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 나관중/제1권 삼국지연의 나관중

제10회 왕실을 위해 마등이 의병을 일으키고, 부친의 원수를 갚으려고 조조가 군사를 일으키다.

진현서당 2024. 9. 20. 17:20

第十回

勤王室馬騰舉義 報父仇曹操興師

 

10

왕실을 위해 마등이 의병을 일으키고, 부친의 원수를 갚으려고 조조가 군사를 일으키다.

 

 

卻說郭二賊欲弑獻帝張濟樊稠諫曰不可今日若便殺之恐衆人不服不如仍舊奉之爲主賺諸侯入關先去其羽翼然後殺之天下可圖也郭二人從其言按住兵器帝在樓上宣諭曰王允既誅軍馬何故不退李傕郭汜曰臣等有功王室未蒙賜爵故不敢退軍帝曰卿欲封何爵樊四人各自寫職銜獻上勒要如此官品帝只得從之

 

각설, 이각 곽사 두 도적이 헌제를 시해하려 하자 장제와 번조가 간언하기를,

 

안 됩니다. 오늘 만약 시해하면 뭇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을까 두렵소. 예전대로 임금으로 모시고 제후를 속여 관중으로 들어가서 먼저 그 조력자를 없애고 그런 뒤에 황제를 죽이면 천하를 도모할 수 있소.”

 

하였다. 이각과 곽사 두 사람이 그 말에 따라 병장기를 거두었다. 황제가 누각 위에서 선유하기를,

 

왕윤이 이미 죽었는데 군마를 무엇 때문에 물리지 않으시오?”

 

하니, 이각과 곽사가 말하기를,

 

신 등이 왕실에 공을 세웠는데 아직 벼슬을 받지 못했으니 감히 군사를 물릴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황제가 말하기를,

 

경은 어떤 벼슬을 바라시오?”

 

하니, 이각 곽사 장제 번조 네 사람이 각각 직함을 적어 올리고 그대로 관품을 달라고 졸라대니 황제가 할 수 없이 따랐다.

 

封李傕爲車騎將軍池陽侯領司隸校尉假節鉞郭汜爲後將軍美陽侯假節鉞同秉朝政樊稠爲右將軍萬年侯張濟爲驃騎將軍平陽侯領兵屯弘農其餘李蒙王方等各爲校尉然後謝恩領兵出城又下令追尋董卓屍首獲得些零碎皮骨以香木雕成形體安湊停當大設祭祀用王者衣冠棺槨選擇吉日遷葬郿塢臨葬之期天降大雷雨平地水深數尺霹靂震開其棺屍首提出棺外李傕候晴再葬是夜又複如是三次改葬皆不能葬零皮碎骨悉爲雷火消滅天之怒卓可謂甚矣

 

이각을 거기장군 지양후 사예교위 가절월에, 곽사를 후장군 미양후 가절월에 봉하니 함께 조정을 장악했다. 번조는 우장군 만년후가 되고, 장제는 표기장군 평양후가 되어 병력을 거느리고 홍농에 주둔했다. 그밖에 이몽 왕방 등은 각각 교위가 되었다. 그런 다음에야 성은을 사례하고 병력을 거느리고 성을 나갔다. 또한 영을 내려 동탁의 시체를 찾아보니 부스러진 자잘한 가죽과 뼈를 수습하여 향나무로 형체를 조각하여 아쉬운대로 갖추어 크게 제사를 지내는데, 왕의 의관과 관곽을 쓰고 길일을 골라 미오에 이장하려 했다. 장례를 치를 때 하늘에서 크게 천둥이 치고 비가 내려 평지는 수심이 몇척이나 되고 벼락이 내리쳐 관을 쪼개니 시체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각이 날이 개기를 기다려 다시 장례를 치르려 했지만 그날 밤에도 다시 되풀이 되었다. 세 차례 다시 장례를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이즈러진 살과 부러진 뼈가 모두 벼락불에 소멸되었다. 하늘이 동탁에 노여워함이 정말 심하구나!

 

且說李傕郭汜既掌大權殘虐百姓密遣心腹侍帝左右觀其動靜獻帝此時舉動荊棘朝廷官員並由二賊升降因采人望特宣朱俊入朝封爲太仆同領朝政一日人報西涼太守馬騰並州刺史韓遂二將引軍十餘萬殺奔長安來聲言討賊原來二將先曾使人入長安結連侍中馬宇諫議大夫種邵左中郎將劉範三人爲內應共謀賊黨三人密奏獻帝封馬騰爲征西將軍韓遂爲鎮西將軍各受密詔並力討賊當下李傕郭汜張濟樊稠聞二軍將至一同商議禦敵之策

 

