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제60회 장송은 도리어 양수를 난처하게 하고, 방통은 서촉을 취할 것을 의논하다.

본문

 

 

第六十回

張永年反難楊修 龐士元議取西蜀

 

60

장송은 도리어 양수를 난처하게 하고, 방통은 서촉을 취할 것을 의논하다.

 

卻說那進計於劉璋者乃益州別駕姓張名松字永年其人生得額钁頭尖鼻偃齒露身短不滿五尺言語有若銅鍾劉璋問曰別駕有何高見可解張魯之危松曰某聞許都曹操掃蕩中原呂布二袁皆爲所滅近又破馬超天下無敵矣主公可備進獻之物松親往許都說曹操興兵取漢中以圖張魯則魯拒敵不暇何敢複窺蜀中耶劉璋大喜收拾金珠錦綺爲進獻之物遣張松爲使松乃暗畫西川地理圖本藏之帶從人數騎取路赴許都早有人報入荊州孔明便使人入許都打探消息

 

각설, 유장에게 계책을 바친 사람은 바로 익주 별가로서 성은 장이고, 이름은 송이며, 자는 영년이었다. 그 사람이 날 때부터 얼굴이 곡괭이처럼 뾰죡한데다 코는 납작하고 이는 드러났으며 키가 작아 5척이 못 되고 말소리는 구리종이 울리듯 했다. 유장이 묻기를,

 

별가가 무슨 고견을 가져 장로의 위협을 푸시겠소?”

 

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제가 듣건대 허도의 조조가 중원을 소탕했다고 합니다. 여포와 두 원씨(원소와 원술)가 모두 그에게 멸망됐습니다. 근래에 마초를 격파해 천하무적입니다. 주공께서 바칠 예물을 준비하시면, 제가 몸소 허도로 가서 조조를 설득해 병력을 일으켜 한중을 취해 장로를 도모하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장로는 적을 막느라 여가가 없게 되니 어찌 감히 다시 촉 땅을 엿보겠습니까?”

 

했다. 유장이 크게 기뻐하여 황금, 진주, 비단 등을 수습해서 조조에게 바칠 물건을 장만하여 장송을 사신으로 보냈다. 장송이 이에 몰래 서천의 지리 도본을 그려서 감춰 지니고, 종인 몇 기를 데리고 길을 나서 허도로 갔다. 어느새 어떤 사람이 형주에 보고하여 공명이 사람을 허도에 들여보내 소식을 탐지했다.

 

卻說張松到了許都館驛中住定每日去相府伺候求見曹操原來曹操自破馬超回傲睨得志每日飲宴無事少出國政皆在相府商議張松候了三日方得通姓名左右近侍先要賄賂卻才引入操坐於堂上松拜畢操問曰汝主劉璋連年不進貢何也松曰爲路途艱難賊寇竊發不能通進操叱曰吾掃清中原有何盜賊松曰南有孫權北有張魯西有劉備至少者亦帶甲十餘萬豈得爲太平耶

 

한편, 장송은 허도에 이르러 여관에 머물며 매일 승상부로 가서 조조와 만나기를 요청하여 기다렸다. 알고 보니 조조는 마초를 격파하고 돌아와서 뜻을 이룬 듯이 오만하여 매일 주연을 베풀고, 일이 없으니 잘 나오지 않고, 국정을 모두 승상부에서 상의했다. 장송이 사흘을 기다리고서야 겨우 그 성명을 전하게 되었다. 좌우의 근시들이 먼저 뇌물을 받고서야 그를 안으로 들이니 조조는 당상에 앉아 있었다. 장송이 절을 마치자 조조가 묻기를,

 

그대 주공 유장은 해마다 공물을 바치지 않는데 무슨 까닭이오?”

 

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길이 험난하고 도적들이 들끓으니 통행할 수가 없습니다.”

 

했다. 조조가 꾸짖기를,

 

내가 중원을 청소했거늘 무슨 도적이 있단 말이오?”

 

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남쪽에는 손권이 있고 북쪽에는 장로가 있으며 서쪽에는 유비가 있는데, 가장 적은 자도 무장병력이 십만이 넘거늘 어찌 태평하다고 하겠습니까?”

 

했다.

 

操先見張松人物猥瑣五分不喜又聞語言沖撞遂拂袖而起轉入後堂左右責松曰汝爲使命何不知禮一味沖撞幸得丞相看汝遠來之面不見罪責汝可急急回去松笑曰吾川中無謅佞之人也忽然階下一人大喝曰汝川中不會諂佞吾中原豈有諂佞者乎松觀其人單眉細眼貌白神清問其姓名乃太尉楊彪之子楊修字德祖現爲丞相門下掌庫主簿此人博學能言智識過人松知修是個舌辯之士有心難之修亦自恃其才小覷天下之士

 

조조가 보니 장송의 인물이 보잘것없어 좀 기쁘지 않은데다 그 말도 당돌하니 결국 소매를 떨쳐 일어나서 후당으로 들어가 버렸다. 좌우에서 장송을 책망하기를,

 

그대는 사신의 명을 띠고 왔거늘 어찌 예의를 모르고 당돌하기만 하오? 다행히 승상께서 그대가 멀리서 온 사정을 살펴서 견책을 하지 않았으니 어서 돌아가는 게 좋겠소!”

 

했다. 장송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우리 서천에는 아첨하는 이가 없습니다.”

 

하니, 문득 섬돌 아래 한 사람이 크게 호통치기를,

 

그대의 서천에는 아첨하는 사람이 없는데 우리 중원은 어찌 아첨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오?”

 

했다. 장송이 그 사람을 보니 눈썹이 성기고 눈이 가늘며 얼굴이 희고 정신이 맑았다. 그 성명을 물으니 바로 태위 양표의 아들 양수이고 자는 덕조이며 현재 승상 밑에서 창고를 담당하는 주부 벼슬을 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박학하고 말솜씨가 능하며 그 견식이 뛰어났다. 장송은 양수가 언변이 뛰어난 인물인 것을 알고 속으로 어려워했다. 양수 역시 스스로 재능을 믿고 천하의 선비들을 업신여기고 있었다.

 

當時見張松言語譏諷遂邀出外面書院中分賓主而坐謂松曰蜀道崎嶇遠來勞苦松曰奉主之命雖赴湯蹈火弗敢辭也修問蜀中風土何如松曰蜀爲西郡古號益州路有錦江之險地連劍閣之雄回還二百八程縱橫三萬餘裏雞鳴犬吠相聞市井閭閻不斷田肥地茂歲無水旱之憂國富民豐時有管弦之樂所產之物阜如山積天下莫可及也

 

그때 (양수가) 장송이 말로써 풍자하는 것을 보고 곧 바깥 서원으로 불러내어 손님과 주인으로 나눠 앉아 장송에게 말하기를,

 

촉에서 오는 길은 험난한데 멀리 오시느라 고생하셨소.”

 

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주공의 명을 받들었으므로 비록 끓는 물에 들거나 불을 밟으라 한들 감히 사양할 수 없소.”

 

했다. 양수가 묻기를,

 

촉의 풍토는 어떠하오?”

 

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촉은 서쪽 군인데 예로부터 익주라 불렀소. 그 길은 금강이 흘러 험난하고, 땅은 검각의 웅장함으로 이어지오. 그 둘레가 28(하루에 걷는 거리)인데 가로세로가 3만여 리요.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들리며 길거리와 마을이 끊이지 않소. 논밭은 기름지고 땅은 빼어나 해마다 홍수와 가뭄 걱정이 없는 곳이오. 나라와 백성이 부유하니 때 맞추어 음악의 즐거움이 있소. 그 산출되는 물건은 산처럼 풍성하니 천하에서 따라올 수가 없소!”

 

했다.

 

修又問曰蜀中人物如何松曰文有相如之賦武有伏波之才醫有仲景之能蔔有君平之隱九流三教出乎其類拔乎其萃者不可勝記豈能盡數修又問曰方今劉季玉手下如公者還有幾人松曰文武全才智勇足備忠義慷慨之士動以百數如松不才之輩車載鬥量不可勝記修曰公近居何職松曰濫充別駕之任甚不稱職敢問公爲朝廷何官修曰現爲丞相府主簿松曰久聞公世代簪纓何不立於廟堂輔佐天子乃區區作相府門下一吏乎

 

양수가 또 묻기를,

 

촉 땅의 인물들은 어떠하오?”

 

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문장은 사마상여의 부가 있고, 무예는 복파장군(마원)의 재주가 있소. 의술은 장중경(고대 중의학의 대가)의 재능이 있으며 점복은 엄군평(엄준)이 숨어살았소. 구류삼교(九流三教 아홉 유파와 세 가르침)에 있어서, 그 무리에서 뛰어나고 그 동아리에서 돌출한 경지에 이른 사람들을 가히 모두 적을 수도 없으니 어찌 능히 다 헤아리겠소!”

