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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예정평이 옷을 벗어 역적을 욕하고, 태의 길평이 조조를 독살하려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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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十三回

禰正平裸衣罵賊 吉太醫下毒遭刑三國志演義

 

23

예정평이 옷을 벗어 역적을 욕하고, 태의 길평이 조조를 독살하려 하다.

 

 

卻說曹操欲斬劉岱王忠孔融諫曰二人本非劉備敵手若斬之恐失將士之心操乃免其死黜罷爵祿欲自起兵伐玄德孔融曰方今隆冬盛寒未可動兵待來春未爲晚也可先使人招安張繡劉表然後再圖徐州操然其言先遣劉曄往說張繡曄至襄城先見賈詡陳說曹公盛德詡乃留曄於家中

 

각설, 조조가 유대와 왕충을 베려 하니, 공융이 간하기를,

 

두 사람은 본래 유비의 적수가 아니었는데 만약 그들을 참하시면 장사들의 마음을 잃으실까 두렵습니다.”

 

했다. 조조가 죽음을 면하고 벼슬을 거두어 쫓아낸 뒤, 스스로 출병하여 현덕을 치려 하니, 공융이 말하기를,

 

지금 한창 엄동설한인데 병력 동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새봄을 기다려도 늦지 않습니다. 먼저 사람을 보내서 장수와 유표에게 귀순을 권하고 그런 연후에 서주를 다시 도모하십시오.”

 

했다. 조조가 그 말이 옳다고 여겨서 먼저 유엽을 보내서 장수를 설득하게 했다. 유엽이 양성에 이르러 먼저 가후를 만나서 조조의 높은 덕을 늘어놓자 가후가 유엽을 집안에 머물게 했다.

 

次日來見張繡說曹公遣劉曄招安之事正議間忽報袁紹有使至繡命入使者呈上書信繡覽之亦是招安之意詡問來使曰近日興兵破曹操勝負何如使曰隆冬寒月權且罷兵今以將軍與荊州劉表俱有國士之風故來相請耳詡大笑曰汝可便回見本初道汝兄弟尚不能容何能容天下國士乎當面扯碎書叱退來使

 

이튿날 (가후가) 장수를 만나서 조조가 유엽을 보내서 귀순을 권하는 것을 말했다. 의논하고 있는데 문득 원소의 사자가 이르렀다고 알렸다. 장수가 들라 명하니, 사자가 서신을 바쳤다. 장수가 읽어보니 역시 귀순을 권하는 뜻이다. 가후가 사자에게 묻기를,

 

요새 병력을 일으켜서 조조를 친다더니 승부가 어찌 됐소?”

 

하니, 사신이 말하기를,

 

엄동설한이라 잠시 병력을 물렸소. 지금 장군께서 형주의 유표와 더불어 국사의 풍모를 구비하셨기에 청하러 왔을 뿐이오.”

 

했다. 가후가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너는 본초에게 돌아가서 너희 형제도 용납하지 못하면서 어찌 천하의 국사를 받아들이겠는가?’라고 전해라.”

 

하고 그 자리에서 서신을 찢어버리고 사신을 꾸짖어 물리쳤다.

 

張繡曰方今袁強曹弱今毀書叱使袁紹若至當如之何詡曰不如去從曹操繡曰吾先與操有仇安得相容詡曰從操其便有三夫曹公奉天子明詔征伐天下其宜從一也紹強盛我以少從之必不以我爲重操雖弱得我必喜其宜從二也曹公王霸之志必釋私怨以明德於四海其宜從三也願將軍無疑焉

 

장수가 말하기를,

 

지금 한창 원소가 강하고 조조가 약한데 이제 서신을 훼손하고 사자를 꾸짖어 쫓아보냈으니 원소가 쳐들어오면 어쩌겠소?”

 

하니, 가후가 말하기를,

 

조조를 따르는 것만 못합니다.”

 

했다. 장수가 말하기를,

 

내가 앞서 조조와 원수가 되었는데 어찌 서로 용납하겠소?”

 

하니, 가후가 말하기를,

 

조조를 따를 이유가 셋입니다. 무릇 조공이 천자의 조서를 받들어서 천하를 정벌하니 그것이 마땅히 따를 첫째 이유입니다. 원소가 강성하므로 우리가 적은 세력으로 추종한들 틀림없이 우리를 중히 여기지 않겠지만, 조조가 비록 약해도 우리를 얻으면 반드시 기뻐할 테니 그것이 마땅히 따를 둘째 이유입니다. 조공에게 패왕이 되려는 뜻이 있으니 반드시 사사로운 원한을 풀어서 밝은 덕을 사해에 보일 테니 그것이 마땅히 따를 셋째 이유입니다. 장군께서 의심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였다.

 

繡從其言請劉曄相見曄盛稱操德且曰丞相若記舊怨安肯使某來結好將軍乎繡大喜即同賈詡等赴許都投降繡見操拜於階下操忙扶起執其手曰有小過失勿記於心遂封繡爲揚武將軍封賈詡爲執金吾使操即命繡作書招安劉表賈詡進曰劉景升好結納名流今必得一有文名之士往說之方可降耳操問荀攸曰誰人可去攸曰孔文舉可當其任操然之攸出見孔融曰丞相欲得一有文名之士以備行人之選公可當此任否融曰吾友禰衡字正平其才十倍於我此人宜在帝左右不但可備行人而已我當薦之天子於是遂上表奏帝

 

장수가 그 말에 따라 유엽을 청하여 서로 만났다. 유엽이 조조의 덕을 크게 칭송하고 말하기를,

 

승상께서 만약 옛 원한을 기억하신다면 어찌 기꺼이 저를 보내서 장군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 하시겠습니까?”

 

하니, 장수가 크게 기뻐하고 즉시 가후 등을 데리고 허도에 가서 투항했다. 장수가 조조를 만나서 계단 아래에서 절하자 조조가 황망히 일으켜서 그 손을 잡고 말하기를,

 

작은 실수가 있었지만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오.”

 

하고, 곧 장수를 탕무장군에 봉하고, 가후를 봉하여 집금오를 맡게 했다. 조조가 즉시 장수에게 명하여 유표에게 귀순을 권하는 서찰을 쓰게 했다. 가후가 진언하기를,

 

유경승(유표)은 이름난 인물을 사귀기 좋아하니 이제 문장으로 이름난 선비를 보내서 설득해야 항복할 것입니다.”

 

하니, 조조가 순유에게 묻기를,

 

누구를 보내야겠소?”

 

했다. 순유가 말하기를,

 

공문거(공융)가 적임입니다.”

 

하니, 조조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순유가 나와서 공융을 만나 말하기를,

 

승상께서 문장으로 이름난 선비를 얻어서 사신으로 뽑고자 하시오. 공께서 이 임무를 맡을 수 있겠소?”

