음날, 정찰병이 육손에게 알리니, 육손이 여러 장수를 소집해서 의논해 말하기를,

 

내가 주상께 표를 올려 청해야겠소. 신성의 포위를 풀어서, 그 군사로 위나라 군의 퇴로를 끊고, 내가 무리를 이끌고 그 전방을 공격하면, 그들은 머리와 꼬리가 모두 맞서지 못할 테니, 북을 한번 울려서 격파할 수 있소.”

 

했다. 뭇 사람이 그 말을 따랐다. 육손이 즉시 표를 써서, 하급 장교 한 사람에게 주어 몰래 신성으로 보냈다. 그 장교가 명령을 받고 표문을 가지고 강나루에 도착했지만, 뜻밖에도 잠복하던 위나라 군사에게 사로잡혀서 위나라 군중으로 압송되어 위나라 군주 조예에게 끌려갔다. 조예가 육손의 표문을 수색하여 꺼내서 읽고 나서, 탄식하기를,

 

동오의 육손은 참으로 신묘한 계책을 가졌구나!”

 

하고, 곧 명령을 내려서 오나라 병졸을 옥에 가두고, 유소에게 손권의 배후 공격을 신중히 방비하라고 했다.

 

卻說諸葛瑾大敗一陣又值暑天人馬多生疾病乃修書一封令人轉達陸遜議欲撤兵還國遜看書畢謂來人曰拜上將軍吾自有主意使者回報諸葛瑾瑾問陸將軍作何舉動使者曰但見陸將軍催督衆人於營外種豆菽自與諸將在轅門射戲瑾大驚親自往陸遜營中與遜相見問曰今曹睿親來兵勢甚盛都督何以禦之

 

한편, 제갈근은 한바탕 크게 지고, 또 마침 여름이라서 인마에게 질병이 많이 발생하자, 서신 1봉을 써서 사람을 시켜 육손에게 전달하여, 군사를 거두어 오나라로 돌아갈 것을 의논했다. 육손이 서신을 읽고 나서, 사자에게 일러 말하기를,

 

장군께 인사를 전하시오. 내게 따로 생각이 있소.”

 

하니, 사자가 돌아가서 제갈근에게 알렸다. 제갈근이 묻기를,

 

육 장군이 어떤 반응을 보였소?”

 

하니, 사자가 말하기를,

 

육 장군은 여러 사람을 재촉해서 영채 밖에 콩을 심게 하고, 스스로 여러 장수와 더불어 영문에서 활쏘기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했다. 제갈근이 크게 놀라, 직접 육손의 영채를 찾아가서 육손을 만나 묻기를,

 

이제 조예가 직접 오니 그 군사력이 아주 강성한데 도독께서 무엇으로 방어할 생각이오?”

 

했다.

 

遜曰吾前遣人奉表於主上不料爲敵人所獲機謀既泄彼必知備與戰無益不如且退已差人奉表約主上緩緩退兵矣瑾曰都督既有此意即宜速退何又遲延遜曰吾軍欲退當徐徐而動今若便退魏人必乘勢追趕此取敗之道也足下宜先督船只詐爲拒敵之意吾悉以人馬向襄陽而進爲疑敵之計然後徐徐退歸江東魏兵自不敢近耳瑾依其計辭遜歸本營整頓船只預備起行陸遜整肅部伍張揚聲勢望襄陽進發

 

육손이 말하기를,

 

제가 예전에 사람을 보내어 주상께 표를 올리려 했으나, 적군에게 붙잡힐 줄은 몰랐소. 기밀이 누설됐으니 저들이 틀림없이 대비할 것이오. 싸워도 이익이 없으니 우선 퇴각하는 것만 못하오. 이미 사람을 주상께 보내어 표를 올려 천천히 군사를 물리기로 했소.”

 

했다. 제갈근이 말하기를,

 

도독께서 이미 그런 뜻을 가졌다면, 조속히 퇴각할 것이지 어찌하여 지연하고 있소?”

 

하니, 육손이 말하기를,

 

아군이 퇴각하더라도 천천히 이동해야 할 것이오. 지금 만약 바로 퇴각하면, 위나라 사람들이 그 틈을 노려 추격할 것이오. 이것은 패전을 부르는 길이오. 족하께서 먼저 전선들을 동원해서, 적군에게 대항하는 척하시오. 나는 군사를 모두 양양으로 진군시켜서, 적군을 현혹하는 계책으로 삼은 뒤에, 천천히 강동으로 돌아가겠소. 그러면 위나라 군사는 자연스럽게 감히 접근하지 못할 것이오.”

 

했다. 제갈근이 그 계책에 따라, 육손에게 고별하고 본영으로 돌아가서, 배들을 정돈하여 출병을 준비했다. 육손이 군대를 정돈하고, 소리와 위세를 떨치며 양양을 향해 출발했다.

 

早有細作報知魏主說吳兵已動須用提防魏將聞之皆要出戰魏主素知陸遜之才諭衆將曰陸遜有謀莫非用誘敵之計不可輕進衆將乃止數日後哨卒報來東吳三路兵馬皆退矣魏主未信再令人探之回報果然盡退魏主曰陸遜用兵不亞孫東南未可平也因敕諸將各守險要自引大軍屯合淝以伺其變

 

재빨리 세작이 위나라 군주에게 보고하며, 오나라 군사가 벌써 움직이니 반드시 방비해야 한다고 했다. 위나라 장수들이 이를 듣고, 모두 출전하려 했다. 위나라 군주가 평소에 육손의 재능을 알아서, 여러 장수에게 이르기를,

 

육손은 지모가 있으니, 적군을 유인하는 계책을 안 쓸 리가 없소. 함부로 진격해서는 안 되오.”

 

하니, 여러 장수가 곧 멈추었다. 며칠 뒤에 정찰병이 와서 보고하기를,

 

동오의 세 방면 군사가 모두 물러갔습니다.”

 

하니, 위나라 군주가 믿지 못하고, 다시 사람을 보내 정탐하게 하니, 그가 돌아와서 오나라 군사가 과연 모두 퇴각했다고 보고했다. 위나라 군주가 탄식하기를,

 

육손의 용병은 손자와 오자에 못지 않으니, 동남을 아직 평정할 수가 없구나.”

