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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회 촉한의 병사들이 조진의 영채를 격파하고, 무후가 진법으로 싸워 중달을 욕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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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一百回

漢兵劫寨破曹真 武侯鬥陣辱仲達三國志演義

 

100

촉한의 병사들이 조진의 영채를 격파하고, 무후가 진법으로 싸워 중달을 욕보이다.

 

卻說衆將聞孔明不追魏兵俱入帳告曰魏兵苦雨不能屯紥因此回去正好乘勢追之丞相如何不追孔明曰司馬懿善能用兵今軍退必有埋伏吾若追之正中其計不如縱他遠去吾卻分兵徑出斜穀而取祁山使魏人不提防也衆將曰取長安之地別有路途丞相只取祁山何也孔明曰祁山乃長安之首也隴西諸郡倘有兵來必經由此地更兼前臨渭濱後靠斜穀左出右入可以伏兵乃用武之地吾故欲先取此得地利也衆將皆拜服孔明令魏延張嶷杜瓊陳式出箕穀馬岱王平張翼馬忠出斜穀俱會於祁山調撥已定孔明自提大軍令關興廖化爲先鋒隨後進發

 

각설, 장수들은 공명이 위나라 병력을 추격하지 않자 함께 군막에 들어와 고하기를,

 

위나라 군사가 장마에 시달려서 더 주둔하지 못하고 돌아갑니다. 이 기회를 타서 추격하기 참으로 좋습니다. 승상께서 무슨 까닭으로 추격하지 않으십니까?”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사마의는 용병에 뛰어나오. 이제 후퇴해도 반드시 매복이 있을 것이오. 만약 내가 추격하면 그 계책에 빠지오. 그들을 멀리 가게 놓아주고 우리가 병력을 나누어 서둘러 사곡으로 나가서 기산을 빼앗아 위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미처 막지 못하게 하는 것만 못하오.”

 

했다. 장수들이 말하기를,

 

장안을 취하려면 다른 길도 있는데, 승상께서 굳이 기산만 취하시니 무슨 까닭입니까?”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기산은 장안의 머리요. 농서 여러 고을에서 병력이 오면 반드시 이곳을 지나오. 게다가 앞쪽으로 위수가 흐르고 뒷쪽으로 사곡이 인접하여 왼쪽에서 나와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니 복병을 둘 만하오. 이야말로 용병하기 좋은 곳이오. 그러므로 이곳을 선취하여 지리적 이점을 얻고자 하오.”

 

했다. 장수들이 모두 탄복했다. 공명이 위연, 장의, 두경, 진식을 기곡으로 나가게 하고, 마대, 왕평, 장익, 마충을 사곡으로 나가게 하여, 모두 기산에서 만나게 했다. 배정을 마치고 공명이 스스로 대군을 거느리고 관흥과 요화를 선봉으로 삼아 뒤따라 출발했다.

 

卻說曹真司馬懿二人在後監督人馬令一軍入陳倉古道探視回報說蜀兵不來又行旬日後面埋伏衆將皆回說蜀兵全無音耗真曰連綿秋雨棧道斷絕蜀人豈知吾等退軍耶懿曰蜀兵隨後出矣真曰何以知之懿曰連日晴明蜀兵不趕料吾有伏兵也故縱我兵遠去待我兵過盡他卻奪祁山矣

 

한편, 조진과 사마의 두 사람은 뒤에서 군마를 감독하여, 한 무리 군사를 진창의 옛길로 보내어 정찰하게 하니,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촉나라 군사가 아직 오지 않는다고 했다. 다시 열흘이 지나자 후방에 매복했던 장수들이 모두 돌아와서 촉나라 군사의 소식이 전혀 없다고 했다. 조진이 말하기를,

 

쉬지 않고 가을비가 내려서 잔도가 단절됐는데 촉나라 사람들이 우리들의 퇴각을 어찌 알겠소?”

 

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촉나라 군사가 뒤따라 나올 것입니다.”

 

했다. 조진이 말하기를,

 

어찌 그것을 아시오?”

 

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며칠째 날씨가 청명한데도 촉병이 추격하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의 복병을 생각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아군을 멀리 가도록 놓아두고, 아군 모두 지나가기를 기다려서 기산을 빼앗으려 할 것입니다.”

 

했다.

 

曹真不信懿曰子丹如何不信吾料孔明必從兩穀而來吾與子丹各守一穀口十日爲期若無蜀兵來我面塗紅粉身穿女衣來營中伏罪真曰若有蜀兵來我願將天子所賜玉帶一條禦馬一匹與你即分兵兩路真引兵屯於祁山之西斜穀口懿引軍屯於祁山之東箕穀口各下寨已畢懿先引一枝兵伏於山穀中其餘軍馬各於要路安營懿更換衣裝雜在全軍之內遍觀各營忽到一營有一偏將仰天而怨曰大雨淋了許多時不肯回去今又在這裏頓住強要賭賽卻不苦了官軍

 

조진이 믿지 않으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자단(조진)께서 어찌 믿지 않으십니까? 제가 헤아리건대, 공명은 반드시 두 골짜기를 따라 올 것입니다. 저와 자단이 각각 골짜기 입구 하나씩을 지켜서 열흘만 기다려봅시다. 만약 촉병이 안 오면 내 얼굴에 빨간 분을 바르고 여자 옷을 입고 군영 안에서 죄를 받겠습니다.”

 

하니, 조진이 말하기를,

 

만약 촉나라 군사가 온다면, 나도 천자께서 하사하신 옥대(옥 허리띠)와 어마(임금이 타던 말) 한 필을 그대에게 주겠소.”

 

했다. 즉시 병력을 두 군데로 나누었다. 조진이 병력을 이끌고 기산 서쪽의 사곡 입구에 주둔했다. 사마의가 군사를 이끌고 기산 동쪽의 기곡 입구에 주둔했다. 제각기 영채를 세운 뒤에 사마의가 한 무리 병력을 이끌고 산골짜기에 매복했다. 그 나머지 군마는 각처 요로에 영채를 세웠다. 사마의가 옷을 갈아입고 군사들 가운데 섞여 영채마다 두루 둘러보았다. 그런데 어느 영채에 이르니, 한 부하 장수가 하늘을 우러러 원망하기를,

 

큰비가 엄청나게 퍼부어도, 돌아가려 하지 않더니, 이제 또 이곳에 주둔시키며 억지로 내기를 하여 관군을 고생시키지 않느냐!”