 

했다. 양수가 또 묻기를,

 

지금 유계옥(유장)의 수하에 그대와 같은 이들은 몇이나 있소?”

 

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문무를 두루 갖추고, 지혜와 용기를 족히 구비하며 충의롭고 기개 있는 선비가 적어도 백 수십이오. 나 같이 재주 없는 무리야 수레에 싣고 말[]로 헤아릴 수 있어 모두 다 적지 못하오.”

 

했다. 양수가 말하기를,

 

공께서 요새 무슨 직위에 있소?”

 

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외람되이 별가의 임무를 맡고 있으나 직무를 맡을 만한 재주가 못 되오. 감히 공께서 조정에서 무슨 벼슬이신지 물어도 되겠소?”

 

했다. 양수가 말하기를,

 

현재 승상부에서 주부를 맡고 있소.”

 

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오래전부터 공의 집안은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하셨다 들었거늘 어찌하여 조정에 서서 천자를 보좌하지 못하시고, 구차히 승상부에서 일개 관리를 하시오?”

 

했다.

 

楊修聞言滿面羞慚強顏而答曰某雖居下寮丞相委以軍政錢糧之重早晚多蒙丞相教誨極有開發故就此職耳松笑曰松聞曹丞相文不明孔孟之道武不達孫吳之機專務強霸而居大位安能有所教誨以開發明公耶修曰公居邊隅安知丞相大才乎吾試令公觀之呼左右於篋中取書一卷以示張松松觀其題曰孟德新書從頭至尾看了一遍共一十三篇皆用兵之要法

 

양수가 그 말을 듣더니 얼굴 가득 부끄러워져서 억지로 웃으며 대답하기를,

 

내가 비록 하급 관료이나 승상께서 군정과 재물의 막중한 임무를 맡기시니 조만간 승상의 가르침을 받아 극도로 개발될 것이므로 이 직책을 나아갔소.”

 

하니, 장송이 웃으며 말하기를,

 

제가 듣자니 승상께서 문장은 공맹의 도리를 밝히지 못하고 무예는 손자와 오자(오기)의 요체에 이르지 못하면서, 오로지 강점에만 힘써 높은 자리에 머무시거늘 어찌 능히 가르칠 게 있어 명공을 개발하겠소?”

 

했다. 양수가 말하기를,

 

공께서 변방에 머물면서 어찌 승상의 큰 재주를 알겠소? 나는 공이 그 재주를 살피게 해보겠소.”

 

하고, 좌우를 불러 상자 속에서 책 한 권을 꺼내 장송에게 보여 주었다. 장송이 제목을 읽으니, ‘맹덕신서(孟德新書)’.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어보니 모두 13편인데 모두 용병하는 중요한 방법을 다루고 있었다.

 

松看畢問曰公以此爲何書耶修曰此是丞相酌古准今仿孫子十三篇而作公欺丞相無才此堪以傳後世否松大笑曰此書吾蜀中三尺小童亦能暗誦何爲新書此是戰國時無名氏所作曹丞相盜竊以爲己能止好瞞足下耳修曰丞相秘藏之書雖已成帙未傳於世公言蜀中小兒暗誦如流何相欺乎松曰公如不信吾試誦之遂將孟德新書》,從頭至尾朗誦一遍並無一字差錯修大驚曰公過目不忘真天下奇才也

 

장송이 다 읽고 나서 묻기를,

 

공께서 이것을 무슨 책이라 생각하시오?”

 

하니, 양수가 말하기를,

 

이것은 승상께서 고금을 참작하시고 손자의 13편을 본받아 지으신 것이오. 공께서 승상을 재주 없다 깔보지만 이 책은 후세에 전할 만하지 않소?”

 

했다. 장송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이 책은 우리 촉 땅의 삼척동자(三尺童子)라도 능히 암송하거늘 어떻게 신서라 하겠소? 이것은 전국시대(戰國時代) 무명씨가 지은 것인데 조 승상이 훔쳐서 자기 것으로 삼아, 다만 족하를 기만했을 뿐이오!”

 

하니, 양수가 말하기를,

 

승상께서 비장하신 책이라 비록 이미 한 질을 만들었으나 아직 세상에 전하지 않았소. 공께서 촉 땅의 아이들도 줄줄이 암송한다고 말씀하시니 어찌 속이려 하시오?”

 

했다. 장송이 말하기를,

 

공께서 믿지 못하시겠다니 내가 시험 삼아 암송해보겠소.”

 

하고 맹덕신서(孟德新書)’를 처음부터 끝까지 죽 낭송하나, 한 글자도 틀리지 않았다. 양수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공께서 한번 보면 잊지 않으시니 참으로 천하의 기재시오!”

 

했다.

 

後人有詩贊曰

 

古怪形容異清高體貌疏

語傾三峽水目視十行書

膽量魁西蜀文章貫太虛

百家並諸子一覽更無餘

 

뒷사람이 시를 지어 찬양하기를,

 

생김새가 기이하고 이상하니, 맑고 고상한 예우를 받음이 드무나,

그 말은 삼협의 물을 쏟는 듯하고, 한눈에 책 열 줄을 보네.

담력은 서촉에서 으뜸이요, 문장은 크고 넓은 하늘을 가로지르네.

제자백가를 아울러서, 한번 보고도 빠뜨리는 것이 없구나.”

 

했다.

 

當下張松欲辭回修曰公且暫居館舍容某再稟丞相令公面君松謝而退修入見操曰適來丞相何慢張松乎操曰言語不遜吾故慢之修曰丞相尚容一禰衡何不納張松操曰禰衡文章播於當今吾故不忍殺之松有何能修曰且無論其口似懸河辯才無礙適修以丞相所撰孟德新書示之彼觀一遍即能暗誦如此博聞強記世所罕有松言此書乃戰國時無名氏所作蜀中小兒皆能熟記操曰莫非古人與我暗合否令扯碎其書燒之修曰此人可使面君教見天朝氣象操曰來日我於西教場點軍汝可先引他來使見我軍容之盛教他回去傳說吾即日下了江南便來收川

 

그 자리에서 장송이 작별하고 돌아가려 하자 양수가 말하기를,

 

공께서 잠시 관사에 머무시면, 제가 다시 승상께 아뢰어, 공으로 하여금 임금을 뵙게 하겠소.”

 

했다. 장송이 사례하고 물러났다. 양수가 들어가 조조를 만나서 말하기를,

 

방금 승상께서 어째서 장송을 홀대하셨습니까?”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그 언어가 불손한지라 내가 일부러 홀대했소.”

 

했다. 양수가 말하기를,

 

승상께서 일찍이 예형도 용납하셨거늘 어찌 장송을 받아들이지 못하시겠습니까?”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예형은 문장이 지금 세상에 떨치니 내가 차마 죽이지 못했소. 장송은 무엇에 능하오?”

 

했다. 양수가 말하기를,

 

물론 그 입이 급류와 같아서 말재주가 거침이 없습니다. 방금 제가 승상께서 지으신 맹덕신서(孟德新書)’를 보여주었더니 그가 한번만 훑어보고도 곧 암송했습니다. 이토록 박식하고 기억력이 뛰어난 사람은 세상에 드뭅니다. 장송이 말하기를 이 책은 전국시대(戰國時代) 무명씨가 지었으며 촉 땅의 아이들도 모두 능숙히 암기한다 하였습니다.”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옛사람과 내가 우연히 맞아떨어지지 않으란 법이 있소?”

 

하고, 명을 내려 그 책을 갈가리 찢어서 불사르라 했다. 양수가 말하기를,

 

이 사람으로 하여금 임금께 뵙게하여 천자 조정의 기상을 보게 해야 합니다.”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내일 내가 서쪽 군사훈련장에서 열병할 테니 그대가 먼저 그를 데리고 와서 아군의 강성함을 보게 하고, 되돌아가서내가 날을 정하여 강남을 함락하고 곧 서천을 거두겠다라고 전하게 하시오.”

 

했다.

 

修領命至次日與張松同至西教場操點虎衛雄兵五萬布於教場中果然盔甲鮮明衣袍燦爛金鼓震天戈矛耀日四方八面各分隊伍旌旗揚彩人馬騰空松斜目視之良久操喚松指而示曰汝川中曾見此英雄人物否松曰吾蜀中不曾見此兵革但以仁義治人

 

양수가 명을 받들어, 다음날 장송과 더불어 서쪽 훈련장으로 갔다. 조조가 친위대 5만을 훈련장에 펼쳐서 열병하니 과연 투구며 갑옷이 선명하고 몸에 걸친 전포가 찬란했다. 징소리와 북소리가 하늘을 뒤흔들고, 창날이 햇빛에 번쩍이며 사방 팔면에 다섯 부대로 나누어 섰다. 깃발들은 바람에 나부껴서 다채롭고, 인마들은 하늘이라도 뛰어오를 듯했다. 장송이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한참 지나 조조가 장송을 불러 가리켜 보이며 말하기를,

 

그대의 서천에서는 이 같은 영웅 인물들을 본 적이 없지요?”

