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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승상이 보는 눈 [丙吉牛喘 병길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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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 병, 길할 길, 소 우, 헐떡거릴 천

 

병길(丙吉)이 승상(丞相)으로 일하던 시절, 그가 보여준 독특한 리더십이 바로 병길문우(丙吉問牛)’라는 고사(古事)에서 볼 수 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병길(丙吉)이 굉장히 독특한 방식으로 나라를 다스렸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느 날 병길(丙吉)이 외출을 하다가 길에서 무리 지어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에이, 저것들 좀 말려야지!" 할 법한데, 병길은 전혀 개의치 않고 그냥 지나쳤다. "저건 관리들이 알아서 처리하겠지"라고 생각하였다. 여기서부터 이미 보통 사람들과는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그가 신경 쓴 건 의외로 그 다음에 만난 소였다. 소가 숨을 헐떡거리며 힘들게 수레를 끌고 가는 걸 본 병길(丙吉)은 바로 멈춰 서서 수행원에게 소가 몇 리나 왔는지, 헐떡이는 이유를 자세히 물어오게 하였다. 이에 수행원이 가축만 중요하고 사람은 중요하지 않느냐고 투덜거렸다. "좀 전 사람이 죽는 것은 본 체도 않으시더니 소가 숨을 헐떡이는 것은 어찌 물으십니까?" 병길(丙吉)이 말했다.

 

"패싸움은 경조윤(京兆尹)이 법으로 처리하면 그뿐, 승상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봄이라 아직 덥지 않은데, 소가 저리 땀을 흘리고 숨을 헐떡이니 날씨가 절기를 벗어난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람이 상할까 염려해 그랬다. 재상은 음양의 조화를 근심할 뿐 길에서 일어난 일은 묻지 않는다." 관리들이 탄복했다.

 

병길(丙吉)은 단순히 소의 상태만을 본 게 아니라, 소의 헐떡임을 통해 기후 변화를 읽고 나라의 농사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러니까 싸우는 사람들에겐 관할 관리가 나서서 해결하면 되지만, 나라 전체의 농사와 기후 문제는 나라의 최고 관원이 직접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바로 '병길문우(丙吉問牛)' 또는 '문우천(問牛喘)'의 유래이다. 병길(丙吉)은 직위에 맞는 일을 제대로 처리하는 것이 진짜 중요한 일이라는 걸 보여준다. 권한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나서기보다는, 자기가 맡은 직무를 제자리에 맞게 처리하는 것이 장차 나라를 위해 더 큰 도움이 된다고 본 것이다.

이 일화(逸話)에서 우리는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리더의 모습을 배울 수 있다. 병길(丙吉)은 싸우는 사람들처럼 당장 눈앞의 소란에 휘둘리지 않고, 진짜로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일이 나라에 미칠 영향을 고민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무작정 나서서 해결하기보다, 자신의 직위에 걸맞는 일에 집중했다.

그러니 이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적용하자면, "싸움 말리기보다는 나라 농사 챙기자!"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병길(丙吉)'큰일을 할 사람은 작은 일에 휘둘리지 말라'는 철학을 현명하게 실천한 셈이다.

이처럼 '병길문우(丙吉問牛)'는 각자 맡은 자리에서 제 할 일을 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주는 고사이다. 맡은 일이 눈앞에 작게 보여도, 그 뒤에 있는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안목(眼目)이 중요하다는 것을 병길(丙吉)은 소 한 마리로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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