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 넉 사, 不 아니 불, 問 물을 문

사마천(司馬遷)은 나라의 흥망성쇠(興亡盛衰)에는 언제나 조짐이 있다고 하였다. 흥하는 나라에는 군자(君子)가 기용되고, 망하는 나라에는 소인배(小人輩)가 득세(得勢)하는 것이 그 상서로운 신호라는 것이다. 그는 나아가 나라의 안정(安定)과 위기(危機)는 정책(政策)에 달려 있고, 존망(存亡)은 인재기용(人材起用)에 달려 있다고 일갈(一喝)하였다.
개혁(改革)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아무리 좋은 개혁정책이 있더라도 그 정책을 추진할 정직(正直)하고 굳센 인재가 없다면 개혁은 단지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렇다면 개혁을 위한 인재기용의 원칙은 무엇이어야 할까? 여기에 대해 가장 인상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는 것이 기원전 7세기 중반, 낙후된 진(秦)나라를 일약 강대국으로 변모시킨 진 목공(秦穆公)의 인재정책이다.
목공(穆公)은 진(秦)나라가 서방의 궁벽한 곳에 위치해 중원(中原)의 선진문화(先進文化)와 제도(制度)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을 안타깝게 여겼다. 그리하여 그는 대담한 해법을 내놓았으니, 바로 '사불문(四不問)'이라는 획기적인 인재정책이다. '사불문(四不問)'이란 말 그대로 네 가지를 따지지 않겠다는 것으로, 민족(民族), 국적(國籍), 신분(身分), 연령(年齡)에 관계없이 유능한 자는 누구든 기용하겠다는 것이다.
목공(穆公)은 이 정책에 따라 우(虞)나라 출신의 백리해(百里奚)를 발탁하였다. 당시 백리해(百里奚)는 노예 신분에 나이도 60을 넘긴 노인이었으나, 목공(穆公)은 그가 가진 재능을 알아보고 대부(大夫)로 삼았다. 백리해(百里奚)는 그에 보답하듯 많은 인재들을 목공(穆公)에게 추천했고, 이들의 도움으로 진(秦)나라는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탈바꿈하며 춘추(春秋) 5패(覇)의 반열에 올랐다.
2600여 년 전 목공(穆公)의 '사불문(四不問)' 정책은 진(秦)나라를 부국강병(富國强兵)으로 이끄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이 인재정책은 그 후에도 진(秦)나라의 인재 등용의 근간이 되어 끊임없이 외부 인재를 수혈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결국 이 기초가 약 400년 뒤 천하통일(天下統一)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사마천(司馬遷)이 말한 대로, 한 나라의 흥망성쇠(興亡盛衰)는 어떤 인재를 기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마찬가지로, 조직도 개혁하려면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위장한 소인을 물리치고 진정한 현인(賢人)을 기용해야 한다. 조직 내에서 인재가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하고, 외부적으로는 통념과 기득권을 초월해 우수한 인재를 과감히 등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사마천(司馬遷)의 통찰은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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