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 나관중/제5권 삼국지연의 나관중

제43회 제갈량이 많은 선비들과 설전을 벌이고, 노자경이 힘써 사람들의 의논을 물리치다.

진현서당 2024. 10. 21. 23:51

 

第四十三回

諸葛亮舌戰群儒 魯子敬力排 衆議

 

43

제갈량이 많은 선비들과 설전을 벌이고, 노자경이 힘써 사람들의 의논을 물리치다.

 

卻說魯肅孔明辭了玄德劉琦登舟望柴桑郡來二人在舟中共議魯肅謂孔明曰先生見孫將軍切不可實言曹操兵多將廣孔明曰不須子敬叮嚀亮自有對答之語及船到岸肅請孔明於館驛中暫歇先自往見孫權權正聚文武於堂上議事聞魯肅回急召入問曰子敬往江夏體探虛實若何肅曰已知其略尚容徐稟權將曹操檄文示肅曰操昨遣使齎文至此孤先發遣來使現今會衆商議未定肅接檄文觀看其略曰孤近承帝命奉詞伐罪旄麾南指劉琮束手荊襄之民望風歸順今統雄兵百萬上將千員欲與將軍會獵於江夏共伐劉備同分土地永結盟好幸勿觀望速賜回音

 

각설, 노숙과 공명은 현덕과 유기에게 작별을 고하고 배를 타고 시상군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배 안에서 함께 의논하여, 노숙이 공명에게 말하기를,

 

선생께서 손 장군을 만나시거든 절대로 조조의 병사들과 장수들이 많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자경(노숙의 자)께서 당부하지 않으셔도 제게 이미 대답할 말이 있습니다.”

 

했다. 배가 강둑에 다다라 노숙이 공명에게 관역(여관)에서 잠시 쉴 것을 청하고 자신은 먼저 가서 손권을 만났다. 손권은 마침 문무 관리들을 당상에 모아서 의논하고 있었는데 노숙이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급히 불러들여 묻기를,

 

자경이 강하에 가서 몸소 허실을 알아보니 어떠하였소?”

 

하니, 노숙이 말하기를,

 

대략 알아냈습니다만 천천히 아뢰겠습니다.”

 

했다. 손권이 조조의 격문을 노숙에게 보여주며 말하기를,

 

조조가 어제 사자를 보내서 이 격문을 보내왔소. 내가 우선 그 사자를 보내고 지금 사람들을 모아 상의하고 있지만 아직 결정되지 않았소.”

 

했다. 노숙이 격문을 받아 들고 살펴보니, 그 대략에 이르기를,

 

내가 요즘에 황제의 명을 받들어 조서에 따라 죄인을 토벌하오. 깃발을 남쪽으로 향하자 유종이 속수무책이었고 형양의 백성들은 형세를 보고 귀순했소. 내가 지금 씩씩한 병력 백만과 상장 1천 명을 거느려서 장군과 더불어 강하에서 힘을 합쳐 함께 유비를 토벌하고 토지를 같이 나누어 길이 좋은 관계를 맺고자 하오. 행여나 관망하지 말고 어서 답신을 보내주기 바라오.”

 

했다.

 

魯肅看畢曰主公尊意若何權曰未有定論張昭曰曹操擁百萬之衆借天子之名以征四方拒之不順且主公大勢可以拒操者長江也今操既得荊州長江之險已與我共之矣勢不可敵以愚之計不如納降爲萬安之策衆謀士皆曰子布之言正合天意孫權沉吟不語張昭又曰主公不必多疑如降操則東吳民安江南六郡可保矣孫權低頭不語

 

노숙이 읽고 나서 말하기를,

 

주공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하니, 손권이 말하기를,

 

아직 정해진 논의가 없소.”

 

했다. 장소가 말하기를,

 

조조는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천자의 이름을 빌려 사방을 정벌하니 그를 거역하는 것은 순조롭지 못합니다. 또한 주공께서 조조를 맞설 만했던 것은 장강 덕분이었습니다. 이제 그가 이미 형주를 얻었으니 장강의 험준함도 이미 우리와 다를 바 없게 돼서 지금 형세로는 대적할 수 없습니다. 제가 헤아려 보건대 투항하는 것이 만전의 대책입니다.”

 

하니, 모사들 모두가 말하기를,

 

자포의 말씀이 하늘의 뜻에 들어맞습니다.”

 

했다. 손권이 깊이 신음하며 입을 열지 않았다. 장소가 다시 말하기를,

 

주공께서는 여러 가지로 의심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조조에게 항복하면 동오 백성들이 편안해지고 강남 6군을 가히 보전할 것입니다.”

 

하니, 손권이 머리를 숙이고 아무 말이 없었다.

 

須臾權起更衣魯肅隨於權後權知肅意乃執肅手而言曰卿欲如何肅曰恰才衆人所言深誤將軍衆人皆可降曹操惟將軍不可降曹操權曰何以言之肅曰如肅等降操當以肅還鄉黨累官故不失州郡也將軍降操欲安所歸乎位不過封侯車不過一乘騎不過一匹從不過數人豈得南面稱孤哉衆人之意各自爲己不可聽也將軍宜早定大計

 

잠시 뒤, 손권이 옷을 갈아입으러 일어나니 노숙이 뒤따라갔다. 손권이 노숙의 뜻을 알아차리고 노숙의 손을 붙잡고 말하기를,

 

경은 어떻게 하고 싶소?”

 

하니, 노숙이 말하기를,

 

방금 사람들이 한 말은 장군을 몹시 그르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조조에게 항복해도 되겠지만 장군만은 조조에게 항복할 수가 없습니다.”

 

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어째서 그렇게 말하시오?”

 

하니, 노숙이 말하기를,

 

저같은 사람들이야 조조에게 항복한들 고향으로 돌아가 벼슬을 더할 수도 있고, 다스리던 고을을 잃는 것도 아닙니다. 장군께서 조조에게 항복하신다면 어디로 돌아가겠습니까? 지위는 고작 열후에 불과하고 수레는 불과 1승이요 마필도 불과 한 필일 것이며 종들도 불과 몇일텐데 어찌 (지금처럼) 남면해서 고(군주가 스스로를 낮추는 말)라고 하겠습니까? 사람들의 뜻이야 각자 자기를 위하는 것일 뿐이니, 들어서는 안 됩니다. 장군께서 마땅히 어서 대계를 정하십시오!”