 

하니, 공융이 말하기를,

 

제 친구 예형이 자가 정평인데 재주가 저보다 열 배나 낫소. 이 사람은 마땅히 황제의 측근이 될 만해서 단지 사신으로 그칠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천자께 천거하리다.”

 

하고, 이에 황제에게 표를 올려 상주했다.

 

其文曰臣聞洪水橫流帝思俾乂旁求四方以招賢俊昔世宗繼統將弘基業疇咨熙載群士響臻陛下睿聖纂承基緒遭遇厄運勞謙日昃維嶽降神異人並出竊見處士平原禰衡年二十四字正平淑質貞亮英才卓躒初涉藝文升堂睹奧目所一見輒誦之口耳所暫聞不忘於心性與道合思若有神弘羊潛計安世默識以衡准之誠不足怪忠果正直志懷霜雪見善若驚嫉惡若仇任座抗行史魚厲節殆無以過也鷙鳥累百不如一鶚使衡立朝必有可觀飛辯騁詞溢氣坌湧解疑釋結臨敵有餘

 

그 글에 이르기를,

 

신이 듣자니, 홍수가 범람하면 황제께서 더욱 어진 이를 생각하시고, 사방에서 두루 찾아서 어질고 훌륭한 이를 초빙한다 했습니다. 예전에 세종(한무제)께서 제위를 이어셔서 장차 왕업의 기초를 넓히려 하셨습니다. 그러자 공훈과 업적을 떨치고자 선비들이 떼지어 몰려왔습니다. 폐하께서도 지혜와 성덕이 넘치신데, 제위를 계승하신 뒤에 액운을 만나 근면하고 공손했지만 날로 기울었습니다. 높은 산에서 신령이 강림하니 뛰어난 인재가 일제히 나타났는데, 가만히 초야에 묻힌 선비를 살펴보면, 평원 사람 예형은 지금 나이가 스물네 살이고 자가 정평으로 착하고 솔직하며 곧고 바른데다 영재가 탁월합니다. 처음에 예문을 섭렵하고, 관리가 돼서 심오하게 통찰했습니다. 눈으로 한번 보면 문득 외워서 입으로 낭송합니다. 귀로 잠깐 들으면 마음 속에 잊지 않습니다. 성품이 도에 합치하고 생각이 신묘합니다. 상홍양(桑弘羊)의 깊은 계책과 장안세(張安世)의 묵묵히 암기함을 예형과 비교해도 참으로 괴이할 바가 없습니다. 충성스럽고 과감하고 정직하며 지조는 눈서리를 품은 듯합니다. 착한 일을 보면 놀란 듯이 반가워하고 나쁜 일을 미워하기를 원수 같이 합니다. 임좌(任座)의 항행(抗行 고상한 행동을 견지하는 것), 사어(史魚)의 굳센 지조로도 결코 그를 능가할 수 없습니다. 지조(사나운 새) 수백 마리가 물수리 하나만 못한 법입니다. 예형을 입조시키면 반드시 볼만한 것이 있을 겁니다. 뛰어난 언변에 달리는 문장은 물이 솟구치듯 합니다. 의혹을 해소하고 엉킨 걸 풀어주고 적에게 임하여도 여유가 있습니다.

 

昔賈誼求試屬國詭系單於終軍欲以長纓牽制勁越弱冠慷慨前世美之近日路粹嚴象亦用異才擢拜台郎衡宜與爲比如得龍躍天衢振翼雲漢揚聲紫微垂光虹蜺足以昭近署之多士增四門之穆穆鈞天廣樂必有奇麗之觀帝室皇居必蓄非常之寶若衡等輩不可多得激楚陽阿至妙之容掌伎者之所貪飛兔腰嫋絕足奔放樂之所急也臣等區區敢不以聞陛下篤慎取士必須效試乞令衡以褐衣召見如無可觀采臣等受面欺之罪

 

예전에 가의가 시험 삼아 한나라 속국 흉노의 신하가 되어 선우를 속임수로 얽어매고자 하였고, 종군이 긴 밧줄로 굳센 남월의 왕을 묶어 오려 했습니다. (가의와 종군이) 약관의 나이에 비분강개하니 전대에 그들을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근래에도 노수와 엄상이 역시 남다른 재주로 대랑에 발탁됐습니다. 예형도 마땅히 이에 비할 만합니다. (예형을 쓴다면) 마치 용이 치솟아 하늘에 닿고 은하수까지 날개를 퍼덕이고 자미성처럼 명성을 날리고 무지개처럼 빛을 드리울테니 폐하를 가까이 모시는 많은 선비들을 돕기에 충분하고 4대문이 더욱 빛나고, 웅장한 음악처럼 반드시 뛰어나게 아름다울 것입니다. 궁궐에는 반드시 비상한 보물을 쌓아두어야 하지만, 만약 예형 같은 사람이라면 많을 필요는 없습니다. 격초의 노래, 양아의 시는 지극히 묘하여서 재주꾼들이 탐내는 것입니다. 비토(飛兔)나 요뇨(腰嫋) 같은 빠른 말이 발이 안 보이게 빨리 달리는 것은 왕량(王良)과 백락(伯樂) 같은 뛰어난 기수가 급히 몰아서입니다. (이런 인재를) 신 등이 감히 아뢰지 않겠습니까? 폐하께서 신중하게 선비를 취하시니 반드시 그를 시험해보시고, 예형을 벼슬 없이 불러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채용할 만하지 않으면 신 등이 폐하를 속인 죄를 받겠습니다.”

 

라고 했다.

 

帝覽表以付曹操操遂使人召衡至禮畢操不命坐禰衡仰天歎曰天地雖闊何無一人也操曰吾手下有數十人皆當世英雄何謂無人衡曰願聞操曰荀彧荀攸郭嘉程昱機深智遠雖蕭何陳平不及也張遼許褚李典樂進勇不可當雖岑彭馬武不及也呂虔滿寵爲從事於禁徐晃爲先鋒夏侯惇天下奇才曹子孝世間福將安得無人

 

황제가 표문을 읽고 조조에게 맡겼다. 조조가 사람을 시켜서 예형을 불러왔다. 인사를 마쳤지만 조조가 앉으라고 명하지 않자, 예형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기를,

 

천지가 광활하다지만 어찌 한 사람도 없는가!”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내 수하에 수십 인이 있고 모두 당세의 영웅인데 어찌 사람이 없다고 하느냐?”

 

하니, 예형이 말하기를,

 

듣고 싶소.”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순욱, 순유, 곽가, 정욱은 기지가 심오하고 원대하니 비록 소하, 진평이라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장요, 허저, 악진, 이전은 용맹하여 당할 자가 없으니 비록 잠팽, 마무라도 미치지 못할 걱이다. 여건, 만총은 종사를 맡고, 우금, 서황은 선봉을 맡는다. 하후돈은 천하의 비상한 인재다. 조자효(조인)는 세상의 복된 장수다. 어찌 사람이 없다고 하느냐?”

