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漢詩 한 수/10월의 漢詩

1002. 고향을 향한 그리움[中原旅懷 중원려회]

진현서당 2024. 9. 20. 20:26

1002. 고향을 향한 그리움[中原旅懷 중원려회]

 



萬里西風吹白頭,
故園今夜亦悲秋.
病軀厭作中原客,
歸思忙於下瀨舟.
木落虫鳴俱悄悄,
天高斗轉更悠悠.
遙知兒女燈前語,
開篋還應檢弊裘.



만 리 멀리 서녘 바람 이내 백발에 불어오니,
고향에서도 오늘 밤 이 가을을 슬퍼하리라.
병든 이 몸 중원 땅의 나그네도 싫증이 나,
고향 생각 물결 따라 가는 배보다 바쁘어라.
떨어지는 잎새 벌레 우는 소리는 다 구슬프고,
드높은 하늘 도는 북두성은 더 아득하구나.
저 멀리서 가족들은 등불 아래 이야기하며,
상자 열어 해진 갖옷 다시 쓰다듬고 있겠지.


만리서풍취백두, 고원금야역비추.
병구염작중원객, 귀사망어하뢰주.
목락충명구초초, 천고두전갱유유.
요지아녀등전어, 개협환응검폐구.

홍세태(洪世泰·1653~1725) 중원에서 객수에 젖어(中原旅懷) 유하집(柳下集)6

 

 

서녘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가 하얗게 센 시인(詩人) 홍세태(洪世泰)가 강물 흐르는 드넓은 공간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이 바람, 그저 찬바람이 아니요, 집에 두고 온 가족(家族)에게 불어온 뒤, 그들의 숨결을 머금고 나에게 다가오는 바람이니, 어찌 이 서늘한 기운이 마음을 쓰라리게 하지 않겠는가. 아마도 가족들도 오늘 밤 나와 같은 바람을 맞으며, 가을을 느끼고 서글퍼하고 있을 것이다. ‘집 떠난 지 얼마나 되었던가?’ 하는 물음은 점점 커지고, 이젠 돌아가야 할 시간이 아닌가 싶다.

강물 따라 내려가는 배()는 천천히 흐르지만, 내 마음은 그보다 더 급하다. ‘이대로라면 뛰어내려서라도 달려가겠네!’ 나뭇잎은 우수수 떨어지고, 풀벌레들은 목청껏 울어대니 나그네()의 시름은 더욱 깊어만 간다.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며 가족 생각은 더욱 아득해진다. 저 멀리 별빛 아래, 가족들은 등불 앞에 앉아 있을 테지. 내가 입던 해진 가죽 외투를 상자에서 꺼내 만지며 이 사람은 어디쯤에 있는 걸까하고 걱정하고 있을 게다.

홍세태(洪世泰), 그는 조선 숙종(肅宗) 시대에 태어나 영조(英祖) 초년에 세상을 떠난 중인(中人) 출신의 시인(詩人)이다. 그의 인생 대부분이 이 두 왕의 시대에 걸쳐 있었으며, 이번 여정(旅程)1718, 그가 66세 때 한강(漢江)을 따라 충주(忠州)에 당도하여 지은 시() 중 하나다. 이 시는 네 수의 연작시(連作詩) 중 두 번째로, 유하집(柳下集)6에 실려 있다. 그는 동호(東湖)에서 배를 띄운 시()와 여주목사(驪州牧使)와의 이별을 읊은 시() 등으로 그 여정을 기록했다.

충주(忠州)를 옛날엔 중원(中原)이라 불렀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4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한양(漢陽)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한강(漢江)의 나루에서 배를 띄우고 물결을 거슬러 광주(廣州)에 이르면, 물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남한강(南漢江)을 따라 계속 가다 보면 양근(楊根), 여주(驪州)를 지나 충주(忠州)에 도달한다.

강가의 풍경은 가을이 내려앉은 모습이다. 천천히 노를 저어 한강(漢江)을 거슬러 올라가는 뱃길에서 홍세태(洪世泰)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비록 물결은 잔잔했을지라도, 그의 마음속 물결은 결코 잔잔하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이 사람, 평범한 여정을 떠난 게 아니었다. 그는 처음에 81녀를 두었지만, 자식들 모두가 일찍 세상을 떠나버렸다. 늦은 나이에 또 딸 둘을 얻어 키워 시집까지 보냈으나, 둘째 딸마저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삶은 자식들의 요절(夭折)이라는 슬픔 속에 계속되었고, 이런 삶은 차라리 죽는 것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번 여행(旅行)은 그의 인생에 주어진 마지막 작은 위안(慰安)이 아니었을까?

마침내 충주(忠州)에 도착한 홍세태(洪世泰). 바람은 불어오고, 별은 반짝이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고향(故鄕)을 향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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