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8. 단풍과 흰머리[紅樹 홍수]
一葉初驚落夜聲, 千林忽變向霜晴. 最憐照破靑嵐影, 不覺催生白髮莖. 廢苑瞞盱秋思苦, 遙山唐突夕陽明. 去年今日燕然路, 記得屛風嶂裏行. |
철렁! 하고 잎사귀 하나 간밤에 떨어지더니, 서리 내린 아침에는 숲이 온통 바뀌었네. 가여워라! 푸르던 빛을 붉게 비춰 부수더니, 웬일인가! 흰 머리를 재촉하여 나게 하네. 황폐한 뜰을 바라보며 시름겨워 쓸쓸할 때, 먼 산에는 당돌하게 석양빛이 눈부셔라. 기억도 새로워라 지난해 이맘때쯤, 병풍 같은 산길 뚫고 몽골로 향했었지. 일엽초경낙야성, 천림홀변향상청. 최련조파청람영, 불각최생백발경. 폐원만우추사고, 요산당돌석양명. 거년금일연연로, 기득병풍장리행. |
이장용(李藏用·1201~1272) 붉은 나무[紅樹 홍수] |
이장용(李藏用) 선생이 지은 시, 《일엽초경낙야성》(一葉初驚落夜聲)은 단풍을 보고 느낀 가을의 감상과 인생의 덧없음을 고백하는 시이다. 그가 이 시를 통해 표현한 마음은, 가을의 풍경에 감동한 나머지, 인생의 무상함과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뒤섞어 그리워했던, 그야말로 ‘시적인 슬픔’이었다.
단풍이 드는 가을, 그 짧고 강렬한 순간에 이장용 선생의 마음도 따라 그 변화를 맞이했다. "철렁! 하고 잎사귀 하나 간밤에 떨어지더니"라고 시작되는 이 구절에서, 시인은 첫 번째로 '깜짝 놀람'을 표현한다. 단풍잎 하나가 떨어지며, 그 소리는 마치 우주의 질서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듯한 소리였다. 가을밤, 가만히 있던 한 잎이 떨어지며 밤의 고요함을 깨고, 그 소리는 그의 마음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었다. 이 부분에서는 그 어떤 비유나 감정도 필요 없다. 한 잎이 떨어지는 그 소리 자체가 모든 것이다. 말 그대로 ‘빨간 단풍잎 하나의 사건’이 선생의 세계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서리 내린 아침에는 숲이 온통 바뀌었네”라는 구절이 나온다. 밤새 떨어진 잎사귀들은 '서리'와 함께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마치 삶의 한 순간, 급작스러운 변화를 경험하는 것과 같다. 숲이 '온통 바뀌었네'라는 표현에서, 단순히 단풍이 들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숲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느낌이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나무 한 그루의 잎이 떨어지면, 그 숲 전체가 변화하는 듯이, 작은 일이 큰 변화를 불러온다. 그래서 가을의 첫 단풍은 단순히 '아름다움'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그것은 존재의 상실,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이 시의 전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단풍이 드는 것이 단순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넘어, ‘인생의 덧없음’을 드러내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이장용 선생은, “가여워라! 푸르던 빛을 붉게 비춰 부수더니”라는 구절을 통해, 푸르던 여름이 어떻게 갑자기 붉게 변해 가는지, 그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젊음의 푸르른 시절이 지나고, 어느덧 붉게 물들어가는 가을처럼, 인생도 그 자리를 비워 가며 흘러간다. 이 시는 단풍의 변화가 단순한 자연의 순환일 뿐만 아니라, 삶의 한 부분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이 시는 단지 '자연의 변화'를 묘사한 것일까? 아니면 '인생의 지나감을 표현한 것'일까? 이 질문은 계속해서 독자에게 던져지며, 읽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해석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이어지는 "웬일인가! 흰 머리를 재촉하여 나게 하네"라는 구절에서, 이장용 선생은 자신이 나이를 먹어가고 있음을 직시한다. 단풍의 붉은 색이 ‘흰 머리’를 불러오는 것처럼, 가을의 색은 늙어가고 있다는 자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시는 단풍잎 하나가 떨어지는 순간에 맞춰, 시인이 느낀 모든 시간의 흐름과 감정의 무게를 한꺼번에 담고 있다. '흰 머리'라는 것은 물론 나이를 먹고 있다는 것, 즉 늙어가는 자연과 인간의 공통된 사실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흰 머리'가 가져오는 씁쓸함을 표현하면서도, 이를 그냥 받아들이고자 한다. 흰 머리가 자신에게 '재촉'이라도 하듯 다가오지만, 그럼에도 그 변화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이를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으로 감싸 안는다.
이제 시의 후반부로 가보자. "황폐한 뜰을 바라보며 시름겨워 쓸쓸할 때" 이 부분에서는 이장용 선생이 가을의 정취에 흠뻑 젖어, 자신의 내면의 고독함을 표현한다. 그의 시선을 ‘황폐한 뜰’로 향하게 하며, 자연은 그의 내면을 더욱 고립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장면에서, 그는 자연 속에서 혼자만이 덩그러니 남겨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그 다음 구절을 보자. "먼 산에는 당돌하게 석양빛이 눈부셔라"라는 표현에서, 그는 한 순간에 다시 ‘자연의 광채’로 이끌려 간다. 석양이 비추는 그 빛은, 먼 산을 물들여 눈부시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석양의 빛은 ‘당돌’하게 다가온다. 이는 마치 끝자락에 다다른 인생이지만, 여전히 빛을 발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가을이 끝나갈 때쯤, 가을의 석양은 더 찬란하다. 그것은 다가오는 겨울을 대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그 빛이 지나간 후에는 다시 새로운 봄이 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석양은 여전히 빛나고 있다. 이 순간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도 여전히 희망이 있다는 듯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억도 새로워라 지난해 이맘때쯤, 병풍 같은 산길 뚫고 몽골로 향했었지"라는 구절은 이장용 선생의 여행과 추억을 회상하게 한다. 병풍처럼 둘러싼 산길을 뚫고 ‘몽골’을 향했다는 것은, 그 당시의 삶에서 경험한 도전과 모험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길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었다는 것은, 그 길이 끝없는 고립 속에서 이루어진 여정이었다는 뜻도 담겨 있다. 그것은 단순한 여행의 회상일 뿐만 아니라, 그 시기에 겪었던 내적 갈등과 외적 도전의 기억을 상기시킨다.
결론적으로, 이 시는 단풍의 색깔이 변해가는 것을 보며 삶의 무상함과 자연의 변화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변화와 고백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비록 '흰 머리'가 자라지만 여전히 '석양빛'처럼 빛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도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