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落烏嘶海色昏, 亥潮初漲打柴門. 遙知乶犖商船到, 巨濟沙工水際喧. |
달 지고 까마귀 울어대는 바다는 어둑한데, 밤중에 밀물 불어 사립문을 두드릴 듯하네. 볼락 파는 배 도착한 줄 멀리서도 알겠으니, 거제 사공 물가에서 볼락 사라 소리 지르네. 월락오시해색혼, 해조초창타시문. 요지볼락상선도, 거제사공수제훤. |
김려(金鑢·1766~1821)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 《담정유고(藫庭遺藁)》 |
김려(金鑢)의 시(詩)를 읽고 있노라면, 마치 볼락(乶犖)이 바닷가에서 팔딱거리며 내게 말을 건네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사실 이 시(詩)는 19세기 초 우해(牛海) 즉, 지금의 진해(鎭海)에서 김려(金鑢)가 볼락(乶犖)을 관찰하며 지은 시(詩)입니다. 한 마디로 ‘볼락어(乶犖魚) 라이브 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죠. 이 작품은 당대 어촌 생활을 생생히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바다의 생생한 현장을 느끼게 하는 예술 작품입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볼락(乶犖)의 세계로 빠져보도록 하죠.
1. "바닷가에서 까마귀가 울다니, 이게 실화냐?"
김려(金鑢)는 시에서 "月落烏嘶海色昏"이라며 달이 지고 까마귀가 운다고 했습니다. 까마귀라면 흔히 뭍에서 울 법한데, 김려(金鑢)의 시에서는 까마귀가 바닷가에서 울고 있습니다. 이건 마치 "어촌 버전의 힙합 비트가 들려오는 것" 같은 기분이죠. 그때 밀물이 쳐서 사립문을 "두둑두둑" 두드릴 것만 같은 상황이 펼쳐지는데요, 김려(金鑢)의 사립문은 그냥 사립문이 아닙니다. 마치 문이 바닷물에 떠내려가다가 배에 부딪혀 나오는 "뚜뚜뚜" 소리처럼 생생하죠.
그러니 이 장면에서 그가 느끼는 공포(?)와 설렘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밀물이 쳐서 사립문을 두드리는 이 시골의 밤, 조용한 어촌에서 "까마귀도 울고 물도 밀려오고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하고 김려(金鑢)는 아마도 깜짝 놀라면서도, 그 와중에 볼락(乶犖)을 떠올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2. "멀리서도 알 수 있는 볼락 배 도착!"
이어 "遙知乶犖商船到"라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멀리서도 알겠네, 볼락(乶犖)을 팔러 오는 상선이 도착했음을!’이라고 했으니, 마치 김려(金鑢)는 볼락을 기다리는 어촌마을 주민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여러분, 이쯤 되면 김려(金鑢)가 ‘볼락 전문 통신망’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볼락 배가 도착했다!"는 소문은 바다에서부터 파도 타고 전해졌을 것이니, 김려(金鑢)의 문 앞까지 닿았을지도 모르죠.
여기서 잠깐, "乶犖"이란 말이 재미있습니다. 보통 우리는 볼락을 '볼락'이라고 부르지만, 김려(金鑢)는 볼락을 이렇게 한자로 표현했습니다. 한자 공부까지 겸하면서 자연스럽게 볼락의 이미지가 확장되는 것이죠. ‘乶’는 입을 벌린 모습을 상징하고, ‘犖’은 힘세고 당당한 물고기를 가리킵니다. 즉, 볼락은 "입을 크게 벌리고 바다를 헤엄치는 힘찬 생선"이라는 걸 김려(金鑢)는 한자로 감각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3. "거제 사공의 외침, 그리고 소울 충만 볼락 장사!"
"巨濟沙工水際喧"라는 구절로 넘어가면, 거제(巨濟)의 사공들이 볼락을 팔기 위해 물가에서 소리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볼락 장사를 소리 높여 외치는 사공들의 활기와 그들의 소울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아싸! 볼락! 신선한 볼락 왔어요!”라고 외치는 것과 다를 바 없죠.
마치 오늘날의 시장에서 활어차(活魚車)를 몰고 온 상인들이 "싱싱한 생선 사세요!"라고 소리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김려의 시에서도 이런 볼락 장사의 풍경이 담겨 있는데, 그저 평범한 장사치의 외침이 아니라 "거제 사공이 볼락을 팔려고 물가에서 소리치는 모습"은 시적인 한 폭의 그림이자 어촌의 평화로운 일상을 상징합니다.
4. "김려의 볼락 사랑, 그 깊은 뜻은?"
김려(金鑢)는 볼락(乶犖)을 단순히 물고기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볼락(乶犖)의 이름에 담긴 한자의 의미까지 파고들었는데요. 그는 "甫羅魚"라는 이름이 아름다운 비단을 의미하는 '보라(甫羅)'와 연결된다고 설명합니다. 즉, 볼락(乶犖)은 그냥 물고기가 아니라 마치 비단처럼 고운 물고기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이쯤 되면 김려(金鑢)는 ‘볼락 시인’으로 불러도 될 것 같네요.
그는 심지어 "거제 사람들은 볼락(乶犖) 젓갈을 수백 통이나 배에 싣고 와 생삼(生蔘)과 바꾸어 간다"며, 이 어종이 얼마나 중요한 교환 수단이었는지까지 알려줍니다. 볼락 젓갈이 당시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그리고 거제도(巨濟島)에서는 볼락을 많이 잡았지만 인삼이나 모시는 귀했다고 하니, 이 역시 시대적 배경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5. "볼락 매운탕, 모래 냄새도 느껴지는 맛"
또한 김려(金鑢)는 볼락의 맛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싱싱한 볼락(乶犖)을 구워 먹으면 "약간 모래 냄새가 난다"는 표현은 당시의 식문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지금으로 치면 볼락 매운탕을 끓여 먹으면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 숟가락 떠먹는 그런 기분이겠죠. 어촌에서의 소박한 삶과 함께 볼락의 맛을 떠올리게 하는 김려(金鑢)의 이 시적 표현은 당대 사람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을 겁니다.
결론: 볼락, 그 이상으로 향한 시인의 마음
김려(金鑢)의 시(詩)에서 볼락(乶犖)은 단순한 어종이 아닙니다. 이는 당시 어촌 생활의 활기와 평화로움을 상징하는 동시에, 시인(詩人)의 유배 생활에서 느꼈을 소소한 즐거움과 더불어 볼락(乶犖)을 매개로 한 깊은 인생 통찰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움과 고독, 그리고 자연 속에서 얻게 되는 작은 기쁨들을 볼락(乶犖)을 통해 표현한 김려(金鑢)의 시(詩)는 우리에게도 소소한 웃음을 안겨줍니다.
김려(金鑢)가 "乶犖商船到"라고 외쳤듯이, 오늘 밤에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볼락 배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저 소박한 밥상 위의 생선을 보며, 인생을 조금 더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여유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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