 

했다. 그리하여 여러 장수에게 제각각 험한 요충지를 지키라 지시하고, 위나라 군주 스스로 대군을 이끌고 합비에 주둔하여, 형세 변화를 살폈다.

 

卻說孔明在祁山欲爲久駐之計乃令蜀兵與魏民相雜種田軍一分民二分並不侵犯魏民皆安心樂業司馬師入告其父曰蜀兵劫去我許多糧米今又令蜀兵與我民相雜屯田於渭濱以爲久計似此真爲國家大患父親何不與孔明約期大戰一場以決雌雄懿曰吾奉旨堅守不可輕動正議間忽報魏延將著元帥前日所失金盔前來罵戰衆將忿怒俱欲出戰懿笑曰聖人雲小不忍則亂大謀但堅守爲上諸將依令不出魏延辱罵良久方回

 

한편, 공명은 기산에서 오래 주둔할 계책으로 촉나라 군사들에게 위나라 백성들과 함께 뒤섞여 농사를 짓게 했다. 군사들이 3분의 1, 백성이 3분의 2인데다 백성들을 침범하지 않으니, 위나라 백성이 모두 안심하고 생업을 즐겼다. 사마사가 들어와 부친에게 고하기를,

 

촉나라 군사가 우리의 군량미를 허다하게 빼앗아 가고, 지금 또 촉나라 군사와 우리 백성이 뒤섞여 위수 가에서 둔전을 일구어서 장구한 계책으로 삼았습니다. 이렇다면 진실로 국가의 큰 재앙입니다. 부친께서 어찌 공명과 더불어 날을 골라 한바탕 큰 싸움을 벌여, 자웅을 겨루지 않으십니까?”

 

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나는 교지를 받들어 굳게 지키는 것이니,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

 

했다. 이렇게 의논하는 사이에, 보고하기를, 위연이 윈수가 지난 번에 잃어버린 황금 투구를 가져와서 욕을 하며 싸움을 건다고 했다. 여러 장수가 분노하여 출전하려는데 사마의가 웃으며 말하기를,

 

성인께서 이르시길, ‘작은 것을 참지 못하면 큰 일을 그르친다,’하셨소. 굳게 지키는 것만이 상책이오.”

 

했다. 여러 장수가 군령을 따라, 출전하지 않았다. 위연이 한참 욕하고서야 돌아갔다.

 

孔明見司馬懿不肯出戰乃密令馬岱造成木柵營中掘下深塹多積幹柴引火之物周圍山上多用柴草虛搭窩鋪內外皆伏地雷置備停當孔明附耳囑之曰可將葫蘆穀後路塞斷暗伏兵於穀中若司馬懿追到任他入穀便將地雷幹柴一齊放起火來又令軍士晝舉七星號帶於穀口夜設七盞明燈於山上以爲暗號馬岱受計引兵而去孔明又喚魏延分付曰汝可引五百兵去魏寨討戰務要誘司馬懿出戰不可取勝只可詐敗懿必追趕汝卻望七星旗處而入若是夜間則望七盞燈處而走只要引得司馬懿入葫蘆穀內吾自有擒之之計魏延受計引兵而去

 

공명은 사마의가 출전하려는 마음이 없는 것을 보고, 은밀히 마대에게 명하여, 목책을 조성하고 영채 안에 깊이 해자를 파고, 마른 땔나무와 인화물을 쌓게 했다. 주위의 산 위에 많은 땔나무와 풀을 임시 거처처럼 쌓고, 안팎으로 모두 지뢰를 매설하게 했다. 준비를 마치자 공명이 귓속말로 부탁하기를,

 

호로곡의 뒷길을 막고, 복병을 골짜기 안에 두시오. 만약 사마의가 뒤따라오면 골짜기 안으로 들어오도록 놔두었다가, 지뢰와 마른 땔나무를 써서 일제히 불을 붙이시오.”

 

하고, 다시 군사들을 시켜, 낮에는 북두칠성 깃발을 골짜기 입구에서 들고, 밤에는 산 위에 밝은 등잔 일곱 개를 켜서 암호로 삼았다. 마대가 계책을 받고 군사를 이끌고 갔다. 공명이 다시 위연을 불러 분부하기를,

 

그대는 군사 5백을 이끌고 위나라 영채로 가서 싸움을 걸며 사마의의 출전을 유도하시오. 이기려 하지 말고, 다만 지는 척하시오. 사마의가 틀림없이 뒤쫓을 테니 칠성기가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시오. 야간이라면 등불 일곱 개가 보이는 곳으로 달아나시오. 사마의를 호로곡 안으로 유인하기만 하면 그를 잡을 계책이 내게 있소.”

 

했다. 위연이 계책을 받아 군사를 이끌고 떠났다.

 

孔明又喚高翔分付曰汝將木牛流馬或二三十爲一群或四五十爲一群各裝米糧於山路往來行走如魏兵搶去便是汝之功高翔領計驅駕木牛流馬去了孔明將祁山兵一一調去只推屯田分付如別兵來戰只許詐敗若司馬懿自來方並力只攻渭南斷其歸路孔明分撥已畢自引一軍近上方穀下營

 

공명이 다시 고상을 불러 분부하기를,

 

그대는 목우유마(木牛流馬) 2, 30개를 한 무리로 하거나, 4, 5십 개를 한 무리로 해서, 각각 군량미를 싣고, 산길을 오가시오. 만약 위나라 군사가 이것을 빼앗으면 바로 그대의 공이 될 것이오.”

 

했다, 고상이 명령을 받고 목우유마(木牛流馬)를 몰고 갔다. 공명이 기산의 군사를 하나하나 배치하고, 오로지 둔전에 힘쓰며 분부하기를,

 

다른 군사가 싸우러 오면 지는 척하시오. 만약 사마의가 직접 오면, 비로소 힘을 모아 위수 남쪽을 공격하여 그들의 퇴로를 끊으시오.”

 

했다. 공명이 분부를 마치고 스스로 1군을 이끌고 상방곡 가까이에 영채를 세웠다.

