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식의 교만, 부모의 책임 [敎子以義 교자이의]
敎 가르칠 교, 子 아들 자, 以 써 이, 義 옳을 의
옛날 옛적, 호조판서(戶曹判書) 김좌명(金佐明) 대감이 있었다. 이 양반이 얼마나 성실(誠實)을 중시했는지, 한 번은 하인 중에 성실한 최술(崔戌)을 서리(書吏)로 임명해서 재물 관리(財務管理)를 맡겼다. 이게 웬걸, 잘하더라. 최술(崔戌)이 머리가 좋고 손이 빠르니, 일이 착착 진행됐다.
그런데 어느 날, 최술(崔戌)의 어머니가 대감 댁 대문을 똑똑 두드리며 등장! 눈물 글썽이며 말씀하길, "대감, 큰일 났습니다. 아들이 너무 큰 자리에 올라버려 걱정이옵니다." 사연인즉, 최술(崔戌)이 대감의 은덕(恩德) 덕에 쌀밥 먹고 살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중요한 자리를 맡자마자 부잣집에서 사위로 데려갔다는 것. 사위 됐으니 좋을 줄 알았는데, 문제는 처가(妻家)에서 뱅엇국을 먹다가 입을 비쭉거리며 "이거 맛없다." 한마디를 내뱉더라는 것이다.
“열흘 만에 사치(奢侈)한 마음이 이 지경이니, 재물 관리 오래 맡기면 큰 죄(罪)를 짓고 말 것입니다. 외아들이 벌 받을 걸 생각하니 억장(億丈)이 무너집니다. 다른 자리로 옮겨주시고, 쌀 몇 말만 내려주셔서 굶지 않게만 해주십시오.”
김좌명(金佐明) 대감은 고개를 끄덕이며, “훌륭한 어머니로구나. 재물 관리하는 사람이 사치(奢侈)에 물들면 곧 국고(國庫)가 텅 비게 마련인데, 그걸 미리 짚어내다니...”라고 칭찬하며 최술(崔戌)을 다른 자리로 옮겨주었다. 《逸士遺事》(일사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머니의 마음은 참으로 애틋하고, 김 대감의 배려는 따뜻하기 그지없다.
자, 또 한 가지. 정승(政丞) 남재(南在)라는 분이 있었고, 그의 손자 남지(南地)가 음덕(蔭德)으로 감찰(監察)이 되었다. 근데 이 녀석이 하도 어려서 할아버지가 퇴근할 때마다 매번 물었다. “오늘 무슨 일 있었느냐?” 어느 날 남지(南地)가 자랑스럽게 말하길, “하급 관리가 창고에서 비단(緋緞)을 훔쳐서 나가길래, 세 번이나 ‘다시 들어가!’라고 해서 결국 놓고 나가게 만들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남재(南在) 공이 “이제 묻지 않아도 되겠구나. 너도 이제는 판단이 서는구나.” 하셨다는 것. 이건 《國朝人物志》(국조인물지)에 나오는 이야기다.
자식이 대기업에 취직해서 월급 왕창 받으면? 아, 부모가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녀도 시원찮은 판에, 보면 자식 태도가 확 바뀐다. 어제까지 "저는 그냥 평범한 학생이에요" 하던 애가 어느새 “내가 이 회사에서 몸 담고 있는 사람이야, 알아?”라고 어깨에 힘 잔뜩 들어간다. 이러다 어머니가 그걸 보고 한숨 푹. “야, 이러다 사고 치겠구나. 저 자리를 물려주자.”
근데 요즘 그런 어머니가 있을까? 예전엔 그런 얘기가 있었지만 요즘은... 글쎄, 손톱에 장도 깎여야 정신 차릴까 싶을 때가 많다. 예전에 최술의 어머니가 있었던가 하면, 요즘에는 자식이 회사에서 어쩌다 구박이라도 받으면 "우리 애한테 왜 그래!" 하고 회사 찾아가 난리법석 치는 부모가 더 많지 않은가.
또 있다. 옛날 남재 공처럼 손자가 관리직에 오르면 할아버지들은 퇴근길에 "무슨 일 있었느냐?" 하며 물었다. "아이고, 우리 집안이 대대로 해먹은 게 많아 남은 것들도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야." 그래서 자식이 잘 하는지 매일 점검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 "아이고, 사내놈이 그 정도 돈 벌면서 호화스러운 차 한 대 못 사나?"라는 쪽이 더 많다.
가르칠 때는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혼나야 한다.
지금은? 학교에서 애가 잘못을 저질러 혼나도, 부모가 학교로 쫓아가서 선생님 멱살 잡고 "우리 애한테 왜 그러냐!" 하고 난리다. 아니, 그러면 애는 나중에 어떻게 되겠는가. 김좌명 대감이 어머니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처럼, 어머니의 배려심 깊은 조언에 귀 기울여야지. 그게 바로 ‘가정 교육(家庭敎育)’이라는 것이다.
현대(現代)는 더 막장이야. 떼돈 번 부모들은 몇 억짜리 스포츠카를 사줘서 자식이 도심에서 질주(疾走)하게 만들고, 그 자식은 남의 목숨 담보로 스릴 즐기며 달린다. 대체 누가 이 자식을 이렇게 키웠는가. 지하철에서 20대가 80대 노인에게 쌍욕(雙辱)을 해대는 세상에 어찌 어른 공경(敬老尊長)을 찾을 수 있겠는가? 눈에 뵈는 게 없다더니, 진짜 눈에 뵈는 게 없어졌다.
이건 다 누구 잘못인가? 바로 부모다.
집에서 배운 걸 밖에서도 쓴다. 집에서 뭐든 얻어먹고 자란 녀석이 밖에 나가서 예의를 지킬 줄 알겠나? 옛날 김좌명(金佐明) 대감의 지혜, 남재(南在) 공의 교육을 좀 본받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자식이 나라에 독(毒)을 끼칠지 모른다.
“때리고 싶거든 미리 때려라(先犯制人 선범제인)”이라는 말이 있다. 가르칠 때는 확실히 가르쳐야 하고, 혼날 때는 혼나야 한다. 그래야 자식이 올바로 자라고, 나라가 바로 선다.
자식은 나라의 거울이고, 그 자식의 행동거지(行動擧止)는 부모의 거울이다. 요즘 부모들, 제발 거울 좀 닦으시라. 멀쩡한 거울인데 먼지가 쌓이면 아무리 빛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조심하자. 자식의 교만(驕慢)은 부모의 책임(責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