 

했다.

 

懿聞言歸寨升帳聚衆將皆到帳下挨出那將來懿叱之曰朝廷養軍千日用在一時汝安敢出怨言以慢軍心其人不招懿叫出同伴之人對證那將不能抵賴懿曰吾非賭賽欲勝蜀兵令汝各人有功回朝汝乃妄出怨言自取罪戾喝令武士推出斬之須臾獻首帳下衆將悚然懿曰汝等諸將皆要盡心以防蜀兵聽吾中軍炮響四面皆進衆將受令而退

 

사마의가 이 말을 듣고 영채로 돌아와 군막에 올라가서 장수들을 모두 군막 아래로 불러서 그 부장을 끌어냈다. 사마의가 그를 꾸짖기를,

 

조정에서 군사를 천일에 걸쳐서 양성함은 한 때에 쓰기 위해서다. 네가 어찌 감히 원망하는 말을 입으로 내뱉어서 군심을 흩뜨리느냐!”

 

하니, 그 부장이 꼼짝하지 않았다. 사마의가 부장과 같이 있던 사람을 불러내어 대질하니 그 부장이 잡아떼지 못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내가 내기를 하는 게 아니라, 촉나라 군사를 이겨서 너희 각자 공을 세워 조정으로 돌아가게 하고자 함이다. 네가 그런데도 함부로 원망하는 말을 해서 죄를 자초했다!”

 

하고, 무사들에게 호통쳐서 그를 끌어내 처형하라 했다. 잠시 뒤 무사가 그 목을 갖다 바쳤다. 장수들이 모두 두려워서 몸을 떨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그대들 장수들은 모두 마음을 다해 촉나라 군사를 막아야 할 것이오. 내가 중군에서 포를 쏘는 소리가 들리거든 사방에서 모두 진격하시오.”

 

하니, 장수들이 명령을 받고 물러갔다.

 

卻說魏延張嶷陳式杜瓊四將引二萬兵取箕穀而進正行之間忽報參謀鄧芝到來四將問其故芝曰丞相有令如出箕穀提防魏兵埋伏不可輕進陳式曰丞相用兵何多疑耶吾料魏兵連遭大雨衣甲皆毀必然急歸安得又有埋伏今吾兵倍道而進可獲大勝如何又教休進芝曰丞相計無不中謀無不成汝安敢違令式笑曰丞相若果多謀不致街亭之失

 

한편, 위연, 장의, 진식, 두경 네 장수가 2만 병력을 이끌고 기곡을 따라 진군했다. 이렇게 가고 있는데, 참모 등지가 왔다고 했다, 네 장수가 그 까닭을 물으니, 등지가 말하기를,

 

승상께서 명을 내리셨소. 기곡으로 나가더라도 위병의 매복을 방비할 것이지 함부로 진격하지 말라 하셨소.”

 

했다. 진식이 말하기를,

 

승상께서 용병하며 어찌 이리 의심이 많소? 내가 헤아리건대, 위병은 잇달아 큰비를 만나 옷과 갑옷이 모두 훼손되어 틀림없이 서둘러 돌아가는 것이오. 어찌 그들이 또 매복을 하겠소? 이제 아군이 길을 재촉해 진격하면 큰 승리를 거두겠거늘, 어찌 또다시 진격을 멈추라 지시하시오?”

 

하니, 등지가 말하기를,

 

승상의 계책이 적중하지 않은 것이 없고, 계략이 성공하지 않은 것이 없거늘, 그대가 어찌 감히 명령을 어기려 하오?”

 

했다. 진식이 웃으며 말하기를,

 

승상께서 과연 그렇게 계략이 많다면 가정을 잃는 실수는 하지 않으셨을 것이오!”

 

했다.

 

魏延想起孔明向日不聽其計亦笑曰丞相若聽吾言徑出子午穀此時休說長安連洛陽皆得矣今執定要出祁山有何益耶既令進兵今又教休進何其號令不明式曰吾自有五千兵徑出箕穀先到祁山下寨看丞相羞也不羞芝再三阻當式只不聽徑自引五千兵出箕穀去了鄧芝只得飛報孔明

 

위연도 지난날 공명이 그의 계책을 들어주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고, 또한 웃으며 말하기를,

 

승상이 내 말을 들어서 곧장 자오곡으로 나갔다면 지금쯤 장안은 물론이고 낙양도 모두 점령했을 것이오. 이제 고집을 부려 기어코 기산으로 나가겠다지만 무슨 이익이 있겠소? 이미 진군을 시키고서 다시 멈추라 하다니 어찌 그 명령이 분명하지 못하단 말이오!”

 

했다. 진식이 말하기를,

 

내게 5천 병력이 있으니 곧장 기곡으로 나가겠소. 먼저 기산 아래로 가서 영채를 세워서, 승상이 부끄러워하지 않는지 보겠소이다!”

 

했다. 등지가 두 번 세 번 막지만 진식은 듣지 않았다. 곧바로 직접 5천 병력을 이끌고 기곡으로 떠났다. 등지가 어쩔 수 없이 공명에게 급히 알리러 갔다.

 

卻說陳式引兵行不數裏忽聽的一聲炮響四面伏兵皆出式急退時魏兵塞滿穀口圍得鐵桶相似式左沖右突不能得脫忽聞喊聲大震一彪軍殺入乃是魏延救了陳式回到穀中五千兵只剩得四五百帶傷人馬背後魏兵趕來卻得杜瓊張嶷引兵接應魏兵方退魏二人方信孔明先見如神懊悔不及

 

한편, 진식이 병력을 이끌고 몇 리 못 가서, 갑자기 한바탕 포성이 울리더니 사면에서 복병이 모두 나왔다. 진식이 급히 퇴각하려는데, 위나라 병력이 골짜기 입구를 가득 메우고 철통같이 포위했다. 진식이 좌충우돌(左衝右突)하지만 탈출할 수가 없었다. 홀연 함성이 크게 울리고, 한 무리 군사가 달려 들어오니, 바로 위연이었다. 진식을 구출하여 골짜기 안으로 돌아가지만, 5천 병력이 이제 겨우 4, 5백의 상처 입은 인마만 남았다. 배후에서 위병이 추격하는데, 두경과 장의가 병력을 이끌고 도우러 오니, 위병이 비로소 퇴각했다. 진식과 위연 두 사람이 그제서야 공명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이 귀신 같음을 깨닫고 후회해 마지않았다.

