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의 믿음이란 뜻으로, 약속을 칼날같이 지키거나 우직하여 융통성이 없는 태도를 말한다.
尾 : 꼬리 미
生 : 날 생
之 : 의 지
信 : 믿을 신
춘추시대(春秋時代), 그 시절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그러나 사회는 뜨겁고 인간관계는 얼어붙어 있던 때였습니다. 이 무렵, 노나라(魯國)에 살았던 미생(尾生)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분 참 기막힌 인물이었죠. 약속이란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신의(信義)의 화신(化身), 그야말로 "약속의 달인(達人)"이었습니다.
미생(尾生), 사랑에 빠지다
그러던 어느 날, 미생(尾生)에게 운명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게 뭐였냐 하면, 바로 사랑하는 여자가 생긴 거죠. 네, 그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은 사랑이었습니다.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겠죠. 그래서 그 여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당시 다리 밑에서의 데이트는 마치 요즘의 카페 데이트와 같은 낭만적인 장소였겠죠.
미생(尾生)은 약속 시간에 맞춰 다리 밑에 나가 앉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여자는 오지 않았습니다. "왜 안 오지? 설마 오지 않는 건 아니겠지?" 미생(尾生)은 그런 의심이 들면서도, "아니야, 난 믿어. 그녀는 꼭 올 거야"라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신의(信義)라는 것이 원래 그러한 법이니까요.
장대비가 쏟아지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처럼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미생(尾生)은 "비야 잠깐 내리다가 그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 비는 끊임없이 내리며 점점 거세졌습니다. 문제는 개울물도 비에 따라 불어나기 시작한 겁니다. 처음엔 발목, 그 다음은 무릎, 결국 허리까지 차오르며 미생(尾生)을 감쌌죠. 하지만 미생(尾生)은 여전히 자리를 지켰습니다. 다리 기둥을 꼭 안고, "나는 기다린다. 그녀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라는 굳건한 신념으로 버티었습니다.
이쯤 되면 미생(尾生)의 모습은 신의를 지키려는 모습이라기보다는 뭔가 코믹한 장면이 연상되지 않나요? 사랑에 빠진 남자의 결의는 때때로 이런 황당한 상황을 만들어내곤 하죠.
미생(尾生)의 선택(選擇): 신의(信義)인가 고집(固執)인가?
결국, 개울물은 미생(尾生)을 삼켜버렸고, 그는 그렇게 물속에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소진열전(蘇秦列傳) 등에서 등장합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소진(蘇秦) 같은 사람은 미생(尾生)의 이 행동을 신의(信義)의 표본으로 보았다는 겁니다. 그는 자신이 외교 활동에서 신의(信義)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활용했습니다.
소진(蘇秦)은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종횡가(縱橫家)로, 외교술(外交術)에 능했던 인물이었죠. 외교관계에서의 신의(信義)를 강조하던 그가, 미생(尾生)의 이야기를 자신의 신의(信義)와 동일시(同一視)한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겁니다. "내가 이렇게 신의(信義)를 중시하는 사람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겠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미생(尾生)의 이야기를 그리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많은 문헌에서는 미생(尾生)의 이 행동을 작은 명분에 얽매여 융통성(融通性) 없는 예로 들고 있습니다. 즉, 중요한 건 신의(信義)를 지키는 것도 좋지만, 상황에 맞게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죠.
미생(尾生)과 송양지인(宋襄之仁)
이런 미생(尾生)의 고지식함은 송양지인(宋襄之仁)과도 일맥상통(一脈相通)합니다. 송양(宋襄)은 전투에서 상대방이 전열을 갖추기 전에 공격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여 결국 패배하고 말았던 인물입니다. 그는 "정정당당(正正堂堂)한 싸움"을 고집했지만, 그 결과로 자신과 병사들이 고통받게 되었죠. 송양(宋襄)의 이러한 행동 역시 외형적으로는 인자(仁者)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국엔 융통성(融通性) 없는 결정으로 평가됩니다.
미생(尾生)과 송양(宋襄), 이 둘의 이야기를 보면,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겉치레와 명분에 얽매여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이런 고지식함은 오히려 삶을 더 어렵게 만들 뿐입니다.
오늘날의 미생(尾生)들: 카타르시스와 융통성(融通性)
오늘날에도 미생(尾生) 같은 사람들이 있긴 합니다. 한 번 한 약속을 무조건 지키려고 하며, 자신의 말과 행동에 있어 철저한 원칙주의를 고수하는 사람들. 물론 이런 사람들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긴 합니다. 마치 무협 소설 속 주인공처럼, "나는 반드시 내 말을 지킨다!"라는 외침은 듣는 사람들에게 일시적으로 감동을 줄 수도 있죠.
하지만 우리가 참다운 삶의 도리를 이야기할 때, 그리고 인간 본성에 충실해야 할 때, 미생(尾生)의 고집스러운 행동은 결코 삶의 도리(道理)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때때로 융통성(融通性)을 발휘해야 하니까요. 현대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상황은 항상 복잡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미생(尾生)처럼 고집을 피우며 한 자리에만 머물러 있다면, 결국 허우적대는 물결에 휩쓸려 사라지게 될 겁니다.
결론: 미생(尾生)에게서 배우는 교훈
미생(尾生)의 이야기는 단순한 전설(傳說)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떻게 약속을 지키고, 어떻게 융통성(融通性)을 발휘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물론, 신의(信義)를 지키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상황도 변합니다. 때로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 나은 방법을 찾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미생(尾生)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아, 저렇게까지 약속(約束)을 지킬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때론 약속(約束)보다 중요한 건 현명한 판단(判斷)과 융통성(融通性)입니다. 결국, 우리가 삶에서 찾아야 할 것은 미생(尾生)과 같은 고지식한 신의(信義)가 아니라, 변하는 세상 속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지혜(智慧)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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