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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회 유현덕은 백성을 이끌고 강을 건너고, 조자룡은 홀로 주인을 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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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四十一回

劉玄德攜民渡江 趙子龍單騎救主

 

41

유현덕은 백성을 이끌고 강을 건너고, 조자룡은 홀로 주인을 구하다.

 

卻說張飛因關公放了上流水遂引軍從下流殺將來截住曹仁混殺忽遇許褚便與交鋒許褚不敢戀戰奪路走脫張飛趕來接著玄德孔明一同沿河到上流劉封糜芳已安排船只等候遂一齊渡河盡望樊城而去孔明教將船筏放火燒毀

 

각설, 장비는 관공이 상류에서 물을 터뜨리자 군사를 이끌고 하류로부터 달려와 조인의 퇴로를 막고 마구 무찔렀다. 문득 허저를 만나서 교전했다. 허저가 감히 더는 싸우고 싶지 않아 길을 뚫고 달아났다. 장비가 뒤쫓다가 현덕과 공명을 만나 함께 강을 따라 상류로 갔다. 유봉과 미방이 이미 선박 등을 안배해 기다리고 있어서 곧 일제히 강을 건너 모두 번성을 향해 갔다. 공명이 선박을 불사르라고 지시했다.

 

卻說曹仁收拾殘軍就新野屯住使曹洪去見曹操具言失利之事操大怒曰諸葛村夫安敢如此催動三軍漫山塞野盡至新野下寨傳令軍士一面搜山一面填塞白河令大軍分作八路一齊去取樊城劉曄曰丞相初至襄陽必須先買民心今劉備盡遷新野百姓入樊城若我兵徑進二縣爲齏粉矣不如先使人招降劉備備即不降亦可見我愛民之心若其來降則荊州之地可不戰而定也

 

한편, 조인은 패잔병을 수습해 신야에 주둔하고 조홍을 시켜 조조를 만나 패배한 사정을 두루 말하게 했다. 조조가 크게 노해 말하기를,

 

제갈 촌뜨기가 어찌 감히 이와 같은가!”

 

하고, 3군을 다그쳐서 온 산과 들을 뒤덮어 모두 신야에 이르러 주둔했다. 군사들에게 한편으로 산을 수색하고 한편으로 백하의 물을 메우라고 명령했다. 대군을 8로로 나눠 일제히 번성을 취하러 떠났다. 유엽이 말하기를,

 

승상께서 양양은 처음 오셨으니 먼저 민심을 얻어야 합니다. 지금 유비가 신야의 백성을 모조리 번성으로 데려가니 만약 우리 병력이 당장 진군하면 두 고을은 가루가 될 것입니다. 먼저 사람을 시켜 유비에게 항복을 권하는 게 낫겠습니다. 유비가 항복하지 않아도 그것 역시 백성을 아끼는 우리 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만약 그가 항복하면 형주 땅은 싸우지 않고도 평정할 수 있습니다.”

 

했다.

 

操從其言便問誰可爲使劉曄曰徐庶與劉備至厚今現在軍中何不命他一往操曰他去恐不複來曄曰他若不來貽笑於人矣丞相勿疑操乃召徐庶至謂曰我本欲踏平樊城奈憐衆百姓之命公可往說劉備如肯來降免罪賜爵若更執迷軍民共戮玉石俱焚吾知公忠義故特使公往願勿相負

 

조조가 그 말에 따라 바로 묻기를,

 

누구를 사신으로 보내야겠소?”

 

하니, 유엽이 말하기를,

 

서서는 유비와 교분이 두터운데 지금 군중에 있습니다. 어찌 그를 한번 보내지 않겠습니까?”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그가 갔다가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스럽소.”

 

하니, 유엽이 말하기를,

 

그가 오지 않으면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게 됩니다. 승상께서는 망설이지 마십시오.”

 

했다. 이에 조조가 서서를 불러오게 하여 일러 말하기를,

 

내가 지금 번성을 평정하고 싶으나 백성들 목숨이 어찌 가련치 않겠소? 그대는 유비를 찾아가 설득하시오. 그가 기꺼이 투항하면 죄를 면해주고 작위를 내릴 것이오. 만약 다시 고집을 부려 깨닫지 못하면 군사와 백성을 모두 죽여 옥석을 가리지 않고 모두 불사르겠소. 내 그대의 충의를 알아 특별히 그대를 보내니 바라건대 내 뜻을 저버리지 마시오.”

 

했다.

 

徐庶受命而行至樊城玄德孔明接見共訴舊日之情庶曰曹操使庶來招降使君乃假買民心也今彼分兵八路填白河而進樊城恐不可守宜速作行計玄德欲留徐庶庶謝曰某若不還恐惹人笑今老母已喪抱恨終天身雖在彼誓不爲設一謀公有臥龍輔佐何愁大業不成庶請辭玄德不敢強留

 

서서가 명을 받아 길을 나서 번성에 이르렀다. 현덕과 공명이 접견하여 함께 옛날의 정을 나누었다. 서서가 말하기를,

 

조조가 저를 시켜 사군께 투항을 권하게 하니 이는 바로 민심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지금 그가 병력을 8로로 나누어 백하를 메우고 진격하니 번성을 지키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어서 계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했다. 현덕이 서서를 붙들어 두고 싶어 하지만, 서서는 사양하여 말하기를,

 

제가 돌아가지 않으면 남들이 비웃을까 두렵습니다. 이제 모친께서 이미 돌아가셔서 원한을 품어 죽어도 풀 길이 없습니다. 몸은 비록 저기 있으나 맹세코 한 가지 꾀도 저들을 위해 내지 않겠습니다. 공에게는 와룡의 보좌가 있으니 어찌 대업을 이루지 못할까 근심하겠습니까? 저는 물러가기를 청합니다.”

 

했다. 현덕은 감히 억지로 붙들지 못했다.

 

徐庶辭回見了曹操言玄德並無降意操大怒即日進兵玄德問計於孔明孔明曰可速棄樊城取襄陽暫歇玄德曰奈百姓相隨許久安忍棄之孔明曰可令人遍告百姓有願隨者同去不願者留下先使雲長往江岸整頓船只令孫乾簡雍在城中聲揚曰今曹兵將至孤城不可久守百姓願隨者便同過江

 

서서가 작별하고 돌아가 조조를 만나 현덕은 항복할 뜻이 없음을 말했다. 조조가 크게 노해서 그날 바로 진격했다. 현덕이 공명에게 계책을 묻자 공명이 말하기를,

 

속히 번성을 포기하고 양양을 취해 잠시 머물러야 합니다.”

 

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백성들이 오래 따라왔는데 어찌 차마 버리겠습니까?”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사람을 보내 백성들에게 두루 알려야 합니다. 따르고 싶은 자는 함께 가고, 그렇지 않은 자는 머물게 하십시오.”

 

했다. 먼저 운장을 강가로 보내 선박을 정돈하게 하고, 손건과 간옹에게 명해, 성중에 크게 알리기를,

 

조조 병력이 곧 닥쳐서 고립된 성을 오래 지킬 수 없으니, 백성들 가운데 따라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함께 강을 건널 것을 명하오.”

 

하였다.

