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 나관중/제4권 삼국지연의 나관중

제39회 형주성에서 공자가 계책을 세 번 구하고, 박망파에서 군사가 처음으로 용병하다.

진현서당 2024. 10. 14. 01:53

第三十九回

荊州城公子三求計 博望坡軍師初用兵

 

39

형주성에서 공자가 계책을 세 번 구하고, 박망파에서 군사가 처음으로 용병하다.

 

卻說孫權督衆攻打夏口黃祖兵敗將亡情知守把不住遂棄江夏望荊州而走甘寧料得黃祖必走荊州乃於東門外伏兵等候祖帶數十騎突出東門正走之間一聲喊起甘寧攔住祖於馬上謂寧曰我向日不曾輕待汝今何相逼耶寧叱曰吾昔在江夏多立功績汝乃以劫江賊待我今日尚有何說

 

각설, 손권이 무리를 거느리고 하구를 공격하니, 황조가 군대는 패전하고 장수들은 죽어나가서 지켜내지 못할 것을 깨닫고, 마침내 강하를 버리고 형주 쪽으로 달아났다. 감녕이 황조가 반드시 형주로 달아날 것이라 헤아리고 (강하성의) 동문 밖에 복병하여 기다렸다. 황조가 수십 기를 거느리고 동문을 벗어나서 막 달아나려는데 함성이 일어나며 감녕이 막아섰다. 황조가 말 위에서 감녕에게 말하기를,

 

내가 지난 날에 너를 박대하지 않았는데 이제 어찌하여 핍박하느냐?”

 

하니, 감녕이 꾸짖기를,

 

내가 지난 날 강하에서 공적을 많이 세워도 너는 나를 강가를 노략질하는 도적으로 대하더니 이제 도리어 무슨 말이냐?”

 

했다.

 

黃祖自知難免撥馬而走甘寧沖開士卒直趕將來只聽得後面喊聲起處又有數騎趕來寧視之乃程普也寧恐普來爭功慌忙拈弓搭箭背射黃祖祖中箭翻身落馬寧梟其首級回馬與程普合兵一處回見孫權獻黃祖首級權命以木匣盛貯待回江東祭獻於亡父靈前重賞三軍升甘寧爲都尉商議欲分兵守江夏張昭曰孤城不可守不如且回江東劉表知我破黃祖必來報仇我以逸待勞必敗劉表表敗而後乘勢攻之荊襄可得也權從其言遂棄江夏班師回江東

 

황조가 지나가기 어렵다고 여겨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감녕이 사졸들을 뚫고 곧장 따라붙는데 뒤에서 함성이 일어나고 몇 기가 뒤쫓아왔다. 감녕이 보니 바로 정보였다. 정보가 와서 공을 다툴까 두려워한 감녕이 황망히 활을 들어 화살을 매겨 몸을 틀어 황조를 쏘니, 황조가 화살에 맞아 몸이 뒤집어 낙마했다. 감녕이 그 머리를 잘라 말머리를 돌려 정보와 더불어 병력을 모아 돌아가 손권을 만나서 황조의 머리를 바치니, 손권이 명해 나무상자에 담아 강동으로 돌아가 제사를 올려 돌아가신 부친(손견)의 영전에 바치려 했다. 3군을 크게 포상하고 감녕을 도위로 승진시켰다. 상의하여 병력을 나눠 강하를 지키려 하자, 장소가 말하기를,

 

고립된 성은 지킬 수 없으니 차라리 강동으로 돌아가는 것만 못합니다. 우리가 황조를 격파한 것을 유표가 알면 반드시 복수하러 올 것입니다. 우리가 휴식을 취하여 피로한 적병과 싸우면 유표를 반드시 패퇴시킬 것입니다. 유표를 패퇴시킨 뒤에 기세를 타 공격하면 형주와 양양 지방을 얻을 수 있습니다.”

 

했다. 손권이 그 말에 따라 곧 강하를 버리고 군사를 거둬 강동으로 돌아갔다.

 

蘇飛在檻車內密使人告甘寧求救寧曰飛即不言吾豈忘之大軍既至吳會權命將蘇飛嫋首與黃祖首級一同祭獻甘寧乃入見權頓首哭告曰某向日若不得蘇飛則骨填溝壑矣安能效命將軍麾下哉今飛罪當誅某念其昔日之恩情願納還官爵以贖飛罪權曰彼既有恩於君吾爲君赦之但彼若逃去奈何寧曰飛得免誅戮感恩無地豈肯走乎若飛去寧願將首級獻於階下權乃赦蘇飛止將黃祖首級祭獻祭畢設宴大會文武慶功

 

소비가 함거에 갇혀 몰래 사람을 보내 감녕에게 구해달라 청했다. 감녕이 말하기를,

 

소비가 말하지 않더라도 내 어찌 그를 잊겠소?”

 

하고, 대군이 오회(오군과 회계군)에 이르자 손권이 명하여 소비의 목을 잘라서 황조의 머리와 더불어 제물로 바치려 했다. 이에 감녕이 들어가 손권을 만나 머리를 조아려 소리내 울면서 고하기를,

 

제가 지난날 소비가 없었다면 이 몸이 죽어 골짜기에 버려졌을테니 어찌 장군 휘하에서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소비의 죄가 죽어 마땅하나 제가 지난날의 은정을 생각하여 바라건대 그 벼슬을 거두어 죄를 갚게 해주십시오.”

 

하니, 손권이 말하기를,

 

그가 그대에게 은혜를 베풀었다니 내가 그대를 위해 사면해 주겠소. 다만 그가 만약 달아나면 어떻게 하겠소?”