한편, 이각과 곽사가 대권을 잡은 뒤 백성에게 잔학하게 굴고 황제 좌우에 은밀히 심복을 두어 동정을 살피니 헌제가 이때 거동하는 것이 가시밭길이었다. 조정 관원들도 모두 두 도적이 벼슬을 올리고 내렸다. 인망에 따라 특별히 주준을 조정에 들어오게 하여 태복에 봉하고 함께 조정을 거느리게 하였다. 어느 날 누군가 알리기를, 서량 태수 마등과 병주자사 한수 두 장수가 군사 십여 만을 이끌고 장안으로 달려와 역적을 토벌하겠다고 선포한다고 했다. 원래 두 장수는 일찍이 사람을 장안에 보내어 시중 마우간의대부 종소좌중랑장 유범 세 사람과 내응하여 함께 도적의 무리를 도모하려 하였다. 세 사람이 몰래 헌제에게 상주하여 마등을 정서장군한수를 진서장군으로 삼고, 각각 비밀 조서를 받고 힘을 합쳐 도적을 토벌하려 하였다. 이각 곽사 장제 번조가 두 장수가 진격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함께 적을 막을 대책을 상의하였다.

 

謀士賈詡曰二軍遠來只宜深溝高壘堅守以拒之不過百日彼兵糧盡必將自退然後引兵追之二將可擒矣李蒙王方出曰此非好計願借精兵萬人立斬馬騰韓遂之頭獻於麾下賈詡曰今若即戰必當敗績李蒙王方齊聲曰若吾二人敗情願斬首吾若戰勝公亦當輸首級與我詡謂李傕郭汜曰長安西二百裏盩厔山其路險峻可使張樊兩將軍屯兵於此堅壁守之待李蒙王方自引兵迎敵可也李傕郭汜從其言點一萬五千人馬與李蒙王方二人忻喜而去離長安二百八十裏下寨

 

모사 가후가 말하기를,

 

두 군대가 멀리서 오니 해자를 깊게 파고 보루를 높이 쌓아 견고히 수비하여 막아야 합니다. 그러면 백일이 되지 않아서 군량이 바닥나서 반드시 스스로 물러갈 것이니 그런 다음에 군사를 이끌고 추격하면 두 장수를 잡을 수 있습니다.”

 

하니, 이몽과 왕방이 튀어나와 말하기를,

 

이것은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정예병 만 명을 주시면 마등과 한수의 머리를 선 채로 베어 휘하에 바치겠습니다.”

 

하였다. 가후가 말하기를,

 

이제 바로 싸우면 반드시 패합니다.”

 

했으나, 이몽과 왕방이 일제히 말하기를,

 

만약 우리 두 사람이 패하면 참수해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이기면 공(가후)께서도 목을 우리에게 내놓아야 합니다.”

 

하였다. 가후가 이각과 곽사에게 말하기를,

 

장안 서쪽 이백 리에 주질산이 있는데 길이 험준하니 장제와 번조 두 장군을 여기에 주둔시켜 견고하게 수비하고, 그것을 기다렸다가 이몽과 왕방이 병력을 이끌고 싸워도 됩니다.”

 

하였다. 이각과 곽사가 그 말을 따라 인마 15천을 뽑아 이몽과 왕방에게 주었다. 두 사람이 기뻐하며 장안에서 28십 리 떨어진 곳에 진을 쳤다.

 

西涼兵到兩個引軍迎去西涼軍馬攔路擺開陣勢馬騰韓遂聯轡而出指李蒙王方罵曰反國之賊誰去擒之言未絕只見一位少年將軍面如冠玉眼若流星虎體猿臂彪腹狼腰手執長槍坐騎駿馬從陣中飛出原來那將即馬騰之子馬超字孟起年方十七歲英勇無敵王方欺他年幼躍馬迎戰戰不到數合早被馬超一槍刺於馬下馬超勒馬便回

 

서량의 군사가 도착하자 두 사람이 군사를 이끌고 맞섰다. 서량의 군마가 길을 막고 포진했다. 마등과 한수가 말 고삐를 잡고 나가서 이몽과 왕방을 손가락질하며 욕하기를,

 

국가에 반역한 도적놈들아! 누가 가서 잡아올테냐?”

 

하니,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한 소년 장군이 나오는데, 얼굴은 관옥 같고 눈은 유성 같다. 호랑이 몸에 원숭이 팔이요 표범의 배에 여우 허리다. 손에 긴 창을 잡고 준마를 타고 나는 듯이 진중에서 나왔다. 원래 이 장수는 마등의 아들 마초로 자는 맹기이고 나이 이제 막 십칠 세로 빼어난 용맹이 적수가 없었다. 왕방이 그 어린 것을 업신여겨 말을 달려 맞서 싸웠다. 싸운 지 몇 합 되지 않아 마초의 한 창에 찔려 떨어진다. 마초가 고삐를 당겨 말머리를 돌려 돌아왔다.