 

兩縣之民齊聲大呼曰我等雖死亦願隨使君即日號泣而行扶老攜幼將男帶女滾滾渡河兩岸哭聲不絕玄德於船上望見大慟曰爲吾一人而使百姓遭此大難吾何生哉欲投江而死左右急救止聞者莫不痛哭船到南岸回顧百姓有未渡者望南而哭玄德急令雲長催船渡之方才上馬行至襄陽東門只見城上遍插旌旗壕邊密布鹿角玄德勒馬大叫曰劉琮賢侄吾但欲救百姓並無他念可快開門

 

두 고을 백성들이 일제히 소리내 크게 외치기를,

 

우리들은 비록 죽더라도 사군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하고, 그날 바로 울부짖으며 길을 나섰다. 늙은이를 부축하고 아이를 끌거나 업고 남녀가 함께 강을 건너니 양쪽 강가는 울부짖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현덕이 배 위에서 바라보다가 크게 가슴 아파하며 말하기를,

 

나 하나 때문에 백성들에게 이런 고난을 겪게 하다니 내가 살아 무엇하리오!”

 

하고, 물에 몸을 던져 죽으려 하자 좌우에서 급히 말려서 구했다. 이것을 듣고 통곡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배가 남쪽 강가에 닿아 백성들을 돌아보니 아직 건너지 못한 이들이 남쪽을 바라보며 통곡했다. 현덕이 급히 운장에게 명해 급히 배로 그들을 건네주고서야 말에 올랐다. 행렬이 양양성 동문에 이르러 바라보니 성 위에 두루 깃발들이 꽂혀 있고, 해자 근처에는 녹각(나무를 사슴뿔처럼 세워 적의 진격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촘촘히 세웠다. 현덕이 말고삐를 잡아 멈추고 크게 외치기를,

 

유종 조카님! 나는 다만 백성을 구하고자 할 뿐이지 다른 마음은 없으니 어서 성문을 여시오!”

 

했다.

 

劉琮聞玄德至懼而不出蔡瑁張允徑來敵樓上叱軍士亂箭射下城外百姓皆望敵樓而哭城中忽有一將引數百人徑上城樓大喝蔡瑁張允賣國之賊劉使君乃仁德之人今爲救民而來投何得相拒衆視其人身長八尺面如重棗乃義陽人也姓魏名延字文長

 

유종이 현덕이 왔다는 말을 듣고 무서워서 나오지 못했다. 채모와 장윤이 망루에 올라 군사들을 꾸짖어 화살을 난사했다. 성 밖 백성들이 모두 망루를 바라보며 울었다. 성중에서 문득 한 장수가 수백 인을 이끌고 성루를 곧장 올라 큰 소리로 꾸짖기를,

 

채모, 장윤! 매국노들아! 유사군께서는 인덕 있는 분이라 이제 백성을 구해 오셨는데 어찌하여 막느냐!”

 

했다. 사람들이 바라보니 그 사람은 신장이 8척이요 얼굴은 잘 익은 대추 같았다. 의양 사람으로 성은 위이고 이름은 연이며 자는 문장이었다.

 

當下魏延輪刀砍死守門將士開了城門放下吊橋大叫劉皇叔快領兵入城共殺賣國之賊張飛便躍馬欲入玄德急止之曰休驚百姓魏延只管招呼玄德軍馬入城只見城內一將飛馬引軍而出大喝魏延無名小卒安敢造亂認得我大將文聘麼魏延大怒挺槍躍馬便來交戰

 

바로 그 때 위연은 문을 지키던 장병들을 그 자리에서 칼을 휘둘러 베어 죽이고 문을 열더니 적교를 내려 크게 외치기를,

 

유황숙은 빨리 병력을 거느리고 입성해서 함께 매국노들을 죽입시다!”

 

했다. 장비가 말을 내달려 입성하려 하자 현덕이 급히 말리며 말하기를,

 

백성을 놀라게 하지 마라!”

 

했다. 위연이 현덕의 군마들을 계속 성으로 들어오라 불렀다. 그런데 성 안에서 한 장수가 나는 듯이 말을 달려 군사를 이끌고 나와 큰 소리로 꾸짖기를,

 

위연은 이름 없는 소졸인데 어찌 감히 반란하느냐! 대장 문빙을 몰라보겠느냐!”

 

했다. 위연이 크게 노해 창을 꼬나쥐고 말을 내달려서 바로 교전했다.

 

兩下軍兵在城邊混殺喊聲大震玄德曰本欲保民反害民也吾不願入襄陽孔明曰江陵乃荊州要地不如先取江陵爲家玄德曰正合吾心於是引著百姓盡離襄陽大路望江陵而走襄陽城中百姓多有乘亂逃出城來跟玄德而去魏延與文聘交戰從已至未手下兵卒皆已折盡延乃撥馬而逃卻尋不見玄德自投長沙太守韓玄去了

 

양쪽 군병들이 성 둘레에서 어지러이 싸워 함성 소리가 크게 울렸다. 현덕이 말하기를,

 

본래 백성을 보호하고자 했으나 도리어 백성을 해치는구나! 나는 양양에 들어가기를 원치 않는다!”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강릉은 형주의 요지입니다. 먼저 강릉을 취해 근거지로 삼는 게 낫습니다.”

 

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제 마음과 딱 맞습니다.”

 

하고, 이에 백성을 이끌고 모조리 양양의 대로를 버리고 강릉 쪽으로 떠나갔다. 양양 성중의 백성들이 많이 혼란한 틈을 타서 성을 나와 현덕을 따라갔다. 위연이 문빙과 교전하느라 현덕을 따라가지 못하고 수하 병졸들도 모두 꺾였다. 위연이 이에 말을 몰아 달아나서 현덕을 찾으나 만나지 못하고 장사태수 한현에게 몸을 맡기러 가버렸다.

 

卻說玄德同行軍民十餘萬大小車數千輛挑擔背包者不計其數路過劉表之墓玄德率衆將拜於墓前哭告曰辱弟備無德無才負兄寄托之重罪在備一身與百姓無幹望兄英靈垂救荊襄之民言甚悲切軍民無不下淚忽哨馬報說曹操大軍已屯樊城使人收拾船筏即日渡江趕來也衆將皆曰江陵要地足可拒守今擁民衆數萬日行十餘裏似此幾時得至江陵倘曹兵到如何迎敵不如暫棄百姓先行爲上玄德泣曰舉大事者必以人爲本今人歸我奈何棄之百姓聞玄德此言莫不傷感

 

한편, 현덕이 군사와 백성 10여 만과 동행하는데 크고 작은 수레가 수천 량이고, 짐을 지고 메고 가는 이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길을 가다가 유표의 무덤을 지나게 되자, 현덕이 장수들을 이끌고 무덤 앞에 절을 올려 곡하며 고하기를,

 

못난 아우 유비가 덕도 없고 재주도 없어 형님이 부탁하신 중책을 저버렸으니 죄는 오로지 제 한 몸에 있지 백성들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바라건대 형님의 영령이시여! 형주와 양양의 백성을 구해주시옵소서!”

