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5. 가을 타는 남자[秋日遣興 추일견흥]
0925. 가을 타는 남자[秋日遣興 추일견흥]
采山復釣水, 於世果何求? 身微不羇物, 而寡恩與讐. 時復掩闈坐, 攢眉懷百憂. 家人問何故, 答云性悲秋. |
산에서는 나무하고 물에서는 낚시하니, 세상에 구하는 무엇이 있기나 하나? 지위 낮아 세상일에 걸릴 것 없어, 은덕도 원한도 주고받은 것 적건마는. 때때로 문을 닫고 틀어박힌 채, 이맛살 찌푸리며 갖은 걱정을 하네. 무슨 일 있느냐고 물어오는 식구들에게, 가을을 타노라고 둘러대었네. 채산부조수, 어세과하구? 신미불기물, 이과은여수. 시부엄위좌, 찬미회백우. 가인문하고, 답운성비추. |
김윤식(金允植·1835~1922) |
구한말(舊韓末)의 저명한 정치가(政治家) 겸 학자(學者)였던 김윤식(金允植, 1835~1922)이 1850년대 경기도(京畿道) 양평(陽平) 한강(漢江)가에 살던 20대 시절에 지은 시(詩)다. 이때 그는 세상을 막 배우며 나아가던 젊은이였고, 큰 욕심 없이 그저 묵묵히 공부하며 지냈다. 세상과의 다툼도 없었고, 그렇다고 특별히 덕을 베푼 일도 없었다. 그야말로 평범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가을이 되면 아무리 평범한 사람이라도 마음 한구석에 근심이 스며드는 법이다. 김윤식(金允植)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서 깊은 생각에 잠기자, 식구들이 이상하게 여겨 “무슨 일이 있느냐” 묻기 시작했다. 김윤식(金允植)은 당황하며 얼렁뚱땅 "그냥 가을을 타서 그렇다"고 둘러댔지만, 속마음에 가득했던 걱정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누구나 가을이 되면 걱정이 많아지는 법이라는 고전적인 진리를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김윤식(金允植)처럼 뚜렷한 이유 없이도 가을바람이 스치면 저절로 근심 걱정이 고개를 들게 마련이다. 이 시(詩)에서 그는 걱정의 실체를 밝히지 않지만, 그 묵직한 감정은 독자에게 충분히 전해진다.
그저 가을을 탓할 뿐, 그의 고민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가을의 묘미(妙味)다. 누구나 마음속에 ‘한 아름’씩 걱정을 안고 살아가는 계절. 김윤식(金允植)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한창 나이에 별다른 이유 없이 느껴지는 그 ‘가을 타는’ 감정은 마치 남몰래 속을 들킨 것처럼 그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결국, 김윤식(金允植)은 "가을"이라는 핑계를 대며 자신을 위로했지만, 속마음 깊은 곳의 고민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가을이란 그런 계절이다. 무언가 묵직한 생각이 떠오르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근심이 생기며, 나의 무언가를 자꾸 되돌아보게 만드는 신비한 시간이다.
결국 이 시(詩)는 단순한 계절의 변화가 사람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담담하면서도 솔직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가을이라는 계절이 불러오는 무거운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을 묻어두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김윤식(金允植)은 그 시절에도 그대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시(詩)를 읽다 보면 우리도 문득 김윤식(金允植)처럼 "가을이니까"라는 말로 무심히 우리의 고민을 넘겨버리고 싶어진다.