 

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저희 촉 땅에서는 이러한 군대를 본 적이 없고 다만 인의로써 다스릴 뿐입니다.”

 

했다.

 

操變色視之松全無懼意楊修頻以目視松操謂松曰吾視天下鼠輩猶草芥耳大軍到處戰無不勝攻無不取順吾者生逆吾者死汝知之乎松曰丞相驅兵到處戰必勝攻必取松亦素知昔日濮陽攻呂布之時宛城戰張繡之日赤壁遇周郎華容逢關羽割須棄袍於潼關奪船避箭於渭水此皆無敵於天下也操大怒曰豎儒怎敢揭吾短處喝令左右推出斬之楊修諫曰松雖可斬奈從蜀道而來入貢若斬之恐失遠人之意

 

조조가 낯빛을 바꿔 노려보나, 장송은 전혀 두려운 기색이 없자, 양수가 자주 장송에게 눈짓을 했다. 조조가 장송에게 말하기를,

 

나는 천하의 쥐떼를 티끌같이 볼 뿐이오. 대군이 이르는 곳마다 싸워 이기지 못함이 없고, 공격해 취하지 못함이 없었소. 나를 따르는 사람은 살고, 나를 거스르는 사람은 죽은 것을 그대는 아시오?”

 

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승상께서 군대를 몰아 이르는 곳마다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공격하면 반드시 취한 것을 저도 역시 평소에 알고 있습니다. 지난날 복양에서 여포를 칠 때, 완성에서 장수와 싸울 때, 적벽에서 주랑을 만났을 때, 화용에서 관우와 마주쳤을 때, 동관에서 수염을 자르고 전포를 버린 것, 위수에서 배를 빼앗아 타고 화살을 피하던 것, 이 모두가 천하에 당할 자가 없었습니다.”

 

했다. 조조가 크게 노해 말하기를,

 

천한 선비 놈이 감히 내 결점을 들추느냐!”

 

하고, 좌우에 호통을 쳐서 끌어내어 베라고 하자, 양수가 간언하기를,

 

장송은 비록 벨 수 있으나 촉에서 공물을 바치러 온 것을 만약 벤다면 변방 사람들의 마음을 잃을까 두렵습니다.”

 

했다.

 

操怒氣未息荀彧亦諫操方免其死令亂棒打出松歸館舍連夜出城收拾回川松自思曰吾本欲獻西川州郡與曹操誰想如此慢人我來時於劉璋之前開了大口今日怏怏空回須被蜀中人所笑吾聞荊州劉玄德仁義遠播久矣不如徑由那條路回試看此人如何我自有主見

 

조조의 노기가 아직 가라앉지 않았지만 순욱이 역시 간언하여 조조가 그 죽음을 면해주고, 곤장을 난타해서 쫓아내라고 명령했다. 장송이 여관으로 돌아와 밤새 성을 나가서 서천으로 돌아가려고 짐을 챙겼다. 장송이 생각하기를, ‘내 본디 서천의 고을들을 조조에게 바치려 했으나 이토록 오만한 사람인 줄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내가 올 때 유장 앞에서 큰 소리쳤으니 오늘 불만스레 빈손으로 돌아가면 틀림없이 촉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겠구나. 내가 듣자니 형주 유현덕은 인의를 널리 떨친 지 오래라 하니, 이 길로 그를 경유함만 못하겠다. 이 사람이 어떤지 살펴보고 내 주견대로 하리라.’했다.

 

於是乘馬引仆從望荊州界上而來前至郢州界口忽見一隊軍馬約有五百餘騎爲首一員大將輕妝軟扮勒馬前問曰來者莫非張別駕乎松曰然也那將慌忙下馬聲喏曰趙雲等候多時松下馬答禮曰莫非常山趙子龍乎雲曰然也某奉主公劉玄德之命爲大夫遠涉路途鞍馬驅馳特命趙雲聊奉酒食

 

이에 말을 타고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형주 경계로 찾아왔다. 영주 입구에 이르러 문득 보니 한 무리 군마가 약 5백여 기인데 선두에서 한 대장이 가볍게 차려입고 말을 세우더니 앞으로 다가와 묻기를,

 

오시는 분은 장 별가 아니시오?”

 

했다. 장송이 말하기를,

 

그렇소.”

 

하니, 그 장수가 황망히 말에서 내려 인사를 하고 말하기를,

 

조운이 기다린 지 오랩니다.”

 

했다. 장송이 말에서 내려 답례하고 말하기를,

 

상산 조자룡 아니시오?”

 

하니, 조운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제가 주공 유현덕의 명을 받들어, 대부께서 먼 길에 말을 몰아오시니 특별히 저 조운에게 명하시어 부족하나마 술과 식사를 바치려고 합니다.”

 

했다.

 

言罷軍士跪奉酒食雲敬進之松自思曰人言劉玄德寬仁愛客今果如此遂與趙雲飲了數杯上馬同行來到荊州界首是日天晚前到館驛見驛門外百餘人侍立擊鼓相接一將於馬前施禮曰奉兄長將令爲大夫遠涉風塵令關某灑掃驛庭以待歇宿松下馬與雲長趙雲同入館舍講禮敘坐須臾排上酒筵二人殷勤相勸飲至更闌方始罷席宿了一宵

 

말을 마치자 군사들이 술과 식사를 무릎 꿇어 바치고 조운이 공손히 들게 한다. 장송이 생각하기를, ‘사람들이 말하기를 유현덕은 너그럽고 인자하게 객들을 아낀다고 하더니, 지금 과연 그렇구나.’했다. 곧 조운과 더불어 몇 잔을 마시고, 말에 올라 함께 갔다. 형주 입구에 이르러 저녁이 되어 여관으로 가니 문 밖에 1백 남짓 되는 사람이 시립하여, 북을 울리며 맞이했다. 한 장수가 말 앞에서 예를 차려 말하기를,

 

형장의 군령을 받들어 왔습니다. 대부께서 멀리서 풍진을 무릅쓰고 오시므로 저 관 아무개에게 명하여 여관의 뜰을 청소하여 쉬기를 기다리라 하셨습니다.”

 

했다. 장송이 말에서 내려, 운장, 조운과 함께 여관으로 들어가 인사를 나누며 자리에 앉았다. 잠시 뒤에 술자리를 베풀어 두 사람이 은근히 권했다. 밤이 깊도록 마시고서야 술자리를 마치고 하룻밤을 잤다.

 

次日早膳畢上馬行不到三五裏只見一簇人馬到乃是玄德引著伏龍鳳雛親自來接遙見張松早先下馬等候松亦慌忙下馬相見玄德曰久聞大夫高名如雷灌耳恨雲山遙遠不得聽教今聞回都專此相接倘蒙不棄到荒州暫歇片時以敘渴仰之思實爲萬幸松大喜遂上馬並轡入城至府堂上各各敘禮分賓主依次而坐設宴款待

 

다음날, 아침밥을 먹고 말에 올라 3, 5리를 못 가서 한 떼의 인마가 보였다. 바로 현덕이 복룡, 봉추를 이끌고 친히 맞이하러 왔다. 멀리 장송이 보이자 재빨리 먼저 하마하여 기다렸다. 장송도 황망히 말에서 내려 서로 만났다. 현덕이 말하기를,

 

대부의 높으신 명성이 우레처럼 귀에 들린 지 오래 되었습니다. 구름과 산이 멀어서 가르침을 듣지 못해 한스러웠습니다. 이제 듣자니 허도에서 돌아오신다기에 오로지 이렇게 맞이합니다. 만약 저를 버리시지 않으신다면 저희 보잘것없는 고을이나마 방문하셔서 잠시 쉬어가십시오. 저의 목마르게 바라는 마음을 풀어주신다면, 참으로 천만다행(千萬多幸)이겠습니다!”

 

했다. 장송이 크게 기뻐하여 곧 말에 올라 말고삐를 나란히 하여 성으로 들어갔다. 부중의 당상에 이르러 각각 예를 한 후에 손님과 주인으로 나눠 차례대로 앉아 연회를 열어 환대했다.