 

且說夏侯惠夏侯和二人入寨告司馬懿曰今蜀兵四散結營各處屯田以爲久計若不趁此時除之縱令安居日久深根固蒂難以搖動懿曰此必又是孔明之計二人曰都督若如此疑慮寇敵何時得滅我兄弟二人當奮力決一死戰以報國恩懿曰既如此汝二人可分頭出戰遂令夏侯惠夏侯和各引五千兵去訖懿坐待回音

 

한편, 하후혜, 하후화 두 사람이 영채로 들어가 사마의에게 고하기를,

 

지금 촉나라 군사가 사방으로 흩어져 영채를 세우고, 각처에서 둔전을 행하여, 장구한 계책을 세웠습니다. 이때를 틈타서 제거하지 않고 오래 방치하면, 뿌리를 굳게 내릴 테니 그들을 흔들기 어렵습니다.”

 

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이것도 틀림없이 공명의 계책이오.”

 

했다. 두 사람이 말하기를,

 

도독께서 이처럼 의심하고 걱정하시면, 침략한 적군을 어느 세월에 멸하겠습니까? 저희 형제 두 사람이 마땅히 힘껏 죽기 살기로 싸워서, 나라의 은혜를 갚겠습니다.”

 

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그대 두 사람이 따로 출전하시오.”

 

했다. 마침내 하후혜와 하후화에게 각각 군사 5천을 이끌고 가라고 했다. 사마의가 앉아서 회신을 기다렸다.

 

卻說夏侯惠夏侯和二人分兵兩路正行之間忽見蜀兵驅木牛流馬而來二人一齊殺將過去蜀兵大敗奔走木牛流馬盡被魏兵搶獲解送司馬懿營中次日又劫擄得人馬百餘亦解赴大寨懿將解到蜀兵詰審虛實蜀兵告曰孔明只料都督堅守不出盡命我等四散屯田以爲久計不想卻被擒獲懿即將蜀兵盡皆放回夏侯和曰何不殺之懿曰量此小卒殺之無益放歸本寨令說魏將寬厚仁慈釋彼戰心此呂蒙取荊州之計也遂傳令今後凡有擒到蜀兵俱當善遣之仍重賞有功將吏諸將皆聽令而去

 

한편, 하후혜, 하후화 두 사람이 군사를 두 갈래로 나누어 행군하는데, 촉나라 군사들이 목우유마를 몰고 오는 것이 보였다. 두 사람이 일제히 달려드니, 촉나라 군사가 크게 져서 달아나고, 위나라 군사가 목우유마(木牛流馬)를 모두 빼앗아서 사마의의 영채로 끌고 갔다. 다음날 다시 인마 1백여 명을 포로로 잡아서, 본진으로 압송했다. 사마의는 촉나라 군사가 끌려오자, 그들에게 허실을 캐물었다. 촉나라 군사가 고하기를,

 

공명은 도독께서 굳게 지킬 뿐 싸우러 나오지 않을 줄만 알고, 저희 모두에게 사방으로 흩어져 둔전을 행하게 하여, 장구한 계책으로 삼고자 합니다. 이렇게 사로잡힐 줄 몰랐습니다.”

 

했다. 사마의가 즉시 촉나라 군사를 모두 풀어주어서 돌아가게 했다. 하후화가 말하기를,

 

왜 죽이지 않으십니까?”

 

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이까짓 소졸들을 죽인들 아무 이익이 없소. 본진으로 놓아 보내어, 위나라 장수가 관후하고 인자하다고 말하게 해서 싸울 마음이 풀어지게 만들 것이오. 이것은 오나라 여몽이 형주를 빼앗은 계책이오.”

 

했다. 곧 명령을 전하여, 앞으로 촉나라 군사를 사로잡으면, 모두 잘 대우해서 보내주도록 하고, 이렇게 하는 데에 공을 세운 장교들을 크게 포상하겠다고 했다. 장수들이 모두 명령을 듣고 갔다.

 

卻說孔明令高翔佯作運糧驅駕木牛流馬往來於上方穀內夏侯惠等不時截殺半月之間連勝數陣司馬懿見蜀兵屢敗心中歡喜一日又擒到蜀兵數十人懿喚至帳下問曰孔明今在何處衆告曰諸葛丞相不在祁山在上方穀西十裏下營安住今每日運糧屯於上方穀懿備細問了即將衆人放去乃喚諸將分付曰孔明今不在祁山在上方穀安營汝等於明日可一齊並力攻取祁山大寨吾自引兵來接應衆將領命各各准備出戰司馬師曰父親何故反欲攻其後懿曰祁山乃蜀人之根本若見我兵攻之各營必盡來救我卻取上方穀燒其糧草使彼首尾不接必大敗也

 

한편, 공명이 고상에게 군량을 운반하는 척하며 목우유마(木牛流馬)를 몰고 상방곡 안을 왕래하게 하니, 하후혜 등이 불시에 가로막고 공격하여, 보름 사이에 잇달아 수차례 승리했다. 사마의는 촉나라 군사가 거듭 패하자 마음속으로 기뻐했다. 어느 날 다시 촉나라 군사 수십 인을 사로잡았다. 사마의가 이들을 군막 안으로 불러들여 묻기를,

 

공명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니, 무리가 고하기를,

 

제갈 승상은 기산에 있지 않고, 상방곡 서쪽 십 리에 진을 치고 편안히 머물고 있습니다. 이제는 매일 군량을 상방곡으로 운반해서 쌓고 있습니다.”

 

했다. 사마의가 자세히 묻고 나서, 곧 사람들을 풀어주고, 여러 장수를 불러 분부하기를,

 

공명이 지금 기산에 없고, 상방곡에 진을 치고 있소. 그대들은 내일 일제히 힘을 합쳐 기산의 대채를 공격하시오. 내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지원하겠소.”

 

했다. 여러 장수가 군령을 받고 각각 출전을 준비했다. 사마사가 말하기를,

 

부친께서 무슨 까닭으로 도리어 적 후방을 치려 하십니까?”

 

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기산은 촉나라 사람들의 근본이니, 우리 군사가 공격하는 것을 보면, 각 영채에서 모두 구하러 올 것이다. 내가 그 틈에 상방곡을 공격해 군량을 불태워서, 그들로 하여금 머리와 꼬리가 구원하지 못하게 만들면, 틀림없이 그들이 대패할 것이다.”

 

했다.