 

李蒙見王方刺死一騎馬從馬超背後趕來超只做不知馬騰在陣門下大叫背後有人追趕聲猶未絕只見馬超已將李蒙擒在馬上原來馬超明知李蒙追趕卻故意俄延等他馬近舉槍刺來超將身一閃李蒙搠個空兩馬相並被馬超輕舒猿臂生擒過去軍士無主望風奔逃馬騰韓遂乘勢追殺大獲勝捷直逼隘口下寨把李蒙斬首號令

 

이몽은 왕방이 찔려죽는 것을 보고 홀로 말을 달려 마초의 배후를 쫓아왔다. 마초가 미처 모르니 마등이 진문 아래에서 크게 소리치기를,

 

뒤에서 누가 쫓아온다!”

 

하니, 소리가 끝나기 전에 마초가 이미 이몽을 사로잡아 말에 싣고 오는 것을 보았다. 원래 마초가 이몽이 추격하는 것을 알고 고의로 시간을 끌어 그가 말 가까이 와서 창으로 찌르기를 기다려 마초가 번개같이 몸을 돌리니 이몽이 허공을 찌르고 두 말이 나란히 달릴 때 마초가 원숭이 팔을 가볍게 펼쳐 사로잡아 버렸다. 군사들이 장수를 잃고 (적의) 기세를 보고 달아났다. 마등과 한수가 기세를 타고 추격하여 크게 이기고 험하고 좁은 길목 가까이에 진을 치고 이몽을 참수하여 사람들에게 보였다.

 

李傕郭汜聽知李蒙王方皆被馬超殺了方信賈詡有先見之明重用其計只理會緊守關防由他搦戰並不出迎果然西涼軍未及兩月糧草俱乏商議回軍恰好長安城中馬宇家僮出首家主與劉範種邵外連馬騰韓遂欲爲內應等情李傕郭汜大怒盡收三家老少良賤斬於市把三顆首級直來門前號令馬騰韓遂見軍糧已盡內應又泄只得拔寨退軍李傕郭汜令張濟引軍趕馬騰樊稠引軍趕韓遂西涼軍大敗馬超在後死戰殺退張濟樊稠去趕韓遂看看趕上相近陳倉韓遂勒馬向樊稠曰吾與公乃同鄉之人今日何太無情樊稠也勒住馬答道上命不可違韓遂曰吾此來亦爲國家耳公何相逼之甚也樊稠聽罷撥轉馬頭收兵回寨讓韓遂去了

 

이각과 곽사가 이몽과 왕방이 모두 마초에게 죽은 것을 듣고, 비로소 가후의 선견지명을 믿고 그의 계책을 중용하여 견고히 요충지를 지킬 뿐 적군이 도전해도 출전하지 않았다. 과연 서량군이 두 달이 안 되어 군량과 말먹이가 모두 모자라 회군을 상의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장안성 안에서 마우의 노비가 자기집 주인이 유범 종소와 더불어 밖으로 마등 한수와 연결하여 내응이 되어 정세를 살피고 있다고 고발했다. 이각과 곽사가 대노하여 세 집안의 노소와 양민과 노비를 모조리 잡아서 저잣거리에서 참하고, 세 사람의 수급을 성문 앞에 효수했다. 마등과 한수가 군량이 이미 바닥나고 내응도 누설되니 진지를 거두고 퇴군했다. 이각과 곽사가 장제에게 명하여 군을 이끌고 마등을 쫓게하고, 번조에게 군을 이끌고 한수를 쫓게 하니 서량군이 대패했다. 마초가 뒤에서 결사 항전하여 장제를 패퇴시켰다. 번조가 한수를 쫓다가 보니 진창 부근에 이르렀다. 한수가 말 고삐를 당겨 번조를 향해 말하기를,

 

나와 공은 동향 사람인데 오늘 어찌 이리 무정하시오?”

 

하니, 번조도 말을 세우고 대답하기를,

 

상부의 명이니 어길 수가 없소!”

 

하였다. 한수가 말하기를,

 

나도 역시 국가를 위해 이렇게 왔을 뿐인데 공이 어찌 이리 핍박이 심하시오?”

 

하니, 번조가 듣고 나서 말머리를 돌려 병력을 거두어 영채로 돌아가며 한수를 보내주었다.

 

不提防李傕之侄李別見樊稠放走韓遂回報其叔李傕大怒便欲興兵討樊稠賈翊曰目今人心未寧頻動幹戈深爲不便不若設一宴請張濟樊稠慶功就席間擒稠斬之毫不費力李傕大喜便設宴請張濟樊稠二將忻然赴宴酒半闌李傕忽然變色曰樊稠何故交通韓遂欲謀造反稠大驚未及回言只見刀斧手擁出早把樊稠斬首於案下嚇得張濟俯伏於地李傕扶起曰樊稠謀反故爾誅之公乃吾之心腹何須驚懼將樊稠軍撥與張濟管領張濟自回弘農去了

 

그러나 이각의 조카 이별이 번조가 한수를 놓아주는 것을 보고 숙부에게 돌아가 알리는 것을 방비하지 못했다. 이각이 대노하여 병력을 동원해 번조를 치려 하니 가후가 말하기를,

 

바로 지금 인심이 아직 편안하지 못 한데 자꾸 무기를 동원하면 더욱 편치 못할 것입니다. 술자리를 마련하여 장제와 번조를 불러 공을 치하한 뒤 자리에 앉거든 번조를 잡아 참하여 털끝만한 힘도 들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하였다. 이각이 크게 기뻐하여 곧 술자리르 마련하여 장제와 번조를 불렀다. 두 장수가 흔쾌히 참석했다. 술이 거나해지자 이각이 갑자기 안색을 바꾸며 말하기를,

 

번조는 무슨 까닭으로 한수와 서로 통하여 모반하려 했는가?”