 

하였다. 감녕이 말하기를,

 

소비가 처형을 면하게 되면 은혜에 감복하기 이를 데 없을테니 어찌 달아나겠습니까? 만약 소비가 달아난다면 제가 그의 머리를 베어 섬돌 아래에서 바치기를 원합니다.”

 

했다. 손권이 이에 소비를 사면하고, 다만 황조의 머리만을 제물로 바쳤다. 제사를 마치고 주연을 베풀어 문무관리들을 크게 모아 공로를 축하했다.

 

正飲酒間忽見座上一人大哭而起拔劍在手直取甘寧寧忙舉坐椅以迎之權驚視其人乃淩統也因甘寧在江夏時射死他父親淩操今日相見故欲報仇權連忙勸住謂統曰興霸射死卿父彼時各爲其主不容不盡力今既爲一家人豈可複理舊仇萬事皆看吾面淩統即頭大哭曰不共戴天之仇豈容不報權與衆官再三勸之淩統只是怒目而視甘寧權即日命甘寧領兵五千戰船一百只往夏口鎮守以避淩統寧拜謝領兵自往夏口去了權又加封淩統爲承烈都尉統只得含恨而止東吳自此廣造戰船分兵守把江岸又命孫靜引一枝軍守吳會孫權自領大軍屯柴桑周瑜日於鄱陽湖教練水軍以備攻戰

 

한창 술을 마시는데 홀연히 좌상에서 한 사람이 크게 곡하며 일어나서 칼을 뽑아 들고 곧장 감녕에게 덤벼들었다. 감녕이 황망히 의자를 들어 막았다. 손권이 놀라 바라보니 바로 능통이었다. 감녕이 강하에 있을 적에 그 아버지 능조를 사살했는데, 이제 서로 만나니 원수를 갚으려는 것이었다. 손권이 잇따라 황망히 말리며 능통에게 말하기를,

 

흥패(감녕의 자)가 경의 부친을 사살한 것은 당시 각자의 주군을 위해서 힘을 다하지 않을 수 없어서였소. 이제 한 집안이 되었는데 어찌 다시 옛날의 원수를 따지겠소? 어떤 사정이 있더라도 내 면목을 봐주시오.”

 

하니, 능통이 머리를 조아려 크게 곡하며 말하기를,

 

원수와 같은 하늘 아래 못 살거늘 어찌 복수를 않겠습니까?”

 

했다. 손권과 관리들이 거듭 권하나 능통은 감녕을 노려볼 뿐이었다. 손권이 그날로 감녕에게 명해 5천 병력과 전선 1백척을 거느리고 하구로 가서 지키게 하여 능통을 피하게 했다. 감녕이 절을 올려 사례하고 병력을 거느려 하구로 갔다. 손권이 또한 능통에게 승렬도위 벼슬을 더하니 능통이 어쩌지 못해 한을 품은 채 그쳤다. 동오(東吳)가 이로부터 널리 전선을 건조하고 병력을 나누어 강변을 지켰다. 또한 손정에게 명해 한 무리 군사를 이끌고 오군과 회계군을 지키게 했다. 손권이 스스로 대군을 거느려고 시상(구강시 서남쪽)에 주둔했다. 주유가 매일 파양호에서 수군을 교련하여 공격전에 대비했다.

 

話分兩頭卻說玄德差人打探江東消息回報東吳已攻殺黃祖現今屯兵柴桑玄德便請孔明計議正話間忽劉表差人來請玄德赴荊州議事孔明曰此必因江東破了黃祖故請主公商議報仇之策也某當與主公同往相機而行自有良策玄德從之留雲長守新野令張飛引五百人馬跟隨往荊州來玄德在馬上謂孔明曰今見景升當若何對答孔明曰當先謝襄陽之事他若令主公去征討江東切不可應允但說容歸新野整頓軍馬

 

이야기가 두갈래로 갈라진다. 한편, 현덕이 사람을 보내 강동의 소식을 알아보게 하니 돌아와 보고하기를,

 

동오가 황조를 공격해 죽이고 지금 시상에 주둔해 있습니다.”

 

하니, 현덕이 곧 공명을 불러 토의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문득 유표가 사람을 보내 현덕을 형주로 불러 일을 의논하고자 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이것은 틀림없이 강동이 황조를 격파했기 때문에 주공을 청해 복수할 계책을 상의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가 주공과 동행하여 기회를 보아 조치하겠습니다. 제 나름대로 좋은 계책이 있습니다.”

 

하니, 현덕이 그 말에 따라 운장을 남겨서 신야를 지키게 하고 장비에게 명해 5백 인마를 이끌고 형주로 수행케 했다. 현덕이 말 위에서 공명에게 말하기를,

 

이제 경승(유표의 자)을 만나면 어떻게 대답해야겠습니까?”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먼저 양양에서 일어난 일을 사과하십시오. 그가 만약 주공께 강동을 치라 해도 절대 응해선 안 됩니다. 다만 신야로 돌아가 군마를 정돈케 해달라고만 말씀하십시오.”

 

했다.

