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6. 깊어가는 가을밤[秋意 추의]
撫枕中宵坐, 挑燈有所思. 林疏風過易, 天迥雁來遲. 雨意偏侵夢, 秋光欲染詩. 昭陽宮漏歇, 明月下西池. |
베개 베고 뒤척이다 밤중에 일어나 앉자, 등불 심지 돋우고서 생각에 잠겨든다. 숲속이 휑해져 바람은 쉽게 지나가도, 하늘이 멀어져 기러기는 천천히 날아온다. 비가 오려는지 꿈속까지 들이치는데, 가을빛은 시마저도 물들게 하려나 보다. 소양궁에 물시계가 그칠 무렵이면, 밝은 달은 서쪽 연못에 떨어지겠지. 무침중소좌, 도등유소사. 임소풍과이, 천형안래지. 우의편침몽, 추광욕염시. 소양궁루헐, 명월하서지. |
성여학(成汝學·1557~?) |
선조(宣祖) 시대의 시인, 학천(鶴泉) 성여학(成汝學·1557~?)은 어느 가을밤, 잠 못 이루고 뒤척이며 한밤중에 시를 지었다. 잠이 오지 않자 성여학은 베개를 베고 뒤척이다가 결국 등불을 켰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여러 생각들이 그를 밤새 붙잡고 있었고, 밖에서는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와 바람이 휑한 숲을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러기(雁)들은 이미 날아갔으나, 가을 하늘이 너무 높아 그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듯한 서늘한 밤공기 속에서 성여학은 문득 가을의 차가움을 느끼며 꿈에서도 그 서늘함이 묻어났다. 잠들 수 없는 이 밤, 그는 결국 "오늘 밤은 글렀구나"라고 탄식하며, 소양궁(昭陽宮)에서 잠 못 이루는 후궁(後宮)처럼 서늘한 가을밤의 감상에 빠졌다. 서쪽 연못에 달이 질 때까지, 그는 이 가을밤을 벗 삼아 시(詩)를 짓기로 결심했다.
성여학은 가을의 차가운 밤을 바라보며 자연과 하나가 되었고, 그 고요하고도 서늘한 풍경 속에서 시를 지으며 자신의 마음을 담아냈다. 이렇듯 가을밤은 그에게 잠을 앗아갔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시(詩)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가을의 깊은 밤, 여러분도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낼 때가 있지 않은가? 성여학처럼 그 서늘한 아름다움을 시로 승화시켜보면 어떨까? 물론 시를 쓸 필요는 없다. 그냥 창밖을 바라보며 그 고요한 밤의 정취를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가을밤은, 잠을 이기는 서늘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니까.
이 시에서 중요한 교훈은 "잠 못 자는 밤은 누구에게나 있다"라는 점이다. 그러나 성여학은 그것을 낭비하지 않고 시를 짓는 데 썼다는 것! 우리는 어떨까? 잠 못 드는 밤, 그냥 뒤척이기보다는 창밖의 낙엽 소리라도 들어보면, 가을밤의 서늘한 매력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가을밤의 서늘함은 그저 추위가 아니라 마음에 스며드는 차분한 아름다움이라는 사실. 기러기 울음소리도, 바람 소리도 모두 그 밤의 시(詩)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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