 

하니, 번조가 크게 놀랐다.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도부수가 끌고 나가 재빨리 술상 아래에서 참수했다. 장제가 헉하고 놀라며 땅에 엎드렸다. 이각이 일으켜 세우며 말하기를,

 

번조가 모반했기 때문에 죽였을 뿐이오. 공은 내 심복이니 무엇이 놀라 두렵겠소?”

 

하였다. 번조의 군사를 거두어서 장제가 거느리게 하였다. 장제는 스스로 홍농으로 돌아갔다.

 

李傕郭汜自戰敗西涼兵諸侯莫敢誰何賈詡屢勸撫安百姓結納賢豪自是朝廷微有生意不想青州黃巾又起聚衆數十萬頭目不等劫掠良民太仆朱俊保舉一人可破群賊李傕郭汜問是何人朱俊曰要破山東群賊非曹孟德不可李傕曰孟德今在何處俊曰現爲東郡太守廣有軍兵若命此人討賊賊可克日而破也李傕大喜星夜草詔差人齎往東郡命曹操與濟北相鮑信一同破賊操領了聖旨會同鮑信一同興兵擊賊於壽陽鮑信殺入重地爲賊所害操追趕賊兵直到濟北降者數萬操即用賊爲前驅兵馬到處無不降順不過百餘日招安到降兵三十餘萬男女百餘萬口操擇精銳者號爲青州兵其餘盡令歸農操自此威名日重捷書報到長安朝廷加曹操爲鎮東將軍

 

이각과 곽사가 자력으로 서량병을 패주시키자 제후 누구도 감히 맞서려 하지 않았다. 가후가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어진이와 호걸을 받아들이라 거듭 권했다. 이로부터 조정에 조금 생기가 돌았다. 그런데 뜻밖에 청주에서 황건적이 다시 일어나서 무리가 수십 만이고 두목은 제 각각인데 양민을 약탈했다. 태복 주준이 도적을 토벌할 사람을 천거했다. 이각과 곽사가 누구냐고 물으니 주준이 말하기를,

 

산동의 여러 도적을 깨려면 조맹덕이 아니면 아니 되오.”

 

하였다. 이각이 말하기를,

 

맹덕이 지금 어디 있소?”

 

하니, 주준이 말하기를,

 

지금 동군태수가 되어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있소. 만약 그에게 도적을 토벌하라고 명하면 기한 안에 도적을 토벌할 수 있소.”

 

하였다. 이각이 크게 기뻐하고 밤새 칙서를 작성하게 하여 사람을 시켜 동군으로 보내어, 조조와 제북상 포신이 함께 도적을 치라고 명했다. 조조가 황제의 명령을 받들고 포신과 함께 병사를 일으켜 수양에서 도적을 쳤다. 포신이 요충지에 급히 들어가다 도적에게 살해되었다. 조조가 적병을 추격하여 곧장 제북에 다다르니 항복한 자가 수만이었다. 조조가 (항복한) 도적을 선봉으로 삼아 도처에 병마를 보내니 항복하여 귀순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백여 일이 되지 않아서 귀순시키고 항복 받은 자가 3십여 만이고 남녀를 합치면 모두 백여 만이었다. 조조가 정예를 뽑아 청주병사라고 부르고 그 나머지는 모두 귀농시켰다. 조조가 이로부터 위세를 떨치는 이름이 날마다 무거워졌다. 승전 보고서를 장안에 보내니 조정에서 조조에게 진동장군의 작위를 더해 주었다.

 

操在兗州招賢納士有叔侄二人來投操乃潁川潁陰人姓荀名彧單字文若荀緄之子也舊事袁紹今棄紹投操操與語大悅此吾之子房也遂以爲行軍司馬其侄荀攸字公達海內名士曾拜黃門侍郎後棄官歸鄉今與其叔同投曹操操以爲行軍教授荀彧曰某聞兗州有一賢士今此人不知何在操問是誰彧曰乃東郡東阿人姓程名昱字仲德操曰吾亦聞名久矣遂遣人於鄉中尋問訪得他在山中讀書操拜請之程昱來見曹操大喜

 

조조가 연주에 있으면서 어진 이를 부르고 선비를 받아들였다. 숙부와 조카 사이인 두 사람이 조조에게 왔는데, 영천군 영음현 사람으로 성은 순이고 이름은 욱이며 자는 문약이니 순곤의 아들이다. 전에 원소를 섬겼으나 이제 원소를 버리고 조조에게 왔다. 조조가 이야기를 나눠보고 크게 기뻐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은 나의 자방(장량의 자)이다!”