 

玄德依言來到荊州館驛安下留張飛屯兵城外玄德與孔明入城見劉表禮畢玄德請罪於階下表曰吾已悉知賢弟被害之事當時即欲斬蔡瑁之首以獻賢弟因衆人告危故姑恕之賢弟幸勿見罪玄德曰非幹蔡將軍之事想皆下人所爲耳表曰今江夏失守黃祖遇害故請賢弟共議報複之策玄德曰黃祖性暴不能用人故致此禍今若興兵南征倘曹操北來又當奈何表曰吾今年老多病不能理事賢弟可來助我我死之後弟便爲荊州之主也玄德曰兄何出此言量備安敢當此重任

 

현덕이 그 말에 따라 형주에 이르러서 관역(여관)에서 쉬고 장비를 성밖에 머물러 주둔케 했다. 현덕이 공명과 더불어 성에 들어가 유표를 만났다. 예를 마치고 현덕이 섬돌 아래에서 죄를 청하자 유표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아우님이 해를 입은 일을 모두 알고 있소. 당시 채모의 목을 바로 베어 아우님께 드리려 했으나 사람들이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해서 용서해 주었소. 아우님은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주시오.”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채 장군이 간여한 일이 아니라 모두 아랫사람이 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했다. 유표가 말하기를,

 

이제 강하를 지키지 못하고 황조가 해를 입었기에 아우님을 청해 복수할 계책을 함께 의논하고자 하오.”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황조는 난폭하고 사람을 쓸 줄 몰라 이렇게 화를 입었습니다. 지금 출병해 남쪽을 치다가 만약 조조가 북쪽에서 쳐들어 온다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했다. 유표가 말하기를,

 

내가 이제 늙고 병이 많아 일을 능히 처리하지 못하니 아우님께서 와서 나를 도와주시고, 내가 죽은 뒤에 형주의 주인이 되어 주시오.”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형님께서 어찌 이런 말씀을 꺼내십니까? 제가 감히 어찌 이런 중임을 감당하겠습니까?”

 

했다.

 

孔明以目視玄德玄德曰容徐思良策遂辭出回至館驛孔明曰景升欲以荊州付主公奈何卻之玄德曰景升待我恩禮交至安忍乘其危而奪之孔明歎曰真仁慈之主也正商論間忽報公子劉琦來見玄德接入琦泣拜曰繼母不能相容性命只在旦夕望叔父憐而救之玄德曰此賢侄家事耳奈何問我孔明微笑玄德求計於孔明孔明曰此家事亮不敢與聞少時玄德送琦出附耳低言曰來日我使孔明回拜賢侄可如此如此彼定有妙計相告琦謝而去

 

공명이 현덕에게 눈짓을 하자 현덕이 말하기를,

 

제가 천천히 좋은 계책을 생각해보겠습니다.”

 

했다. 작별하고 나와서 관역으로 돌아갔다. 공명이 말하기를,

 

경승께서 형주를 주공께 맡기려는데 어찌하여 거절하십니까?”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경승이 나를 여태 은혜와 예의로 대했거늘 어찌 차마 그의 위기를 틈타 빼앗겠습니까?”

 

했다. 공명이 탄식하기를,

 

참으로 인자하신 주공이십니다!”

 

했다. 상의하고 있는데 문득 공자 유기가 찾아왔다고 알렸다. 현덕이 맞이하여 들이니 유기가 눈물을 흘리며 절을 올리고 말하기를,

 

계모가 저를 미워해서 제 목숨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니 숙부께서 가련히 여겨 구해 주시기 바랍니다.”

 

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이것은 조카님의 집안 일인데 어찌 내게 물으시오?”

 

했다. 공명이 미소를 지으니 현덕이 공명에게 계책을 구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이것은 집안 일이라 제가 감히 알은 체 할 수가 없습니다.”

 

했다. 잠시 뒤 현덕이 유기를 데리고 나가 귓속말로 말하기를,

 

내일 내가 공명을 조카님께 보낼테니 여차여차 하면 그가 틀림없이 절묘한 계책을 알려줄 것이오.”

 

했다. 유기가 사례하고 떠났다.

 

次日玄德只推腹痛乃浼孔明代往回拜劉琦孔明允諾來至公子宅前下馬入見公子公子邀入後堂茶罷琦曰琦不見容於繼母幸先生一言相救孔明曰亮客寄於此豈敢與人骨肉之事倘有漏泄爲害不淺說罷起身告辭琦曰既承光顧安敢慢別乃挽留孔明入密室共飲飲酒之間琦又曰繼母不見容乞先生一言救我孔明曰此非亮所敢謀也言訖又欲辭去琦曰先生不言則已何便欲去孔明乃複坐琦曰琦有一古書請先生一觀乃引孔明登一小樓孔明曰書在何處琦泣拜曰繼母不見容琦命在旦夕先生忍無一言相救乎

 

이튿날 현덕이 배가 아프다며 공명에게 자기 대신 유기를 찾아가서 인사하라고 부탁했다. 공명이 응낙하고 공자 유기의 집 앞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들어가 공자를 만났다. 공자가 맞아 후당으로 불러 들였다. 차를 마시고 유기가 말하기를,

 

제가 계모에게 미움을 받고 있는데 선생께서 한 말씀을 가르쳐서 저를 구해주십시오.”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제가 여기 손님으로 머물러 있으면서 어찌 다른 사람들 골육 사이의 일을 간여하겠습니까? 만약 누설되면 해를 입음이 얕지 않을 것입니다.”

 

했다. 말을 마치고 몸을 일으켜 가겠다고 했다. 유기가 말하기를,

 

이왕 왕림하셨는데 어찌 감히 소홀히 대접해 떠나게 하겠습니까?”

 

하고, 공명을 만류하여 밀실로 데려가 함께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다가 유기가 다시 말하기를,

 

계모가 미워하니 아무쪼록 선생께서 한 말씀으로 저를 구해주십시오.”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이것은 제가 감히 꾀할 게 못 됩니다.”

 

했다. 말을 마치고 다시 떠나려 하자 유기가 말하기를,

 

선생께서 말을 안 하시면 그만이지 어찌 바로 가시려 하십니까?”

 

했다. 공명이 이에 다시 앉자 유기가 말하기를,

 

제게 고서가 한 권 있는데 청컨대 선생께서 한번 살펴보시지요.”

 

하고, 공명을 이끌어 작은 누각에 올라갔다. 공명이 말하기를,

 

책이 어디 있습니까?”