 

했다. 말이 몹시 슬프고 간절해 군사와 백성이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문득 정찰기병이 달려와 알리기를,

 

조조 대군이 벌써 번성에 주둔하고, 사람들을 시켜 선박을 수습하여 곧 강을 건너 뒤쫓으려 합니다.”

 

했다. 장수들 모두 말하기를,

 

강릉은 요지라서 충분히 막아 지킬 만합니다. 지금 수만의 백성들을 호위해 가느라 하루에 10여리를 가니 이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강릉에 다다르겠습니까? 만약 조조의 병력이 당도하면 어떻게 대적하겠습니까? 잠시 백성들을 버려두고 먼저 가는 것이 상책이겠습니다.”

 

하니, 현덕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대사를 일으키는 이는 반드시 사람을 근본으로 삼아야 하오. 지금 사람들이 내게 의지하는데 어찌 버리겠소?”

 

했다. 백성들이 현덕의 이 말을 듣더니 감동하여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後人有詩贊之曰

 

臨難仁心存百姓

登舟揮淚動三軍

至今憑吊襄江口

父老猶然憶使君

 

뒷날 어떤 사람이 시를 지어 찬양하기를,

 

어려움에 처해도 어진 마음은 백성과 함께 하고,

배에 올라 눈물을 흩뿌리니 삼군이 감동하네.

지금도 양강 입구에서 옛일을 추억하고 있어,

어른들은 아직도 유 사군을 잊지 못하는구나.”

 

라고 했다.

 

卻說玄德擁著百姓緩緩而行孔明曰追兵不久即至可遣雲長往江夏求救於公子劉琦教他速起兵乘船會於江陵玄德從之即修書令雲長同孫乾領五百軍往江夏求救令張飛斷後趙雲保護老小其餘俱管顧百姓而行每日只走十餘裏便歇卻說曹操在樊城使人渡江至襄陽召劉琮相見琮懼怕不敢往見蔡瑁張允請行王威密告琮曰將軍既降玄德又走曹操必懈弛無備願將軍奮整奇兵設於險處擊之操可獲矣獲操則威震天下中原雖廣可傳檄而定此難遇之機不可失也

 

한편, 현덕이 백성들을 호위해 가느라 느릿느릿 길을 갔다. 공명이 말하기를,

 

추격병이 머지않아 다다를 테니 운장을 강하로 보내 공자 유기에게 구원을 청하여 빨리 병력을 일으켜서 배를 타고 강릉에서 만나자고 해야 합니다.”

 

하니, 현덕이 그 말을 따라 즉시 서찰을 다듬어 운장으로 하여금 손건을 데리고 5백 군사를 이끌고 강하로 가서 구원을 청하라고 했다. 또 장비에게 명하여 뒤를 차단하게 하고 조운은 가족을 보호하게 했다. 나머지는 모두 백성을 돌보며 길을 갔다. 매일 겨우 10여 리를 가다가 쉬었다. 한편, 조조는 번성에 있으면서 강 건너 양양으로 사람을 보내 유종에게 만나자고 불렀다. 유종이 무서워서 감히 가서 만나려 하지 않자 채모와 장윤이 가기를 청했다. 왕위가 유종에게 몰래 고하기를,

 

장군은 이미 항복했고 현덕은 달아났으니 조조는 반드시 해이해져서 방비가 없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장군은 기습 병력을 준비해 험한 곳에 매복해서 조조를 친다면 잡을 수 있습니다. 조조를 잡으면 위엄이 천하에 울릴 테니 중원이 비록 넓다 하더라도 가히 격문만 돌려도 평정하게 됩니다. 이것은 만나기 어려운 기회이니 놓쳐선 안 됩니다.”

 

했다.

 

琮以其言告蔡瑁瑁叱王威曰汝不知天命安敢妄言威怒罵曰賣國之徒吾恨不生啖汝肉瑁欲殺之蒯越勸止瑁遂與張允同至樊城拜見曹操瑁等辭色甚是諂佞操問荊州軍馬錢糧今有多少瑁曰馬軍五萬步軍十五萬水軍八萬共二十八萬錢糧大半在江陵其餘各處亦足供給一載操曰戰船多少原是何人管領瑁曰大小戰船共七千餘只原是瑁等二人掌管

 

유종이 그 말을 채모에게 고하자 채모가 왕위를 꾸짖어 말하기를,

 

네가 천명을 모르고 어찌 감히 망언을 하느냐!”

 

하니, 왕위가 성을 내어 욕하기를,

 

나라를 팔아먹는 놈아! 네놈의 살을 날로 씹지 못해 한스럽다!”

 

했다. 채모가 죽이려 하자 괴월이 말렸다. 채모가 결국 장윤과 더불어 번성에 이르러 조조에게 인사를 올렸다. 채모 등은 말과 태도에서 심히 아첨했다. 조조가 묻기를,

 

형주의 군마와 재물과 식량이 지금 얼마나 되오?”

 

하니, 채모가 말하기를,

 

기병 5, 보병 15, 수군 8만 모두 28만입니다. 전량은 태반이 강릉에 있습니다. 기타 여러 곳에서 역시 족히 1년은 공급할 수 있습니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전선은 얼마나 되고, 원래 누가 맡아 거느렸소?”

 

하니, 채모가 말하기를,

 

크고 작은 전선이 모두 7천여 척인데 원래 저희 두 사람이 맡았습니다.”

 

했다.

 

操遂加瑁爲鎮南侯水軍大都督張允爲助順侯水軍副都督二人大喜拜謝操又曰劉景升既死其子降順吾當表奏天子使永爲荊州之主二人大喜而退荀攸曰蔡瑁張允乃諂佞之徒主公何遂加以如此顯爵更教都督水軍乎操笑曰吾豈不識人止因吾所領北地之衆不習水戰故且權用此二人待成事之後別有理會

 

조조가 즉시 채모를 진남후 수군 대도독으로, 장윤을 조순후 수군 부도독으로 삼았다. 두 사람이 크게 기뻐하여 절을 올려 사례했다. 조조가 또 말하기를,

 

유경승이 이미 세상을 떴고 그 아들은 항복해서 따르니 내 마땅히 천자께 아뢰어 그를 영원히 형주의 주인으로 하겠소.”

 

했다. 두 사람이 크게 기뻐하며 물러났다. 순유가 말하기를,

 

채모와 장윤은 아첨하는 무리인데 주공께서 어찌 이토록 벼슬을 높이고 게다가 수군을 모두 맡기십니까?”

 

하니, 조조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내 어찌 사람을 못 알아보겠소? 다만 내가 거느리는 북쪽 출신 군사들이 수전에 서툴러서 잠시 이 두 사람을 쓰는 것이오. 성사된 뒤에 따로 처리하겠소.”

 

했다.

 

卻說蔡瑁張允歸見劉琮具言曹操許保奏將軍永鎮荊襄琮大喜次日與母蔡夫人齎捧印緩兵符親自渡江拜迎曹操操撫慰畢即引隨征軍將進屯襄陽城外蔡瑁張允令襄陽百姓焚香拜接曹操俱用好言撫諭入城至府中坐定即召蒯越近前撫慰曰吾不喜得荊州喜得異度也遂封蒯越爲江陵太守樊城侯傅巽王粲等皆爲關內侯而以劉琮爲青州刺史便教起程

 

한편, 채모와 장윤은 돌아가 유종을 만나서 두루 이야기하기를,

 

조조가 천자께 아뢰어 장군으로 하여금 형주 양양 땅을 영원히 갖게 할 것을 허락했습니다.”