 

司馬師拜服懿即發兵起行令張虎樂綝各引五千兵在後救應且說孔明正在山上望見魏兵或三五千一行或一二千一行隊伍紛紛前後顧盼料必來取祁山大寨乃密傳令衆將若司馬懿自來汝等便往劫魏寨奪了渭南衆將各各聽令卻說魏兵皆奔祁山寨來蜀兵四下一齊呐喊奔走虛作救應之勢司馬懿見蜀兵都去救祁山寨便引二子並中軍護衛人馬殺奔上方穀來魏延在穀口只盼司馬懿到來忽見一枝魏兵殺到延縱馬向前視之正是司馬懿延大喝曰司馬懿休走舞刀相迎懿挺槍接戰不上三合延撥回馬便走懿隨後趕來延只望七星旗處而走

 

사마사가 탄복했다. 사마의가 즉시 군사를 일으켜 출발하고, 장호와 악림에게 각각 군사 5천 명을 이끌고 뒤에서 지원하라고 했다. 한편, 공명이 기산 위에서 바라보니, 위나라 군사 3, 5천 명이 한 무리로, 혹은 1, 2천 명이 한 무리로 줄줄이 대오를 갖춰 앞뒤를 살펴보는 것이, 틀림없이 기산의 대채(본진)를 공격하러 오는 것이었다. 이에 여러 장수에게 은밀히 군령을 전하기를,

 

만약 사마의가 직접 오면 그대들은 바로 위나라 영채를 습격해서 위수 남쪽을 빼앗으시오.”

 

하니, 여러 장수가 각각 군령을 따랐다. 한편, 위나라 군사가 모두 기산의 진영으로 몰려가자 촉나라 군사가 사방에서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달려가서, 구원하는 척했다. 사마의는 촉나라 군사가 모두 기산의 영채를 구원하러 가는 것을 보고, 곧 두 아들과 중군의 호위병을 이끌고 상방곡으로 달려갔다. 위연이 골짜기 어귀에서 사마의가 오는 것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한 무리 위나라 군사가 쇄도했다. 위연이 말을 몰아 앞으로 가서 바라보니, 바로 사마의였다. 위연이 크게 외치기를,

 

사마의는 달아나지 말라!”

 

하며, 칼을 휘두르고 맞이했다. 사마의가 창을 꼬나쥐고 접전했다. 3합을 못 넘기고 위연이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니, 사마의가 뒤쫓았다. 위연이 칠성기가 있는 곳으로 달아났다.

 

懿見魏延只一人軍馬又少放心追之令司馬師在左司馬昭在右懿自居中一齊攻殺將來魏延引五百兵皆退入穀中去懿追到穀口先令人入穀中哨探回報穀內並無伏兵山上皆是草房懿曰此必是積糧之所也遂大驅士馬盡入穀中懿忽見草房上盡是幹柴前面魏延已不見了懿心疑謂二子曰倘有兵截斷穀口如之奈何言未已只聽得喊聲大震山上一齊丟下火把來燒斷穀口魏兵奔逃無路

 

사마의는 촉나라 장수가 오직 위연 한 사람이고 군마도 적어서, 방심하고 뒤쫓았다. 사마사에게 왼쪽을, 사마소에게 오른쪽을 맡기고, 사마의는 스스로 중앙에서 일제히 공격했다. 위연이 군사 5백을 모두 이끌고 상방곡 안으로 달아났다. 사마의가 골짜기 어귀에 이르러, 먼저 사람을 시켜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 정탐하게 하니, 돌아와 보고하기를, 골짜기 안에 복병이 전혀 없고, 산 위는 모두 초가집이라고 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이것은 군량을 쌓아둔 곳이 틀림없다.”

 

하고, 곧 군사와 말을 크게 몰아서 모조리 골짜기 안으로 들어갔다. 문득 사마의가 보니, 초가집 위에는 모두 마른 땔나무이고, 앞에 있던 위연도 보이지 않았다. 사마의가 의심이 들어, 두 아들에게 말하기를,

 

만약 적병이 골짜기 입구를 차단하면 어찌 되겠느냐?”

 

하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함성이 크게 진동하고, 산 위에서 일제히 횃불을 아래로 던져서 불을 질러 골짜기 입구를 차단했다. 위나라 군사가 달아나려 해도 갈 길이 없었다.

 

山上火箭射下地雷一齊突出草房內幹柴都著刮刮雜雜火勢沖天司馬懿驚得手足無措乃下馬抱二子大哭曰我父子三人皆死於此處矣正哭之間忽然狂風大作黑氣漫空一聲霹靂響處驟雨傾盆滿穀之火盡皆澆滅地雷不震火器無功司馬懿大喜曰不就此時殺出更待何時即引兵奮力沖殺張虎樂綝亦各引兵殺來接應馬岱軍少不敢追趕司馬懿父子與張虎樂綝合兵一處同歸渭南大寨不想寨柵已被蜀兵奪了郭淮孫禮正在浮橋上與蜀兵接戰司馬懿等引兵殺到蜀兵退去懿燒斷浮橋據住北岸

 

산 위에서 불화살을 아래로 쏘고, 지뢰도 일제히 튀어나오고, 초가집 안의 마른 땔나무도 모두 불이 붙어서 활활 타오르니 불길이 하늘을 찔렀다. 사마의가 놀라서 손발을 허둥거리더니, 말에서 내려 두 아들을 껴안고 크게 통곡하며 말하기를,

 

우리 부자 세 사람이 모두 이곳에서 죽겠구나!”

 

했다. 이렇게 통곡하는데, 홀연히 광풍이 크게 불고 먹구름이 하늘을 가득 채웠다. 한차례 벼락치는 소리가 울리고 소나기가 들이붓듯이 쏟아졌다. 골짜기를 가득 채웠던 불길이 모조리 비를 맞고 꺼졌다. 지뢰도 터지지 않고, 각종 화기들도 소용이 없다. 사마의가 크게 기뻐했다.

 

이 틈에 탈출하지 않으면 또 어느 때를 기다리겠느냐!”

 

하고, 즉시 군사를 이끌고 힘을 떨쳐 돌격했다. 장호와 악림도 군사를 이끌고 달려와서 지원했다. 마대는 군사가 적어서 감히 뒤쫓지 못했다. 사마의 부자와 장호, 악림이 군사를 한데 모아, 함께 위수 남쪽의 큰 영채로 돌아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영채를 촉나라 군사가 빼앗은 뒤였다. 곽회와 손례가 그때 부교 위에서 촉나라 군사와 접전하고 있었다. 사마의 등이 군사를 이끌고 쇄도하자, 촉나라 군사가 퇴각했다. 사마의가 부교를 불살라 끊어버리고, 북쪽 물가에 진을 쳤다.

