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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백악에 오르니

오늘 漢詩 한 수/11월의 漢詩

by 진현서당 2024. 11. 16.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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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峰人立白雲中,
眼與天長直到窮.
海出喬桐浮遠碧,
日歸若木有餘紅.
如今始識東方大,
終古皆稱北嶽崇.
醉舞龍山還未得,
謾將頭帽倚西風.



흰 구름 속 푸른 봉우리에 사람이 올라서니,
하늘 끝 까마득히 눈길이 뻗어가네.
교동도 너머 먼바다에는 푸른 물결 떠 있고,
약목으로 해가 돌아가며 붉은 노을 풀어놓았네.


동방이 이렇게 큰 줄 이제야 알았나니,
북악의 드높음을 예로부터 칭송했네.
용산에서 술에 취해 춤추지는 못한대도,
모자를 벗어 던지고 서풍에 몸을 맡기네.


청봉인립백운중, 안여천장직도궁.
해출교동부원벽, 일귀약목유여홍.
여금시식동방대, 종고개칭북악숭.
취무용산환미득, 만장두모의서풍.

박준원(朴準源·1739~1807) 백악에 오르다[九日登白嶽 구일등백악]

* 약목(若木) : 해가 지는 곳. 예전에, 해가 지는 곳에 서 있었다는 나무.

   함지(咸池) : 해가 진다고 하는 서쪽의 큰 못.

 

1. 序言(서언): 북악에 오르다

 

, 서울 도심은 왜 이렇게 소란한가! 사람은 많고, 길은 좁고, 공기는 답답하다!”

박준원(朴準源), 순조의 외조부이자 풍류를 아는 이 영감님께서 이런 생각에 지친 나머지 白岳登攀(백악등반)을 결심했다. 누가 보더라도 이건 산행이라기보다 逃避行(도피행)에 가깝다.

백악의 정상에 닿으니, 영감님은 한숨을 크게 내쉬며 말했다.

山高月小(산고월소), 山高而我愈高(산고이아유고)!”

산은 높고 달은 작다지만, 오늘만큼은 내가 더 높구나!

 

2. 白雲與靑峰(백운여청봉): 푸른 봉우리와 흰 구름 속의 시선

 

"靑峰人立白雲中(청봉인립백운중), 眼與天長直到窮(안여천장직도궁)"

푸른 봉우리, 흰 구름 사이에 서니, 눈길이 하늘 끝까지 이어진다. 이 광경은 단순한 登高望遠(등고망원)이 아니다. 답답했던 가슴이 확 트이는 순간이다.

그러나 잠시 후, 박준원은 한 발짝 물러서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거, 내가 지금 너무 높아 보이면 신하들이 질투하겠는데?”

居安思危(거안사위), 높은 곳에서는 발을 조심해야 하는 법이다.

 

3. 海與日(해여일): 바다와 해의 대화

 

서쪽을 바라보니 海出喬桐(해출교동), 푸른 물결이 너울대며 교동도 저편으로 펼쳐져 있다. 바다 밑으로는 해가 내려가며 붉은 노을을 풀어놓는다.

아니, 若木(약목)이 정말 있는 건가? 해가 나무 위에 걸쳐 있다니, 참 신기하군!”

박준원은 노을을 바라보며 농담을 던졌다.

오늘 이 해는 꼭 醉漢(취한) 것 같군. 붉은 얼굴로 기댈 데를 찾는 걸 보면 말이야.”

 

4. 東方大國(동방대국): 우리나라가 이리도 크다니!

 

"如今始識東方大(여금시식동방대)"

백악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박준원은 새삼 깨달았다. 동방이 이렇게 넓고 크다는 사실을. 지금껏 그는 도심의 좁은 골목을 걸으며 小國思想(소국사상)에 갇혀 있었다.

예로부터 北岳崇高(북악숭고)라 칭송하더니, 참으로 맞는 말이구나!”

그는 넓은 시야와 함께 胸懷(흉회)도 넓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곧바로 투덜거렸다.

내가 북악에 올라서 이렇지, 평소에는 왜 이리 좁쌀 같은 마음이었을꼬?”

 

5. 醉舞龍山(취무용산): 용산에서의 춤은 실패했지만

 

박준원은 백악의 정취를 만끽하며 한 가지 아쉬움을 떠올렸다.

"醉舞龍山還未得(취무용산환미득)"

용산에서 술에 취해 춤을 추고 싶었건만, 아직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금세 태연하게 모자를 벗어 들고 말했다.

"謾將頭帽倚西風(만장두모의서풍)"

용산에서 춤은 못 춰도, 이 모자를 서풍에 맡기는 것으로 만족하리라!”

모자를 벗어 던지는 그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狂人風貌(광인풍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연과 하나 되는 자유로운 영혼의 표현이었다.

 

6. 笑中有悟(소중유오): 웃음 속 깨달음

 

백악에서의 하루는 그의 마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답답했던 가슴은 산바람에 씻기고, 좁은 생각은 넓은 풍경에 녹아내렸다.

이제 내가 내려가면, 모든 걸 大事化小(대사화소), 小事化無(소사화무)로 만들어야겠다!”

그러나 곧 이어 그는 농담도 덧붙였다.

물론, 모자를 서풍에 맡긴 것처럼, 모든 고민도 바람에 던져버리는 게 제일이지!”

 

7. 總結(총결): 백악에서 배운 삶의 여유

 

백악에서 내려오는 길, 박준원은 시를 읊으며 말했다.

靑峰白雲長相守(청봉백운장상수), 一笑山風萬事空(일소산풍만사공). 푸른 봉우리와 흰 구름은 항상 그 자리에 있지만, 한 번 웃고 나면 세상의 일들은 모두 바람 같구나!”

그리하여, 백악의 정상에서 박준원이 던진 모자는 단지 서풍에 맡겨진 것이 아니라, 그의 모든 근심을 담아 자연에 던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비로소 진정한 無憂無慮(무우무려)의 경지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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