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3. 동지 지나서[至後入城宿版泉]
人生聚散摠雲烟, 且可相逢一燦然. 作客因緣多雪夜, 吟詩次第到梅天. 在家禪定同蕭寺, 得酒貪餮廢玉船. 只尺依依如夢境, 此時難見更堪憐. 인생취산총운연, 차가상봉일찬연. 작객인연다설야, 음시차제도매천. 재가선정동소사, 득주탐철폐옥선. 지척의의여몽경, 차시난견갱감련. |
인생에서 모였다 흩어지기는 구름이나 안개 같은 것, 다 제쳐 두고 서로 만나 한바탕 웃고 나면 그만이지. 나그네 되는 인연은 눈 오는 밤에 흔히 만들어지고, 시를 읊는 자리는 매화 필 때에 차례가 오네. 집에 머물러 선정에 드니 절에 간 것과 한가지라, 술을 얻고 실컷 마셔대 배 같은 술잔 엎어버리네. 지척에 두고 하염없이 꿈결인 양 떠오르는 사람, 이런 때 보기 어려우니 사뭇 더 그리워지네. |
남상교(南尙敎·1784∼1866) 동지 후 서울에 들어와 자다[至後入城宿版泉] |
인생은 덧없고, 만남은 찬란하다
시(詩)의 첫 구절인 "인생취산총운연(人生聚散摠雲烟)"에서 시인(詩人)은 인생을 구름이나 안개에 비유한다. 구름이 잠시 떠 있다가 사라지듯이, 사람들 간의 만남도 결국 그렇게 지나간다. 그런데 그 구절이 너무 진지하거나 우울하지 않다. 그 후에 이어지는 "차가 상봉일찬연(且可相逢一燦然)"이라는 말에서 시인은 인생의 덧없음 속에서도 찬란하게 만날 수 있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인생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순간순간이 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메시지이다. 결국 사람은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고,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만남에서 빛나는 순간을 즐기자는 뜻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나그네로서의 삶, 눈 오는 밤의 인연
다음 구절인 "작객인연다설야(作客因緣多雪夜)"는 시인이 서울로 올라와서 벗들과 만났을 때의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특히 눈 오는 밤에 만나는 인연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눈이 내리는 밤은 고요하고, 그 속에서 술 한 잔 기울이며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는 분위기를 상상할 수 있다. "음시차제도매천(吟詩次第到梅天)"은 그 만남이 매화가 필 때처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순간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눈 오는 밤에 만들어지는 인연들은 그때 그 장소,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것이고, 그것이 바로 인생의 작은 기쁨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시인(詩人)은 여기서 나그네처럼 떠도는 삶의 인연을 묘사하고 있다. 나그네는 언제 어디로 떠날지 모르고, 매 순간이 소중한 것이다. 눈 오는 밤, 그 차가운 공기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이 바로 그 소중한 순간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순간을 진지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집에서의 평온함과 술의 유혹
"재가선정동소사(在家禪定同蕭寺)"에서 시인은 집에서 혼자 있을 때도 선정(禪定)에 들어 절처럼 조용히 지낸다고 한다. 절에서의 수행처럼 집에서의 고요한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다스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집에서도 외부의 소음이나 방해 없이, 마음의 평온함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득주탐철폐옥선(得酒貪鐵廢玉船)"에서는 술을 마시게 되면 그 평온함을 잃고 술잔을 엎어버린다고 표현된다. 술이 주는 유혹과 기쁨에 빠지면, 일시적으로나마 마음이 흐트러지고 그 평온함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시인은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한 유머를 담고 있다. 술이란 게 너무나도 매력적이어서, 마음이 고요해지려는 순간에도 술잔을 들게 된다는 것이다. "배 같은 술잔"이라는 표현도 시인의 유머를 잘 보여준다. 그 큰 술잔은 마치 모든 것을 휩쓸어버리기 좋은 도구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며 잠시의 유쾌함을 즐기고, 그 속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을 되돌아보는 순간을 상상하게 된다. 술을 마시면 모든 것이 흐려지고, 평온했던 마음도 엎어져버린다는 점에서 시인은 인간의 본성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리운 사람, 가까워도 보지 못하는
"지척의의여몽경(只尺依依如夢境)"에서는 그리운 사람을 묘사한다. "지척"은 가까운 곳을 의미하는데, 가까운 곳에 있어도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아쉬움이 드러난다.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이지만, 그리워하는 마음이 커져만 가는 것을 시인은 "여몽경(如夢境)"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리운 사람을 꿈속에서처럼 떠올리며, 현실과 꿈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그리움이 커져 가는 것이다.
"차시난견갱감련(此時難見更堪憐)"에서 시인은 그리운 사람을 다시 볼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이 구절은 그리움이 점점 더 커져 가는 상황에서, "이제는 더 이상 그 사람을 볼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의 아쉬움과 슬픔을 전한다. 결국 시인은 가까운 곳에 있어도 만나지 못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그리움이 깊어질수록 더욱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게 된다.
유머와 진지함의 조화
이 시(詩)에서 시인(詩人)은 인생의 덧없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만, 그 속에서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는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고, 그 속에서 기쁨과 아쉬움을 느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너무 무겁게 생각하기보다는, 순간의 즐거움을 찾고 가볍게 받아들이자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술을 마시며 취해 보기도 하고,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며 아쉬워하기도 하면서도, 결국 그 모든 것들이 지나갈 일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 시(詩)를 통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지나가는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그 순간순간이 아무리 덧없고 무상하더라도, 그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기쁨과 인연을 즐기며 살아가자는 교훈을 전하고 있다.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때로는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고, 순간을 만끽하자는 것이다.
결국 시인(詩人)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만남의 찬란함과,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기쁨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그 안에서 나그네처럼 떠도는 인연들을 소중히 여길 것을 권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