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6. 운봉사의 노을[題雲峯寺 제운봉사]
捫葛上雲峯, 平看世界空. 千山分掌上, 萬事豁胸中. 塔影日邊雪, 松聲天半風. 煙霞應笑我. 回步入塵籠. 문갈상운봉, 평간세계공. 천산분장상, 만사활흉중. 탑영일변설, 송성천반풍. 연하응소아. 회보입진롱. |
칡덩굴을 끌어 잡고 운봉사에 올라가서, 저 아래를 바라보니 세계는 비어 있네. 손바닥 위에서 모든 산은 나뉘고, 가슴 속의 세상만사 시원스레 사라지네. 해를 막고 눈발 날려 불탑은 어렴풋하고, 허공에는 바람 불어 소나무는 울어 대네. 저 노을은 틀림없이 나를 보고 비웃겠지. 발길을 되돌려서 새장 속에 들어간다고. |
최치원(崔致遠·857~?) 운봉사에 올라[題雲峯寺 제운봉사] |
一. 겨울날, 산속으로의 탈출
혹시 "산속에 숨으면 모든 걱정이 사라진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그건 바로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산에 올라갔을 때의 느낌을 제대로 표현한 말일 겁니다. 捫葛上雲峯, "칡덩굴을 잡고 운봉사에 올라가서"라고 시작하는 이 시는, 그가 겨울의 추위 속에서 산 정상으로 올라간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겨울은 추우니까, 사람들은 뭔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산에 오르곤 하죠. 아마도 그는 세상의 모든 번잡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올라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최치원(崔致遠)의 마음속에는 '이제 내가 이 산을 올라서 평화를 찾을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二. "세계는 비어 있다"는 마음
平看世界空, "저 아래를 바라보니 세계는 비어 있네." 그가 산에 올라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바로 '비어 있는 세상'이었습니다. 이 구절은 정말 묘합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많은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지만, "세계가 비어 있다"는 느낌을 얼마나 자주 받을까요? 최치원(崔致遠)은 세상의 복잡한 문제를 내려놓고, 산에 올라 비어 있는 세계를 바라보면서, 마음속의 짐을 덜어내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사실은 그렇게 복잡한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그리 중요한 것이 없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듯합니다. 세상사의 무게가 가벼워지니, 그 순간 최치원은 단번에 해방감을 느꼈을 겁니다.
三. 손바닥 위에서 펼쳐지는 만물의 지도
千山分掌上, "손바닥 위에서 모든 산은 나뉘고", 이 구절은 정말로 멋집니다. 마치 손바닥 위에 펼쳐진 세계의 지도를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산은 아무리 크고 높아도, 손바닥 위에서는 모두 평평해집니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에 올라서 세상의 모든 무게가 가벼워졌기 때문일 겁니다. 그는 이제 모든 것이 그저 손끝에서 흐르는 것처럼 느끼게 된 것입니다. "천산"이라고 표현된 만산은 그저 손바닥 위에서 나뉘어 있을 뿐, 그 어떤 것도 실체가 없는 듯하게 다가옵니다. 그렇게 보면, 세상은 그저 물리적인 실체가 아닌, 우리가 만들어낸 복잡한 체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四. 마음의 휴식: 탑과 소나무
萬事豁胸中, "가슴 속의 세상만사 시원스레 사라지네." 그가 탑을 보고, 소나무의 바람소리를 듣기 시작하면서 세상에 대한 부담이 사라지고 마음이 훨훨 가벼워지기 시작합니다. 이 구절은 그가 산 정상에서 받는 감정의 해방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탑의 그림자 속에서 떨어지는 눈은 그에게 여유를 주고, 바람은 그의 귀를 맴돌며 세상의 시끄러움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마치 마음속 깊은 곳까지 시원하게 청소하는 듯한 느낌이죠. 이렇게 자연과 하나가 되며, 그는 마침내 세상의 모든 일에서 해방된 기분을 느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종종 세상의 혼잡함과 복잡함에 짓눌려 살지만, 그 복잡함 속에서 벗어나 자연을 바라보며 잠시 '쉬어가자'고 말하고 싶은 순간이 바로 이런 순간일 것입니다.
五. 세상으로 돌아가기 전, 비웃음과 허무함
그렇다고 해서 최치원(崔致遠)이 산에만 살겠다고 결심했을까요? 물론 아닙니다. 塔影日邊雪, 松聲天半風, "해를 막고 눈발 날려 불탑은 어렴풋하고, 허공에는 바람 불어 소나무는 울어 대네." 이 부분은 그가 산 정상에서 내려가야 하는 현실을 직시하는 장면입니다. 이 구절에서 탑의 그림자와 소나무의 소리는 마치 그가 산 속에서만 살 수 없는 이유를 상기시키는 듯합니다. 세상은 여전히 복잡하고, 그가 산에서 내려가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가 느끼는 세상의 비웃음과 허무함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마치 산신령이 뒤에서 비웃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세상 속에서 최치원이 느끼는 그 괴로움은 비웃음처럼 들리고, 더러운 세상에서 그는 언제든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그가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며 떠올린 상념은 그를 다시 산으로 이끌지 않을까요? "연하 응소 아" (연하가 나를 보고 비웃는다)는 부분에서 마치 세상의 무상함과 그 허무함을 비웃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며 그는 발길을 되돌려 다시 '진롱'(새장 속에 들어간다고)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六. 세상과 자연의 철학적 대화
산에서 내려올 때의 비웃음과 허무함은 사실 우리가 세상에서 겪는 많은 일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연과 하나가 되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지만, 결국 그 세계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최치원(崔致遠)은 자연 속에서 그리운 이상향을 찾고, 세상 속에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야 하는 양가적인 감정을 시를 통해 표현합니다. 그는 산 속에서의 '자유'를 맛보고, 현실로 돌아가는 '의무'를 받아들입니다. 그 모습이 마치 '세상 속에서 자유를 찾고자 하지만, 결국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우리의 삶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결론
이 시는 최치원(崔致遠)이 겨울의 추위 속에서 산에 올라가며 느낀 세상과 자연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을 드러냅니다. 그는 산 속에서 마음을 비우고 세상의 모든 복잡함을 내려놓지만, 결국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사실을 직시하면서도 그로 인해 얻은 자유로움을 소중히 여깁니다. 이는 자연 속에서 얻은 깨달음이 그를 다시 세상 속으로 이끌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비어 있는 세상"을 찾고자 했던 그는, 다시 한번 그 '진롱'(새장 속) 속으로 돌아가며,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세상의 무게를 견뎌낼 준비가 되었음을 느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