 

飲酒間玄德只說閑話並不提起西川之事松以言挑之曰今皇叔守荊州還有幾郡孔明答曰荊州乃暫借東吳的每每使人取討今我主因是東吳女婿故權且在此安身松曰東吳據六郡八十一州民強國富猶且不知足耶龐統曰吾主漢朝皇叔反不能占據州郡其他皆漢之蟊賊卻都恃強侵占地土惟智者不平焉玄德曰二公休言吾有何德敢多望乎松曰不然明公乃漢室宗親仁義充塞乎四海休道占據州郡便代正統而居帝位亦非分外玄德拱手謝曰公言太過備何敢當

 

술을 마시는 사이에 현덕은 오로지 한가한 이야기만 하며, 서천의 일을 꺼내지 않았다. 장송이 말로써 건드려 보기를,

 

이제 황숙께서 형주를 지키시는데 고을이 몇이나 됩니까?”

 

하니, 공명이 답하여 말하기를,

 

형주는 곧 잠깐 동오에게서 빌린 것이라 늘 사람을 보내 돌려달라 독촉합니다. 이제 우리 주공께서 동오의 사위이신지라 잠시 여기 몸을 의탁하고 계십니다.”

 

했다. 장송이 말하기를,

 

동오는 681주를 점거하여 백성은 강성하고 나라는 부유하거늘, 아직도 만족을 모른단 말씀이오?”

 

하니, 방통이 말하기를,

 

우리 주공께서는 한나라 조정의 황숙이시지만 오히려 고을을 점거하지 못하고 계시오. 나머지 모두는 한나라 조정의 역적으로서 모두 강한 세력을 믿고 토지를 빼앗았으나 오로지 슬기로운 이들만 그것을 못마땅해 합니다.”

 

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두 분은 말씀을 멈추십시오. 제가 무슨 덕이 있어서 감히 많은 것을 바라겠습니까?”

 

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명공께서는 곧 한실의 종친이시며 인의를 사해에 가득 펴고 있습니다. 여러 고을을 점거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곧 정통을 이어서 제위에 오르셔도 또한 본분을 벗어난 것이 아닙니다.”

 

했다. 현덕이 두 손 모아 사례하기를,

 

공의 말씀이 너무나 과분하시니 제가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했다.

 

自此一連留張松飲宴三日並不提起川中之事松辭去玄德於十裏長亭設宴送行玄德舉酒酌松曰甚荷大夫不外留敘三日今日相別不知何時再得聽教言罷潸然淚下張松自思玄德如此寬仁愛士安可舍之不如說之令取西川乃言曰松亦思朝暮趨侍恨未有便耳松觀荊州東有孫權常懷虎踞北有曹操每欲鯨吞亦非可久戀之地也玄德曰故知如此但未有安跡之所松曰益州險塞沃野千裏民殷國富智能之士久慕皇叔之德若起荊襄之衆長驅西指霸業可成漢室可興矣玄德曰備安敢當此劉益州亦帝室宗親恩澤布蜀中久矣他人豈可得而動搖乎

 

이로부터 잇달아 사흘간 장송에게 주연을 베풀었지만 서천의 일은 꺼내지 않았다. 장송이 작별하고 가려 하자 현덕이 십리마다 설치한 역참에서 연회를 베풀어 배웅했다. 현덕이 술잔을 들어 장송에게 말하기를,

 

대부께서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 사흘을 머물러 주시는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오늘 서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나 가르침을 들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며, 말을 마치고 줄줄 눈물을 흘렸다. 장송이 생각하기를, ‘현덕이 이토록 너그럽고 인자하게 선비를 아끼거늘 어찌 그를 버리리오? 그것을 말하여 서천을 취하게 하는 것이 낫겠다.’하고, 이에 말하기를,

 

저 역시 아침저녁으로 따라다니며 모시고 싶으나, 아직 방편이 없어 한스럽습니다. 제가 형주를 살펴보니, 동쪽은 손권이 있어 늘 호랑이처럼 차지하려 하고, 북쪽은 조조가 있어 늘 고래처럼 집어삼키려 합니다. 또한 오래 연연할 곳은 아닙니다.”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전부터 그렇게 알고 있지만, 다만 아직 안정할 곳이 없습니다.”

 

했다. 장송이 말하기를,

 

익주는 지형이 험준해 지키기 쉽고 기름진 들이 천리에 걸쳐 있으며 백성은 강성하고 나라는 부유합니다. 학식과 재능이 있는 선비들이 오래전부터 황숙의 덕을 사모해왔습니다. 만약 형주와 양양의 무리를 일으켜 서쪽으로 몰아쳐 온다면 패업을 이루어 한실을 중흥할 수 있습니다.”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제가 어찌 그것을 감당하겠습니까? 유 익주(유장)께서도 제실의 종친이신데다 은택을 촉 땅에 베푸신지 오래입니다. 어찌 다른 사람이 빼앗으려 한들 흔들리겠습니까?”

 

했다.

 

松曰某非賣主求榮今遇明公不敢不披瀝肝膽劉季玉雖有益州之地稟性暗弱不能任賢用能加之張魯在北時思侵犯人心離散思得明主松此一行專欲納款於操何期逆賊恣逞奸雄傲賢慢士故特來見明公明公先取西川爲基然後北圖漢中收取中原匡正天朝名垂青史功莫大焉明公果有取西川之意松願施犬馬之勞以爲內應未知鈞意若何玄德曰深感君之厚意奈劉季玉與備同宗若攻之恐天下人唾罵松曰大丈夫處世當努力建功立業著鞭在先今若不取爲他人所取悔之晚矣玄德曰備聞蜀道崎嶇千山萬水車不能方軌馬不能聯轡雖欲取之用何良策

 

장송이 말하기를,

 

제가 주인을 팔아 영예를 구하고자 함이 아니지만, 이제 명공을 만나 감히 제 간담을 피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계옥(유장)께서 비록 익주 땅을 가지고 계시나 그 품성이 어둡고 나약한데다 어진 이를 뽑거나 유능한 이를 쓸 줄을 모릅니다. 게다가 장로가 북쪽에서 늘 침범할 생각이니 인심이 흩어져 밝은 주공을 바라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길을 떠난 것은 오로지 조조에게 귀순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역적이 방자한 간웅으로서 어진 이를 업신여길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그래서 특별히 명공을 찾아뵌 것입니다. 명공께서 먼저 서천을 취하여 기반으로 삼고 그런 뒤에 북쪽으로 한중을 도모하시고 중원을 거둬들여 천자의 조정을 바로잡아 그 이름을 청사에 드리우시면 공적이 비할 데 없이 클 것입니다. 명공께서 과연 서천을 취할 뜻이 있다면 제가 바라건대 개나 말처럼 노력을 다하여 내응하겠습니다. 의견이 어떠하신지 모르겠습니다.”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그대의 후의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유계옥(유장)은 저와 같은 종친이라 만약 그를 친다면 천하가 저를 침 뱉고 욕할까 두렵습니다.”

 

했다. 장송이 말하기를,

 

대장부가 처세함에 있어, 마땅히 노력하여 공을 세우고 왕업을 이루려면 먼저 채찍을 들어야 합니다. 이제 만약 취하지 못하면 타인이 취하게 되어 뉘우쳐도 늦습니다.”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제가 듣자니 촉으로 가는 길이 험하고, 천 개의 산과 만 개의 강이라서 두 수레가 나란히 갈 수가 없고, 말들은 말고삐를 나란히 하여 갈 수가 없다고 합니다. 비록 취하려 한들 무슨 좋은 계책을 쓰겠습니까?”

 

했다.

 

松於袖中取出一圖遞與玄德曰松感明公盛德敢獻此圖但看此圖便知蜀中道路矣玄德略展視之上面盡寫著地理行程遠近闊狹山川險要府庫錢糧一一俱載明白松曰明公可速圖之松有心腹契友二人法正孟達此二人必能相助如二人到荊州時可以心事共議玄德拱手謝曰青山不老綠水長存他日事成必當厚報松曰松遇明主不得不盡情相告豈敢望報乎說罷作別孔明命雲長等護送數十裏方回

 

장송이 소매 속에서 한 장의 지도를 꺼내 현덕에게 건네주며 말하기를,

 

제가 명공의 성덕을 느껴서 감히 이 지도를 바칩니다. 이 지도를 보면 곧 촉의 도로를 알 수 있습니다.”

 

했다. 현덕이 펼쳐서 보니 위에는 지리와 길, 멀고 가까움과 넓고 좁음, 산천의 험준한 요충지, 국가의 창고와 재물과 양식을 일일이 명백히 적혀 있었다. 장송이 말하기를,

 

명공께서 어서 도모하십시오. 제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두 사람이 있는데, 법정과 맹달입니다. 이 두 사람이 반드시 도와줄 것입니다. 두 사람이 형주에 도착하면 마음속의 일을 함께 의논할 수 있습니다.”

