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漢詩 한 수/11월의 漢詩

1103. 촌놈의 서울 나들이[戲贈周卿丈 희증주경장]

진현서당 2024. 11. 1. 21:49

 

 



田夫偶爾入長安,
朽索累累縛破鞍.
僮畏達官忙引避,
馬臨周道苦盤桓.
荷衣冷落皆蒙垢,
菜色憔枯更厚顔.
靑眼故人多不識,
相逢枉作校生看.


촌뜨기가 우연히 장안을 들어오면서,
썩은 새끼줄로 낡은 안장을 칭칭 동여맸지.
고관을 겁내 아이 종은 허겁지겁 피하고,
큰길에 들어서자 말은 한사코 뒷걸음치네.
꾀죄죄한 옷차림에 먼지를 다 뒤집어썼고,
풀만 먹어 앙상해진 데다 낯짝까지 두꺼워졌겠지.
반기던 벗들조차 알아보지 못하고서,
똑바로 마주쳐도 교생이라 잘못 보네.


전부우이입장안, 후삭누루박파안.
동외달관망인피, 마림주도고반환.
하의냉락개몽구, 채색초고갱후안.
청안고인다불식, 상봉왕작교생간.

조지겸(趙持謙·1639~1685)

 

촌놈이 서울 나들이 나가다!

 

지방에 틀어박혀 지내던 조지겸(趙持謙)이 서울, 아니 장안(長安)에 출몰했다! , 서울 나들이를 한다고 해서 멋들어지게 준비를 했냐고? 썩은 새끼줄(朽索)을 동여맸다. 그야말로 녹슨 안장(破鞍)을 겨우 붙들어 매어 올라탄 말 한 필! 지방에서 온 촌놈인 이, 조지겸이란 자가 서울을 누빈다니, 우스꽝스럽다. “내가 여기 왔다!”라는 당당함 따위는 없이 말도 허둥지둥 제발 좀 돌아가자고 뒷걸음질만 친다(苦盤桓). 심지어 말조차 그의 촌티를 눈치챈 것이다!

 

주위는 더 난리.

 

그의 종은 고관대작(達官)들의 행차를 피해 허겁지겁 도망치느라 바쁘고(忙引避), 조지겸(趙持謙)의 행색은 말 그대로 꾀죄죄하기 그지없다. 냉락한 행색(荷衣冷落)에 먼지투성이(皆蒙垢), 마른 얼굴(菜色)에 살도 빠진 데다 낯짝()은 어찌나 두꺼워졌는지(厚顔)! 아마, 어느 서울 사람이 보아도 기이하고 우스운 꼴이었으리라.

 

반가워해 줄 옛 친구들(故人)은 어디 갔나?

 

장안(長安)에 들어선 조지겸(趙持謙)이 우연히 마주친 것은 옛 벗 최후상(崔後尙). 이때다! 수 년 만에 만난 옛 친구에게 걸어가 반가운 마음(歡喜)을 담아 인사하려는데어라? 이 친구, 처음 보는 사람인 양 눈을 둥그렇게 뜨고 조지겸(趙持謙)을 쳐다보지 않는가! 청안(靑眼)을 주며 쳐다보긴 하는데, 무슨 스승(校生)이라도 대하듯이 대강 훑어본다. 이게 무슨 일인가!

 

이보게, 최 군! 나야, !”

 

기껏 마주쳤는데 고향 촌놈처럼 행색을 보고 놀라서 못 알아봤다는 최후상(崔後尙). 조지겸(趙持謙)의 서운한 마음(不悅)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게 참, 인생의 신세란 것이구나(人生辛酸)! 서울 길에 들어섰다고는 해도, 그는 여전히 조지겸(趙持謙)이요, 그의 속마음은 그대로인데, 세월이 변했다고 다들 이리 냉담해지다니.

그러나 이 조지겸(趙持謙), 이 상황을 웃음(滑稽)으로 승화(昇華)시키기로 한다. 냉정한 눈빛(靑眼)을 받아가며, 자신을 무슨 스승으로 보며 얼버무리는 최후상(崔後尙)에게 살짝 유머로 대응해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서운함을 뒤로한 채 술자리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이 시()를 써 내려가며, 그 씁쓸함을 친구에게 툭 던져 놓는다. “이래도 나를 모르겠나?”

조지겸(趙持謙)이 친구에게 농담(弄談)삼아 쓴 이 시()에는 속 깊은 인간사(人間事)의 맛이 녹아 있다. 벗들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변한 세상 속에서의 씁쓸함이지만, 그마저도 낄낄대며 웃어넘기는 그의 유머가 여실히 드러난다.

 

"촌뜨기 행색? 그게 어때서!"

 

전부우이입장안, 후삭누루박파안(田夫偶爾入長安, 朽索累累縛破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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