 

라 하고, 행군사마(참모)로 삼았다. 그의 조카 순유는 자가 공달인데 천하의 명사로서 일찍이 황문시랑을 지내다가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여 이제 숙부와 더불어 조조에게 오니, 조조가 행군교수(군사 고문)로 삼았다. 순욱이 말하기를,

 

제가 연주에 어진 선비가 한 사람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니, 조조가 누구냐고 묻자 순욱이 대답하기를,

 

동군 동아현 사람으로 성은 정이고 이름은 욱이며 자는 중덕입니다.”

 

하였다. 조조가 말하기를,

 

나도 그 이름을 들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하고, 사람을 시골로 보내어 찾아보게 하니 산중에서 독서하고 있는 것을 알고, 조조가 모셔 오게 하였다. 정욱이 찾아오자 조조가 크게 기뻐하였다.

 

昱謂荀彧曰某孤陋寡聞不足當公之薦公之鄉人姓郭名嘉字奉孝乃當今賢士何不羅而致之彧猛省曰吾幾忘卻遂啟操征聘郭嘉到兗州共論天下之事郭嘉薦光武嫡派子孫淮南成德人姓劉名曄字子陽操即聘曄至曄又薦二人一個是山陽昌邑人姓滿名寵字伯寧一個是武城人姓呂名虔字子恪曹操亦素知這兩個名譽就聘爲軍中從事滿寵呂虔共薦一人乃陳留平邱人姓毛名玠字孝先曹操亦聘爲從事

 

정욱이 순욱에게 말하기를,

 

나는 고루하고 아는 게 없으니 공이 천거하기에 부족합니다. 공의 동향 사람 중에 성이 곽이고 이름이 가이며 자가 봉효인 이가 오늘날의 어진 선비인데 어찌 초빙하지 않으시오?”

 

하니, 순욱이 크게 반성하며 말하기를,

 

제가 깜박 잊었습니다!”

 

하였다. 마침내 조조에게 일깨어 주어 곽가를 연주로 초빙하여 천하의 일을 함께 의논하게 하였다. 광무제의 적통 자손으로 회남군 성덕현 출신으로 성은 유이고 이름이 엽이며 자가 자양인 사람을 곽가가 천거하니 조조가 곧 유엽을 초빙했다. 유엽이 다시 두 사람을 천거하니 한 사람은 산양군 창읍현 사람으로 성은 만이고 이름은 총이며 자가 백녕이다. 또 한 사람은 무성현 사람으로 성은 여이고 이름은 건이며 자가 자각이다. 조조도 또한 평소에 두 사람의 평판을 알고 있어서 초빙하여 군중종사(군사 보좌관)로 삼았다. 만총과 여건이 함께 한 사람을 천거하니 그는 진류군 평구현 사람으로 성은 모이고 이름은 개이며 자가 효선이다. 조조가 역시 불러 종사(보좌관)로 삼았다.

 

又有一將引軍數百人來投曹操乃泰山巨平人姓於名禁字文則操見其人弓馬熟嫻武藝出衆命爲點軍司馬一日夏侯惇引一大漢來見操問何人惇曰此乃陳留人姓典名韋勇力過人舊跟張邈與帳下人不和手殺數十人逃竄山中惇出射獵見韋逐虎過澗因收於軍中今特薦之於公操曰吾觀此人容貌魁梧必有勇力惇曰他曾爲友報仇殺人提頭直出鬧市數百人不敢近只今所使兩枝鐵戟重八十斤挾之上馬運使如飛操即令韋試之韋挾戟驟馬往來馳騁忽見帳下大旗爲風所吹岌岌欲倒衆軍士挾持不定韋下馬喝退衆軍一手執定旗杆立於風中巍然不動操曰此古之惡來也遂命爲帳前都尉解身上棉襖及駿馬雕鞍賜之

 

또 한 장수가 군사 수백 인을 거느리고 조조에게 합류하는데, 태산군 거평현 사람으로 성은 우이고 이름은 금이며 자가 문칙이다. 조조는 그가 활쏘기와 말타기에 숙련되고 무예가 출중한 것을 보고 점군사마(군감찰)로 삼았다. 어느날 하후돈이 한 거한을 데려 오니 조조가 누구냐 물었다. 하후돈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진류군 사람으로 성은 전이고 이름은 위이며 용기와 힘이 비상합니다. 전에 장막을 따르다가 그 부하와 불화하여 수십 인을 죽이고 산중으로 달아났습니다. 제가 사냥을 나갔다가 전위가 호랑이를 쫓아 산골짜기를 지나가는 것을 보고 군중으로 데려왔습니다. 지금 특별히 공께 천거합니다.”