 

했다.

 

衡笑曰公言差矣此等人物吾盡識之荀彧可使吊喪問疾荀攸可使看墳守墓程昱可使關門閉戶郭嘉可使白詞念賦張遼可使擊鼓鳴金許褚可使牧牛放馬樂進可使取狀讀詔李典可使傳書送檄呂虔可使磨刀鑄劍滿寵可使飲酒食糟於禁可使負版築牆徐晃可使屠豬殺狗夏侯惇稱爲完體將軍曹子孝呼爲要錢太守其餘皆是衣架飯囊酒桶肉袋耳

 

예형이 웃으며 말하기를,

 

그대 말씀이 틀렸소. 이들 인물은 내가 다 알고 있소. 순욱은 상갓집에 문상하고 병문안이나 하고, 순유는 무덤이나 지키며, 정욱은 문지기나 하고, 곽가는 시나 읊고, 장요는 북 치고 징이나 치고, 허저는 소나 말을 방목이나 하고, 악진은 문서나 받고 조서나 읽고, 이전은 서신과 격문이나 전달하고, 여건은 도검이나 갈고 만들며, 만총은 술이나 마시고 밥이나 축내며, 우금은 판때기를 짊어지고 담장이나 쌓고, 서황은 개돼지나 잡게 하기에 알맞소. 하후돈은 몸뚱이만 좋은 장군이라고 칭하겠고, 조자효는 재물만 아는 태수라고 부르면 되겠소. 그 나머지는 모두 옷걸이나 밥주머니, 술통이나 고기 자루지요!”

 

라고 했다.

 

操怒曰汝有何能衡曰天文地理無一不通三教九流無所不曉上可以致君爲堯下可以配德於孔豈與俗子共論乎時止有張遼在側掣劍欲斬之操曰吾正少一鼓吏早晚朝賀宴享可令禰衡充此職衡不推辭應聲而去遼曰此人出言不遜何不殺之操曰此人素有虛名遠近所聞今日殺之天下必謂我不能容物彼自以爲能故令爲鼓吏以辱之

 

조조가 노해서 말하기를,

 

너는 뭐가 잘났느냐?”

 

하니, 예형이 말하기를,

 

천문지리에 하나라도 통하지 않는 게 없고, 삼교구류(유교, 불교, 도교와 제자백가)에 하나라도 깨닫지 못한 게 없소. 위로 임금을 요순처럼 만들고, 아래로 공자, 안회보다 덕을 베풀 수 있소! 어찌 속된 자들과 함께 논하겠소!”

 

했다. 그때 장요가 곁에 있었는데 검을 뽑아 베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내 마침 북을 치는 자가 부족한데, 조만간 조정에서 연회를 베풀테니 예형을 이 직책에 채우도록 해라.”

 

하니, 예형이 사양하지 않고 응하고 돌아갔다. 장요가 말하기를,

 

이 사람의 말이 불손한데 왜 죽이지 않으십니까?”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이 사람은 평소에 헛된 명성을 가져서 원근에 소문이 났으니 오늘 죽이면 천하 사람들이 반드시 나를 인물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할 것이오. 그 스스로 하겠다고 하니 북 치는 자를 맡겨서 모욕을 주겠소.”

 

했다.

 

來日操於省廳上大宴賓客令鼓吏撾鼓舊吏雲撾鼓必換新衣衡穿舊衣而入遂擊鼓爲漁陽三撾》。音節殊妙淵淵有金石聲坐客聽之莫不慷慨流涕左右喝曰何不更衣衡當面脫下舊破衣服裸體而立渾身盡露坐客皆掩面衡乃徐徐著褲顏色不變操叱曰廟堂之上何太無禮衡曰欺君罔上乃謂無禮吾露父母之形以顯清白之體耳操曰汝爲清白誰爲汙濁

 

다음날, 조조가 관청의 대청 위에서 크게 연회를 베풀고 북치는 자에게 북을 치게 명령했다. 전부터 북을 치던 자가 말하기를,

 

북을 치려면 반드시 새 옷으로 갈아 입어야 하오.”

 

라고 했으나, 예형은 입은 옷 그대로 들어가서 북을 치는데, ‘어양삼과(漁陽三撾)’라는 곡으로 음절이 아주 묘하고 그윽해서 편종과 편경을 치는 것 같다. 앉은 손님들이 듣고서 비분강개하여 눈물 흘리지 않는 이 없다. 좌우에서 소리쳐 말하기를,

 

어찌 옷을 갈아 입지 않느냐!”

 

하니, 예형이 사람들 면전에서 찢어진 헌옷을 벗어버리고 나체로 서자 온몸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앉은 손님들이 모두 얼굴을 가렸다. 예형이 서서히 바지를 입는데 낯빛 하나 변치 않았다. 조조가 꾸짖어 말하기를,

 

묘당에서 어찌 이다지도 무례하느냐?”

 

하니, 예형이 말하기를,

 

임금을 속이고 업신여기는 것이 바로 무례한 것이다. 내가 어버이께서 물려주신 모양을 드러내서 청백(淸白)한 몸을 보일 뿐이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네가 청백(淸白)하면 누구는 더러우냐?”

 

하니,

 

衡曰汝不識賢愚是眼濁也不讀詩書是口濁也不納忠言是耳濁也不通古今是身濁也不容諸侯是腹濁也常懷篡逆是心濁也吾乃天下名士用爲鼓吏是猶陽貨輕仲尼臧倉毀孟子耳欲成王霸之業而如此輕人耶時孔融在坐恐操殺衡乃從容進曰禰衡罪同胥靡不足發明王之夢操指衡而言曰令汝往荊州爲使如劉表來降便用汝作公卿衡不肯往操教備馬三匹令二人扶挾而行卻教手下文武整酒於東門外送之

 

예형이 말하기를,

 

네가 어진 것과 어리석은 걸 식별치 못하니 바로 눈이 흐린 것이다. 시서를 읽지 않으니 입이 흐린 것이고, 충언을 용납지 않으니 귀가 흐린 것이다. 고금에 통달하지 못하니 몸이 흐린 것이고, 제후를 용납지 않으니 뱃속이 흐린 것이다. 늘 찬역을 품으니 마음이 흐린 것이다. 내가 바로 천하의 명사인데 북이나 치게 하니 양화가 중니(공자)를 업신여기고 장창이 맹자를 훼방한 것과 같을 뿐이다. 패왕의 공업을 이루겠다면서 사람을 이토록 무시하는가?”

 

했다. 이때 공융이 좌석에 있다가 조조가 예형을 죽일까 두려워서 조용히 진언하기를,

 

예형의 죄는 서미(노역형)에 처할 만하니 옛 현명한 임금이 찾던 훌륭한 인재로는 부족합니다.”

 

하니, 조조가 예형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너를 형주에 사신으로 보내겠다. 만약 유표가 투항하면 너를 공경대신으로 삼겠다.”

