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 나관중/제6권 삼국지연의 나관중

제59회 허저는 발가벗고 마초와 싸우고, 조조는 서찰을 지워 한수를 갈라놓는다.

진현서당 2024. 10. 23. 04:51

 

 

第五十九回

許諸裸衣鬥馬超 曹操抹書間韓遂

 

59

허저는 발가벗고 마초와 싸우고, 조조는 서찰을 지워 한수를 갈라놓는다.

 

卻說當夜兩兵混戰直到天明各自收兵馬超屯兵渭口日夜分兵前後攻擊曹操在渭河內將船筏鎖鏈作浮橋三條接連南岸曹仁引軍夾河立寨將糧草車輛穿連以爲屏障馬超聞之教軍士各挾草一束帶著火種與韓遂引軍並力殺到寨前堆積草把放起烈火操兵抵敵不住棄寨而走車乘浮橋盡被燒毀西涼兵大勝截住渭河曹操立不起營寨心中憂懼荀攸曰可取渭河沙土築起土城可以堅守操撥三萬軍擔土築城馬超又差龐德馬岱各引五百馬軍往來沖突更兼沙土不實築起便倒操無計可施

 

각설, 그날 밤 양쪽 병력이 어지럽게 싸우다가 날이 밝자 저마다 병력을 거두었다. 마초가 위하 어귀에 주둔하여 밤낮으로 병력을 나눠 앞뒤로 공격했다. 조조가 위하에 머물며 배들을 쇠사슬로 이어 배다리를 세 개 만들어 남쪽 강기슭과 잇닿게 했다. 조인이 군사를 이끌고 위하를 끼고 영채를 세워, 군량과 마초를 나르는 수레를 병풍처럼 이어 붙였다. 마초가 듣고서 군사들에게 각각 풀 다발과 불씨를 가지고 가서, 한수와 더불어 군을 이끌고 힘을 합쳐 영채 앞으로 들이닥쳐 풀 더미를 쌓아놓고 맹렬하게 불을 피워 올렸다. 조조의 군사들이 막아내지 못하여 영채를 버리고 달아나니 수레며 배다리며 모조리 불살라졌다. 서량 군사들이 크게 이겨 위하를 가로막았다. 조조가 당장 영채를 세우지 못하자, 속으로 걱정스럽고 두려웠다. 순유가 말하기를,

 

위하의 모래흙으로 토성을 쌓아서 굳게 지켜야 합니다.”

 

하니, 조조가 군사 3만을 뽑아 흙을 날라 성을 쌓았다. 마초가 다시 방덕과 마대에게 각각 5백 군마를 거느리고 오가며 충돌하게 하고, 또 모래흙이 단단하지 못해 쌓은 것도 바로 무너지니 조조가 쓸 만한 계책이 없었다.

 

時當九月盡天氣暴冷彤雲密布連日不開曹操在寨中納悶忽人報曰有一老人來見丞相欲陳說方略操請入見其人鶴骨松姿形貌蒼古問之乃京兆人也隱居終南山姓婁名子伯道號夢梅居士操以客禮待之子伯曰丞相欲跨渭安營久矣今何不乘時築之操曰沙土之地築壘不成隱士有何良策賜教子伯曰丞相用兵如神豈不知天時乎連日陰雲布合朔風一起必大凍矣風起之後驅兵士運土潑水比及天明土城已就操大悟厚賞子伯子伯不受而去

 

당시 (음력) 9월이 다 지나서 날씨가 몹시 춥고 짙은 구름이 가득 끼어 며칠이 지나도 날이 개이지 않았다. 조조는 영채 안에 머물며 마음이 답답한데, 문득 보고하기를,

 

한 노인이 승상을 만나 방법을 말씀 드리겠다고 합니다.”

 

하니, 조조가 불러들여서 만나보니 그 사람은 학 같은 골격과 소나무 같은 모습인데 생김새가 예스러웠다. 물어보니 바로 경조(장안) 사람으로 종남산에 은거하는데 성은 누이고, 자는 자백이며 도호는 몽매거사라고 했다. 조조가 손님을 맞는 예절로써 대접하자 자백이 말하기를,

 

승상께서 위하를 점거하여 영채를 세우려 하신 지 오래인데 지금 어째서 때를 타서 세우지 못하십니까?”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모래흙으로 된 땅이라 보루를 쌓아도 완성되지 않소. 은사께서 어떤 좋은 계책이라도 있으면 가르쳐 주시겠소?”

 

했다. 누자백이 말하기를,

 

승상께서 용병은 귀신같이 하시면서 어찌 때를 알지 못하십니까? 날마다 먹구름이 몰려오고 삭풍이 불어오니 반드시 크게 얼어붙게 됩니다. 바람이 불면 군사들을 내보내 흙을 날라 물을 뿌려서 날이 밝아지면 토성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했다. 조조가 크게 깨우쳐서 누자백에게 후한 상을 내렸으나 누자백은 받지 않고 갔다.

 

是夜北風大作操盡驅兵士擔土潑水爲無盛水之具作縑囊盛水澆之隨築隨凍比及天明沙水凍緊土城已築完細作報知馬超超領兵觀之大驚疑有神助次日集大軍鳴鼓而進操自乘馬出營止有許褚一人隨後操揚鞭大呼曰孟德單騎至此請馬超出來答話超乘馬挺槍而出操曰汝欺我營寨不成今一夜天已築就汝何不早降

 

그날 밤 북풍이 크게 일어났다. 조조가 병사를 모조리 내몰아 흙을 날라 물을 뿌리게 하는데, 물을 담을 도구가 없어 비단주머니를 만들어 물을 담아 대니 성을 쌓는 대로 얼어붙었다. 날이 밝자 모래흙이 얼어서 굳어 토성이 완공되었다. 세작(간첩)이 마초에게 알리자 마초가 병력을 거느리고 가서 살펴보고 크게 놀라 귀신이 도운 것인가 의심했다. 다음날 대군을 모아 북을 울리며 진격했다. 조조가 말을 타고 영채를 나오니 겨우 허저 한 사람만 뒤따랐다. 조조가 채찍을 들어 크게 외치기를,

 

맹덕이 홀로 여기 왔으니 청컨대 마초도 나와서 답하라.”

 

하니, 마초가 말을 타고 창을 잡고 나왔다. 조조가 말하기를,

 

내 영채가 완성되지 않아 네가 업신여겼다만 이제 하룻밤 사이에 하늘이 도와서 쌓아 올렸으니 네 어찌 빨리 항복하지 않느냐!”