 

하였다. 조조가 말하기를,

 

내가 보니 이 사람의 용모가 큼직하니 반드시 용기와 힘이 있겠구나.”

 

하니, 하후돈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일찍이 친구의 원수를 갚느라고 사람을 죽이고 목을 들고 시끄러운 저잣거리로 뛰어들었으나 수백 사람이 감히 접근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쓰는 무기가 두 자루 쇠창으로 무게가 팔십 근인데 이걸 가지고 말을 타도 나는 듯이 움직입니다.”

 

하였다. 조조가 즉시 전위에게 명하여 시험해 보니, 전위가 극을 들고 말을 달려 왕래하였다. 갑자기 장막 앞의 큰 깃발이 바람에 불려서 위태롭게 넘어질 듯하여 여러 군사가 달라붙어도 안정되지 않자, 전위가 말에서 내려 여러 군사를 고함쳐 물리치고 한 손으로 깃대를 잡아 세워 바람 속에 섰는데 우뚝 솟아 움직이지 않았다. 조조가 말하기를,

 

이 사람은 옛날의 악래로구나!”

 

하고, 마침내 장전도위(호위무관)로 삼고 입고 있던 비단 웃옷을 벗어주고 준마와 조각한 안장을 주었다.

 

自是曹操部下文有謀臣武有猛將威鎮山東乃遣泰山太守應劭往琅琊郡取父曹嵩嵩自陳留避難隱居琅琊當日接了書信便與弟曹德及一家老小四十餘人帶從者百餘人車百餘輛徑望兗州而來道經徐州太守陶謙字恭祖爲人溫厚純篤向欲結納曹操正無其由知操父經過遂出境迎接再拜致敬大設筵宴款待兩日曹嵩要行陶謙親送出郭特差都尉張闓將部兵五百護送曹嵩率家小行到華費間時夏末秋初大雨驟至只得投一古寺歇宿寺僧接入嵩安頓家小命張闓將軍馬屯於兩廊衆軍衣裝都被雨打濕同聲嗟怨

 

이로부터 조조의 부하 중에 문관으로 계략을 꾸미는 신하가 있고 무관으로 맹장이 있으니 위세가 산동을 눌렀다. 태산군 태수 응소를 낭야군에 보내어 아버지 조숭을 모셔오게 하였다. 조숭이 진류에서 난을 피하여 낭야에 은거했는데, 그날 서신을 받고 아우 조덕과 함께 집안의 어른과 아이 40여 명과 종 백여 명, 수레 백여 량을 대동하여 지름길로 연주로 가게 되었다. 도중에 서주를 지나가니, 서주태수 도겸은 자가 공조인데 사람됨이 온후하고 순박하고 인정이 두터운데, 일찍이 조조와 교제하고 싶었으나 그럴 기회가 없었다. 조조의 아버지가 지나간다는 것을 알고 경계까지 나가서 영접하여 두번 절하며 공경을 다하고 크게 잔치를 열어 이틀간 환대하였다. 조숭이 떠나려 하자 도겸이 친히 성곽을 나와 배웅하고 특별히 도위 장개에게 병사 5백 명을 거느리고 호송하게 했다. 조숭이 집안 식구를 인솔하고 화읍과 비읍 사이에 도착하니 계절은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인데 큰 비가 갑자기 쏟아져서 부득이 한 낡은 절에 묵어가게 되었다. 절의 중이 맞이하니 조숭이 가족을 편히 머물게 하고, 장개에게 명하여 군마를 양쪽 행랑에 주둔하게 했다. 군사들의 옷과 장비가 모두 비에 젖었으니 한 목소리로 원망했다.

 

張闓喚手下頭目於靜處商議曰我們本是黃巾餘黨勉強降順陶謙未有好處如今曹家輜重車輛無數你們欲得富貴不難只就今夜三更大家砍將入去把曹嵩一家殺了取了財物同往山中落草此計何如衆皆應允是夜風雨未息曹嵩正坐忽聞四壁喊聲大舉曹德提劍出看就被搠死曹嵩忙引一妾奔入方丈後欲越牆而走妾肥胖不能出嵩慌急與妾躲於廁中被亂軍所殺應劭死命逃脫投袁紹去了張闓殺盡曹嵩全家取了財物放火燒寺與五百人逃奔淮南去了

 

장개가 수하 두목을 불러서 조용한 데에서 상의하기를,

 

우리는 본디 황건적 잔당인데 억지로 도겸에게 귀순했지만 아직 좋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 이제 조씨 집안의 짐수레가 무수하니 너희가 부귀해지는 게 어렵지 않다. 오늘밤 삼경에 우리 모두가 장수를 베고 들어가서 조숭 일가를 죽이고 재물을 취한 뒤 함께 산중으로 가서 산적이 되자. 이 계책이 어떠냐?”