 

했다. 예형이 가려고 하지 않았다. 조조가 말 세 필을 준비하고 부하 두 사람에게 그를 끌고 가게 했다. 또한 자기 밑의 문무 관리들에게 술을 마련해서 동문 밖에서 배웅하게 했다.

 

荀彧曰如禰衡來不可起身衡至下馬入見衆皆端坐衡放聲大哭荀彧問曰何爲而哭衡曰行於死柩之中如何不哭衆皆曰吾等是死屍汝乃無頭狂鬼耳衡曰吾乃漢朝之臣不作曹瞞之黨安得無頭衆欲殺之荀彧急止之曰量鼠雀之輩何足汗刀衡曰吾乃鼠雀尚有人性汝等只可謂之蜾蟲衆恨而散衡至荊州見劉表畢雖頌德實譏諷表不喜令去江夏見黃祖或問表曰禰衡戲謔主公何不殺之表曰禰衡數辱曹操操不殺者恐失人望故令作使於我欲借我手殺之使我受害賢之名也吾今遣去見黃祖使曹操知我有識衆皆稱善

 

순욱이 말하기를,

 

예형이 오더라도 일어나지 맙시다.”

 

했다. 예형이 와서 말에서 내려 들어와 보니 모두들 단정히 앉아 있었다. 예형이 목놓아 크게 우니, 순욱이 묻기를

 

어째서 우시오?”

 

했다. 예형이 말하기를,

 

시체를 넣은 관들 가운데 왔으니 어찌 울지 않겠소?”

 

했다. 모두 말하기를,

 

우리가 죽은 시체라면 너는 바로 머리 없는 미친 귀신이겠구나!”

 

하니, 예형이 말하기를,

 

나는 한나라 신하로서 조만(조조의 어릴 때 이름 아만)의 도당이 아니거늘 어찌 머리가 없겠소?”

 

했다. 모두 그를 죽이려 하자 순욱이 급히 말려 말하기를,

 

쥐나 참새 같은 인간인데 어찌 칼을 더럽히겠소.”

 

하니, 예형이 말하기를,

 

내가 바로 쥐나 참새라도 인성이 남았지만, 너희들은 버러지라고 할 밖에!”

 

하였다. 모두들 한탄하며 흩어졌다. 예형이 형주에 이르러 유표를 만나고서 비록 덕을 칭송하지만 실은 비웃고 풍자했다. 유표가 기분이 나빠서 그에게 강하로 가서 황조를 만나게 했다. 누군가 유표에게 묻기를,

 

예형이 주공을 놀렸는데 어찌 죽이지 않으십니까?”

 

하니, 유표가 말하기를,

 

예형이 여러 번 조조를 욕보였지만 조조가 죽이지 않은 것은 인망을 잃을까 두려워서요. 그래서 내게 사신으로 보냈으니, 내 손을 빌려 그를 죽이고 내가 현자를 해쳤다는 악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오. 내가 지금 황조에게 보낸 것은 조조에게 내가 그 의도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요

 

했다. 모두들 훌륭하다고 칭송했다.

 

時袁紹亦遣使至表問衆謀士曰袁本初又遣使來曹孟德又差禰衡在此當從何便從事中郎將韓嵩進曰今兩雄相持將軍若欲有爲乘此破敵可也如其不然將擇其善者而從之今曹操善能用兵賢俊多歸其勢必先取袁紹然後移兵向江東恐將軍不能禦莫若舉荊州以附操操必重待將軍矣表曰汝且去許都觀其動靜再作商議嵩曰君臣各有定分嵩今事將軍雖赴湯蹈火一唯所命將軍若能上順天子下從曹公使嵩可也如持疑未定嵩到京師天子賜嵩一官則嵩爲天子之臣不複爲將軍死矣表曰汝且先往觀之吾別有主意

 

이때 원소가 보낸 사신도 도착했다. 유표가 여러 모사들에게 묻기를,

 

원본초가 사신을 보내왔고, 조맹덕이 보낸 예형도 여기 있으니, 어느 편을 따라야 하겠소?”

 

하니, 종사중랑장 한숭이 나와서 말하기를,

 

지금 두 영웅이 대치하니 장군께서 무언가 하시려거든 이 틈에 적을 깨뜨리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은 자를 택해서 따라야 합니다. 지금 조조는 용병을 잘하고 현준한 이들이 많이 따르니 그 세력이 틀림없이 원소를 먼저 취할 것이고, 그런 뒤에 강동을 향해 병력을 이동할텐데 장군께서 막아내지 못하실까 걱정입니다. 형주를 들어 조조에게 붙는 것이 나으니 그러면 조조가 반드시 장군을 후대할 것입니다.”

 

하였다. 유표가 말하기를,

 

그대가 허도에 가서 동정을 살펴보고 온 뒤에 다시 상의합시다.”

 

하니, 한숭이 말하기를,

 

군신은 각자 정해진 분수가 있습니다. 제가 지금 장군을 모시니 비록 끓는 물과 타오르는 불길에 뛰어든들 오직 명령을 따를 뿐입니다. 장군께서 위로 천자를 따르시고 아래로 조공을 따르시겠다면 저도 그리할 것입니다. 망설이고 정하지 못하시는데 제가 서울에 갔다가 천자께서 벼슬을 내리시면 천자의 신하가 되는 것이니 다시 돌아와서 장군을 위해 죽을 수 없게 됩니다.”

 

했다. 유표가 말하기를,

 

그대가 먼저 가서 살피시오. 나에게 따로 생각이 있소.”

 

하였다.

 

嵩辭表到許都見操操遂拜嵩爲侍中領零陵太守荀彧曰韓嵩來觀動靜未有微功重加此職禰衡又無音耗丞相遣而不問何也操曰禰衡辱吾太甚故借劉表手殺之何必再問遂遣韓嵩回荊州說劉表嵩回見表稱頌朝廷盛德勸表遣子入侍表大怒曰汝懷二心耶欲斬之嵩大叫曰將軍負嵩焉不負將軍蒯良曰嵩未去之前先有此言矣劉表遂赦之

 

한숭이 유표와 작별하고 허도로 가서 조조를 만났다. 조조가 한숭을 시중으로 삼고 영릉태수를 맡겼다. 순욱이 말하기를,

 

한숭이 동정을 살피러 와서 아직 아무 공훈도 없는데 벼슬을 크게 내리셨습니다. 또한 예형의 소식을 모르는데 승상께서 한숭에게 묻지 않은 건 무슨 까닭입니까?”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예형이 나를 심하게 모욕하므로 유표의 손을 빌려 죽이려 한 것인데 하필 또 물을 필요가 있소?”

 

했다. 마침내 한숭을 형주로 되돌려 보내서 유표를 설득하게 했다. 한숭이 돌아가서 유표를 만나 조정의 성덕을 칭송하고 유표에게 아들을 보내서 천자를 뵙도록 권했다. 유표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네가 두 마음을 품었구나!”