 

했다.

 

權歎曰諸人議論大失孤望子敬開說大計正與吾見相同此天以子敬賜我也但操新得袁紹之衆近又得荊州之兵恐勢大難以抵敵肅曰肅至江夏引諸葛瑾之弟諸葛亮在此主公可問之便知虛實權曰臥龍先生在此乎肅曰現在館驛中安歇權曰今日天晚且未相見來日聚文武於帳下先教見我江東英俊然後升堂議事

 

손권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사람들의 의논이 내 소망을 크게 저버렸소. 자경이 큰 계책을 깨우쳐 주는 것이 내 견해와 꼭 맞소. 이것은 하늘이 자경을 내게 내리신 것이오! 다만 조조가 원소의 무리를 새로 얻은 데다 요새 형주의 병력까지 더했으니 그 세력을 대적하기가 어려울까 걱정이오.”

 

하니, 노숙이 말하기를,

 

제가 강하에 가서 제갈근의 아우 제갈량을 여기 데려 왔으니, 주공께서 그에게 물어 허실을 알아내십시오.”

 

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와룡 선생이 여기에 있다는 말이오?”

 

하니, 노숙이 말하기를,

 

현재 여관에서 쉬고 있습니다.”

 

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오늘은 날이 저물었으니 만나기에 늦었소. 내일 문무 관리들을 본진으로 불러 모아서 먼저 그에게 우리 강동의 재능이 출중한 사람들을 보여주고 그런 뒤에 관청의 당에 올라 의논하겠소.”

 

했다.

 

肅領命而去次日至館驛中見孔明又囑曰今見我主切不可言曹操兵多孔明笑曰亮自見機而變決不有誤肅乃引孔明至幕下早見張昭顧雍等一班文武二十餘人峨冠博帶整衣端坐孔明逐一相見各問姓名施禮已畢坐於客位張昭等見孔明豐神飄灑器宇軒昂料道此人必來遊說張昭先以言挑之曰昭乃江東微末之士久聞先生高臥隆中自比管此語果有之乎孔明曰此亮平生小可之比也昭曰近聞劉豫州三顧先生於草廬之中幸得先生以爲如魚得水思欲席卷荊襄今一旦以屬曹操未審是何主見

 

노숙이 명령을 듣고 나갔다. 다음날 여관에 가서 공명을 만나 다시 부탁하기를,

 

오늘 우리 주공을 만나시거든 절대로 조조 병력이 많은 것은 말하지 마십시오.”

 

하니, 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제가 상황을 봐 가며 대처할 것인즉 결코 그르침이 없을 것입니다.”

 

했다. 노숙이 이에 공명을 본진으로 데려갔다. 벌써 장소, 고옹 등 한 무리 문무 관리 스무 명 남짓이 높은 관을 쓰고 넓은 띠를 두른 차림으로 옷 매무새를 가다듬어 단정히 앉아 있었다. 공명이 한 사람 한 사람씩 인사하고 성명을 물었다. 인사를 마치고 손님 자리에 앉았다. 장소 등이 보니 공명이 태도는 생기가 넘치고 외모는 당당한 것이 이 사람은 아무래도 유세하러 온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장소가 먼저 입을 열어 타진하여 말하기를,

 

저는 강동의 보잘것 없는 선비이지만, 오래전부터 선생께서 융중에서 높이 누워 스스로를 관중과 악의에 견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과연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제가 평소에 그렇게 견주어 봤습니다.”

 

했다. 장소가 말하기를,

 

요새 듣자니 유예주(유비)가 선생의 초가집을 세 번이나 찾아가서 요행히 선생을 얻었다 하더군요. 그래서 물고기가 물을 얻은 듯이 여기고는 형주 양양 지방을 석권한 마음을 먹었다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루아침에 조조에게 복종하게 됐으니 무슨 할 말이 있을지 미심쩍구려.”

 

하였다.

 

孔明自思張昭乃孫權手下第一個謀士若不先難倒他如何說得孫權遂答曰吾觀取漢上之地易如反掌我主劉豫州躬行仁義不忍奪同宗之基業故力辭之劉琮孺子聽信佞言暗自投降致使曹操得以猖獗今我主屯兵江夏別有良圖非等閑可知也

 

공명이 생각해보니 장소는 곧 손권의 수하 가운데서 제일가는 모사이므로 만약 먼저 그를 압도하지 못하고서야 어찌 손권을 설득하리오 하고, 곧 대답하기를,

 

제가 보기에 한수 상류 지방을 취하는 것이야 손바닥 뒤집듯 쉬웠습니다. 그러나 저희 주공이신 유예주께서는 인의를 몸소 실천하셔서 차마 같은 집안의 기업을 빼앗을 수 없었기 때문에 애써 사양하셨습니다. 유종은 어린애라 간사한 말을 믿고 어리석게도 스스로 투항해서 결국 조조가 창궐하게 됐습니다. 지금 저희 주공께서는 강하에 둔병하여 따로 좋은 기회를 노리시는 것이니 평범한 사람들이 그 뜻을 알아차릴 수는 없습니다.”

 

했다.

 

昭曰若此是先生言行相違也先生自比管管仲相桓公霸諸侯一匡天下樂毅扶持微弱之燕下齊七十餘城此二人者真濟世之才也先生在草廬之中但笑傲風月抱膝危坐今既從事劉豫州當爲生靈興利除害剿滅亂賊且劉豫州未得先生之前尚且縱橫寰宇割據城池今得先生人皆仰望雖三尺童蒙亦謂彪虎生翼將見漢室複興曹氏即滅矣朝廷舊臣山林隱士無不拭目而待以爲拂高天之雲翳仰日月之光輝拯民於水火之中措天下於衽席之上在此時也何先生自歸豫州曹兵一出棄甲拋戈望風而竄上不能報劉表以安庶民下不能輔孤子而據疆土乃棄新野走樊城敗當陽奔夏口無容身之地是豫州既得先生之後反不如其初也管仲樂毅果如是乎愚直之言幸勿見怪

 