 

하니, 유종이 크게 기뻐했다. 이튿날 모친 채부인과 더불어 인수와 병부(군사 동원 신표)를 가져다 바치려고 몸소 강을 건너가서 조조에게 절을 올렸다. 조조가 그들을 위무한 뒤 즉시 이번 원정에 따라온 군대와 장수들을 이끌고 진군해 양양성 밖에 주둔했다. 채모와 장윤이 명해 양양 백성들이 향불을 사르고 절을 올리며 그들을 맞이했다. 조조가 두루 좋은 말로 (백성을) 달래었다. 성에 들어가 부중에 이르러 좌정하자, 곧 괴월을 가까이 불러 위로하여 말하기를,

 

내가 형주를 얻어 기쁜 게 아니라 이도(괴월의 자)를 얻어 기쁘오.”

 

하고, 괴월을 강릉태수 번성후로 봉했다. 부손과 왕찬 등도 모두 관내후로 봉했다. 그런데 유종을 청주자사로 삼아 어서 길을 떠나라고 했다.

 

琮聞命大驚辭曰琮不願爲官願守父母鄉土操曰青州近帝都教你隨朝爲官免在荊襄被人圖害琮再三推辭曹操不准琮只得與母蔡夫人同赴青州只有故將王威相隨其餘官員俱送至江口而回操喚於禁囑咐曰你可引輕騎追劉琮母子殺子以絕後患於禁得令領衆趕上大喝曰我奉丞相令教來殺汝母子可早納下首級蔡夫人抱劉琮而大哭於禁喝令軍士下手王威忿怒奮力相鬥竟被衆軍所殺軍士殺死劉琮及蔡夫人於禁回報曹操操重賞於禁便使人往隆中搜尋孔明妻小卻不知去向原來孔明先已令人搬送至三江內隱避矣操深恨之

 

유종이 그 명령을 듣고 크게 놀라 사양해 말하기를,

 

저는 관직을 원하는 게 아니오라 바라건대 부모의 향토를 지키고자 합니다.”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청주는 황제의 도읍과 가깝다. 내가 너를 조정이 내리는 관직에 나아가게 하는 것은 형주와 양양에 머물다가 남의 모해를 당할까 그것을 면하게 하려는 것이다.”

 

했다. 유종이 거듭 사양하지만 조조는 들어주지 않았다. 유종이 어쩌지 못해 어머니 채부인과 더불어 청주로 갔다. 다만 옛 장수 왕위가 홀로 따라가고, 나머지 관원들은 강구까지만 배웅하고 돌아갔다. 조조가 우금을 불러 당부하기를,

 

그대는 경기병을 이끌고 가서 유종의 모자를 죽여 후환이 없게 하시오.”

 

하니, 우금이 명을 받아 무리를 거느리고 뒤쫓아 가서 크게 외치기를,

 

나는 승상의 명을 받들어너희 모자를 죽이러 왔다! 어서 목을 내놓아라!”

 

했다. 채부인이 유종을 껴안고 통곡했다. 우금이 소리를 질러 군사들을 재촉했다. 왕위가 분노해 힘껏 싸우지만 결국 군사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군사들이 유종과 채부인도 죽였다. 우금이 돌아가 조조에게 보고하니 조조가 우금에게 크게 상을 내렸다. 곧 융중으로 사람을 보내 공명의 아내와 자식을 찾아내게 하지만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원래 공명이 그 전에 이미 사람을 시켜 삼강 깊숙이 숨겨 놓은 것이었다. 조조가 이를 깊이 한스러워했다.

 

襄陽既定荀攸進言曰江陵乃荊襄重地錢糧極廣劉備若據此地急難動搖操曰孤豈忘之隨命於襄陽諸將中選一員引軍開道諸將中卻獨不見文聘操使人尋問方才來見操曰汝來何遲對曰爲人臣而不能使其主保全境土心實悲慚無顏早見耳言訖欷歔流涕操曰真忠臣也除江夏太守賜爵關內侯便教引軍開道探馬報說劉備帶領百姓日行止十數裏計程只有三百餘裏操教各部下精選五千鐵騎星夜前進限一日一夜趕上劉備大軍陸續隨後而進

 

양양을 평정하자 순유가 나아가 말하기를,

 

강릉은 형주 양양 지방에서 중요한 곳으로 전량이 아주 많습니다. 유비가 만약 그곳에 웅거하면 그를 쉽게 뿌리 뽑기 어려워집니다.”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내가 어찌 그것을 잊었겠소?”

 

하고, 곧 명을 내려, 양양에 있는 장수들 가운데 한 사람을 골라 군사를 이끌고 길을 열도록 했다. 그런데 장수들 가운데 오로지 문빙이 보이지 않았다. 조조가 사람을 보내 찾아 물어보자 그제서야 만나러 왔다. 조조가 말하기를,

 

그대는 어찌해서 늦게 오시오?”

 

하니 (문빙이) 대답하기를,

 

신하가 되어 그 주인을 위해 영토를 지켜드리지 못해 마음이 참으로 비참한지라 일찍 찾아뵈올 면목이 없었습니다.”

 

했다. 말을 마치더니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다. 조조가 말하기를,

 

참으로 충신이오!”

 

하고, 강하태수에 제수하고 관내후의 작위를 내린 뒤 군사를 이끌고 길을 열게 했다. 정찰기병이 와서 보고하기를,

 

유비가 백성을 데리고 하루 겨우 십수 리밖에 가지 못하는데 거리를 헤아리니 3백 여리입니다.”

 

했다. 조조가 지시하기를, 부하마다 철갑기병 5천을 가려 뽑아서 밤낮으로 전진하여 하루 낮 하루 밤에 유비를 따라잡으라 했다. 대군이 계속하여 뒤따라 전진했다.

 

卻說玄德引十數萬百姓三千餘軍馬一程程挨著往江陵進發趙雲保護老小張飛斷後孔明曰雲長往江夏去了絕無回音不知若何玄德曰敢煩軍師親自走一遭劉琦感公昔日之教今若見公親至事必諧矣孔明允諾便同劉封引五百軍先往江夏求救去了

 

한편, 현덕은 십수만 백성과 3천여 군마를 이끌고 강릉을 향해 쉬어가면서 길을 갔다. 조운은 노소 가족을 보호하고 장비는 추격병을 막았다. 공명이 말하기를,

 

운장이 강하에 간 지 오랜데 회신이 전혀 없으니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군사께서 수고스럽겠지만 친히 그곳으로 가서 만나십시오. 유기가 예전의 가르침을 잊지 못할 테니 공께서 몸소 찾아온 것을 보면 틀림없이 일이 풀릴 것입니다.”

 

했다. 공명이 응낙하고 곧 유봉과 함께 5백 군사를 이끌고 먼저 강하로 구원을 청하러 갔다.