 

하고, 베려 하자 한숭이 크게 외쳐 말하기를,

 

장군께서 저를 저버리셨는데, 어찌 제가 장군을 저버리지 않겠습니까!”

 

했다. 괴량이 말하기를,

 

한숭이 가기 전에 이미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니, 유표가 곧 용서했다.

 

人報黃祖斬了禰衡表問其故對曰黃祖與禰衡共飲皆醉祖問衡曰君在許都有何人物衡曰大兒孔文舉小兒楊德祖除此二人別無人物祖曰似我何如衡曰汝似廟中之神雖受祭祀恨無靈驗祖大怒曰汝以我爲土木偶人耶遂斬之衡至死罵不絕口劉表聞衡死亦嗟呀不已令葬於鸚鵡洲邊

 

황조가 예형을 참했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유표가 사연을 물었다. 대답하기를,

 

황조가 예형과 함께 술을 마시다가 둘다 취했습니다. 황조가 예형에게 묻기를, ‘그대가 허도에 있어보니 어떤 인물이 있더이까?’하니, 예형이 말하기를, ‘큰 아이는 공문거(공융), 작은 아이는 양덕조(양수). 이 둘을 빼고 따로 인물이 없소.’라고 했습니다. 황조가 말하기를, ‘나와 비교하면 어떻소?’하니, 예형이 말하기를, ‘너 따위야 사당 속의 귀신 같으니, 비록 제사를 받아먹지만 아무 영험이 없는 게 안타깝구나!’했습니다. 황조가 크게 노해서 말하기를, ‘네가 나를 흙이나 나무로 만든 인형으로 여기느냐!’하고서 바로 베었습니다. 예형이 숨이 끊어질 때까지 입에서 욕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였다. 유표가 예형의 죽음을 듣고 탄식해 마지않고 앵무주 가에 묻어주게 했다.

 

後人有詩歎曰

 

黃祖才非長者儔

禰衡珠碎此江頭

今來鸚鵡洲邊過

惟有無情碧水流

 

뒷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하기를,

 

황조의 재능이 뛰어난 이의 짝이 못 되어,

예형이 이 강어귀에서 구슬처럼 부숴졌네.

지금도 앵무주 가를 지나노라면,

오로지 무정한 푸른 물만 흐르네.”

 

라고 했다.

 

卻說曹操知禰衡受害笑曰腐儒舌劍反自殺矣因不見劉表來降便欲興兵問罪荀彧諫曰袁紹未平劉備未滅而欲用兵江漢是猶舍心腹而順手足也可先滅袁紹後滅劉備江漢可一掃而平矣操從之

 

한편, 조조가 예형이 해를 당했다는 것을 알고, 웃으며 말하기를,

 

썩은 유생의 혀가 칼 같더니 도리어 자기를 죽였구나!”

 

했다. 그리고 유표가 투항하지 않았다 하여 병력을 일으켜 죄를 물으려 했다. 순욱이 간하기를,

 

원소를 아직 평정하지 못하였고 유비도 아직 없애지 못하였는데 강한(형주 지역)에 용병하신다면, 심장과 복부를 버려두고 손발을 돌보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먼저 원소를 멸하고서 유비를 멸하시면 강한을 한번에 쓸어서 평정하실 수 있습니다.”

 

하니, 조조가 따랐다.

 

且說董承自劉玄德去後日夜與王子服等商議無計可施建安五年元旦朝賀見曹操驕橫愈甚感憤成疾帝知國舅染病令隨朝太醫前去醫治此醫乃洛陽人姓吉名太字稱平人皆呼爲吉平當時名醫也平到董承府用藥調治旦夕不離常見董承長籲短歎不敢動問時值元宵吉平辭去承留住二人共飲飲至更餘承覺困倦就和衣而睡忽報王子服等四人至承出接入服曰大事諧矣承曰願聞其說服曰劉表結連袁紹起兵五十萬共分十路殺來馬騰結連韓遂起西涼軍七十二萬從北殺來曹操盡起許昌兵馬分頭迎敵城中空虛若聚五家僮仆可得千餘人乘今夜府中大宴慶賞元宵將府圍住突入殺之不可失此機會

 

한편, 동승은 현덕이 떠나간 뒤부터 밤낮으로 왕자복 등과 상의하지만 마땅한 계책이 없었다. 건안 5, 새해 첫날 조정의 하례식에서 조조의 교만방자(驕慢放恣)함이 더욱 심한 것을 보고 울분이 치솟아 병이 되었다. 황제가 국구가 아픈 것을 알고 조회 뒤에 태의에게 가서 치료하게 했다. 이 태의는 낙양 사람으로 성은 길이고 이름은 태이며 자는 평이라 하였다. 사람들이 모두 길평이라 부르는 당시의 명의였다. 길평이 동승의 부중에 가서 약을 조제하고 치료하며 아침저녁으로 자리를 뜨지 않았다. 늘 동승이 길거나 짧게 탄식하는 걸 보면서도 감히 묻지 못했다. 때가 마침 대보름이 되어, 길평이 작별하고 가려고 하자 동승이 머물게 하고서 두 사람이 함께 술을 마셨다. 밤늦도록 마시다 동승이 피곤해서 옷을 입은 채 잠들었다. 문득 왕자복 등 네 사람이 왔다고 하므로 동승이 나가서 맞이해 들였다. 왕자복이 말하기를,

 

대사가 이뤄지겠소!”

 

하니, 동승이 말하기를,

 

그 설명을 듣고 싶소.”

 

했다. 왕자복이 말하기를,

 

유표가 원소와 연결해서 50만 대군을 일으켜 열 갈래로 나눠서 쇄도해 오고, 마등은 한수와 연결해서 서량군 72만을 일으켜 북쪽에서 쇄도해 온다고 하오. 조조가 허창의 병력을 모조리 일으키고 분산해서 대적하니 성중이 텅 비었소. 만약 우리 다섯 집안 하인만 모아도 1천여 인이오. 오늘 밤 부중에서 큰 연회를 열어 대보름을 경하하는 틈에 부중을 포위하고 돌입해서 죽여야 하오. 이 기회를 놓쳐선 아니 되오!”

 

하였다.

 

承大喜即喚家奴各人收拾兵器自己披掛綽槍上馬約會都在內門前相會同時進兵夜至二鼓衆兵皆到董承手提寶劍徒步直入見操設宴後堂大叫操賊休走一劍剁去隨手而倒霎時覺來乃南柯一夢口中猶罵操賊不止吉平向前叫曰汝欲害曹公乎承驚懼不能答吉平曰國舅休慌某雖醫人未嘗忘漢某連日見國舅嗟歎不敢動問恰才夢中之言已見真情幸勿相瞞倘有用某之處雖滅九族亦無後悔承掩面而哭曰只恐汝非真心

 

동승이 크게 기뻐하고 즉시 하인들에게 무기를 수습하케 하고 자기도 갑옷을 입고 창을 움켜쥐고 말에 올랐다. 내문 앞에 모두 모여서 동시에 진격하기로 약속했다. 그날밤 2경을 알리는 북이 울리자 병력이 모두 도착했다. 동승이 손에 보검을 쥐고 곧장 걸어 들어가 후당에서 연회를 열고 있는 조조를 발견하고서 크게 외치기를,

 

조조 역적아! 달아나지 말라!”

