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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당신암(唐新庵)의 시에 차운하여

오늘 漢詩 한 수/9월의 漢詩

by 진현서당 2024. 9. 1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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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당신암(唐新庵)의 시에 차운하여



行行三十館,
壁輝東借西.
不似汝陰老,
騎馬聞朝鷄.



서른 곳 객관을 거치는 동안,
외람되이 함께 하며 시문을 주고받았네.
저 옛날 여음 땅의 노인처럼,
말 타고 새벽닭 울음 듣던 것에 비하랴.


행행삼십관, 벽휘동차서.
불사여음로, 기마문조계.

정사룡(鄭士龍·14911570) 태평관에서 당신암의 시에 차운하다[次大平館用唐新庵韻]
호음잡고(湖陰雜稿)6 황화화고(皇華和稿)

 

이 이야기는 조선 중종(中宗) 시절의 저명한 시인(詩人) 정사룡(鄭士龍)1521년 종사관(從事官)으로 선발되어, ()나라 사신(使臣) 당고(唐皐)를 접대하면서 겪은 일화(逸話)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시()의 주제는 바로 "벼슬살이의 고단함""시인(詩人)으로서의 즐거움"이 교차하는 묘한 상황이다.

정사룡(鄭士龍)은 사신을 의주(義州)에서 맞이해 긴 여정을 함께했다. 보통 이런 관직에 오르면, 힘들고 지친 일들이 많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신과의 시() 주고받기에서 느낀 즐거움은 오히려 그에게 활력을 불어넣었다. 새벽부터 조정에 나가 근무하는 관료 생활보다는, 시를 통해 교류하는 시간이 훨씬 나았다고 느낀 모양이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관직 생활의 피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인으로서의 소소한 행복을 엿볼 수 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바로 "여음(汝陰)의 노인"이라는 인물이다. 여음(汝陰)의 노인은 구양수(歐陽脩)라는 송나라()의 유명한 문장가를 가리키며, 그는 한때 정승을 지낸 후 은퇴하여 여음(汝陰) 땅에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불렸다. 구양수(歐陽脩)는 자신의 벼슬살이를 자조하는 시()를 종종 남겼는데, 특히 여음(汝陰) 땅의 처사 상질(常秩)에게 보낸 시()가 유명하다. 그는 상질(常秩)에게 벼슬살이의 고달픔을 자조하며, 처사(處士)로 사는 삶이 얼마나 편안할지 상상했을 것이다.

정사룡(鄭士龍)도 이런 구양수(歐陽脩)의 시()를 통해 자신의 처지를 떠올린 것이다. 사신을 맞이하며 여정을 함께한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시인(詩人)으로서 문학적 교류를 통해 벼슬의 고단함을 잊고, 여음(汝陰)의 노인처럼 고고하게 시()를 나누는 즐거움을 찾았다.

마치 구양수(歐陽脩)가 상질(常秩)에게 벼슬의 무거움을 이야기하듯, 정사룡(鄭士龍)도 사신과의 시적 교류 속에서 고단함을 덜어냈다. 두 문인은 세월을 넘어 벼슬살이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듯하다.

이렇게 보면, 이 이야기는 벼슬살이의 고달픔과 문인의 고상한 즐거움이 대비되는 장면을 유머러스하게 그린 것이다. 관직에선 피로가 쌓이지만, ()를 나누며 그 피로를 잊고, 순간의 즐거움에 빠져드는 모습이 참으로 인간적이지 않은가? 결국, 정사룡은 이 긴 여정을 통해, 힘들고 지친 벼슬살이 속에서도 문학적 교류의 기쁨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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