 

且說鄧芝回見孔明言魏延陳式如此無禮孔明笑曰魏延素有反相吾知彼常有不平之意因憐其勇而用之久後必生患害正言間忽流星馬報到說陳式折了四千餘人止有四五百帶傷人馬屯在穀中孔明令鄧芝再來箕穀撫慰陳式防其生變一面喚馬岱王平分付曰斜穀若有魏兵守把汝二人引本部軍越山嶺夜行晝伏速出祁山之左舉火爲號又喚馬忠張翼分付曰汝等亦從山僻小路晝伏夜行徑出祁山之右舉火爲號與馬岱王平會合共劫曹真營寨吾自從穀中三面攻之魏兵可破也

 

한편, 등지가 돌아가 공명을 만나서, 위연과 진식이 그토록 무례하다고 말했다. 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위연은 평소에 반상(반역을 저지를 인상)이라, 나는 그의 늘 불평하는 속마음을 알고 있소. 그 용맹을 아껴서 쓰고 있지만, 먼 훗날 반드시 재앙을 일으킬 것이오.”

 

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통신 기병이 달려와서 보고하기를, 진식이 4천이 넘는 사람을 잃고 겨우 4, 5백의 부상자를 데리고 골짜기 안에 주둔해 있다고 했다. 공명이 등지를 시켜, 다시 기곡으로 가서 진식을 위로하여 변고가 생기지 않도록 했다. 동시에 마대와 왕평을 불러 분부하기를,

 

사곡에서 위병이 지키고 있으면, 그대 두 사람은 휘하 병력을 이끌고 산 고개를 넘어 야간에 행군하고 낮에는 숨어서, 신속하게 기산 좌측으로 가서 불을 피워 신호하시오.”

 

했다. 다시 마충과 장익을 불러 분부하기를,

 

그대들도 역시 산속 샛길을 따라 낮에는 숨고 밤에 행군하여 기산 우측으로 달려 나가서 불을 피워 신호하시오. 마대, 왕평과 모여서 함께 조진의 영채를 습격하시오. 나도 직접 골짜기를 따라 세 개 방면에서 협공할 것이니 위병을 격파할 수 있을 것이오.”

 

했다.

 

四人領命分頭引兵去了孔明又喚關興廖化分付曰如此如此二人受了密計引兵而去孔明自領精兵倍道而行正行間又喚吳班吳懿授與密計亦引兵先行卻說曹真心中不信蜀兵來以此怠慢縱令軍士歇息只等十日無事要羞司馬懿不覺守了七日忽有人報穀中有些小蜀兵出來真令副將秦良引五千兵哨探不許縱令蜀兵近界秦良領命引兵剛到穀口哨見蜀兵退去良急引兵趕來行到五六十裏不見蜀兵心下疑惑教軍士下馬歇息忽哨馬報說前面有蜀兵埋伏良上馬看時只見山中塵土大起急令軍士提防

 

네 사람이 명령을 받고 길을 나눠 병력을 이끌고 떠났다. 공명이 다시 관흥과 요화를 불러서 이리저리하라고 분부했다. 두 사람이 비밀 계책을 받고 병력을 이끌고 갔다. 공명이 스스로 정예병을 이끌고 길을 재촉해서 행군했다. 가다가 다시 오반과 오의를 불러 비밀 계책을 주니 역시 병력을 이끌고 먼저 갔다. 한편, 조진은 마음속으로 촉나라 군사가 올 것을 믿지 않기에 태만에 빠져서 군사들을 쉬도록 놓아두었다. 열흘을 아무 일 없이 기다리며 사마의를 비웃을 생각이었다. 수비한 지 어느새 7일이 지나자, 갑자기 보고하기를, 골짜기 안에서 소수의 촉나라 군사가 나왔다고 했다. 조진이 부장 진량에게, 5천 병력을 이끌고 정탐하고 촉나라 군사를 접근시키지 말라고 했다. 진량이 명령을 받들어 병력을 이끌고 바로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 정탐하니, 이미 촉나라 군사가 물러난 뒤였다. 진량이 서둘러 병력을 이끌고 뒤쫓아 5, 60리를 갔지만 촉나라 군사가 보이지 않았다. 마음속에 의혹이 들어 군사들에게 말에서 내려서 쉬라고 했다. 홀연 정찰 기병이 보고하기를,

 

앞쪽에 촉나라 군사가 매복하고 있습니다.”

 

했다. 진량이 말에 올라 살펴보니 산중에 흙먼지가 크게 일고 있어 급히 군사들에게 방비하라 지시했다.

 

不一時四壁廂喊聲大震前面吳班吳懿引兵殺出背後關興廖化引兵殺來左右是山皆無走路山上蜀兵大叫下馬投降者免死魏兵大半多降秦良死戰被廖化一刀斬於馬下孔明把降兵拘於後軍卻將魏兵衣甲與蜀兵五千人穿了扮作魏兵令關興廖化吳班吳懿四將引著徑奔曹真寨來先令報馬入寨說只有些小蜀兵盡趕去了真大喜忽報司馬都督差心腹人至真喚入問之其人告曰今都督用埋伏計殺蜀兵四千餘人司馬都督致意將軍教休將賭賽爲念務要用心提備真曰吾這裏並無一個蜀兵遂打發來人回去

 

잠깐 지나서, 사방에서 함성이 크게 울리며 앞쪽에서 오반과 오의가 군사를 이끌고 달려나오고, 뒷쪽에서 관흥과 요화가 병력을 이끌고 달려나왔다. 좌우가 모두 산으로 막혀 달아날 길이 없었다. 산 위에서 촉나라 군사들이 크게 외치기를,

 

말에서 내려 항복하면 살려주겠다!”

 

하니, 위나라 군사 태반이 항복했다. 진량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지만 요화의 한 칼에 베여서 말 아래 떨어졌다. 공명이 항복한 병졸들을 후군에 잡아놓고, 위나라 병사의 옷과 갑옷을 촉나라 군사 5천 명에게 입혀서 위나라 병사로 위장시켰다. 관흥, 요화, 오반, 오의 네 장수에게 이들 병사를 이끌고 조진의 영채로 습격하라 했다. 먼저 통신 기병을 영채 안으로 들여보내어,

 

얼마 안 되는 촉병이 있어서 모조리 쫓아버렸습니다.”