장소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선생은 언행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선생은 스스로 관중과 악의에 견준다고 하셨는데, 관중은 환공을 도와서 제후를 제패하고 천하를 크게 바로잡았습니다. 악의는 미약한 연나라를 떠받쳐서 제나라 70여 성을 함락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참으로 세상을 구제할 재주를 가졌다 하겠습니다. 선생은 초가집에서 단지 한가로이 풍월이나 읊어대고 무릎을 껴안고 앉아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제 유예주에게 종사했으니 마땅히 백성들을 위해 이익을 진흥하고 폐해를 제거하며 어지러운 도적을 소멸해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유예주는 선생을 얻지 못했을 때에는 오히려 천하를 종횡하고, 성지를 할거했습니다. 지금 선생을 얻자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봤습니다. 비록 삼척동자라도 이제 호랑이가 날개를 단 셈이라 말하고 장차 한실을 부흥하고 조씨가 즉시 멸망할 것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조정의 옛 신하들이나 산림에 숨어지내는 선비들도 눈을 씻고 살피며 기대하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바로 이 때에 하늘의 구름을 걷어내어 해와 달의 빛을 우러르게 하고, 물과 불의 재난에 빠진 백성들을 건져내어 천하를 편안하게 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선생이 유예주를 모신 뒤부터 조조의 군대가 출동하니, 갑옷과 무기를 버리고 바람에 불리듯 쫓겨서 위로는 유표에 보답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하지 못했고, 아래로는 외로운 아들(유종)을 도와 강토를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이에 신야를 포기하고 번성으로 달아나더니 당양에서 패전하여 하구로 달아나니 몸을 용납할 땅도 없습니다. 이것을 보면, 유예주는 선생을 얻고 나서 도리어 예전보다 못하게 된 것입니다. 관중과 악의가 과연 이러했습니까? 제 못난 소견이니 행여나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했다.

 

孔明聽罷啞然而笑曰鵬飛萬裏其志豈群鳥能識哉譬如人染沉屙當先用糜粥以飲之和藥以服之待其腑髒調和形體漸安然後用肉食以補之猛藥以治之則病根盡去人得全生也若不待氣脈和緩便投以猛藥厚味欲求安保誠爲難矣吾主劉豫州向日軍敗於汝南寄跡劉表兵不滿千將止關趙雲而已此正如病勢尫羸已極之時也新野山僻小縣人民稀少糧食鮮薄豫州不過暫借以容身豈真將坐守於此耶夫以甲兵不完城郭不固軍不經練糧不繼日然而博望燒屯白河用水使夏侯惇曹仁輩心驚膽裂竊謂管仲樂毅之用兵未必過此

 

공명이 듣고 나서 소리내어 웃으며 말하기를,

 

붕새는 만리를 날아가니 그 뜻을 어찌 뭇새가 알겠습니까? 비유컨대 사람이 병을 오래 앓으면 마땅히 먼저 죽을 먹은 뒤에 부드러운 약을 복용해서 내장이 조화되고 몸이 점차 안정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 뒤에 고기를 먹어 보양하고 강한 약으로 치료해야 병의 뿌리가 모조리 없어져서 사람이 온전히 살아나게 됩니다. 만약 그 기맥이 안정되기를 바라지 않고 바로 강한 약과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고치려 하면 참으로 어렵게 되고 맙니다. 제 주공 유예주께서는 지난날 여남에서 패전해 유표에게 몸을 맡기셨을 때 병력이 천 명이 되지 못한데다 거느린 장수들도 겨우 관우, 장비, 조운 뿐이었습니다. 이것은 병세가 심하기 그지없는 때와 똑같았습니다. 신야는 궁벽한 작은 고을이고 인민도 희소한데다 양식마저 적어서 예주께서 잠깐 몸을 둘 만한 곳에 불과하지 어찌 참으로 장차 고수할 곳이겠습니까? 이렇게 무장병력도 모자라고 성곽도 튼튼치 못하고 군대도 충분히 숙련되지 못한데다 양식마저 하루를 버티기 어려웠지만 박망파에서 적의 근거지를 불사르고 백하에서 수공을 가해서 하후돈과 조인 등의 가슴을 놀라게 하고 간담을 찢어놓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관중과 악의가 용병해도 이보다 더할 수는 없습니다.

 

至於劉琮降操豫州實出不知且又不忍乘亂奪同宗之基業此真大仁大義也當陽之敗豫州見有數十萬赴義之民扶老攜幼相隨不忍棄之日行十裏不思進取江陵甘與同敗此亦大仁大義也寡不敵衆勝負乃其常事昔高皇數敗於項羽而垓下一戰成功此非韓信之良謀乎夫信久事高皇未嘗累勝蓋國家大計社稷安危是有主謀非比誇辯之徒虛譽欺人坐議立談無人可及臨機應變百無一能誠爲天下笑耳

 

심지어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한 것도 예주께서는 참으로 알지 못하셨습니다. 게다가 차마 같은 집안의 기업을 난리를 틈타 함부로 빼앗지 못하셨으니, 이것은 참으로 크나큰 인의라 하겠습니다. 당양의 패전도, 수십만 정의를 위해 나선 백성들이 늙은이를 부축하고 어린이를 업고 따라오는 것을 예주께서 보고 차마 버리지 못하고 하루 겨우 십 리를 가면서도 강릉을 빼앗으러 진격할 생각을 안 하고 백성들과 함께 패전할 것을 감내하셨으니 참으로 크나큰 인의라 하겠습니다. 적은 병력으로 많은 적병을 대적하지 못했지만 그런 승부는 으레 있는 법입니다. 예전에 고조 황제는 항우에게 수차례 패했지만 해하에서 한차례 싸움으로 성공했으니 이것이 한신의 좋은 계책이 아닙니까? 무릇 한신이 오래전부터 고조 황제를 섬겼지만 일찍이 승리를 거듭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저 국가의 대계와 사직의 안위는 근본 계획을 세워야지 과대하게 떠벌이거나 헛된 명예로 남들을 속이는 자들을 따라서는 안 됩니다. 그들 무리는 앉아서 이야기나 나누는 것이야 남들이 따라올 수 없게 잘하지만 임기응변(臨機應變)이 필요한 때에는 백에 하나도 능히 할 수가 없으니 참으로 천하의 웃음거리입니다!”

 

라고 했다.