 

且說魏兵在祁山攻打蜀寨聽知司馬懿大敗失了渭南營寨軍心慌亂急退時四面蜀兵沖殺將來魏兵大敗十傷八九死者無數餘衆奔過渭北逃生孔明在山上見魏延誘司馬懿入穀一霎時火光大起心中甚喜以爲司馬懿此番必死不期天降大雨火不能著哨馬報說司馬懿父子俱逃去了孔明歎曰謀事在人成事在天不可強也

 

한편, 위나라 군사가 기산에서 촉나라 영채를 공격하다가, 사마의가 대패하고 위수 남쪽의 영채를 잃은 것을 들었다. 이에 위나라 군사들이 어쩔 줄 몰라 급히 퇴각하는데, 사면에서 촉나라 군사가 달려들어, 위나라 군사가 대패하여, 열에 여덟 아홉은 죽거나 다쳐, 죽은 사람이 무수하고, 나머지 무리는 위수 북쪽으로 달아나 도망쳤다. 공명이 산 위에서, 위연이 사마의를 골짜기 안으로 유인하고, 삽시간에 불빛이 크게 치솟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몹시 기뻐하며, 사마의가 이번에 틀림없이 죽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하늘에서 큰비가 내려서 불이 꺼지고, 정찰 기병이 사마의 부자가 모두 달아난 것을 보고했다. 공명이 탄식하기를,

 

일을 꾀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에 달렸다더니, 억지로 할 수는 없구나!”

 

했다.

 

後人有詩歎曰

 

穀口風狂烈焰飄

何期驟雨降青霄

武侯妙計如能就

安得山河屬晉朝

 

뒷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하기를,

 

골짜기 입구에서 바람이 거세고 불꽃이 나부끼니,

푸른 하늘에서 소나기가 쏟아질 줄 어찌 알았으랴!

제갈무후의 신묘한 계책이 이루어졌다면,

어찌 산하가 진()나라에 넘어갔으랴!”

 

했다.

 

卻說司馬懿在渭北寨內傳令曰渭南寨柵今已失了諸將如再言出戰者斬衆將聽令據守不出郭淮入告曰近日孔明引兵巡哨必將擇地安營懿曰孔明若出武功依山而東我等皆危矣若出渭南西止五丈原方無事也令人探之回報果屯五丈原司馬懿以手加額曰大魏皇帝之洪福也遂令諸將堅守勿出彼久必自變

 

한편, 사마의가 위수 북쪽의 영채에서 군령을 전하기를,

 

위수 남쪽의 영채는 이제 이미 잃었다. 여러 장수 중에 다시 출전을 말하는 이는 참하겠다.”

 

했다. 여러 장수가 군령을 듣고, 점거해 수비하며 출전하지 않았다. 곽회가 들어와 고하기를,

 

요새 공명이 군사를 이끌고 순찰하니, 틀림없이 곧 땅을 골라서 영채를 세울 것입니다.”

 

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공명이 만약 무공산으로 나와서 산을 의지해 동쪽에 진을 치면 우리 모두가 위험해질 것이지만, 만약 그가 위수 남쪽으로 가서 서쪽으로 오장원에서 멈추면 우리가 무사할 것이오.”

 

했다. 사람을 시켜 정탐하게 하니, 돌아와 보고하기를, 과연 오장원에 둔병했다고 했다. 사마의가 손을 이마에 대며 말하기를,

 

위나라 황제의 큰 복이구나!”

 

하고, 곧 여러 장수에게 굳게 지키며 출전하지 못하게 하고,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변고가 생길 것이라 했다.

 

且說孔明自引一軍屯於五丈原累令人搦戰魏兵只不出孔明乃取巾幗並婦人縞素之服盛於大盒之內修書一封遣人送至魏寨諸將不敢隱蔽引來使入見司馬懿懿對衆啟盒視之內有巾幗婦人之衣並書一封懿拆視其書略曰仲達既爲大將統領中原之衆不思披堅執銳以決雌雄乃甘窟守土巢謹避刀箭與婦人又何異哉今遣人送巾幗素衣至如不出戰可再拜而受之倘恥心未泯猶有男子胸襟早與批回依期赴敵

 

한편, 공명이 1군을 이끌어서 오장원에 주둔하고, 여러 번 사람을 시켜 싸움을 걸었지만, 위나라 군사는 오로지 나오지 않았다. 이에 공명이 여자의 머리쓰개와 부인들의 흰 비단옷을 가져오게 하여 큰 합 속에 담고, 편지 1봉을 써서 사람을 시켜 위나라 영채로 보냈다. 여러 장수가 감히 은폐하지 못하고, 촉나라 사자를 데리고 들어가 사마의를 만났다. 사마의가 여러 사람 앞에서 합을 열어서 보니, 안에는 여자들의 머리쓰개와 부인의 옷이 들어 있고, 아울러 서신 1봉이 있었다. 사마의가 그 서신을 뜯어서 읽어보니 대략 이르기를,

 

중달이 이미 대장이 되어, 중원의 대군을 거느리면서도,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어 자웅을 겨룰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흙 둥지를 파고서, 칼과 화살을 조심해 피할 따름이니, 부인들과 무엇이 다르겠소! 이제 사람을 시켜 머리쓰개와 흰옷을 보내오. 만약 출전하지 않겠다면 두 번 절하고 받으시오. 만약 수치심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남자의 포부를 가졌다면, 어서 답신을 보내어, 날을 골라 싸우러 나오시오.”

 

했다.

 

司馬懿看畢心中大怒乃佯笑曰孔明視我爲婦人耶即受之令重待來使懿問曰孔明寢食及事之煩簡若何使者曰丞相夙興夜寐罰二十以上皆親覽焉所啖之食日不過數升懿顧謂諸將曰孔明食少事煩其能久乎使者辭去回到五丈原見了孔明具說司馬懿受了巾幗女衣看了書劄並不嗔怒只問丞相寢食及事之煩簡絕不提起軍旅之事某如此應對彼言食少事煩豈能長久孔明歎曰彼深知我也

 

사마의가 읽고 나서 마음속으로 크게 노하지만, 겉으로 웃으며 말하기를,

 

공명이 나를 부녀자로 여긴다는 것인가?”