 

했다.

 

馬超大怒意欲突前擒之見操背後一人睜圓怪眼手提鋼刀勒馬而立超疑是許褚乃揚鞭問曰聞汝軍中有虎侯安在哉許褚提刀大叫曰吾即譙郡許褚也目射神光威風抖擻超不敢動乃勒馬回操亦引許褚回寨兩軍觀之無不駭然操謂諸將曰賊亦知仲康乃虎侯也自此軍中皆稱褚爲虎侯許褚曰某來日必擒馬超操曰馬超英勇不可輕敵褚曰某誓與死戰即使人下戰書說虎侯單搦馬超來日決戰超接書大怒曰何敢如此相欺耶即批次日誓殺虎癡

 

마초가 크게 노하여 앞으로 내달아 잡으려 하나, 조조 뒤에서 한 사람이 괴이한 눈을 부릅뜨고 손에 칼을 들고 말고삐를 잡고 서 있는 것을 보고, 마초가 혹시 허저인가 싶어 채찍을 들어 묻기를,

 

듣자니 너희 군중에 호후라는 놈이 있다던데 어디 있느냐?”

 

하니, 허저가 칼을 들고 크게 외치기를,

 

내가 바로 초군 사람 허저다!”

 

했다. 눈에서 귀신같은 빛을 쏘고 위풍이 당당했다. 마초가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곧 말머리를 돌렸다. 조조 역시 허저를 이끌고 영채로 돌아갔다. 양쪽 군대가 바라보고 크게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조조가 장수들에게 말하기를,

 

도적들도 중강(허저)이 호후라는 것을 아는구려!”

 

했다. 이로부터 군중에서 모두들 허저를 호후라고 불렀다. 허저가 말하기를,

 

제가 내일 반드시 마초를 잡겠습니다.”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마초가 뛰어나게 용감하니 함부로 맞설 수 없소.”

 

했다. 허저가 말하기를,

 

제가 맹세코 죽기살기로 싸우겠습니다!”

 

하니, 즉시 사람을 시켜 도전장을 보내어 호후가 홀로 마초와 내일 결전하겠다고 했다. 마초가 도전장을 보고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어찌 감히 이토록 업신여기느냐!”

 

했다. 즉시 다음날 맹세코 호치(虎癡)를 죽이겠다고 답했다.

 

次日兩軍出營布成陣勢超分龐德爲左翼馬岱爲右翼韓遂押中軍超挺槍縱馬立於陣前高叫虎癡快出曹操在門旗下回顧衆將曰馬超不減呂布之勇言未絕許褚拍馬舞刀而出馬超挺槍接戰鬥了一百餘合勝負不分馬匹困乏各回軍中換了馬匹又出陣前又鬥一百餘合不分勝負許褚性起飛回陣中卸了盔甲渾身筋突赤體提刀翻身上馬來與馬超決戰兩軍大駭

 

다음날 양쪽 군대가 영채를 나와 포진을 마쳤다. 마초가 방덕을 좌익으로, 마대를 우익으로 나누고, 한수가 중군을 맡았다. 마초가 창을 꼬나잡고 말을 내달려 진 앞에서 높이 외치기를,

 

호치야! 빨리 나오너라!”

 

하니, 조조가 문기 아래에서 장수들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마초는 여포의 용맹보다 덜하지 않소!”

 

했다. 말이 끝나기 전에 허저가 말에 박차를 가해 칼을 휘두르며 나갔다. 1백여 합을 싸워도 승부가 나지 않아 말들이 지치자 각각 군중으로 돌아가 말을 갈아타고 다시 출진했다. 다시 1백여 합을 싸워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허저가 성이 나서 재빨리 군중으로 되돌아가 투구와 갑옷을 벗으니 온몸에 근육이 울퉁불퉁했다. 알몸으로 칼을 들고 몸을 날려 말을 타고 마초와 결전하러 가니, 양쪽 군대가 크게 놀랐다.

 

兩個又鬥到三十餘合褚奮威舉刀便砍馬超超閃過一槍望褚心窩刺來褚棄刀將槍挾住兩個在馬上奪槍許諸力大一聲響拗斷槍杆各拿半節在馬上亂打操恐褚有失遂令夏侯淵曹洪兩將齊出夾攻龐德馬岱見操將齊出麾兩翼鐵騎橫沖直撞混殺將來操兵大亂許褚臂中兩箭諸將慌退入寨馬超直殺到壕邊操兵折傷大半操令堅閉休出馬超回至渭口謂韓遂曰吾見惡戰者莫如許褚虎癡

 

둘이 다시 3십여 합을 싸워 허저가 위력을 떨치며 칼을 들어 곧 마초를 베려 하자 마초가 재빨리 피해 한 창으로 허저의 가슴팍을 찌르려 했다. 허저가 칼을 버리고 창을 낚아채서 둘이 말 위에서 창을 빼앗으려 다투었다. 허저가 힘이 세어서 우지끈 소리와 함께 창 자루를 부러뜨리니 각자 반 토막을 들고 말 위에서 어지러이 때렸다. 조조가 허저에게 실수가 있을까 두려워서 곧 하후연, 조홍 두 장수에게 일제히 나가서 협공하게 했다. 방덕과 마대도 조조 장수들이 일제히 나오는 것을 보고 양 날개의 철갑기병들을 지휘해 사방으로 돌격하며 어지러이 쳐들어오자 조조 병력이 크게 어지러워졌다. 허저도 팔뚝에 화살을 두 대나 맞았다. 장수들은 황망히 영채로 물러 들어가고 마초는 곧장 참호까지 치고 들어가니 조조의 병력 태반이 죽거나 다쳤다. 조조가 명을 내려 굳게 영채를 닫고 출전하지 못하게 했다. 마초가 위하 어귀로 되돌아가 한수에게 말하기를,

 

제가 격렬히 싸운 놈 중에 허저 같은 놈이 없습니다. 참으로 호치(虎癡 호랑이 같은 미치광이)입니다!”

 

했다.