 

하고, 한 칼에 베어버리고 손으로 뒤집었다. 삽시간에 잠이 깨니 바로 남가일몽이었다. 입으로는 아직도 조조를 욕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길평이 다가와서 외쳐 말하기를,

 

당신이 조공을 해치려 하시오?”

 

했다. 동승이 놀랍고 두려워 답을 하지 못했다. 길평이 말하기를,

 

국구께서 놀라지 마십시오. 제 비록 의생이지만 한나라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날마다 국구께서 탄식하시는 걸 봤으나 감히 묻지 못하였습니다. 마침 꿈을 꾸시다 말씀하시므로 진정을 알게 됐습니다. 행여나 감추지 마십시오. 만약 제가 쓰일 데 있다면 비록 구족이 멸해도 후회가 없겠습니다.”

 

했다. 동승이 얼굴을 가리고 울며 말하기를,

 

다만 진심이 아닐까 두렵소.”

 

했다.

 

平遂咬下一指爲誓承乃取出衣帶詔令平視之且曰今之謀望不成者乃劉玄德馬騰各自去了無計可施因此感而成疾平曰不消諸公用心操賊性命只在某手中承問其故平曰操賊常患頭風痛入骨髓才一舉發便召某醫治如早晚有召只用一服毒藥必然死矣何必舉刀兵乎承曰若得如此救漢朝社稷者皆賴君也

 

길평이 곧 손가락 하나를 물어뜯어서 맹세하자, 동승이 의대의 조서를 꺼내 길평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말하기를,

 

지금 내 소망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바로 유현덕과 마등이 각자 떠나서 쓸 만한 계책이 없어서요. 그래서 근심하다 병이 됐소.”

 

하니, 길평이 말하기를,

 

여러 사람이 마음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조조 역적의 목숨이 단지 제 손 안에 달렸습니다.”

 

하였다. 동승이 그 까닭을 묻자 길평이 말하기를,

 

조조가 늘 두통을 앓는데 뼛속까지 아프고 한번 발작하면 바로 저를 불러 치료를 받습니다. 조만간에 조조가 부를 때 한번 독약을 먹인다면 반드시 죽을 것이니 창칼을 들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니, 동승이 말하기를,

 

만약 그 같이만 된다면 한나라 사직을 구하는 것이 모두 그대에게 달렸소!”

 

했다.

 

時吉平辭歸承心中暗喜步入後堂忽見家奴秦慶童同侍妾雲英在暗處私語承大怒喚左右捉下欲殺之夫人勸免其死各人杖脊四十將慶童鎖於冷房慶童懷恨夤夜將鐵鎖扭斷跳牆而出徑入曹操府中告有機密事操喚入密室問之慶童雲王子服吳子蘭種輯吳碩馬騰五人在家主府中商議機密必然是謀丞相家主將出白絹一段不知寫著甚的近日吉平咬指爲誓我也曾見曹操藏匿慶童於府中董承只道逃往他方去了也不追尋

 

길평이 작별하고 돌아가고, 동승이 속으로 기뻐하며 후당에 걸어 들어갔을 때, 집안 노비 진경동이 시첩 운영과 함께 어두운 곳에서 몰래 밀어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고, 동승이 크게 노해서 좌우를 불러서 잡아들여 죽이려고 했다. 부인이 권해서 살려주고 각각 등을 40대씩 치고서 진경동을 냉방에 자물쇠를 잠가 가두었다. 진경동이 한을 품고 밤이 깊자 자물쇠를 끊고서 담을 넘어 달아났다. 지름길로 조조 부중으로 가서 기밀이 있다 알렸다. 조조가 밀실로 불러서 묻자 진경동이 이르기를,

 

왕자복, 오자란, 종집, 오석, 마등 다섯 사람이 집주인의 부중에서 기밀을 상의하는 것이 틀림없이 승상을 도모하는 것이었습니다. 집주인이 흰 비단 한 조각을 꺼내던데, 무엇을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길평이 손가락을 깨물어 맹세하는 것도 제가 봤습니다.”

 

했다. 조조가 진경동을 부중에 숨겼다. 동승은 그가 다른 곳으로 달아난 줄로 생각하고 찾지 않았다.

 

次日曹操詐患頭風召吉平用藥平自思曰此賊合休暗藏毒藥入府操臥於床上令平下藥平曰此病可一服即愈教取藥罐當面煎之藥已半幹平已暗下毒藥親自送上操知有毒故意遲延不服平曰乘熱服之少汗即愈操起曰汝既讀儒書必知禮義君有疾飲藥臣先嘗之父有疾飲藥子先嘗之汝爲我心腹之人何不先嘗而後進平曰藥以治病何用人嘗平知事已泄縱步向前扯住操耳而灌之操推藥潑地磚皆迸裂

 

다음날 조조가 두통을 가장하고서 길평을 불러 약을 쓰게 했다. 길평이 스스로 생각하기를,‘이 역적은 이제 끝났다!’하고, 몰래 독약을 갖고 부중으로 들어갔다. 조조가 침상에 누워서 길평더러 투약하게 하니, 길평이 말하기를,

 

이 병은 한번 복약하시면 즉시 낫습니다.”

 

했다. 약탕기를 가져오게 해서 바로 앞에서 달였다. 약이 반쯤 달여지자 길평이 몰래 독약을 넣고 직접 바쳤다. 조조가 독이 든 것을 알고 일부러 지체하며 약을 먹지 않았다. 길평이 말하기를,

 

뜨거울 때 드셔야 땀이 조금 나고 즉시 낫습니다.”

 

하니, 조조가 일어나며 말하기를,

 

너도 경전을 읽어서 예의를 알텐데. ‘임금께서 병이 나서 약을 마실 때 신하가 먼저 맛을 본다. 아버지가 아파서 약을 마실 때 아들이 먼저 맛을 본다.’고 하였다. 너는 내 심복인데 어찌 먼저 맛본 뒤에 바치지 않느냐?”

 

했다. 길평이 말하기를,

 

약으로 병을 치료하는데 왜 남에게 맛보게 하겠습니까?”

 

하고, 길평이 일이 누설된 걸 알고서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조조의 귀를 붙잡고서 약을 부어 넣으려 했다. 조조가 약을 밀쳐서 바닥에 흩뿌려지자 (바닥의) 벽돌이 모두 갈라졌다.

