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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하비성에서 조조가 격전하고 백문루에서 여포가 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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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九回

下邳城曹操鏖兵 白門樓呂布殞命

 

19회 하비성에서 조조가 격전하고 백문루에서 여포가 숨지다.

 

 

卻說高順引張遼擊關公寨呂布自擊張飛寨張各出迎戰玄德引兵兩路接應呂布分軍從背後殺來張兩軍皆潰玄德引數十騎奔回沛城呂布趕來玄德急喚城上軍士放下吊橋呂布隨後也到城上欲待放箭又恐射了玄德被呂布乘勢殺入城門把門將士抵敵不住都四散奔避呂布招軍入城玄德見勢已急到家不及只得棄了妻小穿城而過走出西門匹馬逃難

 

한편, 고순이 장요를 이끌고 관우의 진지를 공격하고, 여포는 친히 장비 진지를 공격하니, 관우와 장비가 각각 나아가 적을 맞아 싸우고, 현덕이 병력을 이끌고 두 갈래로 지원했다. 여포가 군사를 나누어 배후에서 쏟아져 나오자 관우와 장비 양군이 모두 궤멸하였고, 현덕은 수십 기만 이끌고 소패성으로 달아났다. 여포가 추격하자 현덕이 급히 성 위의 군사를 불러 적교를 내리라고 했다. 그러나 여포가 바싹 뒤쫓아서, 성 위에서 활을 쏘려고 해도, 현덕을 맞힐까 두려웠다. 여포가 형세를 타고 성문으로 쇄도해 들어오니 문을 지키는 장수와 군사가 막아내지를 못하고 모두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여포는 군사를 불러모아 소패성으로 들어갔다. 현덕이 보니 형세가 이미 위급하여, 집으로 가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처자식을 버리고 성안을 그대로 통과하여 서문을 나와 필마로 도망쳤다.

 

呂布趕到玄德家中糜竺出迎告布曰吾聞大丈夫不廢人之妻子今與將軍爭天下者曹公耳玄德常念轅門射戟之恩不敢背將軍也今不得已而投曹公惟將軍憐之布曰吾與玄德舊交豈忍害他妻子便令糜竺引玄德妻小去徐州安置布自引軍投山東兗州境上留高順張遼守小沛此時孫乾已逃出城外張二人亦各自收得些人馬往山中住紥

 

여포가 현덕의 집에 이르자 미축이 나와 맞이하고 여포에게 고하기를,

 

제가 듣자니 대장부는 다른 사람의 처자를 폐하지 않는다 합니다. 지금 장군과 천하를 다투는 사람은 조공뿐입니다. 현덕은 늘 원문에서 활로 극을 쏴 구해주신 은혜를 생각하고, 감히 장군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부득이 조공에게 넘어간 것을 오직 장군께서 가엾게 여기십시오.”

 

하니, 여포가 말하기를,

 

내가 현덕과 오래 사귀었는데 어찌 차마 그의 처자를 해치겠소?”

 

했다. 곧 미축에게 현덕 처자식을 데리고 서주로 가 편안히 있게 하였다. 여포는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산동 연주의 경계로 가고, 고순과 장요를 남겨서 소패를 지키게 했다. 이때 손건이 이미 성밖으로 달아나 있었고, 관우와 장비 두 사람도 각자 인마를 약간 거두어서 산중으로 가서 주둔했다.

 

且說玄德匹馬逃難正行間背後一人趕至視之乃孫乾也玄德曰吾今兩弟不知存亡妻小失散爲之奈何孫乾曰不若且投曹操以圖後計玄德依言尋小路投許都途次絕糧嘗往村中求食但到處聞劉豫州皆爭進飲食一日到一家投宿其家一少年出拜問其姓名乃獵戶劉安也當下劉安聞豫州牧至欲尋野味供食一時不能得乃殺其妻以食之玄值曰此何肉也安曰乃狼肉也玄德不疑乃飽食了一頓天晚就宿

 

한편, 현덕이 필마로 달아나는 중에, 뒤에서 따라오는 한 사람을 보니 바로 손건이었다. 현덕이 말하기를,

 

내가 지금 두 아우의 생사를 모르고 처자식도 잃었는데 어찌 해야겠소?”

 

하니, 손건이 말하기를,

 

조조에게 가서 계책을 도모해야 합니다.”

 

하였다. 현덕이 그 말에 따라 작은 길을 찾아 허도로 가기로 했다. 길을 가다가 먹을 게 떨어져서 마을에 가서 먹을 것을 구했다. 그러자 가는 곳마다 유 예주께서 오셨다고 다투어 음식을 진상했다. 어느날 어느 집에 투숙하자 한 젊은이가 나와 절하므로 성명을 물으니 사냥꾼 유안이라고 했다. 그때 유안이 예주목께서 왔다는 말을 듣고 사냥한 짐승으로 식사를 바치려 했으나 금방 얻을 수가 없어서 아내를 죽여 (요리해) 먹였다. 현덕이 말하기를,

 

이것이 무슨 고긴가?”

 

하니, 유안이 말하기를,

 

늑대 고깁니다.”

 

라고 했다. 현덕이 의심치 않고 배불리 먹고 잠시 쉬었다가 날이 저물어서 거기서 잤다.

 

至曉將去往後院取馬忽見一婦人殺於廚下臂上肉已都割去玄德驚問方知昨夜食者乃其妻之肉也玄德不勝傷感灑淚上馬劉安告玄德曰本欲相隨使君因老母在堂未敢遠行玄德稱謝而別取路出梁城忽見塵頭蔽日一彪大軍來到玄德知是曹操之軍同孫乾徑至中軍旗下與曹操相見具說失沛城散二弟陷妻小之事操亦爲之下淚又說劉安殺妻爲食之事操乃令孫乾以金百兩往賜之

 

새벽에 떠나고자 후원으로 가서 말을 타려는데 언뜻 보니, 한 부인이 부엌에 죽어 있고 팔뚝의 살이 모조리 도려져 있었다. 현덕이 놀라 묻고서야 어제 저녁 먹은 게 바로 그 아내의 고기인 것을 알았다. 현덕이 슬픈 마음을 이기지 못해 눈물 흘리며 말에 올랐다. 유안이 현덕에게 고하기를,

 

본디 사군을 따라가고 싶었으나 노모가 계셔서 감히 멀리 갈 수 없습니다.”

 

하였다. 현덕이 칭송하고 헤어져서 길을 찾아 양성을 떠났다. 문득 먼지가 크게 일어 해를 가리고 한 무리 대군이 도착했다. 현덕은 조조의 군대인 것을 알고 손건과 함께 중군 깃발 아래로 가서 조조와 서로 만나, 소패성을 잃고 두 아우와 흩어졌으며 처자식이 (적진에) 빠진 일을 자세히 말했다. 조조도 듣고서 눈물을 떨구었다. 또 유안이 아내를 죽여 먹인 것을 말하자, 조조가 손건에게 금 1백량을 주어서 유안에게 하사케 했다.

 

軍行至濟北夏侯淵等迎接入寨備言兄夏侯惇損其一目臥病未痊操臨臥處視之令先回許都調理一面使人打探呂布現在何處探馬回報云呂布與陳宮臧霸結連泰山賊寇共攻兗州諸郡操即令曹仁引三千兵打沛城操親提大軍與玄德來戰呂布前至山東路近蕭關正遇泰山寇孫觀吳敦尹禮昌豨領兵三萬餘攔住去路操令許褚迎戰四將一齊出馬許褚奮力死戰四將抵敵不住各自敗走操乘勢掩殺追至蕭關探馬飛報呂布

 

군사들이 행군하여 제북에 이르자 하후연 등이 영접하고 진중으로 들어와 형 하후돈이 한쪽 눈을 잃고 몸져 누워 아직 낫지 않은 것을 자세히 말했다. 조조가 누워있는 곳에 가서 보고, 먼저 허도로 돌아가 조리하라고 명령했다. 한편으로 사람을 보내 여포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보게 했다. 탐마가 돌아와 보고하기를,

 

여포는 진궁과 장패와 함께 태산 도적과 연결하여 연주의 여러 고을을 치고 있습니다.”