 

卻說曹操料馬超可以計破乃密令徐晃朱靈盡渡河西結營前後夾攻一日操於城上見馬超引數百騎直臨寨前往來如飛操觀良久擲兜鍪於地曰馬兒不死吾無葬地矣夏侯淵聽了心中氣忿厲聲曰吾寧死於此地誓滅馬賊遂引本部千餘人大開寨門直趕去操急止不住恐其有失慌自上馬前來接應馬超見曹兵至乃將前軍作後隊後隊作先鋒一字兒擺開夏侯淵到馬超接往廝殺超於亂軍中遙見曹操就撇了夏侯淵直取曹操操大驚撥馬而走曹兵大亂

 

한편, 조조는 마초를 깨뜨릴 꾀를 생각해 내어. 몰래 서황과 주령을 시켜 모두 위하를 건너 서쪽에 영채를 세워 앞뒤로 협공하게 했다. 하루는 조조가 토성 위에서 보니 마초가 수백 기를 이끌고 바로 영채 앞까지 오는데 그 오고감이 나는 듯했다. 조조가 한참 살피더니 투구를 바닥에 내던지며 말하기를,

 

마초 녀석이 죽지 않으면 내가 묻힐 땅도 없겠구나!”

 

했다. 하후연이 듣고서 속으로 분기가 치솟아 성낸 목소리로 말하기를,

 

제가 차라리 여기서 죽을지언정 맹세코 마초 도적을 멸하겠습니다!”

 

했다. 곧 휘하 1천여 인을 이끌고 영채 문을 활짝 열고 곧장 뒤쫓았다. 조조가 미처 말리지 못해 실수가 있을까 두려워서 허둥지둥 말에 올라 도우러 나갔다. 조조 병력이 다다르자 마초는 곧 전군(선봉)을 후대로 돌리고 후대를 선봉으로 삼아 일자로 펼쳤다. 하후연이 다다르자 마초가 맞이하여 마구 싸웠다. 마초가 어지러운 군사들 가운데 멀리 조조를 보고 곧 하후연을 내버리고 바로 조조를 잡으려 했다. 조조가 크게 놀라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조조 병력이 크게 어지러워졌다.

 

正追之際忽報操有一軍已在河西下了營寨超大驚無心追趕急收軍回寨與韓遂商議操兵乘虛已渡河西吾軍前後受敵如之奈何部將李堪曰不如割地請和兩家且各罷兵捱過冬天到春暖別作計議韓遂曰李堪之言最善可從之超猶豫未決楊秋侯選皆勸求和於是韓遂遣楊秋爲使直往操寨下書言割地請和之事

 

한창 뒤쫓는데 문득 보고하기를, 조조의 한 무리 군사가 이미 위하 서쪽에 영채를 세웠다고 했다. 마초가 크게 놀라 조조를 뒤쫓을 마음이 사라져서 서둘러 군사를 거둬 영채로 돌아가 한수와 상의하여 말하기를,

 

조조가 빈 틈을 타서 위하 서쪽으로 건너와 아군은 앞뒤로 적병을 맞게 됐으니 이를 어찌해야겠습니까?”

 

하니, 부하 장수 이감이 말하기를,

 

땅을 잘라주고 화친을 청하여, 양쪽이 우선 각각 군사를 거둠만 못합니다. 겨울을 넘기고 따뜻한 봄날이 오면 다시 계책을 세워야 합니다.”

 

하니, 한수가 말하기를,

 

이감의 말이 최선이니 따를 만하네.”

 

했다. 마초가 머뭇거리며 결단하지 못하는데 양추와 후선도 모두 화친을 구하라 권했다. 이에 한수가 곧 양추를 사자로 삼아, 바로 조조 영채로 가서 글을 전하여, 땅을 잘라주고 화친할 것을 말했다.

 

操曰汝且回寨吾來日使人回報楊秋辭去賈詡入見操曰丞相主意若何操曰公所見若何詡曰兵不厭詐可偽許之然後用反間計令韓馬相疑則一鼓可破也操撫掌大喜曰天下高見多有相合文和之謀正吾心中之事也於是遣人回書待我徐徐退兵還汝河西之地一面教搭起浮橋作退軍之意馬超得書謂韓遂曰曹操雖然許和奸雄難測倘不准備反受其制超與叔父輪流調兵今日叔向操超向徐晃明日超向操叔向徐晃分頭提備以防其詐韓遂依計而行

 

조조가 말하기를,

 

그대는 우선 돌아가시오. 내일 사람을 보내 회답하겠소.”

 

하니, 양추가 인사하고 떠났다. 가후가 들어와 조조를 만나 말하기를,

 

승상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공의 소견은 어떻소?”

 

했다. 가후가 말하기를,

 

“‘전쟁에서는 속임수를 싫어하지 않는다.’라고 했으니 거짓으로 허락하십시오. 그런 뒤 반간계(反間計 이간질)를 써서 한수와 마초가 서로 의심하게 만들면 한번 북을 울려 격파할 수 있습니다.”

 

하니, 조조가 손뼉을 치며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천하의 높은 견해는 서로 합치하는 게 많나 보오. 문화(가후)의 꾀가 바로 내 속마음이오.”

 

했다. 이에 사람을 보내 회답하기를,

 

우리가 서서히 병력을 물린 뒤 그대들에게 위하 서쪽 땅을 돌려주겠소.”

 

하고, 한편으로 배다리를 놓아 군사를 물릴 뜻을 보였다. 마초가 회답을 받고 한수에게 말하기를,

 

조조가 비록 화친을 허락했지만 그는 간웅이라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만약 준비하지 않으면 도리어 제압당합니다. 제가 숙부와 더불어 수레바퀴처럼 돌아가며 병력을 운용하여, 오늘은 숙부께서 조조 쪽을, 저는 서황 쪽을 맡고, 내일은 제가 조조 쪽을, 숙부께서 서황 쪽을 맡아, 두 갈래로 나눠 방비한다면 그 속임수를 막을 수 있습니다.”

 

하니, 한수가 그 계책에 따라 행하였다.

 

早有人報知曹操操顧賈詡曰吾事濟矣來日是誰合向我這邊人報曰韓遂次日操引衆將出營左右圍繞操獨顯一騎於中央韓遂部卒多有不識操者出陣觀看操高叫曰汝諸軍欲觀曹公耶吾亦猶人也非有四目兩口但多智謀耳諸軍皆有懼色操使人過陣謂韓遂曰丞相謹請韓將軍會話

 

어느새 누가 조조에게 보고하여 알려주니 조조가 가후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우리 일이 이뤄지겠구려!”

 

하고 (보고한 사람에게) 묻기를,

 

내일 누가 내 쪽으로 오는가?”

 

하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한수라 합니다.”

