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현서당 주간지

진현서당지 제18호 사불문(四不問)

진현서당 2024. 9. 21. 17:10

진나라 목공의 인재기용정책이다.

민족(종족), 국적, 신분, 연령 이 네 가지를 따지지 않고 유능하면 누구나 기용하겠다는 것이었다.

 

: 넉 사

: 아닐 불

: 물을 문

 

사마천(司馬遷)은 한 나라의 흥망성쇠(興亡盛衰)에 징조(徵兆)가 있다고 했습니다. 나라가 잘 될 때는 군자(君子)가 기용되고, 나라가 망할 때는 소인(小人)들이 득세한다고 했죠. 특히 사마천(司馬遷)은 나라의 안정과 위기(安危)는 어떤 정책을 펴느냐에 달려 있고, 존망은 어떤 사람을 기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단언합니다.

이 말은 개혁(改革)에서도 적용됩니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이 있어도 그 정책을 사심 없이 추진할 정직한 인재(正直人材)가 없다면 그 정책은 그저 그림의 떡(畫餠)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개혁을 위한 인재 등용의 원칙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여기서 진나라 목공(秦穆公)의 인재 정책을 보면 그 답이 나옵니다. 목공(穆公)은 기원전 7세기 중반, 서쪽 변방의 후진국이었던 진()나라를 일약 강국으로 변모시킨 인물입니다. 목공(穆公)의 대담한 인재정책(人材政策), 소위 사불문(四不問) 정책은 매우 파격적이었습니다.

사불문(四不問)’이란 네 가지를 따지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 네 가지는 민족(民族), 국적(國籍), 신분(身分), 연령(年齡)이었죠. , 그 사람이 어느 종족이든, 어느 나라 출신이든, 신분이 낮든 나이가 많든 상관없이, 오직 능력(能力)만 있다면 기용하겠다는 정책이었습니다.

이 정책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백리해(百里奚)입니다. 백리해(百里奚)는 우()나라 출신의 노예 신분(奴隸身分)이었고, 나이도 60세가 넘은 노인이었지만, 목공(穆公)은 그의 재능을 보고 그를 대부(大夫)로 삼았습니다. 백리해(百里奚)는 이에 보답하여 목공(穆公)에게 여러 인재를 추천했고, 그 인재들이 진()나라의 강성(强盛)을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목공(穆公)의 사불문(四不問) 정책 덕분에 진()나라는 후진국에서 선진국(先進國)으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정책은 이후에도 진()나라의 인재 등용의 근간이 되어, 400여 년 뒤 천하통일(天下統一)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사마천(司馬遷)이 말한 바와 같이, 나라의 흥망(興亡)은 어떤 사람을 기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조직도 마찬가지죠. 소인(小人)이 득세하고 현인(賢人)이 배제된다면 그 조직은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인재가 성장할 수 있는 기름진 토양(沃土)을 가꾸고, 외부적으로는 통념(通念)과 기득권을 넘어서 인재를 과감하게 등용할 줄 아는 지혜(智慧)가 필요합니다.

결국, 목공(穆公)의 사불문(四不問)은 단순히 나라를 강하게 만든 정책이 아니라,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바꾼 혁신적인 인재 정책(人材政策)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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