 

하니, 현덕이 두 손 모아 사례하며 말하기를,

 

청산은 늙지 않고, 푸른 물은 길이 있습니다. 뒷날 일이 이루어지면 반드시 후하게 보답하겠습니다.”

 

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제가 밝은 주군을 만나 마음을 다해 고해드리지 않을 수 없어서이지 어찌 보답을 바라겠습니까?”

 

했다. 이야기를 마치고 작별했다. 공명이 운장 등에게 명하여 수십 리를 호송하고 돌아오게 했다.

 

張松回益州先見友人法正正字孝直右扶風郿人也賢士法真之子松見正備說曹操輕賢傲士只可同憂不可同樂吾已將益州許劉皇叔矣專欲與兄共議法正曰吾料劉璋無能已有心見劉皇叔久矣此心相同又何疑焉少頃孟達至達字子慶與法正同鄉達入見正與松密語達曰吾已知二公之意將欲獻益州耶松曰是欲如此兄試猜之合獻與誰達曰非劉玄德不可三人撫掌大笑法正謂松曰兄明日見劉璋當若何松曰吾薦二公爲使可往荊州二人應允

 

장송이 익주로 돌아와서 먼저 친구 법정을 만났다. 법정의 자는 효직이요 우부풍군 미현 사람이며 어진 선비인 법진의 아들이다. 장송이 법정을 만나 자세히 말하기를,

 

조조는 어진 이를 업신여기고 오만하니 근심은 같이하여도 즐거움은 같이 할 수 없소. 내 이미 익주를 유황숙께 허락하였는데 오로지 형과 더불어 의논하고자 하오.”

 

하니, 법정이 말하기를,

 

내가 헤아리기에도 유장은 무능하여, 이미 마음속으로 유황숙을 바라본지 오래요. 이렇게 마음이 서로 같은데 어찌 머뭇거리겠소?”

 

했다. 잠시 뒤 맹달이 도착했다. 맹달의 자는 자경 이고 법정과 동향이었다. 맹달이 들어와, 법정과 장송이 밀어를 나누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내 이미 두 분의 뜻을 아오. 장차 익주를 바치려는 것이지요?”

 

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바로 그렇게 하고자 하오. 형께서 한번 헤아려보시오. 누구에게 바쳐야 합당하겠소?”

 

했다. 맹달이 말하기를,

 

유현덕이 아니면 불가하오.”

 

하니, 세 사람이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법정이 장송에게 말하기를,

 

형께서 내일 유장을 만나면 어떻게 하시겠소?”

 

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내가 두분을 사자로 천거해서 형주로 가게 하겠소.”

 

했다. 두 사람이 응낙했다.

 

次日張松見劉璋璋問幹事若何松曰操乃漢賊欲篡天下不可爲言彼已有取川之心璋曰似此如之奈何松曰松有一謀使張魯曹操必不敢輕犯西川璋曰何計松曰荊州劉皇叔與主公同宗仁慈寬厚有長者風赤壁鏖兵之後操聞之而膽裂何況張魯乎主公何不遣使結好使爲外援可以拒曹操張魯矣璋曰吾亦有此心久矣誰可爲使松曰非法正孟達不可往也璋即召二人入修書一封令法正爲使先通情好次遣孟達領精兵五千迎玄德入川爲援

 

다음날, 장송이 유장을 만나니 유장이 묻기를,

 

맡긴 일은 어찌되었소?”

 

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조조는 바로 한나라 역적이라 천하를 찬탈하고자 하니 말할 게 못됩니다. 그는 이미 이곳 서천을 취할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했다. 유장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어찌해야겠소?”

 

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제게 한가지 꾀가 있사오니 틀림없이 장로와 조조로 하여금 감히 함부로 서천을 범할 수 없게 만들 것입니다.”

 

했다. 유장이 말하기를,

 

어떠한 계책이오?”

 

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형주 유황숙은 주공과 같은 종친이신데 인자하시고 너그러워 장자의 풍모가 있습니다. 적벽대전(赤壁大戰) 뒤에 조조가 듣기만 해도 간담이 쪼개진다는데 하물며 어찌 장로 따위겠습니까? 주공께서 어찌 사자를 보내 동맹을 맺고 외부의 지원군으로 삼아 조조와 장로를 막지 않으십니까?”

 

했다. 유장이 말하기를,

 

나도 역시 그런 마음을 가진 지 오래요. 누구를 사자로 보내야겠소?”

 

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법정과 맹달이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했다. 유장이 즉시 두 사람을 불러들여서 서찰을 1봉 다듬어 썼다. 법정을 사자로 보내 먼저 우호를 맺게 하고, 맹달에게 정병 5천을 줘서, 서천을 도우러 오는 현덕을 영접하라고 명령했다.

 

正商議間一人自外突入汗流滿面大叫曰主公若聽張松之言則四十一州郡已屬他人矣松大驚視其人乃西閬中巴人姓黃名權字公衡現爲劉璋府下主簿璋問曰玄德與我同宗吾故結之爲援汝何出此言權曰某素知劉備寬以待人柔能克剛英雄莫敵遠得人心近得民望兼有諸葛亮龐統之智謀趙雲黃忠魏延爲羽翼若召到蜀中以部曲待之劉備安肯伏低做小若以客禮待之又一國不容二主今聽臣言則西蜀有泰山之安不聽臣言則主公有累卵之危矣張松昨從荊州過必與劉備同謀可先斬張松後絕劉備則西川萬幸也

 

한창 상의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 바깥에서 돌입해서 얼굴 가득히 땀을 흘리며 크게 외치기를,

 

주공께서 만약 장송의 말을 들으신다면 마흔 한 개 고을이 결국 타인에게 속하게 됩니다!”

 

했다. 장송이 크게 놀라 그 사람을 보니, 바로 서낭중군 파현 사람으로 성은 황이고 이름은 권이며 자는 공형이다. 현재 유장 밑에서 주부 벼슬을 하고 있었다. 유장이 묻기를,

 

현덕은 나와 같은 종친이라 내가 그와 맺어서 지원군으로 삼고자 하거늘, 그대는 어찌 이렇게 말하오?”

 

하니, 황권이 말하기를,

 

제가 평소 알기에 유비는 너그럽게 사람을 대하고, 부드러움으로써 굳셈을 이기니 영웅들도 그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멀리 인심을 얻고 가까이 백성의 신망을 얻고 있습니다. 게다가 제갈량, 방통의 지모가 있고, 관우, 장비, 조운, 황충, 위연을 우익(보좌)으로 삼고 있습니다. 만약 촉으로 불러 들여서 그를 부곡(호족의 군대)의 우두머리로 대하면, 유비가 어찌 기꺼이 엎드려서 작아지겠습니까? 만약 그를 손님 대접을 하면 또한 한 나라에 두 주군이 있을 수 없는 법입니다. 이제 신의 말을 들어주시면, 서촉은 태산처럼 안정될 것이옵니다. 신의 말을 듣지 않으시면 주공께서는 누란의 위험(알을 쌓아놓은 위태로움)에 처할 것입니다. 장송은 어제 형주에서 왔으니 틀림없이 유비와 공모했습니다. 먼저 장송을 참한 뒤 유비와 끊으시면 서천은 천만다행(千萬多幸)입니다.”

 

했다.

 

璋曰曹操張魯到來何以拒之權曰不如閉境絕塞深溝高壘以待時清璋曰賊兵犯界有燒眉之急若待時清則是慢計也遂不從其言遣法正行又一人阻曰不可不可璋視之乃帳前從事官王累也累頓首言曰主公今聽張松之說自取其禍璋曰不然吾結好劉玄德實欲拒張魯也累曰張魯犯界乃癬疥之疾劉備入川乃心腹之大患況劉備世之梟雄先事曹操便思謀害後從孫權便奪荊州心術如此安可同處乎今若召來西川休矣璋叱曰再休亂道玄德是我同宗他安肯奪我基業便教扶二人出

 

유장이 말하기를,

 

조조와 장로가 침략해 오는데 어떻게 막아내겠소?”

 

하니, 황권이 말하기를,

 

국경을 닫고 요새를 끊으며 해자를 깊이 파고 보루를 높게 쌓아 시절이 좋아지기를 기다림만 못하옵니다.”

 

했다. 유장이 말하기를,

 

적병이 경계를 침범하면 눈썹에 불이 붙은 듯 다급해지는데, 시절이 좋아지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안일한 대책이오.”

 

하고, 결국 그 말을 따르지 않고 법정을 파견하려 하는데, 다시 한 사람이 저지하며 말하기를,

 

안 됩니다! 안 됩니다!”