 

했다. 다음날 조조가 장수들을 이끌고 영채를 나오니 좌우에서 그를 둘러쌌다. 조조가 홀로 중앙에 우뚝 서 있는데 한수의 부하 병졸 가운데 많은 사람이 조조를 알아보지 못하므로 출진해서 바라보기만 했다. 조조가 소리높이 외치기를,

 

자네들 조공을 보고 싶은가? 나 역시 사람일 뿐이라 눈이 네 개 있지도 입이 두 개 달리지도 않았다네. 다만 꾀가 많을 뿐이네.”

 

했다. 군사들이 모두 놀란 기색이었다. 조조가 사람을 시켜 적진에 가서 한수에게 말하게 하기를,

 

승상께서 삼가 한 장군을 청하여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했다.

 

韓遂即出陣見操並無甲仗亦棄衣甲輕服匹馬而出二人馬頭相交各按轡對語操曰吾與將軍之父同舉孝廉吾嘗以叔事之吾亦與公同登仕路不覺有年矣將軍今年妙齡幾何韓遂答曰四十歲矣操曰往日在京師皆青春年少何期又中旬矣安得天下清平共樂耶只把舊事細說並不提起軍情說罷大笑相談有一個時辰方回馬而別各自歸寨早有人將此事報知馬超超忙來問韓遂曰今日曹操陣前所言何事遂曰只訴京師舊事耳超曰安得不言軍務乎遂曰曹操不言吾何獨言之超心甚疑不言而退

 

한수가 즉시 출진해 바라보니 조조는 아무 무기도 없을 뿐더러 갑옷도 입지 않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홀로 말을 몰아 나왔다. 두 사람의 말머리가 가까워지자 각각 말고삐를 잡고 대화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내가 장군의 부친과 함께 효렴으로 뽑혀서 내 일찍이 그분을 숙부로 섬겼소. 또한 공과 함께 벼슬길에 올라 어느새 몇 년이 지났소. 장군, 금년에 나이가 몇이시오?”

 

하니, 한수가 대답하기를,

 

마흔이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지난날 경사(낙양)에서 모두들 청춘소년이었는데 어느새 중년이 되었구려! 어찌해야 천하를 태평하게 만들어 함께 즐기겠소!”

 

했다. 이렇게 옛일을 늘어놓으며 군사 이야기는 전혀 꺼내지 않더니 말을 마치고 크게 웃었다. 한 시진(두 시간)이나 이야기를 나누고서야 말머리를 돌려 작별하여 각자 영채로 돌아갔다. 벌써 누군가 이 일을 마초에게 알리니 마초가 황망히 찾아와 한수에게 묻기를,

 

오늘 조조가 진 앞에서 이야기한 것은 무슨 일입니까?”

 

하니, 한수가 말하기를,

 

다만 경사에서 있었던 옛일을 말했을 뿐이네.”

 

했다. 마초가 말하기를,

 

어찌 군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하니, 한수가 말하기를,

 

조조가 말하지 않는데 내 어찌 홀로 이야기하겠는가?”

 

했다. 마초가 속으로 몹시 의심하나 말없이 물러났다.

 

卻說曹操回寨謂賈詡曰公知吾陣前對語之意否詡曰此意雖妙尚未足間二人某有一策令韓馬自相仇殺操問其計賈詡曰馬超乃一勇之夫不識機密丞相親筆作一書單與韓遂中間朦朧字樣於要害處自行塗抹改易然後封送與韓遂故意使馬超知之超必索書來看若看見上面要緊去處盡皆改抹只猜是韓遂恐超知甚機密事自行改抹正合著單騎會語之疑疑則必生亂我更暗結韓遂部下諸將使互相離間超可圖矣操曰此計甚妙隨寫書一封將緊要處盡皆改抹然後實封故意多遣從人送過寨去下了書自回

 

한편, 조조는 영채로 돌아와 가후에게 말하기를,

 

공은 내가 진 앞에서 대화한 뜻을 알지 않소?”

 

하니, 가후가 말하기를,

 

그 뜻이 비록 묘하나 아직 두 사람을 이간시키기엔 모자랍니다. 제게 한 가지 계책이 있으니 한수와 마초가 서로 원수가 돼 죽이게 만들 수 있습니다.”

 

했다. 조조가 그 계책을 묻자 가후가 말하기를,

 

마초는 한 용맹한 사내일 뿐이라 기밀을 알지 못합니다. 승상께서 친히 서찰을 하나 써서 한수에게만 주되 중간에 흐릿하게 글자를 쓰고 중요한 부분에 덧칠하여 고친 뒤 한수에게 보내시며 일부러 마초로 하여금 알게 하십시오. 마초는 반드시 서찰을 찾아내어 볼 것입니다. 만약 거기서 요긴한 부분을 보면 모두 고쳐져 있어, 마초는 한수가 기밀한 일이 들킬까 두려워서 고친 줄로만 여겨서, 이것이 바로 (승상과 한수 두 사람이) 단독으로 대화한 의심스런 정황과 부합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의심하면 결국 분란이 생깁니다. 우리가 또한 한수의 부하 장수들과 몰래 연결하여 서로 갈라놓는다면 마초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했다. 조조가 말하기를,

 

이 계책이 참으로 훌륭하오!”

 

하고, 곧 서찰을 한 통 써서 요긴한 부분은 모조리 덧칠해 고친 뒤 잘 봉해서 일부러 많은 종인들을 건너편 영채로 보내어 서찰을 전하고 돌아왔다.

 

果然有人報知馬超超心愈疑徑來韓遂處索書看韓遂將書與超超見上面有改抹字樣問遂曰書上如何都改抹糊塗遂曰原書如此不知何故超曰豈有以草稿送與人耶必是叔父怕我知了詳細先改抹了遂曰莫非曹操錯將草稿誤封來了超曰吾又不信曹操是精細之人豈有差錯吾與叔父並力殺賊奈何忽生異心遂曰汝若不信吾心來日吾在陣前賺操說話汝從陣內突出一槍刺殺便了超曰若如此方見叔父真心兩人約定

 

과연 어떤 사람이 마초에게 보고해 알려주자 마초가 더욱 의심이 들어 곧장 한수의 거처로 가서 서찰을 찾자 한수가 그 서찰을 마초에게 주었다. 마초가 글자를 고치고 덧칠한 것을 보고 한수에게 묻기를,

 

서찰을 어째서 모두 고치고 덧칠을 했습니까?”

 

하니, 한수가 말하기를,

 

원래 이러하였네만 왜 그런지는 모르겠네.”

 

했다. 마초가 말하기를,

 

어찌 초고를 남에게 보내겠습니까? 반드시 숙부께서 제가 상세한 것을 알까 두려워 미리 고치신 것입니다.”

