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漢詩 한 수/10월의 漢詩

1026. 사랑스러운 내 아들[稚子 치자]

진현서당 2024. 10. 16. 05:54



稚子美顔色,
陰晴了不憂.
草暄奔似犢,
果熟挂如猴.
岸屋流蓬矢,
溪幼汎芥舟.
紛紛維世者,
堪與爾同游!



얼굴도 잘 생긴 어린 내 아들,
흐리거나 맑거나 걱정이 없네.
풀밭이 따스하면 송아지처럼 내빼고,
과일이 익으면 원숭이인 양 매달리네.
언덕배기 지붕에서 쑥대 화살 날리고,
시냇가 웅덩이에 풀잎배를 띄우네.
어지럽게 세상에 매인 자들아,
어떻게 너희들과 함께 놀겠나!


치자미안색, 음청료불우.
초훤분사독, 과숙괘여후.
안옥류봉시, 계요범개주.
분분유세자, 감여이동유!

정약용(丁若鏞·1762~1836)

 

다산의 천진난만한 아들놈 이야기: 나도 아이였다

 

稚子美顔色, 陰晴了不憂.

아이고, 이 잘생긴 아들놈 좀 봐라! 얼굴이 밝고 환하게 잘 생긴 게, 하루 종일 맑거나 흐리거나 비 오나 눈 오나 걱정이 없어! 날씨 예보? 그런 건 몰라. 天晴雨陰(천청우음), 그저 하루가 다 똑같이 놀기 좋은 날일 뿐. 이 녀석이야말로 진정한 무소유의 삶을 실천 중이다. 도무지 세상의 그 어떤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이 아이의 평정심, 부처님도 감탄할 수준이다.

 

草暄奔似犢, 果熟挂如猴.

날씨가 따뜻해 풀밭이 暄暄(훤훤)하게 풀내음 피어나면, 이 녀석은 어디선가 ()처럼 뛰쳐나가 풀밭을 헤집고 돌아다닌다. 산 넘고 들 넘고 東奔西走(동분서주)하는 기운찬 모습이 그야말로 씩씩한 송아지 같네. 그뿐인가? 나무에 매달려 열매가 주렁주렁 익어가면, 거기에 달라붙어 놀고 있는 걸 보면, () 같은 장난꾸러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어허, 원숭이도 이렇게 잘 놀지 않겠어?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이란 이토록 경이로운 것.

 

岸屋流蓬矢, 溪幼汎芥舟.

이 녀석, 지붕 위에서 쑥대를 휘둘러 화살처럼 날리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더니, 이번엔 시냇가로 가서 또 뭘 하고 있나 했더니만 풀잎 배를 띄우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蓬矢(봉시)처럼 날아가는 이 화살 같은 놀이를 하는가 하면, 芥舟(개주)처럼 조그맣고 약한 풀잎 배를 띄우는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철없지만 사랑스럽다. 이 정도쯤 되면 진정한 遊童(유동)의 대가라 할 수 있지 않겠나?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이 아이는 그저 자신의 작은 세상에서 마음껏 노는 중이다.

 

紛紛維世者, 堪與爾同游!

이제 우리 다산 선생께서 세상의 어른들에게 일침을 날리신다. "紛紛(분분), 이리저리 치이고 저리저리 얽혀 있는 세상 사람들아, 도대체 무슨 재주로 내 아들과 놀 수 있겠느냐!" 그렇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복잡하고 험해도, 이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가지지 못한 자들은 절대 함께 어울릴 수 없는 것이다. ()란 누구인가? 바로 세상사에 매여 憂鬱(우울)하고 患得患失(환득환실) 하며 하루하루 고민만 하는 그대들이라네.

 

다산 선생님도 결국은 평범한 아버지였다. 잘생긴 아들을 보면서 기뻐하고, 놀며 웃는 아이의 모습에서 잠시라도 행복을 찾으셨을 게다. 그도 사람인지라, 세상사가 아무리 복잡해도, 눈 앞의 아이가 그냥 귀엽고 좋아서 못 이기는 척 이 시를 썼던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바깥세상으로 나가보면 그때부터는 딴판이다. 세상이란 얽히고 설킨 紛亂(분란)의 연속이 아니던가? 사람들은 모두 제 일만 생각하고, 남을 짓밟아야 자신이 살아남는다고 여긴다. 그러니 어떻게 이 세상 속에서 어린아이처럼 맑고 천진한 마음을 지킬 수 있을까?

 

어쩌면 다산의 시는 단순히 아들의 귀여움 자랑만이 아니라, 그 아이의 천진함에서 세상의 한 조각 구원을 찾고자 했던 마음일지도 모른다. 無憂無慮(무우무려)한 아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도 잠시나마 그 무거운 현실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랐던 것 아닐까?

 

그래, 세상은 여전히 勞心(노심)하고 勞力(노력) 해야 굴러가겠지만, 잠깐이라도 다산의 아들처럼 뛰놀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약용 선생님이 우리에게 건네는 이 시 속의 메시지, 결국은 遊戲(유희)의 중요성 아닐까? "분분유세자, 감여이동유!" 진짜 이 시는 "어차피 이렇게 복잡한 세상이라면, 잠깐이라도 아들처럼 마음껏 놀아보시게!" 하고 권하는 것만 같다. 遊兒(유아)처럼, 세상을 좀 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살라, 그게 세상을 사는 또 다른 지혜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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