 

操未及言左右已將吉平執下操曰吾豈有疾特試汝耳汝果有害我之心遂喚二十個精壯獄卒執平至後園拷問操坐於亭上將平縛倒於地吉平面不改容略無懼怯操笑曰量汝是個醫人安敢下毒害我必有人唆使你來你說出那人我便饒你平叱之曰汝乃欺君罔上之賊天下皆欲殺汝豈獨我乎操再三磨問平怒曰我自欲殺汝安有人使我來今事不成惟死而已操怒教獄卒痛打打到兩個時辰皮開肉裂血流滿階操恐打死無可對證令獄卒揪去靜處權且將息

 

조조가 미처 말하기 전에 이미 좌우에서 길평을 잡아놓았다. 조조가 말하기를,

 

내가 아픈 게 아니라 너를 시험해봤을 뿐이다! 네가 감히 나를 해칠 마음을 품다니!”

 

했다. 곧 건장한 옥졸 스무 명을 불러서 길평을 후원으로 끌고가서 고문했다. 조조는 정자 위에 앉고 길평은 묶여서 땅에 엎어져 있었다. 길평은 낯빛이 변하지 않았고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조조가 웃으며 말하기를,

 

너 같은 일개 의생이 어찌 감히 나를 독살하겠느냐? 반드시 누군가 너에게 사주했을텐데 네가 그 사람을 말한다면 내가 너를 살려주겠다.”

 

하니, 길평이 꾸짖어 말하기를,

 

네가 임금을 속이는 역적이라 천하가 모두 너를 죽이고자 하는데 어찌 나 혼자뿐이겠느냐!”

 

했다. 조조가 두번 세번 회유하여 물었지만, 길평이 성을 내어 말하기를,

 

내 스스로 너를 죽이려했지, 어찌 남이 나를 시켰겠느냐? 지금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오직 죽을 밖에 없다!”

 

하니, 조조가 노해서 옥졸에게 몹시 때리게 했다. 네 시간 가량을 매우 치니 살갗이 터지고 살이 갈라지고 피가 계단에 가득 흘렀다. 조조가 길평이 맞아 죽어서 대증을 못 할까 두려워서 옥졸에게 조용한 데 끌고가서 잠시 멈추게 했다.

 

傳令次日設宴請衆大臣飲酒惟董承托病不來王子服等皆恐操生疑只得俱至操於後堂設席酒行數巡筵中無可爲樂我有一人可爲衆官醒酒教二十個獄卒與吾牽來須臾只見一長枷釘著吉平拖至階下操曰衆官不知此人連結惡黨欲反背朝廷謀害曹某今日天敗請聽口詞操教先打一頓昏絕於地以水噴面吉平蘇醒睜目切齒而罵曰操賊不殺我更待何時操曰同謀者先有六人與汝共七人耶平只是大罵王子服等四人面面相覷如坐針氈操教一面打一面噴平並無求饒之意操見不招且教牽去

 

다음날 연회를 연다고 전령하고, 여러 대신들을 불러서 술을 마셨다. 오직 동승이 병이 났다고 오지 않았다. 왕자복 등은 모두 조조가 의심할까 두려워서 올 수 밖에 없었다. 조조가 후당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술이 몇차례 돌자 말하기를,

 

술자리에 즐길 거리가 없어서야 되겠소? 내게 한 사람이 있는데 여러분 술이 깰 것이오.”

 

했다. 옥졸 스무 명에게 지시하기를,

 

내 앞에 끌고 와라!”

 

했다. 잠시 뒤 목에 칼을 씌운 길평이 계단 아래 끌려왔다. 조조가 말하기를,

 

여러분은 모르겠지만, 이 자는 악당과 연결하여 조정을 배반하고 저를 해치려했소. 오늘 하늘의 도움으로 저자의 기도를 깨뜨렸으니 저놈의 말을 들어보시길 청하오.”

 

하였다. 조조가 먼저 한차례 매질하게 하니 길평이 혼절해서 바닥에 쓰러진다. 그 얼굴에 물을 뿜으니, 길평이 깨어나서 눈을 부릅뜨고 이를 갈며 욕하기를,

 

조조 역적아! 나를 죽이지 않고 언제까지 기다릴테냐?”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공모자가 원래 여섯인데 너까지 일곱 뿐이냐?”

 

했다. 길평은 대답 않고 크게 욕을 했다. 왕자복 등 네 사람이 서로 눈치를 보며 마치 바늘방석에 앉은 듯했다. 조조가 한편으로 때리고, 한편으로 물을 붓게 했다. 그러나 길평은 결코 용서를 빌지 않았다. 조조가 길평이 흔들리지 않자 끌고 가라고 했다.

 

衆官席散操只留王子服等四人夜宴四人魂不附體只得留待操曰本不相留爭奈有事相問汝四人不知與董承商議何事子服曰並未商議甚事操曰白絹中寫著何事子服等皆隱諱操教喚出慶童對證子服曰汝於何處見來慶童曰你回避了衆人六人在一處畫字如何賴得子服曰此賊與國舅侍妾通奸被責誣主不可聽也操曰吉平下毒非董承所使而誰子服等皆言不知操曰今晚自首尚猶可恕若待事發其實難容子服等皆言並無此事操叱左右將四人拿住監禁

 

여러 관리가 흩어지는데, 조조가 왕자복 등 넷만 남겨서 밤 연회를 베풀겠다고 했다. 넷이 넋이 나간 채 머물러서 기다릴 뿐이었다. 조조가 말하기를,

 

원래 머물게 하려 하지 않았는데, 어쩌다 물어볼 일이 생겼소. 그대들 네 사람은 동승과 무엇을 상의했는지 모르오?”

 

하니, 왕자복이 말하기를,

 

별다른 일을 상의한 적이 없습니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흰 비단에 무엇이라 적었소?”

 

하니, 왕자복 등 모두 숨기고 말하지 않았다. 조조가 진경동을 불러서 대질하게 했다. 왕자복이 말하기를,

 

네가 어디서 보았느냐?”

 

하니, 진경동이 말하기를,

 

너희가 사람들 눈을 피해서 여섯이 한 곳에서 서명해 놓고서 어찌 발뺌하느냐?”

 

했다. 왕자복이 말하기를,

 

이 도적놈이 국구의 시첩과 간통하고서 혼이 나자 주인을 무고하는 것이니 믿어선 안 됩니다.”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길평이 독살을 꾀한 게 동승이 시킨 게 아니면 누구겠느냐?”

 

했다. 왕자복 등이 모두 모르겠다고 하자, 조조가 말하기를,

 

오늘 저녁에 자수하면 아직 용서할 수 있지만 만약 일이 밝혀지기를 기다린다면 그때는 진실로 용서하기 어렵다!”

 

했다. 왕자복 등이 모두 결코 그런 일이 없다 말했다. 조조가 좌우에게 소리쳐서 넷을 붙잡아 가두게 했다.