 

하니, 한수가 말하기를,

 

조조가 착오로 초고를 잘못 봉해서 보낸 것 아니겠느냐?”

 

했다. 마초가 말하기를,

 

저는 더욱 못 믿겠군요. 조조는 정세 정밀하고 세세한 사람인데 어찌 착오를 저지르겠습니까? 저와 숙부가 힘을 합쳐 도적을 죽여야지 어찌 갑자기 다른 마음을 품으십니까?”

 

하니, 한수가 말하기를,

 

네가 만약 내 마음을 못 믿겠다면 내일 내가 진 앞에서 조조를 속여 이야기를 나눌 테니 너는 진 안에서 뛰쳐나와 한 창에 그를 찔러 죽여라.”

 

했다. 마초가 말하기를,

 

만약 그렇다면, 숙부의 진심을 믿을 수 있겠습니다.”

 

하고 두 사람이 약속을 정했다.

 

次日韓遂引侯選李堪梁興馬玩楊秋五將出陣馬超藏在門影裏韓遂使人到操寨前高叫韓將軍請丞相攀話操乃令曹洪引數十騎徑出陣前與韓遂相見馬離數步洪馬上欠身言曰夜來丞相拜意將軍之言切莫有誤言訖便回馬超聽得大怒挺槍驟馬便刺韓遂五將攔住勸解回寨遂曰賢侄休疑我無歹心馬超那裏肯信恨怨而去

 

다음날, 한수가 후선, 이감, 양흥, 마완, 양추 등 다섯 장수를 이끌고 출진했다. 마초가 진문 그늘 속에 숨었다. 한수가 사람을 시켜 조조 영채로 가서 크게 외치기를,

 

한 장군께서 승상께 할 이야기가 있다 하오!”

 

하니, 조조가 곧 조홍에게 명령하여 수십 기병을 이끌고 진 앞으로 바로 나가 한수를 만나게 했다. 그들 사이가 몇 걸음으로 좁혀지자 조홍이 말 위에서 몸을 숙여 말하기를,

 

지난 밤 승상께서 장군의 말씀을 감사히 여기시고 절대 착오가 없게 하라 하셨습니다.”

 

하고, 말을 마치자 곧 말머리를 되돌렸다. 마초가 듣고서 크게 노하여 창을 꼬나쥐고 말을 몰아 바로 한수를 찌르려 하니, 다섯 장수가 가로막아 화해를 권하여 영채로 돌아갔다. 한수가 말하기를,

 

조카님은 의심하지 마시게. 내게 아무 악의가 없네.”

 

하니, 마초가 그 자리에서 마지못해 믿지만 원망하며 떠났다.

 

韓遂與五將商議曰這事如何解釋楊秋曰馬超倚仗武勇常有欺淩主公之心便勝得曹操怎肯相讓以某愚見不如暗投曹公他日不失封侯之位遂曰吾與馬騰結爲兄弟安忍背之楊秋曰事已至此不得不然遂曰誰可以通消息楊秋曰某願往遂乃寫密書遣楊秋徑來操寨說投降之事操大喜許封韓遂爲西涼侯楊秋爲西涼太守其餘皆有官爵約定放火爲號共謀馬超楊秋拜辭回見韓遂備言其事約定今夜放火裏應外合遂大喜就令軍士於中軍帳後堆積幹柴五將各懸刀劍聽候韓遂商議欲設宴賺請馬超就席圖之猶豫未去

 

한수가 다섯 장수와 상의해 말하기를,

 

이 일을 어떻게 풀어야겠소?”

 

하니, 양추가 말하기를,

 

마초가 무술과 용기를 믿고서 늘 주공을 능멸하는 마음을 품고 있으니 조조를 이긴다면 어찌 서로 양보하겠습니까? 제 못난 소견은 몰래 조조에게 넘어가서 훗날 열후의 자리를 잃지 않음만 못합니다.”

 

하니, 한수가 말하기를,

 

나는 마등과 의형제를 맺었거늘 어찌 차마 배신하겠소?”

 

했다. 양추가 말하기를,

 

일이 이미 이리 됐으니 그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했다. 한수가 말하기를,

 

누가 가서 소식을 전하겠소?”

 

하니, 양추가 말하기를,

 

바라건대 제가 가겠습니다.”

 

했다. 한수가 곧 밀서를 적어 양추에게 줘서 조조의 영채로 보내어 투항하겠다고 했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여 한수를 서량후로, 양추를 서량태수로 삼고, 나머지도 모두 벼슬을 내렸다. 불을 지르는 것을 신호로 함께 마초를 도모하기로 약정했다. 양추가 절을 올려 사례하고 돌아가 한수를 만나 그 일을 자세히 말하고,

 

오늘밤 방화하여 안팎으로 접응할 것을 약정했습니다.”

 

하니, 한수가 크게 기뻐하여 곧 군사들에게 영을 내려 중군 막사 뒤쪽에 마른 장작을 쌓고 다섯 장수는 칼을 차고 기다리게 했다. 한수는 연회를 베풀고 마초를 청하여 그가 자리에 앉으면 도모할 것을 상의하지만 머뭇거리며 결단하지 못했다.

 

不想馬超早已探知備細便帶親隨數人仗劍先行令龐德馬岱爲後應超潛步入韓遂帳中只見五將與韓遂密語只聽得楊秋口中說道事不宜遲可速行之超大怒揮劍直入大喝曰群賊焉敢謀害我衆皆大驚超一劍望韓遂面門剁去遂慌以手迎之左手早被砍落五將揮刀齊出超縱步出帳外五將圍繞混殺超獨揮寶劍力敵五將劍光明處鮮血濺飛砍翻馬玩剁倒梁興三將各自逃生超複入帳中來殺韓遂時已被左右救去帳後一把火起各寨兵皆動

 

뜻밖에 마초가 이미 상세한 사정을 탐지해서 곧 좌우의 시종 몇 사람을 거느리고 칼을 지닌 채 먼저 가고, 방덕과 마대에게 명하여 뒤에서 돕게 했다. 마초가 한수의 막사에 숨어들어, 다섯 장수가 한수와 밀어를 나누는 것을 보고, 양추가 설득하기를,

 

일을 늦춰서는 안 되니, 어서 행해야 합니다!”

 

하는 것을 듣고, 마초가 크게 노해 칼을 휘두르며 곧장 난입해서 크게 꾸짖기를,

 

도적떼가 어찌 감히 나를 죽이려 하느냐!”