 

這一篇言語說得張昭並無一言回答座上忽一人抗聲問曰今曹公兵屯百萬將列千員龍驤虎視平吞江夏公以爲何如孔明視之乃虞翻也孔明曰曹操收袁紹蟻聚之兵劫劉表烏合之衆雖數百萬不足懼也虞翻冷笑曰軍敗於當陽計窮於夏口區區求教於人而猶言不懼此真大言欺人也孔明曰劉豫州以數千仁義之師安能敵百萬殘暴之衆退守夏口所以待時也今江東兵精糧足且有長江之險猶欲使其主屈膝降賊不顧天下恥笑由此論之劉豫州真不懼操賊者矣

 

이렇게 한바탕 말하자 장소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좌상에서 문득 한 사람이 항변하여 묻기를,

 

지금 조공이 백만 대군과 장수 1천 명을 거느리고 용이 날뛰고 호랑이가 쏘아보듯이 강하를 평정해 집어삼키려 하는데, 공은 어찌 하겠소?”

 

하니, 공명이 보니 그는 우번이었다. 공명이 말하기를,

 

조조가 원소의 개미떼 같은 병력을 거둔데다 유표의 오합지졸을 빼앗은 것이니 비록 수는 백만 대군이나 두려워 할 게 못 되오.”

 

했다. 우번이 냉소하고 말하기를,

 

당양에서 군사들은 패배하고 하구에서 꾀가 바닥나서 구구히 남에게 구원을 요청하러 오고서도 오히려 두렵지 않다고 말씀하시다니 이야말로 참으로 허풍을 쳐서 남을 속이는 것이구려!”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유예주께서 고작 수천 명의, 인의를 받드는 군사로써 어찌 능히 백만의 잔인하고 포악한 무리에 대적하겠소? 하구로 물러나 지키는 것은 때를 기다리는 것이오. 지금 강동에는 병력이 정예하고 양식이 풍부하며 게다가 장강의 험한 지형이 있는데도 오히려 그 주인으로 하여금 무릎을 꿇고 도적에게 항복하게 만들고자 하니 천하에서 비웃을 것을 돌아보지 않는 것이오. 이렇게 따지면 유예주야말로 진실로 조조 도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오!”

 

했다.

 

虞翻不能對座間又一人問曰孔明欲效儀秦之舌遊說東吳耶孔明視之乃步騭也孔明曰步子山以蘇秦張儀爲辯士不知蘇秦張儀亦豪傑也蘇秦佩六國相印張儀兩次相秦皆有匡扶人國之謀非比畏強淩弱懼刀避劍之人也君等聞曹操虛發詐偽之詞便畏懼請降敢笑蘇秦張儀乎

 

우번이 할 말이 없었다. 자리에서 또 한 사람이 묻기를,

 

공명은 소진과 장의처럼 혀를 놀려 동오에 유세하고자 하시오?”

 

했다. 공명이 보니 그는 보즐이었다. 공명이 말하기를,

 

보자산(보즐)은 소진과 장의를 변사로만 여기지 소진과 장의 또한 호걸인 것을 모르시는구려. 소진은 여섯 나라의 재상 인감을 차고, 장의는 진나라에서 두 번이나 재상을 지냈으니 그들 모두 나라를 바로세울 지모를 가졌었소. 강한 자를 두려워하고 약한 자를 능멸하는 자들이나 창칼을 무서워하는 자들과 비교할 사람들이 아니오. 여러분은 조조의 허풍을 듣자마자 두려워 바로 항복하기를 청하는 처지에 감히 소진과 장의를 비웃을 수 있소?”

 

했다.

 

步騭默然無語忽一人問曰孔明以曹操何如人也孔明視其人乃薛綜也孔明答曰曹操乃漢賊也又何必問綜曰公言差矣漢傳世至今天數將終今曹公已有天下三分之二人皆歸心劉豫州不識天時強欲與爭正如以卵擊石安得不敗乎孔明厲聲曰薛敬文安得出此無父無君之言乎夫人生天地間以忠孝爲立身之本公既爲漢臣則見有不臣之人當誓共戮之臣之道也今曹操祖宗叨食漢祿不思報效反懷篡逆之心天下之所共憤公乃以天數歸之真無父無君之人也不足與語請勿複言

 

보즐이 묵묵히 말이 없었다. 문득 한 사람이 묻기를,

 

공명은 조조를 어떤 사람으로 여기시오?”

 

했다. 공명이 그 사람을 보니 바로 설종이었다. 공명이 답하기를,

 

조조는 한나라 역적인데, 더 물어볼 필요가 있겠소?”

 

하니, 설종이 말하기를,

 

공이 틀렸소. 한나라가 지금에 이르러 하늘이 내린 운수가 곧 다하려 하오. 이제 조공은 이미 천하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사람들이 모두 마음으로 복종하고 있소. 유예주는 천시를 알아보지 못하고 굳이 그와 다투려 하니 이야말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인데 어찌 패하지 않겠소?”

 

했다. 공명이 성난 목소리로 말하기를,

 

설경문(설종)은 어찌 이렇게 부모도 임금도 없는 사람처럼 말씀하시오? 무릇 사람이란 하늘과 땅 사이에 태어나 충효를 입신의 근본으로 삼는 법이오. 공은 이미 한나라 신하가 되었으니 만약 신하답지 못한 사람을 보면 마땅히 함께 그를 처단해야 하는 것이 신하의 도리요. 이제 조조가 조상 대대로 한나라의 녹을 먹고도 보답할 생각 없이 도리어 찬역할 마음을 품고 있으니 천하의 공분을 사고 있소. 공은 이것을 하늘의 운수가 그에게 돌아가는 것이라 여기다니 참으로 부모도 임금도 없는 사람이오!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에 부족하구려! 청컨대 다시는 말하지 마시오!”

 

했다.

 

薛綜滿面羞慚不能對答座上又一人應聲問曰曹操雖挾天子以令諸侯猶是相國曹參之後劉豫州雖雲中山靖王苗裔卻無可稽考眼見只是織席販屨之夫耳何足與曹操抗衡哉孔明視之乃陸績也孔明笑曰公非袁術座間懷桔之陸郎乎請安坐聽吾一言曹操既爲曹相國之後則世爲漢臣矣今乃專權肆橫欺淩君父是不惟無君亦且蔑祖不惟漢室之亂臣亦曹氏之賊子也劉豫州堂堂帝胄當今皇帝按譜賜爵何雲無可稽考且高祖起身亭長而終有天下織席販屨又何足爲辱乎公小兒之見不足與高士共語

 

설종이 얼굴 가득히 부끄러움을 띠고 대답하지 못했다. 자리에서 또 한 사람이 공명의 말이 끝나자마자 묻기를,

 

조조가 비록 천자를 옆에 끼고 제후를 호령한다지만 그래도 상국 조참의 후예요. 유예주가 비록 중산정왕의 후예라 말하지만 도리어 아무 고증할 길이 없고 확실한 것은 돗자리를 짜고 신을 팔던 사내였다는 것뿐이니 어찌 족히 조조와 맞설 수 있겠소?”