 

하니, 유기가 눈물 흘리며 절을 올려 말하기를,

 

계모가 미워해서 제 목숨이 아침저녁에 달렸는데 선생께서 저를 구할 한 마디도 차마 말씀하지 못하시겠습니까?”

 

했다.

 

孔明作色而起便欲下樓只見樓梯已撤去琦告曰琦欲求教良策先生恐有泄漏不肯出言今日上不至天下不至地出君之口入琦之耳可以賜教矣孔明曰疏不間親亮何能爲公子謀琦曰先生終不幸教琦乎琦命固不保矣請即死於先生之前乃掣劍欲自刎孔明止之曰已有良策琦拜曰願即賜教孔明曰公子豈不聞申生重耳之事乎申生在內而亡重耳在外而安今黃祖新亡江夏乏人守禦公子何不上言乞屯兵守江夏則可以避禍矣琦再拜謝教乃命人取梯迭孔明下樓孔明辭別回見玄德具言其事玄德大喜

 

공명이 낯빛을 고쳐 일어나서 바로 누각을 내려가려 하나 사다리가 이미 치워져 있었다. 유기가 고하기를,

 

제가 좋은 계책을 가르쳐 달라고 하나 선생께서 누설을 걱정하셔서 기꺼이 말씀을 꺼내시지 않습니다. 이제 위로는 하늘에 이르지 못하고 아래로 땅에 이르지 못하게 되어 그대께서 말씀하셔도 제 귀에만 들어올 뿐이니 가르침을 내려주실 수 있게 됐습니다.”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남이 친척 사이를 가를 수 없다고 했는데 제가 어찌 공자를 위해 꾀를 내겠습니까?”

 

했다. 유기가 말하기를,

 

선생께서 끝내 제게 가르침을 내리시지 않으면 제 목숨을 참으로 지키지 못하오니 청컨대 선생 앞에서 죽어버리겠습니다.”

 

하고, 이에 칼을 뽑아 자살하려 하자 공명이 말리며 말하기를,

 

진작에 좋은 계책이 있습니다.”

 

했다. 유기가 절을 하고 말하기를,

 

어서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공자께서 어찌 (진헌공晉獻公의 두 아들인) 신생과 중이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셨습니까? 신생은 안에 있다 죽고 중이는 밖에 있어 살았습니다. 이제 바로 황조가 패망해 강하를 지킬 사람이 없는데 공자께서는 어찌 강하에 주둔해 지키겠다는 말씀을 올리시지 않습니까? 그러면 재앙을 피할 수 있습니다.”

 

했다. 유기가 두번 절하여 가르침에 사례하고 부하에게 명해 사다리를 가져오게 하여 공명을 내려 보냈다. 공명이 작별하여 돌아가서 현덕을 만나 그 일을 상세히 고하자 현덕이 크게 기뻐했다.

 

次日劉琦上言欲守江夏劉表猶豫未決請玄德共議玄德曰江夏重地固非他人可守正須公子自往東南之事兄父子當之西北之事備願當之表曰近聞曹操於鄴郡作玄武池以練水軍必有南征之意不可不防玄德曰備已知之兄勿憂慮遂拜辭回新野劉表令劉琦引兵三千往江夏鎮守

 

다음날 유기가 강하를 지키겠다는 말을 올리니, 유표가 머뭇거려 결정하지 못하고 현덕을 불러 함께 의논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강하는 중요한 곳이라 참으로 다른 사람이 수비할 곳이 못 되니 바로 공자께서 몸소 가셔야만 합니다. 동남쪽의 일은 형님 부자께서 맡으십시오. 서북쪽의 일은 제가 맡겠습니다.”

 

했다. 유표가 말하기를,

 

요새 듣자니 조조가 업군에 현무지(玄武池)를 만들어 수군을 훈련한다니 필시 남쪽을 칠 뜻이 있는 것이라 방비하지 않을 수 없소.”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제가 이미 알고 있으니 형님께서 우려치 마십시오.”

 

하고, 절을 올려 작별하고 신야로 돌아갔다. 유표가 유기에게 명해 병력 3천을 이끌고 가서 강하에 주둔해 지키게 하였다.

 

卻說曹操罷三公之職自以丞相兼之以毛玠爲東曹掾崔琰爲西曹掾司馬懿爲文學掾懿字仲達河內溫人也潁川太守司馬雋之孫京兆尹司馬防之子主簿司馬朗之弟也自是文官大備乃聚武將商議南征夏侯惇進曰近聞劉備在新野每日教演士卒必爲後患可早圖之

 

한편, 조조가 3공의 직위를 없애고 스스로 승상으로서 겸직했다. 모개를 동조연(조연曹掾은 보좌관)으로 삼고, 최염을 서조연으로 삼고, 사마의를 문학연으로 삼았다. 사마의는 자가 중달인데 하내의 온현 사람이다. 영천태수 사마준의 손자이자 경조윤 사마방의 아들이고, 주부 사마랑의 아우다. 이로부터 문관들이 크게 갖춰지자 무장들을 모아 남쪽 정벌을 상의했다. 하후돈이 나아가 말하기를,

 

요새 듣자니 유비가 신야에서 매일 사졸들을 교련한다고 합니다. 반드시 후환이 될테니 어서 도모해야 합니다.”

 

했다.