 

하니, 모두 깜짝 놀랐다. 마초가 한 칼로 한수의 얼굴을 찌르려 하자 한수가 황망히 손으로 막지만 왼손이 이미 잘려 떨어졌다. 다섯 장수가 칼을 휘두르며 일제히 달려들었다. 마초가 급히 막사 밖으로 나가자 다섯 장수가 에워싸 죽이려 했다. 마초가 혼자 보검을 휘두르며 힘껏 다섯 장수와 맞섰다. 보검이 번뜩이자 붉은 피가 흩뿌려지니 마완이 베어져 꼬꾸라지고 양흥이 찔려 쓰러졌다. 나머지 세 장수는 각자 도망쳤다. 마초가 다시 막사로 들어가 한수를 죽이려 하지만 이미 좌우에서 구해 달아났다. 장막 뒤에서 한줄기 불길이 치솟자 각 영채에서 병력이 모두 출동했다.

 

超連忙上馬龐德馬岱亦至互相混戰超領軍殺出時操兵四至前有許褚後有徐晃左有夏侯淵右有曹洪西涼之兵自相並殺超不見了龐德馬岱乃引百餘騎截於渭橋之上天色微明只見李堪領一軍從橋下過超挺槍縱馬逐之李堪拖槍而走恰好於禁從馬超背後趕來禁開弓射馬超超聽得背後弦響急閃過卻射中前面李堪落馬而死超回馬來殺於禁禁拍馬走了超回橋上住紥操兵前後大至虎衛軍當先亂箭夾射馬超超以槍撥之矢皆紛紛落地超令從騎往來突殺爭奈曹兵圍裹堅厚不能沖出超於橋上大喝一聲殺入河北從騎皆被截斷超獨在陣中沖突卻被暗弩射倒坐下馬馬超墮於地上操軍逼合

 

마초가 황급히 말에 오르니 방덕과 마대도 도착하여 서로 어지럽게 싸웠다. 마초가 군사를 거느리고 뚫고 나오는데 조조 병력이 사방에서 몰려오니 앞은 허저, 뒤는 서황, 왼쪽은 하후연, 오른쪽은 조홍인데, 서량 병사들이 서로 싸우고 죽였다. 마초가 방덕과 마대를 찾지 못하자 1백여 기를 이끌고 위수 다리 위를 가로막았다. 하늘이 어슴푸레 밝아오는데 이감이 1군을 거느리고 다리 아래를 지나가자 마초가 창을 꼬나쥐고 말을 내달려 뒤쫓았다. 이감이 창을 끌며 달아났다. 바로 그때 우금이 마초의 뒤에서 뒤쫓아 오며 활을 당겨 마초를 쏘았다. 마초가 뒤에서 시위소리가 들리자 재빨리 피하니 도리어 앞쪽의 이감에게 명중되어 낙마해 죽었다. 마초가 말머리를 돌려 우금에게 달려들자 우금이 박차를 가해 달아났다. 마초가 되돌아가 다리 위에 머무는데 조조 병력이 앞뒤로 크게 몰려왔다. 호위군이 앞장서 죄어들며 마초에게 어지러이 화살을 날렸다. 마초가 창으로 쳐내니 화살이 모두 땅에 떨어졌다. 마초가 따르는 기병들에게 뚫고 나가게 하지만 조조 병력의 포위가 굳고 두터워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마초가 다리 위에서 크게 한소리 외치더니 하북 쪽으로 뛰어들지만 뒤따르는 기병들은 모두 가로막히고 마초 홀로 적진 가운데서 치고받다가 몰래 쏜 쇠뇌에 맞아 말 아래 떨어졌다. 마초가 땅에 떨어지니 조조 군사들이 몰아닥쳤다.

 

正在危急忽西北角上一彪軍殺來乃龐德馬岱也二人救了馬超將軍中戰馬與馬超騎了翻身殺條血路望西北而走曹操聞馬超走脫傳令諸將無分曉夜務要趕到馬兒如得首級者千金賞萬戶侯生獲者封大將軍衆將得令各要爭功迤邐追襲馬超顧不得人馬困乏只顧奔走從騎漸漸皆散步兵走不上者多被擒去止剩得三十餘騎與龐德馬岱望隴西臨洮而去

 

위급한 때에 문득 서북쪽에서 한 무리 군사들이 달려드니 바로 방덕과 마대였다. 두 사람이 마초를 구하여 군중에서 말을 가져와서 마초를 태우고 몸을 돌려 한 줄기 혈로를 뚫어 서북쪽으로 달아났다. 조조는 마초가 달아나 벗어난 것을 듣고 장수들에게 명령을 전하기를,

 

밤낮을 가리지 말고 힘써 마초를 뒤쫓으시오. 그 수급을 얻으면 천금을 포상하고 만호에 봉하며, 사로잡으면 대장군에 봉하겠소.”

 

했다. 장수들이 명령을 듣고 각자 공을 다투어 줄줄이 추격했다. 마초는 사람과 말이 지친 것을 돌보지 못하고 오로지 바삐 달아날 뿐이었다. 뒤따르던 기병들도 점점 흩어지고 보병도 따라오지 못한 자들은 많이들 잡혀갔다. 겨우 3십여 기가 남아 방덕, 마대와 함께 농서군 임조현 쪽으로 달아났다.

 

曹操親自追至安定知馬超去遠方收兵回長安衆將畢集韓遂已無左手做了殘疾之人操教就於長安歇馬授西涼侯之職楊秋侯選皆封列侯令守渭口下令班師回許都涼州參軍楊阜字義山徑來長安見操操問之楊阜曰馬超有呂布之勇深得羌人之心今丞相若不乘勢剿絕他日養成氣力隴上諸郡非複國家之有也望丞相且休回兵操曰吾本欲留兵征之奈中原多事南方未定不可久留君當爲孤保之

 

조조가 몸소 안정까지 뒤쫓아 가서 마초가 멀리 달아난 것을 알고서야 병력을 거두어 장안으로 돌아가 장수들을 모이게 했다. 한수는 이미 왼손이 잘리고 없어 불구가 되었는데 조조가 지시하여 곧 장안에서 군마를 쉬게 하고, 한수에게 서량후의 직위를 내렸다. 양추와 후선도 모두 열후에 봉하고 위수 어귀를 지키도록 했다. 명을 내려 군사를 철수시켜 허도로 돌아가려고 했다. 양주 참군 양부는 자가 의산인데 바로 장안으로 와서 조조를 만났다. 조조가 묻자 양부가 말하기를,

 

마초는 여포의 용맹을 가진데다 강인들의 마음을 깊이 얻고 있습니다. 이제 승상께서 승세를 타고 완전히 제거하지 않으면 훗날 기력을 길러서 농서 위쪽의 여러 군현들이 다시는 국가 소유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바라건대 승상께서는 우선 회군을 멈추십시오.”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내가 본래 병력을 머물러두어 정벌하고자 했으나 어찌된 게 중원에 일이 많고 남방을 아직 평정하지 못해서, 오래 머물지 못하겠소. 그대가 마땅히 나를 위해 지켜주시오.”

