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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영조의 육대사업(六大事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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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육, 큰 대, 일 사, 업 업

 

영조대왕(英祖大王)은 조선왕조에서 가장 오랫동안 재위한 군주로, 팔순(八旬)을 넘기도록 국정을 돌본 성군(聖君)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御製文業 어제문업에서 본인이 직접 밝히듯이, 그는 자신의 업적을 마냥 자랑스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민망하다(靦然)'고 한 부분들이 많았죠. 왕으로서 일생의 사업을 돌아볼 때 민망하다니, 참으로 겸손한 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민망한 '팔순의 사업'을 보며, 얼마나 유머스러운 면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그러면 영조대왕(英祖大王)"팔순 프로젝트"를 한 번 재조명해 봅시다.

 

1. 탕평(蕩平): 내심 두 글자에 부끄러움

 

탕평책(蕩平策)은 다 아시다시피, 영조(英祖)가 당쟁(黨爭)을 막기 위해 만든 "인사 무색(無色) 정책"입니다. 쉽게 말해 "이 당도 저 당도 싫다, 나는 그냥 다 받아들이겠다"는 뜻이었죠. 그러나 영조(英祖)가 이걸 자랑하는 게 아니라, 민망하다고 했다는 게 포인트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왕이 된 이상, 당연히 나라를 평평하게, 공평하게 다스려야 하는데, 그걸 못했으니 민망한 거죠. 쉽게 말해, "탕평(蕩平)은 해야 하는데, 이게 생각만큼 쉽지 않더라." 그래서 자육이자(自恧二字), 부끄러운 두 글자 탕평(蕩平)입니다. 왕도 인간이니, 그럴 수 있죠.

 

2. 균역(均役): 효험이 승려에게까지 미쳤다

 

균역법(均役法)은 당시 백성들의 가장 큰 고통 중 하나였던 군역(軍役)을 절반으로 줄여준 법입니다. 평민들이 원래 군역(軍役)으로 2필씩 내던 것을 1필로 줄여줬는데, 그 혜택이 심지어 승려(僧侶)들에게까지 미쳤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승려(僧侶)들도 복권 당첨된 기분이었겠죠. "우리도 이제 군역(軍役)에서 해방(解放)이다!"라고 외치면서, 승려들조차 영조(英祖)의 업적에 감사했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니 균역법(均役法)은 단순히 백성들을 구제한 것뿐만 아니라, 조선 전역에 해탈의 경지를 선사한 업적이 되겠습니다.

 

3. 준천(濬川): 청계천 준설, 만세에 드리울 만한 업적

 

영조(英祖)의 준천(濬川) 사업은 청계천(淸溪川)을 준설하여 하천이 범람(氾濫)하는 것을 막고, 백성들의 생활을 개선한 업적입니다. 청계천(淸溪川)을 깔끔하게 치워서 홍수도 예방하고, 땅도 넓어지니 사람들은 "이게 바로 만세에 길이 남을 업적이다!"라고 찬양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도시 재생 사업인데, 이걸로 영조(英祖)는 청계천(淸溪川) 복원 선구자가 된 셈이죠. 서울 한복판을 시원하게 뚫어준 이 대공사, 과연 대왕답습니다. 자랑스러워하셔도 되는 부분인데, 그조차도 '민망하다', 겸손이 지나쳐 '무거워' 보일 정도입니다.

 

4. 복고(復古): 공비(公婢)들도 여유로워진 세상

 

복고(復古)라 하면, "옛 제도를 회복하다"라는 뜻입니다. 당시에는 관청 소속의 공비(公婢), 즉 여자 종들이 각종 공역(貢役)에 시달렸는데, 영조(英祖)는 그들의 짐을 덜어주었습니다. 공비(公婢)들도 이제 여유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었으니, 이건 진짜 복고풍의 시대를 연 셈입니다. 공비(公婢)들이 한숨 돌리며, "이제 좀 사람답게 살겠다"고 했을 겁니다. 현대에서 이런 일을 하면 아마도 복지 정책의 일환으로 선포될 법한 일인데, 영조(英祖)는 일찍이 이런 배려를 해줬습니다. 공비(公婢)들도 이제 "영조 대왕님 만세!"를 외쳤겠죠.

 

5. 서중(敍衆): 유자광 이후 첫 인사개혁

 

서중(敍衆)은 차별 없는 인재 등용을 말합니다. 조선 시대에 서얼(庶孼)들은 고위직 진출이 제한되었는데, 영조(英祖)는 이 장벽을 허물고 서얼들도 청요직(淸要職)에 진출할 수 있게 했습니다. 요즘으로 따지면, "인재는 학력이나 배경을 따지지 않고 능력으로 뽑겠다"는 것이죠. 공정한 채용입니다. 유자광(柳子光) 이후로 이런 개혁이 없었으니, 영조(英祖)는 이를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어찌 보면 영조(英祖)"조선의 인사청문회"를 제대로 만든 셈입니다. 다들 꿈의 직장을 얻기 위해 열심히 스펙을 쌓았겠죠. "열심히 하면 나도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개혁이었습니다.

 

6. 작정(昨政): 환모탕감(還耗蕩減)으로 민심을 얻다

 

작정(昨政)'어제의 정치'를 말하는데, 영조(英祖)는 이를 통해 백성들의 조세 부담을 줄여주었습니다. 환모(還耗)란 세금 체납 시 가산금이 붙는 것을 말하는데, 이 가산금을 모두 탕감해줬습니다. 조선판 세금 감면 정책이죠. 그 결과 백성들은 다들 "영조 대왕님, 정말로 우리를 위해 주시는구나!"라고 감동했습니다. 전국적으로 시행된 이 환모탕감(還耗蕩減)은 단순한 조세 감면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큰 혜택을 준 것입니다. 그럼에도 영조(英祖)는 이걸 자신의 '최초의 정치'로 자평하며 겸손을 잃지 않았습니다.

영조대왕(英祖大王)"팔순 사업"은 겸손과 민망함이 가득한 역사적 프로젝트였지만, 사실상 조선 왕조에서 혁신적인 개혁으로 가득 찬 정책들입니다. 자신이 이룬 업적을 자랑하기보다는 오히려 "아직도 부족하다"라고 한 그의 태도는 현대에도 많은 교훈을 줍니다.

 



八旬事業, 若問於子
팔순사업, 약문어자


心窃靦然, 其何以答
심절전연, 기하이답


一則蕩平, 自恧二字
일즉탕평, 자육이자


二則均役, 效流緇徒
이즉균역, 효류치도


三則濬川, 可垂萬歲
삼즉준천, 가수만세


四則復古, 婢類皆閑
사즉복고, 비류개한


五則敍衆, 子光後初
오즉서중, 자광후초


六則昨政, 卽大典法
육즉작정, 즉대전법


팔순의 사업을 나에게 물으면,

내심 민망하니 어떻게 답할까
?



첫째는 탕평(蕩蕩平平한 인사),
스스로 두 글자에 부끄럽다.

둘째는 균역(良人軍役 균등),
효험이 승려에게까지 미쳤다.

셋째는 준천(청계천의 준설),
만세에 드리울 만하리.

넷째는 복고(옛 제도의 회복),
종들이 다 여유로워졌다.

다섯째 서중(차별 없는 敍用),
유자광 이후 처음이라.

여섯째 작정(어제의 정사),
바로 경국대전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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