 

하고, 곧 공명의 선물을 받더니, 사자를 정중히 접대하게 하고, 사자에게 묻기를,

 

공명이 먹고 자는 것과 일 처리의 번거롭거나 간략함이 어떻소?”

 

하니, 사자가 말하기를,

 

승상은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게 잠들고, 스무 가지 이상의 벌은 모두 직접 처리하십니다. 드시는 음식은 하루에 몇 되를 넘지 않습니다.”

 

했다. 사마의가 여러 장수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공명이 적게 먹고 일은 많다니, 어찌 오래 가겠소!”

 

했다. 사자가 인사를 하고 떠나서, 오장원으로 돌아가 공명을 만나 자세히 말하기를,

 

사마의가 머리쓰개와 여자 옷을 받고 서찰을 읽고도 진노하지 않고, 다만 승상의 침식과 일이 많고 적음을 물었지만, 군사 문제는 전혀 꺼내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러이러하게 대답했더니, 그가 말하기를, ‘식사를 적게 하고 일은 많다니, 어찌 오래 가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했다. 공명이 탄식하기를,

 

그가 나를 깊이 아는구나!”

 

했다.

 

主簿楊顒諫曰某見丞相常自校簿書竊以爲不必夫爲治有體上下不可相侵譬之治家之道必使仆執耕婢典爨私業無曠所求皆足其家主從容自在高枕飲食而已若皆身親其事將形疲神困終無一成豈其智之不如婢仆哉失爲家主之道也是故古人稱坐而論道謂之三公作而行之謂之士大夫昔丙吉憂牛喘而不問橫道死人陳平不知錢穀之數自有主者今丞相親理細事汗流終日豈不勞乎司馬懿之言真至言也孔明泣曰吾非不知但受先帝托孤之重惟恐他人不似我盡心也衆皆垂淚自此孔明自覺神思不寧諸將因此未敢進兵

 

주부(문서 담당) 양옹이 간하기를,

 

제가 보건대 승상께서 늘 장부와 서류를 직접 살피시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릇 다스리기 위해서는 체계가 서서, 위아래가 서로 침범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비유컨대, 집안을 다스리는 방법은 반드시 남자 종을 시켜 땅을 경작하고, 여종을 시켜 부엌일을 맡게 하니, 개인의 일이 잘못됨이 없이, 구하는 것이 모두 충족되어, 그 집 주인은 조용히 자유롭고 베개를 높이 베고, 음식을 편히 먹을 따름입니다. 만약 모두가 친히 그 일들을 한다면, 곧 몸과 마음이 피곤하여, 마침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어찌 그 지혜가 종들보다 못해서이겠습니까? 집주인의 법도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옛사람은 이르기를, 앉아서 도를 논하는 이들을 삼공이라 일컫고, 만들고 실행하는 이들을 사대부라 일컬었습니다. 지난날 병길(한나라 선제 때 승상)이 소들이 숨찬 것을 걱정했으나 길에 쓰러져 죽은 사람은 묻지 않았습니다. 진평(한나라 문제 때 승상)이 돈과 곡식의 수량을 몰랐으나, ‘주관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승상께서 세세한 일을 직접 처리하며 하루종일 땀을 흘리시니 어찌 피로하지 않겠습니까? 사마의의 말이 참으로 지당한 말입니다.”

 

하니, 공명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내가 몰라서가 아니라, 다만 선제 폐하에게서 탁고(고아를 부탁함)의 중임을 받은지라, 다른 사람들이 나만큼 마음을 다하지 않을까 걱정해서일 따름이오!”

 

했다. 여러 사람이 모두 눈물을 흘렸다. 이로부터 공명이 스스로 정신이 어지러운 것을 깨달으니, 장수들이 이로 인해 감히 진군하지 못했다.

 

卻說魏將皆知孔明以巾幗女衣辱司馬懿懿受之不戰衆將俱忿入帳告曰我等皆大國名將安忍受蜀人如此之辱即請出戰以決雌雄懿曰吾非不敢出戰而甘心受辱也奈天子明詔令堅守勿動今若輕出有違君命矣衆將俱忿怒不平懿曰汝等既要出戰待我奏准天子同力赴敵何如衆皆允諾懿乃寫表遣使直至合淝軍前奏聞魏主曹睿睿拆表覽之表略曰臣才薄任重伏蒙明旨今臣堅守不戰以待蜀人之自敝奈今諸葛亮遺臣以巾幗待臣如婦人恥辱至甚臣謹先達聖聰旦夕將效死一戰以報朝廷之恩以雪三軍之恥臣不勝激切之至

 

한편, 위나라 장수들은 모두 공명이 머리쓰개와 여자 옷으로 사마의를 욕보였지만 사마의가 그것을 받고도 싸우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 장수가 모두 성이 나서 군막으로 들어가 고하기를,

 

저희들이 모두 대국의 명장들인데 어찌 촉나라 사람이 이처럼 욕보이는 것을 참겠습니까? 바로 출전하여 자웅을 겨루기를 청합니다.”

 

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내가 감히 출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치욕을 달게 여겨 참는 것이오. 천자께서 조서를 내리시어, 견고히 지키며 움직이지 말라 하셨소. 지금 만약 함부로 나간다면 군주의 명을 어기는 것이오.”

 

했다. 그래도 뭇 장수가 모두 성이 나서, 가라앉지 않으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그대들이 꼭 출전하겠다면, 내가 천자께 상주해서 승인을 받은 뒤에 힘을 모아 촉나라 군을 대적하는 것이 어떻겠소?”

 

하니, 여러 장수가 모두 받아들였다. 사마의가 이에 천자에게 올리는 표를 써서 사자를 곧장 합비의 전장으로 보내어 위나라 군주 조예에게 아뢰었다. 조예가 표를 뜯어 읽어보니, 표에 대략 이르기를,

 

신의 재주가 얕고 임무는 무거운데, 폐하의 밝은 교지를 받들어, 이제 굳게 지키고 싸우지 않으며 촉나라 사람들이 저절로 피폐해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제갈량이 신에게 머리쓰개를 보내어 신을 부녀자로 대하니 치욕이 지극히 심합니다! 신은 삼가 먼저 성총(임금의 총명)에 표달하오니 곧 목숨을 걸고 일전을 치루어 조정의 은혜에 보답하고 삼군의 치욕을 씻겠습니다. 신은 지극히 격절한 마음을 이길 수 없나이다!”