 

當日玄德自與簡雍糜竺糜芳同行正行間忽然一陣狂風就馬前刮起塵土沖天平遮紅日玄德驚曰此何兆也簡雍頗明陰陽袖占一課失驚曰此大凶之兆也應在今夜主公可速棄百姓而走玄德曰百姓從新野相隨至此吾安忍棄之雍曰主公若戀而不棄禍不遠矣玄德問前面是何處左右答曰前面是當陽縣有座山名爲景山玄德便教就此山紥住

 

그날 현덕이 간옹, 미축, 미방과 동행하고 있는데, 홀연히 한바탕 광풍이 말 앞에서 불어와 먼지구름이 하늘을 찌르고 붉은 해를 가렸다. 현덕이 놀라 말하기를,

 

이것은 무슨 징조요?”

 

하니, 간옹이 제법 음양에 밝은지라 옷소매에서 점괘를 뽑아보더니 놀라 말하기를,

 

이것은 아주 흉한 징조입니다. 오늘 밤이라도 주공께서는 백성을 포기하고 길을 재촉하셔야 합니다.”

 

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백성들이 신야에서 여기까지 따라왔거늘 내 어찌 차마 버리겠소?”

 

하니, 간옹이 말하기를,

 

주공께서 백성을 아끼느라 포기하지 않는다면 재앙이 멀지 않게 됩니다.”

 

했다. 현덕이 묻기를,

 

이 앞은 어디요?”

 

하니, 좌우가 답하기를,

 

앞은 바로 당양현이고, 자리잡고 있는 산은 경산입니다.”

 

했다. 현덕이 그 산에 주둔하라고 명했다.

 

時秋末冬初涼風透骨黃昏將近哭聲遍野至四更時分只聽得西北喊聲震地而來玄德大驚急上馬引本部精兵二千餘人迎敵曹兵掩至勢不可當玄德死戰正在危迫之際幸得張飛引軍至殺開一條血路救玄德望東而走文聘當先攔住玄德罵曰背主之賊尚有何面目見人文聘羞慚滿面引兵自投東北去了張飛保著玄德且戰且走奔至天明聞喊聲漸漸遠去玄德方才歇馬看手下隨行人止有百餘騎百姓老小並糜竺糜芳簡雍趙雲等一幹人皆不知下落玄德大哭曰十數萬生靈皆因戀我遭此大難諸將及老小皆不知存亡雖土木之人寧不悲乎

 

이때는 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갈 무렵이라 찬바람이 뼛속을 파고들었다. 황혼이 가까운데 곡소리가 들판 가득했다. 4(새벽 2)에 이르러 서북쪽에서 함성이 땅을 흔들며 가까워졌다. 현덕이 크게 놀라 급히 말에 올라 휘하의 정병 2천 남짓을 이끌고 대적했다. 조조의 병력이 엄습해 오니 그 기세를 당할 수 없었다. 현덕이 죽기 살기로 싸웠다. 한창 급박한 순간에 다행히 장비가 군사를 이끌고 와서 한줄기 혈로를 뚫어 현덕을 구해 동쪽으로 달아났다. 문빙이 앞장서 막아서자 현덕이 욕하기를,

 

주인을 배신한 도적아! 지금 무슨 면목으로 사람들을 보느냐!”

 

하니, 문빙이 얼굴 가득 부끄러움을 띠고 병력을 이끌고 동북쪽으로 가버렸다. 장비가 현덕을 보호하며 싸우다 달아나다를 반복했다. 동틀 무렵까지 달아나는데 함성이 점점 멀어지니 현덕이 비로소 말을 세웠다. 부하 가운데 수행하는 사람이 겨우 1백여 기였다. 백성들과 식구들 아울러 미축, 미방, 간옹, 조운 등 함께 가던 사람들 모두 행방을 알 수 없었다. 현덕이 크게 곡하고 말하기를,

 

십수 만의 백성들이 모두 나를 따르다가 이런 큰 난리를 만났구나! 장수들과 식구들도 모두 존망을 알 수 없으니 비록 흙이나 나무로 만든 사람인들 어찌 슬프지 않으랴!”

 

하였다.

 

正淒惶時忽見糜芳面帶數箭踉蹌而來口言趙子龍反投曹操去了也玄德叱曰子龍是我故交安肯反乎張飛曰他今見我等勢窮力盡或者反投曹操以圖富貴耳玄德曰子龍從我於患難心如鐵石非富貴所能動搖也糜芳曰我親見他投西北去了張飛曰待我親自尋他去若撞見時一槍刺死玄德曰休錯疑了豈不見你二兄誅顏良文醜之事乎子龍此去必有事故吾料子龍必不棄我也張飛那裏肯聽引二十餘騎至長阪橋見橋東有一帶樹木飛生一計教所從二十餘騎都砍下樹枝拴在馬尾上在樹林內往來馳騁沖起塵土以爲疑兵飛卻親自橫矛立馬於橋上向西而望

 

슬퍼하여 어찌할 바를 모를 때 홀연히 미방이 얼굴에 화살을 몇 군데 맞아 비틀거리며 다가와서 말하기를,

 

조자룡이 배반해 조조에게 투항하러 가버렸습니다!”

 

하니, 현덕이 꾸짖기를,

 

자룡은 나와 오래 사귀었는데 어찌 배반하겠소?”

 

했다. 장비가 말하기를,

 

그가 이제 우리 형세가 궁하고 힘이 다한 걸 보고 혹시 배반해 조조에게 넘어가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노리는지도 모르지 않소?”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자룡은 환난 속에서 나를 따르면서도 마음이 철석 같았으니 부귀에 동요할 사람이 아니다.”

 

했다. 미방이 말하기를,

 

제 눈으로 직접 그가 서북쪽으로 가는 걸 봤습니다.”

 

하니, 장비가 말하기를,

 

내가 그를 찾아 눈에 띄기만 하면 한 창으로 찔러죽이겠소!”

 

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함부로 의심하지 마라. 너는 운장이 안량과 문추를 죽인 일을 어찌 보지 않았느냐? 자룡이 그리 갔다면 반드시 사연이 있을 것이다. 내 생각에 자룡은 결코 나를 버릴 사람이 아니다.”

 

했다. 장비가 그제야 말을 듣고 20여 기를 이끌고 장판교에 이르렀다. 다리 동쪽에 숲이 하나 있는 것을 보고 장비가 꾀를 내어 그를 따라온 20여 기에게 지시해 모두 나뭇가지를 베어 말꼬리에 매달아 수풀 속에서 말을 내달려 왕래하여 먼지구름이 피어오르게 해서 의심을 주는 병력으로 삼았다. 장비가 몸소 장팔사모를 비껴들고 다리 위에서 말을 타고 서서 멀리 서쪽을 바라보았다.