 

했다.

 

阜領諾又保薦韋康爲涼州刺史同領兵屯冀城以防馬超阜臨行請於操曰長安必留重兵以爲後援操曰吾已定下汝但放心阜辭而去衆將皆問曰初賊據潼關渭北道缺丞相不從河東擊馮翊而反守潼關遷延日久而後北渡立營固守何也操曰初賊守潼關若吾初到便取河東賊必以各寨分守諸渡口則河西不可渡矣吾故盛兵皆聚於潼關前使賊盡南守而河西不准備故徐晃朱靈得渡也吾然後引兵北渡連車樹柵爲甬道築冰城欲賊知吾弱以驕其心使不准備吾乃巧用反間畜士卒之力一旦擊破之正所謂疾雷不及掩耳兵之變化固非一道也

 

양부가 승낙하고, 또 위강을 양주자사로 보증 추천하여 병력을 함께 거느려 기성에 주둔해 마초를 방어하겠다고 했다. 양부가 떠나며 조조에게 청하기를,

 

장안에 반드시 많은 병력을 두어서 뒤에서 돕게 해야 합니다.”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정해두었으니 그대는 안심하시오.”

 

했다. 양부가 작별해 떠나자 장수들이 모두 묻기를,

 

애초에 역적들이 동관를 점거하고 위수 북쪽의 도로가 막혀도 승상께서는 하동으로부터 풍익(섬서성 대려현)을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동관을 지키며 시일을 끌다가 뒤에 북쪽을 건너 영채를 세워 굳게 지킨 것은 무슨 까닭이었습니까?”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당초 역적들이 동관을 지키고 있었는데 만약 내가 오자마자 바로 하동을 취했으면, 역적들이 틀림없이 각각 영채를 세워 여러 나루를 나눠 지켜서, 우리가 하서로 건너갈 수 없었을 것이오. 내가 그래서 우리의 강성한 병력을 모두 동관 앞에 모아서 역적들로 하여금 남쪽을 지키게 하고, 하서는 준비가 안 되게 만든 덕분에 서황과 주령이 건널 수 있었던 것이오. 내가 그런 뒤에 병력을 이끌고 북쪽으로 건너가서, 수레를 잇고 목책을 세워 통로를 만들고 얼어붙은 토성을 쌓아서 역적들로 하여금 우리를 약하다고 여겨 그 마음을 교만하게 하여 준비하지 않도록 했던 것이오. 내가 이에 교묘히 반간계(反間計)를 써서 사졸들의 힘을 비축하면서 하루아침에 그들을 격파했소. 이게 바로 이른바 번개가 급히 치면 귀를 막을 틈도 없다고 하는 것이오. 병법의 변화는 결코 한 길이 아니오.”

 

했다.

 

衆將又請問曰丞相每聞賊加兵添衆則有喜色何也操曰關中邊遠若群賊各依險阻征之非一二年不可平複今皆來聚一處其衆雖多人心不一易於離間一舉可滅吾故喜也衆將拜曰丞相神謀衆不及也操曰亦賴汝衆文武之力遂重賞諸軍留夏侯淵屯兵長安所得降兵分撥各部夏侯淵保舉馮翊高陵人姓張名既字德容爲京兆尹與淵同守長安操班師回都獻帝排鑾駕出郭迎接詔操贊拜不名入朝不趨劍履上殿如漢相蕭何故事自此威震中外

 

장수들이 또 청하여 묻기를,

 

승상께서는 역적들이 병력을 더하고 무리를 불리는 것을 들으실 때마다 기뻐하셨는데 무슨 까닭이었습니까?”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관중은 외지고 멀어서 만약 역적의 무리가 각각 험준한 지형에 기댄다면 그들을 정벌해도 1, 2년에 평정하기 어렵소. 이제 그들이 한 군데로 몰려든다면 그 무리가 비록 많더라도 사람들의 마음이 통일되지 않으므로 이간질하기 쉬워 일거에 가히 멸할 수 있으니 내가 그러므로 기뻐했던 것이오.”

 

했다. 장수들이 절을 올리며 말하기를,

 

승상의 귀신 같은 꾀는 사람들이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역시 그대들 문무 관리의 힘 덕분이오.”

 

했다. 곧 군사들에게 두터운 상을 내리고, 하후연을 남겨 장안에 병력을 주둔케 했다. 항복한 적병들을 곳곳에 나눠 배치했다. 하후연이 풍익군 고릉현 사람 성은 장이고, 이름은 기이며, 자는 덕용을 경조윤(경조의 행정장관)으로 보증하여 천거하므로 하후연과 함께 장안을 지키게 했다. 조조가 군사를 거두어 서울로 돌아갔다. 헌제가 천자의 수레를 타고 성곽을 나와 영접했다. 조조에게 조서를 내려서 (앞으로 조조는) 황제를 알현할 때 이름을 고하지 않으며, 황제 앞에서 종종걸음하지 않고, 칼을 차고 신을 신고 황제를 만나게하니, 한나라 승상 소하의 고사와 같았다. 이로부터 위엄이 안팎으로 진동했다.

