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漢詩 한 수/1월의 漢詩

0109. 겨울의 창가에서[漫爲 만위]

진현서당 2025. 1. 9. 00:01

 

 



剩喜南窓日稍遲,
微風舞雪不成吹.
禽非易舌無陳語,
樹欲生花自好枝.


春事未應多異巧,
客懷聊亦動新詩.
鏡中白髮三千丈,
休道緣愁不入時.


잉희남창일초지, 미풍무설불성취.
금비역설무진어, 수욕생화자호지.
춘사미응다이교, 객회료역동신시.
경중백발삼천장, 휴도연수불입시.



햇볕이 오래 머물러
남쪽 창은 너무 좋은데,
산들바람이 눈발을 날리나
그리 세게 불지는 않네.


혀를 바꾼 것도 아닌데
새는 진부한 말이 하나 없고,
꽃을 피우려는지
나무는 절로 가지가 예뻐지네.


봄이 찾아온들
특별히 멋진 일을 하지 못하니,
나그네 심회는
시나 새로 지어 풀어볼까.


거울 속에 흰 머리가
삼천 길로 늘어났으니,
괜한 걱정 하지 않는
나이라고 말하지 마라.

최립(崔岦·15391612) 무료하여 지어본다[漫爲 만위]

 

남쪽 창가에 앉으면 햇볕이 조금씩 들어온다. 봄날이 성큼 다가왔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곳에서 나를 따뜻하게 감싸는 햇볕이 무엇이라도 나를 회복시켜줄 것만 같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창밖에는 눈발이 가볍게 날리고 있었다. 그런다고 해서 그 바람이 세게 불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바람은 그저 살짝 흔들리며 지나갈 뿐. 그것을 보고 있자니, 왜 그리 세상을 고요하게 만드는 걸까? 뭐랄까, 기분은 나쁜데 몸은 온전히 따뜻하다. 이게 무엇인가? 봄이 오긴 왔는데, 내 마음은 왜 그리 울적한지 모르겠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길어진 생각을 담고 있었다.

 

그래도 좋다. 햇볕을 쬐고 있으니 기분이 좋아야 할 텐데, 마음속에서는 그저 껄끄러운 느낌만 남는다. 그러면서도, 창밖에서 나는 새소리가 들린다. 새들이 지저귀는 건 좋았으니까, 그 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런데 그 새들이 왜 이렇게 생기발랄할까? 혀를 바꾼 것도 아닌데, 어찌 그리 신선한 목소리를 낼까? 나를 따라할 수도 없는데. 하긴, 나는 그리 젊지도 않고, 목소리도 그렇게 고운 것 같지 않다. 그 새들은 말도 많고, 목소리도 맑고, 나름대로 그들만의 생기를 느끼게 한다. 그런데 그걸 듣고 있자니 문득 떠오르는 게 있다. 새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아니었으면 내 기분이 더 나빠졌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바로 봄이라는 거겠지.

 

그럼 봄이라면, 꽃이 피어야 하지 않겠는가? 맞다. 나무 가지를 보니, 꽃이 피는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듯하다. 뭔가 나무가 자꾸 아름다워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나무는 다른 나무랑 뭐가 다르길래 이런 꽃을 피우려고 하지? 나무도 그렇고, 꽃도 그렇고, 봄이 오면 저절로 잘 피고 잘 자란다. 이쯤 되면 봄이 오는 것도, 그저 자연의 이치인 것 같다. 그런데도 왜 내 마음속에서는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냐? 사실, 봄이 오면 기분이 좋아져야 하는데, 왜 내 기분은 그리 변화가 없을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특별히 무슨 일이 있어서 우울한 건 아니다. 그냥, 봄이 오면 모든 것이 좋아져야 하는데, 내 마음은 여전히 겨울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나는 앉아서 내 마음을 그냥 그대로 놓고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결국, 고심 끝에 거울을 들여다봤다. 그런데, 거울 속에서 보이는 내 모습은 좀 이상했다. 백발(白髮)이 한 가득 들어차 있었다. '鏡中白髮三千丈 경중백발삼천장'(경중백발이 삼천 길처럼 보인다). 나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봄이라는 게 그렇게 딱 들어맞는 게 아니라는 사실. 날씨는 따뜻하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겨울 속에 있다는 느낌이다. 봄에 맞는 기분을 얻기에는 아직 내 마음이 그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백발(白髮)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게 나의 고백이라도 되는 것일까? 사실, 내 머리카락이 이렇게 흰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이유를 굳이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런 걸 묻지 말라는 것이다. 나의 걱정과 염려는 단지 이 세상이 내게 가져온 자연스러운 변화일 뿐이다. 그래서 괜히 봄에 대하여 우울한 생각을 하는 건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봄날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 굳이 특별한 일을 하려 하지 않겠다. 그저 봄이 와서 꽃을 피우는 것처럼, 나도 자연스럽게 그날을 맞이할 것이다.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나만의 봄을 맞이하고 싶다. 봄이 아니라는 느낌은 사실 내가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나는 그냥 한가로이 앉아, 봄의 풍경을 보며 지나가는 날들을 즐겨보려고 한다. 혹시, 내 마음도 그 과정에서 차츰 피어날 것이다.

 

나무는 꽃을 피우고, 새들은 지저귀고, 바람은 살랑살랑 불어온다. 그러니 나는 그저 이 순간을 즐기면 된다. 백발(白髮)을 걱정할 필요도, 봄이 아니라는 기분에 집착할 필요도 없다. 봄은 결국, 그저 나에게 찾아오는 자연의 변화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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