 

했다. 공명이 보니 바로 육적이었다. 공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공은 바로 원술이 있는 자리에서 귤을 품었다던 육랑이 아니시오? 청컨대 편히 앉아 제 한마디를 들어보시오. 조조가 조상국의 후예라면 바로 대대로 한나라 신하였다는 것이오. 이제 권력을 틀어쥐고 제멋대로 행사하여 임금을 속이고 능멸하니, 이것은 임금만 업신여기는 것이 아니라 조상을 능멸하는 것이기도 하오. 한실의 난신일 뿐 아니라 조씨 집안의 반역자이기도 한 것이오! 유예주께서는 당당히 황제의 후예로서 현재의 황제께서도 족보를 살펴보고 작위를 내렸는데 어찌 고증할 길이 없다고 하시오? 게다가 고조께서는 정장을 지내시다 몸을 일으켜 마침내 천하를 소유하셨소. 돗자리를 짜고 신을 팔았다 한들 어찌 족히 치욕이 되겠소? 공의 어린애 같은 견해야말로 고상한 선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에 부족하오!”

 

했다.

 

陸績語塞座上一人忽曰孔明所言皆強詞奪理均非正論不必再言且請問孔明治何經典孔明視之乃嚴酸也孔明曰尋章摘句世之腐儒也何能興邦立事且古耕莘伊尹釣渭子牙張良陳平之流鄧禹耿弇之輩皆有匡扶宇宙之才未審其生平治何經典豈亦效書生區區於筆硯之間數黑論黃舞文弄墨而已乎嚴峻低頭喪氣而不能對

 

육적은 말문이 막히는데, 자리에서 한 사람이 문득 말하기를,

 

공명이 하는 말은 모두 억지로 이치를 벗어난 것이라 죄다 정론이 아니니 다시 말할 필요가 없겠소. 우선 공명은 무슨 경전을 익히셨는지 물어봐도 되겠소?”

 

했다. 공명이 보니 그는 바로 엄준이었다. 공명이 말하기를,

 

(경전에서) 그럴싸한 글귀나 뒤지는 것은 세속의 썩은 선비들이나 하는 짓이지 어찌 능히 나라를 흥하게 하고 일을 성공시키는 것이라 하겠소? 더욱이 옛날 신야(莘野)에서 밭을 갈던 이윤이나 위수에서 낚시하던 자아(강태공)(한고조를 도운) 장량, 진평 같은 사람들이나, (광무제를 도운) 등우, 경엄 같은 무리는 모두 천하를 바로잡을 재주를 가졌었지만 그들이 평생에 무슨 경전을 익혔는지 미심쩍소. 또한 어찌 서생들의, 구구하게 붓과 벼루에 파묻혀 제멋대로 어지럽게 시비를 가려서 말하는 것과 글재주를 부려 법도를 어지럽히는 것을 본받을 수 있겠소?”

 

했다. 엄준이 머리를 숙이고 기가 꺾여 대답하지 못했다.

 

忽又一人大聲曰公好爲大言未必真有實學恐適爲儒者所笑耳孔明視其人乃汝陽程德樞也孔明答曰儒有君子小人之別君子之儒忠君愛國守正惡邪務使澤及當時名留後世若夫小人之儒惟務雕蟲專工翰墨青春作賦皓首窮經筆下雖有千言胸中實無一策且如楊雄以文章名世而屈身事莽不免投閣而死此所謂小人之儒也雖日賦萬言亦何取哉

 

문득 한 사람이 다시 큰 소리로 말하기를,

 

공은 큰소리를 즐기지만 여태 참으로 실학을 가지지는 못했으니 선비들에게 웃음거리나 되지 않을까 두려울 뿐이오!”

 

했다. 공명이 그 사람을 보니 바로 여양의 정덕추였다. 공명이 대답하기를,

 

선비에는 군자와 소인의 구별이 있소. 군자인 선비는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며, 바른 길을 지키고 사악한 길을 미워하며, 힘써서 당대에 은택을 미치게 하고 후세에 이름을 남기오. 저들 소인인 선비들은 오로지 글귀나 다듬는 데 힘을 쓰고 문학만 붙잡고 청춘에는 시부나 짓고 흰머리가 돼서는 경전이나 연구하고 있소. 붓으로 천 마디 말을 쓴 들 가슴속에는 참으로 아무런 계책이 없소. 게다가 양웅이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리고 몸을 굽혀 왕망을 섬겼다가 누각에서 떨어져 죽는 것을 면하지 못했으니 이른바 소인인 선비요. 비록 하루에 시부를 만 마디씩 지은들 무슨 취할 것이 있으리오!”

 

했다.

 

程德樞不能對衆人見孔明對答如流盡皆失色時座上張溫駱統二人又欲問難忽一人自外而入厲聲言曰孔明乃當世奇才君等以唇舌相難非敬客之禮也曹操大軍臨境不思退敵之策乃徒鬥口耶衆視其人乃零陵人姓黃名蓋字公覆現爲東吳糧官當時黃蓋謂孔明曰愚聞多言獲利不如默而無言何不將金石之論爲我主言之乃與衆人辯論也孔明曰諸君不知世務互相問難不容不答耳

 

정덕추가 대답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공명이 흐르는 물처럼 대답하는 것을 보고 모두 놀라서 얼굴빛이 달라졌다. 그때 자리에 장온과 낙통 두 사람이 있어 다시 어려운 질문을 해보려 하는데, 문득 한 사람이 밖에서 들어와 성난 목소리로 말하기를,

 

공명은 당세의 기재이거늘 여러분이 말로써 그를 난처하게 하다니 손님을 공경하는 예의가 아니오. 조조의 대군이 국경에 임박했는데 적을 물리칠 계책은 생각하지 못할망정 헛되이 말다툼이나 하는 것이오!”