 

라고 말하게 했다. 조진이 크게 기뻐하는데, 갑자기 사마 도독이 보낸 심복이 왔다고 했다. 그 사람이 고하기를,

 

지금 도독이 매복계(埋伏計)를 써서 촉나라 군사 4천여 인을 죽였습니다. 사마 도독께서 장군께 뜻을 전하시며, 내기로 생각하지 말고 마음을 써서 방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니, 조진이 말하기를,

 

내가 있는 이곳은 촉나라 군사가 한 사람도 없소." 하고, 그 찾아온 사람을 돌려보냈다.

 

忽又報秦良引兵回來了真自出帳迎之比及到寨人報前後兩把火起真急回寨後看時關興廖化吳班吳懿四將指麾蜀軍就營前殺將進來馬岱王平從後面殺來馬忠張翼亦引兵殺到魏軍措手不及各自逃生衆將保曹真望東而走背後蜀兵趕來曹真正奔走忽然喊聲大震一彪軍殺到真膽戰心驚視之乃司馬懿也懿大戰一場蜀兵方退真得脫羞慚無地懿曰諸葛亮奪了祁山地勢吾等不可久居此處宜去渭濱安營再作良圖

 

갑자기 또 보고하기를, 진량이 군사를 이끌고 돌아왔다고 했다. 조진이 직접 군막을 나가서 맞으려 했다. 영채에 도착할 쯤에 사람들이 앞뒤 양쪽에서 불길이 치솟는다고 했다. 조진이 급히 영채로 돌아와 보니 관흥, 요화, 오반, 오의 네 장수가 촉나라 군사를 지휘하여 영채 앞으로 달려들었다. 마대와 왕평은 후면에서 달려들었다. 마충과 장익도 병력을 이끌고 쇄도했다. 위나라 군사가 미처 손을 쓰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장수들이 조진을 보위하여 동쪽으로 달아나고 뒤에서 촉나라 군사가 뒤쫓았다. 조진이 달아나고 있는데 홀연히 함성이 크게 진동하며 한 무리 군사가 쇄도했다. 조진의 간담이 전율하고 심장이 놀라 바라보니 바로 사마의였다. 사마의가 한바탕 크게 싸우니 비로소 촉나라 군사가 퇴각했다. 조진이 탈출했지만 부끄럽기 이를 데 없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제갈량이 기산의 지세를 빼앗아서 우리가 이곳에 오래 머물 수 없습니다. 위수 물가로 가서 영채를 세워 다시 좋은 계책을 세워야 합니다." 했다.

 

真曰仲達何以知吾遭此大敗也懿曰見來人報稱子丹說並無一個蜀兵吾料孔明暗來劫寨因此知之故相接應今果中計切莫言賭賽之事只同心報國曹真甚是惶恐氣成疾病臥床不起兵屯渭濱懿恐軍心有亂不敢教真引兵卻說孔明大驅士馬複出祁山勞軍已畢魏延陳式杜瓊張嶷入帳拜伏請罪孔明曰是誰失陷了軍來延曰陳式不聽號令潛入穀口以此大敗式曰此事魏延教我行來孔明曰他倒救你你反攀他將令已違不必巧說即叱武士推出陳式斬之須臾懸首於帳前以示諸將此時孔明不殺魏延欲留之以爲後用也

 

조진이 말하기를,

 

중달은 어떻게 내가 이렇게 대패할 것을 아셨소?" 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사자로) 다녀온 사람이 보고하기를, 자단(조진)이 단 한 사람의 촉나라 군사도 못 보았다고 하기에, 공명이 몰래 영채를 습격하러 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미리 알아채고 도우러 온 것인데, 과연 공명의 계책에 빠졌습니다. 절대 우리끼리 내기한 것을 말하지 말고, 오로지 한마음으로 나라의 은혜를 갚아야 합니다." 했다. 조진이 매우 황공해 했다. 그 때문에 병이 나서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위수 물가에 주둔한 사마의는 군심이 혼란스러울까 두려워 감히 조진에게 군사를 이끌라고 하지 못했다. 한편, 공명은 병마를 크게 몰아서 다시 기산으로 나갔다. 군사들을 위로하고 나자, 위연, 진식, 두경, 장의 네 장수가 군막으로 들어가 엎드려 죄를 청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누가 잘못하여 군사를 재난에 빠뜨렸소?" 하니, 위연이 말하기를,

 

진식이 명령을 듣지 않고 골짜기 입구로 잠입하여 이 때문에 대패했습니다." 하니, 진식이 말하기를,

 

이 일은 위연이 나를 그렇게 움직이라 시킨 것입니다. " 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그는 오히려 너를 구출했거늘 너는 도리어 그를 탓하는구나! 장령을 어겼으니 더 이상 변명은 필요 없다!" 하고, 즉시 무사들에게 진식을 끌어내어 처형하라고 했다. 잠시 뒤 군막 앞에 그 수급을 매달아 장수들에게 보였다. 이때 공명이 위연을 죽이지 않은 것은 그를 살려두어 훗날 쓰고자 함이었다.

 

孔明既斬了陳式正議進兵忽有細作報說曹真臥病不起現在營中治療孔明大喜謂諸將曰若曹真病輕必便回長安今魏兵不退必爲病重故留於軍中以安衆人之心吾寫下一書教秦良的降兵持與曹真真若見之必然死矣遂喚降兵至帳下問曰汝等皆是魏軍父母妻子多在中原不宜久居蜀中今放汝等回家若何衆軍泣淚拜謝孔明曰曹子丹與吾有約吾有一書汝等帶回送與子丹必有重賞魏軍領了書奔回本寨將孔明書呈與曹真真扶病而起拆封視之

 

공명이 진식을 참한 뒤, 진격을 의논하는데, 홀연 세작이 보고하기를, 조진이 병상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고 현재 영채 안에서 치료하고 있다고 했다. 공명이 크게 기뻐하며 장수들에게 이르기를,

 

만약 조진의 병세가 가볍다면 반드시 바로 장안으로 돌아갔을 것이오. 지금 위나라 군사가 물러나지 않는 것은 틀림없이 그의 병세가 위중하여 군중에 남아서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요. 내가 이제 서신을 하나 써서 진량의 투항병에게 주어서 조진에게 전달하겠소. 조진이 만약 읽어보면 반드시 죽을 것이오." 했다. 곧 투항병들을 군막 안으로 불러들여 묻기를,

 

너희 모두는 위나라 군사이니 부모 처자가 대부분 중원에 있는 까닭에 촉나라에 오래 머물 수 없을 테지. 이제 너희를 풀어주어 집으로 돌려보내려는데 어떠냐?" 하니, 군사들이 눈물을 흘리며 절을 올려 고마워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조자단(조진)은 나와 약속한 것이 있다. 내가 서신 한 봉을 줄 테니 너희가 가져가서 자단에게 전하면 반드시 큰 상을 받을 것이다. " 했다. 위나라 군사들이 그 서신을 받아들고 (위나라) 본채로 서둘러 돌아가서 공명의 서신을 조진에게 바쳤다. 조진이 병을 무릅쓰고 일어나 서신을 뜯어서 읽어보았다.