 

하니, 모두 응낙했다. 그날밤 비바람이 아직 그치지 않아 조숭이 오뚝 앉아 있는데 갑자기 사방에서 함성이 크게 일어났다. 조덕이 칼을 뽑아 나갔다가 찔려 죽었다. 조숭이 황망히 첩을 끌고 주지에게 달려가서 담을 넘어 달아나려 했다. 첩이 뚱뚱해서 탈출하지 못하자 조숭이 황급히 첩과 함께 뒷간에 숨었다가 난군에게 죽임을 당했다. 응소는 목숨을 걸고 탈출하여 원소에게 가버렸다. 장개가 조숭 집안을 모두 죽이고 재물을 취한 뒤 방화하여 절을 불태우고 5백 명과 함께 회남으로 달아났다.

 

後人有詩曰

 

“曹操奸雄世所誇,

曾將呂氏殺全家。

如今闔戶逢人殺,

天理循環報不差。”

 

훗날 어떤 사람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간웅 조조가 세상에 으스대며,

일찍이 여백사 집안을 몰살하더니,

이제 집안이 남에게 몰살되었네.

하늘의 섭리가 돌고돌아 복수함이 틀림없구나.”

 

하였다.

 

當下應劭部下有逃命的軍士報與曹操操聞之哭倒於地衆人救起操切齒曰陶謙縱兵殺吾父此仇不共戴天吾今悉起大軍洗蕩徐州方雪吾恨遂留荀彧程昱領軍三萬守鄄城範縣東阿三縣其餘盡殺奔徐州來夏侯惇於禁典韋爲先鋒操令但得城池將城中百姓盡行屠戮以雪父仇當有九江太守邊讓與陶謙交厚聞知徐州有難自引兵五千來救操聞之大怒使夏侯惇於路截殺之時陳宮爲東郡從事亦與陶謙交厚聞曹操起兵報仇欲盡殺百姓星夜前來見操操知是爲陶謙作說客欲待不見又滅不過舊恩只得請入帳中相見

 

그때 거기에서 응소의 부하 중에 도망하여 목숨을 건진 군사가 조조에게 보고하니, 조조가 듣고 통곡하다가 땅에 쓰러졌다. 여러 사람이 구하여 일으키니 조조가 이를 갈며 말하기를,

 

도겸이 군사를 풀어 내 아버지를 죽였으니 이 원수와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 내가 오늘 대군을 모조리 일으켜 서주를 휩쓸어서 내 한을 씻고 말겠다!”

 

고 했다. 그리하여 순욱과 정욱에게 3만 군사를 거느리고 견성 범현 동아 세 현을 지키게 하고, 나머지는 모두 서주로 몰려갔다. 하후돈 우금 전위를 선봉으로 삼아, 조조가 명령하기를, 성지(도시)를 함락할 때마다 성중의 백성을 모조리 죽여서 부친 원수를 갚는다고 하였다. 당시 구강태수 변양이 도겸과 교분이 두터운데 서주의 어려움을 듣고 스스로 병력 5천을 이끌고 구원하러 왔다. 조조가 듣고 대노하여 하후돈을 시켜 길을 막아 죽였다. 그때 진궁이 동군의 종사가 되었는데 역시 도겸과 교분이 두터웠다. 조조가 군사를 일으켜 원수를 갚는다고 백성을 모조리 죽이려 하니 밤을 새워 와서 조조를 만났다. 조조는 그가 도겸을 위한 유세객이 된 것을 알고 만나지 않으려고 했으나, 또 옛날의 은혜를 무시할 수 없어 부득이 그를 장막 안에 들어오게 하여 만나 보았다.

 

宮曰今聞明公以大兵臨徐州報尊父之仇所到欲盡殺百姓某因此特來進言陶謙乃仁人君子非好利忘義之輩尊父遇害乃張闓之惡非謙罪也且州縣之民與明公何仇殺之不祥望三思而行操怒曰公昔棄我而去今有何面目複來相見陶謙殺吾一家誓當摘膽剜心以雪吾恨公雖爲陶謙遊說其如吾不聽何陳宮辭出歎曰吾亦無面目見陶謙也遂馳馬投陳留太守張邈去了

 

진궁이 말하기를,

 

이제 듣자니 공께서 대군을 이끌고 서주에 다가와서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며 이르는 곳마다 백성을 모조리 죽이려 하니, 내가 이렇게 일부러 찾아와 말씀드리오. 도겸은 어진 군자이니 이익을 좋아하여 의리를 잊어버리는 무리가 아니오. 그대의 아버지께서 해를 입으신 것은 장개가 한 짓이지 도겸의 죄가 아니오. 그리고 고을의 백성이 공과 무슨 원수요? 죽이는 건 상서롭지 못하니 바라건대 세번 생각하시고 행동하시오.”

 

하니, 조조가 성을 내어 말하기를,

 

공께서 전에 나를 버리고 갔는데 이제 무슨 면목으로 다시 와서 만나자는 것이오? 도겸이 내 일가를 살해했으니 맹세코 쓸깨를 떼어내고 심장을 도려내서 내 한을 풀겠소! 공께서 비록 도겸을 위해 유세한들 어찌 내 귀에 들리겠소?”