 

했다. 유장이 보니 바로 장전종사관 왕루였다. 왕루가 머리를 조아려서 말하기를,

 

주공께서 이제 장송의 말을 들어주시면 스스로 화를 불러들이게 됩니다.”

 

하니, 유장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소. 나는 유현덕과 좋게 맺어, 참으로 장로를 막아내고 싶소.”

 

했다. 왕루가 말하기를,

 

장로가 경계를 침범하는 것은 버짐 같은 피부병이오나, 유비가 서천으로 들어오는 것은 곧 심장과 복부의 큰 질환입니다. 하물며 유비는 일세의 효웅(강하고 야심찬 인물)으로서 먼저 조조를 섬기다가 곧 해칠 궁리를 했으며, 그 뒤 손권을 따르다가 곧 형주를 빼앗았습니다. 그 마음 씀이 이와 같으니 어찌 함께 하겠습니까? 이제 불러들이시면 서천은 끝장입니다!”

 

하니, 유장이 꾸짖기를,

 

다시는 어지러운 말을 마시오! 현덕은 나와 같은 종친이거늘 그가 어찌 내 기업(기반)을 빼앗는단 말이오!”

 

했다. 곧 두 사람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다.

 

遂命法正便行法正離益州徑取荊州來見玄德參拜已畢呈上書信玄德拆封視之書曰族弟劉璋再拜致書於玄德宗兄將軍麾下久伏電天蜀道崎嶇未及齎貢甚切惶愧璋聞吉凶相救患難相扶朋友尚然況宗族乎今張魯在北旦夕興兵侵犯璋界甚不自安專人謹奉尺書上乞鈞聽倘念同宗之情全手足之義即日興師剿滅狂寇永爲唇齒自有重酬書不盡言耑候車騎

 

결국 법정이 바로 떠나갔다. 법정이 익주를 벗어나 지름길로 형주로 가서 현덕을 만났다. 현덕에게 절한 후에 서신을 바치자 현덕이 봉투를 뜯어 살펴보았다. 편지에 이르기를,

 

동족 아우 유장이 재배 드리오며 종친 형 현덕 장군 휘하에 편지를 드립니다. 우레 같은 명성을 들은 지 오래이나, 촉도가 기구하여 여태 공물을 드리지 못하여 몹시 황송하고 부끄럽습니다. 제가 듣기에, ‘길흉사에는 서로 구하고, 어려움이 닥치면 서로 돕는다.’라고 합니다. 붕우들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같은 종족 사이겠습니까? 지금 장로가 북쪽에서 조만간 군사를 일으켜 저희 땅을 침범할 것이라 몹시 불안합니다. 특별히 사람을 보내 서신을 바치니 아무쪼록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같은 종친 사이의 정을 생각하시고, 수족의 의리를 다하시려 하신다면 즉시 군사를 일으켜 저 미친 도적들을 섬멸해 주십시오. 영원히 입술과 이 같은 사이가 되면 제 스스로 크게 사례하겠습니다. 글로 미처 말씀을 다 드리지 못하니, 오로지 전차와 기마를 기다리겠습니다.”

 

했다.

 

玄德看畢大喜設宴相待法正酒過數巡玄德屏退左右密謂正曰久仰孝直英名張別駕多談盛德今獲聽教甚慰平生法正謝曰蜀中小吏何足道哉蓋聞馬逢伯樂而嘶人遇知己而死張別駕昔日之言將軍複有意乎玄德曰備一身寄客未嘗不傷感而歎息嘗思鷦鷯尚存一枝狡兔猶藏三窟何況人乎蜀中豐餘之地非不欲取奈劉季玉系備同宗不忍相圖法正曰益州天府之國非治亂之主不可居也今劉季玉不能用賢此業不久必屬他人今日自付與將軍不可錯失豈不聞逐兔先得之語乎將軍欲取某當效死玄德拱手謝曰尚容商議

 

현덕이 읽고 나서 크게 기뻐하여 연회를 베풀어서 법정을 접대했다. 술이 몇 차례 돌자 현덕이 좌우를 물리치고 은밀히 법정에게 말하기를,

 

오래 전부터 효직(법정)의 영명함을 우러렀습니다. 장 별가께서 성덕을 많이 이야기하셨습니다. 이제 가르침을 받으면 평생 큰 위안이 되겠습니다.”

 

하니, 법정이 사례하여 말하기를,

 

저는 촉 땅의 작은 관리일 뿐인데 어찌 족히 입에 올리겠습니까? 무릇 듣건대 말은 백락(伯樂 춘추시대 진()나라 사람으로 말을 잘 감별하였음)을 만나야 울며, 사람은 지기(知己 알아주는 친구)를 만나야 죽을 수 있다 합니다. 장 별가께서 지난번에 드린 말씀에 장군께서는 뜻이 있으신지요?”

 

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제 한 몸은 남의 집에 기대어 먹고사는 사람일 뿐이라 여태 마음이 상하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생각건대 뱁새는 가지 하나면 충분하나, 교활한 토끼는 오히려 몸을 숨길 굴이 세 개나 된다는데 하물며 사람의 경우이겠습니까? 촉 땅은 풍성하고 넘치는 땅이라니 취하고자 하지 않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유계옥(유장)께서는 저와 같은 종친이시라 차마 도모할 수 없습니다.”

 

하니, 법정이 말하기를,

 

익주는 천부지국(天府之國 하늘이 내린 험준하고 풍성한 땅)이라 난을 다스릴 주군이 아니시면 머물지 못할 곳입니다. 이제 유계옥(유장)은 어진 선비를 쓸 줄 모르니 그 기업은 머지않아 반드시 타인에게 속할 것입니다. 오늘날 스스로 장군께 기탁하니 놓쳐서는 아니 됩니다. 토끼를 쫓아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을 어찌 듣지 못하셨습니까? 장군께서 익주를 취하시겠다면 저는 목숨을 바쳐 일하겠습니다.”

 

했다. 현덕이 두 손 모아 사례하기를,

 

상의해 보겠습니다.”

 

했다.

 

當日席散孔明親送法正歸館舍玄德獨坐沉吟龐統進曰事當決而不決者愚人也主公高明何多疑耶玄德問曰以公之意當複何如統曰荊州東有孫權北有曹操難以得志益州戶口百萬土廣財富可資大業今幸張松法正爲內助此天賜也何必疑哉

 

그날 연회가 끝나자 법정이 관사로 돌아가는 것을 공명이 몸소 배웅했다. 현덕이 홀로 앉아 생각에 잠겨 있자 방통이 나아가 말하기를,

 

결단해야 할 일을 결단치 못하는 이야말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주공께서 고상하고 현명하신데 어찌 많이 머뭇거리십니까?”

 

하니, 현덕이 묻기를,

 

공이 생각하기에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했다. 방통이 말하기를,

 

형주는 동쪽에 손권이 있고 북쪽에 조조가 있어 뜻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익주는 호구가 백만이요 땅이 넓고 부유하니 가히 대업을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이제 다행히 장송과 법정이 안에서 돕겠다고 하니 이는 하늘이 주신 기회인데 어찌 머뭇거리겠습니까?”

 

했다.

 

玄德曰今與吾水火相敵者曹操也操以急吾以寬操以暴吾以仁操以譎吾以忠每與操相反事乃可成若以小利而失信義於天下吾不忍也龐統笑曰主公之言雖合天理奈離亂之時用兵爭強固非一道若拘執常理寸步不可行矣宜從權變且兼弱攻昧逆取順守武之道也若事定之後報之以義封爲大國何負於信今日不取終被他人取耳主公幸熟思焉玄德乃恍然曰金石之言當銘肺腑

 

현덕이 말하기를,

 

이제 나와 물과 불처럼 대적하는 자는 조조입니다. 조조는 엄격한데 저는 너그러우며, 조조는 난폭한데 저는 인자하며, 조조는 속이는데 저는 충심을 다합니다. 늘 조조와 상반되게 행동하여 일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만약 작은 이익 때문에 천하에 신의를 잃는 것을 저는 차마 하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방통이 웃으며 말하기를,

 

주공의 말씀은 비록 하늘의 이치에 합당하긴 하나 이합집산(離合集散)하고 분란하는 시기에 병력을 동원해 강함을 다투는데 한 가지 길만 있는 게 아닙니다. 상식에 사로잡히면 한 발짝도 가지 못합니다. 마땅히 임기응변(臨機應變)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약한 나라를 합병하고 어지러운 나라를 공격하며, 바른 방법이 아닌 것으로써 취해, 바른 방법으로써 지키는 것이 곧 탕왕과 무왕의 길입니다. 평정된 뒤에 그를 의롭게 보답하고 큰 나라에 봉해준다면 어찌 신의를 저버린 것이겠습니까? 지금 취하지 못하면 결국 타인이 취할 따름입니다. 주공께서 아무쪼록 깊이 생각하소서.”