 

하였다. 조조가 즉시 조인에게 3천 병력으로 소패성을 치게 했다. 조조가 친히 대군을 이끌고 현덕과 함께 와서 여포와 싸우려고 했다. 산동에 이르기 전에 소관 근처 길에서 태산의 도적 손관, 오돈, 윤례, 창희가 3만여 병력을거느리고 길을 막았다. 조조가 허저에게 맞아 싸우라고 하자 적장 넷이 일제히 말을 타고 나왔다. 허저가 힘껏 죽기로 싸우자 네 장수가 당해내지 못하고 각자 패주했다. 조조가 기세를 타고 덮쳐서 소관까지 뒤쫓자 탐마가 급히 여포에게 보고했다.

 

時布已回徐州欲同陳登往救小沛令陳珪守徐州陳登臨行珪謂之曰昔曹公曾言東方事盡付與汝今布將敗可便圖之登曰外面之事兒自爲之倘布敗回父親便請糜竺一同守城休放布入兒自有脫身之計珪曰布妻小在此心腹頗多爲之奈何登曰兒亦有計了乃入見呂布曰徐州四面受敵操必力攻我當先思退步可將錢糧移於下邳倘徐州被圍下邳有糧可救主公盍早爲計布曰元龍之言甚善吾當並妻小移去遂令宋憲魏續保護妻小與錢糧移屯下邳一面自引軍與陳登往救蕭關到半路登曰容某先到關探曹操虛實主公方可行布許之登乃先到關上

 

이때 여포가 이미 서주로 돌아갔다가 진등을 데리고 소패를 구원키로 하고 진규에게 서주를 지키게 했다. 진등이 떠날 때에 진규가 일러 말하기를,

 

예전에 조공께서 동방의 일은 모두 네게 맡긴다 하셨다. 지금 여포가 장차 패할 것이니 어서 도모해라.”

 

하니, 진등이 말하기를,

 

바깥 일은 제가 알아 하겠습니다. 만약 여포가 패해 돌아오면 부친께서 미축과 함께 성을 지켜 여포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십시오. 저에게 여포에게서 빠져나올 계책이 있습니다.”

 

하였다. 진규가 말하기를,

 

여포의 처자가 여기에 있어서 심복이 제법 많은데 어찌하면 되겠는냐?”

 

하니, 진등이 말하기를,

 

제게 또한 계책이 있습니다.”

 

하였다. 곧 들어가서 여포를 만나 말하기를,

 

서주가 사방으로 적을 맞으니 조조가 반드시 힘껏 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마땅히 먼저 물러날 곳을 생각해야 합니다. 재물과 식량을 하비성으로 이송하면 서주가 포위돼도 하비에 양식이 있어 구원할 수 있습니다. 주공께서 어찌 일찍 헤아리지 않으십니까!”

 

하니, 여포가 말하기를,

 

원룡(진등의 자)의 말이 정말 옳소. 내가 마땅히 처자식과 함께 옮겨야겠소.”

 

하고, 송헌과 위속에게 처자식과 재물과 양식을 보호하여 하비로 옮겨 주둔하게 하였다. 또한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진등과 함께 소관을 구원하러 갔다. 반쯤 가다가 진등이 말하기를,

 

제가 먼저 소관으로 가서 조조의 허실을 살피고서 주공께서 그때 행군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하니, 여포가 허락하여, 진등은 곧 먼저 소관으로 갔다.

 

陳宮等接見登曰溫侯深怪公等不肯向前要來責罰宮曰今曹兵勢大未可輕敵吾等緊守關隘可勸主公深保沛城乃爲上策陳登唯唯至晚上關而望見曹兵直逼關下乃乘夜連寫三封書拴在箭上射下關去次日辭了陳宮飛馬來見呂布曰關上孫觀等皆欲獻關某已留下陳宮守把將軍可於黃昏時殺去救應布曰非公則此關休矣便教陳登飛騎先至關約陳宮爲內應舉火爲號登徑往報宮曰曹兵已抄小路到關內恐徐州有失公等宜急回宮遂引衆棄關而走登就關上放起火來呂布乘黑殺至陳宮軍和呂布軍在黑暗裏自相掩殺

 

진궁 등이 접견하자 진등이 말하기를,

 

온후께서 여러분이 전진을 꺼린다고 꾸짖으러 오십니다.”

 

하니, 진궁이 말하기를,

 

지금 조조의 병세가 대단한데 가볍게 맞설 수 없소. 우리가 관문을 견고히 지키고 주공을 권하여 소패성을 확실히 보존하는 것이 상책이오.”

 

하였다. 진등이 네, 네 하였다. 저녁에 소관에 올라 바라보니, 조조 병력이 소관 아래까지 압박했다. 야음을 틈타 서찰 3봉을 적어 화살에 묶어 소관 아래로 쏘았다. 다음날 진궁에게 작별하고 급히 말을 몰아 가서 여포를 만나 말하기를,

 

소관 위에서 손관 등이 모두 소관을 바치려고 해서 제가 진궁에게 지키라고 말해 두었습니다. 장군께서 황혼 무렵 달려가서 구원하면 될 것입니다.”

 

하니, 여포가 말하기를,

 

그대가 아니었으면 이 관문을 잃을 뻔했소.”

 

하였다. 곧 여포가 진등을 시켜 빠른 말로 먼저 소관에 가서, 진궁과 내응하여 횃불을 올려 신호하기로 약속하게 했다. 진등이 곧바로 가서 진궁에게 알려 말하기를,

 

조조의 병력이 이미 좁은 길을 따라 관 안으로 침투해서 서주를 잃을까 두렵소. 그대들은 어서 돌아가시오.”

 

하니, 진궁이 마침내 무리를 이끌고 소관을 버리고 달아났다. 진등이 관 위에 올라가서 횃불을 올렸다. 여포가 야음을 틈타 쇄도하다가 진궁 부대와 어둠 속에서 (마주쳐) 서로 마구 죽였다.

 

曹兵望見號火一齊殺到乘勢攻擊孫觀等各自四散逃避去了呂布直殺到天明方知是計急與陳宮回徐州到得城邊叫門時城上亂箭射下糜竺在敵樓上喝曰汝奪吾主城池今當仍還吾主汝不得複入此城也布大怒曰陳珪何在竺曰吾已殺之矣布回顧宮曰陳登安在宮曰將軍尚執迷而問此佞賊乎布令遍尋軍中卻只不見宮勸布急投小沛布從之行至半路只見一彪軍驟至視之乃高順張遼也

 

조조의 병력이 횃불 신호를 보고 일제히 쇄도해서 기세를 타고 공격했다. 손관 등이 각자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여포가 해가 뜨도록 싸우고서야 계략인 걸 알고 급히 진궁과 함께 서주로 돌아갔다. 성 근처에 이르러 문을 열라 외치자 성 위에서 어지럽게 화살을 쏘아댔다. 미축이 망루에 나와서 꾸짖기를,

 

너희가 우리 주군의 성지를 빼앗았다. 이제 주군께 돌려줘야겠으니 너희는 이 성에 다시 들어올 수 없다.”