 

卻說趙雲自四更時分與曹軍廝殺往來沖突殺至天明尋不見玄德又失了玄德老小雲自思曰主公將甘糜二夫人與小主人阿鬥托付在我身上今日軍中失散有何面目去見主人不如去決一死戰好歹要尋主母與小主人下落回顧左右只有三四十騎相隨雲拍馬在亂軍中尋覓二縣百姓號哭之聲震天動地中箭著槍拋男棄女而走者不計其數

 

한편, 조운은 4경 무렵부터 조조 군대와 치고받고 이리저리 충돌하며 동틀 녘까지 무찌르다가 현덕을 찾으나 보이지 않는데다 현덕의 식구들마저 잃어버렸다. 조운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주공이 감, 미 두 부인과 작은 주인 아두를 내가 곁에서 지키도록 부탁하셨다. 오늘 군중에서 그들을 잃어버렸으니 무슨 면목으로 주인을 찾아가 만나겠는가? 차라리 죽기로 한바탕 싸워 좌우간에 주인마님과 작은 주인을 찾아봐야겠구나!”

 

하고, 좌우를 돌아보니 단지 3, 4십 기만 따라왔다. 조운이 말에 박차를 가해 어지러운 군사들 틈에서 찾아보는데 두 고을 백성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천지를 울렸다. 화살에 맞거나 창에 찔리거나 아들딸을 버리고 달아난 자들을 헤아릴 수 없었다.

 

趙雲正走之間見一人臥在草中視之乃簡雍也雲急問曰曾見兩位主母否雍曰二主母棄了車仗抱阿鬥而走我飛馬趕去轉過山坡被一將刺了一槍跌下馬來馬被奪了去我爭鬥不得故臥在此雲乃將從騎所騎之馬借一匹與簡雍騎坐又著二卒扶護簡雍先去報與主人我上天入地好歹尋主母與小主人來如尋不見死在沙場上也

 

조운이 달려가다가 한 사람이 풀숲에 엎드려 있는 것을 보았다. 살펴보니 바로 간옹이었다. 조운이 급히 묻기를,

 

두 주인마님을 보지 않았소?”

 

하니, 간옹이 말하기를,

 

두 주인마님은 수레를 포기하고 아두를 안고 달아나셨소. 내가 나는 듯이 말을 몰아 뒤따라가 산비탈을 돌아 지나는데 어느 장수가 창으로 찌르는 바람에 말 아래로 곤두박질쳤소. 말은 그가 빼앗아 가고 나는 싸울 수가 없어 여기 엎드려 있었소.”

 

했다. 이에 조운은 부하가 타던 말 한필을 간옹에게 빌려주어 타게 했다. 또한 졸병 둘에게 간옹을 부축해서 먼저 주인에게 가서 알리게 하기를,

 

내가 하늘에 오르고 땅에 들어가더라도 어쨌든 주인마님과 작은 주인을 찾아오겠습니다. 찾지 못한다면 싸움터에서 죽겠습니다.”

 

했다.

 

說罷拍馬望長阪坡而去忽一人大叫趙將軍那裏去雲勒馬問曰你是何人答曰我乃劉使君帳下護送車仗的軍士被箭射倒在此趙雲便問二夫人消息軍士曰恰才見甘夫人披頭跣足相隨一夥百姓婦女投南而走雲見說也不顧軍士急縱馬望南趕去只見一夥百姓男女數百人相攜而走雲大叫曰內中有甘夫人否夫人在後面望見趙雲放聲大哭雲下馬插槍而泣曰使主母失散雲之罪也糜夫人與小主人安在甘夫人曰我與糜夫人被逐棄了車仗雜於百姓內步行又撞見一枝軍馬沖散糜夫人與阿鬥不知何往我獨自逃生至此

 

말을 마치더니 말에 박차를 가해 장판파 쪽으로 내달렸다. 문득 한 사람이 크게 외치기를,

 

조장군! 어디로 가십니까?”

 

하니, 조운이 말을 세워 묻기를,

 

자네는 누군가?”

 

했다.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저는 유사군 밑에서 수레를 호송하던 군사인데 화살을 맞아 여기 쓰러져 있습니다.”

 

했다. 조운이 두 부인의 소식을 묻자 군사가 말하기를,

 

방금 보니 감부인께서 머리를 풀어 헤치고 맨발 차림으로 백성 부녀들과 함께 남쪽으로 달아나셨습니다.”

 

했다. 조운이 듣고는 뒤돌아보지 않고 급히 말을 내달려 남쪽으로 추적했다. 한 무리를 이룬 백성 남녀 수백 인이 서로 끌어가며 달아나고 있는 것을 보고, 조운이 크게 외치기를,

 

감 부인께서 그 속에 계시지 않습니까?”

 

하니, 부인이 후미에 있다가 조운을 바라보고 목놓아 크게 울었다. 조운이 말에서 내려 창을 땅에 꽂은 뒤 눈물 흘리며 말하기를,

 

주인마님을 잃어버렸으니 저의 죄입니다! 미 부인과 작은 주인은 어디 계십니까?”

 

하니, 감부인이 말하기를,

 

나와 미부인이 쫓기다가 수레를 버리고 백성들 틈에 섞여 걷는데 갑자기 한 무리 군마가 들이닥쳤소. 미부인과 아두가 어디로 간 지 모르겠소. 내 홀로 도망쳐 여기까지 왔소.”

 

했다.

 

正言間百姓發喊又撞出一枝軍來趙雲拔槍上馬看時面前馬上綁著一人乃糜竺也背後一將手提大刀引著千餘軍乃曹仁部將淳於導拿住糜竺正要解去獻功趙雲大喝一聲挺槍縱馬直取淳於導導抵敵不住被雲一槍刺落馬下向前救了糜竺奪得馬二匹雲請甘夫人上馬殺開條大路直送至長阪坡只見張飛橫矛立馬於橋上大叫子龍你如何反我哥哥雲曰我尋不見主母與小主人因此落後何言反耶飛曰若非簡雍先來報信我今見你怎肯幹休也雲曰主公在何處飛曰只在前面不遠雲謂糜竺曰糜子仲保甘夫人先行待我仍往尋糜夫人與小主人去言罷引數騎再回舊路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백성들이 함성을 지르고, 다시 한 무리 군사가 몰려왔다. 조운이 창을 뽑아 말에 올라 바라보니 바로 앞 말 위에 묶인 사람은 바로 미축이었다. 그 뒤의 장수는 손에 큰 칼을 들고 1천여 군사를 이끌었는데 조인의 부하 장수 순우도였다. 미축을 사로잡아 끌고가서 공로를 세우려고 하던 참이었다. 조운이 큰 소리를 외치고 창을 꼬나들고 말을 내달려 곧장 순우도에게 달려들었다. 순우도가 막아내지 못하니 조운이 한창에 찔러 낙마시키고 앞으로 가서 미축을 구하고 말 두 필을 빼앗았다. 조운이 감부인에게 말 타기를 청한 뒤 큰 길을 뚫어 장판파까지 곧바로 호송했다. 장비가 장팔사모를 비껴들고 다리 위에서 말을 타고 있다가 크게 외치기를,

 

자룡! 네 어찌하여 우리 형님을 배반하느냐?”

 

하니, 조운이 말하기를,

 

내가 주인마님과 작은 주인을 찾지 못해 이렇게 뒤처진 것인데 어찌 배반했다 하시오?”

 

했다. 장비가 말하기를,

 

만약 간옹이 먼저 와서 알리지 않았던들 내 지금 자네를 보고도 어찌 싸우지 않고 있겠는가?”