 

操即命夏侯惇爲都督於禁李典夏侯蘭韓浩爲副將領兵十萬直抵博望城以窺新野荀彧諫曰劉備英雄今更兼諸葛亮爲軍師不可輕敵惇曰劉備鼠輩耳吾必擒之徐庶曰將軍勿輕視劉玄德今玄德得諸葛亮爲輔如虎生翼矣操曰諸葛亮何人也庶曰亮字孔明道號臥龍先生有經天緯地之才出鬼入神之計真當世之奇才非可小覷

 

조조가 즉시 명해 하후돈을 도독으로 삼고, 우금 이전 하후란 한호를 부장으로 삼아 10만 병력을 거느리고 곧장 박망성에 이르러 신야를 엿보게 했다. 순욱이 간언하기를,

 

유비는 영웅인데다 이제 제갈량을 군사로 삼았으니 가볍게 대적해서는 안 됩니다.”

 

하니, 하후돈이 말하기를,

 

유비는 쥐새끼 같을 뿐이니 내 반드시 잡아버리겠소.”

 

했다. 서서가 말하기를,

 

장군은 유현덕을 경시하지 마시오. 이제 현덕이 제갈량의 보좌를 받아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것과 같소.”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제갈량이 어떤 사람이오?”

 

했다. 서서가 말하기를,

 

제갈량의 자는 공명이며 도호는 와룡선생입니다. 경천위지(經天緯地 하늘과 땅을 날실과 씨줄로 삼아 천하를 주무름)의 재주를 가지고 출귀입신(出鬼入神 변화무쌍해 예측할 수 없음)의 계략을 가진, 참으로 당세의 기재이니 얕보아서는 안 됩니다.”

 

했다.

 

操曰比公若何庶曰庶安敢比亮庶如螢火之光亮乃皓月之明也夏侯惇曰元直之言謬矣吾看諸葛亮如草芥耳何足懼哉吾若不一陣生擒劉備活捉諸葛願將首級獻與丞相操曰汝早報捷書以慰吾心惇奮然辭曹操引軍登程

 

조조가 말하기를,

 

공에 비해서 어떻소?”

 

하니, 서서가 말하기를,

 

제가 어찌 감히 제갈량에게 비하겠습니까? 제가 반딧불이라면 그는 밝은 달처럼 밝습니다.”

 

했다. 하후돈이 말하기를,

 

원직의 말이 틀렸습니다. 내가 보기에 제갈량은 초개(지푸라기)와 같을 뿐인데 어찌 족히 두렵겠습니까! 내가 만약 유비와 제갈량을 한번에 사로잡지 못한다면 바라건대 제 수급을 승상께 바치겠습니다.”

 

하니, 조조가 말하기를,

 

너는 어서 승전 소식을 올려 내 마음을 기쁘게 하라!”

 

했다. 하후돈이 분연히 조조를 작별하여 군사를 이끌고 길을 나섰다.

 

卻說玄德自得孔明以師禮待之張二人不悅孔明年幼有甚才學兄長待之太過又未見他真實效驗玄德曰吾得孔明猶魚之得水也兩弟勿複多言張見說不言而退一日有人送氂牛尾至玄德取尾親自結帽孔明入見正色曰明公無複有遠志但事此而已耶玄德投帽於地而謝曰吾聊假此以忘憂耳

 

한편, 현덕이 공명을 얻은 뒤 스승의 예로써 대했다. 관우와 장비 두 사람이 불쾌해 말하기를,

 

공명이 나이 어린데 무슨 재주와 학문이 있겠오? 형장께서 그를 대우함이 너무 지나치오! 게다가 아직 그가 참으로 효험을 보인 것도 아닌데 말이오!”

 

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내가 공명을 얻은 것은 비유컨대 물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다[수어지교水魚之交]. 두 아우는 다시는 여러 말을 말라.”

 

고 했다. 관우와 장비가 그 말을 듣고 말없이 물러났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검은 들소의 꼬리를 보내오자 현덕이 그 꼬리털로 스스로 모자를 짰다. 공명이 들어와 보더니 정색하고 말하기를,

 

명공께서 원대한 뜻을 가지지 않고, 단지 이런 일이나 하십니까?”

 

하니, 현덕이 짜던 모자를 땅에 내던져 사과하고 말하기를,

 

내가 이런 틈을 내어 근심을 잊는 것뿐입니다.”

 

했다.

 

孔明曰明公自度比曹操若何玄德曰不如也孔明曰明公之衆不過數千人萬一曹兵至何以迎之玄德曰吾正愁此事未得良策孔明曰可速招募民兵亮自教之可以待敵玄德遂招新野之民得三千人孔明朝夕教演陣法忽報曹操差夏侯惇引兵十萬殺奔新野來了張飛聞知謂雲長曰可著孔明前去迎敵便了

 

공명이 말하기를,

 

명공께서 스스로 조조에 비해 어떻다 여기십니까?”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그보다 못합니다.”

 

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명공의 군사는 불과 수천 인이니 만일 한 무리의 병력이 다다르면 어찌 막겠습니까?”

 

하니, 현덕이 말하기를,

 

내가 바로 그 일을 근심하고 있지만 아직 좋은 계책을 얻지 못했습니다.”

 

했다. 공명이 말하기를,

 

어서 민병을 모집하시면, 제가 그들을 교련하여 적을 맞서게 하겠습니다.”

 

하니, 현덕이 곧 신야의 백성을 불러 모아 3천 인을 얻었다. 공명이 아침저녁으로 진법을 교련했다. 홀연 보고하기를 조조가 하후돈을 보내 10만 병력을 이끌고 신야로 쇄도해 온다고 했다. 장비가 듣고서 운장에게 말하기를,

 

공명더러 먼저 가서 적을 맞으라 하면 되겠소.”

 

했다.