 

하였다. 여포가 크게 노해 말하기를,

 

진규는 어딨느냐?”

 

하니, 미축이 말하기를,

 

내가 이미 죽였다.”

 

라고 했다. 여포가 고개를 돌려 진궁에게 말하기를,

 

진등은 어디에 있소?”

 

하니, 진궁이 말하기를,

 

장군께서 아직도 미혹에 빠져 그 간사한 도적을 찾으십니까?”

 

하였다. 여포가 군중에서 두루 찾게 하였지만 보이지 않았다. 진궁이 여포에게 권하여 급히 소패로 가자고 하니 여포가 따랐다. 길을 반쯤 가다가 한 무리 군사가 몰려오는데, 보니 바로 고순과 장요였다.

 

布問之答曰陳登來報說主公被圍令某等急來救解宮曰此又佞賊之計也布怒曰吾必殺此賊急驅馬至小沛只見小沛城上盡插曹兵旗號原來曹操已令曹仁襲了城池引軍守把呂布於城下大罵陳登登在城上指布罵曰吾乃漢臣安肯事汝反賊耶布大怒正待攻城忽聽背後喊聲大起一隊人馬來到當先一將乃是張飛高順出馬迎敵不能取勝布親自接戰正鬥間陣外喊聲複起曹操親統大軍沖殺前來

 

여포가 묻자 답하기를,

 

진등이 와서 주공께서 포위를 당해 저희에게 급히 구원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니, 진궁이 말하기를,

 

이것도 그 간사한 도적의 계략입니다.”

 

라고 했다. 여포가 노하여 말하기를,

 

내가 반드시 이 도적놈을 죽이겠다!”

 

하고, 급히 말을 몰아 소패에 이르렀다. 그러나 보니, 소패성 위에는 모두 조조 군의 깃발이 꽂혀 있었다. 원래 조조가 이미 조인에게 소패를 습격하여 군사를 이끌고 지키게 했다. 여포가 성 아래에서 진등을 크게 욕하자 진등이 성 위에서 여포를 손가락질하며 욕하기를,

 

나는 한나라 신하지 어찌 너 같은 역적을 기꺼이 섬기겠느냐!”

 

하였다. 여포가 크게 노하여 바로 성을 치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함성이 크게 일어나더니 한 무리 인마가 다가왔다. 앞에 선 장수는 바로 장비였다. 고순이 말을 타고 나가 맞섰지만 이기지 못했다. 여포가 몸소 접전하여, 막 싸우는 사이에 진 밖으로 함성이 다시 일어나더니 조조가 친히 대군을 거느리고 쳐들어왔다.

 

呂布料難抵敵引軍東走曹兵隨後追趕呂布走得人困馬乏忽又閃出一彪軍攔住去路爲首一將立馬橫刀大喝呂布休走關雲長在此呂布慌忙接戰背後張飛趕來布無心戀戰與陳宮等殺開條路徑奔下邳侯成引兵接應去了張相見各灑淚言失散之事雲長曰我在海州路上住紥探得消息故來至此張飛曰弟在芒碭山住了這幾時今日幸得相遇

 

여포가 대적하기 어렵다고 여기고, 군을 이끌고 동쪽으로 달아났다. 조조의 군대가 뒤쫓으니, 여포가 달아났으나 사람과 말이 지쳤다. 갑자기 또 한 무리 군사가 튀어나와 가는 길을 막는데, 맨앞에 선 한 장수가 말을 세우고 칼을 비껴들고 크게 꾸짖기를,

 

여포는 달아나지 마라. 관운장이 여기 있다!”

 

했다. 여포가 황망히 맞붙어 싸우는데 뒤에서 장비가 쫓아왔다. 여포가 싸울 마음이 없어져 진궁과 함께 한줄기 길을 뚫어 하비성으로 내달았다. 후성이 병력을 이끌고 구원하여 따라갔다. 관우와 장비가 만나서 눈물을 흘리며 서로 헤어졌던 일을 이야기했다. 운장이 말하기를,

 

나는 해주 길 가에 주둔하다가 소식을 듣고 여기로 찾아왔다.”

 

하니 장비가 말하기를,

 

아우는 망탕산에 잠시 있다가 오늘 다행히 만났소.”

 

하였다.

 

兩個敘話畢一同引兵來見玄德哭拜於地玄德悲喜交集引二人見曹操便隨操入徐州糜竺接見具言家屬無恙玄德甚喜陳珪父子亦來參拜曹操操設一大宴犒勞諸將操自居中使陳珪居右玄德居左其餘將士各依次坐宴罷操嘉陳珪父子之功加封十縣之祿授登爲伏波將軍且說曹操得了徐州心中大喜商議起兵攻下邳程昱曰布今止有下邳一城若逼之太急必死戰而投袁術矣布與術合其勢難攻今可使能事者守住淮南徑路內防呂布外當袁術況今山東尚有臧霸孫觀之徒未曾歸順防之亦不可忽也

 

두 사람이 이야기를 마치고 함께 병력을 이끌고 현덕을 만나 울면서 땅에 엎드려 절했다. 현덕이 희비가 교차하여 두 사람을 데리고 조조를 만나 조조를 따라 서주로 들어갔다. 미축이 이들과 만나서 식구가 무사한 걸 이르자 현덕이 매우 기뻐했다. 진규 부자도 찾아와 조조를 뵈었다. 조조가 크게 연회를 열어 여러 장수를 위로했다. 조조가 가운데 앉고, 진규를 오른쪽에 앉히고, 현덕을 왼쪽에 앉게 했다. 그 나머지 장수는 각각 차례대로 앉았다. 연회가 끝나자 진규 부자의 공을 기려서 열 고을의 봉록을 더하고, 진등을 복파장군으로 제수했다. 한편, 조조가 서주를 얻고서 마음 속으로 크게 기뻐하여 병사를 일으켜 하비성을 칠 것을 상의했다. 정욱이 말하기를,

 

여포가 지금 하비성 하나뿐이라 매우 위급하니 반드시 죽기로 싸우고 원술에게 넘어갈 것입니다. 여포와 원술이 합세하면 그 형세가 공격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유능한 자에게 회남 경로를 지키게 해서 안으로 여포를 막고, 밖으로 원술에 대처해야 합니다. 게다가 지금 산동엔 아직 장패, 손관의 무리가 귀순하지 않고 있으니, 그들을 막는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하였다.

 

操曰吾自當山東諸路其淮南徑路請玄德當之玄德曰丞相將令安敢有違次日玄德留糜竺簡雍在徐州帶孫乾張引軍住守淮南徑路曹操自引兵攻下邳且說呂布在下邳自恃糧食足備且有泗水之險安心坐守可保無虞陳宮曰今操兵方來可乘其寨柵未定以逸擊勞無不勝者布曰吾方屢敗不可輕出待其來攻而後擊之皆落泗水矣遂不聽陳宮之言

 

조조가 말하기를,

 

내가 스스로 산동의 여러 길을 맡겠소. 회남의 좁은 길은 현덕이 맡아 주시기 바라오.”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승상의 명령을 어찌 감히 어기겠습니까?”

 

하였다. 다음날 현덕이 미축과 간옹을 서주에 남겨두고 손건과 관우 장비를 데리고 군사를 이끌고 회남의 좁은 길로 가서 지켰다. 조조가 스스로 병력을 이끌고 하비성을 쳤다. 한편 여포는 하비성에 있으면서 양식이 넉넉하고 사수가 험하니, 안심하고 앉아서 지키면 보전하리라 생각하고 아무 걱정이 없었다. 진궁이 말하기를,

 

지금 조조 병력이 와서 진지가 완성되지 않은 틈을 타, 편안한 군사로 피곤한 군사를 치면 이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여포가 말하기를,

 

우리가 여러 번 패하여 가볍게 출전할 수 없소. 와서 공격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반격하면 모두 사수에 빠질 것이오.”