 

하니, 조운이 말하기를,

 

주공께서는 어디 계시오?”

 

했다. 장비가 말하기를,

 

이 앞에서 멀지 않네.”

 

하니, 조운이 미축에게 말하기를,

 

미자중(미축)은 감부인을 보호해 먼저 가시오. 내가 다시 미부인과 작은 주인을 찾으러 가겠소.”

 

하고, 말을 마치자 몇 기를 이끌고 아까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正走之間見一將手提鐵槍背著一口劍引十數騎躍馬而來趙雲更不打話直取那將交馬只一合把那將一槍刺倒從騎皆走原來那將乃曹操隨身背劍之將夏侯恩也曹操有寶劍二口一名倚天一名青釭"倚天劍自佩之青釭劍令夏侯恩佩之那青釭劍砍鐵如泥鋒利無比

 

(조운이) 한창 달리고 있는데 한 장수가 철창을 들고 등에는 검 한 자루를 맨 채 십수 기를 이끌고 말을 달려 왔다. 조운이 말없이 곧장 그 장수에게 달려들었다. 맞붙어 겨우 1합에 그 장수가 창에 찔려 넘어지니 따라온 기병들이 모두 달아났다. 원래 그 장수는 바로 조조의 칼을 등에 메고 수행하는 장수인 하후은이었다. 조조에게 보검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의천이요 또 하나는 청홍이었다. 의천검은 스스로 차고 청홍검은 하후은에게 차게 하였다. 그 청홍검은 쇠도 진흙처럼 자르니 날카롭기 비할 데 없었다.

 

當時夏侯恩自恃勇力背著那劍只顧引人搶奪擄掠不想撞著趙雲被他一槍刺死奪了那口劍看靶上有金嵌青釭二字方知是寶劍也雲插劍提槍複殺入重圍回顧手下從騎已沒一人只剩得孤身雲並無半點退心只顧往來尋覓但逢百姓便問糜夫人消息忽一人指曰夫人抱著孩兒左腿上著了槍行走不得只在前面牆缺內坐地

 

당시 하후은은 스스로 용기와 힘을 자부해 등에 그 검을 맨 채 사람들을 이끌고 오로지 노략질을 하고 있었다. 뜻밖에 마주친 조운이 한 창에 찔러 죽이고 그 검을 빼앗아 살펴보니 칼자루에 금으로 청홍두 글자를 새겨놓아 보검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운이 보검을 꽂고 창을 쥐고 다시 겹겹이 두텁게 포위한 가운데로 돌입했다. 고개를 돌려 뒤따르던 부하 기병들을 보니 이미 아무도 없어서 남아 있는 사람은 (자기) 혼자였다. 그러나 조운은 전혀 물러날 생각이 없이 오로지 이리저리 찾아볼 뿐이었다. 백성을 만날 때마다 미부인의 소식을 물었다. 문득 한 사람이 가리키며 말하기를,

 

부인이 어린아이를 껴안고 왼쪽 허벅지가 창에 찔려 달아나지도 못한 채 앞쪽의 무너진 담벼락 안쪽에 앉아 있습니다.”

 

했다.

 

趙雲聽了連忙追尋只見一個人家被火燒壞土牆糜夫人抱著阿鬥坐於牆下枯井之傍啼哭雲急下馬伏地而拜夫人曰妾得見將軍阿鬥有命矣望將軍可憐他父親飄蕩半世只有這點骨血將軍可護持此子教他得見父面妾死無恨雲曰夫人受難雲之罪也不必多言請夫人上馬雲自步行死戰保夫人透出重圍糜夫人曰不可將軍豈可無馬此子全賴將軍保護妾已重傷死何足惜望將軍速抱此子前去勿以妾爲累也雲曰喊聲將近追兵已至請夫人速速上馬糜夫人曰妾身委實難去休得兩誤乃將阿鬥遞與趙雲曰此子性命全在將軍身上

 

조운이 듣고 나서 급히 달려가 찾아보았다. 집 한 채가 보이고 그 흙담은 불타 무너졌는데 미부인이 아두를 안고 담벼락 아래 말라붙은 우물가에 앉아서 목놓아 울고 있었다. 조운이 서둘러 말에서 내려 땅에 엎드려 절을 올리자 부인이 말하기를,

 

첩이 장군을 만났으니 아두는 살게 됐습니다. 바라건대 장군께서 그 부친이 반평생을 떠돌다 얻은 한 점 혈육을 가련히 여기소서. 장군께서 이 아이를 보호하여 데려가서 그 부친을 만나게 해 준다면 첩은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하니, 조운이 말하기를,

 

부인께서 어려움에 빠진 것은 저의 죄입니다. 여러 말 할 필요 없이 청컨대 부인께서 말에 타십시오. 저는 걸어가며 죽을 각오로 싸워 부인을 보호하여 두터운 포위를 뚫고 나가겠습니다.”

 

했다. 미부인이 말하기를,

 

아니 됩니다. 장군께서 어찌 말을 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아이는 장군의 보호만 믿겠습니다. 첩은 이미 중상을 입었으니 죽은들 어찌 족히 애석하겠습니까! 바라건대 장군께서는 어서 이 아이를 안고 가십시오. 첩이 누가 되게 하지 마십시오.”

 

하니, 조운이 말하기를,

 

함성이 가까워지는 걸 봐서 추격병이 들이닥칠 텐데 청컨대 부인께서는 속히 말에 타십시오.”

 

했다. 미부인이 말하기를,

 

제 몸은 정말로 가기 글렀는데 둘 다 놓쳐서는 안 됩니다.”

 

하고, 이에 아두를 조운에게 넘겨주고 말하기를,

 

이 아이의 목숨은 오로지 장군에게 달렸습니다!”

 

하였다.

 

趙雲三回五次請夫人上馬夫人只不肯上馬四邊喊聲又起雲厲聲曰夫人不聽吾言追軍若至爲之奈何糜夫人乃棄阿鬥於地翻身投入枯井中而死

 

조운이 거듭 거듭 부인께 말에 오를 것을 청하지만 부인은 결코 말에 오르려 하지 않았다. 사방에서 함성이 다시 들리니 조운이 큰 소리로 말하기를,

 

부인께서 제 말을 듣지 않으시다 추격군이 들이닥치면 어찌하시렵니까?”

 

하니, 미부인이 아두를 땅에 버려두고 몸을 뒤집어 말라붙은 우물 안으로 투신해 죽었다.

 

後人有詩贊之曰

 

戰將全憑馬力多

步行怎把幼君扶

拚將一死存劉嗣

勇決還虧女丈夫

 

뒷날 어떤 사람이 시를 지어 찬양하기를,

 

싸우는 장수들 모두 말의 힘에 기대거늘,

걸어 다녀서야 어찌 어린 주군을 지키리오?

장수가 죽기로 싸워 유씨 후손을 남기니,

용감과 결단은 도리어 여장부 덕분일세.”

 

하였다.