 

했다.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니 바로 영릉 사람으로 성은 황이고 이름은 개이며 자는 공복인데 현재 동오에서 양관(식량 담당)을 맡고 있었다. 그때 황개가 공명에게 말하기를,

 

제가 듣건대 말을 많이 해서 이익을 얻는 것은 차라리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했습니다. 어찌해서 금석 같은 이야기를 저희 주공께 말씀드리지 않으시고, 뭇 사람과 변론하십니까?”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여러분이 세상 사정을 모르시고 제게 따져 물으니 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했다.

 

於是黃蓋與魯肅引孔明入至中門正遇諸葛瑾孔明施禮瑾曰賢弟既到江東如何不來見我孔明曰弟既事劉豫州理宜先公後私公事未畢不敢及私望兄見諒瑾曰賢弟見過吳侯卻來敘話說罷自去魯肅曰適間所囑不可有誤孔明點頭應諾引至堂上孫權降階而迎優禮相待施禮畢賜孔明坐衆文武分兩行而立魯肅立於孔明之側只看他講話孔明致玄德之意畢偷眼看孫權碧眼紫髯堂堂一表孔明暗思此人相貌非常只可激不可說等他問時用言激之便了

 

이에 황개와 노숙이 공명을 데리고 들어가다가, 중문에서 마침 제갈근과 마주치니 공명이 인사를 올렸다. 제갈근이 말하기를,

 

아우는 강동에 도착하고도 어찌 나를 찾지 않았는가?”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아우가 유예주를 모시고 있으므로 그 이치가 마땅히 공무를 먼저하고 사적인 일을 뒤에 해야 합니다. 공무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감히 사사로운 일까지 볼 수가 없었습니다. 형님께서 헤아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니, 제갈근이 말하기를,

 

아우가 오후(손권)를 만나 보고 난 뒤에 이야기를 나누세.”

 

하고 말을 마치자 떠났다. 노숙이 말하기를,

 

얼마 전에 부탁드린 것을 실수 없이 하셔야 합니다.”

 

하니, 공명이 고개를 끄덕여 응낙했다. 관청 당상으로 데리고 가자 손권이 계단을 내려와 맞이하여 예우가 두터웠다. 인사를 마치고 공명을 자리에 앉도록 했다. 문무 관리들이 두 줄로 늘어섰다. 노숙이 공명 곁에 서서 그가 이야기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공명이 현덕의 뜻을 전해주고서 슬그머니 손권을 살폈다. 푸른 눈에 자줏빛 수염으로 생김새와 행동이 당당했다. 공명이 속으로 생각하기를, ‘이 사람은 생김새가 남다르니 격동시켜야지 설득해서는 안 되겠구나. 그가 물어오기를 기다렸다가 말로써 격동시키면 되겠다.’했다.

 

獻茶已畢孫權曰多聞魯子敬談足下之才今幸得相見敢求教益孔明曰不才無學有辱明問權曰足下近在新野佐劉豫州與曹操決戰必深知彼軍虛實孔明曰劉豫州兵微將寡更兼新野城小無糧安能與曹操相持權曰曹兵共有多少孔明曰馬步水軍約有一百餘萬權曰莫非詐乎孔明曰非詐也曹操就兗州已有青州軍二十萬平了袁紹又得五六十萬中原新招之兵三四十萬今又得荊州之軍二三十萬以此計之不下一百五十萬亮以百萬言之恐驚江東之士也

 

차를 대접하고 손권이 말하기를,

 

노자경(노숙)으로부터 족하(상대방의 존칭)의 재주를 많이 들었는데 이제 다행히 만나게 됐습니다. 감히 요청하건대 이로운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재주가 없고 배우지 못해서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할지 모르겠습니다.”

 

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족하가 요새 신야에서 유예주를 도와서 조조와 결전하셨다니 반드시 그 군대의 허실을 잘 아시겠습니다.”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유예주께서는 병력이 미미하고 장수가 적은데다 신야성이 작고 식량이 없었으므로 어찌 능히 조조에 맞섰겠습니까?”

 

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조조의 병력은 모두 합쳐서 얼마나 됩니까?”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기병과 보명, 수군을 합쳐서 대략 1백여 만입니다.”

 

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과장하는 것 아닙니까?”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과장은 없습니다. 조조는 연주에서 이미 청주군 2십만이 있었습니다. 원소를 평정하고 다시 5, 6십만을 얻었고, 중원에서 새로 뽑아서 모은 병력이 3, 4십만입니다. 이제 다시 형주의 군대 2, 3십만을 얻었으니, 이렇게 계산하면 적어도 15십만입니다. 제가 1백만이라 말씀드렸던 것은 강동 선비들을 놀라게 할까 두려워서였습니다.”

 

했다.

 

魯肅在旁聞言失色以目視孔明孔明只做不見權曰曹操部下戰將還有多少孔明曰足智多謀之士能征慣戰之將何止一二千人權曰今曹操平了荊複有遠圖乎孔明曰即今沿江下寨准備戰船不欲圖江東待取何地權曰若彼有吞並之意戰與不戰請足下爲我一決孔明曰亮有一言但恐將軍不肯聽從權曰願聞高論孔明曰向者宇內大亂故將軍起江東劉豫州收衆漢南與曹操並爭天下今操芟除大難略已平矣近又新破荊州威震海內縱有英雄無用武之地故豫州遁逃至此願將軍量力而處之若能以吳越之衆與中國抗衡不如早與之絕若其不能何不從衆謀士之論按兵束甲北面而事之

 

노숙이 곁에서 그 말을 듣고 실색해서 공명에게 눈짓을 했으나, 공명이 못 본 체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조조 부하 중에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장수는 또한 얼마나 되오?”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지모가 많은 모사들과 원정에 나서 전투를 능숙히 할 장수들이 족히 1, 2천은 되리라 봅니다!”

 

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지금 조조가 형주 초나라 지역을 평정했는데 다시 멀리까지 도모하겠습니까?”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바로 지금 강가를 따라 진지를 세우고 전선을 준비하는데 이것이 강동을 도모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면 어느 땅을 취하고자 하는 것이겠습니까?”

 

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만약 그가 병탄할 마음이 있다면 우리가 싸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 청하건대 그대가 나를 위해 결정해 주십시오.”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제가 드릴 말씀이 있기는 한데, 다만 장군께서 기꺼이 따르지 않으실까 두렵습니다.”