 

하고, 마침내 진궁의 말을 듣지 않았다.

 

過數日曹兵下寨已定操統衆將至城下大叫呂布答話布上城而立操謂布曰聞奉先又欲結婚袁術吾故領兵至此夫術有反逆大罪而公有討董卓之功今何自棄其前功而從逆賊耶倘城池一破悔之晚矣若早來降共扶王室當不失封侯之位布曰丞相且退尚容商議

 

며칠이 지나자 조조의 진지가 이미 안정되었다. 조조가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성 아래로 와서 크게 외쳐 여포에게 대답하라고 불렀다. 여포가 성 위로 올라와 서니, 조조가 여포에게 말하기를,

 

듣자니 봉선이 또 원술과 혼례를 맺으려 한다고 해서 내가 군사를 거느리고 여기에 왔소. 대저 원술은 반역죄를 지었지만 그대는 동탁을 토벌한 공이 있는데, 지금 어찌하여 스스로 옛 공을 버리고 역적을 따르려 하오? 만약 성지가 함락되면 후회해도 늦소! 만약 일찍 항복해서 함께 왕실을 떠받치면 마땅히 제후의 지위도 잃지 않을 것이오.”

 

하니, 여포가 말하기를,

 

승상께서 우선 물러나시면 상의해 보겠소.”

 

하였다.

 

陳宮在布側大罵曹操奸賊一箭射中其麾蓋操指宮恨曰吾誓殺汝遂引兵攻城宮謂布曰曹操遠來勢不能久將軍可以步騎出屯於外宮將餘衆閉守於內操若攻將軍宮引兵擊其背若來攻城將軍爲救於後不過旬日操軍食盡可一鼓而破此乃掎角之勢也布曰公言極是遂歸府收拾戎裝時方冬寒分付從人多帶綿衣

 

진궁이 여포 옆에 있다가 조조를 간사한 역적이라고 크게 욕하고서 화살을 한 대 쏘아 그 대장기 덮개를 맞추었다. 조조가 진궁을 가리켜 증오하며 말하기를,

 

내가 맹세코 너를 죽이겠다!”

 

하고, 곧 병력을 이끌고 성을 공격했다. 진궁이 여포에게 말하기를,

 

조조가 멀리서 와서 형세가 오래 버틸 수 없습니다. 장군께서 보병과 기병으로 바깥에 둔병하시고 제가 나머지 무리로 안에서 굳게 지켜야 합니다. 조조가 장군을 치면 제가 병력을 이끌고 그 배후를 치고, 조조가 와서 성을 공격하면 장군께서 뒤에서 구원하십시오. 그러면 열흘을 못 가 조조 군은 식량이 바닥나서 북소리 한번에 깨트릴 것이니, 이게 기각지세(掎角之勢 소의 양쪽 뿔을 잡듯이 군사를 둘로 나누어 견제하는 형세)입니다.”

 

라고 하니, 여포가 말하기를,

 

그대 말이 아주 옳소.”

 

하고, 곧 부중으로 돌아가서 무장을 차려 입었다. 이때가 바야흐로 추운 겨울이라 하인들에게 분부하여 솜옷을 많이 준비하게 했다.

 

布妻嚴氏聞之出問曰君欲何往布告以陳宮之謀嚴氏曰君委全城捐妻子孤軍遠出倘一旦有變妾豈得爲將軍之妻乎布躊躇未決三日不出宮入見曰操軍四面圍城若不早出必受其困布曰吾思遠出不如堅守宮曰近聞操軍糧少遣人往許都去取早晚將至將軍可引精兵往斷其糧道此計大妙布然其言複入內對嚴氏說知此事嚴氏泣曰將軍若出陳宮高順安能堅守城池倘有差失悔無及矣妾昔在長安已爲將軍所棄幸賴龐舒私藏妾身再得與將軍相聚孰知今又棄妾而去乎將軍前程萬裏請勿以妾爲念言罷痛哭

 

아내 엄씨가 (솜옷을 준비하라는 종의 말을) 듣더니 나와서 여포에게 묻기를,

 

당신이 어디에 가십니까?”

 

하니, 여포가 진궁의 계책을 고했다. 엄씨가 말하기를,

 

당신이 성을 모두에게 맡기고 처자를 버리고 외로운 군사가 되어 멀리 나갔다가 하루 아침에 변고라도 생기면 제 어찌 장군의 아내가 되겠소?”

 

하니, 여포가 주저하고 결단치 못하고 사흘을 나가지 않았다. 진궁이 들어와서 말하기를,

 

조조 군이 사방으로 성을 포위하였으니 어서 출전치 않으시면 반드시 곤란해집니다.”

 

했다. 여포가 말하기를,

 

내가 생각해보니 멀리 나가는 게 견고히 지키는 것만 못하오.”

 

하니, 진궁이 말하기를,

 

요새 들으니 조조 군의 양식이 적어서 사람을 보내 허도에 (군량을) 가지러 간 게 조만간 온다고 합니다. 장군께서 정예병을 이끌고 양도(양곡수송로)를 끊으십시오. 이 계책이 매우 훌륭합니다.”

 

하였다. 여포가 그럴 듯하게 여겨서, 다시 안으로 들어가 엄씨에게 그 일을 말하여 알렸다. 엄씨가 울며 말하기를,

 

장군께서 나가시면 진궁과 고순이 어찌 성지를 굳게 지키겠소? 만약 잘못되면 후회해도 소용없소! 제가 예전에 장안에 있을 때 이미 장군에게 버림받았는데, 다행히 방서가 저를 숨겨줘서 다시 장군과 만났었소. 이제 또 저를 버리고 갈 줄 누가 알았겠소? 장군께서 만리길을 떠나시려거든 저를 걱정하지 마십시오!”

 

말을 마치고 통곡했다.

 

布聞言愁悶不決入告貂蟬貂蟬曰將軍與妾作主勿輕身自出布曰汝無憂慮吾有畫戟赤兔馬誰敢近我乃出謂陳宮曰操軍糧至者詐也操多詭計吾未敢動宮出歎曰吾等死無葬身之地矣布於是終日不出只同嚴氏貂蟬飲酒解悶謀士許汜王楷入見布進計曰今袁術在淮南聲勢大振將軍舊曾與彼約婚今何不仍求之彼兵若至內外夾攻操不難破也布從其計即日修書就著二人前去許汜曰須得一軍引路沖出方好布令張遼郝萌兩個引兵一千送出隘口

 

여포가 그 말을 듣고 걱정하고 결단치 못하더니, 초선에게 들어가서 고하니 초선이 말하기를,

 

장군께서 제 주인이신데 제발 몸을 가볍게 스스로 나가지 마십시오.”

 

하였다. 여포가 말하기를,

 

너는 걱정하지 말아라. 내게 화극과 적토마가 있는데 누가 감히 내 가까이 오겠는가?”

 

하였다. 곧 나가서 진궁에게 말하기를,

 

조조 군의 양식이 온다는 것은 속임수요. 조조는 속임수가 많으니 내가 아직 감히 움직일 수 없소.”

 

했다. 진궁이 나가며 탄식하기를,

 

우리가 죽어서 묻힐 땅도 없겠구나!”