 

趙雲見夫人已死恐曹軍盜屍便將土牆推倒掩蓋枯井掩訖解開勒甲絛放下掩心鏡將阿鬥抱護在懷綽槍上馬早有一將引一隊步軍至乃曹洪部將晏明也持三尖兩刃刀來戰趙雲不三合被趙雲一槍刺倒殺散衆軍沖開一條路

 

조운은 부인이 죽자 조조 군사들이 시체를 훔쳐갈까 두려워 곧 흙담을 밀어 넣어 마른 우물을 덮어버렸다. 덮고 나서 갑옷 끈을 풀고 엄심경(掩心鏡 거울처럼 생긴 가슴 방호구)을 내려 아두를 안에 품더니 창을 쥐고 말을 탔다. 벌써 한 장수가 한 무리 보병을 이끌고 다다르니 바로 조홍의 부하 장수 안명이다. 그가 삼첨양인도(三尖兩刃刀 양쪽에 날이 선 칼)를 들고 조운에게 덤벼들었다. 3합이 안 되어 조운이 한창에 찔러 쓰러뜨리고 군사들을 무찔러서 한줄기 혈로를 뚫었다.

 

正走間前面又一枝軍馬攔路當先一員大將旗號分明大書河間張郃雲更不答話挺槍便戰約十餘合雲不敢戀戰奪路而走背後張郃趕來雲加鞭而行不想趷躂一聲連馬和人顛入土坑之內張郃挺槍來刺忽然一道紅光從土坑中滾起那匹馬平空一躍跳出坑外

 

한창 달아나고 있는데 앞에 다시 한 무리 군마가 길을 막았다. 선두를 맡은 대장은 그 깃발에 분명하게 하간 장합이라 크게 쓰여 있었다. 조운이 아무 말 없이 창을 꼬나쥐고 싸웠다. 약 십여합을 싸우다 조운이 싸우고 싶지 않아 길을 뚫고 달아났다. 배후에서 장합이 쫓아오니 조운이 말에 채찍을 가해 달리다가 뜻밖에 말이 아차 미끄러져서 사람과 함께 흙구덩이 속으로 떨어졌다. 장합이 창을 쥐고 달려와서 찌르려 하는데 문득 한줄기 붉은 빛이 흙구덩이로부터 치솟아 올랐다. 그 말이 허공을 한번 뛰어올라 구덩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後人有詩曰

 

紅光罩體困龍飛

征馬沖開長阪圍

四十二年真命主

將軍因得顯神威

 

뒷날 어떤 사람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붉은 빛 온몸을 감싼 곤액에 처한 용이 날아올라,

싸움 말이 장판의 포위를 뚫고 나오네.

마흔 두 해에 걸쳐 천명을 받은 군주이니,

장군은 이로써 신령스런 위세를 떨치는구나.”

 

하였다.

 

張郃見了大驚而退趙雲縱馬正走背後忽有二將大叫趙雲休走前面又有二將使兩般軍器截住去路後面趕的是馬延張顗前面阻的是焦觸張南都是袁紹手下降將趙雲力戰四將曹軍一齊擁至雲乃拔青釭劍亂砍手起處衣甲平過血如湧泉殺退衆軍將直透重圍

 

장합이 보고는 크게 놀라 물러났다. 조운이 말을 달려 달아나는데 배후에서 문득 장수 둘이 크게 외치기를,

 

조운아! 달아나지 마라!”

 

했다. 앞에서 또 장수 둘이 무기를 휘둘러 갈 길을 막았다. 뒤에서 따라붙는 자들은 마연과 장개이고, 앞에서 가로막는 자들은 초촉과 장남이니 모두 원소 밑에 있다가 항복한 장수다. 조운이 네 장수와 힘껏 싸우는데 조조 군사들이 일제히 몰려들었다. 조운이 이에 청홍검을 빼어들고 어지럽게 베니, 손이 가는 곳마다 갑옷이 베이고 피가 샘솟았다. 많은 군사와 장수를 무찔러서 두터운 포위를 바로 뚫었다.

 

卻說曹操在景山頂上望見一將所到之處威不可當急問左右是誰曹洪飛馬下山大叫曰軍中戰將可留姓名雲應聲曰吾乃常山趙子龍也曹洪回報曹操操曰真虎將也吾當生致之遂令飛馬傳報各處如趙雲到不許放冷箭只要捉活的因此趙雲得脫此難此亦阿鬥之福所致也

 

한편, 조조는 경산 정상에 있었는데 멀리 바라보니 한 장수가 가는 곳마다 그 위세를 당하지 못하는지라 급히 좌우에 그가 누구냐 물었다. 조홍이 나는 듯이 말을 달려 산을 내려가 크게 외치기를,

 

군중에서 싸우는 장수는 성명을 남겨라!”

 

하니, 조운이 듣자마자 말하기를,

 

나는 바로 상산의 조자룡이다!”

 

했다. 조홍이 돌아와 알리자 조조가 말하기를,

 

참으로 범 같은 장수로다! 내가 마땅히 그를 생포하겠다.”

 

하고, 곧 명을 내리니 빠른 말을 달려 곳곳에 통보를 전하기를,

 

조운이 오더라도 냉전(불시에 저격하는 화살)을 날리지 말고 오로지 사로잡아라.”

 

했다. 이로 인해 조운이 그 어려움을 벗어났다. 이것도 아두의 복이 있어 생긴 일이었다.

 

這一場殺趙雲懷抱後主直透重圍砍倒大旗兩面奪槊三條前後槍刺劍砍殺死曹營名將五十餘員

 

이렇게 한바탕 무찌르고 조운이 후주를 품고 그 두터운 포위를 바로 뚫으니 베어 넘어뜨린 큰 깃발이 두 개요, 빼앗은 큰 창이 세 개요, 앞뒤로 창으로 찌르고 검으로 베어 죽인 조조 진영의 이름난 장수가 50여 명이다.

 

後人有詩曰

 

血染征袍透甲紅

當陽誰敢與爭鋒

古來沖陣扶危主

只有常山趙子龍

 

뒷날 어떤 사람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피가 전투복과 갑옷을 붉게 물들이니,

당양에서 누가 감히 맞서리요!

예로부터 적진을 뚫고 주인을 구한 자는,

오로지 상산의 조자룡이 있을 뿐이네.”

 

라고 했다.

 

趙雲當下殺透重圍已離大陣血滿征袍正行間山坡下又撞出兩枝軍乃夏侯惇部將鍾縉鍾紳兄弟二人一個使大斧一個使畫戟大喝趙雲快下馬受縛正是才離虎窟逃生去又遇龍潭鼓浪來

 

조운이 거기에서 두터운 포위를 뚫고 큰 진영을 벗어났는데 피가 군복에 흥건했다. 한창 가고 있는데 산비탈 아래에서 또 두 갈래의 군사들이 튀어나왔다. 바로 하후돈의 부하장수 종진과 종신 형제 두 사람인데 하나는 큰 도끼를 들고, 하나는 화극을 들고는 큰소리로 외치기를,

 

조운은 빨리 말에서 내려 포박을 받아라!”

 

했다. 이야말로, 겨우 호랑이 굴을 벗어나 달아나는데, 다시 용의 연못을 만나 물결이 거칠구나.

 

畢竟子龍怎地脫身且聽下回分解

 

마침내 자룡은 어떻게 탈출할까? 다음 회의 이야기를 들으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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