 

正說之間玄德召二人入謂曰夏侯惇引兵到來如何迎敵張飛曰哥哥何不使玄德曰智賴孔明勇須二弟何可推調張出玄德請孔明商議孔明曰但恐關張二人不肯聽吾號令主公若欲亮行兵乞假劍印玄德便以劍印付孔明孔明遂聚集衆將聽令張飛謂雲長曰且聽令去看他如何調度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현덕이 두 사람을 불러 들여서 말하기를,

 

하후돈이 병력을 이끌고 왔으니 어떻게 막아야 하겠느냐?”

 

하니, 장비가 말하기를,

 

형님은 왜 을 보내지 않소?”

 

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지혜는 공명에게 의지하더라도 용맹은 두 아우가 꼭 있어야 하는데 어찌 뒤로 빠지려 하느냐?”

 

하니, 관우와 장비가 나갔다. 현덕이 공명을 청해 상의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다만 관우와 장비 두 사람이 제 명을 듣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주공께서 제게 용병을 맡기시려거든 아무쪼록 주공의 칼과 도장을 빌려주십시오.”

 

했다. 현덕이 칼과 도장을 공명에게 맡기자, 공명이 장수들을 소집해 명령을 듣게 했다. 장비가 운장에게 말하기를,

 

일단 명령을 들어보고 그가 어찌하나 봅시다.”

 

했다.

 

孔明令曰博望之左有山名曰豫山右有林名曰安林可以埋伏軍馬雲長可引一千軍往豫山埋伏等彼軍至放過休敵其輜重糧草必在後面但看南面火起可縱兵出擊就焚其糧草翼德可引一千軍去安林背後山穀中埋伏只看南面火起便可出向博望城舊屯糧草處縱火燒之關平劉封可引五百軍預備引火之物於博望坡後兩邊等候至初更兵到便可放火矣又命於樊城取回趙雲令爲前部不要贏只要輸主公自引一軍爲後援各須依計而行勿使有失

 

공명이 명령을 내리기를,

 

박망의 왼쪽에 산이 하나 있으니 이름하여 예산이요 오른쪽에 숲이 있으니 이름하여 안림이라 군마를 매복할 만하오. 운장은 1천 군사를 이끌고 예산으로 가서 매복하여 적군이 이르기를 기다렸다가 적군을 그대로 통과시키고 대적하지 마시오. 그 치중이며 군량과 말먹이가 반드시 뒤쪽에 있을 것이오. 남쪽에서 불이 치솟으면 출격해서 곧바로 군량과 말먹이를 불사르시오. 익덕은 1천 군사를 이끌고 안림 뒤쪽의 산골짜기에 매복해 있다가 남쪽에서 불이 치솟으면 곧 나와서 박망성에 양초를 쌓아둔 곳으로 가서 바로 불을 놓으시오. 관평과 유봉은 오백 군사를 이끌고 인화물을 준비하여 박망파 뒤쪽 양편에서 기다리다가 초경에 적의 군사가 이르면 곧 불을 지르시오.”

 

하고, 또 명령하기를, 번성에 가서 조운을 불러오게 하여, 그에게 선봉을 맡기고 이길 필요 없이, 다만 지는 척 달아나라고 했다. 그리고

 

주공께서 스스로 1군을 이끌고 후원할 것이오. 각자 반드시 계책에 따라 움직여서 실수가 없도록 하시오.”

 

했다.

 

雲長曰我等皆出迎敵未審軍師卻作何事孔明曰我只坐守縣城張飛大笑曰我們都去廝殺你卻在家裏坐地好自在孔明曰劍印在此違令者斬玄德曰豈不聞運籌帷幄之中決勝千裏之外二弟不可違令張飛冷笑而去雲長曰我們且看他的計應也不應那時卻來問他未遲

 

운장이 말하기를,

 

우리는 모두 나가서 적군을 맞이하는데, 군사께서는 무슨 일을 하실지 분명하지 않소.”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나는 다만 이 현성을 지키겠소.”

 

했다. 장비가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우리 모두 싸워 죽이러 나가는데 당신은 집안에 편히 있겠다니!”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칼과 도장이 여기 있소. 명령을 어기는 자 참하겠소!”

 

했다. 현덕이 말하기를,

 

어찌 듣지도 못했더냐? ‘막사 안에서 책략을 써서 천리 밖의 승부를 결정짓는다[運籌帷幄之中決勝千裏之外],’라고 하였다. 두 아우는 명령을 어겨선 안 된다.”

 

했다. 장비가 비웃으며 가버렸다. 운장이 장비에게 말하기를,

 

우리는 일단 그의 계책이 들어맞는지 안 맞는지 보고나서 그때 그에게 뭐라 해도 늦지 않다.”

 

했다.

 

二人去了衆將皆未知孔明韜略今雖聽令卻都疑惑不定孔明謂玄德曰主公今日可便引兵就博望山下屯住來日黃昏敵軍必到主公便棄營而走但見火起即回軍掩殺亮與糜竺糜芳引五百軍守縣命孫乾簡雍准備慶喜筵席安排功勞簿伺候派撥已畢玄德亦疑惑不定

 

두 사람이 떠났다. 장수들이 아직 공명의 계략을 알지 못해 이제 비록 명령을 들었으나 모두 의심해 마지않았다. 공명이 현덕에게 말하기를,

 

주공께서 오늘 병력을 이끌고 박망산 아래로 가서 주둔하십시오. 내일 황혼에 적군이 반드시 올테니 주공께서 바로 영채를 버리고 달아나십시오. 그러다 불길이 치솟으면 즉시 군사를 돌려 쳐부수십시오. 저는 미축, 미방과 더불어 5백 군사를 이끌고 고을을 지키겠습니다. 그리고 손건과 간옹에게 명하여 축하 연회를 준비하고 공로 장부를 마련하여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했다. 파견과 안배를 마쳤지만 현덕 역시 의혹이 가라앉지 않았다.