 

하였다. 여포가 이로부터 종일 나오지 않고 오로지 엄씨와 초선과 함께 술을 마시며 고민을 달랬다. 모사 허사와 왕해가 들어가 여포를 만나서 계책을 올리기를,

 

지금 원술이 회남에서 성세가 대단하고 장군께서 예전에 그와 약혼하셨거늘 지금 어찌 다시 구원을 청하지 않으십니까? 그의 구원병이 오면 내외에서 협공하여 조조를 깨는 게 어렵지 않습니다.”

 

하였다. 여포가 그 계책을 따라서 즉시 글을 써서 두 사람에게 주어서 가게 했다. 허사가 말하기를,

 

반드시 한 무리 군사가 나서서 탈출로를 열어 주는 게 좋겠습니다.”

 

하니, 여포가 장요와 학맹 두 사람에게 병력 1천 명을 이끌고 골짜기 입구에서 내보내게 했다.

 

是夜二更張遼在前郝萌在後保著許汜王楷殺出城去抹過玄德寨衆將追趕不及已出隘口郝萌將五百人跟許汜王楷而去張遼引一半軍回來到隘口時雲長攔住未及交鋒高順引兵出城救應接入城中去了且說許汜王楷至壽春拜見袁術呈上書信術曰前者殺吾使命賴我婚姻今又來相問何也汜曰此爲曹操奸計所誤願明上詳之術曰汝主不因曹兵困急豈肯以女許我楷曰明上今不相救恐唇亡齒寒亦非明上之福也術曰奉先反複無信可先送女然後發兵許汜王楷只得拜辭和郝萌回來到玄德寨邊汜曰日間不可過夜半吾二人先行郝將軍斷後

 

이날 밤 2경에 장요가 앞서고 학맹이 뒤에서 허사와 왕해를 보호하여 성을 급히 나섰다. 현덕의 진지를 스쳐 가서 여러 장수가 미처 추격하지 못한 사이 이미 골짜기 입구를 빠져나갔다. 학맹이 5백 명을 거느리고 허사와 왕해를 데리고 갔다. 장요가 나머지 반을 이끌고 돌아와서 골짜기 입구에 이르자 운장이 막아섰다. 서로 칼날을 부딪히기 전에 고순이 병력을 이끌고 성에서 나와 구해주어서 성중으로 들어갔다. 한편, 허사와 왕해가 수춘에 이르러 원술을 예방하고 서신을 바쳤다. 원술이 말하기를,

 

예전에 내 사신을 죽이고 혼인 제안에 버티더니 이제 와서 요청하는 건 뭐냐?”

 

하니, 허사가 말하기를,

 

그것은 조조의 간계에 때문에 그르친 것입니다. 명공께서 헤아려주십시오.”

 

하였다. 원술이 말하기를,

 

네 주인이 조조의 병력으로 위급하지 않고서야 어찌 딸을 시집보내겠느냐?”

 

하니, 왕해가 말하기를,

 

명공께서 지금 구원하시지 않으시면 곧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이니 명공께도 또한 좋은 것은 아닙니다.”

 

했다. 원술이 말하기를,

 

봉선이 이랬다저랬다 못 믿겠으니 먼저 딸을 보내야 그 다음에 출병하겠다.”

 

했다. 허사와 왕해가 어쩔 수 없이 작별하고 학맹과 함께 돌아왔다. 현덕의 진지 근처에 이르러 허사가 말하기를,

 

낮엔 갈 수 없소. 밤중에 우리 둘이 먼저 가고 학 장군께서 뒤를 막으시오.”

 

했다.

 

商量停當夜過玄德寨許汜王楷先過去了郝萌正行之次張飛出寨攔路郝萌交馬只一合被張飛生擒過去五百人馬盡被殺散張飛解郝萌來見玄德玄德押往大寨見曹操郝萌備說求救許婚一事操大怒斬郝萌於軍門使人傳諭各寨小心防守如有走透呂布及彼軍士者依軍法處治各寨悚然玄德回營分付關張曰我等正當淮南沖要之處二弟切宜小心在意勿犯曹公軍令飛曰捉了一員賊將操不見有甚褒賞卻反來諕嚇何也玄德曰非也曹操統領多軍不以軍令何能服人弟勿犯之張應諾而退

 

의논이 갖추어지자, 밤에 현덕의 진지를 지나서, 허사와 왕해가 먼저 지나갔다. 학맹이 가려고 하는 참에 장비가 출진해서 길을 막아섰다. 학맹이 맞붙은 지 1합에 장비에게 사로잡히고 5백 명 인마도 죽고 흩어졌다. 장비가 학맹을 끌고와 현덕에게 보이자 현덕이 다시 대채로 끌고 가서 조조에게 보였다. 학맹이 구원을 청한 일과 혼인 이야기를 자세히 말했다. 조조가 크게 노해 학맹을 군문에서 참하고 각 진지마다 전령을 보내 세심하게 지키게 하고, 만약 여포와 그쪽 군사에게 누설하는 자가 있으면 군법에 의해 처단할 것이라고 했다. 각 진지가 두려워했다. 현덕이 진지로 돌아와 관우와 장비에게 분부하기를,

 

우리가 회남으로 가는 요충지를 맡고 있다. 두 아우는 아주 세심히 주의하여 절대 조공의 군령을 어기지 말라.”

 

고 하니, 장비가 말하기를,

 

적장 하나를 잡았는데 조조가 포상할 생각은 않고 도리어 겁을 주니 무슨 까닭이지요?”

 

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조조가 대군을 통제하여 거느리니 군령이 아니면 어찌 다스리겠느냐? 아우는 절대 범하지 말라.”

 

하니, 관우와 장비가 응낙하고 물러갔다.

 

卻說許汜王楷回見呂布具言袁術先欲得婦然後起兵救援布曰如何送去汜曰今郝萌被獲操必知我情預作准備若非將軍親自護送誰能突出重圍布曰今日便送去如何汜曰今日乃凶神值日不可去明日大利宜用戌亥時布命張遼高順引三千軍馬安排小車一輛我親送至二百裏外卻使你兩個送去

 

한편, 허사와 왕해가 돌아와 여포를 만나서 원술이 신부를 먼저 얻은 다음에 군사를 일으켜 구원하겠다 한 것을 다 말했다. 여포가 말하기를,

 

어떻게 보내야 되겠소?”

 

하니, 허사가 말하기를,

 

지금 학맹이 잡혀서 조조가 분명히 우리 사정을 알고 미리 대비했을 것입니다. 만약 장군께서 친히 호송하시지 않고서야 누가 능히 두꺼운 포위를 뚫겠습니까?”

 

하니, 여포가 말하기를,

 

오늘 바로 보내는 게 어떻겠소?”

 

하였다. 허사가 말하기를.

 

오늘은 길일이 아니니 보낼 수 없고 내일이 아주 이로우니 마땅히 술시(오후8) 해시(오후10)를 이용하셔야 합니다.”

 

했다. 여포가 장요와 고순에게 명하기를,

 

“3천 군마를 이끌고 작은 수레 하나를 준비해라. 내 친히 2백리 밖까지 호송할테니 그런 뒤에 너희 둘이 호송해 가라.”

 

고 했다.

 

次夜二更時分呂布將女以綿纏身用甲包裹負於背上提戟上馬放開城門布當先出城張遼高順跟著將次到玄德寨前一聲鼓響張二人攔住去路大叫休走布無心戀戰只顧奪路而行玄德自引一軍殺來兩軍混戰呂布雖勇終是縛一女在身上只恐有傷不敢沖突重圍後面徐晃許褚皆殺來衆軍皆大叫曰不要走了呂布布見軍來太急只得仍退入城玄德收軍徐晃等各歸寨端的不曾走透一個呂布回到城中心中憂悶只是飲酒

 

다음날 밤 2(10)에 여포가 딸을 천으로 묶고 갑옷으로 싸서 등위에 업고 화극을 쥐고 말에 올랐다. 성문을 열자 여포가 앞장서서 성을 나갔다. 장요와 고순이 따라 붙었다. 막 현덕의 진영 앞에 이르자 북소리가 한 번 울리더니 관우와 장비 두 사람이 가는 길을 막아서서, 크게 소리 질러,

 

멈춰라!”