 

其書曰漢丞相武鄉侯諸葛亮致書於大司馬曹子丹之前竊謂夫爲將者能去能就能柔能剛能進能退能弱能強不動如山嶽難測如陰陽無窮如天地充實如太倉浩渺如四海眩曜如三光預知天文之旱澇先識地理之平康察陣勢之期會揣敵人之短長嗟爾無學後輩上逆穹蒼助篡國之反賊稱帝號於洛陽走殘兵於斜穀遭霖雨於陳倉水陸困乏人馬猖狂拋盈郊之戈甲棄滿地之刀槍都督心崩而膽裂將軍鼠竄而狼忙無面見關中之父老何顏入相府之廳堂史官秉筆而記錄百姓衆口而傳揚仲達聞陣而惕惕子丹望風而遑遑吾軍兵強而馬壯大將虎奮以龍驤掃秦川爲平壤蕩魏國作丘荒

 

그 편지에 이르기를,

 

한나라 승상 무향후 제갈량이 대사마 조자단(조진) 앞에 글을 보내오. 삼가 생각하건대, 무릇 장수 된 자는 물러감과 나아감을 잘하고 유화책과 강경책을 잘 써서, 진퇴와 강약에 능해야 하고, 마치 산악처럼 동요하지 않고, 음양처럼 알기 어렵고, 하늘과 땅처럼 무궁하고, 태창(국가 창고)처럼 충실하고, 사해처럼 가없이 넓고, 삼광(해와 달과 북두칠성)처럼 눈부시게 빛나야 하오. 천문을 살펴 가뭄과 홍수를 예지하고, 지리의 평안을 먼저 알고, 진세의 기회를 살피고, 적의 장단점을 헤아려야 하오. ! 배우지 못한 후배가 위로 하늘을 거스르고, 국가를 찬탈하는 역적이 낙양에서 황제의 칭호를 참칭하는 것을 도왔소. 사곡에서 패잔병들을 달아나게 만들었고, 진창에서 장마를 만났소! 물과 땅에서 곤핍하니 인마가 당황하고 혼란하였소! 들판 가득 무기와 갑옷을 내던지고, 땅에 가득 칼과 창을 버렸소! 도독은 마음이 무너지고 간담이 깨지고, 장군은 쥐새끼처럼 달아나며 허둥지둥했소! 관중의 부형들을 만날 면목이 없으니 무슨 낯으로 재상 관저의 큰방에 들어가겠소! 사관이 붓을 들어 기록하고, 백성들이 입을 모아 전파할 것이오. 중달(사마의)은 전선의 상황을 듣고 벌벌 떨고, 자단(조진)은 소식을 듣고 황망하였소! 우리 군대의 병력은 강대하고 말들은 튼튼하며 대장들은 범처럼 용맹하고 용처럼 위풍당당(威風堂堂)하오! 진천을 쓸어버려 아무것도 남지 않게 만들고, 위나라를 허물어뜨려 황무지로 만들 것이오!”

 

했다.

 

曹真看畢恨氣填胸至晚死於軍中司馬懿用兵車裝載差人送赴洛陽安葬魏主聞知曹真已死即下詔催司馬懿出戰懿提大軍來與孔明交鋒隔日先下戰書孔明謂諸將曰曹真必死矣遂批回來日交鋒使者去了孔明當夜教薑維受了密計如此而行又喚關興分付如此如此次日孔明盡起祁山之兵前到謂濱一邊是河一邊是山中央平川曠野好片戰場兩軍相迎以弓箭射住陣角三通鼓罷魏陣中門旗開處司馬懿出馬衆將隨後而出只見孔明端坐於四輪車上手搖羽扇

 

조진이 읽고 나서 한스러운 기운이 가슴을 콱 막아서, 그날 저녁 군중에서 사망했다. 사마의가 군용 수레에 실어서 사람을 낙양에 보내어 안장했다. 위나라 군주가 조진이 사망한 것을 듣고 즉시 조서를 내려 사마의에게 출전을 재촉했다. 사마의가 대군을 거느리고 공명에게 교전하러 와서, 다음날 우선 선전포고(宣戰布告)하는 글을 보냈다. 공명이 여러 장수에게 말하기를,

 

조진이 죽은 게 틀림없소.”

 

하고, 곧 회답하기를,

 

내일 교전하겠다.”

 

고 했다. 위나라 사자가 떠나고, 공명이 그날 밤 강유에게 비밀 계책을 주어 실행하게 했다. 또한 관흥을 불러 이리저리하라고 분부했다. 다음날 공명이 기산의 병력을 총동원해서 위수의 물가로 가니 한쪽은 강물이고 한쪽은 산인데 중앙은 드넓은 들판이라 마침 싸움터로 좋은 곳이었다! 양군이 서로 맞이하여 화살을 쏘아 (그 사거리 밖으로) 진영의 최전방을 정하여 멈추었다. 세 번 북을 올린 뒤 위나라 진중에서 진영 문의 깃발이 열리며 사마의가 말을 타고 나오고 뭇 장수가 뒤따라 나왔다. 다만 공명은 사륜거 위에 단정히 앉아 손으로 깃털 부채를 흔들고 있을 따름이었다.