 

卻說夏侯惇與於禁等引兵至博望分一半精兵作前隊其餘盡護糧車而行時當秋月商飆徐起人馬趲行之間望見前面塵頭忽起惇便將人馬擺開問向導官曰此間是何處答曰前面便是博望坡後面是羅川口惇令於禁李典押住陣腳親自出馬陣前遙望軍馬來到惇忽然大笑衆問將軍爲何而笑惇曰吾笑徐元直在丞相面前誇諸葛亮爲天人今觀其用兵乃以此等軍馬爲前部與吾對敵正如驅犬羊與虎豹鬥耳吾於丞相前誇口要活捉劉備諸葛亮今必應吾言矣遂自縱馬向前趙雲出馬惇罵曰汝等隨劉備如孤魂隨鬼耳

 

한편, 하후돈이 우금 등과 더불어 병력을 이끌고 박망에 이르러서 그 절반의 정예병을 나누어 선발부대로 삼고 나머지 병력은 모두 양초를 호송했다. 이때 마침 가을이라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다. 인마들이 길을 재촉하고 있는데 멀리 바라보니 앞쪽에 먼지가 문득 피어올랐다. 하후돈이 곧 인마들을 펼치고, 길을 안내하는 사람에게 묻기를,

 

여기가 어디냐?”

 

하니, 그가 대답하기를,

 

앞쪽은 박망 언덕이고 뒤쪽은 나천 어귀입니다.”

 

했다. 하후돈이 우금과 이전에게 명해 행렬을 멈춰 진을 펼치게 하고 몸소 진 앞으로 나갔다. 멀리 군마들이 오는 걸 보더니 하후돈이 갑자기 크게 웃었다. 사람들이 묻기를,

 

장군께서 무엇 때문에 웃으십니까?”

 

하니, 하후돈이 말하기를,

 

서원직이 승상 면전에서 제갈량을 하늘이 낸 사람이라 자랑하던 것이 우스워서 그랬소! 이제 그 용병하는 꼴을 보니 저 따위 군마를 선봉으로 내세워 우리와 대적하겠다니 바로 개나 양을 몰아 호랑이나 표범과 싸우겠다는 것과 같구려! 내가 승상 앞에서 장담을 해서 유비와 제갈량을 사로잡아야겠는데 이제 틀림없이 내 말대로 되겠소.”

 

했다. 곧 스스로 말을 내달려 앞으로 나갔다. 조운이 말을 타고 나오자 하후돈이 욕하기를,

 

너희가 유비를 따르는 게 마치 오갈데 없는 넋이 귀신을 따라다니는 꼴이구나!”

 

하였다.

 

雲大怒縱馬來戰兩馬相交不數合雲詐敗而走夏侯惇從後追趕雲約走十餘裏回馬又戰不數合又走韓浩拍馬向前諫曰趙雲誘敵恐有埋伏惇曰敵軍如此雖十面埋伏吾何懼哉遂不聽浩言直趕至博望坡一聲炮響玄德自引軍沖將過來接應交戰夏侯惇笑謂韓浩曰此即埋伏之兵也吾今晚不到新野誓不罷兵乃催軍前進玄德趙雲退後便走

 

조운이 크게 노해 말을 내달려 싸우러 나왔다. 두 말이 서로 엇갈린 지 몇합이 되지 않아 조운이 거짓으로 패해 달아났다. 하후돈이 뒤쫓았다. 조운이 약 십여 리를 달아나더니 말머리를 돌려 다시 싸우다가 몇합만에 또 달아났다. 한호가 말에 박차를 가해 달려와 간언하기를,

 

조운이 유인하니 매복이 있을까 걱정스럽습니다.”

 

하니, 하후돈이 말하기를,

 

적군이 이 모양인데 비록 열 방면에서 매복을 한들 내 어찌 두렵겠소!”

 

했다. 결국 한호의 말을 듣지 않고 곧장 박망파까지 뒤쫓았다. 한차례 호포 소리 울리더니 현덕이 몸소 군사를 이끌고 달려들어 조운을 응원하여 교전했다. 하후돈이 웃으며 한호에게 말하기를,

 

이게 바로 매복한 병력이구려! 내가 오늘 저녁까지 신야에 이르지 못하면 맹세코 병력을 거두지 않으리다!”

 

하고, 이에 군사들을 재촉해 전진했다. 현덕과 조운이 뒤로 물러나서 바로 달아났다.

 

時天色已晚濃雲密布又無月色晝風既起夜風愈大夏侯惇只顧催軍趕殺於禁李典趕到窄狹處兩邊都是蘆葦典謂禁曰欺敵者必敗南道路狹山川相逼樹木叢雜倘彼用火攻奈何禁曰君言是也吾當往前爲都督言之君可止住後軍李典便勒回馬大叫後軍慢行人馬走發那裏攔當得住於禁驟馬大叫前軍都督且住

 

이때 날이 이미 저녁이 되어 짙은 구름이 가득한데 달빛도 없었다. 낮부터 바람이 불어 밤이 되자 더욱 거세졌다. 하후돈은 오로지 군사가 추격하기를 재촉할 뿐이었다. 우금과 이전이 뒤따라 와서 좁은 곳에 이르렀는데 양쪽으로 모두 갈대밭이었다. 이전이 우금에게 이르기를,

 

적을 업신여기는 자는 반드시 패한다고 하였소. 남쪽 도로가 좁고 산천이 다가와 있고 수목이 빽빽한데, 만약 적이 화공을 쓴다면 어쩌겠소?”

 

하니, 우금이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옳소. 내가 앞으로 달려가 도독께 말씀드려야겠소. 그대는 후군을 멈추시오.”