 

하였다. 진궁이 작별하고 나가며 탄식하기를,

 

내가 또한 도겸을 만날 면목이 없구나!”

 

하고, 마침내 말을 몰아 진류태수 장막에게 가버렸다.

 

且說操大軍所到之處殺戮人民發掘墳墓陶謙在徐州聞曹操起軍報仇殺戮百姓仰天慟哭曰我獲罪於天致使徐州之民受此大難急聚衆官商議曹豹曰曹兵既至豈可束手待死某願助使君破之陶謙只得引兵出迎遠望操軍如鋪霜湧雪中軍豎起白旗二面大書報仇雪恨四字軍馬列成陣勢曹操縱馬出陣身穿縞素揚鞭大罵陶謙亦出馬於門旗下欠身施禮曰謙本欲結好明公故托張闓護送不想賊心不改致有此事實不幹陶謙之故望明公察之操大罵曰老匹夫殺吾父尚敢亂言誰可生擒老賊夏侯惇應聲而出陶謙慌走入陣夏侯惇趕來曹豹挺槍躍馬前來迎敵兩馬相交忽然狂風大作飛沙走石兩軍皆亂各自收兵

 

한편, 조조의 대군이 가는 곳마다 인민을 죽이고 무덤을 파헤쳤다. 도겸이 서주에 있다가 조조가 군사를 일으켜 원수를 갚는다면서 백성을 죽인다는 말을 듣고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며 말하기를,

 

내가 하늘에 죄를 지어 서주 백성들에게 큰 어려움을 당하게 하는구나!”

 

하고, 급히 여러 관리를 모아 상의하니, 조표가 말하기를,

 

조조 군사가 몰려왔는데 어찌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죽기를 기다리겠습니까! 제가 사군(지방 장관)을 도와 그들을 깨트리겠습니다.”

 

하였다. 도겸이 할 수 없이 병력을 이끌고 나가 맞으니 멀리 조조 군이 서리와 눈으로 덮인 것 같고 중군에 세워놓은 흰 깃발 두 개에 보수설한(報仇雪恨 원수를 갚아 한을 풀다)넉 자를 크게 써 놓았다. 군마가 진세를 펼치니 조조가 말을 몰아 출진하는데 몸에 흰 소복(상복)을 입고 채찍을 들어 크게 욕을 했다. 도겸도 또한 진문의 깃발 아래 말을 타고 나가서 몸을 굽혀 예를 표하며 말하기를,

 

내가 본래 명공과 교제하고 싶어서 장개를 시켜 호송하게 하였소. 뜻하지 않게 도적이 마음을 고치지 않아 이 지경이 됐소. 정말이지 저 도겸의 고의가 간여된 게 아니니 명공께서 살펴주시기 바라오.”

 

하니. 조조가 크게 욕하며 말하기를,

 

늙은 필부야! 내 아버지를 죽이고도 아직도 감히 헛소리를 지껄이느냐누가 저 늙은 도적을 사로잡겠느냐?”

 

하였다. 하후돈이 듣자마자 뛰쳐나갔다. 도겸이 황망히 진지로 달려 들어갔다. 하후돈이 추격하니 조표가 창을 겨누어 말을 달려 앞으로 나와 대적한다. 두 말이 어울리는데 갑자기 광풍이 크게 일어서 모래가 날고 돌이 구르니 양군 모두 혼란하여 각각 병사를 거두었다.

 

陶謙入城與衆計議曰曹兵勢大難敵吾當自縛往操營任其剖割以救徐州一郡百姓之命言未絕一人進前言曰府君久鎮徐州人民感恩今曹兵雖衆未能即破我城府君與百姓堅守勿出某雖不才願施小策教曹操死無葬身之地衆人大驚便問計將安出正是本爲納交反成怨那知絕處又逢生

 

도겸이 입성하여 여러 사람과 계책을 의논하며 말하기를,

 

조조의 군세가 커서 맞서기 어려우니 내가 마땅히 스스로 포박하여 조조의 진영에 가서 내 몸을 토막내게 하여 서주군 백성의 목숨을 구하겠소.”

 

하니,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서 말하기를,

 

부군(군수)께서 오랫동안 서주를 진무하셨으니 인민이 은혜에 감사합니다. 지금 조조의 군사가 비록 많으나 아직 우리 성을 함락하지 못했습니다. 부군께서 백성과 더불어 굳게 지키시되 절대 출격하지 마소서. 제가 재주는 없으나 작은 계책을 써서 조조가 죽어 장례할 땅도 없게 만들겠습니다!”

 

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크게 놀라 그 계책이 어떤 것인지 물었다. 이야말로, 본래 교분을 바랐는데 도리어 원수가 되었으니, 위기에서 다시 살아나게 될지 어떻게 알겠는가.

 

畢竟此人是誰且聽下文分解

 

과연 이 사람은 누굴까? 다음 회의 이야기를 들으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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