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漢詩 한 수/11월의 漢詩

1123. 김장[蓄菜 축채]

진현서당 2024. 11. 20. 23:01

 

 



十月風高肅曉霜,
園中蔬菜盡收藏.
須將旨蓄禦冬乏,
未有珍羞供日嘗.
寒事自憐牢落甚,
殘年偏覺感懷長.
從今飮啄焉能久,
百歲光陰逝水忙.



시월이라 바람 세고 새벽 서리 매서워져,
울 안팎의 온갖 채소 다 거둬 들여놓네.
김장을 맛나게 담가 겨울나기 대비해야,
진수성찬 아니라도 하루하루 찬을 대지.
암만 봐도 겨우살이는 쓸쓸하기 짝이 없고,
늙은 뒤로는 유난스레 감회에 깊이 젖네.
이제부터 먹고 마실 일 얼마나 남았으랴,
한 백 년 세월은 유수처럼 바쁜 것을.


시월풍고숙효상, 원중소채진수장.
수장지축어동핍, 미유진수공일상.
한사자련뇌락심, 잔년편각감회장.
종금음탁언능구, 백세광음서수망.

권근(權近·1352~1409)

 

十月風高와 김장, 그리고 人生의 유수

 

늦가을, 十月(시월)이 깊어갈수록 바람은 더욱 매섭게 불고,

새벽 서리(曉霜, 효상)는 채소 밭을 하얗게 뒤덮는다.

이에 권근(權近)은 긴 한숨을 내쉬며 울타리 안팎(園中, 원중)을 돌아본다.

, 이제는 채소(蔬菜, 소채)를 다 거둬들일 때로군.

겨울을 나려면 김장을 해야 하니까 말이야!”

 

眞實, 김장의 시작

 

그는 식구들을 불러 모아 일렀다.

어서 채소를 다 收藏(수장)해라. 겨울이 오기 전에 양념을 준비하고,

절여 놓을 통도 깨끗이 닦아야 한다.”

가족들은 대답했다.

아버지, 올해는 배추가 튼실합니다. 고춧가루도 질이 좋고요!”

그러나 권근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진수성찬(珍羞盛饌, 진수성찬)이 아니어도 된다.

우리는 그저 하루하루 찬을 대며 살아가면 충분하단다.

내게는 맛난 김치보다도, 이제 남은 세월의 길이가 더 큰 문제다.”

 

김장을 하며 느끼는 牢落之感(뇌락지감)

 

김장이 끝나고 뒷마당에서 쉬던 그는,

바람이 불어오는 소리(風高, 풍고)를 들으며 마음이 쓸쓸해졌다.

寒事自憐牢落甚(한사자련뇌락심)”

겨우살이의 일은 스스로를 연민케 하니, 어찌 이리도 쓸쓸한가.”

사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김장 같은 연례행사가

그저 冬準備(동준비)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손에 묻은 고춧가루를 씻으며, 그는 생각했다.

이 배추 김치도 나를 오래 기다려주지 않을 텐데,

내게 남은 시간 또한 그렇게 많지 않겠지.

이제부터 먹고 마시는 일(飮啄, 음탁)이 몇 년이나 더 남았을까?”

 

百歲 光陰, 쏜살같은 인생

 

권근은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을 담아

스스로를 이렇게 다독였다.

從今飮啄焉能久(종금음탁언능구),

百歲光陰逝水忙(백세광음서수망)!”

이제부터 먹고 마시는 일이 과연 얼마나 더 길까?

백년 세월도 흐르는 물처럼 바삐 지나갈 뿐이니!”

그의 표정은 반쯤은 쓸쓸했으나, 반쯤은 체념의 미소로 덧칠되어 있었다.

김장은 끝났고, 배추도 단단히 절여졌으며,

그는 다시 따뜻한 방으로 들어가 가족들과 웃음 속에 저녁을 나눴다.

 

만약 권근이 오늘날 김장을 했다면?

 

그는 아마도 냉장고(冷藏庫, 냉장고)를 가리키며 말했을 것이다.

이놈의 김치 냉장고 덕에 정작 내가 할 일은 배추 절이기밖에 없구나!

그러나 전기세는 내게 슬픔을 더하니,

이게 과연 문명의 이기인가, 아니면 새로운 뇌락(牢落)인가!”

그리고는 김치를 담그는 가족들을 보며 SNS에 글을 올렸을 것이다.

“#김장하는날 #百歲光陰쏜살 #감회深深

김장은 겨울 준비가 아니라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김치 한 통을 넣을 때마다, 내 한 해도 저장하는 기분이 드는군.”

權近式 人生哲學: 김장과 光陰의 흐름

김장이라는 것은 단순히 배추를 절이고, 고춧가루를 섞는 일이 아니다.

권근은 이 작은 겨울 준비 속에서

노년(老年)과 세월(光陰)의 흐름을 느꼈다.

그는 이 를 통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蔬菜는 일찍 저장하라!

겨울은 준비 없이 오지 않는다.

그러니 사소한 것이라도 준비를 철저히 하라.

百歲는 유수처럼 빠르다!

인생이 짧음을 자각하고, 매 순간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牢落도 받아들여라!

늙는 것은 쓸쓸할지라도, 그 속에서도 웃음을 찾는 법을 배워야 한다.

 

結語: 김장의 시간은 흐르고, 는 남는다

 

권근(權近)는 단순한 겨울 준비의 기록이 아니다.

그 속에는 나이를 먹으며 느끼는 감회(感懷)

인생을 되돌아보는 깊은 성찰(省察)이 담겨 있다.

우리도 그의 를 읽으며 한번쯤 생각해 보자.

김장을 하든, 겨울나기를 준비하든,

그 모든 과정이 지나가고 나면, 남는 건 결국 삶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니 매일이 바쁘더라도, 잠시 쉬어가며 이렇게 말해보자.

百歲光陰逝水忙(백세광음서수망).

오늘 하루도 물처럼 바삐 흘렀으니,

내일은 좀 더 천천히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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