 

懿曰吾主上法堯禪舜相傳二帝坐鎮中原容汝蜀吳二國者乃吾主寬慈仁厚恐傷百姓也汝乃南陽一耕夫不識天數強要相侵理宜殄滅如省心改過宜即早回各守疆界以成鼎足之勢免致生靈塗炭汝等皆得全生孔明笑曰吾受先帝托孤之重安肯不傾心竭力以討賊乎汝曹氏不久爲漢所滅汝祖父皆爲漢臣世食漢祿不思報效反助篡逆豈不自恥懿羞慚滿面曰吾與汝決一雌雄汝若能勝吾誓不爲大將汝若敗時早歸故裏吾並不加害孔明曰汝欲鬥將鬥兵鬥陣法懿曰先鬥陣法孔明曰先布陣我看

 

사마의가 말하기를,

 

우리 주상께서, 위로는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선양한 것을 본받아, 두 황제(조조와 조비)에게 전하여 중원을 주재하고, 너희 촉, 오 두 나라를 용인한 것은 바로 우리 주상께서 너그럽고 인자하며 어질고 후덕하여서 백성을 상할까 걱정하여서이다! 너는 남양 땅의 한 농부로서, 하늘의 운수를 모르고, 억지로 서로 침략하게 만드니, 마땅히 무찔러 없애야 할 것이다! 만약 마음을 바로잡고 잘못을 고쳐서 즉각 되돌아가, 각각 국경을 지켜서 세 발 솥 같은 형세를 이룬다면,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는 것을 면하고, 너희도 모두 목숨을 보전할 것이다!”

 

하니, 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선제(유현덕)로부터 탁고(자식을 부탁함)의 중임을 받았거늘 어찌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해 역적을 토벌하지 않겠느냐? 너희 조씨는 머지않아 한나라에게 멸망될 것이다. 너희 조부와 부친 모두가 한나라의 신하로서 대대로 한나라의 녹을 먹었거늘 보답할 생각은 않고, 도리어 찬탈과 반역을 도왔으니 어찌 스스로 부끄럽지 않겠느냐?”

 

했다. 사마의가 얼굴 가득 부끄러움을 띠고 말하기를,

 

내가 너와 한바탕 자웅을 겨루겠다! 네가 이기면 내 맹세코 대장의 직위를 내려놓겠다! 그러나 네가 패전해서 조속히 고향으로 돌아가더라도 나는 더 이상 해치지는 않겠다!”

 

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네가 장수로 싸울 테냐? 군사들로 싸울 테냐? 진법으로 싸울 테냐?”

 

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먼저 진법으로 싸우자.”

 

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먼저 진을 쳐서 내게 보여라.”

 

했다.

 

懿入中軍帳下手執黃旗招颭左右軍動排成一陣複上馬出陣問曰汝識吾陣否孔明笑曰吾軍中末將亦能布之此乃混元一氣陣懿曰汝布陣我看孔明入陣把羽扇一搖複出陣前問曰汝識我陣否懿曰量此八卦陣如何不識孔明曰識便識了敢打我陣否懿曰既識之如何不敢打孔明曰汝只管打來

 

사마의가 중군의 장막으로 들어가 손에 누런 깃발을 들고 흔들자, 좌우에서 군사들이 움직이더니 일개 진영을 이루었다. 사마의가 다시 말에 올라타고 군진을 나와서 묻기를,

 

네가 나의 진법을 알아보겠느냐?”

 

하니, 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우리 군의 말단 장수도 그렇게 포진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혼원일기진(混元一氣陣)’이다.”

 

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네가 포진해서 나에게 보여라.”

 

하니, 공명이 진중으로 들어가 깃털 부채를 흔들더니 다시 진 밖으로 나와서 묻기를,

 

네가 나의 진법을 알아보겠느냐?”

 

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그까짓 팔괘진(八卦陣)’을 어찌 못 알아보겠느냐!”

 

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아는 것은 아는 것이고, 감히 우리 진을 칠 수 있겠느냐?”

 

하니, 사마의가 말하기를,

 

이미 아는 것인데 어찌 칠 수 없겠느냐!”

 

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네가 한번 쳐들어 와봐라.”

 

했다.

 

司馬懿回到本陣中喚戴陵張虎樂綝三將分付曰今孔明所布之陣按休開八門汝三人可從正東生門打入往西南休門殺出複從正北開門殺入此陣可破汝等小心在意於是戴陵在中張虎在前樂綝在後各引三十騎從生門打入兩軍呐喊相助三人殺入蜀陣只見陣如連城沖突不出三人慌引騎轉過陣腳往西南沖去卻被蜀兵射住沖突不出陣中重重疊疊都有門戶那裏分東西南北三將不能相顧只管亂撞但見愁雲漠漠慘霧蒙蒙喊聲起處魏軍一個個皆被縛了送到中軍

 

사마의가 본진으로 되돌아가서 대릉, 장호, 악림 세 장수를 불러 분부하기를,

 

이제 공명이 포진한 것은 휴(), (), (), (), (), (), (), () 이렇게 8개 문이오. 그대 세 사람은 정동쪽 생문으로 쳐들어가서, 서남쪽 휴문으로 달려나와 다시 정북쪽 개문으로 달려드시오. 그리하면 이 진을 깰 수 있소. 그대들은 조심하시오!”

 

했다. 이에 대릉이 가운데에, 장호가 앞에, 악림이 뒤에 위치해서 각각 30기를 이끌고 생문으로 쳐들어갔다. 양군이 함성을 지르며 서로 도왔다. 세 사람이 촉나라 진으로 달려드는데 군진이 마치 연이은 성벽 같아서, 충돌해도 뚫고 나갈 수 없었다. 세 사람이 기마병을 이끌고 황급히 진 모퉁이를 돌아서 서남쪽을 치러 가지만, 촉병이 화살을 쏴서 멈추게 하니 충돌해도 뚫고 나갈 길이 없었다. 진중이 중첩되고 모두 문이 있어서 어디가 동서남북(東西南北)인지 구분하겠는가? 세 장수가 서로 돌아보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공격할 뿐인데, 마치 음울한 구름과 안개가 끝없이 피어오르는 듯했다. 함성이 울리는 곳마다 위나라 군사 하나하나가 모조리 포박을 당하여 중군으로 끌려왔다.

