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이해관계가 서로 밀접하여 한쪽이 망하면 다른 한쪽도 보전하기 어려움을 비유한 말
脣 : 입술 순
亡 : 망할 망
齒 : 이 치
寒 : 찰 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등장하는 이야기 중 하나인 ‘순망치한(脣亡齒寒)’과 ‘가도멸괵(假道滅虢)’은 꽤 흥미로운 고사성어의 배경을 담고 있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초기, 진헌공(晋獻公)은 괵나라(虢國)를 정복하기 위해 우나라(虞國)에 길을 빌려 달라고 요청한다. 진헌공(晉獻公)은 이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순식(荀息)을 보내어 우(虞)나라 임금을 설득하게 한다. 그에게는 특별한 전략이 있었으니, 바로 천하에 명성이 자자한 명마(名馬)와 귀중한 구슬을 뇌물로 바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호화로운 선물 패키지였다.
우(虞)나라 임금은 이 선물에 눈이 뒤집힌다. "명마(名馬)와 구슬이라니, 이건 좀 땡기는데?" 그는 순식(荀息)이 내세운 "우리 두 나라는 형제의 우정을 맺어야 한다!"는 달콤한 말에 속아 길을 빌려주기로 결정한다. 이때 나라의 충신인 궁지기(弓之奇)가 나서서 반대한다. "대왕, 그건 아니옵니다! 괵(虢)나라는 우리 우(虞)나라의 울타리와 같습니다. 괵(虢)나라가 망하면 우리도 끝장입니다. 속담에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脣亡齒寒)'라고 하듯, 괵(虢)이 망하면 우(虞)나라도 위험해집니다. 진(晉)나라와 함께 행동하다가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꼴이 될 겁니다."
그러나 우(虞)나라 임금은 이미 귀가 팔랑거려, 궁지기(弓之奇)의 충언(忠言)을 무시하고 길을 빌려준다. "명마(名馬)와 구슬을 얻었으니 뭐, 별일이 있겠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궁지기(弓之奇)는 나라를 떠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는 한 해를 넘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의 예언은 불행히도 적중했다. 그 해 8월, 진헌공(晉獻公)은 우(虞)나라를 지나 괵(虢)나라를 침공했고, 괵(虢)나라는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진헌공(晉獻公)은 괵(虢)을 정복한 후, 돌아오는 길에 "우(虞)나라도 그냥 지나칠 순 없지!"라는 생각으로 우(虞)나라를 기습해 버렸다. 그리하여 우(虞)나라 역시 진(晉)나라의 손에 떨어지고 말았다. 우(虞)나라 임금은 "이럴 수가!"라며 허탈해했겠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명마(名馬)와 구슬도 진나라로 다시 돌아갔으니, 남은 것은 빈 손뿐이었다.
이 사건에서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는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라는 뜻으로, 서로 밀접하게 의지하는 관계에서 하나가 망하면 다른 하나도 위험해진다는 의미다. 괵(虢)나라가 우(虞)나라의 울타리와 같았듯, 한 나라가 망하면 다른 나라 역시 위기에 처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말이다. 또한, ‘가도멸괵(假道滅虢)’이라는 고사성어도 이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길을 빌려 괵(虢)나라를 멸망시킨다'는 뜻으로, 다른 이의 허락을 얻어 목적을 달성한 후 그를 배신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야말로 "뒤통수 치기"의 고전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보거상의(輔車相依)’라는 말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덧방나무(輔)와 수레바퀴(車)가 서로 의지한다’는 의미로, 두 대상이 서로 도우며 긴밀하게 협력하는 관계를 나타낸다. 이런 관계를 무시하고 함부로 행동하면 결국 둘 다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가 담겨 있다. 이 말을 응용해 ‘순치보거(脣齒輔車)’라는 표현도 사용되는데, 이는 입술과 이, 그리고 덧방나무와 수레바퀴가 서로 의지하듯 긴밀하게 연결된 관계를 뜻한다.
이 고사성어들 속에는 사람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국가 간의 정치적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우(虞)나라는 눈앞의 이익에만 집착한 나머지, 자신의 울타리가 되어줄 괵(虢)나라를 잃었고, 결국 자신마저 무너지고 말았다. 이는 오늘날에도 적용될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이다. "서로 의지하는 관계에서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쪽도 위험하다." 이 단순한 진리를 무시했다가는 언제든지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사건은 "과연 인간은 눈앞의 이익에 약하다"는 걸 다시 한 번 증명해 주는 이야기다. 우(虞)나라 임금이 뇌물에 홀려 "이건 뭐, 꿀이잖아!"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 결정이 나라를 망하게 만든 셈이다. 명마(名馬)와 구슬이 얼마나 화려했든, 끝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진(晉)나라는 속임수를 써서 괵(虢)도, 우(虞)도 손에 넣고, 명마(名馬)와 구슬까지 모두 챙겼다. 진(晉)나라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일타쌍피'였다.
이 이야기는 "눈앞의 이익에만 현혹되지 말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전달해준다. 우(虞)나라 임금처럼 명마(名馬)와 구슬에 홀려 중요한 것을 잃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자면, 사람이나 조직 간의 관계에서도 "입술이 사라지면 이가 시리다"는 이치를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