 

했다. 현덕이 번쩍 깨달아 말하기를,

 

금석 같은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했다.

 

於是遂請孔明同議起兵西行孔明曰荊州重地必須分兵守之玄德曰吾與龐士元黃忠魏延前往西川軍師可與關雲長張翼德趙子龍守荊州孔明應允於是孔明總守荊州關公拒襄陽要路當青泥隘口張飛領四郡巡江趙雲屯江陵鎮公安玄德令黃忠爲前部魏延爲後軍玄德自與劉封關平在中軍龐統爲軍師馬步兵五萬起程西行臨行時忽廖化引一軍來降玄德便教廖化輔佐雲長以拒曹操

 

이에 공명을 청하여, 병력을 일으켜 서쪽으로 갈 것을 함께 의논하자, 공명이 말하기를,

 

형주는 중요한 곳이라 반드시 병력을 나눠 지켜야 합니다.”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제가 방사원(방통), 황충, 위연과 더불어 먼저 서천으로 갈 테니, 군사께서 관운장, 장익덕, 조자룡과 더불어 형주를 지키십시오.”

 

했다. 공명이 응낙했다. 이에 공명이 형주 수비를 총괄했다. 관우는 양양의 요로를 지키며 청니의 좁고 험한 길목을 맡았다. 장비는 네 고을을 거느리고 장강을 순찰하며, 조운은 강릉에 주둔하고 공안을 지켰다. 현덕이 명하여 황충이 선두를 맡고 위연은 후군을 맡는다. 현덕은 스스로 유봉, 관평과 더불어 중군에 머물며 방통을 군사로 삼아 기병과 보병 5만을 이끌고 서쪽으로 길을 떠났다. 출발에 즈음해 문득 요화가 1군을 거느리고 귀순했다. 현덕이 곧 요화에게 운장을 보좌해서 조조를 막게 했다.

 

是年冬月引兵望西川進發行不數程孟達接著拜見玄德說劉益州令某領兵五千遠來迎接玄德使人入益州先報劉璋璋便發書告報沿途州郡供給錢糧璋欲自出涪城親接玄德即下令准備車乘帳幔旌旗鎧甲務要鮮明主簿黃權入諫曰主公此去必被劉備之害某食祿多年不忍主公中他人奸計望三思之張松曰黃權此言疏間宗族之義滋長寇盜之威實無益於主公璋乃叱權曰吾意已決汝何逆吾

 

(유현덕은) 이해 음력 11월에 병력을 이끌고 서천을 향해 출발했다. 얼마 가지 않아서 맹달이 맞이하여 현덕에게 절하여 뵙고 유익주(유장)가 자신에게 5천 병력을 이끌고 멀리 나가서 영접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현덕이 사자를 익주로 들여보내 먼저 유장에게 (자신이 출발했음을) 보고하게 했다. 유장이 글을 써서 연도에 있는 고을에 알려서 재물과 식량을 공급하라고 했다. 유장이 스스로 부성에 나와서 몸소 현덕을 영접하고자, 즉시 명을 내려 수레, 장막, 깃발, 갑옷을 준비하되 일을 확실하게 하라고 했다. 주부 황권이 들어와 간하기를,

 

주공께서 이렇게 가시면 반드시 유비에게 해침을 당하십니다. 제가 녹봉을 다년간 받았으므로 차마 주공께서 타인의 간계에 빠지는 것을 볼 수 없사오니 바라건대 거듭 살펴주소서.”

 

하니, 장송이 말하기를,

 

황권의 이런 말은, 종족 사이의 의리를 멀어지게 하고, 도적들의 위세를 북돋는 것이니, 참으로 주공께 아무 이익이 없습니다.”

 

했다. 이에 유장이 황권을 꾸짖기를,

 

내 뜻이 이미 정해졌거늘 네가 어찌 내 뜻을 거스르느냐!”

 

했다.

 

權叩首流血近前口銜璋衣而諫璋大怒扯衣而起權不放頓落門牙兩個璋喝左右推出黃權權大哭而歸璋欲行一人叫曰主公不納黃公衡忠言乃欲自就死地耶伏於階前而諫璋視之乃建寧俞元人也姓李名恢叩首諫曰竊聞君有諍臣父有諍子黃公衡忠義之言必當聽從若容劉備入川是猶迎虎於門也璋曰玄德是吾宗兄安肯害吾再言者必斬叱左右推出李恢張松曰今蜀中文官各顧妻子不複爲主公效力諸將恃功驕傲各有外意不得劉皇叔則敵攻於外民攻於內必敗之道也璋曰公所謀深於吾有益

 

황권이 바닥에 머리를 부딪쳐서 피를 흘리며 가까이 가서 유장의 옷을 입으로 문 채 간언했다. 유장이 크게 노하여 옷을 찢고 일어나지만 황권이 놓아주지 않아 앞니 두개가 갑자기 빠졌다. 유장이 좌우에 소리쳐서 황권을 끌어내니 황권이 크게 울면서 돌아갔다. 유장이 가려 하는데 한 사람이 외쳐 말하기를,

 

주공께서 황공형(황권)의 충언을 받아들이시지 않으시니 곧 스스로 사지(死地)로 가시려 하십니까?”

 

하고, 섬돌 앞에 엎드려 간언했다. 유장이 보니 바로 건녕군 유원현 사람으로 성은 이이고, 이름은 회인데 머리를 땅에 조아려 간언하기를,

 

제가 듣건대, ‘임금에게는 간언하는 신하가 있고 아버지에게는 잘못을 아뢰는 아들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황공형(황권)의 충의로운 말은 당연히 듣고 따르셔야 합니다. 만약 유비가 서천으로 들어오는 것을 용인하신다면 마치 호랑이를 문으로 맞이함과 같습니다.”

 

하니, 유장이 말하기를,

 

현덕은 나의 종친 형인데 어찌 나를 해치시겠느냐? 다시 말하는 자는 반드시 참하겠다!”

 

하고, 좌우에 소리쳐서 이회를 끌어냈다. 장송이 말하기를,

 

지금 촉의 문관들이 각자 처자식만 생각하지, 주공을 위해 힘을 다하지 않습니다. 장수들도 공적을 믿고 오만하여, 각자 다른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유황숙을 얻지 않으면 적들이 바깥에서 공격하고, 백성들이 안에서 공격할 테니, 반드시 패망하는 길입니다.”

 

하니, 유장이 말하기를,

 

공께서 도모하여 깊이 나를 유익하게 하는구려.”

 

했다.

 

次日上馬出榆橋門人報從事王累自用繩索倒吊於城門之上一手執諫章一手仗劍口稱如諫不從自割斷其繩索撞死於此地劉璋教取所執諫章觀之其略曰益州從事臣王累泣血懇告竊聞良藥苦口利於病忠言逆耳利於行昔楚懷王不聽屈原之言會盟於武關爲秦所困今主公輕離大郡欲迎劉備於涪城恐有去路而無回路矣倘能斬張松於市絕劉備之約則蜀中老幼幸甚主公之基業亦幸甚

 

다음날, 말에 올라 유교문을 나가는데, 보고하기를,

 

종사 왕루가 스스로 동아줄로 묶어 성문 위에 거꾸로 매달려 한 손은 간언의 글을 쥐고, 한 손은 칼을 쥔 채 말하기를, 만약 간언을 따르시지 않으면, 그 동아줄을 스스로 끊어 이곳 땅에 부딪혀 죽겠다 합니다.”

 

했다. 유장이 간언의 글을 가져 오도록 하여 살펴보니 대략 이르기를,

 

익주 종사 신 왕루가 피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고합니다. 제가 듣건대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고, 충성스런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동에 이롭다.’하였습니다. 옛날 초나라 회왕은 굴원의 말을 듣지 않아서 무관에서 회맹하다가 진나라에게 사로잡혔습니다. 이제 주공께서 가벼이 큰 고을을 벗어나 부성에서 유비를 맞이하려 하시나, 가는 길은 있어도 돌아오는 길은 없을까 두렵습니다. 만약 장송을 저자에서 참하시고 유비와의 약속을 끊으신다면, 촉의 백성들도 큰 다행이요 주공의 기업도 큰 다행입니다!”

 

했다.

 

劉璋觀畢大怒曰吾與仁人相會如親芝蘭汝何數侮於吾耶王累大叫一聲自割斷其索撞死於地

 

유장이 읽고 나서 크게 노해 말하기를,

 

내가 어진 이와 만나 지초와 난초처럼 가까이 하고자 하거늘 네가 어찌 수차례나 나를 업신여기느냐!”

