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0. 부잣집 딸과 가난한 집 아들[井男生日戱題]
富家生女百憂集, 貧家生男萬事足. 日費千錢供婿難, 只將一經敎子讀. 我今生男幸無女, 大者能書少能揖. 誰家養女作孝婦? 我欲送男爲慢客. 守家扶醉兩無憂, 歸享他年浣花樂. |
부잣집은 딸을 낳아 온갖 근심 모여들어도, 가난한 집은 아들 낳아 만사가 만족일세. 거긴 날마다 천전을 써 힘겹게 사위 대접하지만, 나야 경전 한 가지를 아들에게 읽히면 그만이지. 나는 지금 아들만 낳고 다행히 딸은 없는데, 큰놈은 글을 알고 작은놈은 인사를 잘하네. 뉘 집에서 딸을 길러 효부를 만들었을까? 아들을 보내 거만한 사위 만들어야지. 집 지키고 취한 이를 부축할 일 걱정 없이, 오순도순 모여 사는 낙을 훗날에 누리련다. 부가생녀백우집, 빈가생남만사족. 일비천전공서난, 지장일경교자독. 아금생남행무녀, 대자능서소능읍. 수가양녀작효부? 아욕송남위만객. 수가부취양무우, 귀향타년완화락. |
이항복(李恒福·1556~1618) 정남(井男) 생일에 장난삼아 쓴다[井男生日戱題 정남생일희제] |
한가롭게 집에 앉아 아들의 생일을 맞이한 이 날, 나는 그에 대한 걱정과 즐거움이 뒤섞인 생각에 잠긴다. 부잣집은 자녀를 키우는 데 걱정이 태산이겠지만, 가난한 집에서 자녀를 키우는 것은 한편으로는 덜 걱정스러운 듯 보인다. 마치 ‘富家生女百憂集(부가생녀백우집)’이라는 말처럼, 금수저 집의 딸이 태어나면 근심이 따르지만, 나 같은 빈민가에서는 아들이 태어나는 것만으로도 ‘萬事足(만사족)’이다. 어차피 오늘도 난 큰 걱정 없이 아들 생일을 축하할 생각이니까.
부잣집은 아들 하나 두면 사위 대접에 힘겹고, 날마다 천전(千錢)을 쏟아붓는 상황이다. “사위란 놈은 대체 어떻게 기를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생각에 머리가 아프지만, 내 아들은 ‘只將一經敎子讀(지장일경교자독)’이라고, 한 경전(經典)이라도 잘 읽고 배운다면 내 삶이 그만큼 편해질 것이라 믿는다. 책을 읽고 나가서 세상을 알아가라! 그렇게만 된다면 내 마음의 짐은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아, 나는 지금 아들만 낳고 다행이다. 딸이 없어서 이렇게 신경 쓸 일이 적으니!” 나는 속으로 웃는다. ‘大者能書少能揖(대자능서소능읍)’라, 큰놈은 글을 읽을 줄 알고, 작은놈은 인사도 잘하니 그저 이보다 더 바랄 것이 없다. 어쩌면 이 작은 녀석들이 커서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주면 나는 이제껏 걱정했던 모든 것이 헛된 고민이었던 거다.
그런데 “누구 집에서 딸을 길러 효부를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그 모습이 그려지니 갑자기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자식이 있어야 할 자리는 자식의 선택이겠지만, 나는 아들을 사위로 보내 거만한 사위를 만들어야겠다는 큰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과연 누가 내 아들을 잘 가르쳐서 세상에 내놓을 수 있을까? 그래서 그 아들 녀석이 결국 내 인생을 편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아직 젊은 두 아들을 키우는 내게는 어느 정도의 걱정이 따른다. “아직은 집을 지키고 취한 이를 부축할 일 걱정 없이, 오순도순 모여 사는 낙을 훗날에 누리련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기길 바란다. ‘守家扶醉兩無憂(수가부취양무우)’라, 나는 집을 지키고 술에 취한 이를 부축할 일만 없다면, 오히려 이 세상에서 즐거운 일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 나는 오늘 아들 생일에 우스꽝스러운 시(詩)를 쓰며 웃음을 찾는다. 정남(井男) 생일을 맞아 이런저런 이야기와 함께 남들에게도 내 아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나의 오늘의 사명인 셈이다. 아들에게는 힘든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그가 성장해 나갈 미래가 기대된다.
이렇듯 모든 것이 기우(杞憂)에 불과하더라도, 나는 내 아들 정남(井男)이 언젠가는 ‘萬事足’한 사람으로 성장하리라 믿으며 즐겁게 지켜보리라. 그러니 오늘의 축하는 그저 부풀어 오른 소망으로, 가난한 집에서 아들을 낳은 덕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여기서 한 가지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다소 걱정스럽더라도 내 자식이 내게 돌아오는 날이 기다려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내 아들이 사위가 되었을 때, 그 또한 즐거운 일이라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국, 이 모든 것이 기쁜 일일 테니까. 정남(井男)의 생일을 축하하며, 우리는 기쁨과 함께 웃음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정남(井男)의 생일을 맞아 시(詩)를 쓰며 내 마음을 털어놓으니, 그저 바라보는 재미로, 그리고 아들이 나중에 나와 함께 기분 좋게 이 시(詩)를 읽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歸享他年浣花樂(귀향타년완화락)’이란 말처럼, 아들 정남(井男)이 후일에는 훌륭한 사위로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아들, 생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