 

라고 했다. 여포가 싸울 마음이 없어 오로지 탈출로를 찾았다. 현덕이 친히 한 무리 군사를 이끌고 쇄도하여 양군이 혼전을 벌였다. 여포가 비록 용맹하나 딸을 몸에 묶어서 행여 다칠까 두려워서 감히 두꺼운 포위를 뚫지 못했다. 뒤에서 서황과 허저도 쇄도하며 여러 군사들이 모두 크게 외치기를,

 

여포야! 달아나지 마라!”

 

했다. 여포는 군사들이 아주 급하게 몰려오자 부득이 퇴각해서 입성했다. 현덕이 군사를 거두고, 서황 등도 각각 진지로 돌아갔으며, 분명히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했다. 여포가 성중으로 돌아와 마음이 우울하고 괴로워서 다만 술만 마셨다.

 

卻說曹操攻城兩月不下忽報河內太守張楊出兵東市欲救呂布部將楊醜殺之欲將頭獻丞相卻被張楊心腹將眭固所殺反投犬城去了操聞報即遣史渙追斬眭固因聚衆將曰張楊雖幸自滅然北有袁紹之憂東有表繡之患下邳久圍不克吾欲舍布還都暫且息戰何如荀攸急止曰不可呂布屢敗銳氣已墮軍以將爲主將衰則軍無戰心彼陳宮雖有謀而遲今布之氣未複宮之謀未定作速攻之布可擒也

 

한편, 조조가 하비성을 공격한지 두달이 지났어도 함락하지 못하였다. 갑자기 급보가 이르기를,

 

하내 태수 장양이 동시로 출병하여 여포를 구원하려 하는 것을 부하 장수 양추가 그를 죽이고 머리를 승상께 바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장양의 심복 장수 휴고가 장양을 죽이고 도리어 견성으로 갔습니다.”

 

했다. 조조가 보고를 듣고 즉시 사환을 보내 휴고를 추격해서 참하게 했다. 그리고 여러 장수를 모아 말하기를,

 

장양은 비록 다행히 자멸했으나 북쪽의 원소가 걱정이고, 동쪽의 유표와 장수가 근심거리요. 하비성 또한 오래 포위해도 함락하지 못했소. 여포를 포기하고 허도로 돌아가 잠시 싸움을 쉬고 싶은데 어떻겠소?”

 

하니, 순유가 급히 제지하며 말하기를,

 

불가합니다. 여포가 여러번 패해서 날카로운 기세가 이미 떨어졌습니다. 군대에서 장수가 주인데 장수가 쇠하면 군대도 싸울 마음이 없어집니다. 저 진궁이 비록 꾀가 있다지만 (여포가) 주저하고, 지금 여포의 기세를 아직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진궁의 꾀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니 속공을 하면 여포를 잡을 수 있습니다.”

 

하였다.

 

郭嘉曰某有一計下邳城可立破勝於二十萬師荀彧曰莫非決沂泗之水乎嘉笑曰正是此意操大喜即令軍士決兩河之水曹兵皆居高原坐視水淹下邳下邳一城只剩得東門無水其餘各門都被水淹衆軍飛報呂布布曰吾有赤兔馬渡水如平地又何懼哉乃日與妻妾痛飲美酒因酒色過傷形容銷減一日取鏡自照驚曰吾被酒色傷矣自今日始當戒之遂下令城中但有飲酒者皆斬

 

곽가가 말하기를,

 

제게 한 계책이 있는데 하비성을 가히 서서 깨뜨릴 것이니 2십만 군사보다 나을 것입니다.”

 

하니, 순욱이 말하기를,

 

기수와 사수의 강물을 터뜨리는 것이 아니겠소?”

 

하였다. 곽가가 웃으며 말하기를,

 

바로 그 뜻이오.”

 

했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고 즉시 군사들에게 두 강물을 터뜨리게 했다. 조조의 병력이 모두 높은 언덕에 있어서 물이 하비성을 덮치는 것을 앉아서 보았다. 하비성 전체가 오직 동문에만 물이 없고, 그 나머지 각 문은 모두 물에 잠겼다. 여러 군사가 여포에게 급보하자 여포가 말하기를,

 

내게 적토마가 있어서 물을 건너는 것이 평지 같은데 무엇이 두려우랴!”

 

하였다. 그리고 하루 종일 처첩을 데리고 좋은 술을 통음했다. 그래서 주색이 지나쳐서 모양이 점점 망가졌다. 어느날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고 놀라서 말하기를,

 

내가 주색으로 망가졌구나! 오늘부터 경계해야겠다.”

 

하고, 곧 성안에 명령을 내려, 음주하는 자는 모두 참하라 했다.

 

卻說侯成有馬十五匹被後槽人盜去欲獻與玄德侯成知覺追殺後槽人將馬奪回諸將與侯成作賀侯成釀得五六斛酒欲與諸將會飲恐呂布見罪乃先以酒五瓶詣布府稟曰托將軍虎威追得失馬衆將皆來作賀釀得些酒未敢擅飲特先奉上微意布大怒曰吾方禁酒汝卻釀酒會飲莫非同謀伐我乎命推出斬之宋憲魏續等諸將俱入告饒布曰故犯吾令理合斬首今看衆將面且打一百衆將又哀告打了五十背花然後放歸衆將無不喪氣

 

한편, 후성에게 말이 15필 있었는데 말을 돌보던 자가 훔쳐서 현덕에게 주려고 했다. 후성이 그것을 알고 추적해 죽이고 말을 빼앗아 돌아왔다. 여러 장수가 후성에게 축하를 건넸다. 후성이 50섬의 술을 빚어 여러 장수와 함께 마시려다가 여포에게 벌을 받을까 두려워서 우선 다섯 병을 여포의 부중으로 보내 아뢰기를,

 

장군의 호랑이 같은 위엄 덕분에 잃어버렸던 말을 되찾았습니다. 여러 장수가 와서 축하하는지라 이 술을 빚었으나 감히 함부로 마실 수 없어 우선 약소하나마 바칩니다.”

 

하니, 여포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내가 방금 금주를 했는데, 너희가 도리어 술을 빚어 모여서 마시다니 공모해서 나를 잡을 셈이 아니냐?”

 

하고, 끌어내서 참하라 했다. 송헌과 위속 등 여러 장수가 모두 들어와 용서를 빌자 여포가 말하기를,

 

고의로 내 명령을 범했으니 참수해야 맞지만, 지금 여러 장수의 얼굴을 봐서 1백 대를 매질해라!”

 

했다. 여러 장수가 다시 구슬프게 빌자, 등을 50대를 매질한 뒤 놓아주었다. 여러 장수가 기가 꺾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宋憲魏續至侯成家來探視侯成泣曰非公等則吾死矣憲曰布只戀妻子視吾等如草芥續曰軍圍城下水繞壕邊吾等死無日矣憲曰布無仁無義我等棄之而走何如續曰非丈夫也不若擒布獻曹公侯成曰我因追馬受責而布所倚恃者赤兔馬也汝二人果能獻門擒布吾當先盜馬去見曹公

 

송헌과 위속이 후성의 집에 가서 살펴보니, 후성이 울면서 말하기를,

 

여러분이 아니었으면 나는 죽었을 거요!”