 

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바라건대 높은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예전에 천하가 크게 어지러웠던 까닭에 장군께서 강동에서 일어나고 유예주께서 한수 남쪽에서 무리를 모아서 조조와 나란히 천하를 다툴 수 있었습니다. 이제 조조는 큰 어려움을 없애버리고 대략 평정했습니다. 요새 다시 형주를 깨뜨려 위세가 천하를 뒤흔듭니다. 비록 영웅이 있더라도 무력을 쓸 수 있는 땅이 없게 됐습니다. 그래서 예주께서 여기까지 피해 왔습니다. 바라건대 장군께서는 힘을 헤아려 대처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오월 지방 사람들로써 중원과 맞설 수 있다면 일찍 조조와 단교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그럴 수 없다면 어찌 모사들이 의논하듯이 병력을 거두고 갑옷을 벗어 북면하여 그를 섬기는 것을 따르지 않습니까?”

 

했다.

 

權未及答孔明又曰將軍外托服從之名內懷疑貳之見事急而不斷禍至無日矣權曰誠如君言劉豫州何不降操孔明曰昔田橫齊之壯士耳猶守義不辱況劉豫州王室之胄英才蓋世衆士仰慕事之不濟此乃天也又安能屈處人下乎孫權聽了孔明此言不覺勃然變色拂衣而起退入後堂衆皆哂笑而散魯肅責孔明曰先生何故出此言幸是吾主寬洪大度不即面責先生之言藐視吾主甚矣孔明仰面笑曰何如此不能容物耶我自有破曹之計彼不問我我故不言肅曰果有良策肅當請主公求教孔明曰吾視曹操百萬之衆如群蟻耳但我一舉手則皆爲齏粉矣

 

손권이 미처 답하지 못하는데 공명이 다시 말하기를,

 

장군께서 겉으로 그에게 복종한다고 하면서 안으로 머뭇거리며 다른 마음을 먹다가는 사세가 다급하여 결단하지 못해 재앙이 언제 닥칠지 모릅니다.”

 

했다. 손권이 말하기를,

 

참으로 그대의 말과 같다면 유예주께서는 어째서 조조에게 항복하지 않소?”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옛날의 전횡은 제나라의 장사였으나 오히려 의리를 지켜 욕되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유예주께서는 왕실의 후예로서 그 영웅의 재질이 세상을 뒤덮고 뭇 선비가 우러러 사모합니다. 일이 성공하지 못하는 것도 하늘의 뜻이니, 어찌 몸을 굽혀 남의 밑에 처하겠습니까?”

 

했다. 손권이 공명의 이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불끈 낯빛이 바뀌어, 옷깃을 털고 일어나 후당으로 물러나 들어갔다. 모두들 비웃으며 흩어졌다. 노숙이 공명을 책망해 말하기를,

 

선생은 어쩌자고 그런 말을 하십니까? 다행히 저희 주공께서 관대하고 도량이 넓어서 그 자리에서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선생의 말씀은 저희 주공을 몹시 깔본 것입니다.”

 

하니, 공명은 얼굴을 들고 웃으며 말하기를,

 

어째서 그 말이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까? 내 나름대로 조조를 깨부술 계책이 있는데 제게 묻지 않으시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했다. 노숙이 말하기를,

 

정말 좋은 계책이 있다면 제가 마땅히 주공께 청해 가르침을 구하라 하겠습니다.”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제가 보기에 조조의 백만 무리도 개미떼 같을 뿐입니다! 제가 한번 손을 쓰면 그들 모두 가루가 될 것입니다!”

 

했다.

 

肅聞言便入後堂見孫權權怒氣未息顧謂肅曰孔明欺吾太甚肅曰臣亦以此責孔明孔明反笑主公不能容物破曹之策孔明不肯輕言主公何不求之權回嗔作喜曰原來孔明有良謀故以言詞激我我一時淺見幾誤大事便同魯肅重複出堂再請孔明敘話權見孔明謝曰適來冒瀆威嚴幸勿見罪孔明亦謝曰亮言語冒犯望乞恕罪權邀孔明入後堂置酒相待

 

노숙이 이 말을 듣고는 곧 후당으로 들어가 손권을 만났다. 손권은 노기가 가라앉지 않아 노숙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공명이 나를 이토록 업신여기다니!”

 

하니, 노숙이 말하기를,

 

신도 역시 그것으로 공명을 책망했더니, 그가 도리어 웃으며 주공께서 능히 용납하지 못하시므로 그가 조조를 쳐부술 계책을 쉽게 말씀드릴 수 없다 했습니다. 주공께서 어찌하여 그것을 물어보지 않습니까?”

 

했다. 손권이 성냄을 돌려 기뻐하며 말하기를,

 

원래 공명이 좋은 꾀를 가지고도 일부러 나를 자극하는 말을 했구려. 내가 한때의 얕은 생각으로 대사를 그르칠 뻔했소.”

 

하고, 곧 노숙과 함께 다시 관청 당상으로 나가 공명에게 이야기를 청했다. 손권이 공명을 보고 사과하기를,

 

방금 선생의 청정하고 엄숙함을 모독한 것을 아무쪼록 용서해 주시오.”

 

하니, 공명도 역시 사과하여 말하기를,

 

제 말이 지나쳤습니다. 바라건대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했다. 손권이 공명을 후당으로 들게 하여 술을 내어 대접했다.

 

數巡之後權曰曹操平生所惡者呂布劉表袁紹袁術豫州與孤耳今數雄已滅獨豫州與孤尚存孤不能以全吳之地受制於人吾計決矣非劉豫州莫與當曹操者然豫州新敗之後安能抗此難乎孔明曰豫州雖新敗然關雲長猶率精兵萬人劉琦領江夏戰士亦不下萬人曹操之衆遠來疲憊近追豫州輕騎一日夜行三百裏此所謂強弩之末勢不能穿魯縞者也且北方之人不習水戰荊州士民附操者迫於勢耳非本心也今將軍誠能與豫州協力同心破曹軍必矣操軍破必北還則荊吳之勢強而鼎足之形成矣成敗之機在於今日惟將軍裁之

 

몇 차례 술잔이 돈 후에 손권이 말하기를,

 

