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현서당지 제12호 연저지인(吮疽之仁)
장수가 자기 부하의 종기를 빨아서 고쳐 나았다는 말에서 유래된 말로 윗사람이 부하를 극진히 사랑함의 비유하는 말. 혹은 목적달성을 위한 가면적 사랑.
吮 : 빨 연
疽 : 등창 저
之 : 어조사 지
仁 : 어질 인
오기(吳起)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초기의 병법가(兵法家)로, 위(衛)나라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그의 젊은 시절은 엉망이었다. 그는 관리가 되려 했으나 재산을 탕진하여 고향에서 비웃음거리가 되었고, 화가 난 나머지 자신을 비웃은 사람 30여 명을 죽이고 도망쳤다. 떠나며 그는 어머니에게 팔꿈치 살을 물어뜯으며 맹세했다. "대신(大臣)이나 재상(宰相)이 되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그는 노나라(魯)로 가서 공자(孔子)의 제자 증삼(曾參)의 문하에 들어갔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고향으로 가지 않고 상복(喪服)을 입지 않았다. 이로 인해 그는 파문(破門)을 당했고, 결국 유학(儒學)을 포기했다. 오기(吳起)는 병법(兵法)을 배우기로 결심하며 무대의 중심으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그 후, 제나라(齊)가 노(魯)나라를 공격하자, 노(魯)나라 군주는 오기(吳起)를 장군으로 삼고자 했다. 하지만 그의 아내가 제(齊)나라 사람이어서 반대가 많았다. 이에 오기(吳起)는 직접 아내를 죽여 충성을 증명했다. 그제야 노(魯)나라는 그를 장군으로 기용했고, 오기(吳起)는 제(齊)나라 군(軍)을 물리쳐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그가 위(衛)나라 출신이라는 이유로 노(魯)나라 내에서 충의를 의심받게 되었고, 결국 그는 노(魯)나라를 떠나 위(魏)나라)로 갔다. 오기(吳起)는 위(魏)나라 문후(文侯)를 찾아가 사관(仕官)을 요청했고, 문후(文侯)는 재상 이극(李克)과 상의했다. 이극(李克)은 "오기(吳起)는 탐욕스럽고 호색(好色)하나, 병법(兵法)에서는 그를 이길 자가 없습니다"라고 천거했다. 결국 문후(文侯)는 오기(吳起)를 장군으로 임명했고, 그는 진(秦)나라의 다섯 성을 빼앗는 데 성공했다.
오기(吳起)의 성격은 간악(奸惡)했으나, 병사들과는 매우 가까웠다. 그는 신분이 낮은 병사들과 함께 밥을 먹고, 잘 때도 이불을 따로 쓰지 않았으며, 말이나 수레를 타지 않고 손수 식량을 짊어졌다. 그의 검소한 생활은 유명했다.
한 번은 병졸(兵卒) 중 한 명이 종기(腫氣)를 앓자, 오기(吳起)는 그 종기(腫氣)를 직접 입으로 빨아 주었다. 이 소식을 들은 병사의 어머니가 통곡을 하니, 이를 이상하게 여긴 사람이 물었다. “장군이 당신 아들의 종기(腫氣)를 빨아 주었는데 왜 우십니까?” 어머니는 답했다. “예전에 장군이 제 남편의 종기(腫氣)를 빨아 주셨습니다. 그때 남편은 감격하여 전쟁에서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번에도 장군이 제 아들의 종기(腫氣)를 빨아 주셨으니, 아들이 또 전쟁에서 죽을까 봐 두려워 우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기(吳起)는 병법(兵法)에서는 뛰어났지만, 그의 인간관계는 복잡하고 위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