 

하니, 송헌이 말하기를,

 

여포가 오직 처자식만 아끼고 우리를 초개(풀과 티끌) 보듯하오.”

 

했다. 위속이 말하기를,

 

적군이 성을 포위하고 물은 해자를 넘쳤으니 우리가 언제 죽을지 모르오!”

 

하니, 송헌이 말하기를,

 

여포는 인의가 없으니 우리가 버리고 달아나는 게 어떻겠소?”

 

했다. 위속이 말하기를,

 

장부답지 못하오. 여포를 잡아 조공께 바치는 게 낫소.”

 

하니, 후성이 말하기를,

 

내가 말을 쫓았다가 벌을 받았는데, 여포가 믿는 게 적토마요. 그대들이 성문을 열어 바치고 여포를 잡을 수 있다면 내가 우선 그 말을 훔쳐서 조공을 찾아 뵙겠소.”

 

하였다.

 

三人商議定了是夜侯成暗至馬院盜了那匹赤兔馬飛奔東門來魏續便開門放出卻佯作追趕之狀侯成到曹操寨獻上馬匹備言宋憲魏續插白旗爲號准備獻門曹操聞此信便押榜數十張射入城去其榜曰大將軍曹特奉明詔征伐呂布如有抗拒大軍者破城之日滿門誅戮上至將校下至庶民有能擒呂布來獻或獻其首級者重加官賞爲此榜諭各宜知悉

 

세 사람이 상의해서 결정했다. 이날 밤 후성이 몰래 마굿간으로 가서 적토마를 훔쳐서 급히 동문으로 달아났다. 위속이 문을 열어 보내주고 거짓으로 추격하는 척했다. 후성이 조조의 진영으로 가서 말을 바치고, 송헌과 위속이 백기를 꽂는 걸 신호로 성문을 열어 바칠 준비를 했다고 자세히 아뢰었다. 조조가 이 정보를 듣고 방문(포고문) 수십 장에 도장을 찍어 화살에 묶어 성안으로 날려 보냈다. 그 방문에 이르기를,

 

대장군 조조가 특별히 황제의 밝은 명령을 받들어 여포를 정벌한다. 만약 대군에 항거하는 자는 성을 함락하는 날에 성문 가득히 주살할 것이다. 위로 장교에서 아래로 서민에 이르기까지 여포를 잡아 오거나 머리를 베어 바치는 자에게 벼슬과 상을 크게 내리겠다. 이 방문에서 이르는 대로 각각 알아서 따라야 할 것이다.”

 

라고 했다.

 

次日平明城外喊聲震地呂布大驚提戟上城各門點視責罵魏續走透侯成失了戰馬欲待治罪城下曹兵望見城上白旗竭力攻城布只得親自抵敵從平明直打到日中曹兵稍退布少憩門樓不覺睡著在椅上宋憲趕退左右先盜其畫戟便與魏續一齊動手將呂布繩纏索綁緊緊縛住布從睡夢中驚醒急喚左右卻都被二人殺散把白旗一招曹兵齊至城下魏續大叫已生擒呂布矣夏侯淵尚未信宋憲在城上擲下呂布畫戟來大開城門曹兵一擁而入高順張遼在西門水圍難出爲曹兵所擒陳宮奔至南門爲徐晃所獲

 

다음날 해가 뜨자 성 밖에서 함성이 땅을 흔들었다. 여포가 크게 놀라 화극을 쥐고 성에 올라 각 문을 점검하다가, 위속이 후성의 도주를 못 막고 전마를 잃을 걸 꾸짖어 욕하고 벌을 주려 했다. 그러나 성 아래에서 조조 병력이 성 위의 백기를 보고서 힘껏 성을 공격하므로 여포가 어쩔 수 없이 몸소 적을 막았다. 해가 뜨고부터 줄곧 공격하다가 정오가 되자 조조 병력이 조금 물러났다. 여포가 문루에서 잠시 쉬다가 의자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 송헌이 좌우를 물리고 먼저 화극을 훔치고 위속과 함께 일제히 달려들어 여포를 동아줄로 칭칭 감아서 단단히 포박했다. 여포가 꿈을 꾸다 놀라 깨어 급히 좌우를 부르지만 모두 두 장수가 죽이고 쫓아버리고 백기를 흔들어 부르자 조조 병력이 일제히 성 밑으로 이르렀다. 위속이 크게 외치기를,

 

내가 여포를 사로잡았다!”

 

하니, 하후연이 아직 믿지 못했다. 송헌이 성 위에서 여포의 화극을 아래로 던지고 성문을 활짝 열자 조조 병력이 몰려 들어왔다. 고순과 장요가 서문에 있다가 물이 둘러싸 탈출이 어려워서 조조 병력에게 잡혔다. 진궁은 남문으로 달아나다가 서황에게 잡혔다.

 

曹操入城即傳令退了所決之水出榜安民一面與玄德同坐白門樓上張侍立於側提過擒獲一幹人來呂布雖然長大卻被繩索捆作一團布叫曰縛太急乞緩之操曰縛虎不得不急布見侯成魏續宋憲皆立於側乃謂之曰我待諸將不薄汝等何忍背反憲曰聽妻妾言不聽將計何謂不薄布默然須臾衆擁高順至操問曰汝有何言順不答操怒命斬之

 

조조가 입성해서 즉시 명령을 내려 터뜨렸던 물을 빼라 하고, 방문(포고문)을 붙여 백성을 안심시켰다. 한편으로 현덕과 함께 백문루 위에 앉아, 관우와 장비가 옆에 시립한 뒤에 사로잡힌 무리들을 끌고 오게 했다. 여포가 비록 장대하지만 동아줄을 칭칭 감아 덩어리를 만들어 놨다. 여포가 외치기를,

 

포박이 너무 심하오! 조금 느슨하게 해주오!”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호랑이를 묶는데 바짝 묶을 수 밖에.”

 

했다. 여포가 후성 위속 송헌이 모두 옆에 서 있는 걸 보고 말하기를,

 

내가 여러 장수를 박대하지 않았는데, 너희는 어찌 차마 배반했는가?”

 

하니, 송헌이 말하기를,

 

처첩의 말만 듣고 장수의 계책은 듣지 않고서 어찌 박대하지 않았다 하시오?”

 

했다. 여포가 침묵했다. 잠시 뒤 여럿이 고순을 끌고 왔다. 조조가 묻기를,

 

그대는 할 말이 있는가?”

 

하니, 고순이 대답하지 않자, 조조가 노해서 참하라고 명령했다.

 

徐晃解陳宮至操曰公台別來無恙宮曰汝心術不正吾故棄汝操曰吾心不正公又奈何獨事呂布宮曰布雖無謀不似你詭詐奸險操曰公自謂足智多謀今竟何如宮顧呂布曰恨此人不從吾言若從吾言未必被擒也操曰今日之事當如何宮大聲曰今日有死而已操曰公如是奈公之老母妻子何宮曰吾聞以孝治天下者不害人之親施仁政於天下者不絕人之祀老母妻子之存亡亦在於明公耳吾身既被擒請即就戮並無掛念

 

서황이 진궁을 압송해 왔다. 조조가 말하기를,

 

공대는 헤어진 후 별 일 없었소?”

 

하니, 진궁이 말하기를,

 

네가 마음 쓰는 게 바르지 못해서 내가 너를 버렸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내 마음이 바르지 않다면서 그대는 어찌 여포를 섬겼소?”