 

這消息播入漢中早驚動了漢寧太守張魯原來張魯乃沛國豐人其祖張陵在西川鵠鳴山中造作道書以惑人人皆敬之陵死之後其子張衡行之百姓但有學道者助米五鬥世號米賊張衡死張魯行之魯在漢中自號爲師君其來學道者皆號爲鬼卒爲首者號爲祭酒領衆多者號爲治頭大祭酒務以誠信爲主不許欺詐如有病者即設壇使病人居於靜室之中自思己過當面陳首然後爲之祈禱主祈禱之事者號爲奸令祭酒祈禱之法書病人姓名說服罪之意作文三通名爲三官手書一通放於山頂以奏天一通埋於地以奏地一通沉於水以申水官如此之後但病痊可將米五鬥爲謝

 

이 소식이 한중으로 전파되어, 이미 한녕 태수 장로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원래 장로는 패국의 풍현 사람이었다. 그 할아버지 장릉이 서천의 곡명산에서 도교서적을 지어 사람을 미혹하니 사람들이 모두 그를 경배했다. 장릉이 죽은 뒤 그 아들 장형이 물려받았다. 백성 가운데 그 도를 배우는 이는 쌀 다섯 말을 바치게 하니, 세상에서 쌀 도둑이라 일컬었다. 장형이 죽자 장로가 물려받았다. 장로가 한중에 있으면서 스스로 스승(師君)’이라 일컫고 도를 배우러 오는 이를 모두 잡귀(鬼卒)’이라 불렀다. 그 우두머리를 제주(祭酒)’라 하고 많은 무리를 이끄는 이를 치두 대제주(治頭大祭酒)’라 일컬으며 힘써 성실과 신의를 위주로 하고, 속임수를 불허하였다. 만약 병자가 있으면 즉시 제단을 설치하여 환자로 하여금 조용한 실내에 머물며 자기의 허물을 생각하고, 얼굴을 마주보며 자수하여 죄를 인정하게 한 뒤에 그를 위해 기도했다. 기도하는 일을 주재하는 이를 감령제주(監令祭酒)’라 일컬었는데, 그 기도하는 방법은, 병자의 이름을 쓰고, 죄를 인정할 의사를 말하면, 글을 세 통 지어 삼관수서(三官手書)’라 이름했다. 한 통은 산꼭대기에서 불살라 하늘에 아뢰고, 한 통은 땅에 묻어 땅에 아뢰고, 한 통은 물에 가라앉혀 물의 신에게 알렸다. 이런 뒤에 병이 나으면 다섯 말의 쌀을 바쳐 사례했다.

 

又蓋義舍舍內飯米柴火肉食齊備許過往人量食多少自取而食多取者受天誅境內有犯法者必恕三次不改者然後施刑所在並無官長盡屬祭酒所管如此雄據漢中之地已三十年國家以爲地遠不能征伐就命魯爲鎮南中郎將領漢寧太守通進貢而已當年聞操破西涼之衆威震天下乃聚衆商議曰西涼馬騰遭戮馬超新敗曹操必將侵我漢中我欲自稱漢寧王督兵拒曹操諸君以爲何如閻圃曰漢川之民戶出十萬餘衆財富糧足四面險固今馬超新敗西涼之民從子午穀奔入漢中者不下數萬愚意益州劉璋昏弱不如先取西川四十一州爲本然後稱王未遲張魯大喜遂與弟張衛商議起兵早有細作報入川中

 

또한 의사(義舍)’라는 건물을 지어 그 안에 밥을 짓는 쌀과 장작, 육식을 구비해, 왕래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식사량의 많고 적음을 헤아려 스스로 취해서 먹게 하되, 많이 취하는 이는 천벌을 받는다 하였다. 경내에서 범법자는 반드시 세 차례 용서하고, 그래도 고치지 않은 자는 그 뒤에 형벌을 시행했다. 이곳은 아울러 관리가 없고 모두 제주의 소관에 속했다. 이렇게 한중 땅에서 웅거한 지 이미 3십 년이었다. 국가에서 이곳은 멀어서 정벌하지 못해, 이에 명을 내려 장로를 진남중랑장으로 삼아 한녕 태수를 맡기고, 내왕하며 공물을 바치게 하는 것에 그쳤다. 그해 조조가 서량 사람들을 격파하여 그 위엄이 천하를 흔든다는 것을 전해들은 장로가 무리를 모아 상의하여 말하기를,

 

서량에서 마등은 도륙당하고 마초는 방금 패했으니 조조가 반드시 곧 우리 한중을 침략하겠소. 나는 한녕왕을 자칭하고 병사들을 통솔하여 조조에게 맞설까 하는데 제군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하니, 염포가 말하기를,

 

한천의 백성은 그 호구 수가 십만여 무리이고, 재물과 양식이 풍족한데다 사면이 험고합니다. 이제 마초가 방금 패하여 서량의 백성들로서 자오곡을 지나 한중으로 들어온 이들이 수만을 밑돌지 않습니다. 제 못난 의견은, 익주의 유장이 어리석고 나약하니, 우선 서천의 41주를 먼저 취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게 좋고, 그 뒤에 왕을 칭해도 늦지 않습니다.”

 

했다. 장로가 크게 기뻐서 곧 아우 장위와 상의하여 병력을 일으켰다. 이미 간첩이 서천에 보고했다.

 

卻說益州劉璋字季玉即劉焉之子漢魯恭王之後章帝元和中徙封竟陵支庶因居於此後焉官至益州牧興平元年患病疽而死州大吏趙韙等共保璋爲益州牧璋曾殺張魯母及弟因此有仇璋使龐羲爲巴西太守以拒張魯時龐羲探知張魯欲興兵取川急報知劉璋璋平生懦弱聞得此信心中大憂急聚衆官商議忽一人昂然而出曰主公放心某雖不才憑三寸不爛之舌使張魯不敢正眼來覷西川正是只因蜀地謀臣進致引荊州豪傑來

 

한편, 익주의 유장은 자가 계옥인데 유언의 아들이자 한나라 노공왕의 후예다. (후한) 장제의 원화(서기84~86) 연간에 그 조상이 경릉으로 옮겨 봉해져 그 지서(장남이 아닌 아들과 첩의 아들)들이 이곳에 살게 되었다. 그 뒤 유언은 벼슬이 익주목에 이르렀지만 흥평 원년(서기194)에 등창으로 죽었다. 익주태수 조위 등이 함께 유장을 도와서 익주목이 되었다. 유장이 일찍이 장로의 모친과 아우를 죽여서 이로 인해 원수가 되었다. 유장이 방희를 파서태수로 삼아 장로를 막았다. 당시 방희는 장로가 병력을 일으켜 서천을 취하려 함을 탐지하고, 서둘러 유장에게 알렸다. 유장은 평소 나약한데 이 소식을 듣고 속으로 크게 걱정하여 급히 관리들을 모아 상의했다. 문득 한 사람이 당당히 나와서 말하기를,

 

주공께서는 안심하십시오. 제가 비록 재주 없으나 세치 혀를 놀려 장로로 하여금 감히 서천을 노려서 엿보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이야말로, 촉 땅의 모사가 나아가 결국 형주의 호걸을 불러들이겠구나.

 

未知此人是誰且看下文分解

 

이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의 이야기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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