踝 복사뼈 과, 骨 뼈 골, 三 석 삼, 穿 뚫을 천

황상(黃裳)은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선생의 가장 아끼는 제자로, 그는 무려 70세가 넘어서도 여전히 초서(抄書), 즉 책에서 중요한 내용을 뽑아 정리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를 보고 주변 사람들이 "이 나이에 초서(抄書)를 해서 무엇 하느냐"고 묻자, 황상(黃裳)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선생님께서는 강진(康津)에서 20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시면서 공부에 매진하셨습니다. 그 결과 복사뼈에 세 번 구멍이 날[踝骨三穿 과골삼천] 정도로 책을 읽고 쓰셨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제 공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처럼 황상(黃裳)은 다산(茶山)의 학문적 열정에 크게 감명받았고, 이를 본받아 부단히 공부하며 인생을 완성해 나갔습니다. 그는 다산(茶山)에게서 배운 세 가지 중요한 교훈, 즉 삼근계(三勤戒)를 통해 삶을 바꾸었죠.
삼근계(三勤戒)의 가르침
황상(黃裳)과 다산(茶山)의 일화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삼근계(三勤戒)입니다. 다산은 황상에게 "학문에는 세 가지 큰 병통(病痛)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황상이 "저는 둔하고 앞뒤가 막혀 답답합니다"라며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자, 다산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배우는 사람에게 세 가지 병통(病痛)이 있다. 첫째, 외우는 데 민첩한 사람은 자주 소홀해진다. 둘째, 글을 잘 짓는 사람은 글이 들뜨고 날리기 쉽다. 셋째, 깨달음이 빠른 사람은 깊이가 없고 거칠다. 하지만, 둔한 사람도 계속 천착(穿鑿)하면 구멍이 넓어지고, 막혔다가 뚫리면 흐름이 성대해지며, 답답한 사람도 꾸준히 연마하면 빛이 난다. 그러니 부지런히, 꾸준히 하라!”
즉, 다산(茶山)의 가르침은 지식의 깊이를 천착(穿鑿)하고, 막힌 부분을 부지런히 뚫어내며, 답답한 부분도 꾸준히 연마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가르침이 바로 황상(黃裳)을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만든 비결이었습니다.
다산(茶山)의 유배 생활과 공부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실학자(實學者)이자 개혁가(改革家)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천주교(天主敎)와 연관된 황사영 백서 사건(黃嗣永帛書事件)으로 인해 유배를 당했죠. 이 사건은 당시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민감한 내용이 담긴 백서(帛書)가 발단이 되었습니다. 황사영(黃嗣永)이 작성한 이 문서는 당시 천주교 교세, 중국인 주문모(周文謨) 신부의 활동, 그리고 신유박해(辛酉迫害)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었으며, 외세의 힘을 빌려 조선 사회를 개혁하려는 계획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 백서(帛書)는 관변측에 발각되어 황사영(黃嗣永)은 대역죄인(大逆罪人)으로 처형되었고, 다산(茶山) 또한 강진(康津)으로 유배되었습니다. 그가 강진(康津)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18년 동안 그는 자연 속에서 책을 읽고 사색하며 학문에 몰두했습니다. 그의 학문적 성취는 이 유배 기간에 크게 꽃피웠죠.
다산(茶山)은 후에 벗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함장축언(含章蓄言)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아름다움을 머금고, 말을 아껴야 한다. 그러나 내가 그간 공부해서 얻은 깨달음을 글로 남기지 않는다면 성인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니, 이를 세상에 펼칠 수밖에 없었다.”
즉, 다산(茶山)은 학문을 깊이 탐구하면서도 함부로 자신의 지식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오랜 기간 내면에 쌓은 지식을, 꼭 필요할 때만 드러내는 태도야말로 그의 학문적 깊이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꽃봉오리와 학문: 함장(含章)의 비유
다산(茶山)은 자신의 공부를 함장(含章)에 비유했습니다. 꽃봉오리가 처음 맺히고 활짝 피기 전까지는 긴 시간이 걸립니다. 꽃은 그 안에서 비밀스럽게, 단단히 봉해져 있다가 온전히 충실한 상태가 되면 비로소 피어나죠. 다산(茶山)은 이런 과정을 온축(蘊蓄)이라고 했습니다. 지식을 단단히 쌓아 두었다가, 때가 되어야만 비로소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함장(含章)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제자인 황상(黃裳)에게도 이런 태도를 가르쳤습니다. "몇 구절 알게 되었다고 서둘러 세상에 드러내려 하지 말라"는 것이 다산의 당부였습니다. 지식과 학문은 천천히 쌓아야 하고, 그것이 충분히 쌓였을 때만 그 진가가 드러나게 됩니다.
황상(黃裳)의 학문적 열정
황상(黃裳)은 중인(中人)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산(茶山)의 가르침을 받으며 끊임없이 학문에 정진했습니다. 그는 평생 초서(抄書)를 멈추지 않았고, 자신이 둔하고 답답하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지만, 다산(茶山)의 가르침대로 부지런히 공부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시인(詩人)이자 문장가(文章家)가 되었습니다.
황상(黃裳)의 인생은 다산의 가르침으로 인해 완전히 변화했으며, 이는 그가 꾸준히, 부지런히 공부한 덕분이었습니다. 다산(茶山)의 가르침대로 그는 "뚫고, 또 뚫고, 또 뚫어" 자신의 길을 개척했습니다.
결론: 학문은 인내와 꾸준함이 만든 꽃
다산(茶山)과 황상(黃裳)의 일화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학문은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식은 꽃봉오리처럼 오랜 시간 동안 내부에서 쌓여야만 비로소 피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부지런함과 끈기가 없으면 그 꽃은 결코 활짝 피어나지 않습니다.
다산(茶山)의 가르침을 받은 황상(黃裳)은, 마치 복사뼈에 구멍이 나도록[踝骨三穿 과골삼천] 부지런히 공부한 다산(茶山)처럼, 자신도 계속해서 학문에 몰두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문장가(文章家)가 되었고, 그의 삶은 다산(茶山)의 가르침 덕분에 꽃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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