 

孔明坐於帳中左右將張虎戴陵樂綝並九十個軍皆縛在帳下孔明笑曰吾縱然捉得汝等何足爲奇吾放汝等回見司馬懿教他再讀兵書重觀戰策那時來決雌雄未爲遲也汝等性命既饒當留下軍器戰馬遂將衆人衣服脫了以墨塗面步行出陣司馬懿見之大怒回顧諸將曰如此挫敗銳氣有何面目回見中原大臣耶即指揮三軍奮死掠陣懿自拔劍在手引百餘驍將催督沖殺

 

공명이 군막 안에 앉아 있는데, 좌우로 장호, 대릉, 악림과 90명 군사들을 모조리 군막 아래에 포박해 왔다. 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비록 너희들을 잡았다만 어찌 대수로운 일이겠느냐! 내가 너희들을 방면하여 사마의에게 돌려보낼 테니, 그에게 다시 병서를 강독하고 전술을 더욱 살핀 뒤에 자웅을 겨루러 와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해라. 너희들의 목숨을 살려주겠지만 무기와 말은 남겨두고 가야 할 것이다.”

 

했다. 곧 사람들의 옷과 갑옷을 벗기고 먹을 얼굴에 칠하고 걸어서 진 밖으로 나가게 했다. 사마의가 이것을 보고 크게 노하여 여러 장수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이렇게 예기를 꺾여서야 무슨 면목으로 되돌아가 중원의 대신들을 만나겠소!”

 

하고, 즉시 3군을 지휘해 전투 대형을 이루었다. 사마의가 직접 손에 칼을 뽑아들고, 1백여 용맹한 장수들을 이끌고 군사들을 독려하며 돌격했다.

 

兩軍恰才相會忽然陣後鼓角齊鳴喊聲大震一彪軍從西南上殺來乃關興也懿分後軍當之複催軍向前廝殺忽然魏兵大亂原來薑維引一彪軍悄地殺來蜀兵三路夾攻懿大驚急忙退軍蜀兵周圍殺到懿引三軍望南死命沖擊魏兵十傷六七司馬懿退在渭濱南岸下寨堅守不出孔明收得勝之兵回到祁山時永安城李嚴遣都尉苟安解送糧米至軍中交割苟安好酒於路怠慢違限十日孔明大怒曰吾軍中專以糧爲大事誤了三日便該處斬汝今誤了十日有何理說喝令推出斬之長史楊儀曰苟安乃李嚴用人又兼錢糧多出於西川若殺此人後無人敢送糧也

 

양군이 막 맞붙으려는데, 홀연히 배후에서 북소리와 피리 소리가 일제히 울리고 함성이 크게 진동하며, 한 무리 군사가 서남쪽에서 달려왔다. 바로 관흥이었다. 사마의가 후군을 나누어 막게 하고, 다시 군사들을 다그쳐 앞으로 돌격했다. 그런데 갑자기 위나라 병사들이 크게 어지러워졌다. 알고 보니, 강유가 한 무리 군사를 이끌고 몰래 쳐들어온 것이었다. 촉병이 세 개 방면에서 협공하자, 사마의가 크게 놀라 황망히 군사를 퇴각시켰다. 촉병이 포위하여 달려드니 사마의가 3군을 이끌고 남쪽으로 죽기 살기로 뚫고 나갔다. 위나라 병사 열에 여섯 일곱은 상실되었다. 사마의가 위수의 남쪽 물가로 퇴각해 영채를 세운 뒤 굳게 지키며 나오지 않았다. 공명이 승리를 거둔 병력을 거두어 기산으로 돌아가니, 영안성의 이엄이 도위 구안을 시켜 군량을 운송하여 군중에서 넘겨주게 했다. 구안이 술을 좋아하여 도중에 태만하더니 기일을 열흘이나 어겼다. 공명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우리 군중에서 오로지 군량을 큰일로 여겨서, 3일만 어겨도 바로 참해야 마땅하다! 너는 이제 무려 열흘을 어겼으니 무슨 말로 변명하겠느냐!”

 

하고, 밖으로 끌어내어 처형하라고 고함쳤다. 장사(비서장) 양의가 말하기를,

 

구안은 바로 이엄이 채용한 사람입니다. 게다가 전량(재물과 식량)이 서천에서 많이 나는데 만약 이 사람을 죽이면 훗날 아무도 군량을 운송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했다.

 

孔明乃叱武士去其縛杖八十放之苟安被責心中懷恨連夜引親隨五六騎徑奔魏寨投降懿喚入苟安拜告前事懿曰雖然如此孔明多謀汝言難信汝能爲我幹一件大功吾那時奏准天子保汝爲上將安曰但有甚事即當效力懿曰汝可回成都布散流言說孔明有怨上之意早晚欲稱爲帝使汝主召回孔明即是汝之功矣苟安允諾徑回成都見了宦官布散流言說孔明自倚大功早晚必將篡國宦官聞知大驚即入內奏帝細言前事後主驚訝曰似此如之奈何宦官曰可詔還成都削其兵權免生叛逆

 

이에 공명이 무사들에게 소리쳐서 그 결박을 풀게 한 뒤 곤장 80대를 때려서 방면했다. 구안이 질책을 받고 마음속으로 원한을 품고는 그날 밤 직접 5, 6기를 이끌고, 위나라 영채로 달아나서 투항했다. 사마의가 불러들이자 구안이 절하고, 앞서 일어난 일을 고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공명은 꾀가 많아서 그대의 말을 믿기 어렵소. 그대가 나를 위해 큰 공을 하나 세울 수 있다면, 내가 그때 천자께 상주하여 그대를 상장군으로 추천하겠소.”

 

하니, 구안이 말하기를,

 

무슨 일이든지 맡겨주시는 대로 제 있는 힘을 다하겠습니다.”

 

했다. 사마의가 말하기를,

 

그대는 성도로 돌아가 유언비어(流言蜚語)를 퍼뜨리시오. ‘공명이 주상을 원망하는 마음을 가져 조만간 황제를 칭할 것이다,’라고, 떠벌려서 그대의 주상으로 공명을 불러들이게 만들면 이것이 바로 그대의 공이 될 것이오.”

 

했다. 구안이 응낙하고, 성도로 급히 되돌아가서 환관을 만나, 유언비어(流言蜚語)를 퍼뜨려, ‘공명이 자신의 큰 공을 믿고 조만간 나라를 빼앗을 것이 틀림없다,’라고 말했다. 환관이 이를 듣고 크게 놀라 즉시 안으로 들어가 황제에게 아뢰며 앞서 들은 일을 상세히 말했다. 후주가 놀라고 의아해 하며 말하기를,

 

이렇다면 어찌해야겠소?”

 

하니, 환관이 말하기를,

 

조서를 내려 성도로 불러들여서 그의 병권을 빼앗아, 반역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십시오.”

 

했다.