 

하니, 진궁이 말하기를,

 

여포가 비록 꾀가 없지만 너의 교활하고 음험한 것과는 다르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그대 스스로 습기롭고 꾀가 많다 하더니 지금 어찌 이리 됐소?”

 

하니, 진궁이 여포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내 말을 듣지 않은 게 한스러울 뿐이다! 내 말을 따랐으면 분명 이렇게 잡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오늘 일은 어찌 처리해야겠소?”

 

하니, 진궁이 큰 소리로 말하기를,

 

오늘 죽을 뿐이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그대가 이러면 노모와 처자는 어찌하오?”

 

하니, 진궁이 말하기를,

 

내가 듣자니 효로써 천하를 다스리는 자는 남의 어버이를 해치지 않으며, 어진 정치를 천하에 베푸는 자는 남의 제사를 끊지 않는다고 했소. 노모와 처자의 존망은 명공께 달렸을 뿐이오. 나는 이미 사로잡힌 몸이니 어서 죽기를 바랄 뿐 다른 걱정은 없소.”

 

했다.

 

操有留戀之意宮徑步下樓左右牽之不住操起身泣而送之宮並不回顧操謂從者曰即送公台老母妻子回許都養老怠慢者斬宮聞言亦不開口伸頸就刑衆皆下淚操以棺槨盛其屍葬於許都

 

조조는 그를 아끼는 마음이 남아있었다. 진궁이 곧장 백문루를 걸어 내려가는데 좌우에서 잡아끌어도 멈추지 않는다. 조조가 일어나 울며 보냈다. 진궁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조조가 종자에게 일러 말하기를,

 

즉시 공대의 노모와 처자를 허도로 보내 보살펴라. 태만하면 베겠다.”

 

고 했다. 진궁이 그 말을 듣고서도 입을 열지 않고 목을 늘어뜨려 형을 받았다. 모두 눈물을 흘렸다. 조조가 관곽에 그 시체를 넣어 허도에 장사지내게 했다.

 

後人有詩歎之曰

 

生死無二志丈夫何壯哉

不從金石論空負棟梁材

輔主真堪敬辭親實可哀

白門身死日誰肯似公台

 

뒷 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하기를,

 

죽으나 사나 뜻이 다르지 않으니 대장부 얼마나 떳떳한가!

금석 같은 논의를 따르지 않고 동량 재목을 헛되이 저버렸구나.

주공을 돕는 데 혼신을 다했건만 어버이를 이별하니 진실로 슬프구나.

백문루에서 그 몸이 죽는 날, 누가 기꺼이 공대와 같으리오!”

 

했다.

 

方操送宮下樓時布告玄德曰公爲坐上客布爲階下囚何不發一言而相寬乎玄德點頭及操上樓來布叫曰明公所患不過於布布今已服矣公爲大將布副之天下不難定也操回顧玄德曰何如玄德答曰公不見丁建陽董卓之事乎布目視玄德曰是兒最無信者操令牽下樓縊之布回顧玄德曰大耳兒不記轅門射戟時耶

 

막 조조가 진궁을 백문루 아래로 보낼 때, 여포가 현덕에게 고하기를,

 

그대는 손님으로 높이 앉았고 나는 죄인으로 계단 밑에 있는데 어찌 한마디 너그러운 말이 없소?”

 

했다. 현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조가 백문루에 오르자 여포가 외치기를,

 

명공의 근심거리는 다만 여포였소. 내가 이제 굴복했으니 공께서 대장이 되시고 제가 부장이 되면 천하에 평정 못할 게 없을 것이오.”

 

하니, 조조가 현덕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어떻소?”

 

하니, 현덕이 대답하기를,

 

공께서 정건양과 동탁의 일을 보지 않았습니까?”

 

했다. 여포가 현덕을 노려보며 말하기를,

 

이 자식은 가장 못 믿을 놈이오!”

 

했다. 조조가 여포를 백문루 아래 끌고가서 목 졸라 죽이라고 명령했다. 여포가 현덕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귀 큰 자식아! 원문에서 극을 쏘아 맞힌 때를 기억하지 못하느냐?”

 

했다.

 

忽一人大叫曰呂布匹夫死則死耳何懼之有衆視之乃刀斧手擁張遼至操令將呂布縊死然後梟首

 

갑자기 한 사람이 크게 외치기를,

 

여포 필부야! 죽으면 죽을 뿐이지 무슨 두려움이 있느냐!”

 

했다. 모두 바라보니 도부수가 장요을 끌고 왔다. 조조가 곧 여포를 목졸라 죽이게 한 뒤 효수했다.

 

後人有詩歎曰

 

洪水滔滔淹下邳當年呂布受擒時

空餘赤兔馬千裏漫有方天戟一枝

縛虎望寬今太懦養鷹休飽昔無疑

戀妻不納陳宮諫枉罵無恩大耳兒

 

뒷 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하여 말하기를,

 

홍수가 도도히 하비성을 덮치니, 그 해에 여포가 사로 잡힐 때다.

천리를 달리는 적토마도 주인을 잃고, 방천화극 한 자루도 버려졌네.

묶인 범이 겁을 먹어 관용을 비니, 매를 기를 때 굶기는 옛말 틀림없구나.

아내를 사랑하다가 진궁의 간언을 듣지 않더니, 부질없이 귀 큰 녀석 은혜 모른다 욕하네.”

 

하였다.

 

又有詩論玄德曰

 

傷人餓虎縛休寬

董卓丁原血未幹

玄德既知能啖父

爭如留取害曹瞞

 

또 누군가 시를 지어 현덕을 논하기를,

 

사람을 해치는 주린 호랑이를 바짝 묶어야지,

동탁과 정원의 피는 아직 마르지 않았네.

양아버지 해친 걸 현덕이 이미 아는데,

만약 살려두면 조조를 해칠 거라 간언했는가?”

 

라고 했다.

 

卻說武士擁張遼至操指遼曰這人好生面善遼曰濮陽城中曾相遇如何忘卻操笑曰你原來也記得遼曰只是可惜操曰可惜甚的遼曰可惜當日火不大不曾燒死你這國賊操大怒曰敗將安敢辱吾拔劍在手親自來殺張遼遼全無懼色引頸待殺曹操背後一人攀住臂膊一人跪於面前說道丞相且莫動手正是乞哀呂布無人救罵賊張遼反得生

 

한편, 무사가 장요를 끌고오자 조조가 장요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 사람은 어디선 본 듯하오.”

 

하니, 장요가 말하기를,

 

복양성 안에서 만난 적 있거늘 어찌 잊었는가?”

 

했다. 조조가 웃으며 말하기를,

 

너를 원래 기억하고 있었다!”

 

하니, 장요가 말하기를,

 

다만 안타까울 뿐이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그렇게 안타까운가?”

 

하니, 장요가 말하기를,

 

그날 불이 세지 않아서 너 같은 나라의 역적을 불태워 죽이지 못한 게 안타깝다!”

 

했다. 조조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패장이 어찌 감히 나를 모욕하느냐!”

 

하고, 손에 칼을 뽑아들고 몸소 장요를 죽이려 했다. 장요가 전혀 두려운 기색 없이 목을 내밀고 죽기를 기다렸다. 조조 뒤에서 한 사람이 팔뚝을 잡아서 멈추게 하고, 한 사람은 조조의 면전에 무릎을 꿇고 사정하기를,

 

승상, 손을 멈추십시오!”

 

했다. 이야말로, 애걸하던 여포를 아무도 구해주지 않더니, 역적이라 욕하는 장요는 도리어 살겠구나.

 

畢竟救張遼的是誰且聽下文分解

 

과연 장요를 구한 사람은 누굴까? 다음 회의 이야기를 들으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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