 

次日帶領衆人徑投董承家探病承只得出迎操曰緣何夜來不赴宴承曰微疾未痊不敢輕出操曰此是憂國家病耳承愕然操曰國舅知吉平事乎承曰不知操冷笑曰國舅如何不知喚左右牽來與國舅起病承舉措無地須臾二十獄卒推吉平至階下吉平大罵曹操逆賊操指謂承曰此人曾攀下王子服等四人吾已拿下廷尉尚有一人未曾捉獲因問平曰誰使汝來藥我可速招出平曰天使我來殺逆賊操怒教打身上無容刑之處承在座視之心如刀割操又問平曰你原有十指今如何只有九指平曰嚼以爲誓誓殺國賊

 

다음날 (조조가) 무리를 이끌고 동승의 집으로 가서 문병했다. 동승이 어쩔 수 없이 나와서 맞이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어째서 밤에 연회에 오지 않았소?”

 

하니, 동승이 말하기를,

 

좀 아픈 게 아직 낫지 않아 가볍게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국가를 걱정하는 병일테지요.”

 

하니, 동승이 깜짝 놀랐다. 조조가 말하기를,

 

국구께서 길평의 일을 아시오?”

 

하니, 동승이 말하기를,

 

모릅니다.”

 

했다. 조조가 냉소하며 말하기를,

 

국구께서 어째서 모르시오?”

 

하고, 좌우를 불러서,

 

그 자를 끌고 와서 국구의 병을 치료하게 하라.”

 

고 했다. 동승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잠시 뒤 옥졸 스무 명이 길평을 계단 아래에 끌고 왔다. 길평이 크게 욕하기를,

 

조조 역적아!”

 

하니, 조조가 가리키며 동승에게 말하기를,

 

이 자가 이미 왕자복 등 넷과 연루됐기에, 내가 이미 정위에게 잡아 가두게 했소. 아직 한 명이 남았는데 못 잡았소.”

 

하고, 길평에게 묻기를,

 

누가 너에게 나를 독살하라고 했느냐? 어서 불러내라!”

 

했다. 길평이 말하기를,

 

하늘이 나에게 역적을 죽이라 하였다!”

 

하니, 조조가 성을 내어 치라고 했다. 길평의 몸이 어디 성한 데가 없었다. 동승이 앉아서 보고 가슴이 칼로 베이듯했다. 조조가 다시 길평에게 묻기를,

 

네가 원래 열 손가락일텐데 지금 어째서 아홉 개뿐이냐?”

 

하니,

 

물어뜯어 맹세를 했다. 나라의 역적을 죽이겠다 맹세했다!”

 

하였다.

 

操教取刀來就階下截去其九指一發截了教你爲誓平曰尚有口可以吞賊有舌可以罵賊操令割其舌平曰且勿動手吾今熬刑不過只得供招可釋吾縛操曰釋之何礙遂命解其縛平起身望闕拜曰臣不能爲國家除賊乃天數也拜畢撞階而死操令分其肢體號令時建安五年正月也

 

조조가 칼을 가져오게 해서 계단 아래에서 아홉 손가락을 잘라버리라고 시키며 말하기를,

 

모조리 잘라버렸으니 네가 맹서해 봐라!”

 

하였다. 길평이 말하기를,

 

아직 입이 있으니 역적을 씹어삼킬 수 있고 혀가 있으니 역적을 욕할 수 있다.”

 

하니, 조조가 혀를 베어내라고 했다. 길평이 말하기를,

 

손을 멈춰라! 내 지금 형벌을 참아내지 못하여 자백해야겠다. 결박을 풀어달라.”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푸는 게 어찌 어렵겠느냐?”

 

하고, 곧 결박을 풀어주라고 명령했다. 길평이 일어나서 궁궐을 향해 절하고 말하기를,

 

신이 나라를 위해 역적을 제거치 못한 것도 바로 하늘의 운수입니다!”

 

하고, 절을 마치자 계단에 스스로 부딪혀서 죽었다. 조조가 그 사지를 토막내서 사람들에게 보이게 했다. 이때가 건안 5년 정월이었다.

 

史官有詩曰

 

漢朝無起色醫國有稱平

立誓除奸黨捐軀報聖明

極刑詞愈烈慘死氣如生

十指淋漓處千秋仰異名

 

사관이 시를 지어 말하기를,

 

한나라가 나아질 기미가 없는데, 나라에 길평이란 의생 있었다.

간사한 무리를 제거하리라 맹세하고, 목숨 바쳐 천자께 보답하려 했네.

극형에도 언사는 더욱 맵고, 참혹하게 죽어도 기개는 살았었네.

열 손가락 피 뚝뚝 떨어지는 곳에, 영원히 남다른 이름을 우러르리라.”

 

라고 하였다.

 

操見吉平已死教左右牽過秦慶童至面前操曰國舅認得此人否承大怒曰逃奴在此即當誅之操曰他首告謀反今來對證誰敢誅之承曰丞相何故聽逃奴一面之說操曰王子服等吾已擒下皆招證明白汝尚抵賴乎即喚左右拿下命從人直入董承臥房內搜出衣帶詔並義狀操看了笑曰鼠輩安敢如此遂命將董承全家良賤盡皆監禁休教走脫一個操回府以詔狀示衆謀士商議要廢獻帝更立新君正是數行丹詔成虛望一紙盟書惹禍殃

 

조조가 길평이 이미 죽은 것을 보고 좌우에게 진경동을 앞으로 끌어오도록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국구께서 이 자를 아시오?”

 

하니, 동승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도망간 종놈이 여기 있구나! 즉시 주살해야 하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이 자가 모반을 신고해서 지금 대질하거늘 누가 감히 주살한단 말이냐?”

 

하니, 동승이 말하기를,

 

승상께서 어찌 도망간 종놈의 말만 들으시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왕자복 등을 이미 잡아서 모두 명백히 대질했는데 너는 아직도 부인하느냐?”

 

하고, 즉시 좌우를 불러서 체포케 하고, 종자들에게 동승의 침실에 난입해서 의대의 조서와 아울러 의장(창의문)을 수색해서 가져오게 했다. 조조가 흝어보고서 웃으며 말하기를,

 

쥐새끼들이 어찌 감히 이러하냐!”

 

하고, 곧 명령하기를,

 

동승 집안은 귀천을 불문하고 모조리 감금해서 한 놈도 놓치지마라.”

 

했다. 조조가 부중으로 돌아와서 조서와 의장을 보여주고 여러 모사와 함께 헌제를 폐하고 새 임금을 옹립할 것을 상의했다. 이야말로, 몇 줄의 피로 쓴 조서는 허망하게 되었고, 한 조각 맹세의 글은 재앙을 불렀구나.

 

未知獻帝性命如何且聽下文分解

 

헌제의 목숨이 어찌될 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의 이야기를 들으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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