조조가 평소 미워하던 자들은 여포, 유표, 원소, 원술, 예주(유비) 그리고 저뿐입니다. 이제 영웅들이 멸망하고 예주와 제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저는 동오 땅을 모조리 남에게 바칠 수는 없습니다. 내 계획은 결정되었습니다. 유예주가 아니라면 함께 (힘을 합쳐) 조조와 싸울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유예주가 이제 패했으니 어찌 이 난적에게 대항하겠습니까?”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예주께서 비록 얼마 전에 패하셨다 하나 관운장이 아직도 정병 1만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유기도 강하에서 전사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역시 1만을 밑돌지 않습니다. 조조 무리는 멀리서 오느라 몹시 피로합니다. 요새 예주를 추격하느라 저들이 경기병을 동원해 하루 밤낮에 3백 리를 내달렸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아무리 센 화살이라도 그 끝에 가서는 얇은 비단조차 뚫지 못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북쪽 사람들은 수전에 서툽니다. 형주의 사대부와 백성들이 조조에게 붙은 것은 형세가 급박해서일 뿐이지 본심은 아닙니다. 이제 장군께서 진실로 유예주와 한 마음으로 협력하시면 반드시 조조의 군대를 격파할 것입니다. 조조 군대가 격파되면 반드시 북쪽으로 돌아갈 것이고 형주와 동오의 세력은 강해져서 결국 솥발 같은 형세가 될 것입니다. 성패의 기회는 오늘에 달렸습니다. 장군께서 잘 헤아려 주십시오.”

 

했다.

 

權大悅曰先生之言頓開茅塞吾意已決更無他疑即日商議起兵共滅曹操遂令魯肅將此意傳諭文武官員就送孔明於館驛安歇張昭知孫權欲興兵遂與衆議曰中了孔明之計也急入見權曰昭等聞主公將興兵與曹操爭鋒主公自思比袁紹若何曹操向日兵微將寡尚能一鼓克袁紹何況今日擁百萬之衆南征豈可輕敵若聽諸葛亮之言妄動甲兵此所謂負薪救火也孫權只低頭不語顧雍曰劉備因爲曹操所敗故欲借我江東之兵以拒之主公奈何爲其所用乎願聽子布之言

 

손권이 크게 기뻐해 말하기를,

 

선생의 말씀을 들으니 막혔던 것이 갑자기 뚫린 듯합니다. 제 뜻은 결정됐으니 이제 다른 망설임은 없습니다. 곧 병력을 일으킬 것을 상의하여 함께 조조를 멸합시다.”

 

하고, 마침내 노숙에게 명해서 이 뜻을 문무 관원들에게 전하게 하고, 공명을 여관으로 보내 쉬게 했다. 장소가 손권이 병력을 일으키려는 것을 알고 곧 사람들과 의논하여 말하기를,

 

공명의 계략에 빠지고 말았구려!”

 

하고, 급히 들어가 손권을 만나 말하기를,

 

저희가 듣자니 주공께서 병력을 일으켜 조조와 싸울 것이라 합니다. 주공께서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원소와 비교해 어떻습니까? 조조는 지난날 병력은 미미하고 장수는 적었지만 북소리 한번 울려 원소를 이겼습니다. 하물며 오늘날 그가 백만 대군을 거느려 남쪽을 정벌하는데 어찌 함부로 대적하시겠습니까? 만약 제갈량의 말을 듣고 망령되게 군대를 움직이신다면 이것은 이른바 장작을 짊어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입니다.”

 

했다. 손권이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이 없었다. 고옹이 말하기를,

 

유비가 조조에게 패전했으므로 우리 강동의 병력을 빌려서 그에게 맞서려는 것인데 주공께서 어찌해서 이용당하려 하십니까? 바라건대 자포(장소)의 말을 들으소서.”

 

했다.

 

孫權沉吟未決張昭等出魯肅入見曰適張子布等又勸主公休動兵力主降議此皆全軀保妻子之臣爲自謀之計耳原主公勿聽也孫權尚在沉吟肅曰主公若遲疑必爲衆人誤矣權曰卿且暫退容我三思肅乃退出時武將或有要戰的文官都是要降的議論紛紛不一

 

손권이 낮게 신음하며 결정하지 못했다. 장소 등이 나가자 노숙이 들어와 말하기를,

 

장자포(장소) 등이 또다시 주공께 병력 출동을 하지 말라고 권하며 항복하자고 조르니 이 모두가 제 몸과 처자식이나 보전하려는 신하들이 스스로를 위해 세운 계책일 뿐입니다.”

 

했다. 손권은 아직 망설이는데 노숙이 말하기를,

 

주공께서 머뭇거리시다가는 반드시 사람들이 주공을 그르치고 맙니다.”

 

하니, 손권이 말하기를,

 

경은 잠시 물러가시오. 내가 거듭 생각해 보리다.”

 

했다. 이에 노숙이 물러났다. 당시에 무장들 가운데 일부는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문관들은 모두 항복해야 한다고 해서, 의논이 분분해 일치되지 않았다.

 

且說孫權退入內宅寢食不安猶豫不決吳國太見權如此問曰何事在心寢食俱廢權曰今曹操屯兵於江漢有下江南之意問諸文武或欲降者或欲戰者欲待戰來恐寡不敵衆欲待降來又恐曹操不容因此猶豫不決吳國太曰汝何不記吾姐臨終之語乎孫權如醉方醒似夢初覺想出這句話來正是追思國母臨終語引得周郎立戰功

 

한편, 손권은 안으로 물러가서 먹고 자기를 제대로 못하며 머뭇거리며 결정하지 못했다. 오 국태(손권의 어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묻기를,

 

무슨 일이 마음에 걸려 침식을 모두 폐하느냐?”

 

하니, 손권이 말하기를,

 

이제 조조가 강한(장강과 한수)에 진을 치고 강남을 함락할 뜻을 가졌습니다. 문무 관리들에게 물으니 어떤 이는 항복하자 하고, 어떤 이는 싸우자 합니다. 싸우자니 중과부적일까 걱정이고 항복하자니 조조가 용납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이래서 머뭇거리며 결정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했다. 오국태가 말하기를,

 

너는 어찌 내 언니가 임종하며 남긴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하니, 손권이 마치 술에 취했다가 방금 깨어난 듯, 꿈에서 막 벗어난 듯 그 말이 생각났다. 이야말로, 국모가 임종하며 남긴 말을 떠올려서, 주랑을 데려와서 전공을 세우게 하겠구나.

 

畢竟說著甚的且看下文分解

 

결국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다음 회의 이야기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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