 

했다. 이전이 곧 말머리를 돌려 크게 외치기를,

 

후군은 행군을 늦춰라!”

 

했다. 인마들이 질주해 오다가 그 자리에서 가로막혀 멈추었다. 우금이 말을 내달려 크게 외치기를,

 

전군의 도독께서는 일단 멈추시오!”

 

했다.

 

夏侯惇正走之間見於禁從後軍奔來便問何故禁曰南道路狹山川相逼樹木叢雜可防火攻夏侯惇猛省即回馬令軍馬勿進言未已只聽背後喊聲震起早望見一派火光燒著隨後兩邊蘆葦亦著一霎時四面八方盡皆是火又值風大火勢愈猛曹家人馬自相踐踏死者不計其數趙雲回軍趕殺夏侯惇冒煙突火而走

 

하후돈이 한창 달리다 바라보니 우금이 뒤따라 내달려 왔다. 무슨 까닭이냐 물으니 우금이 말하기를,

 

남쪽 도로가 좁고 산천이 다가와 있고 수목이 우거져 화공을 방비해야겠습니다.”

 

하니, 하후돈이 깊이 깨닫고 즉시 말머리를 돌리더니 군마들에게 멈추라고 명령했다.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배후에서 함성이 울리면서 벌써 저 멀리 한 무더기 불길이 눈에 들어왔다. 뒤이어 양쪽의 갈대 역시 불이 붙었다. 삽시간에 사면팔방(四面八方)이 온통 불바다다. 게다가 마침 바람까지 크게 일어나 불길이 더욱 사나워졌다. 조조 진영의 인마들이 서로 짓밟아 죽은 자를 헤아릴 수 없었다. 조운이 군사를 돌려 쫓아와서 무찌르니 하후돈이 연기와 불길을 뚫고 달아났다.

 

且說李典見勢頭不好急奔回博望城時火光中一軍攔住當先大將乃關雲長也李典縱馬混戰奪路而走於禁見糧草車輛都被火燒便投小路奔逃去了夏侯蘭韓浩來救糧草正遇張飛戰不數合張飛一槍刺夏侯蘭於馬下韓浩奪路走脫直殺到天明卻才收軍殺得屍橫遍野血流成河

 

한편, 이전이 살펴보고 형세가 좋지 않아서 서둘러 박망성으로 되돌아가는데 불빛 가운데 한무리 군사가 가로막았다. 앞장선 대장은 바로 관운장이었다. 이전이 말을 내달려 혼전하여 길을 뚫어 달아났다. 우금이 식량과 사초를 실은 수레가 죄다 불살라지는 것을 보고, 곧 작은 길을 뚫어 달아났다. 하후란과 한호가 달려와 식량과 사초를 구하다가 바로 장비와 마주쳤다. 싸운 지 몇 합만에 장비가 한 창으로 하후란을 찔러 낙마시켰다. 한호가 길을 뚫고 달아나서 벗어났다. (장비는) 동틀녘까지 내리 무찌르고서야 군사를 거두었다. 죽인 시체가 들판에 가득하고 핏물이 강을 이루었다.

 

後人有詩曰

 

博望相持用火攻

指揮如意笑談中

直須驚破曹公膽

初出茅廬第一功

 

뒷날 어떤 사람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박망에서 서로 싸우다 화공을 쓰니,

웃고 이야기하며 지휘는 뜻대로 하네.

조공의 간담이 놀라도록 깨뜨리니,

초가집을 나와 처음 세운 공이라네.”

 

했다.

 

夏侯惇收拾殘軍自回許昌

 

하후돈이 패잔군을 수습하여 허창으로 돌아갔다.

 

卻說孔明收軍張二人相謂曰孔明真英傑也行不數裏見糜竺糜芳引軍簇擁著一輛小車車中端坐一人乃孔明也張下馬拜伏於車前須臾玄德趙雲劉封關平等皆至收聚衆軍把所獲糧草輜重分賞將士班師回新野新野百姓望塵遮道而拜吾屬生全皆使君得賢人之力也孔明回至縣中謂玄德曰夏侯惇雖敗去曹操必自引大軍來玄德曰似此如之奈何孔明曰亮有一計可敵曹軍正是破敵未堪息戰馬避兵又必賴良謀

 

한편, 공명이 군사를 거두자, 관우와 장비 두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공명은 참으로 영걸이오!”

 

했다. 몇 리 가지 않아서 미축과 미방이 군사를 거느리고 작은 수레 하나를 호위해 오는데 수레에 단정히 앉은 사람은 바로 공명이다. 관우와 장비가 말에서 내려 수레 앞에서 절하고 엎드렸다. 조금 후에 현덕과 조운 유봉 관평 등이 모두 이르러 군사들을 모으고, 노획한 식량과 사초와 치중을 장수와 사졸들에게 나눠 포상하고, 신야로 회군했다. 신야의 백성들이 먼지를 바라보고 길을 막고 절을 올리며 말하기를,

 

우리 목숨이 온전한 것은 모두 사군께서 현인을 얻으신 덕분이오!”

 

했다. 공명이 신야현으로 돌아가서, 현덕에게 말하기를,

 

하후돈이 비록 패하여 물러갔으나 조조가 반드시 스스로 대군을 이끌고 올 것입니다.”

 

하였다. 현덕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이 일을 어찌 해야겠습니까?”

 

하니, 공명이 말하기를,

 

제게 계책이 하나 있으니 가히 조조 군대를 대적할 수 있습니다.”

 

했다. 이야말로, 적병을 깨뜨리고 아직 전마가 쉬지도 못했는데, 다시 싸움을 피하려면 반드시 좋은 계책이 있어야겠네.

 

未知其計若何且看下回分解

 

그 계책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 이야기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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