 

하니, 왕루가 크게 외마디를 지르더니 스스로 그 동아줄을 끊어 땅에 부딪혀 죽었다.

 

後人有詩歎曰

 

倒掛城門捧諫章

拚將一死報劉璋

黃權折齒終降備

矢節何如王累剛

 

뒷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하기를,

 

성문에 거꾸로 매달려서 간언의 글을 바치니,

서슴없이 목숨을 바쳐서 유장에게 보답하려 했네.

황권은 이를 부러뜨렸지만 결국 유비에게 항복하여,

절개를 잃었으니 어찌 왕루처럼 강직하겠는가!”

 

라고 했다.

 

劉璋將三萬人馬往涪城來後軍裝載資糧餞帛一千餘輛來接玄德卻說玄德前軍已到墊沮所到之處一者是西川供給二者是玄德號令嚴明如有妄取百姓一物者斬於是所到之處秋毫無犯百姓扶老攜幼滿路瞻觀焚香禮拜玄德皆用好言撫慰

 

유장이 3만의 인마를 거느리고 부성으로 왔다. 후군이 재물, 양식, 비단 등을 1천여 량의 수레에 싣고 현덕을 맞이하러 왔다. 한편, 현덕의 선두 부대는 이미 숙저에 이르고, 이르는 곳마다 첫째 서천에서 공급하고, 둘째 현덕이 엄하고 분명하게 호령하여, 만약 함부로 백성의 재물을 하나라도 취하는 자는 참하겠다고 하니, 이에 이르는 곳마다 털끝 하나 범하지 않았다. 백성들이 노인을 부축하고 어린이들을 이끌고 길을 가득 메워 우러러 보며, 향을 사르고 절을 드렸다. 현덕이 모두 좋은 말로써 위로하였다.

 

卻說法正密謂龐統曰近張松有密書到此言於涪城相會劉璋便可圖之機會切不可失統曰此意且勿言待二劉相見乘便圖之若預走泄於中有變法正乃秘而不言涪城離成都三百六十裏璋已到使人迎接玄德兩軍皆屯於涪江之上玄德入城與劉璋相見各敘兄弟之情禮畢揮淚訴告衷情飲宴畢各回寨中安歇璋謂衆官曰可笑黃權王累等輩不知宗兄之心妄相猜疑吾今日見之真仁義之人也吾得他爲外援又何慮曹操張魯耶非張松則失之矣乃脫所穿綠袍並黃金五百兩令人往成都賜與張松時部下將佐劉璝泠苞張任鄧賢等一班文武官曰主公且休歡喜劉備柔中有剛其心未可測還宜防之璋笑曰汝等皆多慮吾兄豈有二心哉衆皆嗟歎而退

 

한편, 법정은 은밀히 방통에게 말하기를,

 

얼마 전 장송이 밀서를 여기에 보내어 이르기를, 부성에서 유장을 만나면 바로 그를 도모하라 했소. 이 기회를 절대 놓쳐선 안 되오.”

 

했다. 방통이 말하기를,

 

이 생각을 당분간 드러내 말하지 마시오. 두 유씨가 만나는 틈에 바로 도모해야지, 만약 미리 누설되면 도중에 변고가 있을 것이오.”

 

했다. 이에 법정이 비밀로 하고 말하지 않았다. 부성에서 성도까지 360리인데 유장이 벌써 도착해서 사람을 보내 현덕을 영접하게 했다. 양쪽 군대가 모두 부강 상류에 주둔하고, 현덕이 입성하여 유장과 만나 각각 형제의 정을 나누며 예를 마치고 눈물을 흘려 충정을 드러내었다. 연회가 끝나자 각각 영채로 돌아가 쉬었다. 유장이 관리들에게 말하기를,

 

황권과 왕루 같은 무리가 가소롭게도 종친 형의 마음을 모르고 망녕되게 시기하고 질투하였소. 내가 오늘 그분을 만나보니 참으로 인자하고 의로운 사람이오. 내 이제 그분을 밖의 도움으로 얻으니 조조, 장로를 어찌 걱정하겠소? 장송이 아니었으면 실패할 뻔했소.”

 

했다. 이에 입고 있던 녹색 겉옷을 벗어 (장송에게) 주고, 아울러 황금 5백 냥을 주어, 사람을 시켜 성도로 가서 장송에게 주도록 했다. 이때 (유장의) 부하 장교인 유괴, 영포, 장임, 등현 등 한 무리 문무 관리들이 말하기를,

 

주공께서는 기뻐하지 마십시오. 유비는 부드러운 듯 보여도 굳세니 그 마음을 아직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라도 방비해야 합니다.”

 

하니, 유장이 웃으며 말하기를,

 

그대들은 모두 너무 걱정이 많구려. 내 형이 어찌 두 마음이 있겠는가!”

 

했다. 모두 탄식하며 물러났다.

 

卻說玄德歸到寨中龐統入見曰主公今日席上見劉季玉動靜乎玄德曰季玉真誠實人也統曰季玉雖善其臣劉璝張任等皆有不平之色其間吉凶未可保也以統之計莫若來日設宴請季玉赴席於壁衣中埋伏刀斧手一百人主公擲杯爲號就筵上殺之一擁入成都刀不出鞘弓不上弦可坐而定也玄德曰季玉是吾同宗誠心待吾更兼吾初到蜀中恩信未立若行此事上天不容下民亦怨公此謀雖霸者亦不爲也統曰此非統之謀是法孝直得張松密書言事不宜遲只在早晚當圖之

 

한편, 현덕이 영채 안으로 돌아오자 방통이 들어와서 말하기를,

 

주공께서 오늘 연회에서 유계옥(유장)의 동정을 살펴보셨습니까?”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계옥은 참으로 성실한 사람입니다.”

 

했다. 방통이 말하기를,

 

계옥이 비록 착하지만, 그 신하인 유괴, 장임 등은 모두 불평하는 기색이 있으니 그 사이 길흉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제 꾀를 쓰셔서 내일 잔치를 열어 계옥을 자리로 부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벽의(커튼) 속에 도부수 1백 인을 매복하여 주공께서 술잔을 던지는 것을 신호로 술자리에서 그를 죽이십시오. 그리고 성도로 밀고 들어가면, 칼을 칼집에서 뽑을 것도, 활시위를 잡아당길 것도 없이 앉아서 평정할 수 있습니다.”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계옥은 바로 나와 같은 종친이고, 성심으로 나를 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나는 촉 땅에 처음 들어와 아직 은혜와 신의를 세우지 못했는데 이런 짓을 행한다면, 위로는 하늘이 용납하지 않고, 아래로는 백성들도 원망할 것입니다. 공의 이러한 꾀는 비록 패자(무력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자)라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했다. 방통이 말하기를,

 

이것은 제 꾀가 아니라, 법효직(법정)이 장송의 밀서에서 얻은 것인데, 말하기를, 일을 늦춰선 안 되며, 조만간 마땅히 도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했다.

 

言未已法正入見某等非爲自己乃順天命也玄德曰劉季玉與吾同宗不忍取之正曰明公差矣若不如此張魯與蜀有殺母之仇必來攻取明公遠涉山川驅馳士馬既到此地進則有功退則無益若執狐疑之心遷延日久大爲失計且恐機謀一泄反爲他人所算不若乘此天與人歸之時出其不意早立基業實爲上策龐統亦再三相勸正是人主幾番存厚道才臣一意進權謀

 

그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법정이 들어와 뵙고 말하기를,

 

저희가 자신를 위해서가 아니오라 천명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유계옥(유장)은 나와 같은 종친이라 차마 취할 수 없습니다.”

 

했다. 법정이 말하기를,

 

명공께서 틀렸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시면, 장로에게 촉은 모친을 죽인 원수이므로 반드시 취하고자 공격해 올 것입니다. 명공께서 멀리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병사와 말을 몰아 기왕에 이곳에 오셨으니 나아가면 공이 있겠으나 물러나면 아무 이익이 없습니다. 만약 여우처럼 의심하다가 날을 오래 끌면 계책이 크게 실패합니다. 게다가 기밀이 한번 누설되면 도리어 타인의 계산에 빠지게 됩니다. 이렇게 하늘과 사람이 따르는 시기를 살려 뜻하지 않은 곳으로 나아가서 어서 기업을 세움만 못하오니, 이것이 참으로 상책입니다.”

 

했다. 방통이 역시 거듭 권했다. 이야말로, 임금은 몇 번이나 후덕한 도리를 고집하지만, 재주 있는 신하들이 한 뜻으로 계책을 권하네.

 

未知玄德心下如何且看下文分解

 

현덕의 마음이 어떨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의 이야기를 보면 풀릴 것이오.

728x90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