 

後主下詔宣孔明班師回朝蔣琬出班奏曰丞相自出師以來累建大功何故宣回後主曰朕有機密事必須與丞相面議即遣使齎詔星夜宣孔明回使命徑到祁山大寨孔明接入受詔已畢仰天歎曰主上年幼必有佞臣在側吾正欲建功何故取回我如不回是欺主矣若奉命而退日後再難得此機會也薑維問曰若大軍退司馬懿乘勢掩殺當複如何孔明曰吾今退軍可分五路而退今日先退此營假如營內一千兵卻掘二千灶明日掘三千灶後日掘四千灶每日退軍添灶而行

 

후주가 조서를 내려 공명에게 군사를 거두어 조정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장완이 반열에서 나와 아뢰기를,

 

승상이 직접 출전한 이래 거듭 큰 공을 세웠거늘, 무슨 까닭으로 돌아오라고 하교하십니까?”

 

하니, 후주가 말하기를,

 

짐에게 기밀을 요하는 일이 있어 반드시 승상과 면담해야겠소.”

 

했다. 즉시 사자에게 조서를 주어 밤낮없이 달려가 공명에게 성도로 돌아오라고 하교했다. 천자의 사자가 기산의 본진으로 달려오니 공명이 맞아들였다. 천자의 조서를 받아들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기를,

 

주상께서 아직 어리시니 틀림없이 간신이 곁에 있구나! 내가 이제 공을 세울 참인데 무슨 까닭으로 돌아가겠는가? 내가 만약 돌아가지 않으면 주상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만약 어명을 받들고 돌아가면 훗날 이런 기회를 다시 얻기 어려울 것이다.”

 

했다. 강유가 묻기를,

 

대군이 물러나면, 사마의가 그 틈을 타고 습격할 것인데,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내가 이제 군사를 퇴각시키며, 다섯 개 방면으로 퇴각할 것이오. 오늘 먼저 이곳 영채부터 퇴각할 것이오. 예를 들어 영내에 군사 1천이라면 아궁이를 2천 개 팔 것이오. 내일 3천 개를 파고, 모레 4천 개를 파는 식으로 매일 후퇴하며 아궁이 수를 늘려가며 행군할 것이오.”

 

했다.

 

楊儀曰昔孫臏擒龐涓用添兵減灶之法而取勝今丞相退兵何故增灶孔明曰司馬懿善能用兵知吾兵退必然追趕心中疑吾有伏兵定於舊營內數灶見每日增灶兵又不知退與不退則疑而不敢追吾徐徐而退自無損兵之患遂傳令退軍卻說司馬懿料苟安行計停當只待蜀兵退時一齊掩殺正躊躇間忽報蜀寨空虛人馬皆去懿因孔明多謀不敢輕追自引百餘騎前來蜀營內踏看教軍士數灶仍回本寨次日又教軍士趕到那個營內查點灶數回報說這營內之灶比前又增一分

 

양의가 말하기를,

 

예전에 손빈이 방연을 잡을 때, 병력을 늘리고 아궁이는 줄이는 방법으로 이겼습니다. 지금 승상께서 군사를 물리시며, 무슨 까닭으로 아궁이 수를 늘리십니까?”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사마의는 용병에 뛰어난 인물이라, 아군의 후퇴를 알면, 반드시 추격할 것이오. 그러나 마음속으로 우리의 복병이 있지 않을까 의심할 것이므로, 우리의 옛 영채에 머물 때마다 아궁이 수를 셀 것이오. 매일 아궁이 수가 늘어나는 것을 보고는, 우리 병사가 후퇴하는지 후퇴하지 않는지 알 수 없을 것이기에, 의심이 일어나 감히 추격하지 못할 것이오. 우리가 서서히 후퇴하면, 병력을 잃는 재난은 없을 것이오.”

 

했다. 마침내 군령을 내려 군사를 퇴각시켰다. 한편, 사마의는 구안이 계책을 완수할 것이라 여기고 촉나라 군사의 퇴각을 기다려서 일제히 습격하려고 했다. 사마의가 기다리고 있는데, 홀연 촉병의 영채가 텅 비고 인마가 모두 떠났다고 알렸다. 사마의는 공명이 꾀가 많은 것을 알아서, 감히 함부로 추격하지 못했다. 스스로 백여 기를 이끌고 촉나라 영채로 가서 현장을 살피고, 군사들더러 아궁이 수를 세라고 지시하고 본진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다시 군사들을 시켜 그 영채로 가서 아궁이 수를 점검하게 했다. 군사들이 돌아와 보고하기를,

 

그 곳 영채 안의 아궁이 수가 전보다 조금 늘어났습니다.”

 

했다.

 

司馬懿謂諸將曰吾料孔明多謀今果添兵增灶吾若追之必中其計不如且退再作良圖於是回軍不追孔明不折一人望成都而去次後川口土人來報司馬懿說孔明退兵之時未見添兵只見增灶懿仰天長歎曰孔明效虞詡之法瞞過吾也其謀略吾不如之遂引大軍還洛陽正是棋逢敵手難相勝將遇良才不敢驕

 

사마의가 장수들에게 이르기를,

 

나는 공명이 꾀가 많은 줄 아는데, 지금 과연 병력을 더하고 아궁이를 늘렸으니, 내가 만약 추격했다면, 틀림없이 그 계략에 빠졌을 것이오. 일단 퇴각해 다시 좋은 계책을 도모하는 것이 낫겠소.”

 

했다. 이에 군사를 되돌리고 추격하지 않았다. 공명이 한 사람도 잃지 않고 성도로 떠난다. 그 뒤 촉나라 변경 어귀에 사는 원주민이 사마의에게 보고하기를, 공명이 병력을 물릴 때 병력을 더하는 것은 못 보았고, 다만 아궁이 수만 늘렸다고 이야기했다. 사마의가 하늘을 우러러 길게 탄식하기를,

 

공명이 우후(동한의 이름난 장수로 아궁이를 늘리는 전법으로 강족을 대파했음)의 전법으로 나를 속여넘겼구나! 그의 모략을 나는 따를 수 없다!”

 

하고, 곧 대군을 이끌고 낙양으로 돌아갔다. 이야말로, 바둑도 호적수는 서로 이기기 어렵듯이, 뛰어난 인재를 만나면 교만할 수 없구나.

 

未知孔明退回成都竟是如何且看下文分解

 

공명이 성도로 되돌아가서 결국 어찌될 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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