 

했다.

 

睿覽訖乃謂多官曰司馬懿堅守不出今何故又上表求戰衛尉辛毗曰司馬懿本無戰心必因諸葛亮恥辱衆將忿怒之故特上此表欲更乞明旨以遏諸將之心耳睿然其言即令辛毗持節至渭北寨傳諭令勿出戰司馬懿接詔入帳辛毗宣諭曰如再有敢言出戰者即以違旨論衆將只得奉詔懿暗謂辛毗曰公真知我心也

 

조예가 읽고 나서 관리들에게 말하기를,

 

사마의가 굳게 지키며 출전하지 않았는데, 이제 무슨 까닭으로 다시 표를 올려 싸우기를 청하는 것이오?”

 

하니, 위위(경호처장) 벼슬의 신비가 말하기를,

 

사마의는 본래 싸울 마음이 없으나 제갈량에게서 치욕을 입어 뭇 장수가 분노한 까닭에 일부러 이렇게 표를 올려 다시금 폐하의 현명한 교지를 청하여 여러 장수의 마음을 누르고자 할 따름입니다.”

 

했다. 조예가 그 말을 그럴듯하게 여기고 즉시 신비에게 황제의 부절(황제의 신임 증표)을 주어 위수 북쪽의 영채로 가서 황제의 칙명을 전하여, 싸우러 나가지 말라고 했다. 사마의가 황제의 조서를 받고 군막으로 들어가니 신비가 칙명을 전하기를,

 

만약 다시 감히 출전을 언급하는 자는 곧 교지의 뜻을 어기는 것이오.”

 

했다. 여러 장수들이 어쩔 수 없이 황제의 조서를 받들었다. 사마의가 몰래 신비에게 말하기를,

 

공께서 참으로 저의 마음을 아시는구려.”

 

했다.

 

於是令軍中傳說魏主命辛毗持節傳諭司馬懿勿得出戰蜀將聞知此事報與孔明孔明笑曰此乃司馬懿安三軍之法也薑維曰丞相何以知之孔明曰彼本無戰心所以請戰者以示武於衆耳豈不聞將在外君命有所不受安有千裏而請戰者乎此乃司馬懿因將士忿怒故借曹睿之意以制衆人今又播傳此言欲懈我軍心也

 

이에 군중에 이야기를 전하여, 위나라 군주가 명하여 신비가 부절을 지니고 와서 사마의에게 칙명을 전해 출전하지 말라고 했다. 촉나라 장수가 이 일을 듣고 공명에게 보고하니, 공명이 웃기를,

 

이것은 사마의가 삼군을 달래는 방법이오.”

 

했다. 강유가 말하기를,

 

승상께서 어떻게 아십니까?”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그는 본래 싸울 마음이 없었소. 싸우기를 청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씩씩함을 과시하고자 했을 따름이오. 어찌 듣지 못했소? ‘장수가 바깥에 있을 때는 임금의 명일지라도 받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소. 어찌 천 리 먼 곳에 있으면서 임금에게 싸울 것을 청하겠소? 이는 곧 사마의가 장사들의 분노 때문에 조예의 뜻을 빌려 사람들을 여러 사람을 통제하고, 이제 다시 이 말을 전파하여, 우리의 군심을 해이하게 하려는 것이오.”

 

했다.

 

正論間忽報費禕到孔明請入問之禕曰魏主曹睿聞東吳三路進兵乃自引大軍至合淝令滿寵田豫劉劭分兵三路迎敵滿寵設計盡燒東吳糧草戰具吳兵多病陸遜上表於吳王約會前後夾攻不意齎表人中途被魏兵所獲因此機關泄漏吳兵無功而退孔明聽知此信長歎一聲不覺昏倒於地衆將急救半晌方蘇孔明歎曰吾心昏亂舊病複發恐不能生矣

 

이렇게 의논하는 사이에, 갑자기 비위가 왔다고 했다. 공명이 불러들여 물으니, 비위가 말하기를,

 

위나라 군주 조예는 동오가 세 방면으로 진군하자, 직접 대군을 이끌고 합비로 가서, 만총, 전예, 유소에게 명하여, 세 갈래로 병력을 나누어서, 대적하게 했습니다. 만총이 계책을 내어, 동오의 군량과 사료와 무기를 모조리 불태우고, 오나라 군사에게 질병이 많이 생겨서, 육손이 오나라 왕에게 표를 올려, 앞뒤로 위나라 군을 협공하기로 했으나, 뜻밖에도 표를 가져가던 사람이 중도에서 위나라 군사에게 붙잡혔습니다. 이 때문에 기밀이 누설되어, 오나라 군사가 아무 전공도 없이 돌아갔습니다.”

 

했다. 공명이 이 소식을 듣고 길게 탄식을 하더니, 갑자기 혼절해 바닥으로 쓰러졌다. 뭇 장수가 급히 구하자 한참 지나서야 깨어났다. 공명이 탄식하기를,

 

내 마음이 어지럽고, 옛 병이 재발하니, 아무래도 살 수 있을지 걱정이오!”

 

했다.

 

是夜孔明扶病出帳仰觀天文十分驚慌入帳謂薑維曰吾命在旦夕矣維曰丞相何出此言孔明曰吾見三台星中客星倍明主星幽隱相輔列曜其光昏暗天象如此吾命可知維曰天象雖則如此丞相何不用祈禳之法挽回之孔明曰吾素諳祈禳之法但未知天意若何汝可引甲士四十九人各執皂旗穿皂衣環繞帳外我自於帳中祈禳北鬥若七日內主燈不滅吾壽可增一紀如燈滅吾必死矣閑雜人等休教放入凡一應需用之物只令二小童搬運薑維領命自去准備

 

이날 밤, 공명이 병에 걸린 채 군막을 나가서 고개를 들어 천문을 살피더니, 몹시 놀라 당황했다. 군막으로 들어가 강유에게 말하기를,

 

내 목숨이 아침저녁에 달렸소!”

 

하니, 강유가 말하기를,

 

승상께서 어찌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내가 삼태성을 살피니, 객성이 배나 밝은데 주성(별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이 흐려지고, 둘러싼 별들도 그 빛이 어두워졌소. 천문 현상이 이러하니 내 명을 알 수 있소!”

 

했다. 강유가 말하기를,

 

천상이 비록 이렇다 하더라도 승상께서 어찌 기양(액운을 피하고 복을 부르는 기도)의 방법으로 만회하지 않으십니까?”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내 평소 기양의 방법은 알고 있지만 다만 하늘의 뜻이 어떤지 모르겠소. 그대가 갑사(갑옷 입은 병사) 49인을 이끌고, 각각 검은 깃발을 들고, 검은 옷을 입은 채 장막 밖에 둘러서게 하시오. 내가 직접 장막 안에서 북두성에게 기양을 올리겠소. 만약 7일 안에 중심 등불이 꺼지지 않으면 내 수명이 1(12)는 늘어날 것이오. 그 등불이 꺼지면 나는 틀림없이 죽을 것이오. 잡인들은 들어오지 못하게 하시오. 무릇 필요한 물품 일체는 두 소년을 시켜 운반하시오.”

 

했다. 강유가 명령을 받들어 직접 준비하러 갔다.

 

時值八月中秋是夜銀河耿耿玉露零零旌旗不動刁鬥無聲薑維在帳外引四十九人守護孔明自於帳中設香花祭物地上分布七盞大燈外布四十九盞小燈內安本命燈一盞孔明拜祝曰亮生於亂世甘老林泉承昭烈皇帝三顧之恩托孤之重不敢不竭犬馬之勞誓討國賊不意將星欲墜陽壽將終謹書尺素上告穹蒼伏望天慈俯垂鑒聽曲延臣算使得上報君恩下救民命克複舊物永延漢祀非敢妄祈實由情切拜祝畢就帳中俯伏待旦次日扶病理事吐血不止日則計議軍機夜則步罡踏鬥

 

이때가 8월 중추인데 이날 밤 은하수가 반짝반짝하고, 옥 같은 이슬이 방울방울 맺혔다. 깃발들도 펄럭이지 않고, 경비의 징소리도 울리지 않았다. 강유가 장막 밖에서 49인을 이끌고 수호했다. 공명이 장막 안에 향과 꽃과 제물을 놓았다. 땅 위에 큰 등잔 일곱 개를 나누어 놓고, 장막 바깥에 작은 등 마흔아홉 개를 놓고, 장막 안에 본명등(자신의 생명 등불)을 한 개 안치했다. 공명이 절하며 기도하기를,

 

저는 난세에 태어나, 전원에서 늙어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소열황제(유현덕)의 삼고초려의 은혜를 입고, 탁고(고아를 맡김)의 중책을 맡기시어, 감히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지 않을 수 없어, 맹세코 국가의 역적을 토벌하고자 했습니다. 뜻밖에도 장성(대장의 별자리)이 떨어지려 하니, 제 목숨이 곧 끝나려 합니다. 삼가 편지를 적어, 위로 하늘에 고하나이다. 엎드려 하늘의 자비를 바라오니, 굽어 살펴주소서. 신의 수명을 늘여서, 위로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고, 아래로 백성의 목숨을 구하고, 옛 영토를 되찾아, 한나라의 제사를 영원히 잇게 해주소서. 망녕되게 기도함이 아니오라 참으로 절실한 마음에서 비롯하옵니다.”

 

했다. 절하고 기도하기를 마치고, 장막 안으로 가서 고개 숙여 엎드린 채 아침을 기다렸다. 다음날, 병든 몸으로 일을 처리하니, 입으로 피를 토하는 것이 멈추지 않았다. 낮에는 군사 기밀을 토의하고, 밤에는 북두칠성의 별자리 모양을 따라 걸으며 신령을 부르는 의식을 행했다.

 

卻說司馬懿在營中堅守忽一夜仰觀天文大喜謂夏侯霸曰吾見將星失位孔明必然有病不久便死你可引一千軍去五丈原哨探若蜀人攘亂不出接戰孔明必然患病矣吾當乘勢擊之霸引兵而去孔明在帳中祈禳已及六夜見主燈明亮心中甚喜薑維入帳正見孔明披發仗劍踏罡步鬥壓鎮將星忽聽得寨外呐喊方欲令人出問魏延飛步入告曰魏兵至矣延腳步急竟將主燈撲滅孔明棄劍而歎曰死生有命不可得而禳也魏延惶恐伏地請罪薑維忿怒拔劍欲殺魏延正是萬事不由人做主一心難與命爭衡

 

한편, 사마의는 영채 안에서 굳게 수비하는데, 어느날 밤에 천문을 관측하고, 크게 기뻐하며 하후패에게 말하기를,

 

장성이 제자리를 벗어나니, 공명이 틀림없이 병에 걸려서, 머지않아 죽을 것이오. 그대는 군사 1천을 이끌고 오장원으로 가서 정탐하시오. 촉나라 사람들이 혼란에 빠져, 접전하러 나오지 않는다면 공명이 틀림없이 병에 걸린 것이오. 내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해야겠소.”

 

했다. 하후패가 군사를 이끌고 갔다. 공명이 장막 안에서 기도를 올린 지 엿새째 밤에 이르러도, 주등이 밝게 빛나니, 마음속으로 몹시 기뻐했다. 강유가 장막 안으로 들어와 바라보니, 공명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검을 쥐고, 북두칠성의 별자리 모양을 따라 걸으며 신령을 부르는 의식을 행하며, 장성이 떨어지는 것을 막고 있었다. 갑자기 영채 밖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서, 사람을 시켜 무슨 일인지 물으려는데, 위연이 급히 걸어 들어와 고하기를,

 

위나라 군사가 왔습니다!”

 

했다. 위연이 급히 걷다가 마침내 주등을 쳐서 꺼트리고 말았다. 공명이 검을 버리고 탄식하기를,

 

죽고 사는 것은 운명에 달렸으니, 기도해도 소용없구나!”

 

했다. 위연이 황공하여, 바닥에 엎드려 죄를 청했다. 강유가 분노하여, 검을 뽑아 위연을 죽이려 했다. 이야말로, 만사는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니, 마음을 다해도 운명을 이기기 어렵구나.

 

未知魏延性命如何且看下文分解

 

위연의 목숨이 어찌될 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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